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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도황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이화영
작품등록일 :
2023.07.31 18:04
최근연재일 :
2023.12.30 10:43
연재수 :
9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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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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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9
글자수 :
649,521

작성
23.08.07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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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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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대국(對局)

DUMMY

당홍설이 즉답을 피한 뒤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몸종 소소(笑笑)가 들어와 등잔의 심지를 갈았다.


“소소야, 지상 오라버니한테 술 한 잔 따라드려라.”

“···네, 어머님.”


내가 술잔을 비우자, 소소가 도라지 안주를 집어서 내 입가로 가져왔다.

기생집이라면 단박에 거절했겠지만, 아이가 무안해할까 싶어 얼른 받아먹었다.

그 모양새를 보고 당홍설이 피식 웃더니 소소에게 미소하며 말했다.


“그래, 너 거기 앉아서 그렇게 지상이 술 시중 좀 들어라. 혹시 아니? 우리 혈화문 일인자 지상 오라버니가 네 머리를 올려줄지?”


문주의 농에 내가 벌컥 성을 냈다.


“장난 그만하시고, 빨리 대답이나 해줘요.”

“몰라. 결정을 못 내리겠어.”

“그냥 이번엔 포기합시다. 그러면 깔끔하잖아요. 천룡회 회장 선거가 장난도 아니고, 돈도 엄청 깨질뿐더러 사람도 죽어 나갈 텐데.”

“그걸 누가 모르니? 하지만 만일 비룡방이 선거에서 이기면 어떡할래? 걔들이 우리를 가만히 놔둘 것 같아?”

“가만히 안 놔두면요.”

“어휴, 지상이 너도 너무 순해 빠졌어. 그 녀석들 분명 이를 갈고 있을 거야. 저번 선거에서 추문강이 너한테 그렇게 당했지. 또 비룡 그 양반도 결국엔 너희 삼형제한테 무릎 꿇었잖아. 그 치욕을 그 사람들이 벌써 잊었다고? 어림없지, 어림없어. 녀석들은 반드시 복수를 준비하고 있을 거야.”

“우리 쪽에도 손실이 있었잖습니까.”

“그래, 그랬지. 내 사랑, 그 사람이 죽었지. 아무 잘못도 없는 그 사람이 나 때문에 죽었지.”

“그러니까 포기합시다. 누님. 만일, 선거 끝난 후에 비룡방이나 다른 연놈들이 혈화문에 해꼬지라도 할라치면 내가 책임지고 녀석들을 처단하겠소. 또 천룡회에도 그 죄를 캐묻고.”

“퍽이나 그러시겠다. 그사이 네가 혈화문을 안 떠나면 다행이지.”


목에 사레가 걸렸다.

켁켁 기침 후, 능청스럽게 물었다.


“들었소?”

“들었지, 그러면. 이 못된 자식아. 내가 아무리 몸져누워 있어도 그 정도 사정도 모르고 있을까 봐?”

“쩝.”

“그래, 어디 이 누님 몰래 시작한 사업은 잘돼가냐?”

“아직 초창기라···.”

“그래? 그럼 초창기니까 나도 거기 한 숟갈 얹으면 안 될까?”

“안되오.”

“···아주 칼이네, 칼.”


당홍설이 땅이 꺼지라 긴 한숨을 내쉬더니 술잔을 비우고 말했다.


“내일 곽규 만나면 일단 내가 고민 중이라고 말해 둬. 상황을 조금만 더 지켜보자.”

“알았소, 그리 말하리다.”


내가 당홍설의 빈 잔에 술을 따랐다.

오늘따라 술맛이 달고 좋았다.



*



오랜만에 당홍설 문주를 만나고 왔더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우려와는 달리 그녀의 상태가 비교적 괜찮아 보여서였다.


혈화문 전체를 놓고 볼 때.


역시 제일 좋은 방향은 당홍설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예전과 같은 날카로운 총기를 되찾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혈화문을 떠나도 아무 걱정할 것이 없다.

하지만 세상사가 어찌 사람 마음처럼 되겠는가.

그러한 이유로 나는 어제 당구라는 차선책을 선택했다.

당구가 만일 내가 말한 것들을 완수해낸다면, 나는 아우들에게 당구를 잘 보필하겠다는 맹세라도 시킬 생각이다.

그러면 되었다.

그리하면 모든 게 깔끔해졌다.


돌 놓는 소리가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곽규가 신중하게 흑돌을 착점했다.

그렇다.

지금 나는 소중원(小中原)에 있는 백운기원에서 천룡회 총관 곽규와 바둑을 두고 있다.

벌써 세 판째다.

첫판은 내가 졌다.

하도 오랜만에 두는 바둑이라 감을 못 찾은 탓도 있고, 또 곽규의 실력을 얕잡아 본 탓도 있다.

사람들은 흔히 바둑을 전쟁에 비유하곤 하는데 나는 바둑이 무인들의 결투와 더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처음 만난 상대일지라도 그 사람의 기도, 눈빛, 자세만 봐도 상대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듯 바둑도 마찬가지다.

초반 포석 몇 수만 살펴도 상대의 기력을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첫판을 졌다.

하하하.

곽규의 바둑은 일종의 짠돌이 기풍이다.

짠돌이들은 항상 확률적으로 안전한 길을 선택하고 자신의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방향으로 돌을 진행한다.

때문에 상대는 느긋한 곽규를 보면서 자신이 불리하다는 착각에 빠진다.

초조해진 상대는 두지 않아도 될 무리수를 두게 되고 종국엔 제 목을 조르는 악수까지 두면서 파멸에 이른다.


하지만 나는 그런 어설픈 실력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다.

둘째 판은 당연히 내가 이겼다.

곽규의 의도를 철저히 무시하고 내 갈 길을 묵묵히 가자 짠돌이는 결국 대범한 자에게 무릎 꿇어야 했다.

그게 바둑의 섭리이자 검술의 이치다.


곽규가 놀라더니 한 판 더 두자고 했다.

무승부로 끝날 수도 있던 대국은 결국, 마지막 결승으로 이어졌다.


곽규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상당히 적극적인 자세로 내 땅에 침투해온다.

녀석이 전술을 바꿨다.

바둑판 곳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단수를 치고, 맞단수를 치고, 죽은 돌을 거둬낸 자리에 다시 돌이 들어가기도 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전투가 이어지는 와중에 곽규가 태연한 얼굴로 나를 힐끗힐끗 훔쳐봤다.

마치 검을 맞댄 상대의 표정으로 그가 노리는 곳이 어디인지 알아내려는 것처럼.

이럴 땐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는 게 상식이지만 나는 성격상 그리하지 못한다.

그냥 대놓고 내가 노리는 다음 급소가 어딘지를 눈으로 가리켰다.

그리곤 상대가 미처 대비하기도 전에 가공할 힘으로 단방에 찍어 눌러 버린다.

결과는 압승.

내 땅에 들어와서 한껏 설쳐대던 곽규의 대마가 모조리 몰살당했다.


“호.”


곽규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한참이나 바둑판을 내려다봤다.

행여 자기가 아직 찾지 못한 활로가 있을까 싶어서다.

하지만 그런 건 없다.

이미 몇 수 전에 모든 퇴로를 막아버렸다.

그게 바로 고수와 하수의 차이다.

바둑이었으니 망정이지, 만일 검을 겨뤘다면 곽규의 목은 이미 오래전 그의 몸뚱이에서 떨어졌다.


달그락-


곽규가 돌을 던졌다.


“졌습니다. 알고 보니 지상님은 검술뿐만 아니라 바둑까지 상당한 실력을 보유하고 계셨군요.”

“과찬이십니다. 사실 애 많이 먹었습니다. 곽규님 실력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아서 말입니다.”

“하하, 농담도 잘하십니다. 저야 뭐 경로당 바둑 수준에 불과합니다, 하하하. 암튼, 오랜만에 재밌는 바둑을 뒀습니다. 자, 그럼.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지상님, 이쪽으로 오시죠.”


우리는 후원에 있는 팔각정으로 이동했다.

점심을 먹고 오긴 했는데, 집중해서 바둑을 뒀더니 허기가 졌다.

마침 기원 사람들이 내온 밥상에 체면 차리지 않고 먼저 손을 댔다.

곽규가 학과 소나무가 그려진 사기잔에 차를 따르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지상님, 오늘 제가 지상님을 따로 뵙자고 한 이유를 아십니까?”


내가 육전을 입에 한가득 물고 대답했다.


“천룡회 회장 선거 때문 아닙니까?”

“맞습니다. 지상님. 시간이 많이 지체됐으니 거두절미하고 묻겠습니다. 혹시 이번 선거에 지원하십니까?”

“안 그래도 그 문제로 어제 문주님을 따로 뵈었는데, 우리 문주님은 아직 고민이 끝나지···.”

“아니, 아니. 지상님. 지금 제가 묻는 건 지상님의 뜻입니다. 저는 지상님의 뜻을 알고 싶습니다.”


내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곽규를 쳐다봤다.


“곽규님이 뭔가 착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 저는 아직 혈화문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현재 혈화문 문주는 당홍설님입니다. 곽규님이 그걸 모르실 리 없으실 텐데, 왜 그런 소리를···.”


곽규가 눈에 힘을 주고 대답했다.


“당홍설 문주의 뜻은 알 필요도 없습니다. 그녀는 무조건 이번 선거에 지원할 겁니다. 하지만, 천룡회 회장 선거의 규칙상 한번 지원했던 자는 자격이 안 됩니다. 그러니 그녀는 문주 자리를 누군가에게 물려줄 수밖에 없고, 그 사람이 지상님이 될 거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도 지상님이 이번 선거에 꼭 지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가도 너무 나가시는군요.”

“아닙니다. 현재 천룡회 사정을 아신다면 제 말이 결코 헛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시게 될 겁니다.”

“천룡회 사정요?”

“네.”

“천룡회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곽규가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가 상을 빙 돌아 내 옆으로 바싹 붙어 앉으며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말했다.


“지상님, 오늘 제가 지상님께 드리는 얘기는 아무에게도 말씀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문주께도 말입니까?”

“네, 야야장과 관련한 그 어떤 사람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십시오. 한 일주일 정도 시일이 지난 후에는 말씀하셔도 상관없지만, 그 전까지는 꼭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잠시 생각 후 고개를 주억였다.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곽규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더니 소리 죽여 말했다.


“이번 천룡회 회장 선거에 불순 세력이 개입했습니다.”

“불순 세력이요?”

“네. 왜, 왜구가 이번 선거에 개입했습니다.”

“······?”

“아직 그 실체가 확실하게 나타나지 않아 저희 천룡회에서도 첩보만 모으고 있을 뿐 마땅히 대처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면 왜가 개입했다는 정보는 어디서 들었습니까?”

“무림맹에 심어둔 저희 측 간자로부터입니다.”

“그럼 혹시 무림맹도?”

“네. 맞습니다. 무림맹과 왜구가 힘을 합쳐 이번 천룡회 회장 선거에 개입하고 있습니다. 포섭하려는 대상은 당연히 야야장 오대 흑도 세력 중 하나일 겁니다.”


충격 그 자체였다.

왜구도 문제지만, 그 뒤에 무림맹이 있다는 사실이 더욱 경악스러웠다.

이후 곽규는 놈들이 정확히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또 이번 회장 선거에 어떻게 개입하려는 것인지를 며칠 내에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돌연 떠오른 생각에 내가 곽규에게 물었다.


“그런 사정이 있다면, 오늘 곽규님이 저를 만나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상당히 경솔한 행동 아닙니까? 막말로 우리 혈화문이 놈들에게 포섭됐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저도 마찬가지고요.”


곽규가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 대답했다.


“하하, 당연히 그 부분도 염두에 두었습니다. 지상님 말씀처럼 혈화문이 포섭됐을 수도 있죠. 하지만, 단언컨대 지상님은 녀석들의 포섭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왜죠?”


내가 맹한 얼굴로 되묻자 곽규는 대답 없이 술만 연거푸 따라 마셨다.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니 곽규의 말과 행동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몇 년 전 나는 밀수 일 때문에 남해를 방문했다가 왜구들과 마찰을 빚은 적이 있었다.

녀석들이 우리에게 통행세를 요구했고 나는 이미 다른 녀석들에게 그걸 지불하고 온 터라 단박에 거절했다.

그때 거기서 내가 왜구 수십 명을 죽였다.

그 뒤 죽은 녀석들의 우두머리가 내 목에 현상금을 걸었고 그것 때문에 몇 달간 꽤 귀찮은 일이 많았다.

결국 내가 다시 그 우두머리를 찾아가 녀석을 죽인 후에야 모든 일이 깨끗이 마무리됐다.


곽규가 나를 믿는 건 아마 그 일 때문인 것 같았다.

그리고 만약 내 생각이 맞는다면 곽규는 방금 나한테 이번 선거에 개입한 놈들이 그때 내가 죽인 놈들과 연관됐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


어느 정도 상황 파악이 끝나자 나는 곽규가 내민 술잔에 잔을 부딪친 후 남은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그 사이 곽규가 재차, 천룡회 회장 선거에 지원해 달라 부탁했다.

나는 곽규에게 차마 내가 곧 은퇴할 예정이라 그건 절대 불가능하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곽규와 헤어진 후, 나는 야야장으로 돌아가기 전에 소중원 만물시장에 들렀다.


천룡회 회장 선거도 문제지만 내겐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바로 내 사업 관련 일이었다.


만물시장 입구를 지나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서자 널찍한 좌판에 각종 서적을 진열해놓고 팔고 있는 상인을 발견했다.

그 앞에 서서 좌판을 쭉 훑으며 상인에게 물었다.


“혹시 최근에 나온 서적들은 없소이까?”

“잠시만요. 아까 근처 사는 아낙네들이 떼거리로 몰려와 왕창 사가는 바람에 창고에 가서 재고를 좀 꺼내와야겠습니다. 손님,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알았소, 다녀오시오.”


상인이 잽싸게 창고로 뛰어간 사이 나는 진열대 위 책들 사이에서 한참이나 뭔가를 찾아 헤맸다.

하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나는 진열대 뒤에 숨겨진 의자를 끌어다 자리하고 앉았다.

아무 책이나 골라 눈대중으로 읽으면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갑자기 뒤편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지상님! 지상님!”


돌아보니 웬걸?

그 여자였다.

어제 죽림촌 내 숙소를 찾아왔던 금강상단 대행수 마심아 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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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이화문(梨花門) 23.08.29 522 8 16쪽
25 노예시장 23.08.28 566 9 17쪽
24 천룡회 회합(2) 23.08.26 549 8 13쪽
23 천룡회 회합(1) 23.08.25 549 10 13쪽
22 당면한 위협 23.08.24 561 9 14쪽
21 문득 깨달은 사실 23.08.23 575 8 14쪽
20 진실을 향한 욕망보다 강한 건 없다 23.08.22 590 8 15쪽
19 혈화문 출판사 23.08.21 602 9 13쪽
18 감금된 자들 23.08.19 634 9 19쪽
17 조홍매(趙红梅) 23.08.18 634 10 15쪽
16 뜻밖의 손님 23.08.17 727 9 16쪽
15 환술의 게이샤 23.08.16 765 9 13쪽
14 진소추의 화섭자 23.08.15 770 12 15쪽
13 백화(白華) 23.08.14 810 10 15쪽
12 혈화문 문주가 되다 23.08.12 850 10 13쪽
11 출소 23.08.11 881 11 16쪽
10 뇌옥 23.08.10 888 12 14쪽
9 난전 23.08.09 924 12 13쪽
8 함정 +2 23.08.09 906 14 14쪽
7 매복 23.08.08 977 12 13쪽
» 대국(對局) 23.08.07 1,110 13 13쪽
5 당구(唐嶇) 23.08.04 1,233 1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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