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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Winterer 님의 서재입니다.

새벽의 시, 얼음의 용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일반소설

완결

LWinterer
작품등록일 :
2019.07.01 19:36
최근연재일 :
2019.12.10 12:46
연재수 :
17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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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7
추천수 :
664
글자수 :
2,473,044

작성
19.07.04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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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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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43쪽

2장-막간幕間(2)

DUMMY

사실 고국이라고 해도, 피앙투스에 아첼의 고향같은 것은 없었다.

어차피 천애고아인데다가 만날 사람도 없고, 그나마 아첼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피델리아 시는 공화국의 수도 팔람과 너무 가까웠다.

일부러 눈길을 피하려는데 굳이 수도 근처로 자리를 잡을 이유는 없다. '문'에 명부 이전을 할 것도 아니지 않은가.

물론 명부 이전을 한다면 아첼 본인이야 편할 것이다.

검은 가지를 적으로 돌리는 부담이 사라진다는 것은 둘째치고, (눈총은 좀 받겠지만)당당한 공화국의 시민으로 살며, 티엘 역시 공화국 시민권을 받아 안정적으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손에 넣는 평화는 살얼음처럼 불안한 것이었다.

아첼의 이름이 피앙투스의 명부에 실리는 순간, 그들을 쫓아낸 자들 역시 아첼의 행적을 눈치챌 수 있다.

바다를 건넜다고 해서 암살자가 오지 않으리라는 낙관은 할 수 없었다. 정적의 피라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빨아마시는 것이 제국의 관례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인적 드문 곳에서 조용히 숨어 사는 편이 나았다.

검은 가지의 악명이 드높다고 하지만, 보통은 마령이 강림했거나 주변을 위험하게 만드는 마법사가 있는 곳으로 파견을 나갈 뿐, 전국을 세세하게 뒤지지는 않는다.

애초에 숨죽여 살기로 생각한 시점에서 검은 가지를 자극할만한 일을 할 리가 없으니, 굳이 우열을 논하자면 시골에 숨어드는 쪽이 더 나으리라.


여러모로 고민해본 아첼이 선택한 곳은 공화국 서부의 어느 외진 산간지역이었다.

험준하기로 유명한 칼레 루스피아 산맥의 끝자락에 속하는 곳이지만, 별다른 자원이 나는 것도 아니고 산세도 비루해, 굳이 찾아드는 사람조차도 별로 없는 한가한 곳이다.

"좀 지루할지도 모르지만 몇 년만 참자. 좀 잠잠해진 뒤라면 대도시에도 나갈 수 있을거야."

"아냐, 괜찮아. 나 소란스러운거 별로 안좋아하는거 알잖아."

티엘 역시 반대하지는 않았다.

아첼은 그런 산골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면 편안히 지내기는 어려울거라고 차분히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충분히 그 사실을 이해한 뒤에도 티엘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의연한 모습이 오히려 걱정을 불러일으켰다.

마력의 영향으로 선명한 자색을 띤 눈은 묘하게 깊고 어두웠다. 나이다운 싱그러움이나 발랄함을 찾아볼 수 없는 그 표정은 마치 얼어붙은 강철 같았다.

겉보기에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 없이 태연하지만, 약간만 건드려도 얇은 살얼음처럼 산산히 부서져버리는, 그런 위태로운 상황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조숙하다는 말로 웃어넘길 수 없는, 마음에 상처를 입은 뒤 자연스레 배어나오는 씁쓸함.

그것은, 지켜보는 사람이 오히려 더 안타까워지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티엘은 마음속의 공포를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다.

잠시라도 홀로 남겨지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했고, 밤마다 옷이 흥건하게 젖을 정도로 식은땀을 흘리며 악몽에 시달렸다.

그나마 요 며칠간 그림자처럼 아첼을 졸졸 따라다니며 조금씩 호전되고는 있었지만, 머릿속에 눌러붙은 진득한 어둠을 다 털어내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것이다.

아첼은 위로의 의미를 담아 티엘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마냥 쉽지는 않을거야. 그러니까 어리광 정도는, 지금이라면 받아줄게."

"알아.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는······"

티엘은 말을 잇다 말고 입을 틀어막았다.

가늘게 떨리는 어깨를 보니 막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애써 억누르는 것 같았다.

가족이 몰살당하고도 숨가쁘게 도망치느라 제대로 울지조차 못하는 가엾은 꼬맹이.

정 힘들면 기억을 조금 지워주겠다는 아첼의 제안도 거절하긴 했지만, 그것이 아첼을 걱정시키지 않기 위한 허세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뭐라도 관심을 돌릴만한 것이 있었다면 좋았을테지만, 애석하게도 바다 위에는 흥미를 끌 만한 일이 그리 없는 법이다.

그러나 한 가지 다행인 것은, 티엘이 조금만 눈을 돌려도 잠시 기분을 환기할만한 소재는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뒤를 돌아보면 하늘을 찌를듯한 세 개의 돛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탄탄한 기둥을 가로지르며 순풍을 한가득 머금은 돛은 희미하게 머금은 소금기로 반짝이며 의외로 멋진 볼거리를 제공했다.

쾌적하게 부는 바람 덕에 기분좋은 파도가 연신 선수(船首)를 씻어내리고, 물기를 머금은 피겨헤드에 새겨진 서펜트는 정말로 바다 위를 가르는 것만 같았다.

날렵하게 몸을 일으키는 서펜트의 모습 곁에 새겨진 '은비늘'이라는 이름이 썩 어울렸다.

아첼은 조금 더 시선을 들어올렸다.

서펜트는 레가야의 상징이긴 했지만, 동시에 뱃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장식이기도 했다.

그것을 증명하듯, 가장 높은 돛대 위에서 휘날리는 황금빛 신수(神樹)와 나이팅게일의 깃발이 아첼의 눈에 들어왔다. 그들이 타고 있는 배가 피앙투스에 속한다는 것을 알리는 깃발이다.

아르타야를 떠난 지 오늘로 어느새 이레.

앞으로의 여정은 이 주 가량 남았다고 한다. 지도로만 보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긴 시간이다.

실제로 배의 항속만 따지면 직선거리로는 일 주일 가량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항로 중간을 가로지르는 암초지대나, 리가르트 연안으로부터 아르타야 앞바다를 거쳐 피앙투스 서편의 원해(怨海) 미투스로 흐르는 고속 해류 엘세데스는 거침없이 달려야 할 배를 잡아채 그 속도를 반 이상 깎아버리고 만다. 지금의 순풍도 엘세데스 해류에 본격적으로 오르면 상당히 거칠어진다.

때문에 제국과 공화국을 가르는 로이아 해역은 미해(迷海)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미혹의 바다라고까지 불리는 이 바다는 맑은 물과 쾌창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거칠게 들끓는 파도 덕분에 하얗게 피어오르는 물거품을 가득 안고 있었다.

그러나 그 흉흉한 뒷배경을 알면서도, 푸른 물 위를 아름답게 치장하는 흰 포말이 아름답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아첼은 그 아름다운 풍경에서 눈을 감아버릴 수밖에 없었다.

후다닥 난간으로 달려간 티엘이 허리를 꺾으며 처절하게 신음을 흘리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으윽! 하으아아······."

대륙의 해양권을 절반 이상은 장악하고 있는 해양강국 레가야. 그런 나라의 후계자였던 주제에 배는 처음 타 본다며 심하게 멀미를 하는 소녀는, 그녀가 아는 사람만 아니었다면 제법 신나게 웃어줄만한 일일 것이다.

가만히 등을 두드려주자 힘없이 아첼을 올려다보는 티엘의 초췌해진 얼굴은 평소 이상으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조금 전에 입을 틀어막으며 참았던 것이 울음이 아니라 치밀어오르는 구역질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첼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기분으로 손수건을 꺼내 티엘의 입가를 닦아 주었다.

그나마 첫날은 그럭저럭 괜찮게 넘어갔다.

오히려 처음 타보는 배에 조금 들뜬 기색까지 보일 정도라, 가슴에 고인 탁한 기운을 씻어내기엔 좋지 않을까 여기기까지 했으니.

하지만 티엘의 악몽은 그 다음날부터 시작되고 말았다.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보다 뱃전에서 난간을 붙들고 헐떡이는 시간이 길 정도로 멀미에 지쳐버린 티엘은 가엽게도 제대로 잠들 수조차 없었다.

결국 아첼이 알려준 대로 바람을 쐬며 하염없이 수평선만 바라보는 것으로 속을 달래는 것이 그녀의 하루 일과가 되었다.

배에 오른지 어느덧 일 주일이 되었지만, 이제서야 겨우 조금 익숙해진 수준이었다.

"좀 괜찮아?"

"······응."

마음에 상처를 입어 배어나오는 씁쓸함이라······.

아첼은 뭔가 허탈한 느낌에 맥없이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슬픔때문에 궁상맞게 방에 쳐박히는 대신 소소하게라도 감정을 내비치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몸이 힘들면 고민같은 사치는 부리지 못한다고 했던가.

뱃전에 매달린 채 속을 뒤집어버리는 멀미를 저주하는 신음소리가 길게도 이어졌다.

"괜찮아졌으면 안에 들어가서 자. 뱃전에 머리 쳐박고 있는거 별로 보기 않좋아."

"갑갑해서 싫어. 여기가 나아."

"지나가던 새가 웃겠네. 큭크크크, 레가야 사람이 뱃멀미를 하다니. 난 멀쩡하잖아?"

"······아첼은 몇 번이나 타봤는데?"

"두 번. 레가야로 갈때 한 번, 이번에 한 번."

티엘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첼은 손을 내밀어 티엘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는것으로 소심한 복수를 했다. 티엘은 불편한 신음소리로 항변했지만, 겨우 그 정도에 물러설 아첼이 아니었다. 더욱 짓궂은 표정에 티엘의 머리를 엉망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묻어났다.

나이는 아홉살이나 차이가 나는데도, 티엘의 머리칼은 아첼보다 한배 반은 더 길었다.

당연히 흐트러진 머리를 다시 빗질 하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들어간다. 나름대로 머리를 사수하려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갈 정도로.

이러다 폭풍이라도 불어닥쳐 머리가 엉킨다면 그것도 참 볼만 할 것이다.

유월 중순부터 팔월이면 주기적으로 광풍(狂風) '페넬타'라 불리는 폭풍이 분다.

허약한 범선 정도는 우습게 가라앉히는걸로 악명이 높으니, 잔잔한 바다에서도 멀미로 생사를 오가는 티엘에게는 더없는 재난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본격적으로 더위가 시작되는 유월까지는 절대로 페넬타가 불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리라.

아첼은 짓궂게 킥킥 웃으며 마주오는 바람에 가슴을 펼쳤다.

바람은 적당하고, 파도도 잔잔하며, 날씨도 좋다.

이런 평화로운 시간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항쟁이라는 폭풍에서 막 빠져나온 두 사람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조금 진정된 티엘도 아첼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을 만끽하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생각 이상으로, 평화로운 한 때였다.

하지만 평화로운 시간을 즐겨보려는 그 순간, 별로 듣고 싶지 않았던 경박한 소음이 귓전을 때렸다.

"전투 준비! 전투 준비! 좌현 전방 서펜트, 서펜트 발견! 좌현 전방 서펜트 발견! 전투 준비!"

갑자기 망루쪽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망꾼의 다급한 외침에 먼저 반응한 것은 노련한 선원들이 아닌, 선상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승객들 쪽이었다.

한가로움을 주체하지 못해 나와있던 승객들이 일대 혼란 빠지며 삽시간에 갑판 위가 난장판으로 변했다.

갑판원들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고함을 질러 웅성거리는 승객들을 객실로 인도하면서 자신의 위치로 이동하려 했지만, 겁에 질린 승객들은 벌떼처럼 웅성이며 오히려 그들을 방해하고 있었다.

"서펜트?"

"다들 객실로 들어가쇼!"

"이봐, 서펜트라니! 이 시기에 무슨 서펜······. 진짜라고?"

"꺄아아악!"

"빨리 들어가쇼, 빨리!"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사람은 위기를 느끼면 본능적으로 자신이 있던 곳에서 멀어지려 한다고 한다.

문제는, 그것이 위기가 닥쳐오는 방향이더라도, 그것을 깨닫는 것이 느리다는 점이다.

통제가 되질 않는 승객들은 비명을 지르며 갑판 위를 사방으로 휘젓고 다녔다.

객실로 들어가는 사람이 열에 둘 정도 뿐이고, 나머지는 사방으로 도망치다 난간이나 벽에 막혀 다른 방향으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선원들은 화를 내며 사람들을 반쯤 집어던지다시피 객실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객실이라고 그리 안전할리는 없다.

분노한 서펜트는 강철를 덧댄 선체조차 물어뜯을 수 있다. 서펜트가 재수없게 용골이라도 박살낸다면 등뼈를 잃어버린 배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가라앉는다. 물론 그 뒤에는 승객과 선원들이 사이좋게 바다의 원귀가 될테고.

헤엄을 칠 줄 안다고 해도 방향조차 잡지 못하는 일반 승객들이, 재차 달려들 서펜트나 대형 육식어류들의 습격을 피해 해변까지 무사히 도달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설마하니 일이 그 지경까지 될 일은 없을 터였다.

아무리 서펜트가 비교적 잠잠한 시기라고는 해도, 최소한 배를 보호할 마법사는 있을테니.


그러나 선원들의 움직임은 아첼의 예상을 벗어나고 있었다.

마치 그들이 직접 활을 쏘아 서펜트를 쓰러뜨려야 할 것처럼 잔뜩 긴장한 채로, 마법사를 불러오기는 커녕 나름대로 진열을 가다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첼은 눈을 가늘게 뜨며, 나중에 귀찮은 일이 생기는 것을 감수하고 살짝 마력을 뿌려보았다.

마법사가 있다면 분명 그 움직임에 반응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첼의 표정은 빠르게 굳어져갔다.

선내에는 아첼의 의지가 담긴 것 말고는 특정한 흐름을 가진 마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잘못 걸렸군.'

마법사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쳐도, 그 마법사가 자느라 상황을 모르는게 아니라면 서펜트가 눈앞까지 왔는데도 마법을 쓰지 않을리가 없다.

애초에 망꾼이 서펜트를 발견한 순간 이미 배를 돌진하고 있었다는 것은 배에 인식저해 주문조차 제대로 걸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일이다.

게다가 아첼의 눈앞에서는 참으로 기가 차는 물건이 슬금슬금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육중한 갈고리 화살을 단 발리스타였다.

성인 남성의 손목보다 굵은 대형 화살과, 그 화살을 발사하기 위한 대형 노포가 느릿하게 뱃전에 늘어섰다.

"발리스타 전진시켜! 좌현 전방! 좌현!"

"좌현 전방! 조준! 빨리해, 빨리! 서펜트한테 먹히고 싶은거냐!"

아첼은 얼굴을 감싸며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발리스타는 물론 강력한 무기다.

쇳덩이처럼 단단한 머리를 제외한다면, 제아무리 강철처럼 단단하다는 서펜트의 비늘도 어렵지 않게 부숴버릴 수 있다.

혹시라도 정통으로 맞춰버릴 수 있다면 한 발만으로도 서펜트 한 마리를 쓰러뜨리는 것도 가능은 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론상으로나 가능하다는 이야기일 뿐, 실제로 성공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서펜트를 상대하는데 있어, 발리스타는 지나치게 느렸다. 아무리 빠르게 장전, 조준하여 쏘아도 바다를 자유롭게 누비는 서펜트를 맞추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배에 마법사 한둘을 태우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커다란 쇠몽둥이를 휘둘러 새를 잡는 것과 그물을 던져 새를 잡는 것, 어느 쪽이 빠르고 확실할까.

하물며 그 새는 가까이 오는 순간 이 배를 박살낼 수도 있는 무시무시한 괴수인데.

"발사!"

투웅, 퉁!

연속적으로 시위가 퉁겨지며 육중한 화살이 바람을 찢었다.

화살의 끝에 달린 굵은 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불꽃을 토해냈다.

순간 배를 향해 맹렬히 질주하던 물살이 변개처럼 방향을 바꾸었다.

심해의 어마어마한 수압까지도 견뎌내며 바다를 자유자재로 누비는 서펜트의 강인한 육체는 급격한 방향전환으로 일어나는 관성과 부하조차 견뎌낸다.

쏘아진 화살이 맥없이 수면을 때리는 소리만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절반 가량의 선원들은 악다구니를 쓰며 사슬을 끌어당기고, 나머지 절반은 재차 발리스타를 장전해 발사했지만 서펜트의 날렵한 움직임은 조금도 따라잡지 못했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물결은 셋. 몇 되지도 않는 발리스타로 대항하기에는 절망적일 정도로 많은 수였다.

"잠깐 기다려. 아무리 얼간이같은 녀석들이라도 도와줘야 편하게 갈 수 있겠다."

"싫어! 같이 가!"

아첼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티엘은 다시 아첼의 팔에 매달렸다. 떼놓으려 해봐야 소용 없다는 사실을 잘 아는 아첼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될 수 있으면 아직은 현실을 보여주고 싶진 않지만······, 좋은 기회가 되겠지. 마침 다른 승객들은 선내로 모두 대피했으니. 알았어. 대신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해 두렴,"

"마음의 준비라니······?"

"흑마법사가 어떤 자들인지, 넌 좀 더 알 필요가 있으니까."

어쩐지 서늘한 목소리에 조금은 마음이 흔들렸다. 그러나 이내 티엘은 신중히 고개를 끄덕였다.

티엘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본 아첼은 천천히 좌현 방향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걸음걸이는 서두르지도, 초초해하지도 않았다. 허리춤에 걸어두었던 활을 풀어 손에 드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듯한 태도다.

그러나 그 느긋한 움직임과는 달리 뱃전 너머의 상황은 시시각각으로 악화되고 있었다.

서펜트들의 격렬한 움직임에 피어난 물거품이 여기저기 덩어리져 어지러운 추상화를 그렸고, 그 사이로는 여전히 빗발치는 발리스타의 화살이 무의미하게 해수면을 때리는 촌극이 반복되고 있다.

서펜트를 쫓기 위해서인지 독한 풀즙이 담긴 병을 연신 바다에 던지는 자도 있었지만, 서펜트와 발리스타가 만들어내는 물결이 요동치며 그 얼마 안되는 약품을 모조리 흩어놓아 별 효력을 보지는 못했다.

"젠장, 제대로 겨누지 못하겠나!"

"하지만 갑판장님, 저 속도를 어떻게 따라잡습니까!"

"그럼 앉아서 뒈질래! 빨리 정신차리고 재장전해!"

물론 무력한 발버둥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으리라.

발리스타의 연속 발사는 서펜트를 물리친다기보다는, 화려하고 거창하게 피어오르는 물보라와 파도로 서펜트의 접근을 막는것에 가까워보였다.

차라리 해적선을 상대로 한 것이었다면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었으리라.

적어도 해적선은 물 위에 떠있고, 흘수선 아래에 구멍이 뚫리면 가라앉는다는 약점은 막을 수 없으니.

그러나 바닷속을 마음대로 누비는 서펜트에게는, 발리스타가 만들어내는 정도의 미약한 물살 따위 수면 아래로 파고들어 간단히 무시할 수 있을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다.

"쌔애애애액!"

순간 우연에 가깝게도 서펜트 한 마리가 발리스타에 스쳤다.

커다란 비명소리가 뱃전을 후려쳤고, 바닷물 위로 진한 핏자국이 한가득 떠올랐다.

발리스타에 스친 서펜트의 단단한 비늘이 몇 개 박살나고 제법 깊숙한 상처를 남긴 것이다.

그러나 치명상이라고는 부를 수 없는 상처는, 오히려 굶주린 서펜트들의 독기를 한층 더 끌어올렸을 뿐이었다.

음험한 해룡들은 영악하게도 물 깊은 곳으로 잠수한 뒤 빠른 속도로 솟구치는 재주를 부리기 시작했다.

공성추처럼 단단한 머리가 해저 깊은 곳에서부터 화살처럼 날아들어 배의 바닥을 찍었다.

육중한 충격이 선체를 꿰뚫었다.

다행히 선체를 엮은 단단한 목재에 구멍이 뚫리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거대한 전추(戰椎;Warhammer)로 있는 힘껏 내려찍는 것 이상의 공격을 몇 번이고 막아낼 수는 없었다.

조준이 빗나간 서펜트 한 마리가 수면을 찢고 뛰쳐올라 뱃전에 머리를 부딪혔다.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서펜트의 뾰족한 머리가 뱃전의 판자를 조금 부쉈다.


마침내 아래쪽 갑판까지 내려온 아첼은 갑판장의 등 뒤로 다가가 어깨를 때렸다.

"대체 이게 뭐 하는 상황이죠?"

갑판장은 난데없는 여자의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매섭게 아첼을 노려보았다.

"······뭐요? 젠장, 내가 묻고 싶은 말이오! 들어가라니까 대체 뭐 하자고 기어나온거요?"

승객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 당연히 손해배상을 해야하며, 달갑잖은 이유로 돈을 쓰게 된 선주는 누군가에게서 잃은 돈을 메꾸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경우, 공화국에서는 상당히 높은 확률로 선장을 거쳐 갑판장에게 책임이 전가되곤 한다. 피앙투스에서 하루살이라는 말은 갑판장을 빗대는 말로 쓰일 정도였다.

그런 마당이니 두 사람의 승객, 그것도 한명은 열몇 살짜리 꼬마이고, 나머지 한쪽도 젊은 여성인 주제에 위험한 곳으로 기어올라왔다는게 거슬릴 만도 했다.

살아 돌아가기 어려워보이는 상황이라고 해도, 예상 외의 사태에 대한 반응은 반사적으로 튀어나가는 법이다.

때문에 갑판장은 되도록 험상궂은 표정을 내보였다. 손님들을 객실로 되돌려보낼 생각인 것이다.

하지만 아첼은 엄지 손가락으로 뱃전 너머를 가리켰다. 물 깊은 곳에서 크게 선회한 그림자가 다시금 배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그 느려터진 화살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이라고 뾰족한 수 있소? 저것들은 뱃전 위로 뛰어올라서 사람을 채가기도 한단 말요!"

"······마법사 하나 없이 로이아 해를 오가는게 얼마나 위험한지 몰라요?"

"당신이라면 선단 소속 마법사가 갑자기 앓아누웠는데 마침 서펜트가 잠잠할 시기면, 이럴 생각 안해봤겠소?"

"임시 마법사 구할 돈이 아까워서 목숨 내던질 생각이었던건가. 누군지는 몰라도 참 대단하신 선주군."

아첼의 빈정거림에 주위 선원들의 표정까지 덩달아 험해지기 시작했다.

난간 근처에서 갈고리를 손에 쥐고있던 선원들은 이제 서펜트보다도 아첼을 향해 먼저 갈고리를 던질 기세였다.

물론 눈 하나 깜짝 할 아첼이 아니었다.

마력을 다룰 줄 모르는 일반인은 수십 명이 있어도 한 명의 마법사를 건드리지 못한다.

그러나 그 태연자약한 모습은 터무니없이 오만하게 비춰지는 모습이기도 했다. 자존심 강하고 보수적인 바다 사내들에게는 불쾌할 정도로.

갑판장은 인상을 있는대로 쓰며 아첼에게 다가갔다. 남자였다면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였다.

그러나 웅성이던 선원들을 딱한 눈으로 바라보던 아첼은 한 발로 뱃전을 걷어찼다.

순간적으로 마력 강화가 된 발길질은 거대한 도끼로 내려찍는듯한 어마어마한 소리를 내며 두터운 나무판자를 바스라뜨렸다.

"이제부턴 닥치고 물러나시죠. 죽기 싫으면."

"뭐, 뭐요?"

"닥치라고 했죠? 말 듣는게 좋을걸? 이 배 가라앉으면 나도 곤란하니 도와주는거니까요."

순간 선원들은 뒤늦게 아첼의 손에 들린 물건을 알아보았다.

시위를 걸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교묘하게 사각에 놓아두었기 때문일까.

처음부터 손에 쥐고 있었음에도 이제와서야 활의 존재를 눈치챈 선원들은 흠칫 놀라며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더욱이 서로 팔이 닿을 정도로까지 다가갔던 갑판장의 놀라움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아첼이 쥔 검고 화려한 활은 건장한 남성조차 다루기 힘겨워할 대궁이었다.

나름대로 탄탄한 체격이긴 하지만 호리호리한 아가씨가 꺼내들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중병기에서 막연하게 떠오르는 흑마법사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마법사'라는 이름에서 떠올리는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마법사들은 근접전에서 어지간한 기사와 겨뤄도 결코 밀리지 않는다.

마력을 태워 육체를 강화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전으로 밀고가지 않는 한 육체능력 자체는 크게 뒤쳐지지 않는다.

더욱이 마력을 집중시킬 때 병장기의 형태를 갖춘 영장(靈杖)을 선호하는 흑마법사라면 그런 특성이 두드러진다.

아첼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상시의 근력은 스물 두 살의 아가씨일 뿐이지만, 마법사로서 싸움에 임하는 순간만큼은 한 손으로 돌조차 쥐어 으깰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다.

반원형으로 말려있던 활이 살아있는 마수처럼 반대 방향으로 몸을 뒤집어어 아름답게 굴곡진 특유의 모습으로 변했다.

시위를 거는 양 끝이 적을 향해 완전히 구부러지는, 극단적으로 탄성을 끌어올린 형태의 활.

활의 크기를 고려한다면, 저렇게까지 탄성을 높여서야 제대로 시위를 당기는 것조차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상식과는 달리, 활몸을 밀며 동시에 시위를 당기는 아첼의 움직임은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웠다.

팽팽해진 활시위가 우득거리는 소리를 내며 한계까지 당겨졌다.

그 순간 서펜트가 다시 한 번 배를 공격했다. 이번에는 세 마리가 한 번에 공격하기라도 한 것인지, 배 전체가 크게 기우뚱거릴 정도의 충격이 선체를 휩쓸었다.

엉거주춤하게 서있던 선원들이 균형을 잃고 크게 휘청거렸다.

그러나 아첼은 갑판에 뿌리내리기라도 한 것처럼 조금도 흔들리지 않은 채 끌어올린 마력을 시위에 흘려넣었다.

"파드미엘."

이름이 불리워진 생령이 아첼의 심장에서 마력이 흘러나온 마력을 삼키며, 동시에 자신의 마력을 아첼에게 건네주었다.

시위를 단단히 움켜쥔 손가락을 중심으로 마법진이 펼쳐졌다.

심연처럼 검은 마력이 안개처럼 피어오르며 당겨진 활시위를 칠흑빛으로 감쌌고, 동시에 비어있던 공간으로 검은 줄기를 뻗어 한 자루의 화살을 만들어냈다.

어둠을 찢어내 만든 것 같은 칠흑의 화살이 불길한 기운을 불태우며 막 뱃전을 공격한 뒤 멀어져가는 서펜트를 노렸다.

영격술중에서도 고위 술식에 속하는 아스트라(Astra). 화살 없이도 활을 쏘는 놀라운 기술을 처음으로 눈에 담게 된 이들이 놀라워하는 가운데 싸늘한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렸다.

"흑마법사······. 그거 당장 치우지 못하겠소!"

아첼이 불렀던 생령의 이름을 떠올린 갑판장이 언성을 높였다.

배를 노리는 서펜트도 문제였지만, 눈앞의 흑마법사도 문제였다.

저러다 갑자기 미쳐서 배 안에서 학살극이라도 벌인다면 그 때는 정말 방도가 없었다.

서펜트들이라면야 배를 몇 번 공격해보다 결과가 시원찮겠다는 판단을 내리면 알아서 물러갈 가능성도 적게나마 있다.

설령 배가 침몰해서 승객과 선원이 모두 널빤지에 의지해 서펜트에 노출되더라도, 적당히 배부를 때까지 포식을 마친 서펜트들은 남은 희생자들을 물어죽이지는 않으리라.

반면, 마령이 배에서 날뛰기 시작하면 그 때야말로 살아남는 자가 아무도 없게 된다.

그러나 아첼은 주문을 거두지 않았다. 완전한 무시였다.

식은땀을 흘리던 갑판장은 무심결에 아첼의 곁에있던 티엘을 바라보았다. 동생일까? 저 애를 인질로 삼으면 저 사악한 흑마법을 그만두지 않을까?

"한 가지 말해두지."

순간, 갑자기 아첼이 입을 열었다.

눈동자만 굴려 노려보는 날카로운 시선이었지만, 만지면 베어버릴 것 같은 살기가 흉흉하게 빛났다.

갑판장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으면서도 주저하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 애 건드리면 차라리 죽여달라고 애원하게 만들어주지. 흑마법사라서 두려워? 그럼 닥치고 당신 부하들부터 챙겨. 어줍짢게 방해할 생각이라면 정말 죽는 수가 있으니까."

'아, 아첼?.'

티엘은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고있는 아첼의 모습에 조금 낯설어하며 움츠러들었다.

평소라면 쉽게 입에 담지 않았을 '흑마법사'라는 말을 입에 담은 것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갑판장 혼자서 일방적으로 쏘아붙이던 것과, 스스로 흑마법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다르다.

하지만 티엘의 동요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아첼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녀를 중심으로 둥그런 공간이 만들어졌다. 사람들의 인식이 그대로인걸 새삼 확인한 아첼은 코웃음을 치며 혀를 찼다. 그리고 이내 서펜트를 향해 다시 시선을 되돌렸다.

그 짧은 순간, 티엘과 아첼의 시선이 서로 마주쳤다.

하얗게 질려버린 티엘의 얼굴.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의미를 품고 있었다.

어째서 아첼이 다른 사람들의 눈총과 질시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그리고 어째서 아첼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느냐는 듯한 얼굴.

티엘은 자신이 '흑마법사'라는 개념을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 이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행동에 어떤 의미가 부여되는지, 알고는 있으나 가슴으로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티엘은 갑판으로 내려서기 전 아첼이 했던 말을 이해했다. 흑마법사가 무엇인지 좀 더 알 필요가 있다. 뒤집어 말하면, 이제껏 흑마법사(영마사)가 당연하게 여겨지던 곳에서만 자랐던 티엘은 그 이름의 무게를 모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흑마법사의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한 아첼은, 누구보다 당당한 모습으로 활시위를 해방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눈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더불어 동정할 필요도 없다는 듯, 밤하늘을 담은 아름다운 화살이 힘차게 날아올랐다.

효시(嚆矢)도 아니었지만 마력의 화살이 날아가는 날카로운 소리는 온 바다를 울렸다.

마력시(魔力矢), 아스트라는 발리스타와는 다르다.

투사무기라는데는 점은 마찬가지라고 해도, 아스트라는 사용자의 마력으로 이루어졌기에 무게나 길이 등의 물리적인 조건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특성을 지닌다.

게다가 그 화살을 날려보내는 것은 저 발리스타와 비견될 정도로 강한 대궁이다.

시위를 떠난 화살은 묵직한 철시(鐵矢)라도 되는 것처럼 서펜트의 단단한 비늘을 간단하게 꿰뚫었다. 그리고 한 박자 후, 비늘과 가죽 깊은 곳까지 파고든 마력이 폭발하며 서펜트의 육체를 안쪽에서부터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쌔애애액!"

끔찍한 비명소리와 함께 수면을 뒤집는 커다란 물기둥이 솟구쳤다.

흩뿌려진 바닷물이 잘게 흩어지며 자아낸 자욱한 물안개와 거품 사이로 어느새 시뻘건 색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순간 아첼은 손을 뻗어 티엘의 눈을 가렸다.

"티엘. 눈 감아. 그리고 내가 말 할때까지 뜨지 마."

본능적으로 티엘은 아첼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눈을 꼭 감았다.

그러나 선원들 틈에서 터져나온 억눌린 비명소리에 그 작은 어깨가 움찔움찔 떨렸다.

단 일격.

단 한 번의 화살에 맞았을 뿐이지만, 파도에 드러난 서펜트의 사체는 그야말로 끔찍한 상태였다.

몸의 절반은 멀쩡했지만, 머리가 있던 부근부터 절반 가량은 죽은 지 한 달은 지난 것처럼 시커멓게 썩어버린 상태였다.

너덜너덜해진 지느러미와 가죽, 썩어버린 끈적한 핏덩이들이 파도에 씻겨나가지도 않은 채 비참하게 수면에서 흔들거렸다.

"······아, 악마······."

누군가의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렸지만 이미 아첼은 두 번째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동료의 처참한 죽음을 본 두 마리의 서펜트는 이미 겁에 질려 도망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야 곤란하다. 순식간에 멀어져가는 해룡을 바라보던 아첼은 먼 수평선을 향해 손으로 긴 호를 그렸다.

그와 함께 또 한번의 호명이 이어졌다.

"바람의 벽, 폭풍의 인도자. 날개를 묶는 바람의 사슬이여. 라피온."

이번에는 바람이 움직였다.

하얗게 백열하는 화살이 서펜트보다 빠르게 수평선으로 날아들었다.

그 직후 사방의 바람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그물이되어 서펜트들의 진로를 가로막았다.

아첼은 라피온의 마력으로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바람을 끌어모았다.

부드럽게 불어가던 바람이 한 순간 방향을 바꾸며, 수평선 저 멀리에서부터 거대한 갈퀴처럼 몰아쳐왔다.

바다를 밑바닥에서부터 갈아엎는 듯한 격렬한 바람이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미친듯이 요동치던 수면은 천천히 바다 위에 빠져나갈 수 없는 감옥을 만들어냈다.

암초도 없고 해류가 서로 부딪히는 지점도 아닌 평범한 바다에서 고작 바람만으로 거대한 소용돌이가 자라나고 있었다.

작은 배 한 척쯤은 집어삼킬 듯한 거대한 파도는 사방에서 서펜트를 두드리며 중심으로 몰아넣었다. 폭풍조차도 뚫고 다닌다는 서펜트들이 파도의 흐름에 맥을 못추며 힘겨워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바람은 은비늘호까지 미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벽이 배를 감싸고 있는 것처럼, 은비늘호의 주위로는 흉흉한 바람도, 소용돌이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바람의 속성은 유난히 제어가 어려운 것으로 평이 높은데도, 아첼은 마치 어린애 장난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심지어 아첼은 폭풍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또다시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익시온."

첫 번째 화살이 칠흑과 고요였다면, 세 번째의 화살은 말 그대로 번개의 조각이었다.

마력을 일으키자마자 손 안에서부터 맹렬하게 튀어오르는 새하얀 벼락은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미친듯이 몸을 뒤챘다.

그러나 아첼은 번개의 화살을 곧바로 서펜트들에게 날려보내는 대신 화살을 쥔 채로 추가영창을 시작했다.

아스트라에 별도의 주문을 새겨넣는 고도의 기술이었다.

"하늘의 왕, 신벌을 상징하는 지고의 권위여. 무지한 기원에 답하는 자여. 일계(一界)를 불태워 모든 것을 정화하라!"

아스트라에서 튀어오르던 벼락불이 한층 더 거칠어졌다. 이제는 꿈틀대는 벼락으로 인해 눈이 멀어버릴 지경이었다.

아첼도 역시 그 정도의 벼락을 태연하 쥐고 있는 것은 어려웠는지, 이번만큼은 조금 빠르게 활을 들어 하늘 높은 곳을 향해 쏘아올렸다.

제멋대로 날뛰던 벼락은 기다렸다는 듯이 기괴한 포효를 내지르며 라피온의 마력에 의해 모여든 구름 사이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 직후, 갑판 위의 모든 사람들은 동시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낙뢰가 떨어지기 직전처럼, 온 몸을 저릿하게 만드는 천둥소리가 두터운 구름벽 너머에서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아첼은 음산하게 웃으며 티엘과 자신의 귀를 가만히 틀어막았다.

"귀, 막는게 좋을걸요?"

아첼의 충고 아닌 충고가 떨어진 후, 모든 이들의 의혹을 잠재우듯 하늘을 덮었던 구름벽이 갈갈이 찢겨졌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새하얀 벼락의 창이 무수하게 내려꽂히기 시작했다.

눈부신 빛과 소리가 폭력이 되어 하늘과 바다를 모조리 집어삼켰다.

몇몇 선원은 울부짖으며 아예 갑판에 머리를 쳐박았고, 또다른 몇 사람은 벌벌 떨며 기도라도 하듯 두 손을 한데 모았다.

그러나 그 어떤 비명이나 탄식도 울부짖는 벼락의 노래에 파묻혀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

온 세상이 흑백으로 물들고 찰나가 영원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마침내 끝난 뒤, 저도 모르게 고개를 쳐박았던 선원들은 쭈뼛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벼락의 비가 쏟아진 곳에 무엇이 있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벼락의 비가 쏟아졌던 곳에는 잠든 것처럼 깨끗하게 떠올라있는 두 마리의 서펜트가 물결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익시온은 정확히 그들의 심장만을 불태웠다.

난폭한 전격으로 처참하게 죽어있긴 했지만 비늘이나 뼈대, 이빨, 심지어는 지느러미까지 상당량이 무사한 상태였다.

누구보다 먼저 몸을 돌려 서펜트의 상태를 살폈던 아첼은 가볍게 휘파람을 불며 활을 거두었다.

혹시라도 또다른 동료는 없는지 조금 주의를 기울였지만, 다행히도 저 세 마리 외에 또다른 서펜트는 보이지 않았다.

넌지시 망루 위를 올려다보는 눈빛에, 높은 곳에 있던 망꾼도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서야 아첼은 시위를 풀며 잔뜩 얼어붙어있던 갑판장에게 돌아섰다.

"이봐요."

"······왜, 왜그러시오?"

아첼은 겁에 질려 대답하는 갑판장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한심하다는 생각보다는 체념에 가까운 한숨이었다.

사실 지나칠 정도로 강렬한 벼락주문은 흑마법사에 대한 안좋은 이미지를 제외하더라도 두려움을 일으킬 만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무서워하는 건 그렇다고 쳐도 이렇게 얼이 빠져서야 곤란하다.

갑판장의 발을 밟는다거나 수염을 잡아당기는 식으로라도 주의를 환기시켜야 할까.

상당히 무례한 방법까지 고민하기 시작할 무렵, 문득 또다른 누군가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새로 나타난 남자는 딱하다는 얼굴을 하더니 대뜸 갑판장을 한 쪽으로 밀어냈다.

차림새를 보니 일등항해사인 듯 보이는 그 남자는 별로 꺼리는 기색도 없이 아첼의 앞에 당당히 섰다.

"비키십쇼, 젠장. 나이는 거꾸로 먹었나. 덜떨어진 놈들 상대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뭣때문에 그러십니까, 아가씨?"

허세가 아니라, 정말로 아첼이 흑마법사라는 사실은 개의치 않는 듯한 태도였다.

다른 선원들이 비척비척 뒷걸음질로 아첼에게서 멀어지려고 하는데 비해, 일항사의 눈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선원들은 '당신 미쳤어?'라는 표정으로 일항사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일항사는 '닥쳐, 머저리!'라는 표정으로 응수해준 뒤 아첼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저 평범한 승객을 대하는 듯한 편안한 대응에 오히려 아첼이 놀라워 눈을 깜빡일 정도였다.

"특이하시네요. 다른 분들이랑은 다르시군요?"

"저 꼴통들하고 이야기하려면 답답하지요. 레가야-피앙투스 항로 몇 번 다녀본 놈들이나 이야기가 통할겁니다."

피식 웃은 아첼은 한결 편안한 어조로 말했다.

"아, 부탁할게 있어서 그런데요."

"어디 들어봅시다. 갑판장을 보시면 알겠지만 다들 얼어서 말도 못하는 모양이니."

일등항해사의 표현은 상당히 부드러운 수준이었다.

몇 명은 아예 바지에 오줌이라도 지리지 않았는가 싶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뱃사람 가운데는 미신에 보수적인 사람도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아는 아첼은 쓴웃음을 삼켰다.

그래도 이렇게 배려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이쪽에서도 짓궂게 나갈 생각은 없다.

"저 서펜트좀 수거해줘요. 아, 알아. 공짜로 부려먹진 않을테니까 좀 해줘요."

"금전이 필요한거라면 수수료를 받고 처분까지 맡아줄 수 있습니다. 대신 문제가 있는데요."

"문제?"

일항사는 뒷굽으로 뱃전을 살짝 찼다.

"이 배는 공화국 소속이며, 따라서 공화국의 영토입니다. 승선 전에 흑마법사용 통행허가는 따로 신청하지 않으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당신이 피앙투스에 등록된 흑마법사가 아니라면 당신은 불법 입국자가 되시겠습니다.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원'의 증거라도 보여주셔야겠는데요."

"그거 눈감아달라고 반절쯤 떼 줄 생각이었는데요."

"······선장님과 이야기해 보지요. 아참, 선원들 입단속은 시켜두겠습니다."

"아, 그럼 부탁드릴게요. 그럼 이만."

볼일을 마친 아첼은 몸을 돌렸다.

그리고 아직도 자신의 품에 얼굴을 묻고 있는 티엘의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귀를 막은 손을 떼며 고개를 드는 티엘의 얼굴은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티엘."

가볍게 불러보았지만, 마구 흔들리는 눈동자는 아첼이 아니라 그 뒤의 허공을 향하고 있는 듯 했다.

아첼은 살짝 탄식하며 다시 한 번 티엘의 이름을 불렀다.

"티엘?"

"아, 응?"

예상대로였다.

티엘은 '흑마법사'라는 존재가 어떤 시선을 받는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었다

. 괜히 '문'에 속하지 않는 흑마법사가 많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차별받고, 멸시당하며,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사람들의 시선 뿐만이 아니다.

마력각인이 형성되어 한 사람몫을 다 하게 된 흑마법사는 '문'에 소속되지 않는 이상 마력의 행사 자체가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문', 혹은 '아이넬라의 대지'라 불리는 곳에 들어가 합법적인 흑마법사가 된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 외에 큰 차이점은 없다.

흑마법사라는 표지를 달게 되어 평생 사람들의 경계를 사고, 가까운 곳에서 사고가 일어난다면 우선적으로 조사 대상이 되는 등의 불이익을 받게 된다.

때문에 많은 흑마법사들은 힘을 숨긴 채, 음지에서 숨어 살아간다.

얼마 전까지 레가야의 '문'에 속해있던 아첼도 모습을 숨기기 위해 가지고 있던 정화석을 버리지 않았던가.

"배고프지 않니? 오래간만에 한바탕 마력을 썼더니 꽤 출출하네. 배를 구한 영웅이니까 맛없는 샌드위치 정도는 더 뜯어낼 수 있을거야."

각오하라고 말한 것은 아첼 본인이었는데도, 파르르 떨리는 티엘의 입술에 결국 먼저 말을 돌려버리는 것 역시 아첼이었다. 티엘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물러터졌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첼······."

하지만 티엘은 그 자리에 못박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

손도, 눈도, 가늘게 떨고 있었다.

'그만. 그런 눈으로 보면 나도 내가 되게 불쌍하게 보인단말야.'

아첼은 티엘을 살짝 끌어당겼다. 조그만 체구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품 안으로 쏙 들어왔다.

"레가야와는 달라. 공화국에서도 영마사를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필요악에 가깝지. 마령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마찬가지야."

아첼은 한숨을 쉬며 티엘의 어깨를 당겨 안았다.


두 사람은 주위의 따끔거리는 경계의 시선을 받으며 객실로 돌아왔다.

아첼은 침울해진 티엘을 몇번 달래 보려다 포기했다. 티엘은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객실 문을 열고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뱃멀미를 가라앉히려는건지, 아니면 뭔가 생각이 많아서인지······.

전자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걸 구분하지 못할 아첼이 아니었다.

"아첼."

문득 티엘이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 마법을 배웠어?"

"아······ 한 15년 정도 된 것 같네. 여덟 살 때부터 시작한 것 같아."

손으로 꼽아보니 꽤 오래되었다.

인생의 반을 넘게 마법사로 살아왔다라······. 생각보다 꽤 오래되었구나, 싶다.

"여덟 살이면 지금 나보다 훨씬 어릴 때 시작했네."

"영마사······, 아니, 이제 흑마법사라는 말에 익숙해지는게 좋겠네. 아무튼 흑마법사라는게 원래 그래. 신언사······. 백마법사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마력을 쌓아가지만, 흑마법사는 생령과의 교감을 통한 마력을 추구하니까. 이론상으로는 한 살 짜리도 최고위 마법사가 될 수 있는거지."

"그럼······."

"그럼?"

"아첼은 여덟 살 때부터, 이런 기분이었던거구나······."

"아-."

역시 그걸 신경쓰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첼은 가만히 티엘의 이름을 불렀지만, 검은 머리의 소녀는 돌아보지 않았다. 천천히 손을 들어 수평선을 따라 그리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입을 연다.

"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울고싶었어. 각인은 커녕, 마력을 다루는 것 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 울고 싶은 것 보다는, 내가 한심해. 아첼은 여기저기서 눈총만 받는데, 그걸 대신해 줄 수도 없으니까.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으니까. 그래서 내가 한심하게 느껴져."

"······어리잖아, 너는. 보호받는 게 당연한 거야."

"어리다고 보호만 받기에는······내가 아첼을 많이 좋아하는걸. 나 때문에 아첼이 따돌림 받는거, 그건 싫어."

어린 애가 할 말은 아니다.

대공녀로 살아온 탓일까.

결코 열 세살 짜리가 가질 책임감은 아니었다.

너무 이른 어른스러움에 아첼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다시 두 사람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가라앉았다.

그 때 가벼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내키지 않는 걸음인 듯 주저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한 발소리였다.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사환 소년이었다.

"저······. 아첼······, 씨 맞으시죠?"

티엘에게는 명부에 '혹시 모르니까 본명 쓰지 마'라면서 요상한 이름을 쓰게 하더니, 정작 본인은 애칭은 본명이 아니라며 그냥 적어낸 아첼의 태평함을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환 소년이 부른 이름을 듣고 티엘이 불만 가득한 눈빛을 보냈지만 아첼은 짓궂게 웃으면서 그 눈빛을 받아넘겼다.

"맞아요."

"서, 선장님께서 점심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세요."

"아, 그래요? 고마워요."

사환 소년은 빳빳하게 굳은 채 천만에요! 라고 외쳤다.

문득 몸을 돌리다 우울한 표정의 티엘을 보자 무슨 생각을 했는지 동정의 눈빛을 보낸 사환 소년은 잠시 후 종종걸음을 빙자한 전력질주로 멀어져갔다.

아첼은 허둥지둥 사라지는 소년의 뒷모습에 피식 웃고 말았다.

"가보자. 이래뵈도 선장인데 지긋지긋한 쉽 비스킷을 내놓지는 않겠지. 기분도 꿀꿀한데 거하게 뜯어내 보자."


작가의말

아첼은 스물 둘밖에 안먹었지만 전세계 랭킹으로 따지면 500명 안에 들어가는 흑마법 최상위권 강자입니다. 여기에 본인이 쓰는 활은 직접 마법을 걸어서 자기에게 맞는 물건으로 개조한건데, 이런 영장사(靈杖師)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수준. 재능충 정도로만 따지면 제 글에서 거뜬히 원탑먹는 괴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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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3장-개화開花(2) +2 19.07.08 180 5 26쪽
14 3장-개화開花(1) 19.07.07 164 4 30쪽
13 2장-막간幕間(7) 19.07.07 180 6 37쪽
12 2장-막간幕間(6) 19.07.06 176 5 41쪽
11 2장-막간幕間(5) 19.07.06 196 8 42쪽
10 2장-막간幕間(4) +4 19.07.05 207 9 34쪽
9 2장-막간幕間(3) 19.07.05 187 9 35쪽
» 2장-막간幕間(2) 19.07.04 213 6 43쪽
7 2장-막간幕間(1) 19.07.03 208 8 30쪽
6 1장 - 초혼招魂(5) 19.07.03 218 9 28쪽
5 1장 - 초혼招魂(4) +2 19.07.02 288 10 35쪽
4 1장 - 초혼招魂(3) +2 19.07.01 383 10 40쪽
3 1장 - 초혼招魂(2) +2 19.07.01 525 17 27쪽
2 1장 - 초혼招魂(1) +8 19.07.01 1,594 14 31쪽
1 +8 19.07.01 1,572 17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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