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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랑사람의 서재

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27,445
추천수 :
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1.02.17 20:19
조회
55
추천
4
글자
8쪽

Episode165_울이란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가(6)

DUMMY

그는 신분조차 알 수 없는 나그네로 키는 육 척, 다부진 체형을 지니면서도 손은 이상토록 고운 건장한 청년이며, 몇 년 전 수십명의 무사들을 이끌고 혜성같이 나타난 괴인이었다.


갑작스레 파리발 평야의 무법자들에게 찾아온 그는 본인을 일컬어 버림받은 귀족가의 무사라고 설명하더니, 잠시 머무를 곳을 청하며 그들의 식객이 되었다.


애초부터 얼굴도 한번 못본 사이, 본디라면 고깃국 한그릇 대접해주고 내보내야 할 이방인 아닌가. 그럼에도 그 나그네는 타고난 처세술과 카리스마로 그들의 천막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그 방대하고 유용한 지식 하며, 미래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 그리고 권력의 움직임에 대한 예민한 감각까지. 이방인의 재주는 곧 빼어나게 두드러지기 시작했고, 인재를 알아본 이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한쪽은 그를 신임해 제 편으로 끌어들이려 했으며, 다른 한 쪽은 싹이 트기 전에 서둘러 목을 베어 잘라버리려 했다. 어느 쪽이 더 지혜로웠는지 알만하다.


허나 안타깝게도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를 따르는 세력은 그 타고난 용감함에 의해 목소리가 무지하게 컸다. 그에 더해 이방인의 두뇌가 더해지니 신세력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듯 했고, 눈덩이 불어나듯 무수한 이들이 달라붙으며 그 지배력을 넓혀갔다.


본디 그를 부하로 써먹으려던 이들은 되려 그에게 묻혀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뒤늦게 후회했으나 이미 때는 늦은지 오래. 그는 벌써 이 초원을 이끌어가는 거인들의 일원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은 갑작스레 전사들을 모아 먼거리까지의 원정을 주장하기 시작한다. 지형의 흐름과 풍수지리, 그리고 시기를 보아 지금이 바로 약탈의 적기라는 것인데, 많은 이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은 그 주장을 끈질기게 밀어붙이며 동맹을 재촉했다.


몇몇 지혜로운 자들은 진즉 이 말에 고개를 저으며 비웃었다. 그 주장은 바보같은 것이었다. 논리에는 억측이 심했으며, 그 자리에 간다고 한들 털어먹을 곡식도 없었다.


그간 쌓아온 신의 덕에 생떼에 가까운 이방인의 주장도 겨우 받아들여지긴 했지만, 이는 거의 모든 것을 건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실패하는 순간 그동안 쌓아온 신용에 큰 흠집이 갈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초원에서 그의 명성을 정점까지 올려주게 된 예의 그 ‘기적’이다.


참으로 신묘하기 그지 없게도, 그의 인도를 따라 간 곳에는 정말 막대한 곡식과 자원이 있었다. 남몰래 전쟁을 준비하던 메로스의 지휘 아래 군수물자와 군량을 실어나르던 수레가 아주 줄줄이 길을 따라 널려있던 것이다!


이방인의 지휘 아래 무법자들의 번개같은 기습을 받은 나라님의 군세는 단 한 명의 생존자도 없이 모조리 죽어 사라졌고, 수레는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져 온전히 무법자들의 것이 되었다.


이는 두 가지의 큰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그들이 얻게 된 막대한 곡식과 무기이며, 다른 하나는 그 수레들이 가지고 있는 무시무시한 암시였다.


나라님은 지금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칼날이 향하게 될 곳은 아마도, 분명...




그리고 그날 이후 초원에서 그의 소문을 듣지 못한 자는 없었다. 따르는 이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고, 전쟁의 소문으로 혼란에 빠진 평원의 전사들은 곧 그를 통해 하나의 결속을 이뤄내고 있었다.


과연 어떻게 한낱 나그네 하나가 이런 엄청난 위업을 이뤄낸 것일지 아는 이들은 없었다. 그렇지 않겠는가. 대부분의 이들에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기적이다. 신의 뜻이다. 그는 신이 평야에 내려준 바람의 화신이 아닌가!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뭐, 생각이야 자유다. 다만 그 기적이 일어나기 전, 이방인의 천막 뒤쪽으로 생소한 언어의 편지 한장이 몰래 도착했다는 점은 염두에 둘만 하겠다.


어차피 무법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게 아니었다. 그는 메시아였다. 바람만을 따르며 외로움을 품고살던 유목민에게 있어, 이방인은 난생 처음 본 인생을 맡길 수 있는 우두머리였던 것이다.


그라면 믿을 수 있었다. 흉흉한 미래 앞에서 그라면 기적을 제시할 수 있으리란 희망, 그 안도감만으로도 무법자들은 얼마든지 그에게 심장을 바칠 수 있었다.


곧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이방인의 지휘를 거부한 부족들은 선두에 나서서 직접 나라님에게 대항했지만, 압도적인 군세 아래 그들의 공격은 무의미했다.


그런 가운데 이방인의 지휘는 무척이나 정교하고 또한 신묘했다. 방어에만 치중한 그의 전략은 맡은 바 이상을 해내면서 적의 기세를 약하게 만들었고, 그 열투와 명성에 의해 초원의 민족들은 다시금 ‘이 남자라면 믿을 수 있다’라는 희망을 가지고 그에게 모여들었다.


전쟁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고된 싸움 가운데서도 이방인의 전략전술은 늘 빛을 발했다. 교전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많은 부족들이 그의 세력에 합세했다.


그렇게 1차 파리발 원정이 절정에 치달았을 즈음엔, 이방인은 더이상 이방인으로 불리지 않았으며 한낱 두목 수준도 아니었다. 파리발 평원의 모든 전사가 그의 이름을 원호하지 않았던가.


이방인은 이제 그들만의 나라님이었다. 법 없는 대지를 다스리는 유일한 군주! 바람의 민족을 다스리는 그는 이제, 파리발 평원의 옛 이름을 빌어 어느새 거인왕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



인적 하나 찾기 힘든 외진 산골, 유물이 가득 쌓인 언덕 아래에 자그마한 고물상 하나가 있다. 그곳의 주인은 연구소라고 불리길 원하는 듯 하지만 그토록 외관이 추레해서야 어찌 그런 세련된 이름을 가질 수 있을까.


여기 사는 이 아비라는 남자에게는 연구자금이 필요했다. 그것 말고는 딱히 더 바라는 것도 없었다.


이 유물더미를 파헤치며 조립하고, 부수고, 맞붙인다. 이것이 그의 유일한 하루 일과다. 그렇게 하면 아주 가끔, 아주 가끔씩 유물은 그 쓰임새를 찾아 고대의 아름다운 기술력을 조금이나마 내보여준다.


평범한 인간은 결코 구경할 수 없는 이 놀라움. 이전에는 본적도 없는 이 정교하고 원리를 모를 작동방식을 보라. 이런 끊임없는 새로움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이 아비란 인간의 간소한 낙이며 유일한 삶의 의미다.


하지만 돈. 돈. 그놈의 돈이 늘 문제다. 지금의 사회는 불로소득을 인정해줄만큼 아직 충분히 농익지 못한 것이다. 망할, 그럼 내가 하고있는 이 일이 가치없는 짓이란 말인가? 몰라주는 인간들에게 원망을 품는 아비였지만 결국 현실은 이길 수 없어서, 홀로 분을 삭이는 것이 고작인 매일이었다.


그렇게 굶어 죽기 일보 직전의 순간, 놀랍게도 구원이 그에게 찾아왔다. 그것도 정말 구원다운 형태로 말이다.


말을 탄 괴인 하나가 터덜터덜 길을 걸어오더니, 아비의 앞에 돈다발을 얹어놓고는 말한다.


“몇 시간 뒤면 굶주린 인간 하나가 이 길을 따라 찾아올지언데, 그를 극진히 대접해주고 이 집에 머물게 해준다면 앞으로 돈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괴이한 인간은 그 말만 남기고는 뭐 설명도 하나 없이 그냥 말을 타로 도로 가던 길을 떠났다. 아비는 어리둥절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제 앞에 놓인 번쩍이는 금속들을 침을 꼴깍 삼키며 바라보더니 단숨에 한아름 안아들고 집 안으로 달려갔다.


몇 시간 뒤에 정말 누군가가 이 길을 지나갔다. 누가 봐도 굶주렸고 누가 봐도 떠돌고 있는, 말하자면 거지꼴이다. 그 괴인이 말한 자가 틀림없다. 허나 정말 집에 들여도 되는 부류의 인간인걸까?


다만 그 품에 죽어가는 아기를 끌어안고 오는 것이 의외였기에, 아비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그냥 그를 문 안으로 인도해 따끈한 수프 한그릇을 대접해주기로 했다.


그날 이후 아비는 원하던 두 가지를 모두 얻었다.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자금과, 그 가치를 알아주는 똑똑한 친우.


그 친우, 울의 품에 안겨있던 그의 아들도 곧 쑥쑥 자라나 어느새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으니 그 이름이 바로 하온이었다.


작가의말

업로드가 불안정한 것이 너무나 가슴아픕니다... 죄송합니다....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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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Episode187_잠시만 평화롭게(1) +2 21.05.25 47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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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Episode184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2) +2 21.05.14 69 4 11쪽
183 Episode183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1) +2 21.05.08 55 4 8쪽
182 Episode182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0) +4 21.05.05 45 3 8쪽
181 Episode181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9) 21.05.03 37 4 12쪽
180 Episode180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8) +2 21.04.30 60 4 9쪽
179 Episode179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7) +2 21.04.26 62 4 7쪽
178 Episode178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6) +4 21.04.21 49 4 8쪽
177 Episode177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5) +2 21.04.18 45 4 10쪽
176 Episode176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4) +2 21.04.12 58 2 10쪽
175 Episode175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3) +2 21.04.07 59 3 8쪽
174 Episode174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2) +4 21.04.04 51 4 8쪽
173 Episode173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 21.03.31 50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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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Episode170_울이란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가(11) +4 21.03.12 55 2 7쪽
169 Episode169_울이란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가(10) +2 21.03.08 39 3 8쪽
168 Episode168_울이란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가(9) +4 21.03.04 87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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