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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Winterer 님의 서재입니다.

새벽의 시, 얼음의 용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일반소설

완결

LWinterer
작품등록일 :
2019.07.01 19:36
최근연재일 :
2019.12.10 12:46
연재수 :
17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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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47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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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13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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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쪽

Sub Stream / Tale of Accelerando - 밤안개의 별(1)

DUMMY

"아첼. 무슨 생각해?"

"그냥 옛날 생각."

음유시인의 노래를 듣던 아첼은 선물받은 목걸이를 모닥불에 이리저리 비춰보며 나른한 표정을 지었다.

돌이켜보면, 생일선물이라는 것은 처음으로 받아본 것 같았다.

난생 처음으로 받은, 게다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동생에게 받은 생일 선물이기 때문인지, 무심결에도 자꾸 꺼내 매만지게 된다.

아직 텅 비어있는 로켓을 괜히 열어보기도 하고, 반짝거리는 표면에 뭐가 묻기라도 할까봐 열심히 닦아내는 등, 마치 선물에 들뜬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애처럼 좋아하는 그 모습을 보던 티엘은, 문득 그녀가 겨우 스물 셋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물론 티엘과 비교하자면 까마득하지만, 그래도 아직 젊디 젊은 나이다.

언제나 무게를 잡고, 티엘의 몫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은 무척이나 버거운 일이었으리라.

'조금은 짐을 덜어준 걸까?'

티엘은 예상외로 들뜬 아첼의 모습에 쿡쿡 웃었다.

티엘의 웃음소리를 들은 아첼은 슬쩍 눈치를 보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했지만, 그걸 눈치채지 못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 때 마침 한 곡을 끝낸 음유시인이 잠시만 쉬었다 계속하겠다며 연주를 중단했다.

모닥불에 손을 녹이는 음유시인은 찬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열심히 손을 비벼댔다.

사실 제법 쌀쌀한 기온이다. 제법 두꺼운 장갑을 끼고있어도, 가만히 서있다 보면 어느새 손끝이 조금씩 시려오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손이 시린건 아첼만의 이야기인 듯 했다.

아직 어려서 피가 끓는건지, 티엘은 추위를 느끼지 않는 것처럼 멀쩡한 얼굴로 노래가 중단된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피식 웃은 아첼은 티엘을 끼고 모닥불 근처로 움직였다.

한 발 먼저 도착해 손을 녹이던 음유시인은 아첼과 티엘을 위해 옆으로 조금 물러나주었다.

"한 모금 드시겠어요?"

음유시인은 가죽부대 하나를 아첼에게 내밀었다.

들뜬 김에 꽤 든든한 금액을 쥐어주었더니 두 사람에게 꽤나 살가운 편이었다.

아첼은 호의를 받아들여 그의 손에서 가죽부대를 받아들었다. 모닥불 근처에 걸어두었던 물건이라 제법 훈훈한 온기가 남아있었다.

그냥 껴안고만 있어도 제법 따뜻할 것 같았지만, 음유시인은 잘 묶여있는 마개쪽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순순히 마개를 열어보니 꽤나 짙은 피야른 주의 독한 냄새가 훅 퍼진다.

아첼의 얼굴에 반가운 미소가 걸렸다.

"고맙게 마실게요."

작은 사발에 술을 받은 아첼이 단숨에 잔을 비웠다.

모닥불에 데워진 열기에 더해, 술 자체가 품은 화끈한 열기가 빠르게 몸을 적셨다.

설령 얼음이 피어날 정도로 차갑더라도, 한 잔으로 몸을 훈훈하게 데워줄 정도로 진한 이 맛이야말로 피야른 주의 매력이다.

만족스럽게 가죽부대를 돌려주려던 아첼은 티엘의 시선이 가죽부대를 따라 오가는 것을 보며 피식 웃었다.

"넌 마시지도 못해, 요것아."

"흥. 아무렇지도 않아."

"어쭈? 쪼그만한게 겁도 없네. 그럼 어디 맛이나 보여줄까?"

아첼은 작은 잔을 꺼낸 뒤 술로 조금 채워 티엘에게 건넸다. 음료수에 가까운 키리아 주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독한 향기가 불길처럼 피어올랐다.

그러나 잠시 움찔거리던 티엘은 묘하게 웃음기를 띤 아첼의 시선을 눈치채고는 호기롭게 술을 입안으로 털어넣었다.

한 모금의 액체가 어린 티엘의 입안을 무지막지한 힘으로 휘감았다.

어렵사리 삼키긴 했지만 그 직후 굉장한 기침이 터져나왔다.

솔직히 한 모금이나마 넘긴게 신기할 정도로 독한 술이다.

물론 달라고 한 티엘도 문제지만, 이런걸 열몇 살짜리 애한테 먹이는 아첼도 악마같다는 평가를 피할 수는 없으리라.

조금 미안해진 아첼은 눈물까지 머금은 채 연신 기침을 하는 티엘의 등을 살짝 다독여주었다.

"너랑 처음 만난게······내가 열네 살 때였지, 아마?"

"콜록-! 그때 아첼 되게 못생겼었는데."

"뭐야?"

딱! 아첼의 손이 단호하게 티엘의 머리 위로 내려찍혔다. 티엘은 머리를 감싸쥐며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먼지나 옷이나 꼬질꼬질해서 정말 불쌍해보였단말야."

아첼의 눈매가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그러는 너는 가출한답시고 혼자서 몰래 돌아다녔잖아? 그리고 자랑은 아니지만, 어디가서 못생겼다는 소리는 못들었다고."

"마음이 너무 못생겼잖아아. 어린 동생한테 술이나 먹이고, 나빴어. 콜록! ······어지러워."

얼굴이 새빨개진 티엘은 숨을 쌕쌕 몰아쉬며 달아오른 뺨을 두 손으로 살짝살짝 건드렸다. 그러면서도 종알거리는 소리는 은근히 아첼의 양심을 찔러댔다.

아첼은 티엘의 뺨을 손끝으로 쿡쿡 찌르다가 목도리를 풀어 모닥불 근처의 연석에 깔고 티엘을 앉혔다.

"어릴 적 이야기, 해준 적 없었지?"

"왜? 이야기 해주게?"

"못 해줄것도 없지. 이런 선물도 받았는데 그게 어려울까?"

적당히 몸을 녹인 음유시인은 다시 자리로 되돌아가 노래를 시작했다.

피앙투스의 노래는 굉장히 밝은 편이다. 물론 레가야도 그리 무거운 분위기는 좋아하지 않지만, 제국 전체의 조금 메마른 듯한 분위기는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거의 같은 노래라고 해도 피앙투스에서 듣는것과 레가야에서 듣는 것은 분위기나 느낌이 상당히 다르다.

오래간만에 듣는 고향의 흥겨운 노래, 적당한 술, 따뜻한 모닥불, 이 모든 것들이 꽤 오래된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아첼은 그동안 꽁꽁 싸매두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내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니다.

애틋하거나, 따스한 미소가 절로 피어나는 이야기도 아니다.

오히려 돌이켜보면 쓴웃음이 나올 정도로 차고 냉랭한 이야기가 많은 옛 기억들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이라면 어울릴 것 같은 이야기였다.

이내 생각을 정리한 아첼은 천천히 오래된 이야기를 펼쳐들었다.

그것은 아첼이 품고있었던, 가장 깊고 어두운 시절의 이야기였다.



* * *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옛 시절에도 이미 가족은 없었다.

자신을 낳아주었을 부모님은 얼굴조차 모른다.

뭘 하던 사람들이었는지, 어디에 살던 사람들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아첼이 아주 어릴때 죽었다느니, 어린 아첼을 내버리고 도망쳤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간혹 들었지만 어느 쪽이 사실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말은, 이 얼마나 우스운 말인가.

부모의 사랑이라고는 한 조각조차 받아본 적 없었던 아첼은, 그 후로도 부모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랬기에 아첼의 인생, 그 첫 부분은 어느 신부가 운영하던 고아원에서부터 시작했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았다.

짧게 표현하자면 차갑고 회색 일색인 좁은 방, 그리고 말라비틀어진 빵 조각.

고아원이라고 해도 그리 큰 곳이 아니었고, 들어오는 쥐꼬리만한 지원으로는 일 주일을 먹을 빵조차 제대로 구할 수 없었다.

원장인 신부도 소위 높은 사람은 아니었다.

신앙보다는, 단순히 먹고 살 길을 찾아 몸을 의탁한 자였으니 말 할 것도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신부라고 부를 수도 없는 인물이었으리라.

그러나 이유야 어쨌건, 그가 운영하는 고아원이 아니었더라면 어느 거리에서 쓰러져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고아원의 식구는 아첼을 포함해 다섯 명.

집단이라고 하기에도 우스울 조그만 규모의 작은 울타리였다. 하지만 한 손으로 다 꼽을 만한 이 작은 사회에서도 분열은 피할 수가 없었다.

고아원에서 자란 여덟 해 동안, 아첼은 누군가와 한 식탁에 앉아 즐겁게 식사를 마친 적이 없었다.

아니, 누군가와 웃어본 일조차도 없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을 피하는게 보다 평화적인 방법일 정도였다.


"저리 가, 마녀!"

"시끄러워! 내가 왜 마녀야?"

"안보이는 귀신들을 시켜서 나쁜 짓을 하니까! 어제도 리코 누나네 정원에서 나무를 부러뜨렸지?"

"맞아! 저번 주에는 미론네 송아지가 이유도 없이 다리가 부러졌잖아. 다 네가 그런거지!?"

"웃기지마! 내가 그랬다는 증거 있어?"

"너랑 미론하고 싸우자마자 송아지가 다쳤잖아? 그리고 어제도 네가 지나가니까 가만히 있던 접시가 깨졌단말야!"

"내가 그런게 아냐! 우연히 그런거잖아!"

"거짓말!"

항변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아이들의 말처럼, 아첼에게 좋지 못한 일을 한 사람들은 언제나 이유모를 재난을 당했다.

누가 보더라도 그 범인은 아첼로 보였으리라.

심지어 아첼 본인도 이따금씩 스스로를 의심할 정도로, 모든 사고는 아첼을 중심에 두고 있었다.

나중에서야 안 것이었지만, 아첼을 가장 괴롭게 했던 것은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했던 자신의 능력이었다.

주변의 생령들은 아첼의 기운을 느끼고 그녀를 유혹하려 애썼지만, 정작 아첼은 그들과 대화하는 법을 몰랐다.

덕분에 생령들은 아첼이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오해를 했고, 때로는 아첼에게 겁을 주기 위해, 때로는 아첼의 환심을 사기 위해 주위에 영향력을 미쳤다.

물론 그 대부분은 그녀를 몰아세우기만 하는, 말하자면 쓸데없는 장난질일 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아첼과 생령들 사이의 관계가 아닌, 아첼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였다.

제어할 수 없는 힘은 필연적으로 분쟁을 일으킨다.

그리고 인간의 사회에서, 그런 어설픈 힘을 가진 자는 언제나 약자일 수밖에 없었다.


거의 매일같이, 아첼은 또래 아이들과 싸워야 했다. 사내아이든 계집아이든, 그들은 절대로 자신들의 영역에 아첼이 들어올 수 없게 경계하며 그녀를 밀어냈다.

아니, 사실은 반대였다.

아첼은 굳이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 이쪽에서 숙여주고, 피했다. 그런 아첼의 영역을 파고든 것은 역으로 상대 아이들이었다.

아첼을 쫓아내고 싶었다는 것이 가장 적합한 포현이었을 것이다.

아첼에 대한 소문은 이미 소문이라고 할 것도 없을 정도로 마을 전체에 퍼져있었다.

하지만 아첼은 그럴 때마다 악에 받쳐, 오히려 자신의 영역을 침입한 자들을 강하게 뿌리쳐버렸다.

그런 모습이 오히려 그녀에 대한 평을 더 깎아내렸을 거라고, 훗날의 아첼은 씁쓸하게 자평했지만.

"네가 악마에 씌였으니까 너네 엄마 아빠가 널 버린거잖아! 안그래?"

"너, 그말 취소해!"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아첼은 씩씩거리며 상대의 멱살을 잡았다.

아첼은 또래 아이들보다 덩치가 큰 것도, 힘이 센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외롭고 긴 싸움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리저리 상처입으며 자연스레 길러진 오기였다.

일어설 수 없을 만큼 맞아도 기어이 일어나는 독기어린 모습에 기가 질린 아이들은 제풀에 도망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런 요행도 언제까지나 바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휘익, 탁!

"나가버려! 여기서, 아니, 마을에서 나가!"

일대 일이 아닌 이상, 한 명을 쓰러뜨린다고 해도 또다른 적은 남아있다.

아이들은 좋을 대로 쏘아댄 후,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아첼에게 돌을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한 달에 두어차례 있는 일이다.

그나마 혹시라도 제대로 맞을까봐 대놓고 던질 만큼 용기 있는 녀석은 없었다. 사람을 해친다는 것도 무섭지만, 그보다는 아첼이 내릴 저주를 두려워했던 것이리라.

하지만, 간혹 운없는 날은 잘 못 던져진 돌멩이에 기어이 피를 보는 일도 있었다.

그 날도, 그런 재수 없는 날 가운데 하루였다.

"어?"

문득 한 녀석의 발이 미끄러지며 꽤 큼지막한 돌이 일직선을 그리며 똑바로 날아들었다.

평소였다면 팔다리의 아픔은 무시한채 씩씩하게 달려들어 한 녀석쯤 묵사발이 될 때 까지 때려주었을 것이다.

그날따라 운이 지나치게 없었던 것일까. 주먹만한 돌은 아첼의 이마를 정통으로 맞춰버렸다.

하늘이 핑 돌았다.

몸이 기우뚱거리는 것을 느끼고 몸을 가눌 새도 없이 픽 쓰러져버렸다.

아프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고, 그저 온 몸에서 힘이 쭉 빠지며 나무토막처럼 바닥을 나뒹굴었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어, 엄마야······."

어떤 면에선 아이들이란 참 무서웠다.

몸을 가누지는 못해도 의식은 남아있었는데, 아첼이 쓰러지자마자 온갖 수근거림이 귓가에 들려왔다.

'주, 죽은 거 아냐?'

'무서워. 빠, 발리 가자!'

'저런 애 따위, 없어져도 아무도 모를거야!'

다친 아첼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이 순식간에 알아서들 의견을 나누더니 결론을 짓고, 그대로 내빼버렸다.

가물가물하는 의식으로도 쓰레기처럼 짓밟히다 버려졌다는 사실에 눈물이 나올만큼 화가 났다.

"아첼!"

그때 우연히 신부가 지나가지 않았다면, 아마 꼼짝도 못한 채 버려져있다 그대로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대체 누가 이런거냐?"

신부는 왈칵 화를 내더니 아첼을 안아들고 예배당 안으로 옮겼다.

신부는 나름대로 책임감도 있고 마음씨도 선량한 편이었다. 신앙심은 별볼일 없었지만 인간애만큼은 풍부한 사람이었다. 마을의 소문과는 상관없이 아첼의 편이 되어준 몇 안되는 사람이기도 했다.

"몰라요."

하지만 신부가 해코지한 사람을 물어볼 때면, 아첼은 한결같이 모른다는 대답밖에 하지 않았다.

애초에 말한다고 해도 일이 풀리진 않는다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말해봤자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숨겨봤자 애들과 사이가 좋아질 일도 없다.

그저 귀찮은 마음에 그냥 얼버무릴 뿐이다.

걱정 가득한 한숨을 내쉰 신부는 조심스레 아첼의 상처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며칠만 기다리면 손님을 하나 데려오겠다 말했다.

"어, 어디 가실거에요?"

"어쩔 수가 없구나. 꽤 멀리 사시는 분인데, 이전부터 생각은 했지만 꼭 모셔와야 할 것 같구나."

"전 괜찮아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가지 마세요!"

신부를 빼면 다른 사람들은 -애든 어른이든 상관없이- 아첼을 '마녀', '악령의 딸' 정도로 취급했다.

저 악명높은 검은 가지의 기사들이 다음날이라도 들어닥칠 것처럼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그 두려움의 대상인 아첼은 한없이 꺼리고 미워했다.

신부라는 방파제가 없었다면, 마을 전체가 눈엣 가시로 여기는 꼬맹이 하나쯤은 진작에 쫓겨났을 것이다.

"가, 가지 마세요!"

아첼은 반사적으로 신부의 옷에 매달렸다.

순간 억울한 심정이 복받쳐오르며 저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버렸다.

마을 전체가 따돌리며 괴롭히는 것은, 겨우 여덟 살 소녀에게는 지옥이나 다름없는 일상이다.

어제는 개울에 밀쳐져 물에 빠졌고, 오늘은 돌을 맞고 쓰러졌다. 내일이라고 괜찮을리가 없다.

믿고 의지할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할지, 앞이 캄캄했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잘 말해두마.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수는 없지 않느냐."

하지만 신부는 씁쓸한 한숨을 내쉬며 아첼의 손을 떼어냈다.

그는 하루에 한 번 새로 감아주라며 붕대와 약을 아첼의 손에 쥐어주고는 돌아서버렸다.

그렇게 하나뿐인 보호자는 아첼의 곁을 떠났다.

문이 닫기는 순간, 아첼은 끝 모를 절망을 느끼며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 * *




다음날부터 아첼은 성당의 다락방에 숨어 있었다.

워낙 오래된 건물이라 다른 사람들은 있는 줄도 모르는 다락방은 그녀만의 비밀스러운 낙원이었다.

빛도 거의 들어오지 않고 굶주림을 해결할 음식도 전혀 없었지만, 혐오스럽다는 듯 쳐다보는 눈이 없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다락방에서 아첼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잠을 자는 것 뿐이었다.

장난감 같은건 가져본 적도 없었고, 그나마 가지고있는 책도 신부에게 받은 두꺼운 성전 한 권 뿐이었다.

어두컴컴한 다락방에서 손바닥만한 빛에 의지해 읽기에는 너무 작은 글씨와 두터운 두께가 부담스러웠다.

아첼은 부엌에서 가까스로 몰래 홈쳐온 우유를 반쯤 마시고 먼지 가득한 바닥에 드러누웠다.

천장의 갈라진 틈새로 들어오는 빛이 괜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첼은 갑갑하게 이마를 싸매고 있던 붕대를 풀어 천장의 틈새로 쑤셔넣었다.

조그만 방이 금새 완전한 어둠속에 잠겼다.

'이, 이렇게 어두웠나?'

덜컥 겁이 난 아첼은 황급히 붕대조각을 끄집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당황한 나머지 자꾸 손이 헛돌아, 틈새를 막아버린 붕대 조각이 어디쯤 있었는지조차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마음이 급해진 아첼은 점점 원래 위치에서 벗어나는 곳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조차도 얼마 가지 못했다.

천장을 덮은 판자를 할퀴다시피 하며 붕대를 찾던 도중, 문득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첼은 급히 바닥에 웅크렸다.

다행히 누군가 방에 들어선 것은 아니었다.

목소리는 바닥, 그러니까 아래 층의 천장을 통해 들리고 있었다.

'그 마녀 계집애는 어디있어?'

'알게 뭐야. 어제 머리가 깨졌다던데, 어디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네.'

'신부님도 참 대단하시지. 하지만 검은 돌은 씻어도 검은걸, 따뜻하게 품는다고 바뀔까?'

'부모도 내버린 마녀를 덥썩 맡으시다니, 정말 마음도 좋으시지.'

자신을 향한 독설과 저주.

문득 이마의 상처가 욱신거리며 아파왔다.

고통과 고독 속에서 불현듯 서러움이 울컥 치밀어올랐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렇게까지 말하는걸까?

내가 정말 악마라고, 악령의 노예라고 믿는걸까?

저 사람들은 정말 나를 죽이고 싶은걸까?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다들······, 미워······. 다들, 없어져버리면 좋겠어······."

아첼은 혹시 소리가 들릴까봐 옷자락을 입에 문 채 울었다.

하지만 동시에 진심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없어져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제와서 새삼스레 뭘 기대했던가.

태어나서 8년간 저 사람들에게 따뜻한 인사 한 번이라도 받은 적이 있었던가.

하지만 그렇게 애써 스스로를 달래보려고 해도, 몇 년이나 일방적으로 쌓여왔던 악의는 점점 직접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어둠과 고통으로 약해진 마음은, 평소라면 얼마든지 참고 넘겼을 가벼운 바람에도 힘없이 깎여나갔다.

이미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버텨온 지난 8년, 쉼없이 깎여온 마음이다.

빛나던 방패도 작은 흠집 하나로 더럽혀지면 금새 만신창이가 되는 법.

한 번 터져나온 상처는 순식간에 벌어지며 어린 아첼의 마음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외로웠다.

미칠듯이 외로웠다.

슬픔과 외로움에 흐느껴 울어도, 위로해주는 사람은 커녕 행여 들릴까 숨죽이며 입을 틀어막아야만 한다.

어째서.

어째서?

턱이 부서져라 이를 악물고, 머리를 감싸며 울음소리를 억누르는 스스로의 모습이 더더욱 슬픔을 가중시키며 어깨를 무겁게 내리눌렀다.

- 밉지?

- 사람들이 미운거지?

- 복수하지 않을래?

그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아첼 말고는 이 다락방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다락방이라기보다는 지붕 사이의 틈에 가까운 곳이었고, 아직 어렸던 아첼이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낮은 공간이었다.

아첼이 이 곳을 찾은 것도 순전히 우연에 가까운 일이었기에 발견된 확률은 거의 없었다.

그런 공간에서 낯선 목소리가 귓가를 핥듯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도 비명을 지르지 않은 것이 대단한 일이리라.

아첼은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면서도 어둠속을 향해 속삭였다.

"너, 너희는 누구야?"

-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건 네가 부당하게 따돌림 당한다는 거야.

-함께 복수해달라고 부탁만 하면 돼. 한 마디만 하면 너는 편안해지는거야.

-멋지지 않아?

-그러니까.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복수하자.

어둠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계속해서 다른 사람처럼 변했지만 한결같이 녹아내릴 듯 감미로웠다.

그러나 하나같이 어린 아첼의 마음을 뒤흔들 정도로 매혹적인 음색이었다. 녹아내린 설탕처럼, 혹은 은밀하게 퍼지는 독약처럼, 갈기갈기 찢긴 마음의 상처 사이사이로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 아첼을 비난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도 녀석의 작전이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꽤나 오래 전부터 아첼을 유혹하려다 실패하는 녀석이 많았던 만큼, 그녀를 끌어들이기 위해 멋진 수를 썼을지도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 목소리가 아첼이라는 이름의 잔을 넘치게 만든, 마지막 한 방울의 물이었다는 것이리라.

아첼은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지도 않은 채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한 줄기의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 어렴풋한 자색으로 타오르는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상대를 찾아 이리저리 움직였다.

숨소리도 점점 들뜨며 열이 오르는 것을, 그녀 자신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복수?"

-그래, 복수.

-무척이나 달콤하고 무척이나 기쁜, 무척이나 좋은 일이지.

-너를 따돌리는 애들도.

-너를 미워하는 어른들도.

-모두 없애버리는거야.

-네가 행복해 질 때까지.

"왜 나를 도와주려는건데?"

-아아, 가엾은 아이야. 나도 슬펐단다.

-사람들이 악마라고 부르면서 날 미워했지.

-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보이지 않는데도 심장이 갈라진 듯 비통한 얼굴로 괴로워하는 얼굴을 떠올리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너도 아픈거야? 날 어떻게 도와줄건데?"

-그건 간단한 일이야.

-혼자라면 아무 힘도 없지만.

-둘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저 사람들도 여러 명이니까.

-우리를 미워할 수 있는거야.

-그러니까 이제 걱정할 필요 없어.

-우린 전부 복수해 줄테니까.

-걱정 마. 나는 네 친구니까.

아첼은 마음이 들떴다.

복수같은 것은 솔직히 아무래도 좋았다.

이제까지 좋은 일 따위 한 번도 없었던 삶, 끝난다 해도 단지 무서울 뿐, 안타깝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습이 보이지 않는 목소리의 말 가운데, 하나의 단어가 아첼의 가슴에 은은하게 울렸다.

친구.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자신의 고통을 함께 해주는 자.

아첼은 저도 모르게 환호성을 지르려다 황급히 입을 막았다.

흥분으로 벌떡 일어나다 천장에 머리를 찧는 바람에 눈앞에 별이 날아다닐 정도였지만, 그런 아픔따위는 사소한 것으로 밀어버릴 수 있을 만큼 기뻤다.

"친구."

-그래, 나는 네 친구야.

"응. 너는 내 친구야."

순간, 뜨겁고 날카로운 아픔이 등 한복판을 찔렀다.

하지만 아첼은 처음으로 사귄 친구에게서 눈을 돌릴 수 없었다. 아첼은 보랏빛 눈동자를 깜빡이는 '친구'를 향해 두 손을 내밀었다.

어둠보다 더 짙은 어둠이, 그녀의 손을 마주잡았다.

"참, 네 이름은 뭐야?"

목소리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부드러운 목소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음산한 웃음소리였지만, 그때의 아첼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프라이엘. 이프라이엘이라고 해.'




* * *




며칠 뒤. 신부는 낯선 사람 하나와 함께 마을로 되돌아왔다.

오십대, 젊게 잡아도 사십대 중반은 넘겼을 남자는 덥수룩한 수염을 아무렇게나 기른 덕에 처음 보는 사람은 혹시 강도가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번들거리는 가죽갑옷에 여러 개의 단도를 꽂아두고, 허리춤에는 활까지 달랑달랑 매달고있어 얼핏보기에는 사냥꾼처럼 보이기도 했다.

남자는 근육이 꿈틀거리는 구릿빛 팔을 들어 이리저리 몸을 풀었다.

"저기가 당신 성당이오?"

"그렇습니다. 자리를 비운 동안 별 일 없었으면 좋겠군요."

그는 수소문 끝에 어렵게 찾은 흑마법사였다.

하지만 요 며칠간 함께 지내며 당장 헤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떠올렸는지는 오직 신부와 아이넬라만이 알고 있을 일이다.

신부는 연신 성호를 그으며 흑마법사를 곁눈질했다. 가까이 있는 것이 탐탁치 않다는 것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흑마법사는 그를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수염으로 뒤덮인 턱을 긁적이던 마법사는 조용한 마을쪽을 가리키며 툴툴거리는 투로 질문을 던졌다.

"별 일 없길 바라는건 어느 쪽 말이오?"

신부는 황당하다는 듯 흑마법사를 노려보았다.

"그야 당연히 신자들이지요!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흑마법사를 걱정할 필요나 있습니까? 계약도 하기 전부터 생령들이 알아서 모시는 흑마법사를? 아직 열 살도 안돼 법적으로 제제할 수가 없을 뿐이지, 그 애는 이미 괴물이란 말입니다. 눈이 마주칠때마다 흠칫흠칫 놀라는 것도 지쳤습니다."

"하. 여덟살 짜리 꼬맹이를 온 마을이 잡아먹으려 들고는 뭐가 그리 당당한지. 겨우 생령들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친절한 척 한 사람 답구만."

"뭐요?"

정곡을 찔린 신부가 괜히 성을 냈다.

그랬다.

신부가 아첼을 보호한 까닭은 바로 생령들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계획된 친절이었다.

마을 사람 전부가 아첼을 꺼려했지만 그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은 이유.

생령들이 그저 아첼에게 겁을 주거나 달콤한 말로 꾀어 유혹하려 한 이유.

그 모든 것은, 아첼이 이곳에 남아있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이나마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눈치챘기에, 신부는 최대한 생령들이 해코지를 하지 못하도록 아첼을 자극하지 않으려 애써온 것이었다.

신부는 노기 어린 얼굴을 애써 가라앉히며 다시금 성호를 그었다.

그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다는 믿음 때문이었으리라.

"어머니 아이넬라의 품을 떠난 가엾은 영혼에 안식을. 하지만 그 자들이 아첼레란도를 버리고 가지 않았다면 이렇게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제서야 당신같은 흑마법사를 찾아내 내심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흑마법사는 굳이 신부의 언행 불일치를 지적하지 않았다.

어차피 사람들이 흑마법사 싫어하는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익숙할대로 익숙해진 마당에, 이번에 한 번 보고 말 사람과 입씨름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흑마법사는 신부의 말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저 잠든 것처럼 조용한 마을의 모습에 굵은 눈썹을 꿈틀거렸을 뿐이었다.

타성에 젖은 듯 조금은 흐리던 눈매가 달군 석탄처럼 뜨겁게 끓어올랐다.

살기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사냥감, 혹은 오랜 숙적을 만난 듯한 눈빛에 무심코 뒷걸음질 치던 신부가 식은땀을 흘리며 마법사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왜 그러십니까? 무슨 일이 일어난겁니까?"

"이상하게 조용하지 않소?"

아무리 성당이라고 해도 이렇게 조용하지는 않는 법이다.

하물며 마을 전체가 쥐죽은 듯 조용한 것은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성당에 사는 아이만 다섯에, 마을 전체로 보면 말썽 피우는 꼬마만으로도 열 명은 가뿐하게 넘긴다.

깊은 밤도 아니고, 대낮부터 이렇게까지 조용한 것은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표정을 일그러뜨린 신부는 헐레벌떡 성당이 위치한 언덕 위로 달려올라갔다.

문득 한 마을 사람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밭 근처에 걸리적거리는 나무를 베려고 했는지, 도끼를 늘어뜨린 채 나무둥치에 기대있는 남자였다.

"유리프 형제!"

신부는 헐레벌떡 달려가 그 사람을 끌어안았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정신 차리십시오!"

하지만 아무리 부르고 뺨을 때려도 남자의 눈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설마 죽은 것일까.

신부는 급한 마음에 유리프의 가슴에 귀를 가져갔다.

긴장한 귓가에 다행히도 힘찬 고동소리가 들려왔다.

체온도 떨어지지 않았고, 딱히 외상이 있거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흘리지도 않는다.

목숨에 지장은 없는 것 같았다.

아니, 어찌 보면 단순히 잠든 모습이었다.

단지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대경실색한 신부는 곧바로 바로 옆집을 향해 달려들어갔다.

"이, 이게 대체······. 눈을 떠 보십시오! 카마냐 자매, 휘프만 형제!"

신부는 흑마법사가 지켜보는 동안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하지만 어느 집에 가보아도 제대로 눈을 뜨고 신부를 맞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마치 한밤중이나 된 것처럼, 깊디 깊은 잠에 빠져 누구도 일어나질 않고 있었다.

가까이 있던 세 집을 확인한 흑마법사는 혀를 차며 신부를 돌아보았다.

"온 마을 사람들이 죄다 잠들어버린 걸지도 모르겠소."

"설마······. 오오, 주여. 당신의 눈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일단, 당신이 말한 꼬마부터 찾아봅시다."

신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첼레란도가 한번 숨어버리면 아무도 못 찾습니다. 그야말로 귀신처럼 모습을 감춰버리지요. 마을을 온통 뒤져봐도 아무도 찾은 적이 없답니다."

"그거야 댁들 이야기고."

흑마법사는 후드를 벗어넘긴 뒤 천천히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몇 곳을 휘휘 둘러보던 그는 동그랗게 말린 채 허리춤에서 달랑거리던 활을 풀어 손에 쥐었다.

뿌드득, 힘줄을 쥐어뜯는 듯한 무거운 소리와 함께 커다란 활이 초승달처럼 둥그렇게 구부러졌다.

평범하게만 보이던 활의 표면으로 선명한 빛의 문자들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문에 걸린 팻말을 보면서 문고리는 놓치셨군. 천장, 조금 부수겠소이다."

마법사는 허벅지에 묶어둔 전통에서 화살을 꺼내 시위에 걸었다.

뭘로 만든 것인지, 번들거리는 광택을 품은 새하얀 화살대와 은빛의 깃이 묘한 빛을 뿌렸다.

화살이라고 하기에는 그 화살촉의 모양이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낚싯바늘처럼 크게 휘어진 두 개의 갈고리가 마주보며 붙어있을 뿐이었다. 무언가를 꿰뚫거나 자르기 위한 촉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우르티아!"

"잠깐, 주님의 집에서 감히 흑마법을-"

급히 제지하려던 신부는 갑자기 남자의 주위에서 매섭게 튀어오르는 벼락불에 흠칫 놀라 멈춰섰다.

그리고 조금 전과는 달라진 모습을 한 그의 화살에 눈을 둥그렇게 떴다.

꿈틀거리는 벼락 덩어리가 그 이상한 화살촉의 가운데 자리잡아 또 하나의 화살촉을 이루고 있었다.

마법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성당의 천장 한 구석을 향해 그 기묘한 화살을 날려보냈다.

화살이 천장에 꽂힌 순간, 벼락은 갑자기 화살촉을 중심으로 둥그런 원을 그리며 퍼졌다.

그리고 어느 정도 넓이를 확보하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칼날처럼 변해 천장을 둥그렇게 도려냈다.

"꺄아아아악!"

공포에 젖은 비명소리가 들리며 매끈하게 잘려진 판자조각이 아래로 푹 꺼졌다.

판자가 벌어지는 순간 그 틈에서 보인 것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먼지를 뒤집어쓴 갈색 머리칼의 소녀였다.

아첼레란도였다.

"랄모트!"

기괴하게 꼬여있던 번갯불이 순식간에 녹색으로 물들며 판자를 받쳤다.

마치 나뭇가지처럼 아첼을 떠받친 마력은 천천히 자세를 낮춰 판자를 바닥으로 내려놓았다.

판자 위에서 잔뜩 얼어 벌벌 떨던 아첼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신부를 발견하고는 그에게 달려갔다.

"시, 신부님!"

신부는 나는듯이 달려가 마주 다가오던 아첼의 어깨를 쥐었다. 순간 안도하려던 아첼의 눈이 다시금 공포로 물들었다.

어깨를 감싸쥔 신부의 손에 따스함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가녀린 어깨를 부숴버릴 것처럼 힘이 들어간 두 손이 가늘게 떨고 있었다.

"아첼,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시, 신부······, 아파, 아파요······, 신부님······."

머리 하나는 차이가 날 정도의 체격차에 아첼이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있을리가 없었다.

겁에 질린 아첼은 신부가 왜 화를 내는지도 모른 채 이리저리 흔들리기만 했다.

그러나 설령 신부가 말할 기회를 줬더라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신부의 눈은 이전과는 달리 짙은 경멸을 품고 있었고, 그 시선을 받아내야 할 아첼은 자신이 무엇을 설명해야 하는지 감조차 잡고 있지 못했으니.

"잠깐, 잠깐. 그러다 사람 잡겠소. 천천히 물어보면 될 거 아니오?"

보다못한 흑마법사가 끼어들었다.

며칠째 제대로 식사조차 하지 못한 아첼은 현기증 때문에 금방이라도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화가 난 신부를 말려준 흑마법사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평소에는 그렇게 친절하던 신부는 잔뜩 흥분한 채 다시 아첼의 어깨를 잡아 끌었다.

"······아첼레란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똑바로 말하거라. 어서!"

"신부님, 왜, 왜 이러세요······?"

"어서 말해!"

잔뜩 겁에 질린 아첼의 눈에 결국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첼은 더듬더듬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락방에 숨은 일, 빛이 차단되자 갑자기 목소리가 들린 일, 목소리가 했던 말 까지.

"그래서?"

"복수 같은, 같은건 필요 어, 없다고 했어요. 그 뒤, 뒤로는 가, 갑자기 잠이 와서 자, 잠들었고요······."

"기가 막히는군. 아무 훈련도 없이 정식으로 계약을 한 것 같소. 재능 한번 대단하구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흑마법사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신부는 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몇 차례나 성호를 긋더니,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아첼의 멱살을 들어올렸다.

"복수가 필요 없었다고? 그럼 이건 뭐냐! 마을 사람을이 죄다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게 네가 한 일이 아니란 말이냐?"

"큭, 콜록! 신, 신부님······. 괴, 괴로워······."

"내 죄로다! 우룬의 날개는 집요하기 짝이 없음이니······! 이미 죄악의 낙인을 받은 자를, 무슨 오만으로, 무슨 자만으로 묶으려 했단 말인가!"

신부는 아첼이 거의 숨이 넘어갈 지경이 되어서야 그녀를 집어던졌다.

여덟 살 소녀의 몸이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지며 애달픈 비명이 울렸다.

아첼을 처음 본 흑마법사가 오히려 눈을 돌릴 만큼 가혹한 처사였지만, 그녀를 여덟 해나 길러온 신부의 눈은 냉담하기만 했다.

신부는 마법사의 발치를 나뒹구는 아첼을 가리키며 고함을 질렀다.

"당장 데리고 꺼지시오!"

"신······부님."

급변한 신부의 모습이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아첼은 망연히 신부를 불렀다.

"왜······? 그, 그동안, 그동안 절 흑, 지켜주셨잖아요. 신부님?"

"그런 적은 없다."

"다, 다른 애들이 절 다치게 했을 때, 흐흑, 그 때도 절 치료해······주셨잖아요?"

"그건 그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거였어. 네가 죽거나 하면 악령들이 더 날뛸 테니까. 네가 아직 기댈 곳이 있다면 악령을 불러내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 내가 어리석었지. 하지만, 마을 사람들을 모두 해친 너같은 마녀 따위를 보호할정도로 어리석은 사람도 아니야!"

마녀.

그토록 듣기 싫었던 이름을, 그 입으로 담고 있었다.

"내가 어리석었다. 내가 어리석었어! 흙을 씻어내고 물을 막은 들, 우룬의 씨앗이 마를리가 없었거늘!"

마지막까지 믿었던 사람에게 들은 그 한마디는 힘겹게 버텨오던 한 소녀의 마음을 산산조각으로 깨뜨렸다.

충격받은 아첼은 그야말로 넋을 잃은 채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하지만 신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한 것처럼 미친듯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썩 나가시오. 이 곳은 어머님의 집이자 길 잃은 양들의 터전이오! 마귀에게 머리를 조아린 배덕자들을 더이상 두고볼 수가 없소!"

한동안 광분하던 신부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문 밖을 가리켰다.

문 밖을 가리키는 신부의 손을 말없이 보던 흑마법사는 바들바들 떠는 아첼을 감싸안았다.

그는 순간 흠칫 놀랐다.

여덟 살이라고 했던가?

여덟 살이 아니라 다섯 살 짜리도 이리 가볍지는 않다.

흑마법사는 뜨거운 한숨을 내쉬고는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하지만 문턱에 멈춰선 그는 낮고 빠르게 중얼거렸다.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 면이오. 세상을 움직이는건 하나가 아닌 둘이지. 여신 아이넬라가 만들고 마신 엘드리안이 동의한 법칙은 공존을 전제한다는걸, 왜 당신들은 잊고 있는걸까."

신부가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격분한 숨소리만으로도 이미 대답을 들은 것이나 다름없을 것 같았다.

흑마법사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마음같아서는 죄다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편협한 사고를 가진 신부였지만, 흑마법사는 굳이 손을 대지는 않기로 했다.

품 안의 꼬마가 얼마나 대단한 영과 계약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아마 마을 전체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대단한 생령이라고 해도, 마력을 퍼뜨리던 곳을 떠나면 그 영향력은 오래지 않아 사라진다.

다들 얼마 후면 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물론, 이후로 잠자리에는 악몽이라는 친구가 들러붙을테니 밤이 편하진 않을 것이다.

흑마법사는 주인이 잠들어버린 바람에 누구에게나 열려버린 주점으로 들어섰다.

아직도 펑펑 울고있는 꼬마도 달래고, 저녁 식사도 해결할 생각이었다.

대충 남아있는 재료를 아무렇게나 자르고 볶아 접시에 담은 남자는 빈 잔에 우유까지 담아 아첼의 앞에 놓아주었다.

"제가······그렇게 나쁜 애인거에요?"

"음?"

조그만 꼬마애의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쉬어버린 목소리였다.

마법사는 선반에서 찾은 포도주를 제멋대로 꺼내며 아첼에게 시선을 돌렸다.

"믿었는데······. 신부님만은, 날 믿어줄 거라고 믿었는데······. 그게 다 가짜였대요. 한 군데 정도는······, 기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사실은 잔뜩 금이 간 채 쓰러지기 직전이었대요."

"너처럼 어린 녀석이 나빠봐야 얼마나 나쁠거라 생각하는거냐? 아까 그 놈 말은 신경 쓰자 마라."

"하지만······."

쨍그랑!

흑마법사는 돌연 술병을 벽에 집어던졌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며 두 사람에게까지 조금씩 날아들어 여기저기 생채기가 생겼지만 둘 모두 피하려는 움직임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마법사는 촛점없는 눈으로 끊임없이 뭔가를 중얼거리는 아첼의 멱살을 끌어당겨 억지로 시선을 맞추고는 섬뜩할 정도로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딴 헛소리 더이상 지껄이지 마라. 난 네 재능 하나만 보고 널 기르겠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네 그릇이 내 생각과 다르다면 그 날로 난 널 버릴거야. 널 동정은 하지만 거기에 얽메이진 않아. 원죄에 대해서 파고 싶으면 혼자서 해봐. 단, 네 목숨 지킬 궁리를 끝낸 다음에나 하란 말이다. 저 신부놈의 알량한 말 따위로 세상 죄를 다 짊어진 맥빠진 표정 짓지 말고!"

초췌해진 아첼의 눈망울에 물기가 배어들었다.

"그래도, 되는걸까요······?"

"살고싶으면 살아. 살기 싫으면 얌전히 죽어. 그건 다른 사람이 정해주는게 아니라, 네가 정해야 할 문제다. 아참. 그래도 구해준 값은 하고 죽는 편이 내겐 좋겠군."

말을 마친 남자는 아첼을 놓아주고는 던져버린 술병이 아깝다는 듯 입맛을 다시다, 조금 애매한 표정으로 옆에 놓여있던 빈 잔에 우유를 채워 집어든다.

"내일부터 피델리아 시로 갈 거다. 도착하는 대로 마법을 가르쳐 줄테니 감사하라고."

"······전, 살아 있어도 되는 거에요?"

"알고싶으면 살아 봐. 자, 잔을 들어라. 어쨌건 첫 만남, 간단한 축배 정도는 나누는게 좋을테니까."

아첼은 마법사가 내민 우유를 가만히 바라보다 냉큼 자신의 잔을 비웠다. 그리고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는 그를 지나쳐, 벽감 깊숙히 감춰져있던 피야른 주를 꺼내와 두 개의 잔에 채웠다.

마법사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짓다, 이내 씩 웃으며 아첼이 내민 잔을 받아들었다.



* * *



"그 사람이 내 첫 스승이었지. 그 괴팍한 성격에 나름대로 어울리는 말이었다고나 할까."

아첼은 쓰게 웃으며 술을 따라 입에 털어넣었다.

옆에서 눈물을 그렁그렁하게 달고있던 티엘은 그 틈에 재빨리 눈물을 훔쳐냈다. 자기보다 어린 나이부터 흑마법사라고 멸시받고 살았다는 게 너무나 가엽게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아첼은 이제와서는 별 감흥도 없다는 듯 담담한 표정이었다.

이야기를 듣는 도중 눈이 점점 거세지자 주점으로 피신하긴 했지만, 아첼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며 중간중간 목을 축인 술만으로도 꽤나 취기가 올랐는지, 그녀의 눈은 묘한 빛으로 젖어 아른거렸다.

취한 것일까?

그 지독한 피야른 주가 또 다시 잔에 채워져, 티엘의 앞에 놓였다.

술을 잘 못하는 티엘로서는 거북한 짐이고, 그걸 모를 아첼도 아니다.

하지만 티엘은 모처럼 감상에 젖은 아첼의 눈빛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 또다시 잔을 비웠다.

"으아으으으으······. 어지러워······."

"너무 독했나?"

"쓰고 맛없어······. 그리고 어지러워······."

"야, 어지러우면 화장실에 토하고 와!"

아마 티엘은 포도주를 따라줬어도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술이라기에는 과일 음료에 가까운 키리아주 말고는 술을 마신 적이 거의 없으니 저렇게 투덜대곤 했다.

하지만 아첼에게는 그 무게가 다르다.

버려진 직후, 스승이라는 사람이 마시는 것을 보며 우유를 밀어버리고 청했던 그 날의 한 잔은 아마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참, 아첼. 조금 전에 그 생령, 혹시 지금 데리고 있는 그 녀석 맞아?"

"맞아. 내가 처음으로 계약한 생령, 이프라이엘. 아마도 내 권호도 이프라이엘 덕분에 받은거겠지."

훗날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당시 사람들이 잠에 빠지는 걸로 그쳤던 것은 굉장히 운이 좋았던 경우라고 한다.

아첼 또래의 보통 아이였다면 아무것도 모른 채 승낙했을 것이고, 그야말로 마을 전체에 지옥도가 펼쳐졌을 것이다.

스승이 어느 날 넌지시 이야기하기로는, 처음 아첼을 발견했을 때 이프라이엘의 기분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강력한 주인을 만났다는 기쁨으로 행복감에 젖어있었지만, 그러면서도 충분히 만족할 만큼 주인의 복수를 해주지 못한 덕에 다소 불만을 품고 있었다고······.

한편으로는 그 정도로까지 이성을 구축한 생령이 그녀의 말을 들어줄 정도로 친화력이 강했다는 이야기니 두려울만도 했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난 아첼은 오히려 해맑게 웃어버렸다.

조금, 감동적이었다고 할까.

"그래서, 마법을 배우기 시작한 게 그때부터야?"

잠시 옆길로 새던 아첼은 아차 싶어 생각을 얼른 되돌렸다.

"아아, 그래. 그 후 스승님을 따라 피델리아로 갔고, 거기서부터는 꽤나 즐거운 나날이었지. 스승님의 진도를 좀 더 빠르게 하고 싶어서 너처럼 밤새 책을 뒤질 정도였으니까. 처음부터 주문 구성을 따로 공부해서, 첫 시연에서도 나만의 영창을 하려다 된통 당하곤 했어. 아하, 그러고 보니 어디의 누구랑 똑같았네."

술기운 때문인지, 자신이 언급된 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티엘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잠시 킬킬 웃은 아첼은 잠시 후 조금 흐려진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내가 열 네살이던 해, 세 번째로 버림받았지. 엄밀히 말하면 배신은 아닌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합리적이긴 하지만, 그땐 버려진 것 이상으로 아팠으니까. 하, 망할 영감탱이."

쪼르륵.

몇 번이고 마신 끝에 더이상 향을 느낄 수 없게된 액체가 마지막으로 병 끝에서 똑똑 떨어졌다.

병 주둥이에서 가늘게 흘러나오는 물줄기가 왠지 눈물같다는 생각을 하며, 티엘은 술병을 쥔 아첼의 손을 가볍게 잡아 멈췄다.

"무리는 하지 마, 아첼."

중의적인 표현이다. 괴로운 이야기라면 그만 두라는 듯, 그러면서도 기억을 잊기위해 마시는 술을 자제하라는 듯, 겨우 열 몇살 꼬마가 할 표현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첼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야기 할래. 이런 기회 좀처럼 오질 않으니까. 이 기회에 끝내버리는게 나을 것 같아."

잔에 가득 따른 맑은 액체를 불빛에 비추며 다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작가의말

이프라이엘의 대사는 사실 언어가 아닙니다. 대정령을 제외하고는 인간의 언어를 구사할 수가 없지요. 티엘이 애냐와 계약할 때처럼, 서로 강렬하게 교감하며 의식을 직접 주고받은게 아첼에게는 대화처럼 느껴졌다는 것에 가까운 것.


밤안개의 별 편은 3화 정도면 끝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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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Sub Stream / Tale of Accelerando - 밤안개의 별(3) 19.07.14 149 2 37쪽
22 Sub Stream / Tale of Accelerando - 밤안개의 별(2) 19.07.13 151 5 54쪽
» Sub Stream / Tale of Accelerando - 밤안개의 별(1) 19.07.13 143 4 44쪽
20 3장-개화開花(7) +2 19.07.12 172 6 46쪽
19 3장-개화開花(6) 19.07.12 156 5 36쪽
18 3장-개화開花(5) 19.07.11 153 7 37쪽
17 3장-개화開花(4) 19.07.10 168 6 38쪽
16 3장-개화開花(3) 19.07.09 163 5 38쪽
15 3장-개화開花(2) +2 19.07.08 181 5 26쪽
14 3장-개화開花(1) 19.07.07 164 4 30쪽
13 2장-막간幕間(7) 19.07.07 180 6 37쪽
12 2장-막간幕間(6) 19.07.06 177 5 41쪽
11 2장-막간幕間(5) 19.07.06 196 8 42쪽
10 2장-막간幕間(4) +4 19.07.05 207 9 34쪽
9 2장-막간幕間(3) 19.07.05 188 9 35쪽
8 2장-막간幕間(2) 19.07.04 213 6 43쪽
7 2장-막간幕間(1) 19.07.03 209 8 30쪽
6 1장 - 초혼招魂(5) 19.07.03 219 9 28쪽
5 1장 - 초혼招魂(4) +2 19.07.02 289 10 35쪽
4 1장 - 초혼招魂(3) +2 19.07.01 384 10 40쪽
3 1장 - 초혼招魂(2) +2 19.07.01 526 17 27쪽
2 1장 - 초혼招魂(1) +8 19.07.01 1,595 14 31쪽
1 +8 19.07.01 1,573 17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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