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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Winterer 님의 서재입니다.

새벽의 시, 얼음의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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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LWinterer
작품등록일 :
2019.07.01 19:36
최근연재일 :
2019.12.10 12:46
연재수 :
17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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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473,044

작성
19.07.06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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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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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42쪽

2장-막간幕間(5)

DUMMY

여기까지 온 것은 처음이었다.

수많은 저명한 마법사들이 달라붙어도, 이 정도로 마력을 가깝게 자각한 것은 이 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티엘의 바람과는 달리, 한 번 멀어지기 시작한 마력의 물결은 좀처럼 되돌아오지 않았다. 우연은 한 번이면 족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냉랭하게 멀어져버린 마력은 이내 한 덩어리로 엉겨붙었다.

다시 얼어버린 호수는, 그렇게 침묵으로 되돌아갔다.

진한 실망감이 작은 가슴을 꽉 메웠다.

어쩌면, 이번이라면, 그렇게 기대가 컸던 만큼 실패의 반동도 더욱 깊었다.

다소 의기소침해진 티엘은 다시 의식을 떠올리려 했다.

하지만 순간, 단순한 변덕으로 돌아선 티엘은 자신의 깊은 곳을 향해 하나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칼라가스.'

움직이지 않는 마력을 얼어붙은 호수처럼 여겼던 것 때문일까.

반쯤은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반쯤은 의식적으로 떠오른 이름이 티엘의 내면을 울렸다.

잘그랑- 잘그랑-, 풍경(風磬) 소리처럼 맑은 울림이 단단히 고집을 부리던 얼음 위로 은은한 파문을 일으켰다.

'아!'

미미하게 시작한 변화는 순식간에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절대로 몸을 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얼음들이 지진이라도 만난 것처럼 쩍쩍 갈라지며 곳곳에서 분수같은 마력이 솟구쳤다. 힘차게 뿜어져나온 마력은 안개처럼 잘게 부서지며 티엘의 주위로 달려왔다.

가슴이 떨렸다.

티엘의 부름에 응한 마력은 티엘의 의지에 따라 부드럽게 움직였다. 마침내, 티엘은 마력을 일으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기뻐하던 티엘은 문득 그 움직임이 점점 거칠어진다는 것을 눈치챘다.

처음으로 끌어올린 마력은 지나치게 많았고, 그것을 통제하기에는 티엘의 역량이 미처 따라주지 못했다.

점점 자신의 의지로 마력을 다룬다기보다 마력의 흐름에 휩쓸려버린 티엘은 한 순간 마력의 통제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내면 깊숙히 파고들었던 의식이 단숨에 현실로 부상하며, 동시에 얼음물처럼 싸늘한 기운이 심장에서부터 두 팔을 타고 흘렀다.

"읏, 차가워!"

화들짝 놀란 티엘이 반사적으로 팔을 흩뿌렸다.

그러자 손에서 물방울이 튕겨나가는 것처럼, 손을 따라 흘러내리던 기운이 한데 엉기며 안개처럼 허공으로 풀려나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신기하게도 안개가 스친 공기는 겨울 바람처럼 차갑게 식어있었다.

내면의 마력을 인식하는 정도가 아니라, 현실에서 정식으로 마력을 구현해내는 것에 성공했다는 의미였다.

"됐······어?"

문득 티엘은 뒤돌아보지 않고도 아첼이 자신을 보며 살며시 웃고 있으리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티엘의 귓볼이 발갛게 물들었다.

마력도 제대로 일으키지 못하면서 뭐가 카르티치스의 혈통이란 말인가.

부끄러움으로 화끈거리는 얼굴을 두 손으로 문지른 티엘은 다시 눈을 꼭 감았다.

조금 전의 차가운 기운, 그것이 마력이라는 사실은 이제 확실히 알고 있었다.

조금 전 아첼의 미소 덕분인지, 아니면 더이상 실수를 할 수 없다는 부끄러움 때문인지, 이번에는 조금 전처럼 깊이 집중하지 않고도 금새 마력의 기운을 찾아낼 수 있었다.

조심조심, 주의깊게 다시 마력을 불렀다.

심장 부근에 서늘한 기운이 스치며 천천히 양 손 안으로 마력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의식을 놓치면 그대로 흐트러질 것 같은 가느다란 기운이지만, 그 한 방울의 마력이 얼마나 가슴 벅찬 것인지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 정도면 확실하게 마력을 잡아둘 수 있으리라 판단한 티엘은 살며시 눈을 떴다.

창백한 색을 띤, 옅은 안개같은 마력이 두 손 안에 한 줌 정도 고여있었다.

다시 가슴이 떨려왔다.

머릿속으로 움직임을 그리자, 손 안의 안개는 착실히 티엘의 생각에 따라 움직였다.

그 순간 벅차오르는 가슴을 억누르지 못한 티엘은 마침내 환호성을 터뜨리고 말았다.

"됐어! 됐다, 됐어! 아첼, 나 됐어! 성공했다고! 꺄하하! 이거 봐, 신기해! 처음으로 성공했어!"

그동안 아첼과 서먹했던 것도 깡그리 잊어버린 티엘은 말에서 떨어질 정도로 기뻐하며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말에 타고있지만 않았다면 아마 팔짝팔짝 뛰어다녔을 것이다.

완전히 신이 난 티엘은 시위를 건다는 원래의 목적도 잊은 채로 단순히 마력을 가지고 노는 데 심취해버렸다.

이리저리 휘저어대는 손 끝을 따라 마력의 선이 희미하게 그려지고 다시 흩어지기를 무수하게 반복했다.

물론, 저렇게 한다고 주문을 쓸 수는 없다.

말 그대로 장난에 가까운, 쓸데없이 마력을 낭비하는 짓이다.

하지만 아첼은 굳이 흥분한 티엘을 말리지 않았다. 자신도 처음으로 마력을 끌어냈을 때 얼마나 기뻐했던가.

아마 저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이다.

최초로 마력을 자신의 의지로 발현시키는 순간은 모든 마법사들에게 가장 커다란 환희로 기억된다.

아첼은 그런 티엘의 기쁨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 대신, 아첼은 조용히 웃으며 티엘이 뿌려대는 마력의 특성을 짚어보고 있었다.

'하핫, 역시 피는 못 속이는 건가? 수행같은건 거의 하지 않았다시피 했는데도 벌써 이선에 가까워. 조금 차가운걸. 빙결계나 유수계일까? 아스트라를 배우기는 조금 더 수월하겠는걸. 그런데······, 어째 조금 이상한데?'

문득 아첼이 눈을 가늘게 떴다.

티엘은 완전히 재미들려 미처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어느새 그녀의 숨결은 필요 이상으로 거칠어져 있었다. 안색도 제법 나빠졌고, 무엇보다도 졸음을 이기지 못하는 것처럼 몸이 휘청휘청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처음인 티엘과는 달리, 아첼은 그 증상과 이유를 한 눈에 알아차렸다.

마력 고갈로 인한 탈진이었다.

"티엘, 멈춰!"

"으,응? 왜······어, 어라? 가, 갑자기 하늘이······. 어······."

뒤늦게 이상을 깨달은 티엘은 당황하며 말고삐를 꽉 움켜쥐었다.

하지만 이미 눈은 금방이라도 잠이 들 것처럼 가물거리고, 몸도 전혀 균형을 잡지 못한 채 심하게 휘청였다.

기어이 균형을 잡지 못한 몸이 한 쪽으로 기울었다.

"켈리아!"

마력이 벼락처럼 치달았다. 선명한 자색의 선이 티엘에게로 빠르게 뻗어갔다.

말에서 떨어지려는 티엘의 몸이 아슬아슬하게 마력에 안겼다.

허둥지둥 달려온 아첼은 마력에 걸려있던 티엘을 받아안았다.

티엘은 두 눈을 꼭 감은채 가늘게 신음하고 있었다. 황급히 손목을 짚어보니 다행히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다. 호흡, 맥박, 둘 다 크게 흐트러지진 않았고 열도 없었다.

생명력이 빨려나가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아첼은 내일부터 하나하나 제대로 가르쳐야겠다 다짐하며 티엘을 꼭 끌어안았다.

"으응······. 아체엘······."

아첼의 이름을 부르기는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잠꼬대였다.

아첼은 이마를 감싸쥐며 끙끙 앓는 소리를 삼켰다.

마력이란 곧 체력, 나아가 생명력과 연관된 힘이다. 곯아떨어질 정도로 마력을 뿌려댔으니, 하루 종일 등짐을 나른 것에 필적할 정도의 피로가 쌓여버렸을 것이다. 이대로는 티엘이 일어나더라도 멀리 가진 못한다.

결국 아첼은 과감하게 그 날 분의 여정을 포기하고 일찍부터 야영준비에 들어갔다.

덕분에 몇 시간만에 눈을 뜬 티엘은 모닥불이 타오르는 곁에서, 아첼의 무릎을 베고 누운 채로 눈을 뜨게 되었다.

"어······. 나 잠들었어······?"

"으이그, 빨리도 알아차린다."

아첼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티엘의 머리를 살짝 쥐어박았다.

장난 치고는 제법 매운 손길에 이마를 감싸쥐며 끅끅 아픔을 참는 소리가 길게 들려왔다.

"꺄으으으으으, 왜, 왜그래! 아프잖아!"

"으휴, 멍청해도 유분수가 있지, 마력이 고갈될 때까지 뿌려대면 어떡해? 몸은? 좀 괜찮아?"

울상을 짓던 티엘은 이마를 문지르면서도 아첼의 무릎에서 몸을 일으켰다.

감기로 열이 올랐을 때 처럼 머리가 무겁고, 묘하게 몸이 축 늘어지는 기분이다.

"머리······, 아파. 기운도 없고."

"당연하지, 바보야! 쯧! 오늘은 잔말 말고 일찍 자. 그리고 멋대로 혼자 마력 쓰는건 금지야. 알았어?"

"아, 응."

티엘은 조금 위태롭게 일어났다. 그러나 불안한 걸음으로 얼마쯤 걷다 다시 주저앉았다.

하는 꼴을 보니 식사 준비를 할 생각이었던 모양이지만, 옆에서 보는 사람으로서는 안쓰러울 정도다.

"자알 한다. 열세 살이나 먹고 걸음마를 다시 배우려고? 귀엽기는 하겠다만 정신없어, 요것아. 사고치지 말고 가만히 앉아 있어."

늦잠 잔 어린애를 다루는 어머니가 저런 모습일까.

잠시 동분서주하는 아첼을 바라보던 티엘은 무릎으로 기어가 등 뒤에서 아첼을 끌어안았다.

"미안해."

단순히 마력을 과다하게 사용해 놀래킨 것만을 이르는 것은 아니리라.

어느새 아첼에게서 무서운 환영을 떨쳐낸 티엘은 그동안 마음속에 고여있던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아첼이 마령처럼 무서워졌었다는 것, 미안한데도 혼자 겁먹고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던 것, 등 뒤에 매달려 얼굴을 볼 수는 없어도 그 목소리가 젖어들어가는 것은 모를 수가 없었다.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몇 번이고 괜찮타 타이르고는 있었지만, 그러는 아첼 역시 몰래 몇 번, 손으로 눈가를 매만졌다.

한 번 대화의 물꼬가 터지자 그동안의 서먹한 관계는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아직 체력회복은 덜 됐어도 입은 완전히 살아난 티엘은 그동안 못했던 말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것처럼 한참이나 재잘거렸다.

귀가 아플 정도로 쨍쨍한 목소리지만 오히려 마음은 더 편했다.

겨우 가슴을 쓸어내린 아첼은 계속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티엘을 제지하며 빠르게 자리를 정리했다.

평소에 잘 때 덮었던 모포까지 죄다 티엘에게 둘러준 아첼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인 뒤 자신있게 뒤돌아섰다.

그러나 티엘은 아첼이 무슨 표정을 하고 있을지 간단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조금씩 떨리는 손으로 솥이나 국자를 주섬주섬 꺼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굳은 표정으로 음식을 만들 준비를 마친 아첼은 작게 피운 모닥불 옆에 앉아 한참을 고민한 끝에 가방에서 건조 수프를 꺼냈다.

물에 적당히 개어 익히기만 하면 되니 실패하진 않을것이다.

······아마도.

그러나 이걸 물에 풀어서 끓이는지, 아니면 덩어리째 넣어서 끓이면 풀어지는 건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태워먹지 않으리라는 자신조차 어디에도 없었다.

"아첼······. 저기, 있잖아. 요리 하게?"

"······시끄러. 오늘은 얌전히 쉬어."

"차, 차라리 내가 할게."

다시 무거운 고뇌가 아첼을 지배했다.

아픈 애를 시킬 것인가, 아니면 도저히 먹을 생각이 안드는 자신의 요리를 먹일 것인가.

지난 며칠간의 행적을 보면, 요리라는 면에서는 아첼이 입 한번 놀리지 못할 정도로 티엘에게 뒤쳐지고 있었다.

한참을 갈등하던 아첼은 결국 쭈뼛쭈뼛 티엘에게 조리도구를 넘겼다.

솔직히 요리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수준이다.

간단히 수프 스톡을 물에 풀어 끓이고 비스킷을 부숴뜨려 그 안에 빠뜨리는 정도일 뿐. 여기에 빵과 말린 과일 몇 조각을 곁들이면 충분하다.

어째서 앉은 자리에서 서펜트를 몇 마리씩이나 쓰러뜨리는 사람이 이런 간단한 조리조차도 못하는 걸까.

티엘은 아직도 몽롱한 머릿속으로도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무심결에 아첼의 얼굴을 살폈다. 이미 그녀가 수프 스톡을 물에 풀어놓을 때는 아첼이 움찔거렸다는 사실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아첼이 저걸 통째로 물에 넣고 끓일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내심 한숨을 삼킨 것은 비밀이다.

얼마 걸리지도 않아 능숙하게 준비를 끝낸 티엘은 잠시 후 구수한 냄새가 올라오는 솥을 아첼에게 넘겼다. 그러나 그리 길지도 않은 시간동안 연신 하품을 하는 모양을 보니 어지간히 피곤한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아첼은 잠시 미안한 표정을 짓더니 그릇에 수프를 듬뿍 퍼서 티엘의 앞에 놓았다.

축 늘어진 티엘은 숟가락으로 수프를 떠먹는 대신, 수프 그릇을 통째로 들고 몇 번 불어 식힌 뒤 후루룩 마시기 시작했다.

대공가의 식사예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순박한 모습이다.

오히려 수프를 떠먹던 아첼이 멍한 표정으로 티엘을 바라볼 정도였다.

여행이 사람을 키운다더니, 오히려 애를 망가뜨리는 것은 아닐까.


순식간에 빈 그릇을 내려놓은 티엘은 금방이라도 잠들 것 같은 나른한 표정으로 몸을 웅크렸다.

"왜 이렇게 졸리지? 힘이 하나도 없어."

"적당히 조절하는 법 가르쳐줄게. 그런 식으로 마력을 퍼내면 말라비틀어진다."

마법사의 마력은 체력이나 생명력과 맞바꾸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영양섭취를 충분히 하는 것만으로도 마력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은 없지만, 지나치게 마력을 쓰다보면 순식간에 체력이 떨어져 지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티엘은 억울하다는 듯 뚱한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뜬금없이 활시위를 걸라고 한 것이 누군데? 정작 시위를 걸지도 못하긴 했지만 억울한 마음 반, 투정 반으로 입술이 한발은 튀어나왔다.

"······그런건 좀 일찍 가르쳐주면 안돼?"

"원래 처음에는 스스로 시작해야 하는거야. 너처럼 탈진할 때까지 마력을 쓰는 케이스가 오히려 드물어. 그리고-"

아첼은 손으로 티엘의 가슴을 콕콕 찔렀다.

티엘이 자고 있는 동안 아첼이라고 그냥 멍하니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너, 마력의 질은 초보 치고는 굉장히 높아. 여기서 당장 재볼 수는 없지만 아마도 이선(二線) 정도 될거야. 재능이라면 독보적인 수준의 재능이긴 하네. 오히려 초심자에겐 독이겠지만."

무겁게 가라앉으려는 눈꺼풀을 애써 들어올렸다.

아직 정식으로 마법을 배우진 못했어도, 티엘 역시 마법사의 피를 타고났다.

보다 강한 마력을 지녔다는 것은 분명 기쁜 일이다.

일반적으로는 티엘처럼 이제 막 마력을 구현하는 정도라면, 당연히 마력은 일선(一線)을 간신히 넘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벽돌쌓기를 하려는 데 티엘 혼자만 다른 사람보다 두 배는 큰 벽돌을 가진 셈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좋은 것일까?

벽돌이 크다면 쌓는 속도는 빠르겠지만, 대신 그만큼 무거워 다루기는 훨씬 어려운 법이다.

마력도 마찬가지다. 순도가 높을 수록 위력은 강하지만 그만큼 운용은 어렵다.

게다가 문제는 그 뿐이 아니었다.

"그리고 문제는 또 있어. 순도에 비해 마력량은, 이런 말 하긴 미안하지만 형편없을 정도야. 이선 초입정도 되는 녀석들은 평균적으로 400시안 안팎이야. 마력량만 보면 아스트라 몇 발 정도는 쓸 수 있을 정도지. 그런데 너는 고작해야 몇십 시안 정도밖에 안돼. 말이 좀 이상해지지만, 마치 마력을 시럽 만들듯이 농축해놓은 것처럼."

"나쁜거야?"

"모르겠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손해가 크지만, 장기적으로 가자면 이게 또 득이 될지도 모르지."

어쩌면 이제까지 티엘이 자신의 마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것이 이 때문이 아닐까.

미노스티야 대공왕은 어린 티엘을 가혹할 정도로 몰아치기만 했을 뿐 정작 티엘에게는 별 관심도 없었다. 그러니 이런 특이한 마력조차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애초에 거의 하루 종일 붙어있는 아첼조차도 티엘이 마력 방출에 성공한 뒤에야 간신히 알아챈 일이었다. 미노스티야가 알고 있었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라도 알게 된 것이 다행이었다. 마력이 비정상적으로 강한 이상,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가르칠 필요는 있었다.

'어라?'

생각에 잠겼던 아첼의 눈에 문득 티엘의 목걸이가 들어왔다.

모닥불 너머로, 그것도 모포 사이로 얼핏 보여서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색이 약간 변한 듯 했다.

하지만 목걸이가 눈에 들어온 것은 그야말로 한순간이었고, 이전에도 신경써서 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확신할 수도 없었다.

'잘 못 본건가? 전보다 좀 더 하얗게 된 것 같기도 하고.'

"왜?"

티엘이 아첼의 시선을 알아차리고 반문했다.

그러나 아첼은 고개를 저으며 피식 웃고 말았다. 에라, 알 게 뭐냐. 어차피 크게 위험한 물건일리도 없는 것을.

딱히 마력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 티엘이 저렇게 걸고다닐 정도면 뭔가 암기나 독극물일 가능성도 없었다.

그레니 백작이 보냈던 맹독 팔찌를 떠올린 아첼은 피식 웃으며 티엘의 머리를 흐트러뜨렸다.

티엘이 싫은 소리를 내긴 했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지금 당장은 지쳐서 손 하나 까딱 못하는, 귀여운 인형같은 상태인 것을.

"아무것도 아냐. 다른 생각 하지말고 푹 쉬렴."




* * *




"저기, 저 곳이 라간 계곡이야."

"여기야?"

"그래. 딱 살기 좋은 동네인 것 같네. 난 적당히 깊은 산지가 좋더라."

피앙투스에 내린지 거의 이 주, 두 사람은 라간 계곡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티엘의 눈에 감동이 약간 맴돌았다.

사실 티엘이 처음으로 마력을 끌어낸 이후로는 별다른 사건은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간간이 티엘이 쓰러진 일이 있겠지만.

티엘은 아첼에게 마력을 적당히 다루는 것을 배워갔지만, 그 과정에서 세 번의 실신과 여덟 번의 탈진이라는 기록을 세우고야 말았다.

처음 마력을 쓴 날 이후로 활은 들지 않았다. 보다 급한 문제가 뭔지 확실해진 덕이리라.

하지만 두어 달 전까지는 고생이란게 뭔지도 몰랐던 철부지 꼬마였던 터라, 이 정도 고생만으로도 견디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만 제외하면 기분 좋은 나날이었다.

5월 초의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어 이제는 쾌적한 여행에 가까웠다.

두 사람은 늦봄의 햇살을 즐기며 말을 재촉했고, 해가 하늘 꼭대기에서 내려올 무렵 계곡 앞의 마을로 들어섰다.

"아, 히니에 꽃이다."

늦봄부터 초여름까지 지천으로 피어나는 보랏빛의 작은 꽃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워낙 흔하고, 또 한 두 송이로는 초라하기 짝이 없어 레가야 궁에서는 일반적으로 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궁 내에도 비밀 정원에는 히니에 꽃이 만발해있었고, 몰래 시가지로 내려갈 때에도 여기저기에 덩어리져 피어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던 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눈에 들어오는 히니에 꽃은 이제껏 레가야에서 보았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커다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역시 자연이라는 정원사는, 만만히 볼 수가 없는 실력자인 것이리라.


그런 히니에 꽃밭의 중간 즈음에는 마을의 시작을 알리는 표지판이 자리잡고 있었다.

비바람에 수십 년 정도 낡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삭은 팻말은 그나마 남은 글자조차도 히니에 꽃에 드문드문 가려 남은 글조차 읽기 어려웠다.

판자의 색을 보니 썩어 없어지지 않은게 신기할 정도다. 오는 길에 듣지 않았더라면 '윌란'이라는 이름은 알아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느긋하고 평화로운 시골 풍경 가운데, 황당하게도 두 사람을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마을 안에 아예 풀어놓고 기르는 듯한 닭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을 보고도 도망갈 생각은 커녕 돌기둥이라도 보는 듯한 멍한 표정이 압권이었다.

여유만만하게 눈앞을 가로지른 닭들은 마을 입구에 심어진 나무 그늘로 걸어갔다.

그 곳에는 한가로이 오후를 즐기며 졸고있는 노인이 있었다.

멍한 얼굴의 닭이 꾸벅꾸벅 졸면서도 담뱃대는 놓치지 않던 노인의 발을 건드렸다.

흠칫 놀란 노인이 번뜩 눈을 뜨더니 졸음기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그러다 두 사람 외에 이상한 것을 발견하지 못한 노인은 눈꺼풀을 비비며 느릿하게 고개를 기웃거렸다.

"······손님······?"

저 흔한 단어가 어째서 저렇게까지 놀라움을 담고 있는것일까.

노인 옆에 늘어져있던 개도 뒤늦게 눈을 뜨고 두 사람을 알아챘다. 그러나 조금 전 닭이 그랬듯, 개 역시도 낯선 사람을 보고도 짖기는 커녕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한다.

참 느긋한 마을이다.

그 사이 잠기운을 떨쳐낸 노인은 부드러운 웃음을 담으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우리······, 음, 아. 윌란 마을에 온 것을 환영하네, 젊은 아가씨들."

담배연기를 길게 뿜어내며 인삿말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중간에 뜸을 들이는 모습을 보니 마을 이름 자체도 잊어버릴 뻔 했던 모양이다.

부러울정도로 여유로워보였다.

티엘은 자욱한 담배연기를 거북해하면서도 노인의 말에 킥 웃었다.

"안녕하세요. 날씨가 정말 좋네요."

아첼은 말에서 내린 뒤 밝게 웃으며 쾌활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티엘 역시 허둥지둥 말에서 내리며 따라서 인사를 했다.

하지만 노인은 서두르지 말라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외지인은 정말 오래간만이야. 작년이나 재작년에는 한 명도 못 본것 같은데 올해는 웬일로 둘이나 오는구려. 거기다 꽤 미인들인데? 허허허허!"

노인의 이름은 마르파라고 했다.

윌란 마을의 촌장을 맡고 있다는 마르파 노인은 담뱃대를 갈무리 한 뒤 두 사람에게 다가오라는 손짓을 했다.

두 사람은 별 생각 없이 노인의 곁에 앉았다.

마르파는 시원한 그늘에 놓아두었던 대나무 바구니를 끌고 와 불쑥 아첼에게 건넸다.

"식사는 안 한 것 같은데, 맘껏 들게나."

바구니 안에는 신선한 과일즙이 반쯤 들어있는 병과 간단한 먹을거리가 들어있었다.

두 사람은 노인의 도시락을 빼앗는 기분이라 선뜻 손을 대지 않았다. 하지만 촌장은 직접 큼직한 빵 한 덩이를 꺼내 티엘에게 덥썩 안겨주었다.

티엘이 어물거리는 동안 아첼에게는 역시 묵직한 병 하나가 쥐어졌다.

"편하게 있게나. 맛이 그리 나쁘진 않을게야."

"감사히 마실게요. 후후후, 마침 목이 말랐는데 잘 됐네요."

아첼은 병의 내용물을 한 모금 마셔보더니, 만족스레 입가를 닦으며 티엘에게 병을 넘겼다. 아첼을 따라 한 모금을 마셔 본 티엘도 이내 작은 탄성을 질렀다.

산딸기로 만든 음료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시원했다.

늦봄의 조금은 따가운 햇살에 맞아 은연중에 갈증을 호소하던 입안이 상쾌하게 씻겨나갔다.

함께 들어있던 빵은 보리로 만든 것이었다.

티엘에게는 조금 낯선 식감이었지만, 이미 다 식어버린 뒤에도 생각보다 훌륭한 맛에 금새 빠져들고 만다.

빵 한 입, 음료 한 잔, 그 것만으로도 꽤나 즐거운 식사였다.

사실, 라간 계곡으로 다가올수록 변방이다보니 다양한 식료품을 구하기 어려웠다.

특히 관문도시라고 할 수 있는 상튀에에서 구입할 수 있었던 식료는 정말 얼마 없었기에, 요 며칠간은 퍽퍽한 팬케이크와 식초를 탄 물 말고는 먹을 것이 없었다. 그러니 이런 신선한 음식이 얼마나 반가운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으리라.

마르파는 두 사람의 식사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딱 손주뻘의 아이들이, 서로 사이좋게 음식을 권하며 재잘대는 모습만큼 가슴 따뜻해지는 것도 드물다.

바구니 속의 음식이 거의 동이 나고, 가까운 우물에서 떠온 물을 마시는 것으로 늦은 점심식사가 끝났다.

자매는 뒤늦게 낯선 사람 앞에서 너무 게걸스러웠던 것은 아닌지 반추하며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노인은 껄껄 웃으며 다시 담뱃대에 잎을 채웠다. 그리고 조금 바람을 가늠하다, 어린 티엘에게 연기가 닿지 않을만한 위치로 움직여 불을 붙였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이런 외진 마을을 찾아 왔는가? 워낙 조용해서 젊은 사람들은 좀이 쑤실텐데."

"소란스러운 걸 싫어하는건 나이랑 상관없으니까요."

"허허, 젊은 나이에 조용한걸 좋아한다는건 거친 파도를 만나 지쳤다는 이야기겠지."

노인은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어디까지고 뻗어있었다.

하지만 노인의 눈에 보이는 것은 하늘 뿐이 아니었다.

"그런 큰 활, 쉽게 보긴 힘들지. 사냥꾼들이 쓰기에도 억센 활을 들고다닌다면 마령을 쫓아다니는 사람이거나 마령을 부리는 사람일테지? 아닌가?"

아첼의 표정이 다소 어두워졌다.

마령을 부리는 사람. 그것이 흑마법사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다.

마령과 생령이 엄연히 다르다고는 해도 일반인들로서는 구분하기 어려운데다가, 흑마법사가 마령에게 먹혀버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아무리 시골이라고 해도 흑마법사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활을 숨겨뒀어야 했나? 아니, 지금이라도 뭔가 변명을 하면?

조금 속이 타는 기분이 들었다. 문득 옆을 내려보니 티엘이 불안한 얼굴로 자신을 올려보고 있었다.

"······말씀대로, 전 흑마법사가 맞아요."

"역시 그랬군? 늙으면 자질구레한게 많이 보이니 말일세."

괜히 흐뭇해보이는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그 인자한 미소는 오히려 아첼의 마음을 다급하게 했다.

흑마법사라고 내치려는것은 아닐까. 근방에 다른 마을을 찾는게 나을까?

짧은 시간동안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교차했다.

이대로 티엘을 데리고다니다간 그리 좋은 일은 없을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티엘은 하루라도 빨리 안전한 곳에 정착시키는게 좋다. 입술을 깨물던 리아는 노인에게 깊숙히 허리를 숙였다.

"하지만 동생은 흑마법사가 아니에요. 아직 마법을 배운적도 없고. 굳이 절 받아달라고까진 하지 않을게요. 대신 이 아이라도 보살펴주시면 안될까요?"

"아첼!"

비명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아첼은 눈을 꼭 감으며 허리를 숙였다.

물론, 티엘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면 지금처럼 데리고 돌아다니면 된다. 추격자들이 따라붙을 확률도 더욱 줄어들테니,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정한 수입도 없이 떠돌아다니며, 그래도 살아있으니 다행이라 자위할 수만은 없었다. 비참하게 들판에 쓰러져 잊혀지다니, 절대로 안된다.

차라리 이 마을에 티엘을 맞기고, 가끔씩이라도 좋으니 얼굴이나 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아직 티엘은 생령과 계약하지 않았고, 적절한 조치만 취해주면 흑마법따위는 모르는 채 평범한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참에 아예 아첼 자신이 검은 가지에 자원하거나 하면 좀 더 풍족하게 지낼 수 있도록 뒤를 봐줄 수도 있을테고······.

울먹이며 애원하는 티엘을 뿌리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해야만 한다면 이를 악물고서라도 떼어놓아야 했다.

그러나 느긋하게 연기를 뱉어낸 노인은, 아첼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대답을 되돌려주었다.

"뭘 그리 성급하게 결정하는겐가? 빈 집도 많을텐데, 자매가 떨어져서야 안될 일이지. 젊은이가 한 명이라도 더 늘면 우리야 좋은 일이고. 허허허허, 자네, 영 겁이 많구만?"

"······네?"

지금 흑마법사를 받아주겠다고 말하는 것인가?

"어린 동생 떠돌아다니긴 너무 어리다는 건 이해하지만 말일세, 겨우 열 몇 살짜리 애를 연고도 없는 데 혼자 던져두면 맘고생이 말도 아닐게야."

"하지만······."

"자네 여기서 사람 죽일텐가?"

노인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표정이었다.

"흑마법사도 사람이지. 아무 이유도 없이 사고를 일으킬 거라고는 생각지 않아. 그들이 악귀라면 박해받으며 숨어지내지도 않겠지. 안그런가? 더구나 제 몸처럼 아끼는 동생을 위해 선뜻 자기가 떠나겠다고 말할 심성이면 일어날 사고도 막을 사람일게야. 늙은이 눈을 우습게 보진 말게나."

늙은이는 열정을 주고 지혜를 산다고 했던가.

오랜 연륜에서 우러나온 느긋함이 날카롭게 세워져있던 두 사람의 신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세상 풍파가 늙은이에게만 있는 건 아니지만, 나이 들고 보면 누구나 다 사연 한 두 가지는 품고 있다는걸 알지. 신경쓰지 말게나. 다른 사람들도 자네들을 싫어하진 않을게야. 재작년 역병으로 젊은 친구들이 많이 떠났네. 애들도 다 죽고 없지. 다들 젊은이의 활기가 그리워 어쩔 줄 모르고 있거든.."

"정말 함께 지내도 되는거죠······?"

"뭐, 지낼만한 집이 얼마나 남아있는진 모르겠네만. 없으면 새 집 지을 때 까지는 지낼 곳 봐 줄테니까, 어디 한번 알아보세나."

마르파 노인은 기지개를 켜고는 느릿느릿한 발걸음으로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아첼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천천히 촌장의 뒤를 따라가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빨리, 티엘이 그녀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절대로 혼자서는 안보낼거야. 나만 두고 가는건 싫어."

"미안. 마음이 너무 급했나봐."

혼자 남겨지는 것은 아닐까 얼마나 가슴을 졸였을 지, 아첼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고작 그 따위 제안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는 것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촌장의 걸음은 생각보다 빨랐다.

마을이 작은 것도 한 몫 했지만, 세 사람이 공회당까지 가는데는 겨우 오 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 오 분도 중간중간 마을사람들과 마주치며 시간을 보낸 덕에 늦어진 결과-어, 촌장님! 뒤에 두 아가씨는 누굽니까? 아, 마을 새 식구라네. 응? 셀렌이냐? 네, 마르파 할아버지. 방금 구워왔는데 쿠키좀 드실래요? 좀 나중에 먹지. 가만, 너 접때 삐끗한 팔목은 괜찮은거냐?- 였으니, 실제로는 삼 분 정도면 충분했을 것이다.

산간지역인 마을에서 그나마 평지를 확보하기 위해서인지, 공회당 건물은 주위에 비해 다소 낮은 지역에 세워져 있었다.

물론 란에 있는 커다란 성당에는 들어간 적도 없이, 역으로 사제들이 찾아와 축복을 내려주었던 티엘로서는 공회당이라는 건물 자체가 생소하기만 했다.

주위의 집들보다 한 배 반정도 되는 크기의 목재 건축물은 부조나 이렇다할 장식조차 없는 검소한 건물이었다.

드물게도 유리, 그것도 군데군데 색이 들어간 유리로 된 창이 없었더라면 창고의 일종이라 여겼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한 쪽 벽을 장식한 색유리는 조금 빛이 바래긴 했지만, 투박하게나마 아이넬라의 신상을 나타내고 있었다.

나름대로 종교적인 구색은 갖추고 있는 셈이다.

"성당도 겸하고 있거든. 근처 시에서 달에 한 번 사제님이 오신단다."

티엘이 색유리를 보고있자 마르파가 한 마디를 해주었다. 티엘은 알았다며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여전히 색유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냥 유리만으로도 상당히 비싼 물건인데, 어쩌면 이 마을에서 가장 비싼 건축 자재일지도 모를 일이다.

공회당 안쪽은 의외로 넓었다.

아마 예배딜을 겸하는 것으로 보이는 큰 방 하나가 있고, 그보다 작은 방이 강당을 중심으로 앞, 뒤에 각각 두개씩 더 있었다.

대들보는 일부러 조금 넓게 만들고 난간같은 것을 두어 유리창의 덧창을 여닫을 수 있게 만들어 둔 것이 눈에 띄었다.

다행히 지금은 덧창이 모두 열려있었기 때문에 색유리를 통해 비치는 햇살이 꽤나 멋진 분위기를 자아냈다. 허리 높이의 창문도 모두 열려있어 어둡지도 않았다.

오히려 빛이 이리저리 교차하며 큰 성당에서는 볼 수 없는 소박한 멋이 잘 드러나고 있었다.

"어지간한 이름난 성당들보다도 멋져요. 큰 성당은 화려하기만 해서 오히려 별로더라고요. 여신께선 검소한 가운데 아름다움이 있다고 하셨는데."

"에르반 수사가 좋아하겠구만. 그 양반이 설계했거든."

촌장은 가까이 있던 문을 열고 두 사람을 들여보냈다.

집무실 겸 응접실로 쓰는 방인 듯, 자그만 티 테이블과 소파가 눈에 들어왔다. 마르파 노인은 잠시 앉아있으라 말하고는 벽에 달린 선반을 뒤지기 시작했다.

번거롭게 매년 토지대장 같은 것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몇 년 전에 만들어 둔 문서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상자를 열자 자욱한 먼지가 피어올랐다. 굉장한 양의 먼지구름은 촌장을 지나서 탁자까지 뿌옇게 만들어버렸다.

서류철은 별로 촌장의 손을 타고싶지 않은 듯 했다.

"에퉤퉤, 무슨놈의 먼지가 이리 많은거야? 콜록, 콜록!"

마르파는 한동안 쿨럭거리며 먼지구름을 손으로 헤쳐야 했다.

아첼은 티엘의 어깨를 살짝 건드렸고, 티엘은 무슨 뜻인지 알아채고는 창가로 다가갔다.

아첼이 라피온의 마력을 옅게 퍼뜨리는 것과 동시에 티엘은 창문을 열었다. 뿌옇게 피어오른 먼지가 빠르게 흩어지며 창밖으로 밀려나갔다.

촌장은 잠시 감탄한 듯 창밖을 보았다.

"콜록! 어흠, 고맙네. 그리고 내 말 맞지? 그렇게 하나 둘 도와주다 보면 자네없인 못살겠다고 좋아할걸세? 아참. 중요한건 그게 아니지. 밖에 누구 없나?"

촌장의 약간 성난 목소리가 작은 공회당을 울렸다.

그러자 맞은 편의 방에서 누군가가 부스스한 머리를 쓸어넘기며 걸어나왔다.

늘어지게 하품을 흘린 남자는 게슴츠레한 눈을 이리저리 돌리다 처음 보는 얼굴을 발견하고는 흠칫 놀라며 입가를 슥 닦았다.

그 뒤로도 흐트러진 머리를 더듬더듬 매만지고 옷주름도 탁탁 털며 부산하게 움직인다. 정작 그를 불렀던 촌장은 보이지도 않는 듯 했다.

허허 웃으면서도 이마에 주름살을 잡던 촌장은 다시금 언성을 높였다.

"카알? 이 친구야, 정신차리게! 거 참 자네 나이좀 생각해보게나, 칼. 어디서 음흉하게 나어린 처자들을 흘긋거리나."

"아니 제가 언제 음흉하게 봤다고. 그리고 나이가 나이니까 급한 거 아닙니까?"

"됐고, 이번 주 청소담당 누군지 아나?"

"이안일걸요? 그런데 그건 왜요?"

"서류실 청소 언제 하고 안한거야?"

"서류실은 영감님이 손대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내가?"

촌장의 얼굴이 뭣 씹은 듯 구겨졌다.

칼은 불신의 눈초리로 촌장을 바라봤지만 무안해진 마르파는 마른 기침만 하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나저나 뭘 찾길래 거기서 고생이십니까?"

"아, 이 처자들이 오갈 곳이 없다질 않나. 우리 동네에 살고 싶다는데 당연히 집 봐줘야지."

마르파는 손짓으로 등 뒤의 두 아가씨를 가리켰다.

칼은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빈 집이라고 해도 대부분은 단 둘이 지내기에 지나치게 넓은 곳이 많다. 괜히 커봐야 관리만 힘들어지니 차라리 한 칸짜리 작은 집이 나을 것이다. 잠깐 불편하더라도 조그만 방 한두 개 정도는 어렵잖게 증축할 수 있을 것이다.

한동안 몇 군데의 장소를 떠올린 끝에 해답이 나왔다.

"거기 어때요? 작년에 산지기 루가스가 지어둔 집. 애초에 여름 별장으로 만든거라 너무 크지도 않고 괜찮지 않을까요? 정작 여름이면 낚시한다고 개울가에 천막치고 살던데."

"참, 그랬지. 본인도 지어둔 게 아까워서 청소만 하지 별로 쓰진 못한다고 했던가. 근데 그 집은 계곡 깊이 있지 않은가? 밤에 산짐승이 내려올지도 모르는데?"

"그거라면 괜찮을 것 같아요."

아첼이 고개를 끄덕이며 활을 가리켰다.

사실 마을 한가운데보다는 조금 외진 곳이 좋았다.

티엘에게 활과 아스트라를 가르치려면 넓은 공간이 필요하고, 혹시 마력을 쓸 일이 있다면 되도록 사람이 휘말리지 않을 장소를 찾는 것이 편하다.

티엘이 마을 사람들과 좀 더 살갑게 지내는 것도 좋겠지만 이제 막 마력을 다루기 시작한 초보자라 걱정되는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왕 가르치는 것, 최대한 철저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흠흠, 그렇게 말해준다면야 나야 고맙네만."

아첼은 밝게 웃었다. 칼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맑고 시원한 웃음이었다.

"정말 괜찮아요. 아참, 루가스라는 분도 한번 찾아가 봐야겠죠? 안내해 주실래요?"

"아, 네! 그······저,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아첼. 그리고 이쪽은 티엘이에요. 칼이라고 불러도 돼나요?"

"물론입니다!"

칼은 붉은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얼굴을 붉힌 채 아첼이 내민 손을 마주잡았다. 등 뒤에서 마르파 노인과 티엘이 낄낄 웃는 것은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숫기 많은 노총각은 고맙게도 산지기의 집까지 친절한 안내를 제공했다.

그 와중에도 마을의 여러 가지 일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것도 두 사람에겐 꽤나 유용했다.

칼의 중재가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새로운 이웃에게 호의를 품은 것일까.

산지기 루가스는 아첼의 생각보다 훨씬 헐값으로 집을 넘겨주었다.

아첼은 해맑게 웃으며 산지기에게서 멋진 모자를 하나 사 칼에게 선물해주었다. 칼의 얼굴이 다시한번 벌겋게 달아오른 것은 두말 할 필요 없을것이다.

그렇게 삼십 분 뒤, 세 사람은 마을에서 산중의 빈 집에 도착했다.

손목 정도 굵기의 소나무 막대를 골조로 삼고 소나무 판자를 여러 겹 붙여 벽을 만든 오두막이었다.

나무집이라는 이야기에 통나무 벽을 떠올렸던 티엘은 조금 신기하게 느껴졌는지 손마디로 벽을 톡톡 두드려보았다.

얇은 판자로 엮었다지만 송진으로 튼튼하게 붙여놓아 제법 묵직한 울림이 들렸다.

층층이 쌓여진 판자 덕에 단열도 문제 없어보였다.

내부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부엌이 조금 좁긴 했지만, 침대 하나만 더 들여놓으면 충분히 두 사람 살기엔 넉넉했다.

조만간 벽을 세워서 개인공간만 확보해주면 더 걱정할 것도 없었다.

얇은 벽도, 나중에라도 통나무를 덧대 보강하면 충분히 쓸만한 집이 되어줄 것이다.

"이 정도면 딱 마음에 드네요. 고마워요."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칼은 쭈뼛쭈뼛 아첼에게 물어보았다. 아첼이 원한 것이긴 했지만, 마을로부터 삼십 분 거리나 되는 외딴 섬 같은 위치라 상당히 위험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괜찮다니까요."

아첼은 송진이 약간 엉겨붙은 소나무 가지 하나를 집어들고 가볍게 손가락을 딱 튕겼다.

파악!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훌륭한 횃불이 만들어졌다.

발화 주문은 아니지만, 단순히 빛을 밝혀 횃불을 만드는 것 정도는 아첼이라도 가능하다.

그러나 칼은 마법 자체가 꽤나 생소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거의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놀란 듯 했다.

"우왓! 어, 어떻게 한 겁니까?"

"마법, 쓸 줄 알아서요. 산짐승도 문제 없다는거, 이제 알겠죠?"

"그거 저도 배울 수 있을까요? 거 참 편리해보이는데."

아첼은 생글생글 웃기만 했다.

촌장의 말처럼 흑마법사를 자연스레 받아들일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마법사라는 이름이 '무섭고 대단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있으면 편리한 사람' 정도인 것은 알 것 같았다.

칼은 머쓱해져서는 횃불을 받아들었다.

그는 잘 자라는 인사가 꽤나 거창하고 장황하게 건네진 뒤에야 어슬렁거리며 마을쪽으로 내려갔다.

아첼은 경쾌하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티엘과 함께 집 뒤쪽으로 돌아갔다.

화장실과 욕실은 집 바로 뒤로 독립된 한 칸짜리 작은 건물에 있었다.

물이 새거나 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부엌에는 꽤 공들여서 만들어둔 빗물 저장 장치가 있었는데, 열어보니 깨끗한 물이 반 조금 못되게 차 있었다.

꼼꼼하게 관리한 흔적이 진하게 묻어나는 집이었다.

"음······. 화장실은 따로 떨어져있는게 조금 슬플지도."

"왜?"

"우리 둘 밖에 더 쓰니? 사람 부르기는 좀 그렇고 우리가 직접 치워야지."

"그, 그런가?"

나중에 텃밭이라도 가꿔야 할 필요가 생긴 것 같다.

"이건 다 장작으로 가져다놓은건가······. 하긴, 목욕물도 데우려면 제법 많이 필요하겠네."

루가스라는 사람이 얼마나 꼼꼼했는지, 집 뒤에는 잘 마른 장작도 상당히 쌓여있었다.

바싹 마른 장작 중에서 위쪽에 쌓인 것들은 은은한 송진 냄새가 감돌고 있었다.

소나무는 화력은 좋지만 그을음이 심하고 불똥이 자주 튄다.

그래서인지 소나무 장작은 제법 조그만 조각들이었다. 아예 불쏘시개로 쓰기 위해 마련해둔 것으로 보였다. 더불어 이슬을 맞더라도 송진 덕분에 많이 젖는 일도 없을테고.

아첼은 루가스에 대한 평가를 좀 더 높여두기로 했다.

물은 계곡 틈에서 졸졸 새어나오는 것을 받아두는 것인지, 바위틈에 적당히 물이 고일만한 통을 가져다 둔 것이 보였다.

낮은 통 몇 개를 계단식으로 두어 물이 계속 흐르도록 해 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마을 입구에서 잠시 두 사람을 들뜨게 만들었던 히니에 꽃은 이 곳에도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여러모로 가슴이 흐뭇해지는, 따뜻한 집이다.

"일단 오늘은 푹 쉴까? 목욕물 받아둘테니까 먼저 씻으렴. 오래간만에 지붕 밑에서 늘어지게 한 번 자보자."

라티앙을 떠난 이후로 제대로 된 목욕은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아첼은 자기가 불을 봐주겠다며 기어이 티엘을 먼저 욕실에 집어넣었다.

그동안 티엘을 지키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했을 아첼이기에 먼저 들어가는 것을 극구 사양했던 티엘이었지만, 정작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니 쉽게 일어설 수가 없게 되었다.

이대로 앉아있고 싶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다행히도 아직은 양심의 무게가 더 무거웠다.

재빨리 몸을 씻은 티엘은 발그스름하게 달아오른 뺨을 문지르며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약속과는 달리, 아첼은 욕실에 들어갈 수 없는 상태였다.

불편하게 의자 두 개를 붙여 몸을 기댄 아첼은 담요를 몸에 감은 채 세상 모르게 잠들어있었다.

"······하다못해 침대에서 자지."

아첼을 깨울까?

하지만 아직 해도 떨어지지 않았는데 금새 곯아떨어질만큼 피곤했던 아첼을 도로 깨우는 것도 미안했다.

가까이서 본 아첼의 얼굴은 상당히 수척해져있었다.

피부도 거칠고 안색도 조금 안좋았다.

잠시 아첼의 자는 얼굴을 바라보던 티엘은 잠시 밖으로 나가더니, 따뜻한 물 조금과 깨끗한 수건을 가져왔다.

온수에 수건을 적셔 아첼의 얼굴을 닦아주고, 채 벗지 못한 신발도 벗긴 뒤 끙끙대며 침대로까지 옮겼다.

얼마나 피곤했던지 그 난리를 치는 동안에도 아첼은 눈을 뜨지 않았다.

의자 하나를 가져와 침대 가까이 앉은 티엘은 조금 전 아첼이 그랬듯, 모포를 몸에 두른 채 가만히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곤히 잠든 두 자매의 숨소리가 평화로운 이중주를 울리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마력은 질과 양, 두 개의 단위를 봅니다.

마력량은 시안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작중에서는 별로 중요치는 않을거에요.

질, 즉 순도는 1선부터 8선까지. 다만 계단식이 아니라 스펙트럼 형식이라, 7선 초입과 7선 후반은 꽤 차이가 크죠. 8선부터는 더이상 인간이 계측이 불가능한 농도.

마력 순도가 높을수록 주문 발동의 난이도가 낮아지고 위력이 증가합니다. 반대로 순도가 낮으면 더 많은 마력을 요구하거나 아예 발동이 안되기도 하지요.

대충 한 단계를 너머갈 때마다 위력 가중치는 2배씩 제곱, 마력 효율은 3배씩 제곱되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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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장-막간幕間(1) 19.07.03 208 8 30쪽
6 1장 - 초혼招魂(5) 19.07.03 218 9 28쪽
5 1장 - 초혼招魂(4) +2 19.07.02 288 10 35쪽
4 1장 - 초혼招魂(3) +2 19.07.01 383 10 40쪽
3 1장 - 초혼招魂(2) +2 19.07.01 525 17 27쪽
2 1장 - 초혼招魂(1) +8 19.07.01 1,594 14 31쪽
1 +8 19.07.01 1,572 17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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