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살사랑사람의 서재

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27,415
추천수 :
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1.05.30 10:21
조회
46
추천
4
글자
9쪽

Episode188_잠시만 평화롭게(2)

DUMMY

그간 워낙에 요란스런 일이 있어서 잊고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반역자들은 반환점을 돈 이래 이미 지나온 길을 따라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중이다.


그들의 목적이야 말할 것도 없이 이 거추장스런 무한동력장치를 어떻게든 처분하는 것이고, 그 방법이란 황금시대에 만들어진 굉장한 기술력을 통해 그 누구도 장치를 사용할 수 없도록 영구적으로 봉인해버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그들이 찾는 물건이 어디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먼저 예전에 그 정보가 적혀있었던 흉터난 벽 유적지에 가서, 페이에게서 받아온 석판조각을 훼손된 부분에 끼워넣는다.


그렇게 되면 그 유적들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고, 자연스레 문제의 포장기계에도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굉장한 보물을 못써먹게 만들어버리는게 많이 아까운 건 사실이지만··· 결국 세상에 완벽한 보안이란 있을 수가 없는 것이고, 분명 언젠가 먼 훗날에는 절대 풀 수 없는 포장조차도 풀어낼 수 있는 기술이 발견될 것이다. 그때는 인류가 이 힘을 감당할 수 있을만큼 충분히 성숙하기를 빌어볼 수밖에.


순조롭게 나아가고 있는 수레 위, 곤히 자고있는 사라를 무릎에 눕혀놓고 하온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되돌아가는 길은 비록 경로를 바꾸고 있다고 한들 지나온 길과 겹치는 지점이 가끔 있어서, 이 부근의 기묘한 낮익음에 눈을 찌푸리고 머리를 짜내던 참이었다.


언제 한번 지났던 길목 같은데 이상하게 인상이 안좋은 곳이란 말이지. 그렇게 예리하게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금방 하온의 눈에 포착되는 것이 하나 있어, 그리로 손가락을 뻗어 가리켰다.


“아버지, 저기 오두막이 하나 보이는데요? 아마 객점같아요.”


“이런 곳에서 장사가 되긴 힘들텐데. 아마도 근처에 작은 고을 하나 있는 모양이군.”


“어때요, 그럼 마을이 있나 찾아볼까요?”


“아니다, 이제 지명수배가 된 마당에 사람이 많은 곳은 피해야 해. 차라리 작은 오두막 하나가 편히 쉬기엔 더 낫겠지. 정체를 들킨다 쳐도 도망치기도 간단하고.”


“뭐··· 빨간머리가 눈에 좀 띄어야 말이죠.”


이제 슬슬 전에 아비 아저씨께 받았던 염색약을 써먹을 때가 된 것이다. 앞으로 갈 길도 먼데 계속 사람을 피해다니는 것도 불가능한 처사고. 다음 마을에 이르를 때면 꼭 이 녀석 머리칼도 시꺼멓게 물들여줘야지.


“그럼 잠시 객점에 들렀다 가자. 넌 이제 슬슬 사라 좀 깨워라.”


울이 고삐를 틀어 오두막을 향해 방향을 돌리자, 하온도 제 무릎에서 코를 고는 사라의 뺨을 툭툭 치며 그녀를 타일렀다.


“사라? 일어나 봐. 밥 먹자.”


헌데 어지간히도 좋은 꿈을 꾸고 있었나보다. 사라는 볼을 간지럽히는 손가락에도 아랑곳 않고 잠에 취해서 꿈을 붙들고 있었다.


“도통 안깨네요.”


포기한 하온이 어깨를 으쓱하고, 울은 옆에서 보기가 답답하여 잠깐 뒤쪽으로 몸을 틀어 사라의 몸을 마구 흔들었다. 진짜 징하게도 깊이 잠들어서 한참을 흔들고 또 소리를 지른 후에야 겨우 그녀의 눈이 살짝 뜨였다.


“사라? 사라! 일어나라! 도착했다!”



***



그 꿈에서 무엇을 봤는지는 이제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주 기쁘고 달콤한 꿈이었음은 분명하다. 악몽이라면 기억에 남았을테지만, 즐거운 것은 그리 쉽게도 흘러가버리는 것이다.


정말 어지간히도 즐거운 꿈을 꾸고 있었나보다. 그녀는 깨고 나서도 잠시동안 그에 취해 반쯤 졸고있었다.


그리 하여, 하필 그녀를 깨우는 울에게 반응한 사라의 한마디는 이것이었다.



***



“···아빠?”


무심결에 답한 사라의 잠꼬대 한방에, 수레 위 아래의 모든 입 가진 생명체들이 박장대소를 쏟아내며 뒤집어졌다.






한바탕 소란이 일면서 사라의 잠은 완전히 달아났지만, 하늘을 가득 메운 웃음의 열기는 한참이 지나도 꺼지지 않았다. 하온마저도 완전히 넘어가서 눈물이 나오도록 웃었고, 눈가를 슬쩍 닦아내며 이 소동의 주인공에게 한마디 물었다.


“있지, 대체 무슨 꿈을 꿨길래 그렇게 헤벌쭉하고 있었던거야?”


“...아닌데.”


사라는 애써 눈을 꾹 감고 고개를 돌리며 대답을 회피했지만, 이미 정신을 어느부분 공유하게 된 하온에게 그런 얕은 수작이 통할 리 없다.


“아니긴 뭐가 아냐, 나한테 니 생각은 다 훤해. 엄청 좋아하던데? 좋은건 같이 좀 나누자. 꿈에 뭐가 나와서 그래?”


“기억 안나···.”


“에이~ 정말? 그러지 말고, 응?”


“진짜...나도!!”


할 말이 없어진 사라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꽥 소리를 지르는 것 뿐이었다.


“모른다니까—!!!!!!!!!”


그래서 그대로 소리를 지른 사라의 목소리 한방으로, 온 땅이 흔들리고 하늘이 진동했다.


찌잉 하는 소리와 함께 귀가 먹먹해지며 소란도 일시에 잦아들었다. 다들 이 어마어마한 성량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시선이 집중된 곳에 남은 것은, 쪼그린 채로 얼굴이 잔뜩 불거져 부끄러움에 씩씩대는 여리디 여린 소녀 하나였던 것이다. 정말 무서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이제와서 하온은 너무 심하게 놀렸나 싶어 조금 걱정이 된다. 이 조용해진 분위기(아마 반쯤은 고막이상이겠지만)를 전환하기 위해 하온이 다급히 머리를 굴렸다.


“이, 있지. 이제 사람들 눈에 되도록 띄지 말아야 해서 머리카락을 염색해야겠대. 너, 지난번에 받은 염색약 아직 갖고 있어?”


사라는 그 말에 눈을 가늘게 뜨고 곰곰히 생각하더니, 금방 기억이 떠올랐는지 손을 뻗어 하온의 소매품을 뒤졌다.


그리로부터 꺼낸 것은 이제는 지갑 취급에 익숙해진 왕눈이 괴물 아저씨였다.


“그래 그래 또 나겠지. 그래서 이제 뭐가 또 필요하냐?”


그런데 사라가 괴물의 물컹한 몸체에 손을 푹 찔러넣더니 마구 휘저으며 안을 뒤졌고, 왕눈이 괴물은 이런 취급에는 익숙하지 못해 매우 크게 당황했다.


“야야야 지갑만큼 소중한게 없다매?!! 소중하게 다뤄 소중하게!!!”


금 몇 푼 떨어지고, 종이 쪼가리와 무한동력장치 사이를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드디어 원하는게 손에 잡힌 사라가 깊숙히 박힌 손을 빼냈다. 손 안에는 당연히 예전에 아비 아저씨에게 받은 염색약 통이 쥐어져있었다.


“...너 이건 또 언제 넣어놨냐?”


왕눈이 괴물 본인도 제 몸 안에 처박혀 있는 줄 몰랐던 물건이었기에, 허탈한 목소리로 묻는 괴물을 상대로 사라는 참 천연덕스럽게도 곧이곧대로 사실을 말했다.


“아니··· 시험삼아 푹 찔러 넣어보니까 또 의외로 들어가더라고요.”


“그니까 난 지갑이 아니라고!! 고등의식을 가진 엄연한 지성체란 말이다 나느은!! 최소한 허락 한번 맡을 생각은 없었냐!!!”


생각이 없는 관계로 일단 노발대발하는 괴물은 무시한 뒤, 사라는 그 작은 유리병을 하온에게 건넸다.


“병이 작아서 몇 번 밖에는 못써먹겠네. 지금은 일단 아껴두고 다음 마을 들르기 전에 염색하고 가자.”


“그러든...지, 말던지.”


무심코 곧이곧대로 대답하려던 사라는 금방 자신이 삐진 상황임을 기억해내고 다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한번 튕겼다. 그런 모습이 묘하게 귀여워 하온은 또 웃음이 새어나온다.


“염색도 염색이지만, 머리모양도 좀 바꿔야하지 않겠어?”


“바꾸던지 말던지.”


“넌 머리를 땋으면 더 편하고 예쁠텐데, 내가 땋아줄까?”


그 말에 사라는 당황하여 하온에게 되묻는다. 그녀가 살아오던 산골짜기 촌구석에는 그렇게 거추장스러운 머리장식 방법은 없었다.


“머리를··· 땋아? 새끼줄마냥?”


“그럼! 게다가 더 멋있어지기까지 할걸? 고대의 전사부족은 말야, 남녀노소 땋은 머리를 즐겨 했대.”


“너 그런것도 할 줄 알았어?”


“어느정도는 손재주가 있는 편이야. 나름 귀족으로써 쌓은 교양이 있잖아. 굳이 땋은 머리가 아니더라도 너 원하는 모양대로 꾸며줄 수는 있다니까.”


“...됐어. 어차피 거추장스럽게 꾸며봤자 관리만 귀찮아져.”


조금씩 풀리려는 마음을 억지로 다잡으려는 사라. 하지만 애써 삐진 상태를 유지하려는 그녀에게 하온의 마지막 결정타가 작렬한다.


“그야, 내가 평생 다듬어주면 되지.”


왕눈이 괴물이 눈을 시뻘겋게 뜨고 경악했다. 너 그런 캐릭터가 아니었는데?? 울도 아들의 파격적인 멘트에 화들짝 고개를 돌렸다. 왠지 말까지 푸히힝대며 당혹을 표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말을 들은 장본인, 사라의 경우엔...


“저··· 정말? 진짜 그래줄거야?”



드디어 기분이 풀려서,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활짝 웃었다. 그 입이 삐죽 나왔을때는 언제고, 벌써부터 들떠서 가슴이 두근댔다. 정말 기쁘다, 너무 좋아!


이런 남사스런 대화를 나눠놓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시시덕대는 두 젊은 남녀를 보고있자니, 다 늙어 삭막해진 다른 두 쪽은 참으로 거리감을 느낀다. 왕눈이 괴물이 울에게 기어가 슬쩍 속삭인다.


“야, 니 아들놈을 천재로 봐야하냐 바보로 봐야하냐?”


“내 탓에 뇌에 든게 없어 그렇다, 이해 좀 해다오···.”


수레 뒤편에 부담스러운 꽃다발을 가득 싣고, 반역자들은 저 작은 객점 오두막으로 흘러들어갔다.


작가의말

긴급 수정사항이 있습니다. 사실 반역자들의 원래 목적은 무엇이든 파괴 가능한 장치를 찾아서 그걸로 무한동력장치를 개발살내는 거였는데, 솔직히 암만 그래도 무수한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이 어마어마한 국보를 얘들 맘대로 부숴버린다는건 좀 심한 것 같아서 결국 고심 끝에 내용을 좀 바꿔먹기로 결정했습니다.


즉 이제 주연들이 찾는 물건이 파괴장치가 아니라 애초부터 포장장치였던 것으로 수정되었습니다. 나중에 끼워넣는 복선만큼 추한게 없지만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하늘을 등지고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95 Episode195_운수가 지독히도 나쁜 날(6) +1 21.06.21 35 4 7쪽
194 Episode194_운수가 지독히도 나쁜 날(6) +1 21.06.18 41 4 7쪽
193 Episode193_운수가 지독히도 나쁜 날(5) 21.06.17 31 5 8쪽
192 Episode192_운수가 지독히도 나쁜 날(4) 21.06.13 34 4 9쪽
191 Episode191_운수가 지독히도 나쁜 날(3) +2 21.06.09 36 4 12쪽
190 Episode190_운수가 지독히도 나쁜 날(2) 21.06.08 36 5 9쪽
189 Episode189_운수가 지독히도 나쁜 날(1) +2 21.06.04 36 4 8쪽
» Episode188_잠시만 평화롭게(2) +2 21.05.30 47 4 9쪽
187 Episode187_잠시만 평화롭게(1) +2 21.05.25 47 4 11쪽
186 Episode186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4) +2 21.05.21 56 4 14쪽
185 Episode185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3) +2 21.05.19 47 4 13쪽
184 Episode184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2) +2 21.05.14 69 4 11쪽
183 Episode183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1) +2 21.05.08 55 4 8쪽
182 Episode182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0) +4 21.05.05 45 3 8쪽
181 Episode181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9) 21.05.03 37 4 12쪽
180 Episode180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8) +2 21.04.30 60 4 9쪽
179 Episode179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7) +2 21.04.26 61 4 7쪽
178 Episode178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6) +4 21.04.21 49 4 8쪽
177 Episode177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5) +2 21.04.18 45 4 10쪽
176 Episode176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4) +2 21.04.12 58 2 10쪽
175 Episode175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3) +2 21.04.07 59 3 8쪽
174 Episode174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2) +4 21.04.04 50 4 8쪽
173 Episode173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 21.03.31 50 4 8쪽
172 Episode172_짤막한 이야기 +4 21.03.29 58 4 10쪽
171 Episode171_울이란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가(12) +5 21.03.19 61 2 11쪽
170 Episode170_울이란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가(11) +4 21.03.12 55 2 7쪽
169 Episode169_울이란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가(10) +2 21.03.08 39 3 8쪽
168 Episode168_울이란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가(9) +4 21.03.04 87 4 8쪽
167 Episode167_울이란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가(8) +2 21.03.01 63 5 9쪽
166 Episode166_울이란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가(7) +4 21.02.21 87 6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