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Myom 님의 서재입니다.

라이트 포밍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Myom
작품등록일 :
2023.07.10 21:13
최근연재일 :
2024.01.07 21:21
연재수 :
182 회
조회수 :
11,802
추천수 :
301
글자수 :
955,407

작성
23.12.29 21:59
조회
14
추천
1
글자
12쪽

헬븐(2)

DUMMY

Episode 173 - 메모리즈



백조전대 회의실.

공중 범선 메부리코에서 헬 파이브와의 전투 끝에 승리한 백조 원정대.

그리고 그 일이 있은지 일주일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다.

전투에 참여한 원정대들과 로자리아, 제인 파스티비아가 함께였다.

그들은 윤 설이 들고 있는 메모리칩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적만이 흐르는 회의실 내부에서 로자리아가 입을 열었다.

"그게 그 토르메라는 녀석이 말한 메모리칩이야?"

윤 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손에 꽉 쥐고 있는 것을 보니 확실한 것 같아요."

"음......"


매우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것이 담겨 있기에 다른 단원들의 눈을 피해서 메모리칩을 만들었던 걸까.

"그래서 메모리칩이 있다는 건 둘째 치고, 어떻게 실행하는지 들은 것은 있어?"

그러고보니 그 부분에서 들은 것은 없었다.


윤 설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어, 없는데......"

"흠, 어디 봐. 내가 한 번 확인해볼게."

"네, 여기요."

윤 설이 로자리아에게 메모리칩을 건넸다.

푸른색의 표면이지만 딱히 다른 점은 없는 것 같았다.


"곤란한데, 뭐가 뭔지 알아야 작동을 시키든지 할 것 아니......"

피융-!!

"어, 어?!"

허공에 초록빛이 쏘아지더니 곧 빔 프로젝트 현상처럼 스크린이 나타났다.

모두가 놀란 듯 리액션을 펼쳤다.


"뭐야, 어떻게 작동시킨 거에요?"

로자리아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나, 나도 몰라? 어쩌다 보니......, 아."

유난히 까끌까끌한 부분이 만져져 돌려보니 푸른색의 겉표면 사이에 아주 작은 붉은색의 버튼이 보였다.

"이게 있었구나, 왜 이 티나는 버튼을 못 본 거지?"


"관찰력이 부족하니 그렇지."

제인이 옆에서 딴지를 걸었다.

로자리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주먹을 들어올렸다.

"제인? 방금 뭐라고 했어?"

뜨거운 열기가 회의실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녀의 모습을 보자 제인이 등을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오, 저걸 그냥.'

"저기 좀 봐요."

모두의 시선이 초록색의 거대스크린으로 맞춰졌다.

"저게 뭐야?"

"글 아니야?"


[ 세우론력 807년경 생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에는.

주변으로 흩뿌려지는 먼지들, 폭음과 충격적으로 살인적인 풍경 뿐.

나는 그런 곳에서 다시 눈을 떴다.

무엇이 존재하는지도, 무엇이 나를 끌어내리는지도 모른 채, 나는 그런 끔찍한 곳을 계속해서 걸었다. ]


"일, 기장인가?"

"그런 것 같은데요?"

무엇을 위해 써놓은 일기장인지 몰라도 끔찍한 내용임은 알 수 있었다.

전쟁을 기록해둔 것 같았다.

"끔찍하긴 하네요, 전쟁의 기억을 기록해두다니 생각하는 것만 하더라도 엄청난 스트레스가 올 것 같은데."


[ 세우론력 807년경 구월.

떠돌고 있었다, 전쟁 고아처럼.

부모님과 여동생을 잃은 지 이제 어언 석 달이 넘었다.

하지만 아직도 선명했다.

이 메마른 도시 속에서 내 옆에 다시 나타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왜일까?

환각제라도 먹은 듯 그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


[ 세우론력 808년경 미월.

이제 전쟁이 끝난지 1년이 좀 안 되었다.

나는 닥치는 대로 사냥을 하거나 굶주림을 움켜잡으며 살아남았다.

후폭풍이란 이런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웠다.

이제는 육체도 점점 한계로 넘어갔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사흘? 나흘?

시간이 어찌 됐건 죽음이라는 상황이 내 눈앞으로 다가온 것은 확실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살려달라는 소리를 치고는 한다.

그러나 내 옆에 존재하는 것들은 널브러진 시체들과 그 시체를 파먹는 구더기들 뿐.


구원해줄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당장이라도 자리에 누워 눈을 감고 싶었다.

삶을 포기하고 천당으로 가 가족들과 또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자해했다.

그것만이 내 고통을 조금 줄여줄 수 있는 도피처였다. ]


참담했다.

회의실에서는 모두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토르메가 쓴 글 만으로도 참혹함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혹독한 곳에서 잘도 살아 남았네요."

"의지가 대단해."


마치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를 보는 것처럼, 모두가 토르메의 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현실감이 느껴지는 문장들이 눈에 쏙쏙 들어왔다.


[ 세우론력 808년경 생월.

그가 나에게 나타난 것은 나의 생명줄이 거의 꺼져가기 직전이었다.

손가락 하나 제대로 까딱할 힘도 없었던.

이제 사신마저도 눈에 들어올 정도의 골든 타임.

백발의 남자는 웃으며 쓰러진 나를 노려보았다.

관찰하는 듯했다.


그러고는 귓가에 들리던 말들.

"거의 꺼져가는데 그래도 아직 명줄은 붙잡고 있구나."

선명하게 들렸다.

처음에는 죽어가는 나를 조롱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 뒤에 들리는 말은 나를 충격에 빠트렸다.

"너를 살려줄 수 있다, 전쟁으로 인해 죽은 네 부모도, 여동생도."


그게 가능한 것인지는 불분명했으나 달콤하고도 유혹적인 말이었다.

나는 당장이라도 입을 움직여 제발 그렇게 해달라고 빌고 싶었다.

그러나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는 내가 입을 움직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듣고만 있어라, 아이야. 방금 내가 한 말을 분명히 들었겠지. 나를 따라오너라, 그렇다면 네가 원하는 바를 이뤄주겠다."


조금씩, 천천히 눈알을 굴렸다.

흐릿해진 초점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자 그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리븐 렉, 헬 파이브라는 지안 가문의 산하다. 지금부터 남은 여생을 나에게 바친다면 아까 말했듯 원하는 바를 이뤄주겠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죽고 싶지 않았으니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다시 가족들의 얼굴을 보고 싶었으니까.

리븐 렉이라는 그 남자는 천천히 내 손가락을 잡으며 말했다.

"혹시 내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있다면 있는 힘을 다해 손가락을 까딱거려라, 그렇다면 너에게 새 생명을 건네주마."


나는 얼마 남지도 않은 체력을 끌어모아 리븐이 부드럽게 잡고 있는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


[ 세우론력 808년 조월.

눈을 뜬 곳은 이때까지 봐왔던 곳과는 사뭇 다른 곳이었다.

푸른 액체가 가득 채워진 케이스 안에 들어있는 나.

그리고 그런 나를 지켜보는 리븐 렉, 그 옆에는 지안 가문의 가주, 레블 지안이었다.

두 사람은 내가 의식을 되찾자 흡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스 밖에서 두 사람이 나누고 있는 대화가 들려왔다.

"깨어난 것 같군, 상태 한 번 체크해 봐."

지안이 말하자 리븐이 곧장 바로 아래에 위치한 사각형의 케이스를 열었다.

"맥박도, 심장 고동도 모두 정상입니다."

"좋아, 그럼 바로 시작하도록 해."


"따로 체크해 볼 것은 없으십니까?"

리븐의 물음에 지안이 고개를 저었다.

"없네, 이 상태라면 더 볼 것도 없어. 시간이 촉박하니 나흘 안에 그것들을 모두 끼워."

레블 지안은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걸어갔다.

"알겠습니다."


리븐은 케이스에 존재하는 버튼을 몇 번 두드렸다.

그리고는 내게 말했다.

"며칠을 잠들어 있었는지 모르겠군, 하지만 깨어나서 다행이야. 조금만 더 늦었다면 가주님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을 수도 있었거늘."

지이이이이이이잉-!

소름끼치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여기는 어디인지, 나는 지금 무슨 상태인지, 가족들은 무사한 것인지.

그러나 나의 입을 막고 있던 무언가는 더욱 심하게 내 입을 조여왔다.

조금의 뻥긋거림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지이이이이이이잉-!

리븐은 입꼬리를 올리며 사악한 웃음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지금부터 너의 몸을 개조할 것이다, 이번에 새로 개발한 사이보그 프로그램이 생명체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아볼 계획이니 말이야. 조금 따끔할 테니 잘 참아주길 바란다."

지이이이이이이잉-!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보이지도 않는 기계들이 내 몸을 감쌌다. ]


[ 세우론력 808년 조월.

이틀 정도가 지났을까.

내 몸이 이제는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실험용 케이스 안에 갇혀 있지만 이제는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그냥 빨리 이곳에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만이 반복될 뿐.


리븐이 연구실 안으로 들어와 하루에 세 번씩 나에게 말을 건넨다.

대화의 첫 시작은 항상 가족은 무사하다는 것.

그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모르지만 어찌 저찌 잘 살려낸 것 같았다.

안심이 되었다.

이제 곧 이곳에서 나가게 될 텐데 그렇다면 다시 웃는 얼굴로 가족을 만나볼 수 있는 것 아닌가?


끌어안고 싶었다.

그들을.

빨리 나를 구속하고 있는 이 족쇄를 벗어나 달려가고 싶었다.

리븐이 나를 언제 꺼내줄지는 모르겠지만 실험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했으니 길어도 이틀일 것이다.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렸다.


죽음에서 부활할 수도 있다는 계수의 힘에 감동까지 먹을 지경이었다.

나는 왼팔과 오른쪽 머리 부분, 하체 쪽에 사이보그 프로그램을 대량으로 장착했다.

굉장히 고통스럽고 어지럽고 두려웠지만 모든 것을 거의 끝내고 나니 후련했다.


이제 새 삶을 살 수 있다는 거니까.

죽음에서 벗어나 삶이라는 둥지 안에서 다시 꿈을 펼칠 수 있다는 거니까.

물론 리븐 렉에게 일생을 바쳐야 하는 것이 걸리긴 했지만 틈틈이 휴가도 준다고 약속해주었다.

그렇게 기다렸다.

이 실험용 케이스에서 나가는 날만을. ]


[ 세우론력 808년 조월.

나는 드디어 실험용 케이스를 벗어났다.

그리고 우뚝 선 채 리븐의 앞에 섰다.

리븐은 거의 반 사이보그 형체가 된 나를 보며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냐, 몸은 좀 어떻냐, 움직임이 가벼워진 것 같지 않냐는 말만 반복할 뿐, 가족을 보고 싶냐는 말은 꺼내주지 않았다.


나는 그의 물음에 모든 것을 대답한 뒤에 물었다.

"가족은 어디에 있습니까?"

리븐은 잠시 입을 다물고 눈알을 굴리다가 말해주었다.

"가족을 보고 싶나? 그렇다면 나를 따라와라."

그 말을 어찌나 기다렸는지, 나는 곧장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은 뒤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계속했다.


리븐은 그 장면이 꽤나 부끄러웠는지 나의 어깨를 잡은 뒤 일으켰다.

그리고는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연구실을 나가고 통로를 한 바퀴 크게 돌았다.

내부는 정말 넓었고, 기계적이었다.

리븐에게 듣기로는 이곳이 공중을 떠다니는 비행선과 같다고 했다.

다른 이들이 부르기에는 공중 범선 굽어가는 메부리코라고.


사실 그런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어찌 됐든 나는 가족을 만나기만 하면 되니까.

그렇게 코너를 몇 번 더 돌고 난 뒤에 어떤 문 앞에 섰다.

철문이었다.

리븐은 이 안에 나의 가족들이 있다고 했다.

나는 문을 있는 힘껏 열었다.


어두운 내부를 향해 스위치를 켜자 방 안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리고 그 날, 내 세상은 무너졌다.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라이트 포밍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휴재 공지 +1 23.09.06 119 0 -
182 헬븐(10) 24.01.07 10 1 11쪽
181 헬븐(9) 24.01.05 8 1 11쪽
180 헬븐(8) 24.01.04 8 1 11쪽
179 헬븐(7) 24.01.03 9 1 11쪽
178 헬븐(6) 24.01.02 11 1 11쪽
177 헬븐(5) 23.12.31 13 1 11쪽
176 헬븐(4) 23.12.30 13 1 11쪽
175 헬븐(3) 23.12.30 12 1 11쪽
» 헬븐(2) 23.12.29 15 1 12쪽
173 헬븐(1) 23.12.29 15 1 12쪽
172 레퀴엠(172) 23.12.28 13 1 11쪽
171 레퀴엠(171) 23.12.27 16 1 11쪽
170 레퀴엠(170) 23.12.26 15 1 11쪽
169 레퀴엠(169) 23.12.25 13 1 12쪽
168 레퀴엠(168) 23.12.24 17 1 11쪽
167 레퀴엠(167) 23.12.23 18 1 11쪽
166 레퀴엠(166) 23.12.23 15 1 11쪽
165 레퀴엠(165) 23.12.22 16 1 12쪽
164 레퀴엠(164) 23.12.22 19 1 12쪽
163 레퀴엠(163) 23.12.21 18 1 12쪽
162 레퀴엠(162) 23.12.20 17 1 11쪽
161 레퀴엠(161) 23.12.19 22 1 12쪽
160 레퀴엠(160) 23.12.18 21 1 11쪽
159 레퀴엠(159) 23.12.17 19 1 12쪽
158 레퀴엠(158) 23.12.16 18 1 12쪽
157 레퀴엠(157) 23.12.15 18 1 12쪽
156 레퀴엠(156) 23.12.15 19 1 12쪽
155 레퀴엠(155) 23.12.14 18 1 12쪽
154 레퀴엠(154) 23.12.14 18 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