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살사랑사람의 서재

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27,408
추천수 :
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1.05.14 20:47
조회
68
추천
4
글자
11쪽

Episode184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2)

DUMMY

네아의 눈이 다시 서서히 뜨인다. 그 슬픈 눈망울에는 작은 이슬이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었다. 고작 몇 초 간의 짧은 실신이었음에도 마치 몇 년을 체험한듯 공허한 마음이었다.


그 눈물젖은 동공이 움직여 사라와 하온을 본다. 이쪽을 노려보며 잔뜩 힘이 들어간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다. 이제 결착을 내자는 그 마음은 분명 그녀도 같았지만, 지금은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네아는 그들에게 손을 척 들어올리며 손바닥을 보이더니, 마치 부탁하듯 나지막히 목소리를 내었다.


“...기다려라. 데리러 갈 사람이 있어.”


그런 제 본위의 말만 툭 남겨두고는 그대로 부우웅 떠나 어디론가로 사라지는 네아.


덩그러니 남겨진 반역자들은 갑자기 찾아온 소강상태에 상당히 당황한 눈치다.


“저··· 저거 어디 가냐?”


설마 더이상 싸움을 지속하기 힘들다고 파악하고 도망가는걸까? 하지만 적은 기다리라고 말했다. 물론 단순히 우리의 발을 묶어보려는 어처구니 없는 시도일지도 모르지만...


“어쩔까, 도망칠까?”


사라가 하온에게 의견을 묻는다. 하온도 고심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어쩌면 생각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당장 튀는 편이 훨씬 지혜로운 판단일지도 모른다.


“...아냐, 기다리자. 어차피 금방 올거야. 차라리 등을 보이지 않는 편이 낫지.”


하지만 이번에는 하온도 적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네아의 그 갑작스런 변화는 전혀 투지의 상실로는 비춰지지 않았던 탓이다.


“그리고··· 치료해주고 싶은 사람이 하나 있잖아.”


생각해보면 그것이 이 모든 오해의 원인이기도 했다.



***



눈을 감아도 보인다. 지금 그가 어디에 있는지. 내딛는 발, 스치는 감각 하나하나가 느껴지며 네아를 목표에게 인도한다.


수풀을 헤치고 조금만 더 날아가면 보일 그 실루엣이 바로 네아가 찾던 그 사람이다. 그는 눈이 멀어 앞도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억지로 눈 앞을 헤집고 달려갈수록 가시에 찔리고 돌부리에 넘어져서 꼴이 말도 아니었다.


그런 애쉬가 마침내 사라의 앞에 다가섰다. 사라도 허공에서 내려와 애쉬와 눈높이를 맞췄다. 지금 그녀에게는 어떠한 반발이나 원망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네아,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야 한다.”


애쉬는 말했고, 네아는 구태여 대꾸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넌 암살단이 아니다. 처음부터 아니었어. 내 부하도 아냐! 넌, 자유다. 누가 뭐래도 넌 자유야. 그러니까 지금부턴···, 너 하고싶은 대로 해라.”


“...”


“어떤 삶이건··· 어떤 짓이건···.”


그 말을 쏟아내다 균형을 잃고 휘청이려던 애쉬를 네아가 붙잡아 부축했다. 처음으로 그녀에게 몸무게를 기댄 애쉬는 곧 그 굳건함에 그녀의 의지를 알았고, 조금 쓰디쓴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녀를 말리는 대신, 애쉬는 자신의 허리춤에 메단 기다란 탄띠를 끌러 그녀에게 건네었다.


“싸우겠다면, 이걸 받아라.”


네아도 그것을 받아들었다. 마음문은 이제 완전히 열렸다. 둘의 정신이 흑광석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었고, 이제 그 유대는 누구도 끊어놓을 수 없었다.


그와 함께 애쉬의 삶이 그녀에게 흘러 들어갔다.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쌓아왔던 전투법과 경험, 노하우가 전부 전수되었다. 네아가 진정으로 애쉬의 제자이자 후계자가 된 순간이었다.


이제 더 해줄 것이 없다는 듯 한결 후련해진 스승의 표정을 보고, 네아는 그를 근처의 햇볕드는 바위에 조심히 눕혔다. 이번에는 애쉬가 기다릴 차례였다.


금방 다녀올게요.


무사히 돌아오렴.


네아의 몸이 부웅 떠오르고 적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다만 그를 등진 그 짧은 순간동안, 네아는 마지막 한마디를 애쉬에게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편히 쉬어요.”


그리고 네아는 바람처럼 날아 수풀 너머로 사라졌다.



***



“이제 어디 더 아픈 곳은 없지?”


“뭐 있겠냐, 어깨걸림까지 싹 사라졌다.”


적을 기다리는 동안 사라와 하온은 치유의 기적으로 몸을 완전히 회복시켰다. 그리고 마치 노린듯이 동시에 저편에서 네아가 날아온다.


“...정말 금방 왔네.”


“정말 기다려줬군.”


땅을 울리며 멋드러지게 착지한 네아가 그들의 혼잣말에 답한다. 사라도 속으로 부럽다고 생각할만큼 박력 넘치는 모습이었다.


네아는 받아들은 탄띠를 어깨에 걸쳐 둘러메었다. 사라도 이제 두 개가 된 무기를 고쳐쥐며 그녀를 겨눈다. 별 의미는 없지만 흑광석 목걸이를 겨누는 하온은 덤이다.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딱 한번 눈을 깜빡이는 동안, 네아는 아주 짧게 생각했다.


아저씨. 이런 선택을 한 것, 미안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나 역시 내 마음을 모르는걸요. 그러니, 꼭 확인하고 싶어. 조금만 참아줄 수 있나요?


0.1초 후 눈을 뜨자, 어느새 사라는 어마어마한 돌진력으로 그녀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곧장 하늘로 도약하여, 아래로 방향을 틀고 수직하강하는 철권을 내려꽃았다. 대지가 뒤집어지고 다시금 온 숲이 소란을 일으킨다.


튀어오른 바위조각이 허공에 멈춘다. 하온의 소행이다. 그것을 즈려밟아 하늘 위로 함께 솟아오른 사라. 창날을 바짝 세우고 네아에게 날아들었다.


네아는 이에 대항해 드디어 애쉬에게 받은 탄띠에 손을 대었다. 그리고 탄알 하나를 빼내어 적을 향해 내던진다.


<저 금속조각 안에 화약이 들어있어. 화약은 그 자체만으로 강력하고 폭발력있는 물건이다. 네가 하는건 단지 불을 당기는 정도라고만 생각하면 돼. 어렵지 않아. 자, 해봐라!>


마음 속에 울리는 애쉬의 목소리를 따라 손가락을 딱 쳐서 신호를 보낸다. 단숨에 폭발하는 불꽃의 압력과 증기에 기껏 접근한 사라의 몸이 다시 밀쳐지며 지면에 부닥쳤다.


“크윽!”


바로 앞에서 터진 폭발이었기에 자칫하면 내상을 입었을지도 모르는 위기상황, 창의 힘으로 충격을 흡수하지 않았더라면 곧바로 다시 일어서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탄띠의 유용성을 파악한 하온이 재빨리 네아를 눈으로 쫓았다. 파괴의 기적으로 띠 자체를 끊어 떨어트릴 요량이었으나, 자그마한 띠는 커녕 그녀의 잔상조차 따라가기 힘들다.


결국 탄띠를 포착하기도 전에 본인이 포착당해버려서, 곧장 사방을 부수는 주먹공격에 당해 벌써 보호의 기적을 써먹어버렸다.


<항상 움직이는걸 의식해. 날 수 있다는 건 네 생각보다 훨씬 큰 이점이다! 수평과 수직의 움직임을 섞으면, 긴박한 전투 중 네 경로를 제대로 겨냥하지 못할거야.>


현란하게 허공을 누비는 그 모습에 이전의 촌티넘치는 미숙함은 온데간데 없다. 마치 십수년을 사지에서 보낸 베테랑과 같이 자유자재로 능력을 다루고 있다.


주먹의 형상을 펴서 얇고 긴 손가락을 다섯 갈래로 뻗어냈고, 산탄처럼 넓은 범위로 쏟아지는 기둥 다섯개가 연달아 떨어지며 사방을 부숴댔다. 날쌔게 피하고 쳐내던 사라마저도 전부 막아내지 못해 옆구리에 약지가 스치고 말았다.


헌데 아주 약간 스친 것에 불과함에도 그 위력이 어마어마하다. 엄청난 진동과 함께 닿은 부위를 중심으로 신체가 뒤틀렸고, 이내 살이 부욱 찢어지며 큰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이, 이건···!!”


네아가 직접 때렸을때 발동되었던 애쉬의 두 번째 기적!


<지진의 힘은 네게 직접 닿아야만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주먹을 날릴 때 그 허상이 실제 너와 이어져있다고 상상해라. 주먹 자체를 네 힘의 매개체로 사용해!>


그 조언을 말 그대로 마음으로 새겨들은 네아의 응용법이 사라의 허를 찌른 것이다.


이 틈을 노린 후속타로 단숨에 적의 숨통을 끊고 싶었지만, 그녀의 무기가 이어지는 주먹공격을 흡수해버려 이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공격의 템포를 늦출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적은 둘이니까.


탄알 하나 날려 폭발을 먹이고 곧바로 몸의 방향을 돌린다. 하온도 알아챘다. 날 노리고 있구나! 동시에 이리로 여러개의 탄알과 함께 주먹이 날아든다. 견제와 필살의 일격을 동시에 부르는 만능 기술이다.


이제 치유의 기적도 없는 맨몸뚱이 하온은 다급히 옆의 깊은 구덩이에 몸을 던졌다. 아까와 같은 참호 전법이었다. 지하로 꽁무니를 뺀 덕에 폭발의 막대한 열기와 물리적 충격은 그의 머리 한참 위를 지나서 몰아쳤다. 허나 그래봤자 이 전법이 먹히는 것도 딱 한번 뿐.


그의 모습이 보이도록 아주 조금만 위치를 바꾸고, 이어서 연타를 날려대는 네아의 공격에 하온은 재빨리 땅에 손을 대고 치유의 기적을 발휘한다. 파괴된 대지가 복구되며 그의 앞에 뻥 뚫린 구멍을 메꾸었고, 그것이 방패역할을 해준 덕에 즉사를 면한다.


그쯤은 아무 상관 없다는듯 계속 공격을 퍼부어대는 네아. 그 파괴력을 감당하기엔 치유의 기적이 역부족이다. 주먹의 충격이 점차 가까이 다가오던 그 순간 약해진 지반이 한계에 도달했다. 깊게 파내려간 구덩이가 단숨에 매몰되었고, 졸지에 하온은 그에 파묻혀서 생매장당하고 말았다.


한쪽 적을 묶어뒀으니 안심하고 사라를 찾는 네아. 그런데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등골이 오싹하는 기분에 뒤를 돌아본다. 놀랍게도 사라는 허공에 떠서 네아의 등을 잡고 이리 날아오고 있었다. 제 무기의 봉 부분을 바닥에 꽃아, 섬광파를 날리며 그 충격의 반동으로 여기까지 뛰어오른 것이다.


네아는 곧장 주먹을 뻗어 철권을 발사했다. 어찌나 예리한 역공이었는지 막아낸 창날이 튕겨져나가서 사라의 손에서 빠져나간다. 기껏 내민 날붙이는 땅아래로 떨어져버리고, 이제 그녀의 손에 남은 무기라곤 없다. 그럴바엔 차라리 다른 방법이 있다.


사라의 서슬퍼런 얼굴이 가까이 다가와 네아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쏜살같이 그녀를 속박해 뒤에서 꽈악 끌어안았다. 한쪽 팔은 어깨를 틀어쥐고 다른 한쪽으로는 목을 조였다.


적은 당황한다. 팔이 묶여있으니 주먹은 뻗을 수도 없고, 목까지 속박되어 세게 후려치질 못하니 지진을 일으키는 것도 불가능하다.


몸은 꿈쩍도 않고 갑자기 숨이 턱 막히자 네아도 다급해졌다. 몸을 뒤틀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다, 정 방법이 없으니 결국 지면을 향해 돌진해갔다.


흙과 바위, 나무토막에 몸을 부딪치며 사라를 말 그대로 갈아버리려는 것이다. 등에 붙은 껌딱지를 떼어낼 때까지 광분하여 마구 질주해대는 그녀의 폭주에 사라도 반쯤 정신이 나갔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동시에 온 숲과 땅과 하늘이 함께 비명을 지른다. 천지가 뒤집히고 대지를 가르는 그들의 사투가 사방을 누비는 것이다.


작가의말

”포브스 선정 산림청이 싫어하는 웹소설 1위“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54 Jy2315
    작성일
    21.05.15 19:23
    No. 1

    소제목과 정말 안어울리는 장면이네요 ㅋㅋㅋㅋ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방구석4평
    작성일
    21.05.18 20:20
    No. 2

    콰광쾅콰오

    아차... 그리고 다음 화는 도저히 끊어서 올릴 수가 없었던지라 수요일에 2회차 분량이 한꺼번에 올라갑니다. 양해의 말씀 드립니다...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하늘을 등지고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95 Episode195_운수가 지독히도 나쁜 날(6) +1 21.06.21 35 4 7쪽
194 Episode194_운수가 지독히도 나쁜 날(6) +1 21.06.18 41 4 7쪽
193 Episode193_운수가 지독히도 나쁜 날(5) 21.06.17 31 5 8쪽
192 Episode192_운수가 지독히도 나쁜 날(4) 21.06.13 33 4 9쪽
191 Episode191_운수가 지독히도 나쁜 날(3) +2 21.06.09 36 4 12쪽
190 Episode190_운수가 지독히도 나쁜 날(2) 21.06.08 36 5 9쪽
189 Episode189_운수가 지독히도 나쁜 날(1) +2 21.06.04 36 4 8쪽
188 Episode188_잠시만 평화롭게(2) +2 21.05.30 46 4 9쪽
187 Episode187_잠시만 평화롭게(1) +2 21.05.25 47 4 11쪽
186 Episode186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4) +2 21.05.21 56 4 14쪽
185 Episode185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3) +2 21.05.19 47 4 13쪽
» Episode184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2) +2 21.05.14 69 4 11쪽
183 Episode183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1) +2 21.05.08 55 4 8쪽
182 Episode182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0) +4 21.05.05 45 3 8쪽
181 Episode181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9) 21.05.03 37 4 12쪽
180 Episode180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8) +2 21.04.30 60 4 9쪽
179 Episode179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7) +2 21.04.26 61 4 7쪽
178 Episode178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6) +4 21.04.21 48 4 8쪽
177 Episode177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5) +2 21.04.18 45 4 10쪽
176 Episode176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4) +2 21.04.12 58 2 10쪽
175 Episode175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3) +2 21.04.07 59 3 8쪽
174 Episode174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2) +4 21.04.04 49 4 8쪽
173 Episode173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 21.03.31 50 4 8쪽
172 Episode172_짤막한 이야기 +4 21.03.29 58 4 10쪽
171 Episode171_울이란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가(12) +5 21.03.19 61 2 11쪽
170 Episode170_울이란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가(11) +4 21.03.12 55 2 7쪽
169 Episode169_울이란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가(10) +2 21.03.08 39 3 8쪽
168 Episode168_울이란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가(9) +4 21.03.04 87 4 8쪽
167 Episode167_울이란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가(8) +2 21.03.01 63 5 9쪽
166 Episode166_울이란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가(7) +4 21.02.21 87 6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