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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랑사람의 서재

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27,359
추천수 :
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1.05.25 19:32
조회
46
추천
4
글자
11쪽

Episode187_잠시만 평화롭게(1)

DUMMY

하온의 눈이 뜨이자마자 본 것은 네모난 나무 널빤지가 다닥다닥 붙어 만들어진 자그마한 벽면이었다. 자신이 평소의 수레 위에서 깨어났음을 안 그는 당황해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큰 상처를 입은 몸이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비명을 질러대서 눈 앞이 핑 돌았다. 입술을 깨물고 실컷 고통을 호소하다가, 흐려린 시야에 사람의 실루엣이 슬쩍 비췄다. 수레를 이끌고있는 그의 아버지 울이었다. 늘 그랬듯 말고삐를 잡고 뒤 한번 안 돌아본 채 앞으로의 방향을 재고 있다.


“...아버지가 저희를 데려와주신 건가요?”


하온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의 움직임이 우뚝 멈추더니 서서히 방향을 틀며 돌아갔다. 그렇게 마침내 보인 울의 표정은 하온이 경악할만큼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아, 아버지··· 우셨어요?”


“그랬다.”


세상 진지한 무표정의 얼굴에 말라붙은 눈물자국이 선명히 나있는 그 모습은 참으로 어색하다.


싸움이 끝나고 소란이 잠잠해지자마자 울은 다급히 내달려와 제 아들과 처녀를 찾았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늘 그렇듯 넝마짝이 되어있는 하온과 사라의 모습.


또 혹시모를 싸움판이 벌어지기 전에 재빨리 일행들을 수습해서 데리고 도망친 것인데, 상처도 심하고 깨어날 기미도 보이지 않는 자식의 모습에 그만 눈물을 참는 것을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 찾는거 한번 더럽게 쉽더구나. 너희들이 숲의 모든 나무며 풀이며 다 작살낸 덕에 아주 시야가 탁 트였거든. 아니지, 이제 숲이 아니라 완전히 황무지던데!”


이런 사태가 어지간히도 질렸던지 오늘의 울은 조금 더 까탈스럽다. 하온이 뭐라 할 말도 찾지 못해서 입을 우물거리는 동안 뒤에서 또다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몇 시간을 자고 이제 일어난거야? 머리 아프겠다.”


그 음성을 듣자마자 하온의 그 아픈 머리가 총알과 같은 속도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무지하게 다급히 외친다.


“사, 사라! 괜찮아?”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다리께에 잔뜩 멍과 상처가 새겨진 사라가 있었다. 하온은 얼른 그녀에게 달라붙어서 치유의 기적을 사용한다. 이에 사라가 손을 내저으며 부루퉁하게 말한다.


“됐어. 너 먼저 치료해. 나 가죽 두꺼운건 다 알면서.”


하나도 안괜찮은 표정을 해놓고선 얼굴가죽은 참 두껍다. 하온은 아랑곳 않고 치료를 계속했다. 생채기 하나도 그냥 두기 싫은데 이렇게나 크게 다쳐놓고 내가 먼저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


그런데 평소라면 언제나 고맙다며 웃어주던 사라가 오늘은 또 조금 다르다. 혹시 어딘가 상처가 안좋은데도 숨기고 있는 곳이 있나? 하지만 마음이 통하기 시작한 지금에 와서 그녀가 무언가를 숨긴다는 것은 불가능할텐데. 하온이 걱정스럽게 묻는다.


“...저기, 정말 괜찮은 거 맞지?”


“됐다니까 그러네. 어차피 나보다 그 여자가 더 중했을텐데 뭐.”


“으··· 으응?”


그리고 예상과 다른 매우 퉁명스럽고 뜬금없는 대답에 하온의 얼굴에 물음표가 피어난다.


“다리 다친 난 뒤에다 내버려두고서 그 암살단 여자 먼저 치료해줬잖아. 그래 잘됐네. 나보다 걔가 더 우선이다 이거지?”


사라는 입이 삐죽 나와서 도끼눈을 뜨고, 삐딱하게 턱을 괴고선, 손가락은 참으로 불안정하게 제 다리를 톡톡톡 두들기고 있다. 거의 추궁하다시피 상대편을 쪼아대는 눈빛에 하온은 단숨에 기가 죽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


“그, 그야 그땐 정말 정신이 없었어. 진짜 미안해, 하지만 이미 거기까지 날아간 것 만으로 힘이 다해서, 할 수 있었던 건 일단 목숨이 위험한 사람 먼저 구하는 거였단 말야. 손이 닿는게 걔밖에 없는걸 어떡해···.”


“나도 알아 인마. 얼마 전부터 니 생각은 훤히 보인단 말이다.”


안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화가 안 풀린듯한 사라. 그럼 대체 무엇이 문제라는 소린지 매우 혼란스럽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하온은 지금 적신호를 감지했다. 아, 누군가는 말했던가. 천 길 물 속은 알아도 여자 맘 속은 아무도 모른다고.


솔직히 이전에는 단 한번도 진지하게 받아들였던 적이 없던 문구였는데 지금만큼은 좀 알겠다.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리고 불안한 마음으로 자그마한 예측을 입에 담는다. 설마··· 설마 사라, 너···.


“너··· 너 설마, 삐졌냐···?”


“아 삐졌다!! 왜 불만있냐!!!”


아옹다옹 잘들 노는 이 애송이들의 우격다짐. 한창 시끄러워지는 수레의 기류가 끝도없이 운전자의 귀를 간지럽혔다.


“너희 그만 좀...”


결국 참다못한 울의 불호령이 떨어지려던 찰나, 하온의 옷깃 안쪽에서 왕눈이 괴물의 깐족거림이 불쑥 튀어나온다.


“야, 둘이 부부싸움은 나중에 하고 지금은 목소리 좀 낮춰봐. 기껏 이어붙인 혈관까지 다 터질라.”


(2초간의 침묵)


“누가 부부래 이 저질 아저씨야—!!!”


그 외침과 함께 즉시 사라의 손이 뻗어나가 왕눈이 괴물의 몸체를 부여잡더니, 커다란 반원을 그리며 수레의 사방에 골고루 패대기질을 쳤다.


“악! 헉! 얔! 켁!”


그제야 제 행동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게 된 사라는 선악과 먹은 하와마냥 얼굴이 새빨개져서, 수레는 조용해지긴 커녕 더 큰 소음과 흔들림으로 난리도 아니었지만, 울 본인도 그 기세에 쫄아버렸던지라 오늘만은 봐준다고 치고 조용히 운전이나 하기로 했다.


이후 두 남녀 사이에 다시 대화가 시작된 것은 소란이 잦아들고 또 한 시간의 어색한 침묵이 지난 후였다.


“...그래서, 그 사람들 치료는 제대로 해준거지?”


물론 아까는 왜 적 먼저 챙기냐고 서운함을 표하긴 했지만, 말이야 그렇단거지 사라라고 해서 그 사람들이 죽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힘든 길을 걷는 그녀라 해도 선을 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래, 언젠가는 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빼앗아야 할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모르지만, 그렇다 해서 그 때 하온이 내린 판단을 부정하고 싶진 않았다. 그건 정말 최후의 수단.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에만···


그러나 하온은 생각한다. 그의 치료는 완벽하지 않았다. 도중에 그만 정신을 잃고, 그에게 영구적인 장애를 하나 남겨둬버렸다. 그런 단 하나의 불행도 하온에게는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마음에 걸린다.


그 마음을 읽고 사라는 참 하온답다 생각해 미소지었다. 목숨을 살려준 것만도 분에 넘치는데 뭘 그정도 가지고. 등을 툭툭 두들기며 동료를 위로한다.


“뭐, 그정도면 충분해. 넌 최선을 다했으니까.”


“하지만, 최선을 다하는건 누구든 똑같아.”


하온은 그렇게 대꾸하면서도 또 그녀의 손길에 고마움을 느끼며 또다른 미소로 화답한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게 하나 있어서 아차 싶어 그 입을 벌렸다.


“...아. 잠깐. 치료할게 하나 남았다.”




수레 위에 금속 토막 두 개가 가지런히 놓인다. 직후 사라가 그 토막에 손을 대자, 그것은 은빛 광채를 내뿜으며 멋드러진 창의 형태로 변화한다. 다만 어디까지나 두 동강 난 상태로 말이다.


이전까지는 그 어떤 일에도 흠집 하나 나지 않은 무적의 무기였지만, 하온이 멋모르고 쓴 무한동력장치가 파괴의 기적을 증폭시키면서 휩쓸린 은창까지 토막을 내놨다.


물론 무서운 물건이란건 알았지만 이런 식으로 혼자 폭주할줄은 몰랐다. 하온은 치를 떨면서 다신 장치에 손을 대지 않으리라 마음먹는다.


그나저나 이미 사단은 났고, 이제 뒷수습이라도 해봐야하지 않겠는가. 그런 마음에 혹시나 싶어 사라의 창에 대고 치유의 기적을 불어넣어보았다.


당연히 어림도 없다. 창은 미동도 않은 채 다시는 원래 형상으로 되돌아오지 않았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부러져 두 조각난 이 창에 대해 토론을 나누기로 한 반역자 일행. 사뭇 진중한 분위기가 그들 사이에서 감돈다.


"줄어드는 건 원래대로 줄어드니 다행인데, 자그만 조각 두개로 나뉘어지니 보관하기 더 불편해진듯도 하고. 혹여나 잃어버리는 일은 없을지 그게 걱정이구나. 또··· 형태가 완전히 달라졌으니 이전과는 다른 전투방법에 새로 익숙해지는 것도 어려울테고."


울이야 늘 그렇듯 지극히 실리적인 이유에서 이 상황을 걱정한다.


“이, 이 보배가 이 꼬라지가 되다니, 이 무슨 참변이··· 인류사에 길이 남을 참사가···.”


한편 왕눈이 괴물은 가슴 아파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끙끙 앓고있다. 십수개의 눈이 전부 각각 돌아가서 허옇게 뒤집힐 지경이었다.


"혹시 그 무한동력장치로 치유의 기적을 써보면?"


"관둬, 다신 안해."


그러다 네동강 만들 일 있나, 하온은 또한번 치를 떤다.


"아니··· 물론 내가 써먹으라 주긴 했는데··· 이게 얼마나 귀중한··· 아오 이 귀한걸··· 끄윽··· 커헉···!"


그러는 동안 왕눈이 괴물은 이제 앓다못해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다. 3분만 더 놔두면 피 토하는 것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다들 심각하게 보지만 정작 사라는 딱히 심각하지가 않다. 그냥 이대로 싸우면 되지 않나··· 싶다.


되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고 다들 불러세운 사라는 줄어든 창조각을 주섬주섬 챙기더니 말한다.


“자, 자, 이거 봐라.”


그리고 손을 쫙 펴서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시킨 뒤,


단숨에 소매 아래 숨긴 무기를 펼쳐 촤악 뽑아내더니, 양 손에 각각 칼날과 곤봉을 쌍수로 들고선 한껏 폼을 재며 말한다.


“창날 있는 쪽은 백룡도. 봉만 남은 쪽은 봉황곤. 괜찮지 않냐?”


그와 동시에 모든 일행의 맥이 탁 풀려서 사고를 멈췄고, 그 진지하던 논의가 뚝 끊겨 싸늘한 침묵이 감돌았다.


참으로 스산한 반응에 사라는 당황하여 자신의 작명법에 나름의 변호를 덧붙였으나, 그 말이 이 상황에서 지성적인 측면을 더해주는 것은 또 아니었다.


“아니, 반응이 왜 이러냐? 이제 반토막 나서 칼날 있는 쪽이 칼처럼 생긴건 사실이잖아!”


“됐다. 텄다 텄어. 그냥 가자.”


아무튼 사라의 이 행동이 여러 문제로 복잡하던 머리를 한꺼번에 시원하게 날려주기는 했으므로, 일행들은 모두 다시 수레로 돌아가 출발할 준비를 시작했다.


여전히 사라는 의구심 가득한 표정으로 손잡이와 무기분류의 상관관계에 대한 열변을 토한다. 분명 그게 문제가 아니란 사실은 아직까지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작가의말

과감히 은창을 쪼갠 것까지는 좋았는데, 전투묘사중에 창날 부분 봉 부분 이따위로 부르는게 좀 거시기해서 아예 이름을 나눠서 지어줬습니다. 고맙다 사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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