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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도황제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이화영
작품등록일 :
2023.07.31 18:04
최근연재일 :
2023.12.30 10:43
연재수 :
9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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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264
추천수 :
659
글자수 :
649,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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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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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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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잔혹동산(2)

DUMMY

잔혹동산 구릉지에는 유목민의 이동식 집, 게르를 떠올리게 하는 크고 작은 천막이 수십 개가 설치돼 있었다.

돌산을 거침없이 내려오던 지상이 잠시 근처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좀 있으면 해가 떨어질 것 같아서였다.

지상이 있는 곳 바로 아래 천막에는 경마, 경견이란 글귀가 적힌 깃발이 바람에 심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지상이 가슴에 찬 은방울을 매만지며 조용히 속삭였다.


“반야바라밀(般若波羅密)―”


그러자 은방울에서 바람이 빠지듯 치이익, 소리와 함께 희뿌연 연기가 무럭무럭 새어 나왔다.

연기는 지상 앞 한 자 거리에서 똘똘 뭉치더니, 곧 정수리에 짧은 댕기 하나를 틀어 올린 앙증맞고 귀여운 어린 동자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원걸영이 깜찍한 목소리로 주인을 불렀다.


“지상님!”


지상이 원걸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방울과 연결된 목걸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너 이거 목이 아니라 손목에 착용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어?”

“왜 불편하세요?”

“응, 움직일 때마다 자꾸 흔들려서 신경에 거슬린다.”

“잠시만요, 목걸이 풀어서 저한테 줘보세요.”


원걸영이 지상 옆에 짧은 다리를 뻗고 앉았다.

목걸이를 이리저리 매만지던 원걸영이 무심한 표정으로 지상을 불렀다.


“지상님.”

“응.”

“아까 그 화정루 루주라는 사람 말인데요. 굳이 죽일 필요까지 있었나요?”


바위에 등을 기댄 채로 담배를 꼬나물고 있던 지상이 원걸영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뜬금없이 그건 왜 물어?”


지상의 물음에 원걸영이 태연히 대답했다.


“자백했으니까 굳이 죽여서 목숨을 빼앗을 필요까진 없었던 거 같아서요. 게다가 지상님이 죽이라고 시켰던 그 임하선이란 분도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어요. 그래서 한번 여쭤본 거예요.”


지상이 대답 없이 담배 연기를 땅바닥에 내뿜었다.

그가 이내 원걸영에게 물었다.


“그렇게 빙빙 돌려서 말해봤자 결국에는 나한테 쓸데없이 잔인했단 소리를 하고 싶은 거잖아.”


원걸영이 힐끔 지상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꼭 그렇다기보단 예전 주인님이셨던 구검(九劍)님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라···.”

“웃기시네.”

“네?”

“음영신공을 완성하라고 사람 피까지 빨아먹으라고 할 땐 언제고 인제 와서 성인군자 타령이냐. 구검이 그랬으면 나도 그래야 하냐?”

“아니 그건···.”

“그거랑 이건 다른 거냐?”

“좀 다르지 않나요? 게다가 음영신공에 나온 피를 빨아먹는 방식은 지상님 생각처럼 그렇게 원시적이지 않아요.”

“시발, 어차피 먹는 건 똑같잖아.”

“그렇게까지 말 하시면 어쩔 수 없지만···.”

“사람 죽이는 것도 똑같아. 녀석이 제갈세가 놈들에게 우리 사람을 팔아넘긴 순간 그 사람은 사형선고를 받은 거나 다름없었어. 그게 칼로 찔러 죽이는 거랑 대체 뭐가 달라.”


약 세 시진 전.


지상은 잡아 온 화정루 루주를 통해 어제 제갈세가 사람들에게 끌려간 사람이 두문택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두문택은 부모님이 계신 시골 마을로 돌아가던 중 글에 대한 영감이 떠올라 잠시 화정루에 들른 것으로 추정됐다.

잠깐 쓴다던 글쓰기는 해가 떨어진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졌고.

구석진 2층 창가 자리에서 온종일 글만 쓰고 있는 그의 모습은 화정루 루주의 눈에 딱 뜨내기 여행객으로 보였던 모양이었다.

루주는 이후 제갈세가에 줘야 할 이자 5만 냥 대신 두문택을 팔아넘기는 선택을 자행했다.


지상은 루주에 대한 고문을 끝낸 뒤 너덜너덜해진 그자의 뒤처리를 강군이 아닌 임하선에게 맡겼다.

지상의 그 명령에 임하선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던 추문강과 강군 역시 꽤 충격을 받았다.

두 사람은 임하선의 신분을 알고 있는 혈화문 내 몇 안 되는 사람들에 속했다.

추문강과 강군이 우려의 눈길로 지상을 쳐다봤지만, 지상의 태도는 단호했다.

이제 남은 건 임하선의 선택이었다.

한참을 말없이 서 있던 임하선이 조용히 창고를 나가더니 자신의 각궁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가 시위에 활을 먹인 뒤 의자에 묶여 있는 화정루 루주를 겨냥하며 지상에게 물었다.


“쏩니까?”


지상이 차갑게 대답했다.


“쓸데없이 그런 건 왜 물어?”


슝―


날아간 화살은 정확히 화정루 루주의 심장에 박혔다.

지상이 강군을 돌아보며 말했다.


“시체 처리는 일 끝나고 와서 할 테니, 지하 토굴에 숨겨 놔.”

“네.”


여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이 천계의 보물, 원걸영에게는 그리 썩 좋게 보이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지상은 원걸영의 질문에 일일이 대답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화정루 루주를 죽이라고 명한 것.

죽일 사람으로 임하선을 선택한 것.

그 모든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지난 만남에서 무림맹 치안감 황건명은 현 무림맹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권력다툼의 주체를 지상에게 명확히 알려주었다.

천자와 황건명 그리고 무림맹주와 현무관 세력이 각각 편을 먹고 물밑에서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게 도대체 무엇을 위한 싸움인지는 지상의 관심사가 아니었지만, 그 싸움의 여파가 천룡회 회장 선거에까지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중대한 일임에 틀림이 없었다.

이것을 추문강에게 말했을 때 녀석은 우리가 마치 그들의 대리전을 치르는 것만 같다며 몹시 언짢아했다.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강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녀석들의 눈에 무림맹 수사관 출신 임하선이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사실 지상의 입장도 두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며칠간 지척에서 지켜본 임하선이란 놈은 성실인 그 자체였지만, 그건 얼마든지 꾸며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지상은 확실한 게 필요했다.

그래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임하선에게 루주를 죽이라 명한 것이다.

그가 자신의 명령을 따르는 순간 임하선은 범죄자가 된다.

나중에 정상참작이 이루어지더라도 적어도 녀석의 양심에는 지울 수 없는 생채기가 새겨지는 것이다.

녀석이 명령을 거부하는 것도 지상의 선택지에 있었다.

만일 그리되면 지상은 녀석을 황건명에게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또한, 그때부터 황건명과도 어느 정도 선을 그을 생각이었다.

한데 임하선은 죽어 마땅한 화정루 루주를 제 손으로 죽이는 선택을 했다.

덕분에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법력을 이용해 목걸이를 팔찌로 변형시킨 원걸영이 다가와 지상의 손목에 팔찌를 채워주며 물었다.

아까와는 또 다른 질문이었다.


“지상님은 왜 백도가 되고 싶으신 거예요?”

“백도?”

“네, 간절히 개과천선한 삶을 바라시잖아요.”

“···그렇지, 깨끗한 사람이 되고 싶지.”

“그 이유가 뭐냐고요. 매일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시면서 왜 마음속으론 그런 삶을 바라시는 거죠? 저 정말 궁금해요. 대답해 주세요.”

“집요하네?”

“주인님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고 싶어서 그래요.”


지상이 몸을 돌리더니 어느덧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한 구릉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무슨 거창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야. 그냥··· 낮에 사람을 죽인 손으로 밤에 마누라랑 아이를 끌어안기가 싫어. 그래서 그래.”

“그럼 지상님은··· 백도가 되고 싶다기보단 그냥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싶으신 거군요?”

“그렇지. 그게 정확한 표현이겠지.”

“사조부님이신 구검님이랑은 정말 다르네요.”

“그 양반 꿈은 뭐였는데?”

“무림 최강의 검객이 되는 거요.”


지상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싸하다만 나는 별로 안 댕긴다.”

“왜요?”

“무림 최강 검객이 되면 뭐가 달라지는데?”

“네?”

“최강자가 되면 그 양반이 과거에 사랑했다던 그 사매가 돌아오냐? 가슴 속 고통이 사라져? 슬픈 기억이 지워져? 그렇다고 가족들의 안전이 보장돼? 원수가 없어져? 뭐 하나 달라지는 게 없잖아. 그러니까 나는 별로 안 댕긴다고. 그런 일에 시간과 정력을 낭비할 바엔 차라리 그 시간에 친구들이랑 밥 한 끼를 더 먹겠다.”


원걸영이 상당히 충격을 받았는지 입까지 쩍 벌린 채로 지상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지상이 녀석에게 나직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 네 전 주인 복수는 잊지 않고 해줄 테니. 사조님 은혜에 그 정도 감사 표시는 해드려야지. 하지만 딱 거기까지야. 그 이상은 없어.”

“네··· 저도 그거면 충분해요.”

“인제 그만 방울 속으로 들어가. 슬슬 일을 시작해야겠다.”

“한 가지만 더요. 그 두문택이란 분은 아직 살아계시겠죠?”

“장기 꺼내기 전에 이틀 정도 검사하는 시간을 갖는다니까 적어도 오늘 밤까지는 무사할 것 같아.”

“그분이 지상님 친구예요?”

“응, 꽤 재밌는 친구지.”

“그럼, 꼭 구하시길 바랄게요. 그리고 주인님. 혹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아까처럼 주문을 외워 주세요.”

“원걸영.”

“네?”

“반야바라밀이 무슨 뜻이랬지?”

“열반으로 향하는 지혜요.”

“···알았다. 들어가, 쉬어.”

“넵!”


원걸영이 연기로 변해 은방울 속으로 사라지기가 무섭게 복면을 다시 착용한 지상이 어두워진 돌산을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제갈승의 총 막사.


아까와 달리 무장 차림의 제갈윤이 부하들과 함께 막사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책상에 앉아 장부를 적으며 뭔가를 고민하고 있던 제갈승이 형을 돌아보고 물었다.


“아직도 출발 안 하셨어요?”

“아니, 그게. 제갈근 형님 얼굴 좀 보고 갈려고 했는데, 희한하다. 동산을 다 뒤졌는데 아무 데도 없어. 대체 어딜 가신 거지? 그 양반이 우리한테 말도 없이 은룡채(천룡회 요새)로 돌아가신 적이 없잖아.”

“혹시 형님, 그 여자 막사도 확인해 보셨어요?”

“응? 아··· 그 게이샤들 있는 곳? 아까 가봤는데 동해파 새끼들 때문에 접근이 불가야. 헐, 혹시 거기 계신가?”

“모르겠네요. 일단 알았으니까, 형님은 더 늦어지기 전에 출발하세요. 그리고 명심하세요. 잔혹동산 근처에서는 더이상 사람 잡으면 안 된다는 거. 저번 주에 장기매매 소문이 퍼져나가서 진짜 큰 곤욕을 치렀잖아요.”

“알아, 안다고. 내가 그래서 저 밑에 혈화문 영역까지 내려가서 사람 잡아 오는 거 아니냐.”


혈화문이란 말을 듣는 순간 제갈승의 머리에 뭔가 안 좋은 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제갈승이 형 제갈윤에게 물었다.


“형, 혹시 어제 잡아 온 사람도 거기서 잡아 온 거예요?”

“엉, 왜?”


제갈승이 잠시 입을 꾹 다문 채 불길한 예감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그런데 그때 막사 문이 열리더니 아까 채 씨 마누라 일행을 감시하라고 보낸 측근 부하가 들어왔다.

녀석이 제갈승에게 고했다.


“대인, 반 시진 전 채 씨 마누라와 함께 온 그 무림맹 사람들 있잖습니까?”

“응, 왜?”

“그 사람들이 방금 투견 막사에 들렀다가 저를 따로 불러 도박을 하고 싶은데 어찌해야 하냐고 물어···.”


부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갈윤이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캬캬캬, 무림맹 놈들도 어쩔 수 없는 사람 새끼들이로구나. 하하하, 그래. 막상 코앞에서 누가 돈 따는 거 보면 지가 부처님이라도 마음이 흔들리겠지, 암, 당연하지, 당연하고말고. 크크크크.”


제갈승이 부하에게 물었다.


“다른 꿍꿍이가 있어 보이진 않았느냐?”

“꿍꿍이가 있다기보단 도박에 참여하려는 무림맹 사람들과 채 씨 마누라 사이에 약간의 불협화음이 있었습니다.”

“어떤?”

“채 씨 마누라가 빚을 갚으려고 가져온 돈이 동산 출입구에 세워둔 마차 안에 있나 본데, 그것을 잠시 빌려 쓰자고 무림맹 사람들이 그녀를 채근한 겁니다. 채 씨 마누라가 한사코 안 된다고 거부하는 바람에 그들 사이에 상당히 큰 소리가 오갔습니다.”


제갈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


“채 씨 마누라가 얼마를 댕겨 왔다더냐?”

“족히 백오십만 냥이 넘는다 합니다.”

“호~”


제갈윤이 탄성을 터뜨리며 동생 제갈승을 돌아봤다.

제갈승이 잠시 고민한 뒤 부하에게 물었다.


“무림맹 사람 중에서 수사관 임하선이란 자의 동태는 어떠했느냐?”

“그자는 그리 적극적으로 나서진 않았으나, 그렇다고 또 위사들의 행동을 의욕을 가지고 말리지도 않았습니다.”


순간 제갈승의 눈동자가 번쩍였다.

그가 부하에게 힘주어 말했다.


“너는 즉시 갑조를 호출해서 내 명령을 하달해라. 채씨 부인에겐 휴식을 핑계로 막사 내 최고급 숙소로 안내하고 무림맹 사람들에겐 대출을 미끼로 소액을 무상으로 제공하라 일러라.”

“무상으로 말입니까?”

“그래, 무상으로. 두 당 이백 냥 정도 선뜻 내주어라. 그리고 그 돈이 다 떨어지면 대출에 대한 정보를 흘려라.”

“담보는 어찌합니까?”

“당연히 채씨 부인 마차에 있는 백오십만 냥으로 해야지. 그자들도 거부치 않을 것이야.”

“알겠습니다. 즉시 명을 시행하겠습니다.”


제갈윤이 동생의 순간 판단력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그가 제갈승을 한 차례 포옹하고는 껄껄거리며 막사를 나섰다.

제갈승은 아까보다 훨씬 밝아진 모습으로 붓을 들고 장부를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한데··· 사실 조금 전 제갈승이 느꼈던 불안감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게 아니었다.

그가 얼마 전까지 비룡방 방주였던 추문강을 모를 리가 없었다.

추문강이 비록 무림맹 위사로 변장을 하긴 했지만, 그의 8척 장신의 체구에서 풍겨 나오는 특유의 강맹한 분위기는 변장으로 감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것을 제갈승이 무의식중에 감지했고, 만일 조금만 더 그에게 생각할 시간이 주어졌다면 추문강의 변장을 알아챘을 터였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지상이 제갈세가에 던진 절대 지나치기 힘든 너무나도 달콤한 미끼 때문이었다.

그 미끼는 또한 채 씨 마누라가 가져온 백오십만 냥의 거금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무림맹 수사관 임하선과 관련한 일이었다.

공무 외 소중원 출입이 철저히 금지된 무림맹 수사관을 빚으로 옭아맬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그것이 바로 지상이 제갈세가에 내던진 치명적인 미끼였다.

지상은 미끼를 던졌고 제갈승은 미끼를 물었다.


그 무렵 지상은 어느 한적진 곳에서 기절시킨 잔혹동산 무사의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흙으로 얼굴을 문지른 뒤 무사의 낭아봉까지 집어 든 지상이 빠른 걸음으로 구릉지를 가로질러 다음 천막으로 이동했다.

막사 안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개들의 짖는 소리와 사람들의 환호성이 귀청을 때렸다.

잠시 주변을 살피던 지상이 개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원형의 투견장 건너편에서 누군가를 발견했다.

추문강이었다.

관중들 속에 섞여 있던 추문강은 자기가 돈을 건 개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에게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선 감시인으로 보이는 잔혹동산 무사가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추문강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상이 사람들 무리를 지나 그 무사에게로 접근했다.

지상이 빠른 손놀림으로 무사 근처에 있던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돈주머니를 훔쳤다.

지상이 사람들 속에서 소리쳤다.


“소매치기다. 여기 소매치기가 있다.”


돈주머니를 도둑맞은 남자가 주머니를 만지다 깜짝 놀라 소리쳤다.


“소매치기다! 소매치기가 내 돈을 털어갔다.”


추문강을 감시하던 무사의 시선도 자연스레 그쪽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그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추문강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땐 추문강은 이미 지상과 함께 사라진 후였다.

지상이 두꺼운 휘장으로 가려진 투견장 한쪽에서 종이를 꺼내 숯 토막으로 대략적인 잔혹동산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지상이 지도 속 천막 중에서 본인이 점검을 끝낸 천막에 X 표시를 한 후, 추문강에게 지도와 숯 토막을 넘겼다.

추문강이 마찬가지로 몇몇 곳에 X 표시를 한 뒤 지상에게 말했다.


“여기 투계장에 임하선이 있고, 강군은 이 뒤 경견장에 가 있어.”

“홍매는?”

“아까 녀석들이 잠깐 숙소에서 쉬자며 데려갔는데 이 북쪽 막사가 손님들 숙소고, 그 옆에 있는 건 식당이야. 아, 맞다. 무사들 하는 얘길 엿듣고 알아낸 정본데 여기 잔혹동산 중심에 있는 이 막사 있지. 커다란 검은 깃발이 달린 막사. 이게 총 막사라고 잔혹동산 전체를 통제하는 막사야.”

“음.”

“어떻게 할래? 여기 내가 가볼까?”


지상이 비무장 상태인 추문강에게 낭아봉을 건네주며 말했다.


“내가 갈 테니 넌 이곳 북서쪽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막사를 살펴줘. 그리고 반 시진 후에 여기서 다시 만나자. 혹시 도중에 하선이랑 강군이를 만나면 녀석들한테도 똑같이 알려줘.”

“엉.”

“수고.”

“수고.”


두 사람이 즉시 반대 방향으로 흩어졌다.


지상이 가는 쪽은 총 막사로 제갈승이 있는 곳이었고, 추문강이 가는 곳은 아스카 왕국 마츠시타 시하 군주가 있는 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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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원걸영(元傑鈴) 23.09.02 469 9 18쪽
28 능소(凌瀟) 23.08.31 497 10 14쪽
27 천자(天子) 23.08.30 526 9 17쪽
26 이화문(梨花門) 23.08.29 523 8 16쪽
25 노예시장 23.08.28 573 9 17쪽
24 천룡회 회합(2) 23.08.26 552 8 13쪽
23 천룡회 회합(1) 23.08.25 550 10 13쪽
22 당면한 위협 23.08.24 563 9 14쪽
21 문득 깨달은 사실 23.08.23 578 8 14쪽
20 진실을 향한 욕망보다 강한 건 없다 23.08.22 592 8 15쪽
19 혈화문 출판사 23.08.21 604 9 13쪽
18 감금된 자들 23.08.19 637 9 19쪽
17 조홍매(趙红梅) 23.08.18 640 10 15쪽
16 뜻밖의 손님 23.08.17 731 9 16쪽
15 환술의 게이샤 23.08.16 768 9 13쪽
14 진소추의 화섭자 23.08.15 773 12 15쪽
13 백화(白華) 23.08.14 812 10 15쪽
12 혈화문 문주가 되다 23.08.12 852 10 13쪽
11 출소 23.08.11 884 11 16쪽
10 뇌옥 23.08.10 891 12 14쪽
9 난전 23.08.09 926 12 13쪽
8 함정 +2 23.08.09 909 14 14쪽
7 매복 23.08.08 980 12 13쪽
6 대국(對局) 23.08.07 1,113 13 13쪽
5 당구(唐嶇) 23.08.04 1,237 1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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