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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m
작품등록일 :
2023.07.10 21:13
최근연재일 :
2024.01.07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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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5,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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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8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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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172)

DUMMY

Episode 171 - 에필로그



암흑의 시야 속에서 누군가가 걷고 있다.

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채로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는 자.

"하아아아암,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나오는 거야?'

제인 파스티비아였다.

그녀는 입가에 손을 얹으며 여유롭게 하품했다.


이미 어둠 속을 걸은지 10분이 넘게 지났다.

제인의 평소 성격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을 시간이었다.

"에이, 한 번 만나기 더럽게 힘드시네. 무슨 연예인이라도 된다 이 말이에요?"

"연예인이라......"

그녀의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리자 제인은 깜짝 놀란 듯 발버둥쳤다.


"어우 씨, 깜짝이야!"

노란색의 머리칼을 찰랑거리는 남성.

윌이었다.

"제발 다가오기 전에 발소리라도 좀 내주면 안 돼요? 예전부터 그런 버릇이 있었더니 아직도 고쳐지지 않았네!"

윌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혀를 낼름 내밀었다.


"쩝, 그 반응이 재밌어서 계속하는 건데."

"뭐라는 거에요, 상대방은 놀라 죽을 것 같은데."

이런 어두운 공간 내에서 저런 소리소문 없는 기척이 들린다면 당연히 심장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제인의 일그러진 얼굴이 보이자 윌은 두 손을 내밀었다.


"아, 알았어, 알았어. 이제 이런 장난은 그만두도록 할게."

제인은 팔짱을 끼며 고개를 옆으로 휙 돌렸다.

"흥, 한 번만 더 그래 봐요."

사실 한 번 더 그런 짓거리를 한다고 해도 혼내거나 폭력을 가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윌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하하, 알았네, 알았어."

"그나저나......"

제인은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왜 이렇게 어두운 기류들만 뿌리고 계세요, 좀 밝은 곳에 있기도 하셔야지."

"원래라면 지금 네가 말했던 것처럼 밝아야 하는 게 정상이긴 하지만 명상을 할 때에는 어두운 게 더 좋아서 말이야."


"특이한 취향이시네요."

윌은 입꼬리를 올리며 손가락을 딱 쳤다.

순간 저 멀리 한 지점에서 빛이 솟아나더니 주변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눈이 부시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새하얀 공간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따뜻하고 정겨웠다.


"이러면 좀 어때?"

윌이 양팔을 벌리며 허리를 돌렸다.

뭐, 제인은 늘 보던 광경이었기에 딱히 별 신경을 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윌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서 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그는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래서."

윌은 손뼉을 쳤다.

"이곳에 온 이유가 무엇일까?"

본론으로 들어가는 대화의 첫 문장이었다.

"아, 뭐 별 건 없어요. 그냥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확인 한 번만 더 하고 싶어서."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으리라.

다른 사람의 눈은 속여도 윌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 말이었다.

윌은 연기를 시작했다.

그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 그건 좀 아쉬운데."


"돌아오실 생각은 아직 없는 거죠?"

제인이 나지막하게 말하자 윌은 고민하는 척 눈알을 위로 올렸다.

사실 그의 마음은 이미 확고했다.

"응, 그렇지. 너희에게는 참 미안한 말이지만 아직 시간이 남았어."

예상은 했었지만 예상과 본인의 입으로 직접 듣는 것은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제인은 있는 힘껏 서운한 감정을 표정으로 표출했다.

그러나 윌은 단호했다.

물론 그것이 제인에게는 가혹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대를 위해서는 소를 희생해야 하는 법.

이제 와서 결정을 바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제인은 고개를 푹 숙이며 굳었다.


"그럼 인사라도 한 번 와주세요."

얼굴이라도 한 번 비춘다면 반대파 이들에게 큰 힘이 될 것임은 분명했다.

그리고 윌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으니.

바로 로자리아였다.

"만약 그것도 안 된다면 로자리아에게 만이라도 들려요."


그러자 윌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내가 로자리아에게는 꼭 가도록 약속할게."

믿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의 부탁은 들어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정혁이에게 힘을 줬죠?"

훅 들어오는 질문에 윌이 동공을 올렸다.


"어, 정확하게 말하자면 힘을 줬다기 보다는 깨웠다는 표현이 가깝지."

"깨웠다고 하면, 체내에 잠들어 있는 힘이요?"

"그래."

윌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땠어요?"

이중적인 표현의 말이었지만 윌은 그 의도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잠재력에 대한 이야기겠지.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평범하지만 최정혁이 숨기고 있는 발톱은 너무 거대하고도 뾰족해."

윌이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정말 엄청나다는 뜻이다.

평소 표현이 서툴러 제대로 비유도 하지 못하는 양반이 이런 평가를 내리다니.

제인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인지는 대략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잖아요."

제인이 계속 캐묻자 윌은 하는 수 없이 말해주었다.

"나라는 물론이고, 더 나아가 두 개의 별에 대한 역사를 뒤바꿀 정도다."

"역사를 바꾼다고요?"

단어 선택만 보더라도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


"그래, 물론 역사를 뒤바꾼다고 해서 원래 기록된 역사까지 건드릴 수는 없겠지만."

당연했다.

그건 신의 영역이었으니까.

어디까지 인간이나 생명체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의 범위는 현재와 미래.

이미 기록된 과거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지금 잠재 되어있는 최정혁의 힘은 미래의 지구와 아펠리온의 역사를 바꿀 정도라는 거죠?"

"정확하게 이해했네."

정말 반대파들에게 꼭 필요한 중요한 열쇠의 역할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최정혁이라는 인간이 선함의 표본이라 다행이었다.


악랄함을 극도로 가지고 있는 자들은 오로지 자신의 입맛만을 생각하기에.

"꼭 고맙다고 전해줘."

윌이 제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누구한테 말이에요?"

"누구긴 누구야, 최정혁이지."


갑자기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달라니, 그게 무슨 뜻일까?

제인은 혀를 차며 그의 말에 고집을 부렸다.

"그렇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으먼 직접 하시면 되죠."

제인은 최대한 돌려서 말했다.

제발 얼굴 좀 비춰달라는 의미.


"로자리아를 봐달라는 부탁은 들어줄 수 있지만 최정혁은 이제 안 돼."

제인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다녔다.

"어째서요?"

"이미 그 아이의 머릿속을 너무 많이 침범했거든."

윌은 그렇게 말하면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쑥스럽거나 당황할 때만 나오는 그 웃음은 제인이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하, 도대체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그러나 분명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잖아?"


"중요한 거라니, 아!"

까맣게 잊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 났다.

"인간 세계에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잖니."

처벌을 받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러나 제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거짓이 아닌, 후회라고는 1도 보이지 않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흡족해하는 것 같은 얼굴.

제인은 한숨을 내쉬며 윌을 향해 올려다보았다.

"후, 이해해주세요. 어쩔 수 없었다고요."

제인이 인간들을 위해 사용한 마법의 수는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늑대전대에서의 축복과 포스 임펠트, 그리고 백조 원정대들을 범선에서 구출하기 위해 사용한 자체 텔레포트 마법까지.


이미 윌의 눈에 들어올 짓거리를 몇 번이나 지속해왔다.

제인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몸을 이리저리 돌렸지만 윌은 냉혹했다.

그 역시도 다른 누군가와 약속한 것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서라도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했다.

윌은 자신의 입을 떼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다.


그 벌을 받아들이기에는 제인의 마음이 굉장히 여렸기 때문에.

마치 입술 위에 무거운 1톤 바위가 올려져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윌은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계시는 내려졌어, 그래서 내가 너에게 전하건 전하지 않건 이 사실은 확정이야."

제인은 마음의 준비가 된 듯 눈을 감고 뒷짐을 졌다.


"저는 괜찮으니까 말씀해주세요."

정말 괜찮은 것일까.

윌은 심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말해줄게, 아펠리온 세계 8대 귀족 가문 파스티비아의 가주인 제인 파스티비아에게......"

슈우우우우우우우-.


주변에서 거대한 힘이 요동치며 곧 검붉은 계수 결정의 흐름이 눈에 들어왔다.

계수들은 공중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제인에게 다가가 그녀의 몸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리고 압박감을 가득 실은 채.

제인의 몸이 완전히 계수에 의해 감싸졌다.


답답한 감정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피부를 툭툭 건드리는 계수들의 감촉은 선명하게 느껴졌다.

윌은 그렇게 처벌에 대한 말을 이어갔다.

이윽고 제인의 몸에 검붉은 계수가 모조리 흡입되었다.

제인은 천천히 눈을 떴다.

아무런 변화도 없는 육체.


이제는 아까 느껴지던 압박감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두 사람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제인은 두 손을 펼치며 혹여나 몸에 변화가 있는지 확인했다.

"이제 끝났다, 처벌은 내려졌어. 아직은 아무 변화도 없지만 나중이 된다면 저절로 신호가 올 거다."


그 신호가 언제 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이라면 기겁을 했을 것이다.

물론 제인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경건히 받아들였지만.

윌은 제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평온한 표정이었다.


윌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뭐야, 왜 아무런 말이 없어? 괜찮은 거 맞아?"

그녀가 마지못해 고개를 아래 위로 흔들었다.

"네, 솔직히 처음 마법을 사용했을 때부터 각오하고 벌인 일이니까요."

"각오하고 했다라......"


윌에게는 정말 슬픈 말이었다.

그 역시도 제인을 굉장히 소중한 동료로써, 그리고 동생으로써 아꼈었다.

그런데 이런 일을 겪게 될 줄은 절대로 몰랐을 것이다.

대화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하자 제인은 당황해하며 눈알을 굴렸다.


"자, 그럼. 볼일도 다 끝났으니 이만 돌아가볼게요."

"아, 그래? 조금 더 있어도 나는 괜찮은데......"

제인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밝은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에이, 제가 또 어떻게 그럽니까? 하시는 일에 방해되지 않게 비켜드려야죠."

윌을 위한 조금의 배려였다.


그녀는 푸른빛의 포탈을 생성시킨 뒤 윌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럼 들어가볼게요, 이제 몇 개월 동안은 오지 않을 거에요. 그래야 당신이 더 빨리 돌아올 수 있을 테니까."

"서운한 걸? 그래도 한 번씩은 들러주는 게 어때?"

제인이 그 말을 듣자 혀를 낼름거렸다.

"어련하시겠어요, 그냥 복수니까 잠자코 받으세요."


"크크, 그래. 잘 가라, 몸조리 잘하고."

제인은 고개를 돌리며 자신의 몸을 푸른빛의 포탈에 집어넣었다.

잠시 스파크를 일으키던 포탈의 크기가 작아지더니 곧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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