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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m 님의 서재입니다.

라이트 포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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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m
작품등록일 :
2023.07.10 21:13
최근연재일 :
2024.01.07 21:21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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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55,407

작성
23.12.24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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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168)

DUMMY

Episode 167 - 최종장 13



기이한 소음, 비명, 통증, 환각.

그런 것들이 느껴지고 보였다.

그리고 주변을 뒤덮은 완전한 어둠.

이것들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는 알고 있었다.

잡아 먹혔다.

리븐의 암계에.


정혁은 무의 공간 속에서 눈을 떴다.

이미 단멸기를 펼쳐 한계점을 넘은 몸뚱아리.

어지러움과 동시에 붕괴 되어가는 정신.

정말이지 고통스러웠다.

의식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진작에 눈을 감았으리라.


"아, 싫어."

정혁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제는 전투니, 계수니, 그런 것들이 진절머리가 났다.

그냥 이대로 바닥에 드러누워 끝맺음을 맺고 싶다는 생각 뿐.

"어이."

누군가가 드러누워 있는 정혁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익숙한 목소리.

사실 오래 본 것도 아니었지만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토르메냐?"

"......, 그래."

정혁은 눈을 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위를 응시했다.

"설이 누나는 구했고?"

"그래, 구했다."


정혁이 입꼬리를 올렸다.

"하, 다행이네. 진짜 다행이야."

"안 일어날 거냐?"

토르메의 말에도 정혁은 아무런 대답 없이 눈을 감았다.

"여긴 삶과 죽음의 경계다, 최정혁. 만약 그대로 네가 눈을 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죽음의 길을 걷게 돼."


정혁은 천천히 눈을 뜨며 이마에 손을 얹었다.

"죽음이라, 그럼 완전히 끝나는 거야?"

"......, 그래. 그러니까 일어나라."

정혁은 그 말을 듣고는 몸을 일으켰다.

토르메의 형체는 어둠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의 울림으로 대략적인 위치를 예측할 수는 있었다.


"너는 어떻게 할 건데, 같이 나가야 할 거 아니야?"

"나는 이미 너무 망가져 버렸어, 만약 이대로 몸을 일으켜 나간다 해도 더 이상 제대로 된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거다."

정혁이 바닥에 손을 더듬으며 토르메의 형체를 만지려 했다.

"그래도 나가야지, 아직 네가 치뤄야할 죗값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대로 죽게 놔둔다고?"


"......, 이제는 그냥 편히 쉬고 싶어. 그리고 내 사람들을 만나러 가야지."

"그 사람들은 헬 파이브 단원들?"

토르메는 입술을 꽉 깨물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리에서 기억의 편린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니, 가족들이야."


"아......"

괜히 물어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제넘는 말일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먼저 떠난 가족을 위해서라도 악착같이 더 살아야지."

토르메는 정혁의 말을 듣고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크흡, 입만 살아서는."

아무 미련이 없는 듯한 말투.


"이제 됐어, 그냥 마음 편히 가고싶다."

이제 떠난다는 이를 억지로라도 붙잡는다면 오히려 실례가 될 수도 있었다.

정혁은 이제 그 대화를 이어나가지 않았다.

"윤 설이라는 아이가 내 메모리칩을 가지고 있다."

"메모리칩?"


"그래, 원래는 직접 전해주려 했는데 그 순간 정신이 끊어져 버려서 말을 못했지. 시간이 괜찮다면 그 메모리칩을 꼭 봐줬으면 해."

"......."

정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희에게 몹쓸 짓을 했던 내가 이런 부탁을 하는 게 굉장히 아니꼽겠지만 이건 내 마지막 소원이다."


"알았어."

정혁이 무릎을 펼쳐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드득 거리는 소리와 함께 통증이 느껴졌다.

"어디로 가야 하는 건데?"

"어디든 좋다, 그냥 걷기만 하면 돼. 그러면 빛이 보일 거야."

그 빛이 바로 삶을 향해 나아가는 길.


정혁은 아무 말 없이 몇 초 동안 암흑을 응시하다가 토르메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숙였다.

정중한 마지막 인사와 함께 그는 보이지 않는 암흑의 길을 천천히 걸었다.

토르메는 입꼬리를 올리며 정혁의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새X, 인사를 할거면 말로 해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래도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토르메는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이제 눈을 감고 몸을 축 늘어트렸다.


저벅저벅 걸음의 소리만이 귀에 들려왔다.

정혁은 어디에 생성될지도 모르는 빛을 향해 걸어갔다.

"아, 뭐야? 바로 보이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토르메가 말했던 하얀빛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눈을 감았다.

마지막으로 토르메에 대한 묵념이었다.


정혁은 천천히 빛을 향해 몸을 던졌다.

차갑지고, 따뜻하지도 않았지만 몸의 온도가 높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왠지 죽음에서 해방되었다는 기분이 절로 들었다.


------


[ 계수를 더 밀어 넣어봐!! ]

화람의 목소리.

[ 지금 하고 있는데 더 이상은 무리에요. ]

하나의 목소리.

[ 저도 같이 해볼게요, 잠시만 옆으로. ]

이번에는 도민호.


[ 힘이 필요하면 말해라, 나도 전력으로 쏟아 부을테니. ]

하진명.

모두의 대화가 귀에 울려퍼졌다.

정혁은 천천히 눈을 뜨며 흐릿한 초점을 바로잡았다.

[ 깨, 깨어났다!! ]

화람의 외침이 들려왔다.


"으, 으으으으......!"

"정혁아, 최정혁!!!"

누군가 자신의 뺨을 거세게 가격하고 있었다.

통증이 느껴지자 정혁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 으아아아, 그, 그만 때려......!"

철썩-! 철썩-!


"정혁아, 눈 좀 떠봐!!!"

아놔, 이 양반이 진짜.

뺨이 붉게 달아오르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혁은 상체를 벌떡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으아아아아, 그만 좀 때려!!!"

화람은 화들짝 놀라는 척을 하며 뒤로 몸을 뺐다.


"앗, 일어났네? 다행이다!"

발랄하게 미소짓고 있는 그 표정 뒤에 늑대의 가면이 씌워져 있었다.

진명이 정혁의 손을 잡으며 맥박에 손가락을 올렸다.

"잠시 좀 상태를 체크할게."

"아, 넵! 감사합니다."

진명은 눈을 감고 천천히 계수의 흐름과 맥박의 진동을 느꼈다.


"음, 다행히 별 문제는 없어 보이는군. 안 그래도 우리가 열심히 회복을 밀어넣고 있었거든."

"아, 정말 감사합니다."

여전히 통증과 두통이 밀려왔지만 아까의 상태보다는 훨씬 나은 듯했다.

"리븐 렉은......"

"거의 죽기 직전의 상태라 괜찮아."


"확인해봐야겠어요."

정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리븐이 쓰러져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백발의 머리를 축 늘어트린 채, 리븐은 입으로 혈흔을 내뱉고 있었다.

눈으로만 보더라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어 보였다.


생명의 줄이 꺼져가는 눈빛과 옅어지는 암계.

그것만으로도 지금 리븐의 상태를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리븐이 정혁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머리를 움직일 힘도 부족한지 그는 검은 동공을 천천히 옮길 뿐이었다.


"굴욕적이군, 쿨럭."

말 한마디를 뱉을 때마다 혈흔이 폭포수처럼 흘러나왔다.

이제 얼마나 남았을까, 1분? 2분?

그 이상도 버티지 못할 수 있다.

"천하의 헬 파이브가 인간들에게 무너지다니."

"그것 뿐이야?"


"뭐라고?"

"그것 뿐이냐고,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무참히 없애고, 상처받은 이들이 이렇게 늘어났는데 그저 패배의 굴욕만을 느끼는 거야?"

정혁의 싸늘한 시선이 보였지만 리븐은 전혀 자책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그저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낄 뿐이다."


정혁이 아랫 입술을 꽉 깨물었다.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집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느끼지 마라. 어차피 그럴 거라 바라지도 않았어."

"가짓말이군."

정혁의 몸이 움찔거렸다.

그는 두 주먹에 힘을 꽉 쥐며 리븐에게 말했다.


"그 사과가 그렇게 어려운 건가? 사실 사과를 한다고 해서 받아줄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이건 의외인데."

리븐은 눈을 감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뭐, 목숨이라도 구걸할 줄 알았나 보지?"

"만약 목숨을 구걸했다 해도, 난 당신을 살려줄 생각이 없었어."


리븐은 허탈하게 옅은 웃음을 뱉었다.

"크크크, 그래. 그래야 영웅이지......, 그러니까 빨리 구하러 가라."

리븐의 형체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발 밑에서부터 하체와 상체가 가루처럼 흩날리며 그의 생명줄이 끊어졌다.

정혁은 리븐이 사라져버린 바닥을 발로 밟으며 분노했다.


쾅- 콰광- 쾅-!!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당장이라도 폭주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누군가 정혁의 손을 잡고 말렸다.

"최정혁, 진정해."

화람이었다.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얼굴로 정혁에게 고개를 젓고 있었다.


"이제 끝났어."

"하아, 하아, 하아......, 끝, 이에요......"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정혁이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겨있다가 눈을 부릅 뜨며 말했다.

"서, 설이 누나는요?!"

일행들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 여긴 없는 것 같은......"

쿠구구구구구구구-!!

순간 범체가 완전히 기울어지며 서서히 빠른 속도로 낙하되기 시작했다.

화람이 자세를 낮추며 외쳤다.

"젠장, 시간이 없어!! 이제 완전히 붕괴되어 버려서 위험해!!"


정혁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는 빠르게 계수를 모아 바닥을 터트렸다.

콰과과과광-!!

진명은 곧장 뛰어내리려는 정혁의 어깨를 잡으며 소리쳤다.

"어이, 최정혁! 지금 뭐하려는 거냐?!"

"뭘 뭐해요!! 설이 누나 찾으러 가야지!!"


"지금 상황이......!"

콰과과과광-!

범체의 여기저기가 폭발하는 소음이 들렸다.

3분 4초......, 3분 3초......, 3분 2초.......

정혁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무언가를 화람에게로 건넸다.

"2분 안에 내가 안오면 이걸 이용해서 빠져나가요!!"

폭발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 의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주변의 손을 뿌리치며 범체의 안으로 들어갔다.

"야, 최정혁!!!!!"

화람의 외침을 애써 무시하며 정혁은 캄캄한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화람은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인피니티 텔레포트 아이템.


그녀는 이를 꽉 깨물었다.

'젠장, 이 바보같은 새X!!.'

이제 완전한 추락까지 얼마 남지도 않은 시점이었는데 그 시간 안에 윤 설을 찾아 데려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미 시도된 이상 별다른 방법은 없었다.

'이제 하는 수 없어, 믿어보는 수밖에.'


화람은 흔들리는 범체의 바닥을 꽉 부여잡으며 일행들에게 말했다.

"모두 잘 들어!!! 이 범선이 무너지기 전까지, 최정혁과 윤 설이 돌아오기 전까지 꼭 버티는 거야!! 알아 들어?!!"

그녀의 외침이 닿았는지 백조 원정대들의 기합이 귀에 들어왔다.

""네, 알겠습니다!!!!""


쿠구구구구구구구-!!!

아주 미세했지만 점점 더 빠르게 낙하되고 있는 범선.

그리고 미로같은 범선의 내부.

많은 곳이 파손 되었다고 해도 그 속은 매우 넓었다.

이제는 신께 기도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최정혁, 윤 설. 안 돌아오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그녀는 눈을 질끈 감으며 보이지도 않는 신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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