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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랑사람의 서재

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27,385
추천수 :
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1.06.04 20:43
조회
35
추천
4
글자
8쪽

Episode189_운수가 지독히도 나쁜 날(1)

DUMMY

수풀 안에 작게 자리를 잡은 이 오두막은, 비록 객점이지만 오가는 사람 적은 길목에 있어 파리 날리는게 일상인 곳이다.


혼자서도 한산한 이곳에 일하는 사람은 딱 두 명 있다. 한 명은 객점의 주인인 인상 좋은 노인이고, 다른 한 명은 그에게 거두어져 일을 거드는 젊은 청년이다.


청년은 지금 이 근방의 조금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장을 봐오는 길이었다. 야채며 고기며 식기까지, 그 짐의 무게가 상당한데도 두 팔로 여유롭게 들고오는 것이 보통 완력이 아니다.


헌데 그를 맞이하는 노인은 이정도는 일상인지 놀라는 기색 하나 없이 태연히 그를 타박한다.


“이놈아, 넌 야채 재배해서 왔더냐? 왜이리 늦게 와!”


“오는 길에 점술사한테 한소리 들었거든요. 오늘은 운수가 나쁘다네요. 또 파리 날릴 각오 해야겠어요.”


“이미 손님이 몇 분 다녀갔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 그런 약장수 말 믿지 말고, 넌 손질이나 준비해라.”


“벌써요? 이야, 오늘 장사 다 했네.”


청년은 그정도도 감지덕지란 식으로 웃으며 보따리를 풀었는데,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이 벌컥 열리며 손님이 들어온다.


그런데 한 명이 아니다. 여럿이서 떼를 지어서 몰려온다. 로브를 쓰거나 목도리를 두르거나, 아무튼 참으로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쾌활하게 문을 열고 자리를 잡았다.


원래 하루에 손님 셋이라도 넘기면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대체 왜 장사를 하나 싶은 가게였는데 오늘은 정말 이상하리만치 손님이 많다. 언제는 운수가 나쁜 날이라더니? 물론 점술사가 돌팔이가 아니라면 그게 더 신기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주문을 받고 즐겁게 주방으로 향하던 순간, 청년의 날카로운 감이 어딘가 수상함을 느꼈다. 저 자들, 왠지 이상하다.


분명 평범한 사람들이다. 웃고, 떠들고 즐겁게 여행길을 떠난 상인들같지만, 그 한 점 수상함 없는 평범함이 어째선지 청년에게는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래, 무언가 낮익다.


더군다나 그 수수께끼의 집단 중 어떤 사내는 청년을 이상할 정도로 유심히 쳐다본다. 정말 수상쩍기 그지 없다. 어째서지?


청년은 애써 눈을 돌려 시선을 피했다. 그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하며 탁자 위에 그릇을 놓았다.


“주문하신 소면—”


그 순간 그 사내가 우악스런 손으로 청년의 팔목을 확 잡아챈다. 예상 밖의 엄청난 힘에 당황하며 끌려간 청년은 몸이 고꾸라지며 사내와 얼굴이 마주쳐버렸고, 사내는 으르렁대며 그를 몰아붙인다.


“이봐, 너···!”


헌데 험악하던 그의 표정이 돌연 정반대로 바뀌며, 웃긴 꼴을 봤다는 듯이 피식 웃는다. 그 순간 청년도 그의 의중을 파악해버리고 말았다. 아니, 알아보고 말았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군!”


사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소매 안에 숨겨둔 굵은 팔뚝을 꺼내더니, 청년의 윗옷을 잡고 들어올려 천장까지 높이 올렸다. 온 사방에 청년의 얼굴을 전시해놓고는 남자는 말한다.


“얘들아, 이 녀석 봐라! 형님 꽁무니 쫓던 애송이 꼬마 은강이 여기 있었어!!”


그와 동시에 가게에 들어온 모든 손님들이 박장대소를 하며 떠들썩해진다. 청년은 그들이 누군지 알고있었다. 이제서야 알아챈 자신이 증오스러울 정도다.


그 자들은 암살단이었다. 그가 형님 금강의 손에 이끌려 발을 들였던 비밀조직의 무뢰한들이었다.


그리고 청년은··· 아니, 은강은 절망했다.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기어올라. 기껏 되찾은 평온이 그렇게 허무하게 바스라진 것이다.



***



형제가 반역자들에게 패배하고, 그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떨어지던 날.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리라 생각한 그 곳에서 은강은 살아남았다. 실로 기적적인 처절함으로, 그 지옥의 문턱에서 다시 되돌아왔다.


허나 기껏 살아남고서도 심각한 상처와 피로 탓에 그대로 탈진해 말라죽던 은강을, 이 객점의 주인 할아버지가 우연히 발견해서 거두어준 것이다.


“인마, 우린 네가 죽은 줄 알았어! 대체 그동안 어떻게 굴러먹었길래 여기서 잡일이나 하고있어? 성질 더럽던 네 형님은 또 어디가고?”


“...금강 형님은 이미 죽었습니다.”


“뭐, 그 자식 막나가다가 언제 한번 그럴 줄 알았지.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사람이 죽었다는 얘기를 하는데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화를 이어가는 이 자들의 태도가 은강은 가증스럽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입은 참 공손하게도 순순히 대답을 늘어놓는 자신이 싫다.


“...그때 그 반역자들에게 당했습니다. 형님은 그 자리에서 죽었고 저 혼자 살아왔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하! 너도 그 놈들에게 당했구나! 그렇다면 운이 좋았어. 복수할 기회가 생긴거다!”


암살단 사내는 그런 속도 모르고 잘 됐다는 듯이 그의 어깨를 꽉 붙들더니, 꼭 고급 정보를 주는 마냥 유난을 떨며 은강의 귀에 속삭인다.


“지금 우리가 바로 그 반역자 놈들을 잡으러왔거든. 사라랑 하온 말이야.”


그들의 이름을 듣자마자, 원수의 이름을 듣자마자 은강의 눈이 퍼뜩 뜨였다.


“그 자들···! 아직도 잡히지 않은 겁니까?”


“쪽팔리게 크게 말하지 마라 새끼야. 그래, 그것들 보통내기가 아니야. 얼마나 큰 사고를 치고 도망치고있는지 넌 상상도 못할거다. 곧 여기도 현상수배지가 쫙 깔릴걸.”


그들의 말은 도무지 믿지 못할 정도였다. 일개 두 명의 작자가 모여서 나라를 향해 도전장을 내민 것도 모자라, 그 모든 시도를 성공한 채로 순조롭게 도주중이라니. 반역자들은 어느새 온 국가와 암살단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거물이 되어있었다.


“암살단은 그동안 계속 놈들의 목격담과 출현장소에 대한 정보를 모아오며 그들의 경로를 추적했다. 그런데 어째선지 이미 지나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고 있어. 그걸 종합해 분석한 결과, 놈들은 이 길목을 지나갈 공산이 크다. 그래서 잠복중이었지. 어때, 너도 참가할테냐?”


헌데 갑작스럽게 자신을 끌어당기는 암살단의 제안에 은강은 흠칫했다. 정식 단원조차 아니고, 형제에게 딸려들어온 임시 멤버였을 뿐인데도, 그는 여전히 동료들에게 전우로서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함께 싸우고 함께 작전을 수행했던 전우.


“뭘 그렇게 보냐. 일은 확실할수록 좋고, 넌 가족을 잃었으니 복수에 우선권을 갖는게 더 합당하겠지. 잘만 되면 포상이 아주 기가막힐걸? 내가 지금 일생에 다신 없을 기회를 너한테 넘기는거야.“


사내는 천연덕스럽게 말을 마친 뒤 품 속에서 예리한 단검 하나를 꺼냈다. 누가 보더래도 감탄할만큼 정교히 벼려진 명검이다.


“내가 아끼는 칼이다. 이 정도 물건이면 한 방 찌르기만 해도 그대로 죽을거다. 제 아무리 날고 긴들 심장이 뚫리고도 살 수 있겠어?”


“...”


“종업원인 척 접근한 뒤에, 그걸로 제일 성가신 하온 놈을 확 찔러버려. 너라면 할 수 있겠지?”


갑작스레 제 손에 쥐어진 복수의 기회에 머릿속이 혼란으로 잠식되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건 기회일까, 아니면 위기를 떠넘기려는 함정일까?


은강은 혹시나 싶어, 안전을 확인하기 위한 최소한의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 과연 그들에게 충분한 승산이 있는걸까?


“그놈들 둘 잡겠다고 대체 몇 명이 몰려든겁니까?”


“암살단 20명이다. 전부 정예병이야.”


그리고 실상은, 반역자들이 이길 가능성이란 티끌만치도 없었다. 은강은 단검을 꼭 쥐고 제 품 속에 넣었다.


작가의말

이번주는 잠시 휴가를 나갔다 왔습니다.
아니 근데 내 일주일 다 어디갔지??????

마찬가지로 휴가복귀한 은강이와 함께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아흑.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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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Episode190_운수가 지독히도 나쁜 날(2) 21.06.08 36 5 9쪽
» Episode189_운수가 지독히도 나쁜 날(1) +2 21.06.04 36 4 8쪽
188 Episode188_잠시만 평화롭게(2) +2 21.05.30 46 4 9쪽
187 Episode187_잠시만 평화롭게(1) +2 21.05.25 47 4 11쪽
186 Episode186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4) +2 21.05.21 55 4 14쪽
185 Episode185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3) +2 21.05.19 47 4 13쪽
184 Episode184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2) +2 21.05.14 68 4 11쪽
183 Episode183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1) +2 21.05.08 55 4 8쪽
182 Episode182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0) +4 21.05.05 45 3 8쪽
181 Episode181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9) 21.05.03 36 4 12쪽
180 Episode180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8) +2 21.04.30 59 4 9쪽
179 Episode179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7) +2 21.04.26 60 4 7쪽
178 Episode178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6) +4 21.04.21 48 4 8쪽
177 Episode177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5) +2 21.04.18 45 4 10쪽
176 Episode176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4) +2 21.04.12 57 2 10쪽
175 Episode175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3) +2 21.04.07 59 3 8쪽
174 Episode174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2) +4 21.04.04 49 4 8쪽
173 Episode173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 21.03.31 50 4 8쪽
172 Episode172_짤막한 이야기 +4 21.03.29 58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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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Episode169_울이란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가(10) +2 21.03.08 38 3 8쪽
168 Episode168_울이란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가(9) +4 21.03.04 87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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