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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랑사람의 서재

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27,374
추천수 :
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1.03.29 06:57
조회
57
추천
4
글자
10쪽

Episode172_짤막한 이야기

DUMMY

날은 밝았다. 여행은 이어진다. 길을 돌아서, 같은 도로를 따라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목말라...’


그리고 사라는 생각했다. 밝은 태양 아래 날은 쌀쌀하니 건조하고 그래서 목이 말랐다.


그리고 하온은 자연스레 물병을 내밀었다. 동시에 사라도 자연스레 팔을 뻗어 이를 집어 마셨다.


둘 모두 거의 무의식적으로 한 행위였고, 자신이 상대를 도왔다는 자각도 하고있지 않았다.


울 역시 쌀쌀한 날씨를 느끼며 한숨을 푹 쉬었다. 안개가 옅게 피어오르며 수증기로 변해 사라졌다. 누가 봐도 확실히 차가운 날이다.


“이제는 겨울도 다 왔군.”


“눈 구경은 실컷 하겠네요. 하필 우리 다 바깥에서 쌔빠지게 구르고 있을 때에.”


이에 사라가 대답한다. 그와 동시에 하온이 손가락으로 뭔가를 가리키며 말을 덧붙인다.


“나중 기다릴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그 말 대로 하온이 가리킨 하늘을 보아하니 흐린 구름 아래 하얀 점이 부슬부슬 내려오고 있다. 첫눈이 내리는 낭만적인 순간이다.


눈은 바닥에 떨어지고 살결에 닿자마자 급속도로 녹아 형체를 잃었다. 모습을 바꾼 수분은 그 댓가로 사라로부터 열기를 앗아가 한기를 더한다.


“망할, 방금 한 말 취소다. 난 눈 구경 싫어.”


사라는 뒤집어쓴 망토에 더욱 몸을 싸맨다. 낭만은 개뿔. 가뜩이나 (전)농부의 입장에서 눈 내리고 땅 얼고 질퍽이는게 치가 떨리도록 귀찮은 일이다.


하온도 옷을 싸매며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이었다. 그러니 손, 발, 얼굴은 차갑고 그 아래 위 몸뚱이는 답답해 몸이 무겁다. 그와 동시에 점차 굵어지는 눈다발은 옷에 배어들어 천을 적신다.


“나라님도 기왕 사람 모함할 일 있었으면 여름에나 할 것이지. 그럼 최소한 눈 볼 일은 절대 없었을텐데.”


점점 귀찮게 하는 날씨에 다시 구시렁대는 사라였으나, 왕눈이 괴물은 그 말을 듣고는 피식 웃더니 사라에게 요상한 대꾸를 한다.


“야, 너 그거 아냐? 원래는 여름이라고 눈구경 할 일이 전혀 없진 않았어.”


그 말에 모든 동료들이 괴물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비록 입은 열지 않았지만 하나같이 ‘뭔 소리야.’하는 눈빛이 대놓고 보인다. 이에 왕눈이 괴물은 비록 별 생각 없이 한 말이라지만 좀 억울했는지 부당하다는 말투로 자신의 말을 해명했다.


“이거 왜이래? 정말이야. 옛날에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들 위에 항상 눈이 쌓여있었어. 여름이고 겨울이고 암만 세월이 지나도 녹지 않는다고 해서 만년설이라고 불렀단 말야.”


농담이라기엔 지나치게 진지한 말투에 사라는 물론이요 울마저도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하온도 자신이 읽고 들은 지식을 머리속으로 쭈욱 훑어봤지만 도저히 들은 바 없는 얘기라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에이, 설마요. 그런 말은 무슨 책을 봐도 없었는데요?”


“이것 보래요. 우리 똘똘이 하온도 그런 얘길 못들어봤다는데 왕눈 아저씨가 하는 말을 어떻게 믿겠어요?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높은 산 위의 눈이라면 태양에 가장 가깝다는 뜻인데. 그 빛에 녹지 않는다는게 말이 되나?”


사라가 이에 거들며 핀잔을 주자 왕눈이 괴물은 급기야 아주 노발대발을 하며 이 무식자들의 우문을 지탄하기 시작한다.


“이것들아, 그건 다 니들이 우물 안 개구리라 그런거야! 놀랍게도 하늘 위로 올라갈수록 기온은 떨어져서, 아주아주 높은 지역은 눈이 얼어있을 정도로 추울 수 있단 말이다!

사람이 날아댕기던 황금시대 땐 누구나 다 알고있는 상식이었다는데 말야. 에잉 쯧! 지들끼리 지지고 볶고 하다가 이젠 이런 기초적인 지식도 모르는 인간이 태반이라니. 야, 너희가 물리학을 알어? 우주의 존재를 아느냔 말이다!”


피, 자기도 그 시대 한참 뒤에 태어났다면서. 무식자 사라는 그래도 코 한번 긁적이고는 한번 장단을 맞춰주기로 한다.


“그럼 그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산이란 게 어디있는데요?”


“으음··· 그게, 설명하자면 복잡한데, 지금은 없어. 두동강이 나 쪼개진 상태거든.”


그 정확한 이야기란 이러했다. 지금은 완전히 잊혀져 왕실 극비 도서관의 책 한 귀퉁이에나 짤막짤막 써져있을 테지만, 분명히 실존했던 한 섬에 대한 이야기.


그것이 지금 이 세상에 남아있는 단 하나의 증인(이라기보단 증물)에 의해 하온과 사라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



그 시절은··· 그러니까 황금시대의 일이었다. 황금시대엔 모든 것이 풍족했으므로 다 함께 어우러져 살아갔다고 여겨지긴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 세상에는 특이한 인간들이 많고, 또 가끔은 그런 자들이 모여 커다란 집단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그 특이성이 범인의 정도를 훨씬 뛰어넘었는데, 지상의 너절한 인간과 자신의 차별성을 주장하며 다수와의 분리를 열렬하게 원했던 것이다.


곧 이러한 부류들이 무시할 수 없을만큼 많은 수가 모이자, 그들은 자신의 바램을 실행으로 옮기고자 했다. 세상의 흔한 멍청이들과는 안녕이라면서 자신들끼리만 살 수 있는 국가를 세우겠노라 선포한 것이다.


하지만 같은 지상에서 울타리 두르고 사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는 행위였다. 이 지나치게 진보한 황금시대에 그런 지역의 구분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아주 무식한 방법으로 외부의 출입을 방지하고자 했는데, 그 방법에 쓰인 것이 바로 아까 왕눈이 괴물이 말한 세상에서 가장 큰 산이다.


그들은 산의 내부를 파내어 커다란 공동을 만들어 보금자리를 짓고는, 산을 위아래로 두 동강을 내버렸다. 그러더니 위쪽부분을 흑광석의 힘으로 하늘 위에 들어올렸다.


그랬다. 고작 지상과 차별화되고 싶다는 욕망만으로 이들은 공중에 떠있는 섬을 만들어 그 안에 갇혀서 지냈던 것이다. 가뜩이나 무분별한 땅깎기와 채굴로 높은 산은 남아나질 않았었는데 아까운 짓을 했다.


이후 이곳을 올림푸스라고 명명했다. 옛 언어로 신들의 도시란 의미를 가진다. 지들이 신이라는 소린데, 참으로 낮짝이 두꺼운 놈들이다. 여하간 이렇게 올림푸스의 신들은 비로소 지상의 너절한 인간들의 품을 떠나 하늘 위에 둥둥 떠있을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은 돌가죽이 아니었기에 식료품이나 기타 물품을 공급할 통로 하나는 남겨둬야 했지만, 그마저도 엄중한 경비를 세워둔 채 극도로 출입을 통제했다. 왜 그렇게 고생을 사서 했는지는 신만이 알 것이다.


소원을 이룬 올림푸스의 신들이 만족스런 삶을 살았을지는 지금으로썬 알 수 없다. 뭣보다 그들은 외부에서의 출입을 절대엄금했으므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늘 위에 떠있는 커다란 땅덩이를 보며 그 안을 상상해보는 것 뿐.


그래도 올림푸스는 나름 오랜 세월을 버텨냈던 모양이다. 꽤 광범위한 시대의 문헌에서 올림푸스의 이름이 나왔으니까.


허나 이 신들의 최후는 무척 허무했다. 황금시대가 무너지게 된 바로 그 날, 그 대전쟁의 여파로 올림푸스는 거대한 폭발에 휩쓸려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 시대의 푸른 화약의 힘은 높은 하늘까지도 닿았다는 것이다.


이후 당연하게도 그들이 나름대로 쌓아올린 문명은 다 깨어진 돌무더기가 되었고, 그들의 이야기는 점점 잊혀져간다.


황금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게 하늘 위를 떠다닌 섬같은 건 그다지 놀라운 이야기도 아녔고, 그 어이없는 탄생과 최후도 별다른 교훈을 이끌어내지 못했던 탓에 동화로써의 가치도 딱히 인정받지 못했다.


그리하여 올림푸스의 전설은 잊혀져가고 그 위에 서있던 신들의 뼈무더기도 다 산산히 가루가 된지 오래였으니, 이것으로 왜 지금은 만년설을 볼 수 없는지가 설명이 될 것이다.



***



해가 높이 치솟고 낮이 되자, 날씨는 풀렸지만 덩달아 눈송이도 비로 녹아 쏴 하고 쏟아진다. 잠시 그늘에서 쉬기로 했다. 마저 할 일도 있고 말이다.


사라는 얼룩지고 다 헤진 비단옷을 걷어내고, 마을에서 새로 얻어온 평범한 천옷으로 갈아입었다. 비싼 옷에 거지꼴이라는 눈에 띄는 차림새를 하기에는 그들은 수배자였다. 이제 여행나온 가족이란 설정은 더는 위장신분으로 못써먹을 것이었다.


이전에 아비 아저씨에게 받은 염색약을 쓰라는 얘기도 나오지만, 병에 들어있는 약품은 고작 딱 한 번 쓸 분량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조금 더 상황이 악화될 때 써먹어야겠다 싶어 도로 주머니에 넣어둔다.


그렇게 쏟아져내리는 빗물 사이로, 역설적이게도 하온은 목이 말라온다. 아까 전 사라에게 주었던 물이 이전의 냇가에서 챙겨온 마지막 수분이었기에, 그 뒤로 하온도 물을 전혀 섭취하지 못했었다.


하온이 목이 마르다고 느낀 그 순간, 사라가 자연스레 물병을 내밀었다. 미리 뚜껑을 열어서 나뭇잎 틈으로 쏟아지는 빗물을 받아두었던 것이다. 동시에 하온도 자연스레 팔을 뻗어 이를 집어 마셨다. 둘 모두 거의 무의식적으로 한 행위였고, 자신이 상대를 도왔다는 자각도 하고있지 않았다.


서로간에 부탁 한번 안하고도 아주 죽이 척척 맞는 그 모습을 보고, 왕눈이 괴물은 그제서야 실소를 터트리고는 이를 지적한다.


“야, 니들 사귀냐?”


그 한마디로 하온은 입에 머금었던 물을 죄다 터트려 내뱉었고, 사래가 들려서 한참을 켁켁대며 가슴을 두들겨야만 했다.


사라의 경우엔, 왕눈이 괴물을 몇 방 두들겨야만 했다. 울이 뒤늦게라도 말리지 않았더라면 오늘로 외눈이 괴물이 되었을 것이다.


작가의말

죄송합니다. 작가입니다. 최근 일주일간 군인휴가를 나왔는데, 사회적 거리두기 탓에 밖에도 못나가니 글 좀 써야지 싶어 따로 공지도 올리지 않았습니다. 근데 사람 마음이 참으로 간사해서 막상 나와보니 진탕 빈둥대다가 결국 조금도 업로드를 못했습니다. 현타가 진하게 오네요...


정말 사과밖에는 드릴 말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으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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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Episode179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7) +2 21.04.26 60 4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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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Episode177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5) +2 21.04.18 45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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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Episode175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3) +2 21.04.07 59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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