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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랑사람의 서재

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27,380
추천수 :
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1.06.08 20:29
조회
35
추천
5
글자
9쪽

Episode190_운수가 지독히도 나쁜 날(2)

DUMMY

문이 벌컥 열렸다. 청명하게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저녁놀의 황혼빛이 쏟아지고, 그 틈으로 세 명의 손님이 모습을 보인다.


"여기 지금 식사 됩니까?"


참으로 친절하고 반가운 질문, 평소라면 황급히 달려가 간만의 손님을 맞이하며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고 있었을 터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지금의 은강은 심장이 떨려서 웃는 것 조차 억지를 써가며 근육을 움직여야 했다. 머리를 가득 채운 것은 긴장과 불안으로, 사방에서 남모르게 쏟아지는 눈빛에 신경이 곤두선다.


하지만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웃고 떠들며 자리에 앉는다. 그들 셋의 얼굴을 똑똑히 봐뒀다.


"이런 곳도 손님이 있기는 하구나."


"사라, 그런 말 하면 실례야."


빨간머리의 쾌활한 여자와 검은머리에 목걸이를 찬 남자. 그리고 주름 성성한 중년의 아저씨까지. 전에 본 얼굴이 분명하다.


사라, 하온, 그리고 울. 반역자 셋이 줄줄이 제 발로 사지에 기어들어온 것이다. 그곳이 덫인지도 모르는 것이 퍽 가엾기까지 하다.


"얘들아, 목소리는 좀 낮춰라,"


"하온. 저기 뭐라고 써져있는거야?"


"어묵하고 완탕면."


"그게 어떻게 생긴 음식인데?"


"어···"


그들이 한가로이 음식이나 고르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을 동안, 그걸 지켜보는 은강에게도 결정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갈림길의 무게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막중했다. 암살단이 참으로 자비롭게도 양도한 이 살인권을, 사용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저기요~ 여기 뭐가 맛있어요!"


사라가 천진난만하게 부르는 그 목소리에 은강은 이를 꽉 악문다. 제발 상황 파악좀 해라. 제발! 너희는 여기 죽으러 왔단 말이다!


수십명의 날카로운 눈이 그들을 살피고 있다. 이 객점의 안팎 여기저기에 숨고, 잠복하고, 또 몇몇은 아예 대놓고 테이블 위에 앉아서 반역자들을 노리고 있다.


살기 등등한 그 눈빛이 지나가던 여행객처럼 위장되어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음짓는걸 보고있노라면 은강마저 소름이 돋을 정도다. 이제 죽었다. 아무리 도망치려 몸부림을 쳐도 이 포위망은 결코 빠져나갈 수 없다. 아니, 저항은 커녕 여기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즉사하고 말 것이 틀림없다.


그럴바엔, 그럴바엔 차라리 내가···


그래서 은강은 고개를 푹 숙이고, 마치 손님에게 응대하려는 척 그들에게 다가갔다. 소매 아래로 시퍼런 칼날을 숨긴 채, 표정은 무심한 듯 티 하나 안나는 얼굴로 말이다.


한 걸음, 한 걸음,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을 향해 발을 옮겼다. 어차피 운명은 달라지지 않는다. 오늘 이들은 반드시 죽는다. 내가 해내지 못해도, 내 뒤의 동료들이 형님의 원수를 갚아줄 것이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도 점점 크게 들려온다. 그 쯤에서 은강은 소매 안으로 손을 넣어 단검 손잡이를 슬쩍 쥐었다.


다가갈 수록 그 날의 기억이 보였다. 죽어가는 형님의 모습이 보였고, 자신을 때리고 작살내던 놈들의 잔상이 아른거렸다.


기억이 되돌아온다. 아픈 기억이, 슬픈 기억이 되돌아온다. 얼굴들이 다시 자신을 감싼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 앞까지 도달했을 때에, 기억에 남는 얼굴은 하나였다.


절벽에 떨어지던 순간 자신의 손을 잡고, 구하지 못해 슬피 울던 하온의 얼굴이 기억났다.


은강은 이제 그 얼굴을 앞에 두고 있었다.


탁자에 앉아 종업원을 맞이하려던 하온도 상대의 얼굴을 보았다. 눈이 마주쳤고, 그 순간 청년의 눈빛에 믿지 못할 슬픔이 서린다.


"당신, 혹시···."


마침내 결단이 선 것은 그제서야, 단숨에 소매 밑에서 단검을 뽑았다. 예리한 날끝이 빛나며 쉬익 울부짖었다.


그 섬광과 동시에 은강은 한 차례 더 발을 내딛었다.


앞으로 내달리며, 반역자들을 지나친 채, 그들 옆에 잠복한 암살단원 하나를 있는 힘껏 찔렀다. 느닷없는 공격에 칼날은 그의 심장을 깊숙히 꿰뚫었고, 그 자리에서 남자는 즉사했다.


피가 솟구치고, 빨간 안개를 헤쳐나온 은강이 놀란 반역자들을 밀쳐낸다. 그리고 후회와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세상 큰 목소리로 외친다.


“도망쳐—!!!”


동시에 사방에서 온갖 화살과 무기, 기적이 그를 중심으로 쏟아졌다. 본래 반역자들을 향해 발사되었을 공격들이 이제 그 자리를 대신한 은강을 향해 모여들었다.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반역자들 뒤로 폭격의 여파가 일었다. 터지고, 박살나고, 분쇄하는 필살의 일격이 모두 한 곳에 집중되어 배신자를 응징한다.


그렇게 암살단의 분노를 모조리 다 받아낸 은강의 몸은, 산산조각이 나서 눈물 한방울 남기지 못했다.



***



"이게 대체 무슨···!"


"적이다! 사방이 다 적으로 깔려있어!!"


"사라, 뒤에!"


이 갑작스러운 상황변화에 모두가 혼란에 빠져있는 동안, 사라는 당황할 여유조차 없이 다급하게 후방의 적을 상대해야 했다.


하온의 경고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뒤로 몸을 돌렸고,



그 순간 그녀의 오른쪽 소매 밑에서 다섯 갈래 서슬이 펼쳐지며 적의 몸을 꿰뚫었다. 그녀의 손목부분에 달아둔 창날 부분—백룡도가 본래의 형상을 되찾으며 길고 날카로운 자태를 뽐냈다.


직후 왼쪽 소매에서는 자루 부분—봉황곤이 길게 뻗어나가며 손에 쥐어졌고, 곧바로 휘두르며 적을 쳐내 뒤로 날렸다.


허나 온 사방 구석구석에 숨어있던 암살단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그들을 습격했고, 시야에 들어오는 적의 수는 줄어들긴 커녕 훨씬 늘어나버렸다.


더 볼 것도 없이 도망을 선택한 사라는 옆의 울 아저씨를 들쳐맨 뒤 벽으로 돌진해 그대로 박살내며 구멍을 뚫어버렸다.


등 뒤에서는 무수한 적과 공격들이 날아온다. 그리로 하온이 손을 뻗어 치유의 기적을 발휘해, 그들이 지나온 부서진 벽면을 다시 복구시켜 방패쳐럼 세웠다.


허나 벽은 1초도 더 버티지 못한 채 그대로 다시 터져나가며 훨씬 더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을 뿐이다. 시간벌이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하온, 대체 어떻게···?!"


''무조건 도망이야! 무조건!!"


방금 보인 적들 수만 해도 열 명은 족히 넘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이길 방법따위 있을리가! 일단 튀자, 땅 위건 아래건 가리지 않고 어디로든 도망가야 한다!


모두 다급히 객점 뒤 말을 세워둔 곳으로 달려갔다. 수레고 짐이고 뭐고 일단 내버리고 말만 빼내어 타고 도망칠 심산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혼자 아무 힘 없는 울만 뒤쳐지고 만다.


다행히 그들이 나온 방향 바로 앞에 찾고있던 말과 수레가 있었다. 지금만치 반가운 순간이 없었어서, 순간 상황에 맞지 않는 웃음이 터져나올 뻔했다.


하지만 숲의 어딘가로부터 곧장 날아온 얼음기둥 하나에, 말은 목이 꿰뚫려서 신음소리 한번 못 낸 채 죽어버렸다.


이를 시작으로 다른 무수한 공격들이 살벌한 기세로 그들을 습격한다. 날아온 방향은 아까 그 적들이 있는 곳과는 전혀 달랐다. 객점 바깥의 사방 온갖 곳에서 날아온 살기. 적은 아까 그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훨씬 많은 수, 족히 스물은 넘는 숫자가 반역자들을 노려온다. 사라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고, 하온은 순간 등골을 훓는 두려움에 소름이 돋았다.


발이 빠르지 못한 울을 사라가 옆구리에 끼고 도망쳤다. 동시에 뒤쪽에서 번갯불이 날아와 반역자들을 노린다. 사라가 곧게 뻗은 백룡도가 피뢰침 역할을 해줘 경로가 바뀐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망할 놈···!!"


곧장 백룡도에 흡수된 전류를 되돌려 적에게 쏘아올렸다. 적의 방향을 역추적해 발사한 번개가 은신한 곳의 나무를 타격해 폭발시켰고, 화염이 이글거리는 줄기가 균열에 의해 갈라지며 풀썩 쓰러졌다.


'해치웠나?!'


곧 동료 하나가 쓰러진 나무 사이에서 번개를 쏘는 자를 끌어내 짧은 응급처치를 실시했다. 적 하나가 단번에 정신을 잃었으니 평소라면 승기를 잡았다며 기뻐할만한 소식이다.


하지만 아군 하나가 쓰러졌음에도 그들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태연히 포위망을 밀집시키며 타깃에만 집중한다. 되려 좋은 정보를 얻었다는 듯 사라의 행동을 사방팔방에 전달한다.


"사라에게 공격을 반사하는 능력이 있다!"


"하온에게 원거리 공격을 집중해라!"


도리어 나머지 수십명을 상대하는 것만 더 까다로워진 셈이다. 한두명 쓰러트리는 정도는 이 압도적인 격차 앞에서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적들의 포위망이 더욱 좁혀온다. 추격하는 자들의 속도 역시 매섭다. 이길 수 없다. 돌이킬 수 없다. 도망 칠 수조차 없다. 이렇게 되면, 여기까지 온다면 이제 반역자들은···!


살아나갈 방법이 없다!


작가의말

사실... 은강이 죽을거란 결말은 이전 사라를 상대할 때 "딱 이번만 마지막으로 살인을 저지른 뒤 관두겠다"라는 생각을 했을때부터 예정되었던 일이었습니다.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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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Episode179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7) +2 21.04.26 60 4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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