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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도황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이화영
작품등록일 :
2023.07.31 18:04
최근연재일 :
2023.12.30 10:43
연재수 :
93 회
조회수 :
44,569
추천수 :
659
글자수 :
649,521

작성
23.09.06 14:55
조회
418
추천
8
글자
17쪽

잔혹동산(3)

DUMMY

퍽, 팍팍 팍. 뽀각.


“이래도 몰라?”


순찰 중이던 무사 하나를 붙잡은 지상이 녀석을 근처 덤불 속으로 끌고 가 목을 조르며 물었다.

무사가 부러진 팔을 힘없이 흔들며 끝까지 저항을 이어갔다.


“두문택이란 사람을 정말 모르냐고?”

“지, 진짜 몰라. 장기매매 관련한 일은 전부··· 제갈세가 분들이 직접 관리한단 말이야.”

“시발, 당장 이 악물어.”

“왜?”


파악―


지상의 팔꿈치가 무사의 인중에 내리꽂혔다.

덤불을 빠져나온 지상이 횃불을 든 잔혹동산 무사들을 피해 총 막사에 도착했다.

천막 뒤편 말들이 묶여 있는 곳으로 돌아간 지상이 품 안에서 단도를 찾다가 문득 마심아가 선물한 유엽도를 꺼내 들었다.

얇디얇은 은빛 칼날에서 마심아의 향기가 났다.

지상이 머리를 숙인 채 그녀의 향기를 맡으며 잠시 숨을 골랐다.

이유는 모르지만, 잔혹동산에 들어온 후 지상의 폭력성이 가중되고 있었다.

원걸영을 불러 물어보고 싶었지만, 여유가 없었다.

그때 말뚝에 묶여 있던 말 한 마리가 다가와 가볍게 투레질을 하더니 지상의 등에 머리를 대고 킁킁대기 시작했다.

지상이 저도 모르게 손날로 말의 머리를 사정없이 쳐버렸다.

말이 머리를 하늘로 향한 채 그 커다란 몸을 공중에서 한 바퀴 뒤집었다.

지상이 녀석의 몸뚱이 밑에 다리를 뻗어 소리를 완전히 죽였다.

겁을 집어먹은 다른 말들이 히이잉, 투레질을 하려 했으나 지상의 싸늘한 눈빛에 고개만 돌린 채로 금세 잠잠해졌다.

지상이 천막에 3촌 길이의 구멍을 뚫었다.

얇게 뚫린 구멍에 눈을 가져다 대자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젊은 사내가 보였다.

아는 놈인가 싶어 얼굴을 확인하려는 데 반대쪽 문이 열리며 반백의 꼬부랑 늙은이가 수행원들과 함께 막사 안으로 들어섰다.

청년이 일어나 늙은이를 향해 포권의 예를 올리며 말했다.


“진 장로님, 기별도 없이 어인 행차십니까.”


진 장로? 지상이 주먹을 불끈 쥐고 막사 안을 싸늘하게 노려봤다.

12 장로 중 한 사람, 진 장로가 맞았다.

노인네가 제갈승이 내민 의자에 앉아 양손을 자라가 조각된 지팡이 머리 부분에 올린 채로 말했다.


“내 잠깐 이 근처에 일이 있어서 왔다가 겸사겸사 제갈근 총관 얼굴 좀 보고 갈까 싶어 들렀는데, 그래. 오늘은 형님이 안 오셨나 보지?”

“네, 아마 천룡회 회장 선거 때문에 바쁘신 모양입니다.”

“그래, 그렇겠지. 하면 내 오늘 제갈승 자네한테 이걸 대신 맡기고 감세.”


진 장로의 수행원이 하얀 명주 보자기로 감싼 무언가를 제갈승의 책상에 올려두고 뒤로 물러났다.

제갈승이 명주 보자기에 손을 가져가며 진 장로를 힐끔 돌아봤다.

진 장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승이 보자기의 매듭을 풀자 그 안에서 곱게 접힌 서신 한 장과 진 장로의 것으로 보이는 큼지막한 도장이 나타났다.

제갈승이 눈동자를 반짝이며 진 장로에게 물었다.


“이것은 혹시···.”

“맞네, 천룡회 회장 선거 시작을 알리는 장로들의 서신이지. 내 것일세. 내 일정보다 며칠 앞당겨 자네에게 도장과 함께 맡기려고 하네.”


제갈승이 두 손을 공손히 모으더니 진 장로를 향해 허리를 깊이 숙여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진 장로님. 상관세가를 위해 이 정도 성의까지 보여주시다니.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형님과 상관금천 가주께도 꼭 말씀을 전해 올리겠습니다.”


진 장로가 잿빛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겠는가. 상관세가가 이번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우승을 해줘야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편히 노후 준비를 할 수 있지. 하하하, 그리되면 자연히 상관세가와 사돈 간인 자네들도 승승장구할 것이고··· 안 그런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어르신.”


지상은 당장이라도 막사 안으로 뛰어들어가 제갈승과 진 장로를 때려죽이고 싶었다.

저들은 지금 부정 선거를 모의하고 있었다.

그 증거가 바로 진 장로가 제갈승에게 건넨 서신과 도장이었다.

저것은 지금 시기에 이곳에 있으면 절대로 안 되는 것이었다.


천룡회 회장 선거의 규칙은 단순하다.

상장로 포함 13명의 장로들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많이 들어준 후보가 승리한다.

장로들의 요구사항은 선거 운동 첫날 서신을 통해 후보들에게 전달된다.

서신 속 요구사항은 그 어떤 것도 될 수 있다.

상당량의 은자가 될 수도 있고 희귀 보물, 혹은 전설의 영약이 될 수도 있다.

때론 재화가 아니라 누군가의 목숨이 될 수도 있고 아름다운 미녀를 납치해 오라는 더러운 임무가 될 수도 있다.

선거 운동 기간이 한정돼 있기에 후보들은 서신 안에 있는 모든 일을 수행할 수 없다.

후보들과 그들이 속한 조직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골라내야 한다.

그 후 가장 먼저 특정 장로의 요구사항을 완수한 후보는 그 장로에게서 머리띠를 하사받는다.

이 머리띠를 가장 많이 획득한 자는 당연히 천룡회 회장 선거에 당선될 확률이 높아진다.

단, 당선되는 게 아니라 확률이 높다고 말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

머리띠가 무조건 한 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머리띠는 상징적인 약속일 뿐이다.

최종 투표일에 해당 장로가 자신을 선택해 주겠다는 약속 말이다.

약속이라는 불확실성을 둔 이유는 회장 선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만일 무공이 월등하고 받쳐주는 세력도 탄탄한 자가 오직 무력만을 이용해 다른 후보들에게서 머리띠를 빼앗는 파렴치한 짓으로 회장에 당선된다면 백 년 전통의 천룡회 회장 선거에 큰 먹칠을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때문에, 그런 경우에는 머리띠 13개를 모두 획득했다 해도 최종적으로 장로들의 선택을 한 표도 못 받을 수도 있다.

저번 날 천룡회 회합 당시 상장로 이춘수가 장로들의 마음을 얻으란 소리를 그토록 강조했던 이유다.


하지만 그 모든 건 결국 장로들이 후보들에게 보내는 서신에서부터 출발한다.

그걸 하루라도 먼저 받는 자는 그만큼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진 장로는 자신의 서신을 봉인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갈세가에 넘겼다.

제 입으로 제갈세가가 밀고 있는 상관세가가 잘 됐음 좋겠다는 말까지 하면서 말이다.

명백한 부정 선거가 아닐 수 없었다.

지상이 홍사검에 손을 올린 채로 냉철히 막사 안을 주시했다.

그곳에서는 아직도 진 장로와 제갈승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지상은 때를 봐서 검을 뽑고 출수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한데 아까부터 계속 뒷목이 싸한 느낌 때문에 그가 행동을 주저하고 있었다.

그것이 뭔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지상이 다시 유엽도를 꺼내 코 맡에 갖다대고 잠시간 냉정을 찾는 데 주력했다.

안에서는 자리에서 일어난 진 장로가 제갈승에게 뭔가를 부탁하고 있었다.


“제갈승.”

“네, 어르신.”

“내 요새 허리가 아파 집에 누워 있는데 저번 날 여기 와서 받았던 그 용봉탕 마사지가 자꾸 생각나지 뭔가. 하하, 그래. 이왕 온 김에 그걸 한 번 더 받고 가고 싶은데 어째 가능하겠는가? 아이들도 그때 아이들로 똑같이 불러줬으면 좋겠고···.”


제갈승이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가능하지요. 가능하고 말고요. 숙소에 가서 기다리시면 아이들이 찾아가 안내를 해드릴 겁니다.”

“헤헤, 고맙네. 그럼 내 이만 가봄세.”

“네, 편히 쉬다 가십시오.”


진 장로와 그의 수행원들이 막사를 빠져나가자 제갈승이 막사 밖에서 대기 중인 부하를 불러들였다.

부하에게 접대를 지시하는 사이 갑자기 어디선가 한 줄기 음산한 바람이 천막 안으로 스며들어왔다.

지상이 알아챘다.

뒷목을 싸하게 만들었던 원인을.

그와 거의 동시에 지상의 손목에 찬 은방울에서도 방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딸랑, 딸랑.


깜짝 놀란 지상이 은방울을 콱 움켜잡았다.

그러다 곧 한숨을 길게 내쉬며 방울을 내려놓았다.

은방울의 방울 소리는 오직 지상만 들을 수 있다고 했던 원걸영의 말이 떠올라서였다.

한데··· 머릿속에 원걸영이 했던 한 가지 당부가 더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은방울은 그와 십 보 거리에 마인(魔人)이 나타났을 때만 방울 소리를 낸다는 사실이었다.

지상이 날카로운 눈으로 천막 내부 상황을 살폈다.

제갈승이 새로이 나타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데 그자의 행색과 말투가 범인(凡人)의 그것과 무척이나 달랐다.

나무껍질을 닮은 딱딱한 옷을 몸에 겹겹이 두른 남자는 키가 10척은 되어 보였다.

목소리에도 깊은 울림이 있어 말할 때마다 귀가 울렸다.

얼굴을 뒤덮은 헝클어진 머리칼은 나무껍질에서 자라난 가시와도 같아 보일 정도로 딱딱하고 또 가늘면서도 뾰족했다.

마침 그가 눈까지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손으로 걷어 올리자, 따다닥 소리와 함께 머리칼이 부서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자가 제갈승에게 물었다.


“장기로 쓸 사람은 어찌 되었소?”


굳은 얼굴의 제갈승이 얼굴만큼이나 경직된 어조로 대답했다.


“제갈윤 형님께서 구하러 가셨으니 자정까지는 기다려주시지요.”

“허허, 제갈세가 사람들 일 처리가 똑 부러진다는 소리도 다 헛소리요. 한 번에 여러 놈을 구해오면 될 일을, 멍청하게 한 놈씩 한 놈씩 데려오니 결국 일이 이 지경에 이른 거 아니요?”


제갈승이 헛기침을 한 후 물었다.


“나효란 자의 상세가 그리도 위독합니까?”

“위독하다 뿐이겠소? 양팔이 잘린 것도 모자라 그게 가슴에 박혔는데. 크크크. 못 보셨소?”

“···네. 저는 아직···.”

“머리도 반으로 쪼개져 목에서 떨어져 나갔는데 그걸 가슴에 박힌 손이 들고 있다고 상상을 해보시오. 하하하, 하하하하. 미친 괴물이 따로 없지. 크크크, 이 음풍수(陰風手) 최교일(崔狡逸)이가 아무리 마교에 적을 둔 지 오래되었다 해도 그 나효란 놈만큼은 절대로 흉내 낼 수가 없다오.”

“······.”

“음, 암튼 자정까지는 기다리겠지만 그 이후에도 소식이 없다면 내 흑옥궁 밖을 돌아다니는 아무 무사나 잡아다가 장기를 꺼내서 쓰겠소. 그리 알고 계시오.”

“······.”

“왜 대답이 없소?”

“···알았습니다.”

“아, 참. 그 두문택이란 친구.”

“···두문택이 누굽니까?”

“왜 어제 당신이 보낸 사람 있잖소. 말쑥하게 생긴 서생 양반. 제 말로는 자기가 글 쓰는 작가라고 하던데.”

“아, 네.”

“그 친구 당분간 우리가 데리고 있을 생각이니 그리 알고 있으시오.”

“혹시 그자를 어디에 사용하시려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냥 당분간 옆에 두고 녀석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오. 입담이, 입담이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른 자요. 녀석 때문에 어젯밤 한숨도 못 잤소. 한데 그게 또 그리 싫지 않단 말이요. 하하하, 암튼 이만 가보겠소. 자정이오. 1초도 늦지 마시오.”

“···네.”


순간 음풍수 최교일이 눈앞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지상이 방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녀석의 그림자를 쫓았다.

잔혹동산은 어느새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일정 거리마다 횃불과 모닥불이 밝혀져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무겁게 내려앉은 어둠을 내몰기엔 역부족으로 보였다.

바람처럼 날랜 몸짓으로 북쪽 돌산 방향으로 향하던 음풍수 최교일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그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뭐지? 분명 뭔가 날 쫓는 느낌이었는데.”


그때 횃불을 든 잔혹동산 무사 세 명이 그 앞을 지나다 음풍수를 발견했다.


“누, 누구냐?”


음풍수가 칼을 빼든 녀석들을 향해 조용히 일갈했다.


“흑옥궁 사람이다. 다치기 싫거든 너희 갈 길이나 가거라.”

“아··· 네, 네.”


무사들이 잰걸음으로 도망치듯 사라졌다.

지상은 구릉지 위에 홀로 자라난 수삼나무 위에서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음풍수가 주변을 한 차례 더 살피고는 다시 몸을 돌려 돌산 방향으로 내달렸다.

나무에서 내려온 지상이 은밀히 그를 쫓았다.

음풍수가 돌산 아래 큰 비석이 세워진 곳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비석에 달린 돌 조각을 오른쪽으로 세 번, 왼쪽으로 두 번 돌렸다.

그르릉, 소리와 함께 비석 뒤편에 있던 거대한 돌문이 열리자 음풍수가 즉시 돌문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곳이 바로 흑옥궁(黑玉宮)인 듯싶었다.

음풍수가 아래로 난 돌계단을 밟고 내려가자 문이 닫히기 직전 음풍수에게 귀신보를 시전했던 지상이 어둠 속에서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동굴 안을 뒤덮은 흑색의 옥벽에는 밝은 청록색 야명주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지척에 사람이 있을 때만 빛을 발했다.

지상이 음풍수가 사라진 지하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처음에는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는데 조금씩 사람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계단이 끝나는 곳에 도착했을 때 지상이 부리나케 천장에서부터 내려온 두꺼운 장막 뒤로 모습을 감췄다.

지하에는 탁 트인 거대한 하나의 원형 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만일 지상이 재빨리 모습을 감추지 않았더라면 원형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스무 명 남짓의 마교 괴물들에게 금세 모습을 들켰을 터였다.

한데, 정말 어이없게도 화로가 밝혀진 공간의 중심에 두문택이 무사한 모습으로 앉아서 뭘 먹고 있었다.

녀석은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돼지껍질을 입에 쑤셔 넣으며 괴물들을 향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중이었다.


“간밤에 풍랑을 만나 좌초된 배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딱 두 사람 있는데, 그게 또 운명의 장난인지, 그 과부와 그녀의 머슴이었단 말입니다.”

“아이고, 일 났네. 일 났어.”

“그 무인도에는 사람이 안 산당가?”

“사람이 살면 그게 무인도냐? 이 병신아?”

“크크크크.”

“글면 앞으로 두 사람만 거기서 사는 거여?”

“원 없이 사랑을 나누겄구만.”

“제발 김빠지게 이야기 좀 중간에 끊지 마. 이 새끼들아. 응? 야, 두문택, 빨리, 빨리, 빨리 얘기 시작해.”


두문택이 술 항아리에서 황주를 퍼서 한 모금 하더니 마인들에게 공손히 아룄다.


“저기, 잠깐 속이 부글거려서 화장실 좀 다녀와야겠는뎁쇼.”

“젠장할, 중요한 순간에 똥이냐. 크크크”

“아, 니들 때문에 그래.”

“얼른 다녀와라.”

“네, 네.”


지상이 장막 밖으로 얼굴을 내밀곤 구석으로 이동하는 두문택을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하지만, 지상이 있는 곳이 너무 어두워서 두문택의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지상이 두문택을 향해 귀신보를 시전한 후, 녀석과 함께 앞으로 철퍼덕 고꾸라졌다.

쿵, 소리가 나자 마인들이 일제히 두문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문택이 옷자락에 묻은 흙먼지를 털고 일어서며 웃는 얼굴로 녀석들을 향해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길이 어두워서 그만 넘어졌습니다.”

“거참, 칠칠치 못하게. 아, 맞다. 그 앞에 사람 뼈 많이 모여있으니까 조심해라. 밟는 순간 살 떨어져 나간다.”

“네, 네.”


두문택이 지상의 손을 잡고 동굴 속 막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그러다 중간에 방을 하나 지나쳤는데 그 안에 나효가 있었다.

지상이 두문택의 손을 놓고 뜬금없이 그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나효는 음풍수 말대로 진짜 상상도 못 할 기괴한 형태로 변해 곤히 잠들어있었다.

한데 나효를 바라보는 지상의 눈빛이 이상했다.

마치 뭔가에 심한 갈증이 생긴 사람처럼 그의 눈이 점점 붉게 물들어갔다.

지상이 갑자기 홍사검을 빼 들더니 나효의 입에 거칠게 쑤셔 넣었다.

잠에서 깬 나효가 제대로 된 반항도 해보지 못한 채 지상의 검에 혓바닥이 통째로 잘려나갔다.

지상이 그 상태로 녀석의 머리를 향해 검자루를 내리꽂았다.

나효의 팔다리가 지상의 몸을 꽉 붙들었지만, 지상은 집요하게 나효의 머리만을 연거푸 공격했다.

어느샌가 나효의 머리는 도저히 인간의 형태가 아닌 모양으로 변해 버렸다.

지상이 나효의 머리에서 굴러나온 눈알을 밟아 터뜨리며 말했다.


“이래도, 이래도 다시 살아날 수 있어? 응? 이 불사의 귀신 새끼야? 이래도? 이래도? 한번 살아나 봐. 캬캬캬, 이 괴물 새끼야.”


지상의 광기에 가까운 짓거리에 두문택이 들어와 지상을 말려야 할 정도였다.

마인 중 누군가 이상한 낌새를 채고 나효의 방으로 다가왔다.

지상이 두문택을 향해 말했다.


“계단 위로 달려. 꼭대기에 도착하면 벽에 장치가 있어. 오른쪽으로 세 번, 왼쪽으로 두 번 돌리면 문이 열릴 거야. 밖에 나가서 어디든 몸을 숨기고 있어.”

“지상이 넌?”

“난 여기서 잠깐 해보고 싶은 게 있어.”

“도대체 뭘?”

“흐흐흐, 무공 수련.”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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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잔혹동산(4) 23.09.07 433 7 14쪽
» 잔혹동산(3) 23.09.06 419 8 17쪽
32 잔혹동산(2) 23.09.05 409 7 17쪽
31 잔혹동산(1) 23.09.04 459 9 16쪽
30 아상(阿裳) +1 23.09.04 451 7 23쪽
29 원걸영(元傑鈴) 23.09.02 464 9 18쪽
28 능소(凌瀟) 23.08.31 490 10 14쪽
27 천자(天子) 23.08.30 518 9 17쪽
26 이화문(梨花門) 23.08.29 520 8 16쪽
25 노예시장 23.08.28 563 9 17쪽
24 천룡회 회합(2) 23.08.26 543 8 13쪽
23 천룡회 회합(1) 23.08.25 546 10 13쪽
22 당면한 위협 23.08.24 557 9 14쪽
21 문득 깨달은 사실 23.08.23 572 8 14쪽
20 진실을 향한 욕망보다 강한 건 없다 23.08.22 588 8 15쪽
19 혈화문 출판사 23.08.21 600 9 13쪽
18 감금된 자들 23.08.19 629 9 19쪽
17 조홍매(趙红梅) 23.08.18 629 10 15쪽
16 뜻밖의 손님 23.08.17 724 9 16쪽
15 환술의 게이샤 23.08.16 761 9 13쪽
14 진소추의 화섭자 23.08.15 766 12 15쪽
13 백화(白華) 23.08.14 808 10 15쪽
12 혈화문 문주가 되다 23.08.12 845 10 13쪽
11 출소 23.08.11 880 11 16쪽
10 뇌옥 23.08.10 884 12 14쪽
9 난전 23.08.09 922 12 13쪽
8 함정 +2 23.08.09 905 14 14쪽
7 매복 23.08.08 974 12 13쪽
6 대국(對局) 23.08.07 1,107 13 13쪽
5 당구(唐嶇) 23.08.04 1,230 1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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