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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도황제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이화영
작품등록일 :
2023.07.31 18:04
최근연재일 :
2023.12.30 10:43
연재수 :
93 회
조회수 :
45,285
추천수 :
659
글자수 :
649,521

작성
23.09.02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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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9
추천
9
글자
18쪽

원걸영(元傑鈴)

DUMMY

“···지상님, ···지상님.”


나를 부르는 그 목소리엔 무언가 강력하고 신비로운 힘이 담겨 있었다.

처음엔 여인의 구슬픈 울음소리 같았던 그 목소리는 안개가 걷히듯 점차 또렷해지면서 어린아이의 청아한 미성으로 바뀌었다.

잔뜩 긴장한 상태로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한걸음 내디뎠다.

순간 등에 업은 능소와 품에 안고 있던 조홍매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허둥지둥 좌우를 돌아보며 그들을 찾아 헤매는데 이거 웬걸.

내 주변마저 상춘각 대청 안이 아니라 낯선 종유석과 석순으로 가득한 어느 동굴 속 정경으로 변해있었다.


“지상님, 지상님!”


또다시 들려오는 아이의 목소리.

돌아보자 바닥에서 1장 높이로 돋아난 석순 뒤에서 반쯤 벌거벗은 꼬마 아이가 나를 향해 해맑게 웃으며 손까지 흔들고 있었다.

아이가 내게 손짓하며 말했다.


“지상님, 이리 오세요. 이쪽이에요.”


영문도 모른 채 아이를 쫓았다.

한데 전력을 다해 신법을 펼쳤음에도 아이와 나 사이의 간격이 좀처럼 좁혀들지 않았다.

내가 지쳐 쉬면 아이도 걸음을 멈추고 쉬었다.

멀찌감치서 아이에게 물었다.


“너 뭐야,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하하, 하하하.”

“웃지만 말고 대답해 봐. 여기가 지금 어디냐구!”


아이가 양쪽 입꼬리를 보기 좋게 늘리더니 천천히 내 쪽으로 걸어왔다.

한 자 정도 거리에서 아이를 덥석 움켜잡으려 했으나 아이가 돌연 내 등 뒤에서 나타났다.


“귀신보?”


깜짝 놀라 아이를 돌아보자 어느샌가 내 등에 올라탄 아이가 조막만 한 손으로 내 귀밑머리를 만지더니 거기서 무언가를 꺼내 보였다.

그것은 은방울이었다.

영롱한 은빛 광휘를 번쩍번쩍 뿜어내는 한 쌍의 작은 은방울이었다.

아이가 나를 향해 내민 은방울을 집어 들고 생각나는 바가 있어 아이에게 물었다.


“혹시 네가 원걸영(元傑鈴) 이니?”


아이가 미소하며 끄덕였다.


“너는 분명 묘족 여자애였는데··· 어떻게 아이의 모습으로?”

“그건 법력으로 잠깐 변한 모습이었어요. 그리 안 하면 지상님한테 안 팔릴 것 같아서··· 하하하, 사실 제 본 모습 즉 원신(元神)은 바로 이 은방울이에요.”

“은방울?”


아이가 내게서 다시 은방울을 받아들더니 고개를 주억이며 응답했다.


“저는 원래 옥황천존(玉皇天尊)님의 곤의(袞衣)에 달린 한 쌍의 은방울이었는데, 어느 날 천계에 불어닥친 광풍(狂風)으로 옷자락에서 떨어져 인간계로 떨어졌어요. 이곳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저는 다시 천계에 오를 날만을 애타게 기다리다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나게 됐어요.”


내가 원걸영에게 시큰둥하게 물었다.


“재밌는 이야기다만 그게 대체 나랑 무슨 상관인데 이곳까지 나를 끌어들였느냐.”

“상관이 꽤 있어요. 제가 만난 그 남자가 바로 지상님의 사조부(師祖父)님이신 구검(九劍)님이거든요.”


내가 고개를 갸웃하며 원걸영에게 물었다.


“구검? 무림맹 천상각 뇌옥에서 돌아가신 내 사부 유무성의 스승, 그 구검?”

“네.”

“그럼, 대체 여긴 어디야?”

“이 동굴의 이름은 반야동(般若洞)이고 구검님이 주화입마를 당해 이지(理智)를 잃어버리기 전에 음영신공(陰影神功)을 완성한 장소에요.”


유무성에게 들은 기억이 있었다.

그의 사부 구검은 평상시에는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이었는데 한 달에 며칠 정도 제정신으로 돌아왔고, 사부는 그 며칠에 불과한 시간 동안 구검에게 강제로 검술을 배워야 했다고.

배우지 않으면 그에게 돌아올 미래는 죽음밖에 없었다고도 했다.

그러한 우여곡절 끝에 구검에게서 음영검과 귀신보를 배운 유무성은 나중에 혈화문 일인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구검이 그런 광인이 된 경위까지는 사부 유무성도 알지 못했다.

한데 지금 자신이 한때 옥황상제 옷자락에 달린 은방울이었다고 말한 이 원걸영이라는 아이가 마치 그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내게 말하고 있었다.

원걸영이 동굴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가요. 저쪽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음영신공의 오의(奧義)가 보관돼있는 석실이 나와요.”

“원걸영, 잠깐만. 내가 왜 굳이 그것을 봐야 하는데? 나는 이미 그 오의를 잘 알고 있고, 또 음영신공을 9성까지 터득한 상태란 말이다.”

“부작용이요.”

“뭐?”

“지상님은 음영신공의 부작용을 다스리는 방법까지는 모르잖아요.”


순간 머리를 돌로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아이와 함께 동굴의 막다른 곳에 있는 작은 석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여기야?”

“네.”

“석실 벽에 그려져 있어요. 구검님이 거의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손가락으로 벽을 파서 적으신 거니까 사조님께 감사히 여기시고 어서 그것을 본인 것으로 만드세요.”

“······후.”


머뭇머뭇 석실 안으로 들어섰다.

원걸영의 말대로 좁은 석실 안 둥근 벽에는 음영신공의 구결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어떤 부분은 글 대신 그림으로 대체돼 있었다.

손가락으로 벽을 파서 적어놓은 글자에는 그 오랜 세월에도 여전히 핏물로 보이는 검은 얼룩이 군데군데 달라붙어 있었다.

어딘가는 심하게 박치기를 한 흔적도 있었다.

겸허한 마음으로 구결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머리가 복잡했다.

내가 이해했던 음영신공과 사뭇 다른 부분이 있어서였다.

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간 오래된 지병처럼 끌어안고 살았던 의문들이 하나씩 해결돼 나가기 시작했다.


원걸영이 돌 주전자에 맑은 지하수를 받아서 나타났다.

내가 시원한 물 한 모금으로 잠깐 목을 축인 뒤 다시금 벽에 적힌 구결에 집중했다.

한데 쭉쭉 해결되던 의문들이 어느 부분에서 다시 막히기 시작했다.

그것은 모든 구결에서 마찬가지로 나타난 현상이었는데 그 부분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한 걸음도 나아갈 수가 없었다.

내가 침음하며 원걸영을 돌아봤다.

아이가 물었다.


“왜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

“구결을 다 봤어요?”

“응. 사조님은 분명 귀신보와 음영검을 펼칠 때 독맥에서 백회혈을 타고 단전으로 내려온 진기를 임맥에서 바로바로 소모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나처럼 공력이 부족한 경우엔 후반으로 갈수록 감당이 안 되잖아. 한데 거기에 대한 해답으로 피를 피로써 다스린다고 써두셨어. 그게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원걸영이 마치 자신은 그것을 안다는 듯 머리를 조아리더니 석실 한구석에 있는 돌책상으로 다가가 너무 낡아 읽기도 힘든 책 한 권을 찾아 내게 내밀었다.


“그게 뭐야?”

“아수라대다라니경(阿修羅大陀羅尼經)이라고 구검님이 이걸 보고 음영신공을 창시하셨어요.”


한데 내가 원걸영에게서 책을 받아 펼치기가 무섭게 책이 부서지며 온통 뿌연 먼지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뭐야, 이게.”

“헤헤, 책이 너무 오래됐고 또 천계의 보호를 받는 금서라서 제 법력으로 제대로 구현을 해내지 못했어요. 죄송해요, 지상님.”

“그럼··· 소용이 없잖아.”

“아니에요. 제 생각에는 굳이 책을 보지 않아도 이 책이 대충 어떤 책인지만 알아도 지상님한테 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도대체 그 아수라대다라니경이란 책에는 무슨 내용이 적혀 있는데?”

“피를 다루는 방법이요.”

“뭐?”

“아수라대다라니경은 인간의 입장에서 쓰인 책이 아니라 영물(靈物)의 입장에서 인간의 피를 다루는 방법을 쓴 책이에요. 그래서 금서(禁書)인 거죠.”


내가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른 단어 하나를 입 밖으로 내뱉으려다 애써 참았다.

한데 그것을 원걸영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맞아요, 혈교(血敎). 이 책은 혈교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비전서(秘傳書)에요. 오직 그들의 수장인 혈마(血魔)만이 이 책을 소유할 자격이 있죠.”

“그럼 어떻게 사조님은 이 책을 얻게 된 거지?”


원걸영이 석실 바닥에 쭈그려 앉으며 말했다.


“그 얘기를 하자면 좀 긴데 들어주실 거죠?”


내가 못내 고개를 주억였다.


“구검님은 원래 화산파 제자셨어요.”

“화산파?”

“네, 현 무림맹주이자 화산파 장문인인 여불선은 당시 구검님의 사제였죠. 그리고 또 한 사람, 사형제 중에 이름을 모르는 남자 한 명이 더 있고 여자 사매도 한 명 있었어요. 여자분의 이름은 알아요, 아마 은이정(殷梨姃)일 거예요. 그렇게 네 사람이 한 사부 밑에서 무공을 배운 거죠.”

“흠.”

“처음엔 사형제 간의 사이가 무척이나 좋았대요. 형제들의 마음속에 사매를 향한 사랑의 불씨가 생겨나기 전까지는요.”

“결국, 또 치정(癡情)으로 치닫는구만.”

“네, 한데 이건 좀 단순하지가 않아요. 저도 사정은 정확히 모르지만 구검님이 평생을 간직해 온 서신에는 그 사매란 사람이 구검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가 잘 나와 있어요. 근데 그게 문제에요.”

“···그게 왜 문젠데?”

“그 사매는 결혼을 구검님이 아니라 현 무림맹주 여불선하고 했거든요. 그런데 구검님은 사매가 결혼한 후에도 사제 여불선을 그리 미워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저하고 있을 때 그를 아끼는 말을 많이 했어요. 한데··· 그런 구검님조차도 단 한 사람, 사형제 중 마지막 한 사람만큼은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생각했어요.”


내가 문득 손을 들어 녀석의 말을 제지하고 물었다.


“원걸영, 너 그 나머지 한 사람의 이름은 모르는 거야, 아니면 말할 수가 없는 뭔가가 있는 거야?”

“그게··· 모르기도 하고 말할 수도 없어요.”

“뭔 소리야, 그게. 그냥 강호 사람 아무나 붙들고 물어보면 쉽게 알 수 있잖아. 그 유명한 화산파라며?”

“헤헤, 그 방법 저도 해봤어요. 한데 아무도 몰라요.”

“뭐?”

“정말 아무도 알지 못한다니까요. 마치 그 사람에 대한 기억만 쏙 빼낸 것처럼 모두가 그 사람이 누군지, 얼굴도, 이름도 기억을 못 해요.”

“그게 말이 돼?”

“구검님도 그걸 무척이나 답답해하셨어요. 분명 그 사람과 함께한 어린 시절 포함, 모든 게 기억이 나는데 그 사람의 얼굴과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데요.”


내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문득 정색하고 물었다.


“흠, 그래. 암튼 그렇다 치고. 그 이후 이야기나 계속해봐.”

“어떠한 이유로 구검님은 그 사람과 목숨을 건 결투를 하게 되셨고, 거기서 끝내 패배하셨어요. 그리고 당연하게 자결을 선택하셨죠. 이 동굴 위 만장애(萬丈崖) 꼭대기에서 뛰어내리신 거예요.”

“근데 죽지 않고 오히려 만장애 밑에 있는 반야동이라는 동굴에서 아수라대다라니경이라는 혈교의 비전서까지 발견하는 기연을 얻으셨다?”

“네, 한데 그뿐만이 아니에요, 이 동굴에서 저를 발견하셨어요.”

“아, 너도 이 낭떠러지 밑에 있었구나.”

“네, 인간계로 내려온 지 500년 만에 사람과 만난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어요.”

“하, 그럼 둘이 같이 이곳에 오래 있었어?”

“네, 한 십 년 정도요.”

“왜? 음영신공을 완성했으면 이 정도 낭떠러지를 빠져나가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을 텐데.”

“그게 결국 아까 지상님이 고민하신 문제와 연결이 돼요.”


내가 잠시 턱을 만지작거린 후 대답했다.


“정파 출신의 사람이 창시한 무공이 결국엔 혈교 비전서에 기반을 둔 무공이라서?”

“그렇죠, 그리고 그 무서운 검법을 쓰려면 사람의 피를···.”

“구검이 완성시킨 음영신공의 진짜 오의는 사람의 피를 먹는 데 있다. 내공이 아니라 평소 몸 안에 쌓은 사람의 혈기를 이용해 음영검과 귀신보를 사용한다. 그래야 체내의 경맥과 혈맥에 상처가 생겨나지 않는다. 또한, 내공이 아닌 혈기를 태워 음영검을 쓰면 파괴력이 배가 된다. 결국, 그 깨달음을 얻은 후에도 사조님은 이곳에 틀어박혀 십 년을 보냈다? 오직 체면 때문에? 정파인으로서의 부끄러움 때문에?”

“온전히 체면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구검님은 두려워했어요. 만일 인간의 피를 계속 섭취하다 보면 언제고 자제력을 잃고 혈마로 변할까 봐, 그걸 두려워하셨어요. 그래서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십 년을 더 이곳에 머무신 거예요.”


내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답을 찾았어?”

“네.”

“뭔데?”

“바로 저였어요.”

“응?”

“저를 지척에 두고 있으면 혈마로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으셨어요. 구검님이 아수라대다라니경과 저를 동시에 만난 건 절대 우연이 아니었던 거죠. 한데 그 단순한 사실을 깨닫는 데 십 년이 걸렸어요. 하하하, 구검님도 저도 바보였어요.”

“아, 네 존재 그 자체가 바로 혈마로 변하는 걸 억제하는 힘이로구나. 한데 그럼 사조님은 왜 주화입마에 빠진 거지?”

“함정에 걸리셨어요.”

“응?”

“그 남자가 함정을 파놓고 10년 동안 구검님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구검님은 보기 좋게 거기에 또 걸려 들으셨고, 그 남자와 대결 중에 저 없이 음영신공을 무리하게 펼치시다 주화입마에 빠진 거예요. 다만, 구검님은 평소 혈액 섭취를 무척이나 자제했던 터라 혈마가 되는 건 피할 수 있었어요.”

“너를 놔두고 그 남자를 만나러 간 이유는?”

“그게 그 남자가 판 함정이에요.”

“그 정도로 다급한 일이 있었던 게로구나.”

“맞을 거예요. 그리고 구검님이 더 비참했던 건 그 남자가 구검님을 죽이지 않고 살려뒀다는 사실이에요.”

“그럼 구검은 어떻게 천상각 뇌옥에?”

“그 결투 현장에 있었던 여불선이 구검님을 데리고 간 거죠. 그는 미쳐버리신 구검님을 무림맹 뇌옥에 가둬두고 그에게서 음영신공의 오의를 알아내려고 했어요.”

“주변에 온통 쓰레기들만 가득했군. 한데··· 그 사람들 다 정파 사람들이잖아.”

“정파 사람이라고 무조건 다 선량하지 않다는 것쯤은 잘 알고 계시잖아요.”

“한데 사형제 아니냐. 때론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가깝다는 사형제.”

“그래서 더 잔인할 수도 있죠. 그 사람의 약점을 너무도 잘 아니까.”

“······암튼 그래서 그 뇌옥에 갇혀 있는 동안 내 사부님이 사조님과 만나게 된 거로군.”

“네, 구검님은 어쩌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알게 되신 거예요. 거기에 더해 자기가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유무성님에게 강제로 음영신공을 전수하신 거죠. 하지만, 그의 망가진 머리 때문에 온전한 음영신공을 전수할 수는 없었어요. 아니, 어쩌면 무의식중에 거부했을지도 몰라요. 처음 받아들인 제자에게 혈마가 될 수 있는 길을 안내할 순 없었던 거죠.”


그렇게 나는 원걸영이란 이름의 은방울에게서 그간 알지 못했던 사조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내가 문득 녀석에게 말했다.


“너는 내게 구검의 복수를 원하고 있군.”


원걸영이 다부진 얼굴로 끄덕였다.


“······네, 사실 저는 구검님의 뇌옥 안에서의 생활은 차후에 사람들의 구전을 통해 알게 됐어요. 그래서 더 화가 나요.”

“구검을 함정에 빠트렸던 그 남자는 지금 어딨지?”

“몰라요. 하지만 지상님이 어떻게 하면 그를 만날 수 있는지 그 방법은 알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되는데?”

“현존 최강의 검객이 되시면 돼요. 그럼 그가 알아서 지상님을 찾아올 거예요.”

“그 말은 곧 나한테 인간의 피를 먹고 음영신공을 완벽히 구사하란 말이나 다름없는데.”

“맞아요. 하지만 저랑 함께하시면 아무 탈이 없을 테니까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 자식이 아까부터 계속 사람 피를 먹는 걸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 것처럼 말하네.”

“음영신공의 부작용으로 수명이 단축돼 죽는 것보단 낫잖아요.”

“닥쳐··· 아니야, 알았어. 일단 알았으니까. 인제 그만 나를 여기서 꺼내줄래?”

“밖으로 나가고 싶으시면 저와 계약을 하시면 돼요.”

“또 무슨 계약?”

“저랑 한날한시에 죽겠다는 계약이요.”


내가 잠시 생각 후 원걸영에게 물었다.


“거부하면?”

“그럼 지상님은 영원히 이 반야동 안에 갇히시게 되는 거죠.”

“그 계약 조건에 구검의 복수도 포함된 거야?”

“아니에요. 그건 지상님한테 강제할 수 없어요.”

“왜? 복수를 하고 싶다며?”

“제가 천계의 물건이라서 그걸 인간에게 강제할 수가 없어요.”

“아, 무슨 말인지 알았다. 근데 그럼 너는 예전에 사조님하고는 이 계약을 안 한 거네?”

“네, 그땐 저도, 구검님도 제 쓰임새를 제대로 몰랐어요.”


내가 물 한 모금을 더 마시고 말했다.


“후, 솔직히 나 좀 떨리는데? 무섭기도 하고.”

“뭐가요?”

“나 사실 다른 세상에서 한 번 죽었다가 환생한 몸이거든. 그래서 이런 계약이 좀 남다르게 느껴져.”

“저 그거 알고 있어요.”

“응? 뭘 알아?”

“제겐 보여요. 지상님의 과거가.”

“그래?”

“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혹시 내가 현재 고민하는 문제도 보여?”

“아니요. 지상님의 생각까지는 알 수 없어요. 단지 지상님이 살아온 흔적이 보여요.”

“······흠.”



*



내가 허공에 만들어진 안개 속에서 빠져나와 대청 바닥에 천천히 내려섰다.

약간의 어지럼증이 느껴졌으나 대충 참을만했다.

주변이 밝아지자마자 능소와 조홍매를 찾았다.

두 사람은 상춘각 처마 밑에서 세상모르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때 사사키 유이가 감자 바구니를 들고서 상춘각 안으로 들어서다 나를 발견했다.


“문주님?”

“어, 그래. 유이.”

“뭐 하세요? 거기서?”

“잠깐 생각 좀 하고 있었다. 음, 춥네, 안으로 들어가자. 근데 그 감자 방금 찐 거니?”

“네, 따듯해요. 배고프시면 같이 먹어요.”

“응, 일단 능소랑 홍매 좀 챙기자.”


내가 능소를 등에 업자, 유이가 홍매를 일으켜 부축했다.

유이가 물었다.


“문주님, 근데 그거 뭐에요?”

“응? 뭐?”

“문주님 가슴에 찬 거요. 전에는 없었던 거 같은데.”

“아, 이거? 그냥 방울이야, 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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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잔혹동산(1) 23.09.04 464 9 16쪽
30 아상(阿裳) +1 23.09.04 456 7 23쪽
» 원걸영(元傑鈴) 23.09.02 470 9 18쪽
28 능소(凌瀟) 23.08.31 498 10 14쪽
27 천자(天子) 23.08.30 526 9 17쪽
26 이화문(梨花門) 23.08.29 524 8 16쪽
25 노예시장 23.08.28 574 9 17쪽
24 천룡회 회합(2) 23.08.26 552 8 13쪽
23 천룡회 회합(1) 23.08.25 550 10 13쪽
22 당면한 위협 23.08.24 564 9 14쪽
21 문득 깨달은 사실 23.08.23 578 8 14쪽
20 진실을 향한 욕망보다 강한 건 없다 23.08.22 593 8 15쪽
19 혈화문 출판사 23.08.21 605 9 13쪽
18 감금된 자들 23.08.19 638 9 19쪽
17 조홍매(趙红梅) 23.08.18 641 10 15쪽
16 뜻밖의 손님 23.08.17 732 9 16쪽
15 환술의 게이샤 23.08.16 768 9 13쪽
14 진소추의 화섭자 23.08.15 774 12 15쪽
13 백화(白華) 23.08.14 813 10 15쪽
12 혈화문 문주가 되다 23.08.12 853 10 13쪽
11 출소 23.08.11 884 11 16쪽
10 뇌옥 23.08.10 892 12 14쪽
9 난전 23.08.09 926 12 13쪽
8 함정 +2 23.08.09 909 14 14쪽
7 매복 23.08.08 981 12 13쪽
6 대국(對局) 23.08.07 1,113 13 13쪽
5 당구(唐嶇) 23.08.04 1,238 1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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