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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랑사람의 서재

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27,411
추천수 :
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1.06.13 15:46
조회
33
추천
4
글자
9쪽

Episode192_운수가 지독히도 나쁜 날(4)

DUMMY

이래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 압도적인 전력차를 뒤집어엎을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온이 무얼 하든 이젠 단순 시간벌기이자 고통의 연장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많은 시간을 벌어다줄 수도 없다. 기껏해야 숨 돌릴 시간 몇 분 정도. 연명이라 하기에도 무색한 시간이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이것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다.


하온은 먼저 밑에 깔린 바스라진 나무토막을 다시 복구시켜 바리케이드처럼 세웠다. 상당히 빠른 속도 덕에 휘말린 적 몇몇이 찔려 상처를 입을 정도였다.


그것이 하온이 줄 수 있는 마지막 도움이었고, 이제 하온은 최소 십수초 동안은 사라를 내버려둔 채 도주 준비에만 집중해야 헀다.


본래라면 하품 한두번 하고 말 짧은 시간인데도, 이런 상황에서 혼자 그정도 시간을 버티라는건 너무나 무리한 요구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해야만 한다. 물론 훌륭한 판단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이딴 궁여지책 외에 그들이 할 수 있는게 뭐가 더 있단 말인가.


절망을 가득 안고 하온은 집중한다. 사라는 이를 악문다.


하온이 친 바리케이드는 누구나 다 예측했듯이 단 한순간도 버티지 못한 채 단번에 깨끗이 치워졌다. 적의 주의 한번 끄는 정도의 값어치에 지나지 않는다.


"...망할, 오늘이 정말 내가 죽는 날이구나."


사라는 쓴웃음을 지으며 제 신세를 비웃는다. 오늘 수준이 아니라, 다음 순간 바로 목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바로 다음 순간, 하온의 다리가 날아갔다.


눈 깜짝할 새 마구 몰아치는 공세에 다급히 저항해봤지만, 사라가 아무리 날고 긴들 숫자의 압도적인 폭력 아래 밀려나고 말았던 것이다.


단번에 사라의 몸에 다섯 개의 큰 구멍과 스물한개의 상처, 열두개의 타박상이 새겨졌고, 그녀가 막아내지 못한 나머지 공격들은 최우선 타깃인 하온을 집요하게 추격했다.


십수초는 커녕 수초만에 압도적인 전력차를 경험하고 말았다. 사라는 너무 큰 절망감에 감각이 마비되어 되려 멍해지는 진기한 경험을 하고있었다.


심지어 이것은 암살단의 입장에서 매우 여유를 부려준 결과물이다. 한꺼번에 화력을 투사한다면 아군 오폭 문제는 차치하고서도, 하온의 보호의 기적으로 간단히 그 모든 공격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공격을 반사시키는 사라의 불가사의한 힘은 또 어떻고.


따라서 그들은 힘을 아껴가며 반역자들을 몰아넣은 뒤, 지속적으로 압박해오는 전술을 쓰고있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들을 사로잡아 최후에 승리하는 것 아닌가.


그 여유의 결과물에 스쳐 하온의 다리뼈가 박살났다. 그럼에도 집중력의 낭비를 최소화해야 하기에, 하온은 눈을 질끈 감고 다리를 치료하지 않았다.


사라도 뒤의 하온이 상처가 나건 말건 신경쓸 여력은 없었다. 지금 당장 몰려드는 암살단만 상대해도 죽을 판인데 그럴 틈이 어디에 있는가.


섬광파를 경계한 암살단이 친히 그녀의 특기인 근접전 위주로 상대해주고 있는데, 사라는 사방에서 두들겨대는 적들의 압박에 맥을 추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래서야 가죽이 두껍건 속도가 빠르건 다 헛거다.


수십개의 날붙이며 둔기가 그녀의 피를 보려 안달이 나서 달려드는 동안, 사라는 자신의 두 손에 들린 무기만을 믿고 온 천지에 휘둘러대며 제 몸 하나 지키기에만 급급했다. 그런데도 상처와 고통은 늘어만 간다.


직후 예상치 못한 사각에서 적이 맨손을 뻗으며 내달려왔다. 아무런 무기도 들고있지 않은 손을 대놓고 내민 모습을 보니 순간 등골이 오싹해져서, 다급히 몸을 피한 덕분에 손가락 하나 스친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적과 닿은 팔뚝에 감각이 사라진다. 적에게 살짝 스친 살결이 급속도로 석화되어 회색빛으로 굳어져버린 것이다. 아까 뱀을 단단히 굳힌 그 자식이 틀림없다.


즉시 자신의 팔을 옆의 수정인간에게 후려쳤다. 석화된 부분이 깨지면서 살점에서 떨어져나갔지만, 그 대가로 돌아오는 것은 죽을듯한 고통이다.


한편 하온은 그 뒤 팔뚝 하나를 더 작살내고도 여전히 힘을 온존하고 있다. 이미 지나친 고통을 감내하고 있으며, 이 이상 상처를 내버려두면 목숨이 위험한 상태다.


더군다나 졸려온다. 미칠듯이 졸려온다. 기적을 남용한 댓가가 선명히 찾아오고 있었다. 뇌가 그에게 제발 그만하자고 고요히 소리지르듯, 눈꺼풀은 단 한 명의 청년에게 가혹할 정도의 무게로 하온의 안구를 짓눌러왔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거의 다 왔다. 이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틴다면···!


'그래, 지금···!!'


하온의 뇌리에 섬광이 스친다. 동시에 마음이 이어진 사라에게도 그 사실이 전달된다. 더 기다릴 것도 없이, 사라는 이제껏 모인 충격을 칼끝에 실어 섬광파를 발산했다.


그만큼 압도적인 규모의 숫자의 폭력이라 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암살단이 사라의 창을 의식했더라도, 이 잠깐동안 치고박은 정도로 무기에 얼마나 많은 충격이 가해졌는지 가늠도 가지 않는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리고 받은만큼 돌려준 고통은 그만큼 매웠다.


암살단의 진형이 즉시 방어테세로 전환된다. 일사불란하게 정해진 구조대로 움직인 뒤, 앞장선 이들이 신속하고 철저하게 방어벽을 구축한다. 미처 위치가 허락되지 않는 이들은 구호에 특화된 기적을 부리는 자가 쏜살같이 낚아채어 불필요한 희생을 방지한다.


그렇게 고생하며 충격을 모아, 기껏 어마어마한 위력의 섬광파를 만들어냈는데도, 사라가 내지른 회심의 일격은 단 한명의 희생자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파괴의 손길은 허공만 가른 채 무의미하게 사그라들고 말았다.


하지만 그거면 됐다. 아주 잠깐의 동요, 사람들의 주의를 끈 그 섬광만 잠시 비춰주면 충분했다.


하온의 술수에 필요한 것은 그게 전부였기 때문에, 이제껏 모으고 모은 힘을 즉시 치유의 기적으로 전환시켰다.


그 대상이 되는 것은 자신도, 사라도 아니다. 모두의 발밑에 흔히 깔려있는, 아주 작으면서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많고 하찮은 것들. 그 가벼운 것들이 약동하면서 수천 겹의 벽처럼 솟아올라 하온과 사라의 모습을 가렸다.


가을이 지나며 나무에서 떨어졌던 낙엽이 다시 위로 솟구치기 시작한 것이다.


때를 놓칠세라, 사라가 양 손에 각각 하온과 울의 팔목을 잡아채고 그들을 숲 속 깊이 이끌었다.


사방에 널리고 깔린 가지각색 단풍들이 펄럭이며 한때 이어져있던 가지를 향해 날아들었다. 마구 얽히고 움직이는 무수한 색지들은 이 숲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의 주의를 분산시키기에 충분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모두가 형형색색을 보는 맹인이 된 도중이지만, 굳게 서로 손을 쥔 반역자들은 서로를 잃어버리지 않고 함께 발을 움직였다.


어디로 가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멀리는 가지 못한다. 잠깐이라도 저들 눈에 띄지 않는 곳이기만 하다면. 그것 말고 더 바랄 수 있는게 없었다.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장관이지만, 누군가에겐 탈출하지 못할 벽처럼 절망적인 그런 배경을 가로지르며, 그들은 잠시동안 암살단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바닥의 낙엽들이 모조리 솟구쳐 사라지고 이제 더이상 버틸 수가 없게 되었을 즈음, 하온은 다른 둘의 어깨를 짓누르며 함께 바닥에 엎어졌다.


하늘 위 잔뜩 머금은 나뭇잎 밑에서, 하온은 즉시 치유의 기적을 멈추고 단풍을 본래의 자리로 돌려보냈다.


복구명령이 끊어지자마자 낙엽은 다시 밑으로 우수수 떨어져내렸고, 자연스레 밑의 반역자들을 덮으며 몸을 숨겨주었다.


온 세상에 진홍색 이불이 수북이 깔려있었고, 그 자그마한 수백, 수천개의 언덕 중 단 한 곳에 반역자 일행이 숨어있었다. 이만큼 어두운 등잔 밑도 드물것이다.


드디어 얻은 잠깐의 휴식에 반역자들은 다들 숨을 고르느라 난리다. 그마저도 혹여 적이 눈치챌세라 입을 틀어막고 숨소리를 억눌러야만 했다.


여기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적이 그들이 숨은 곳을 발견하기까지 어느정도의 시간이 걸릴까?


하온은 혼미한 머리를 붙들고 끊임없이 의문을 던졌다. 생각하자. 생각해야만 한다. 어떻게 해야하지? 어떤 방법을 써야 살아나갈 수 있지?


작가의말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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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Episode185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3) +2 21.05.19 47 4 13쪽
184 Episode184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2) +2 21.05.14 69 4 11쪽
183 Episode183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1) +2 21.05.08 55 4 8쪽
182 Episode182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0) +4 21.05.05 45 3 8쪽
181 Episode181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9) 21.05.03 37 4 12쪽
180 Episode180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8) +2 21.04.30 60 4 9쪽
179 Episode179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7) +2 21.04.26 61 4 7쪽
178 Episode178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6) +4 21.04.21 49 4 8쪽
177 Episode177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5) +2 21.04.18 45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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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Episode175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3) +2 21.04.07 59 3 8쪽
174 Episode174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2) +4 21.04.04 50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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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Episode169_울이란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가(10) +2 21.03.08 39 3 8쪽
168 Episode168_울이란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가(9) +4 21.03.04 87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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