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시작합니다.
프롤로그
“대한민국도 이제 문화 선진국이네. 괴수 영화나 찍던 감독이 저렇게 아카데미를 휩쓸지 누가 알았겠나.”
을지로 원조 빈대떡집.
이곳은 30년 넘게 영화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 온 곳이다.
이제는 근근이 추억팔이를 하며 연명하고 있지만, 한때 충무로 감독들의 아지트였다.
티비에서 방지석 감독의 수상 소식으로 난리였다.
“우리가 틀딱 세대라고 괄시받지만, 우리 없었어 봐, 방 감독 저 사람이 저 자리에 있을 수나 있나. 다 우리가 닦아 놓은 길 위를 후배들이 쌩쌩 달리는 꼴이지. 억울하구먼, 나도 시대를 잘 만났으면, 혹시, 알아? 나도 아카데미 감독상 탔을지.”
오늘은 돌아가신 내 아버지 기일이다.
하필 이런 날 방 감독의 소식을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아버지는 영화감독이셨다.
생전 아버지는 오스카 상을 받는 게 평생 꿈이셨다. 그 꿈을 아들인 내가 이루길 바랬다.
나도 영화감독이었다.
이제는 과거의 일이지만.
오늘 하루, 어디를 가도 방 감독 얘기다. 지겹다.
근데, 대체 왜 난 이곳을 찾았을까. 영화가 싫어서 도망쳤는데 습관적으로 이곳을 또 찾았다.
“크윽...”
막걸리 한 사발을 쭉 들이켰다.
방 감독과 난 대학 동기이자, 동료였다. 그와는 첫 상업영화를 함께했었다. 나는 시나리오를, 그는 연출을 맡았다.
그와 나의 첫 영화 ‘룰루 랄라.’는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평단의 반응은 좋았다.
수상받은 ‘진드기’는 무려 10년 전 나와 함께 구상한 작품이었다. 제목까지 그대로였다.
“자본주의의 패러다임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생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에 기생하고 노동자는 자본가의 자본에 기생합니다. 이 영화는 누구의 편이 아닌, 양쪽 모두의 시선을 담았습니다. 결국, 우리는 누군가의 진드기인 셈이죠. 저 또한 영화를 찍겠다고 10년 동안 부모님의 등골브레이커였었죠.(웃음)”
자식, 말 한번 거창하게 하네.
나는 저 영화를 안다.
아이디어를 내가 냈으니까.
한창 빈부 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이 이슈가 되던 시절, 부의 불평등에 대해 내가 말한 적이 있었다.
방 감독이 내 얘기를 듣고 그 주제로 영화를 만들어 보자고 했다.
시나리오 작업까지 진행했지만, 그 후 진행이 쉽지 않았다. 우리는 다음 기회에 함께 영화를 만들자며 그후 헤어졌다.
그 언젠가는 돌아오지 않았고, 방 감독는 괴수 영화를 찍었다. 그는 대박을 쳤고. 내가 메가폰은 잡은 조폭 영화는 쪽빡을 찼다.
‘그냥, 운이 없는 거라고 생각하자.“
두 번째 영화가 망하고 도미노처럼 모든 게 실패했다.
하지만 난, 애써 자위했다. 어디 나 같은 영화감독이 한 둘인가.
한 작품 내고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인간이 한 둘인가 말이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데뷔작은 내가 훨씬 성적이 좋았다.
영화 인생 25년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어렵게 차린 영화사, 연이은 쪽박, 투자자의 채무 독촉, 사체 빚, 조폭들 돈까지 끌어 쓰며 영화를 제작했지만 쪽박을 면치 못했다.
그는 대박 감독, 나는 쪽박 감독.
같이 시작했는데 결과는 왜 이렇게 다른 걸까.
술이 들어간다. 술술,..술술술...
‘병신 같은 놈....타고 나길 모자라게 태어났나, 집안이 안 좋았나. 제길.’
우리 집안은 대대로 영화인 집안이다.
강점기 시절 최초로 증조부께서 영화사를 차려 떼돈을 버셨다. 떼돈은 지금으로 따지면 10대 재벌 안에 들어갈 규모였다. 부자 3대 못 간다는 속설은 사실이었다.
할아버지, 아버지. 두 영화감독들이 증조부의 재산을 몽땅 말아 드셨다.
내가 혜택받은 건 알량한 재주, 재능도 아닌 그저, 재주. 그뿐이었다.
쪽빡 영화 쪽에만 나의 재능을 발휘했다.
빌어먹을 재주라도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텐데!
조상이 원망스럽다.
“이모! 여기 막걸리! 아니 소주 주세요, 빨간거로!”
새로 들어온 손님들조차 방 감독 얘기로 시끌벅적이다.
방송 3사는 쉼 없이 우리의 위대한 방감독님의 예찬에 여념이 없었다. 어지럽다. 성질 같으면 당장 티비를 끄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나는 전직 영화감독이자, 지금은 대리기사다.
오늘은 일이고 뭐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
‘애초에 조상이 친일파라 벌 받는 건가. 조또 인생 이렇게 꼬이기도 힘들거다.’
‘매국노 이씨 자식들은 잘만 먹고사는데 말이야. 왜 나만 이러냐!’
인간이 추해지는 건 돈이나 지위의 추락 따위가 아니다.
자존심 같은 건 생각지도 못할 만큼. 찌질해 질 때다. 바로 지금의 나처럼.
‘왜 똑같이 시작했는데 나만!’
‘왜 열심히 했는데 나만!’
‘누구보다 재능있었는데, 왜 나만!’
소주를 목구멍에 탈탈 털어 넣었다.
“웬 줄 얼어? 쟨 영리하게 굴었고, 넌 호구짓 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호구가 잘사는 거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멍청해서.”
“아, 시발! 나 중한대 영화과 수석 졸업했어. 내 손에 거쳐간 영화가 얼만데! 내가 뭐 잘못했는데! 응? 내가 뭘 잘못했냐고! 근데... 당신 누구야?”
눈앞에 웬 이상한 할아버지가 있다.
이상했다. 주변은 마치 나란 존재가 없는 사람처럼 고요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여전히 티비에서는 방 감독에 대한 예찬, 구세대 영화인들의 부러움과 경탄, 그 틈에서 내가 술 먹고 깽판 치든 말든 그들은 평온했다.
“술 좀 작작 처먹어라.”
“아, 누구냐니까요!”
눈앞의 사람은 나와 닮았다.
설마, 나야? 이렇게 착각이 들 정도다.
소리를 질러도 주변은 아무 반응이 없다.
내가 투명인간이 된 것 같다.
“내가 니 애비다, 이놈아.”
“뭐?”
그만, 마시던 술잔을 떨어뜨려 버렸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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