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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랑사람의 서재

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27,407
추천수 :
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1.04.12 20:46
조회
57
추천
2
글자
10쪽

Episode176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4)

DUMMY

애쉬는 한참을 살벌하게 굴러가더니 저 멀리 단차 밑으로 떨어져 모습을 감췄다. 어지간히 강한 힘으로 날렸나보다.


이후 암살단들은 곧 다시 비상해올 적에 대비해 한참을 기다렸지만, 저 끄트머리로 사라진 애쉬는 도로 튀어나올 생각을 안한다. 1분··· 2분··· 3분···.


곧 일행은 다른 의미로 애쉬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야, 저거 진짜 죽은 거 아냐?


하긴 그 짧은 전투중에도 어찌나 치열하게 싸워댔는지, 창 안에 축적된 물리량이 정말 엄청나긴 했었다. 굳이 표현을 하자면 고속으로 달리는 자동마차에 한번 정통으로 치인 정도다.


누가 봐도 명백히 목숨에 지장이 갈만한 사안인지라, 결국 사라와 하온 둘 다 애쉬가 이미 무력화되었단 판단을 내린 후 우선 사람은 살리기로 했다.


그래도 조금 겁이 나는지 하온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그가 날아간 방향으로 걸어갔다. 수풀을 헤치고 나뭇가지를 지나 언덕 끝까지 서서히 나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단차 뒤로 적의 모습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저 너머로 굴러떨어진 애쉬는 그들의 예측대로 완전히 무력화되어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었다. 머리에는 피가 철철 나서 누가 봐도 위험한 상황이다.


다만 하온의 상상과는 조금 다른 풍경이 펼쳐져있었는데, 그곳에 있는 몸뚱이는 하나가 아니었다.


한 여자가 더 있다. 그 여자는 모습이 어리고 앳되어 자칫 착각하면 소녀라고 부를 정도의 외형을 하고선, 애쉬의 피투성이 얼굴을 끌어안고는 엉엉 울고있었다.


예기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사라와 하온은 당황하여, 서로를 돌아보며 의견을 나눈다.


"저거··· 저 사람 동료냐?"


"하지만 암살단 치고는 너무 어려보이는데..."


"그래, 우리보다도 어린 것 같아..."


어지간한 상황이면 적의 동료구나 싶어 납득을 하곘는데, 저 여자는 지나치게 어리다. 심지어 저토록 애절하고 슬프게 엉엉 울고있다니, 이런 아이가 암살단이라는 정예집단의 일원으로써 사람을 냉혹하게 죽이는 임무를 수행한다니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


하지만 그 소녀—네아는, 분명한 암살단원이다. 뱃속에 칼을 품고 눈에는 독기가 깃든, 국가로부터 만들어진 살인기계. 그 억눌린 분노가 바로 지금, 자신의 스승이자 가족같은 존재를 이 꼴로 만들어버린 반역자들에게 모조리 뻗어나가고 있었다.


그 사실조차 모르는 순진한 하온은 조금씩 걸음을 옮겨 그녀에게 다가간다. 그건 혹여나 싸움 없이 평화롭게 문제를 끝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린 생각 탓이다.


“저리 꺼지지 못해!!”


네아는 그 즉시 소리를 질러 그의 접근을 막는다. 마치 고슴도치가 가시를 세우듯, 맹견이 제 구역에 침범한 자를 쫓듯 분노가 가득한 악바리다.


하온은 다급한 손짓발짓으로 그녀를 진정시키려 했으나, 사태는 모르는 새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뒤였다.


“자, 잠시만요! 싸우려고 온 게 아니예요, 그 반대예요! 그 사람 이대로 놔두면 생명이 위험할거예요. 그냥 응급처치만이라도 해주려 왔어요, 정말로요!”


“닥쳐라! 지금 그딴 말을 믿으라고 지껄이는거야?! 사람을 이 꼴로 만들어놓고선 이제 치료해주겠다고? 너같은 반역자놈들이!?”


...그렇게 말하면 우리가 할 말이 없긴 하지. 솔직히 사라도 수긍했다. 나라도 안믿는다.


처참한 형태로 조용히 눈을 감고있는 애쉬를 제 품에 끌어안고, 네아가 흘리는 그 눈물이 스승의 얼굴에 닿아 핏물을 조금씩 씻겨낸다. 네아도 눈을 꽉 감았다. 남은 눈물을 짜내고 온 신경을 내부에 집중한다.


힘을 모아야 한다. 원수를 갚을 힘을! 지금까지의 훈련, 지금까지의 기다림이 다 무엇을 위함이었던가. 바로 이 순간 싸우기 위해서다. 저 증오스런 적들을 한시라도 빨리 쳐부수기 위해서다!


분노를 힘으로, 감정을 용광로로, 집중된 정신은 흑광석에 전달되고, 넘쳐흐르는 슬픔. 터질듯한 미움이 적을 향해 발산되는 것을 찌릿찌릿 느끼며.


그리고 마침내 소녀는 부유했다.


마치 중력을 벗어난 듯 네아의 몸이 서서히 떠오른다. 애쉬의 몸뚱이를 살포시 뉘여두고 힘을 한가득 모아, 시선을 자신의 적들에게 향한다.


"아니, 너까지 날아다녀?!"


당혹스런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사라. 반대로 네아의 시선은 지극히 냉혹해 싸늘하기 그지없다. 곧 제 허리춤과 등에서 각각 칼을 하나씩 뽑아들어 꼬나쥐고는 나지막히 말한다.


“이제··· 아저씨 곁으로는 1cm도 더 가까이 못올 줄 알아.”


그 선언이 끝남과 동시에 네아는 허공에서 방향을 틀어 단숨에 가속해온다. 어찌나 빠른지 하온은 그녀가 갑자기 사라진 줄 알았다.


그 움직임의 순간을 보자마자 사라는 퍼뜩 정신이 들어 옆으로 몸을 날린다. 팔로 하온을 감싸고 뒤쪽으로 밀어내는 그녀. 그리고 그 지나간 궤적을 또다른 여인이 꿰뚫어 지나간다.


한순간 교차된 둘, 조금이라도 늦었다간 하온이 칼에 맞았을터다. 제 등의 옷감이 부욱 찢어진 것에 문득 소름을 느끼면서 사라는 적을 돌아보았다.


엄청난 속도로, 바람을 몰고 내리쳐온 네아의 일격. 스스로도 제어 못할 정도의 그 움직임에 간신히 착지한 그녀의 발이 땅을 지이익 가르며 깊은 자국을 남긴다.


그리고 정말이지 놀랍고도 놀라운 사실. 사라는 알아챘다. 방금 전 그녀가 낸 그 속도는 분명히··· 애쉬보다도 더 위였다는 사실을!


잠시의 틈도 용납하지 않고 네아는 다시한번 사라를 향해 돌격했다. 쾌속으로 날아와 뻗는 칼날을 하나하나 간신히 튕겨내며, 반역자들은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계속한다.


휘말린 반역자들은 억울한 건 둘째치고 일이 꼬이게 되었다. 빨리 저쪽에 쓰러진 암살단원에게 달려가 상처를 치료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 하온의 입장에선 점점 멀어지고 있는 이 상황이 미칠 노릇이지만, 네아가 그런 마음을 알아줄리는 만무하다.


도리어 이 혐오스런 적들을 애쉬로부터 한발짝이라도 더 멀리 떼어놓기 위해, 네아는 필사적으로 두 칼을 휘두른다. 장검 하나를 적에게 크게 휘두르고, 단검 하나를 적의 빈틈에 날렵하게 꽃아넣는다.


그 화려한 몸짓은 마치 예술을 보는 것처럼 정교하고 예리했다. 무수한 훈련과 노력이 엿보이는 움직임이라 감탄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싸우면 싸울수록 사라는 어떠한 위화감을 느낀다.


이토록 하나하나 묵직한 검격이 어째선지 그리 위협적이지 않은 탓이다. 사방을 오가며 정신없이 서슬을 들이대고는 있지만, 그 멋드러진 섬광이 도통 암살단의 숨통에는 닿지 않는다. 분명 엄청난 훈련이 엿보이긴 하는데, 사람을 죽이는 살인검술이라기보단 마치 나무토막에 대고 하는 곡예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딘가 빈틈이 있다. 아니, 많다. 역시 암살단처럼 느껴지지는 않는 모습이다. 사람의 살갗을 풀처럼 베던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이렇게나 철저하지 못한데 말이다.


처음엔 기세등등했던 네아의 공세는 그렇게 점차 적의 창을 막는데만 급급해지기 시작했고, 그녀 본인도 당혹에 젖어 눈이 흔들린다.


네아가 암만 훈련을 해왔대도 근본은 평범한 육체에 실전 한번 못해본 풋내기다. 그렇다. 실제 살아 움직이는 인간의 멱을 따본 경험은 단 한번도 없다. 그러니 초인적인 신체능력과 무수한 실전을 쌓아온 사라가 되려 그 노련함 면에서 그녀를 압도할 수밖에 없다.


이를 꽉 악물고 더 악을 쓰며 덤벼대는 네아지만, 사라는 이미 여유를 되찾은지 오래였다. 악착같이 달려드는 파리 앞에 고요하고 침착한 파리지옥이 기다리고 있으니, 승부의 방향은 너무나도 뻔했다.


어느새부턴가 사라는 뒷걸음질도 치지 않는다. 네아는 더욱 초조해져 안달이 나더니, 끝내 빈틈을 내는 한이 있더라도 급소를 노리겠다는 실수를 범하고 만다. 그리고 적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그녀와 그녀의 칼과 창이 맞부딪치는 순간, 동시에 사라는 한발짝을 앞으로 내딛더니 그 충격을 모조리 섬광파로 발산한다. 예기치 못한 몇십 배의 충격을 찰나에 받아낸 칼날은 무정하게 깨트려지고, 파편에 스친 제 주인의 살갗에 애꿎은 상처만 남긴다.


무기는 깨져버렸다. 무장해제된 왼팔 대신 오른팔의 단검을 내밀어보는 네아였지만, 사라의 왼팔이 번개같이 그 칼날을 잡아챘다. 날이 세워지지 않은 옆면을 악력만으로 꽈악 붙들어 그대로 네아에게서 뺏아들었다. 이제 무기 하나 없는 맨몸이다.


직후 그 반동을 따라 그대로 몸을 틀어 팔꿈치로 후려친다. 그 한방에 네아의 몸뚱이는 저 멀리까지 나가떨어졌고, 한낮에 별을 볼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재빨리 다시 일어나 전투테세를 유지하려 애를 써보지만, 방금 그 충격으로 뇌가 흔들린 탓에 다리가 완전히 힘이 풀렸다. 일어서긴 커녕 상체를 올리는 것만도 안간힘을 써야했다.


충격에 의한 어지럼증에 세상이 기울어져보인다. 정신을 차리려 간신히 가늘게 뜬 눈꺼풀 밑으로, 서서히 다가오는 반역자들이 보인다.


벌써 끝이라고? 이게 내 밑바닥이란 말인가? 이렇게 허무하게 내가 진다고? 아저씨의··· 원수도, 갚지 못한 채?


네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피가 나도록 악물고, 어찌나 분한지 몇번이고, 몇번이고 바닥을 내리친다. 쿵, 쿵, 그리고 그 진동이 갑작스레 커진다. 쾅, 쾅!


대지가 울린다. 지면이 쪼개지고 기우뚱거린다. 당황스럽기 그지없어 사라의 눈이 한번 더 휘둥그레 떠진다. 그들은 이와 같은 경험을 약 20분 전에 이미 체험해봤다.


물체를 진동시키고 비틀어 부수는 애쉬의 두번째 능력. 그러나 훨씬 거세고··· 강하다.


이 모든 것은 그녀의 스승인 애쉬 본인에게서 배운 것. 그러나 네아는 애쉬와는 다르다.


더 맹목적이고, 국가에 충성을 바치며, 젊은 혈기는 열정으로 끓어넘치고, 무엇보다 지금 세상 누구보다 열받아 있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치솟는다.


그녀의 순수하고 투명한, 그러나 곧고 굳은 정신이 가장 뜨거운 연료를 만나게 되었다. 그야말로 흑광석을 다루는 데 있어 더할나위 없이 효과적인 매개체가 아닌가!


작가의말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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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54 Jy2315
    작성일
    21.04.14 18:13
    No. 1

    암살단과는 점점 원한만 쌓이네요 ㅋㅋ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방구석4평
    작성일
    21.04.15 20:08
    No. 2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근 군대에서 "바쁜 일"이 있던지라 사지방 및 전자기기 이용이 제한되고 있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기존의 연재 템포를 되찾도록 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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