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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킴 님의 서재입니다.

천재영화감독이 되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돌킴
작품등록일 :
2020.03.15 02:41
최근연재일 :
2020.04.1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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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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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참으로 알 수 없는 일(2)

시작합니다.




DUMMY

32화. 참으로 알 수 없는 일(2)





본격적인 리딩이 시작될수록 느낄 수 있었다.

서지원이 이 작품을 얼마나 열망하는지를.

얼마나 많이 작품을 읽고, 상상하고, 연구했는지를.

첫 리딩이었지만, 그녀는 전혀 긴장한 구석이 없다.

준비된 여배우의 당당함이 리딩에서도 드러났다.

서지원이 저렇게 실력 있는 배우였던가.

단지 tv스타에 지나지 않는다는 편견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었다.

딕션은 말할 것 없고, 감정도 풍부하고, 무엇보다 몰입감이 뛰어나다.


중간에 리딩을 끊기가 민망할 정도로 두 배우의 열연이 한창이다. 지난번 서지원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작품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하던 그녀가 이 영화에 모든 걸 바치겠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배우들은 오버를 잘 한다.

감정이 풍부하니 좋고 싫고의 표현이 일반인들보다 훨씬 뛰어나다.

단지 순간의 감정이었을 거라고 판단한 내가 단순했다.

서지원은 생각 이상으로 영민하고 진지한 배우였다.


놀라움은 또 있었는데, 찬영의 연기 또한 기대 이상이었다.

찬영은 다른 배역의 대사들까지도 통으로 외우고 있었다.

이 독한 녀석은 무식하게 책을 아예 전부 외워버렸다.

지금 이순간에도 책을 보지 않고 연기를 하고 있다.


처음 이찬영을 캐스팅 했을 때, 당연히 자신이 주인공이 될 거로 생각했었던 것처럼, 찬영은 이번에도 자기가 주인공이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저걸 뭐라고 해야 하나. 천진하다? 순진하다? 아니면 뻔뻔하다? 귀신의 도움을 받아 완벽하게 연기 테크닉을 익힌 이찬영은 자신감에 차올라 있었다.

물이 올라도 너무 빨리 올랐다.

눈앞의 배우가 누구든 간에, 연기로는 밀리지 않으려는 고집이 드러났다.

이찬영은 이런 점이 좋았다. 속이 훤히 드러나서 참 알기 쉬운 아이였다.


녀석은 물 만난 고기처럼 배역을 가지고 놀았다.

여자들을 유혹하고 태연하게 살인을 하는 씬에서는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내가 생각했던 주인공의 모습보다 더 입체적이었다.

찬영은 머리가 좋았다. 배역을 분석하는 능력에서는 최민호 선배를 떠오르게 했다.


“잠깐, 쉬었다 가시죠.”


리딩을 끝내려면 2시간 이상이 걸린다.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감독인 내가 지칠 것 같다.


“선배님, 저 어땠어요?”


찬영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서지원은 잠시 자리를 비웠다.


“너, 아예 책을 다 외운 거야?”


생각 같아서는 마구 칭찬 해주고 싶었지만, 서지원을 대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책이 너무 재밌어서 절로 외워지던데요. 선배, 이거 몰입감 쩔어요. 지금도 동대문 어디에선가 살인범이 돌아다닐 것 같아 소름 돋아요. 혹시, 이거 어떤 사건을 모티브로 한 거예요? 실제 이런 사건이 있었어요? 시나리오 쓸 때, 참고한 사건이 있어요?”


이 시대에 회귀하면서 유행시킨 말, 쩐다라는 말을 찬영이 따라 했다. 찬영은 흥분감에 싸여 작품에 대해 이것저것 캐물었다.


“이것저것 짬뽕물이야. 굳이 말하자면, 80년대부터 유행한 인신매매가 힌트가 됐지. 다른 점은 집단이 여성을 납치하는 게 아니라, 개인이 욕망을 위해 납치 살인을 한다는 점이지.”

“백주 대낮에 서울 한복판에서 납치가 일어난다는 설정이 소름 돋았어요. 주인공은 지금껏 한국영화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캐릭터라, 정말 흥미로워요.”


조금 전만해도 천연덕스럽게 살인범을 연기하던 이찬영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배역에서 빠져나와 소감을 말했다.


하긴, 90년대 영화판에는 연쇄 살인범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전무하다 시피했다. 이 영화는 후에 실제 일어날 사건에 대한 암시였는데, 그건 내가 미래 인간이라서 일어난 우연에 불과하다.

어쩌면 이 영화는 후에 일어날 신당동 연쇄 살인사건을 예견한 영화로 재평가될지도 모른다. 미래에도 미제 사건으로 남은 엽기 토끼 살인사건. 영화감독으로서 꼭 그 사건을 다루고 싶었다.


“다 좋은데 찬영아.”

“네. 선배님.”

“너, 서지원씨한테 무슨 불만 있냐. 너답지 않게 사람을 경계하고 그래.”


찝찝한 건 못 참는다.

녀석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런 건 아닌데요...그냥 배우가 너무 눈에 띄면 작품에 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요즘 밖에만 나가면 서지원 얘기뿐이에요. 선배 작품도 작품으로 주목받는 것보다, 서지원 연관 인물로 화제가 되는 거 같아서 좀...싫어요. 개인적인 감정이 있는 건 아니고요.”

“그건 어쩔 수 없어. 너한테 다 설명은 못 하지만, 이 영화에 서지원씨 역할이 커. 그러니, 그런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어. 아까 봤잖아. 아주 좋은 배우야.”

“그렇지만 여배우가 서지원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꼭 이런 모험을 해야 하는 거예요? 서지원보다 훨씬 더 잘 나가고. 연기 잘하는 배우도 많은데. 주목을 받아야 할 사람은 선배지. 서지원이 아니에요. 그것도 안 좋은 사건으로 주목받으니, 괜히 작품까지 폄하되는 느낌입니다.”

“그게 아니야, 찬영아.”

“걱정하지 말아요.”


그때 문밖에서 내용을 엿들었는지 서지원이 들어오면서 싸늘하게 말했다.


“지, 지원씨...”

“이찬영씨가 생각하는 만큼, 저 그렇게 유명인사 아니예요.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사건으로 작품에 누를 끼치지만 결국, 연기로 인정받을 거예요. 장 감독님이 저 괜히 캐스팅했다고 생각 안 해요. 그리고, 잘못 아는 게 있어요. 이 작품 하겠다고 나서는 여배우 없을 겁니다.”

“왜요? 이렇게 재밌고, 좋은 작품인데요?”

“이렇게 어두운 작품을 선뜻하겠다는 톱스타는 없을 거라고요. 이미지란 게 여배우에게는 생명과 같아요. 우아하게 화장품 광고를 해야 하는 배우가, 비명을 지르며 살인범과 액션을 벌이는 모습을 광고주가 좋아할 리가 없을 테니까요.”

“설마 그런 이유로?”

“아, 찬영씨는 아직 신인이라 모르시나 보네요. 경험해보면 제말이 무슨 말인지 알 거예요. 그리고, 이찬영씨는 이 작품에 어떤 역할을 맡게 되는 거죠?”


서지원이 갑자기 훅,치고 들어오자, 찬영은 말문이 막혔다.


“아직... 배역이 결정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배역과 상관없는 프롬프터(배우의 헬퍼역할)라 생각하면 되는 거죠? 저에 대한 평가는 정식 배역이 결정되고 나서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내가 끼어들 새도 없었다.

하여간 배우들이란, 남자고 여자고 다 기쎈 인간들이다.

연습이 이루어지는 동안, 두 사람의 신경전은 계속됐다.


***



서지원의 일은 서지원의 일대로 사건 공방이 한창이었다.

내가 일러둔 기사의 문구 하나로 변 감독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전화가 줄을 이었다 한다. 씨네마21에서 연락이 왔다.

변한 감독은 과거 연출부 막내를 폭행 한 일도 있었다 했다.

이 사건은 형사 고소까지 갔는데, 합의로 무마됐다고 한다.


“정말 신의 한 수였어요. 제보 전화 달라는 말을 은근 슬쩍 흘렸더니, 전화가 이렇게나 올지 어떻게 알았겠어요? 장 감독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가 지금까지 제일 잘한 취재가 이 변태 감독 취재한 거예요.”


조 편집장에게 따로 민망한 칭찬의 전화가 왔다.

그녀의 칭찬이 민망했던 건. 내가 그동안 영화인으로 살면서 한 번도 이런 일들에 대해 신경 쓴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 이익이 걸려 있어 한 일에 불과했다. 칭찬은 과분했다.


씨네마21은 착실하게 증거를 모으고, 변한에게 불리한 기사를 계속 써냈다. 서지원 사건이 연일 보도되자 자연스럽게 그녀의 복귀설이 나돌면서 내 작품의 이름이 언론에도 보도되었다.


“나는 이거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어디까지나 홍보의 입장에서는 말이죠. 당분간 시끌시끌 할 텐데, 감독님은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세요. 어떻게든, 이름을 알리는 게 중요한 일이니까요.”


물론, 나도 그 의견에는 동의한다.


***



공교롭게도 펀딩 계좌 오픈일이 영화 ‘용서할 수 없는’의 극장 개봉일과 겹쳤다.

정태우 사장과 미팅을 가지면서 안 사실이다.

영화개봉일이 당장 모레였다.


“영화 예매율이 벌써 30%가 넘었습니다. 예감이 아주 좋습니다.”


당시만 해도 영화예매율이 20%를 남짓하는 시장이었다.

이 정도면 큰 기대를 해도 될 수준이다.


“영화 흥행도 그렇지만, 펀드 계좌 오픈 때 얼마가 모일지가 걱정이군요. 3억 원에 훨씬 못 미치면 또 다른 쪽으로 투자를 알아봐야 하니까요.”

“그때는 장 감독. 내 말대로 해요. 저예산으로 갑시다. 세트 욕심만 버리면 제작비 절반은 줄어들 겁니다. 솔직히, 지금도 30억 제작비라 하면 금액이 너무하다는 의견도 있어요. 손익 분기점 넘으려면 얼마나 관객을 끌어모아야 하는지. 좀 보수적으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칸 마켓에서 잘 팔아보죠.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시나리오가 좋으면 전 세계 어디서라도 투자받을 수 있다고요. 우리가 알고 있는 주옥같은 영화들. 시작은 전부 초라했습니다. 보수적인 관점도 좋지만, 일단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제작비는 줄이고 싶지 않습니다.”


제작자와 감독의 줄다리기는 언제나 있어왔던 일.

명목상 영화사 ‘캔’의 대표는 나였지만, 정태우에게 많은 신세를 지고 있었다. 내 입장에서는 그가 마냥 편안하지는 않았다.


“정 사장님. 그 이스탄불 큰 손이라는 사람, 만나보셨습니까?”

“아, 그분들요? 벌써 만나서 서울 관광까지 시켜 드렸습니다. 예감이 좋습니다, 장 감독. 처음 보는 자리에서 흔쾌히 태우 영화사에 30억이나 투자하겠다고 합디다. 역시 한국 투자자들하고는 사이즈가 달라요.”


사기꾼들은 사기당하기 쉬운 상대만 골라 사기를 친다더니 정태우 사장을 보면 그 말이 딱 맞다.

지인이 소개했다는 그 사기꾼들이 지인까지 속인 건지, 아니면 지인까지 한통속인지 그것은 알 수 없었다.

물론 정 사장은 그런 사기 경험을 바탕으로 돈에 대해 더 철저해지고 사람을 믿지 않는 지경까지 이른다. 오히려 그 경험이 약으로 작용했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50년을 살아본 인생의 결론은 불행은 피하면 좋고, 안 좋은 경험은 하지 않는 게 사람 정서상 좋다. 그게 훨씬 복 된 인생이었다.

나는 정 사장에게 말했다.


“사장님. 제가 그분들 좀 같이 만나도 될까요?”

“네? 뭐, 상관은 없습니다만...”

“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이라고 하니, 편하게 한 번 만나지요. 같이 영화 얘기도 하고, 또, 제가 칸이 초청한 영화감독 아닙니까. 외국 사람들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칸에 대한 동경이 크더라고요. 저 나가면 투자자들 좋아할 것 같은데요?”

“하하하. 그러면 저야 좋죠. 언제 한 번 같이 만나시죠, 그럼.”

“네. 저 꼭, 불러 주십시오. 사장님.”


정 사장이 싱겁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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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1화.참으로 알 수 없는 일(1) +4 20.04.12 1,795 4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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