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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킴 님의 서재입니다.

천재영화감독이 되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돌킴
작품등록일 :
2020.03.15 02:41
최근연재일 :
2020.04.1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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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3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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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탄생의 순간(2)

시작합니다.




DUMMY

17화. 탄생의 순간(2)






어느 덧 12월 중한 예술제가 다가왔다.

1996년 12월 12일부터 14일까지 일정이 잡혔다.

졸업생 작품 5편과 재학생 작품 4개 총 9작품이 양일간 안성 캠퍼스와 서울의 극장에서 개최된다.

안성 캠퍼스의 아트센터에서 개막식을 열고 서울의 씨네하우스에서 폐막식을 한다.


이틀 동안 총 9작품이 릴레이 상영을 벌인다.


나는 박 교수에게도 편집과정을 공개하지 않았다.

오리지날 필름을 현상소에서 찾자마자 박 교수는 편집에 간섭하려 했다. 하지만 내가 정중히 거절했고, 박 교수는 더는 참견하지 않았다.


“작년 졸업반에 어떤 실수가 있었는지 아냐? 멍청한 학생하나가 듀프 필름(극장 상영용 프린트 본)을 통째로 잊어버렸다. 또 재작년에는? 편집 중에 오리지날 필름과 혼동하는 바람에 원본 필름을 전부 훼손시켰다. 3달 동안 찍은 영화가 한순간에 날아갔지. 이런 일 없을 것 같지? 놀랍게도 번번이 생기는 일이다.”


박 교수는 아마추어인 내가 그런 실수를 할까, 불안했던 모양이다.


“교수님. 오리지날 필름을 신주단지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목욕재계하고 필름에 먼지 한 톨 안 붙게 하겠습니다. 청소를 열심해 무균질의 편집실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교수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웃으면서 내가 말했다.

영화인들은 편집과정을 신성시 시킨다. 영화가 편집의 예술이라는 말이 있듯이 촬영이 끝이 아니다. 편집부터가 또다른 작품의 시작이다. 그러니 박 교수의 염려도 이해는 됐다. 교수가 학생을 지도하려는 마음은 당연하지 않은가.

게다가 이 영화의 박 교수의 자리가 달렸다.


“마지막으로, 그런 멍청한 실수는 절~대로 하지 않겠습니다.”


가장 많은 기대를 하는 사람이 바로 박 교수일 것이다.


“영화제 때 보십시오.”

“정말 내 도움이 필요 없을까?”

“네. 혼자 할 수 있습니다.”

“그럼. 할 수 없지. 한 가지 묻자. 학생들 사이 떠도는 소문은 사실이냐? 조교한테 들었다.”


촬영장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는 듯했다.


“전부 과장입니다. 영화가 80분으로 늘어난 건 맞지만 소문처럼 100분이니, 120분이, 전부 아니에요.”


역대 졸업작품 중에 장편 영화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보름 만에 장편을 만든다는 건 아마추어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박 교수는 그걸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기대하마.”


교수님이 내 어깨를 두드린다.

그러더니.


“참, 우리 조카는 잘 나왔겠지?”


참으로 정겨운 삼촌이 아닐 수 없다.

그때 아버지가, 장이산 감독이 생각났다. 평생 할리우드 진출이 꿈이셨던 분. 지금쯤 사업부진으로 엄청나게 고생하고 계실 거다.

하루빨리 예술상이라도 안겨드리고 싶었다.

아버지를 위해서도.



***



할아버지는 이후에 닥칠 후폭풍을 대비해, 뭔가를 대비하자고 했다. 신이 사람보다 더 조바심을 냈다.


“국방부 새끼들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미리 선수 쳐 두자.”

“무슨 선수요?”

“너, 아는 기자 없냐? 미리 매수해서 우리한테 유리하게 기사를 쓰게 하자.”

“할아버지 저, 지금 대학생인데, 아는 기자가 있겠어요? 박 교수님 통해서라면 몰라도.”

“씨네마21 거기 애들이 한마음 일보사지? 육군 까는 영화 제작하면 제일 반길 애들이 그쪽 애들이다. 그럼 박 교수한테 한 번 부탁해봐.”


굳이 부탁하지 않아도 중한영화제는 영화 잡지사 기자가 단골손님이다. 작년에 막 창간한 씨네마21이 취재하러 오지 않을 리 없다.


“할아버지는 제가 국방부한테 당할까 봐 불안하신 거죠?”

“시절이 개 같지않느냐. 우리 3대 독자 털끝 하나 건드려봐라.”

“설마 그러려고요.”

“너 대박나는 거 내가 모르겠냐. 그 과정이 엿 같다는 거지. 너는 지금 힘없는 학생이고. 학교와 군이 아마 잡아먹을 듯 달려들 거다.”

“괜찮아요, 전.”

“허이구, 배짱은.”

“사채업자보다 무섭겠습니까? 투자자보다 무섭겠어요? 돈 달라는 인간이 귀신보다 더 무서워요.”


할아버지는 침묵했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구나...”

“못나게도 조상 원망 많이 했습니다. 어설픈 재능 주지나 마시지...”

“크흠, 다시 사는 인생, 앞으로 잘 살면 되지. 이제, 장 감독, 실력 되잖아?”

“그리고, 저, 잘못했다고 안 할 겁니다. 한 번 해보라죠, 뭐.”

“한 가지만 기억해 둬. 너 국방부 돈 받은 건 큰 실수였다. 그거 가지고 너 엄청물고 늘어질 거다.”

“두고 보세요. 세상이 전부 내 편이 되어줄 겁니다.”




운 좋게도 D조 영화가 영화제의 마지막 상영이었다.

상영시간은 저녁 8시. 다소 늦은 시각이다.


“현승아. 마지막 시간이 뭐가 좋다는 거야. 너무 늦잖아. 서울 막차 때문에 이 시간은 학생들이 전부 떠나는 시간이라고. 관객들이 없을 텐데...”


상영시간이 정해졌을 때 영진이가 불안한 듯 말했다.


나는 안성에서의 상영은 상영으로 치지 않았다.

본 상영은 서울에서의 상영이다.

서울은 8시면 오히려 관객이 더 몰린다.

일반인들도 관람 가능하니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게다가 기자와, 충무로 감독들은 오히려 서울 상영장을 선호한다.

그 얘기를 하자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는 오영진.


“근데, 현승아... 이 영화 안성에서 먼저 공개되잖아. 과연 다음 날도 상영될 수 있을까?”


영진이가 불길한 말을 했다.


“돼지, 왜 안돼. 내가 되게 만들거다.”



***




오프닝은 우리의 위대하신 방 감독님의 단편영화.

방 감독의 단편은 찍은 지 20년이 지난 후에도 칭송받는 좋은 작품이었다. 당시, 대학생의 블랙코미디가 신선하게 느껴졌고, 방지석 만의 만화적인 연출이 개성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2020년대 사람이다.

1996년 스타일하고는 완전히 달랐다.

관객들이 미래에서 온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다. 디지털에 비해 작업과정이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오히려 작업해보면 아날로그 방식이 더 씨네마틱하고 환상적이다.

인화 과정에서 영화의 환상이 시작된다.


난 그 묘미를 잘 살렸다고 자부했다.

현재의 사람은 결코 당장의 영화 작업이 주는 장점을 알지 못했다. 나는 그 장점을 한껏 되살렸다.



개막식 당일, 방지석의 오프닝 영화는 당연하게 찬사를 받았다.

이미 알고 있던 영화의 내용을 지금 보니,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역시, 천재는 천제. 바로 저런 게 재능이지.


8편의 영화를 전부 관람하고 이제 우리 조 영화 차례다.



타이틀 ‘용서할 수 없는’


암전된 화면이 천천히 피아노곡과 함께 밝아진다.

바흐의 사라방드 피아노 연주가 감미롭게 들린다.

입영 버스 차창에 일상의 풍경이 스쳐 지난다. 영화의 인트로 부분, 관객들은 영화 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한다.



“어이, 손주. 이 정도면 그래도 걱정했던 것보다 사람 많은데.”

“영화과 학생들이 전부 관람하네요.”

“어째, 아까 낮보다 사람이 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타과 애들도 많네.”

“네. 그런 것 같아요.”

“짜식들, 우리 손주 영화, 목 빠지게 기다렸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네, 하하하, 시작이 좋구먼.”


할아버지 말이 맞았다.

객석은 이미 꽉 찼고 일부 바닥에 앉아 관람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VIP석에는 각 예술학과의 교수와 교직원, 그리고 초대 손님이 있었다.

내 영화를 가장 인정해주고, 격려해 준 정반대 입장의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박정한 교수와 마경수 사무관.

기대감에 부푼 그들의 모습이 뒷모습에서도 느껴졌다.


드디어 본격적인 영화의 시작.

이야기는 흘러가고 어느덧 숨죽이며 달린 90분간의 여정.

몸을 뒤척이는 작은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이야기의 종착역인 엔딩씬.

찬영의 죽음을 확인하고 오열하는 최민호의 흐느낌이 영화관을 가득 메운다.

영화의 마지막, 일상적인 군의 모습이 보여지고, 말년 병장이 된 민호의 모습을 보여준다.

턱을 괴고 멍하니, 티비를 보는 모습.

창밖의 늦황혼이 보이면서 쓸쓸한 병사의 노래가 들린다.


슬라브 여인의 작별.


서서히 자막이 올라갔다.




영화가 끝나자 관객들은 미동조차 없었다.

왜 아무 반응이 없지? 여운을 느낀다고 보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지체된다.

영화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저걸 진짜 내가 만든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나 자신도 생경할 정도다.

혹시 미래의 상태 메시지가 틀린 걸까.

그럴 수도 있을까.


그때 누군가가 박수 친다.

저건, 억지로 치는 박수일까, 정말 좋아서 치는 박수일까.

영화일을 그렇게 많이 했어도 정작, 내 일이 되면 한 치 앞을 예견할 수 없다. 미래에서 온 나조차.

순간,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조원들과도 멀찍이 떨어져 일부러 구석에서 영화를 봤다.

조원들의 반응을 보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박수가 서서히 커지면서 불이 켜졌을 때, 이미 시끄러운 박수소리로 귀가 따가울 지경이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와 와아아아, 하는 경탄의 소리가 파노라마처럼 들려 온다.

내가 바랬던 장면보다 더 격렬한 반응.


편집이 끝내주네. 연기가 미쳤네. 저건, 할리우드 스타일이네, 유럽 스타일이네, 아무튼 작품의 수준 차이가 너무 난다는 등 각자 말들이 많다.

저마다 각자 한마디씩 하느라 극장이 술렁거렸다.


“근데, D조 연출 어디 있냐, 안보이네.”

“그러게 안 보이네? 조원들은 저기서 막 찾고 있는데?”

“아이고, 신났다, 신났어. 저기 강태성 얼굴 봐라. 악역이 저렇게 환하게 웃어도 되냐.”

“명물이 탄생했네. 최민호는 참석 못했지만, 저기 저 두 사람. 교내 생활 좀 피곤하겠다.”

“명물은 장현승이지. 저 정도면 역대급 천재 아니냐. 중대 역사상 저런 선배가 있었냐고. 교수님이 엄청, 좋아하시겠다.”


후배 셋이서 내가 뒤에 있는지도 모르고 떠들어댔다.

박 교수의 반응이 제일 궁금하다. 그는 만족할까.

문제는 교수님에게 인사하는 건 마경수가 함께 있어서 불가능했다.


학생들이 술렁이며 슬슬 객석에서 일어나는데, VIP석 반응은 조용했다. 푹풍전야의 고요함. 저쪽은 살벌한 분위기다.

그때 박 교수가 일어나 나를 찾았다.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약간 기뻐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옆에 마경수도 일어나 나를 찾는다.


“장현승! 장현승 학생 어딨는가!”


왜 이럴 땐, 악연들끼리 꼭 눈이 마주치는가.


나와 마 사무관의 눈이 마주쳤다.

그 사람은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믿었는데....믿었던 네가 이렇게 뒤통수를 치다니!

그의 눈이 내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와, 여기 계셨네요. 선배님! 영화 진짜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교수님! 현승 선배 여기 있어요!”


앞에 있던 아이들, 뒤에 있던 아이들이 호들갑스럽게 내게 인사했다. 지금은 후배들의 찬사나 인사를 받아 줄 여력이 없다.


권력 앞에 당당하겠다는 내 결심은 마경수의 슬픈 눈동자를 보자 무너져 내렸다.

슬금슬금. 나는 도망갈 준비를 했다.

도저히, 저 슬픔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어디가! 사기꾼 장현승!”


인파 속에 섞인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선배님, 어디 가세요, 교수님이 찾으시는데!”

“맞아요. 우리 선배님 교수님한테 칭찬받는 거 보고 싶어요!”

“잠깐 무대에 올라가 인사하면 안 돼요? 묻고 싶은 거 디게 많은데.”

“촬영, 진짜 어떻게 하신 거예요? 썰 좀 풀어주세요!”


얘들이 정말 환장하게 하네.

꼼작 없이 후배들 속에 갇혔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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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9화.미래에서 온 영화감독(1) +2 20.04.02 2,212 41 13쪽
19 18화.탄생의 순간(3) +1 20.04.01 2,156 43 11쪽
» 17화. 탄생의 순간(2) +2 20.03.31 2,032 43 12쪽
17 16화. 탄생의 순간(1) +2 20.03.30 2,088 41 11쪽
16 15화.슬라브 여인의 작별. +2 20.03.29 2,088 3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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