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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랑사람의 서재

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27,369
추천수 :
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1.03.04 19:35
조회
86
추천
4
글자
8쪽

Episode168_울이란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가(9)

DUMMY

이야기가 그곳까지 뻗어나갔을 때, 사라는 그저 입을 꾸욱 다물고만 있었다.


울은 훌륭한 아버지가 아니었다. 울은 과보호의 화신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아들을 내버리고 혼자 도망친 겁쟁이였다.


인간으로써는 이해받을지 모르지만, 아버지로써는 최악의 판단을 저지른 것이다. 하지만 사라는 그렇게 생각하기는 싫었다. 아버지로써도 뭔가, 이해해줄만한 건덕지가 있지 않을까. 왜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사라는 울이 나쁜 아버지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그야 이렇게 슬퍼하는데, 이토록 후회하는데. 내 옆에서 이리도 친절하게 속죄하고 있는데. 이런 사람이 아버지라면 나는 어떻게···.


그녀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울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



평화롭던 마을에 웬 광인이 하나 찾아온다. 술 한병 꼬나들고 길바닥에 엎어져서, 실실대며 세상을 비웃고 있다.


이 천박함. 법이고 뭐고 다 내던지고, 사람들에게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저 무수한 조롱과 면박! 그에게는 이것이 유일하게 즐길만한 자극이었다.


딸꾹대며 이번에는 무일푼의 몸으로 주점에 들어간다. 그래놓고는 남의 테이블에 놓인 술잔을 들고서는 벌컥벌컥 들이키는 것이다. 그에게는 이미 몸에 밴 일이다.


뭐하는 미친놈이냐? 테이블 앞의 남자가 썩어들어가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광인은 배시시 웃더니 슬쩍 읊조린다.


“무엄한 새끼··· 야, 내가 누군지 알아?”


어리둥절히 그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


“나는 나라님이 될 몸이셔, 인마! 내가 나라님이, 내가말이야··· 한때는-”


그대로 날아오는 주먹에 맞고 광인의 머리통이 땅에 처박혔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터져나온다. 미친 놈! 머저리! 정신병자! 아주 신나게 떠들어댄다.


울 스스로도, 그 의견에 동의하는 바이다.


언제부터 이토록 망가진건지 도통 모를 일이다. 다만 이대로 살다가 어느 누구에게 맞아 그대로 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한때의 황태자 울로 살기보다는, 울인 척 하는 광인으로 사는 편이 훨씬 맘 편한 삶이다.


한번 매타작 맞고 거참 시원하다 싶어, 비틀거리는 다리로 밤거리를 걸어갔다. 그러다 실실 웃는 그 입꼬리가 점차 내려가더니, 갑자기 속이 메슥거려 다급히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웩, 웩, 토사물을 입에서 뱉어낸다. 어둠 속에서 쏟아지는 그 액체가 위액인지 혈액인지, 아무튼 기분만은 꼭 피를 토하는 것마냥 아프고 더럽다.


그렇게 한참을 쭈그린채 고통을 감내하다가, 제 가쁜 숨에 뒤섞인 발소리에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한 사나이가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가뜩이나 어지러운데 눈 앞을 가리는 장애물에 짜증이 났지만, 사나이는 그의 기분은 안중에도 없다는듯 뜬금없이 말을 묻는다.


“자네 아들은 어디있나?”


“몰라! 그깟 놈, 이미 버리고 떠난지 몇 년은 지났어! 제길, 나보다도 더 잘 살고 있을걸!”


울은 성을 내며 질문에 답한다. 제길, 이제와서 그깟 놈을 왜 찾아대는거냐. 머릴 감싸쥔다. 하온을 떠올릴수록 두통이 심해져온다.


그런 울은 보고 사나이는 짐짓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뱉는다. 마치 자신을 쓰레기 취급하는듯한 그 모습에 아픈 곳이 찔렸던지, 울은 그의 멱살을 잡고서는 눈을 부라리며 소리질렀다.


“뭘 봐! 망할, 넌 그렇게 깨끗해!”


그런데 화가 난 것은 차치하고, 갑자기 드는 의문. 가만, 내가 아들이 있었다는 걸 어떻게 처음부터 알고 그런 질문을···.


“찾았다, 멍청한 황태자놈.”


사나이는 그렇게 중얼대었고, 그와 동시에 울의 뒤쪽에서 다섯 쌍의 손이 덮쳐오더니 온 몸을 붙잡고 머리에 두건을 씌운다.


투르나의 한 뒷골목에서 한 광인이 그대로 납치되어 사라져버렸다.




울이 깨어난 것은 하루가 꼬박 지나고 나서였다. 눈 앞이 깜깜해 무엇도 보이지 않았고, 주변을 더듬어보려 팔에 힘을 줘봤지만 밧줄에 꽁꽁 묶여서 한치도 움직일 수가 없다.


그제서야 울은 자신이 납치되었단 사실을 떠올렸고, 눈이 보이지 않는 것도 주변이 어두워서가 아니라 자신의 얼굴이 두건에 가려져서였음을 깨달았다.


두건 바깥에서는 아주 낮선 언어가 들려온다. 울은 이를 정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 뉘앙스를 보아하니 파리발 평원의 무법자들이 틀림 없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파리발 평원은 나라님의 영역 서쪽에 있고, 지금 울이 도망쳐 망명해온 이곳은 그와는 한참 떨어진 투르나다. 무법자들이 있을만한 곳이 아니다.


그러다 자신이 있는 방에 누군가가 들어오는 소리가 났고, 이후 드디어 울에게 익숙한 언어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로 말해진다.


“아, 자네도 수고했네. 하지만 애초에 이 자의 행방을 놓치는 일이 없었어야지.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포졸들이 먼저 발견할 뻔했어.”


“죄송합니다. 들키지 않는 것에만 신경쓰다가 거리를 너무 벌렸던 것 같습니다.”


“이제 찾았으니 됐다네. 내 지난 일은 잊고, 상은 후하게 내리지. 자, 그럼 이제 귀하신 분 얼굴 좀 뵙도록 할까.”


짧은 대화를 나눈 뒤, 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에서 점차 발소리가 가까워져온다. 그리고 그의 손이 울의 머리에 씌워진 두건을 휙 낚아채자, 드디어 사방이 탁 트이며 밝아진다.


울이 있던 곳은 아주 단단히 폐쇄된 방 안이었다. 이 퀴퀴한 곳에서 사방을 비춰주는 것은 테이블의 촛불들 뿐이었고, 그 탓에 제 앞에 있는 인간이 누군지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곧 그가 멋드러진 투구를 쓴 얼굴을 들이밀고 나서도 울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어서 멀뚱멀뚱. 그런 울을 보며 남자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곧 몸을 뒤로 젖히고 호탕하게 웃어제끼면서 외친다.


“하하하! 참, 그렇지! 내가 ‘아무것도 아닌 놈’이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까먹어버렸어. 그래, 그럼 투구를 벗어보면 좀 알아보실런지 모르겠습니다!”


남자는 투구끈을 끌러내 그 거추장스런 장식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물론 단지 그것만으로 울이 그를 알아볼 방도는 없었다.


하지만 그 직후 남자가 한마디를 더 덧붙이자, 그제서야 울은 이 자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아우님, 접니다. 절 기억 못하시겠습니까?”


자신을 이런 식으로 부르던 사람은 세상에 단 하나 뿐이었다. 하지만 맙소사, 도대체 어떻게? 애초에 아직까지 살아있으리란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는데!


그 남자의 정체는 다름아닌 리체였다. 이젠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지는 황궁에서의 시절, 선황의 서자로써 갖은 모욕을 당했던 그의 이복형이다.


헌데 그는 어찌된 일인지 멀쩡히 그 숙청의 불구덩이에서 빠져나온 것도 모자라, 심지어 여러 부하들을 대동하고 그들에게 떠받들여지는 높으신 분이다.


말마따나 ‘아무것도 아닌 놈’이었던 그가 이제는 자신을 묶어두고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니, 참으로 감회가 새로운 순간이 아닌가?


곧이어 울은 더욱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뒤쪽에 보이는 저 다른 사나이의 정체다. 울은 그의 얼굴도 여럿 본 적이 있었다.


그는 지금은 리체의 충실한 수하이며, 아까는 울을 납치해 여기까지 끌고온 장본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오래 전에는 한번 대면한 적이 있던 사이다.


십년쯤 전에, 허겁지겁 제 저택에서 도망쳐나온 울에게 말 한 필을 주고는, 세번째 길로 가라는 조언을 남긴 바로 그 수수께끼의 사나이다.


울의 도주기록 전체가 다 리체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막간극 따위였다는 것이다. 이만큼 웃기는 비극이 세상에 또 어딨겠는가?


작가의말

불안정한 업로드에 늘 사과드릴 뿐입니다...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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