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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도황제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이화영
작품등록일 :
2023.07.31 18:04
최근연재일 :
2023.12.30 10:43
연재수 :
93 회
조회수 :
45,277
추천수 :
659
글자수 :
649,521

작성
23.08.29 10:07
조회
523
추천
8
글자
16쪽

이화문(梨花門)

DUMMY

화상과 칠혈랑(七血狼) 패거리의 싸움이 시작된 지 일각이 지났지만, 아직 승패가 결정나지 않았다.

칠혈랑 중 두 녀석이 화상의 철장에 다리와 어깨를 얻어맞아 쓰러졌고 화상 역시 찢어진 가사(袈裟) 밑으로 시뻘건 핏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싸움의 열기는 뜨겁게 달아오른 채 좀처럼 식을 기미가 없었다.

환락시장 광장 역시 싸움 구경을 하러 몰려든 사람들과 경매를 준비 중이던 사람들이 뒤엉켜 북새통을 이룬 상태였다.

한쪽 구석에서 상황을 예의 주시하던 지상으로선 이 모든 게 탐탁지 않았다.

처음엔 그저 재미 삼아 구경했지만 싸움이 길어지자 슬슬 지루해졌다.

게다가 지상은 노예들을 사서 장원으로 돌아가는 것 말고도 오늘 잡혀 있는 일정이 하나 더 있었다.

그는 자정 무렵 서하강 나루터 인근에서 누군가와 만나기로 약속해 놓은 상태였다.


“흠.”


지상이 차갑게 한숨을 내쉬며 마차 지붕을 의미 없이 두드리고 있자 사사키 유이가 넌지시 물었다.


“문주님, 결국엔 저 화상이 이기겠죠?”

“···그걸 내가 어찌 아누.”


누가 이기든 관심조차 없는 지상이었다.

조홍매가 지상의 빈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자초지종은 잘 모르겠지만, 저도 화상님이 이기셨으면 좋겠어요.”


뒤편에 앉아 전병을 먹던 안개위가 팔을 뻗어 사사키 유이에게 안겨있는 황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 생각엔 화상님은 저 못된 무뢰배들이 황구를 잡아먹으려는 걸 막으려고 그러셨던 거 같아. 때문에 저분은 개 한 마리를 위해 자기 목숨까지 내놓은 진짜 살아 있는 부처라고 할 수 있어.”


지상이 안개위와 홍매, 유이를 돌아보며 쌀쌀맞게 말했다.


“알았으니까 닥치고 조용히들 좀 있어.”

“······.”


그때 광장 입구로 소와 나귀가 끄는 수레 다섯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레에는 철창 11개가 나뉘어 실려 있었고 추문강과 강군은 선두와 후미에서 소를 타고 오고 있었다.

일행을 발견한 추문강이 멀리서 손을 흔들며 반갑게 외쳤다.


“어이!”


지상이 홍금보와 안개위를 추문강을 도우라고 보낸 후 자신도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그가 아까 광장진입 시 경매를 시작하려 했던 상인을 찾아가 물었다.


“이보시오, 경매를 언제쯤 시작할 수 있겠소?”

“우선 저 싸움이 끝나고 봐야 하지 않겠소? 금방 끝날 줄 알았더니만, 생각 외로 길어져서 나도 답답해 죽겠소이다.”


결국 결심한 지상이 두 겹 세 겹으로 둥근 원을 만들고 있는 인파를 뚫고 광장 중심에 나타났다.

낯선 이의 출현에 모두의 시선이 지상에게로 향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상이 대치 중인 화상과 칠혈랑 오인을 향해 말했다.


“어이, 거기, 당신들. 지금 여기서 경매를 시작해야 하니까 당장 싸움을 멈추시오. 잠시 한쪽으로 물러나 호흡도 고르고 체력도 보충하면서 쉬었다가 나중에 경매가 끝나면 다시 싸우든지 하고, 일단 빨리 여기서 비키시오.”


칠혈랑 중 얼굴에 지저분한 칼자국과 땟국물이 좔좔 흐르는 사내가 지상을 향해 혀를 차며 말했다.


“미친놈.”


그 옆에 서 있던 밀짚모자를 눌러쓴 칠혈랑 두목도 곡도의 날을 혓바닥에 갖다 댄 채로 지상에게 경고했다.


“경매 좋아하고 자빠졌네, 뒈지기 전에 빨리 꺼져라. 어른들 일에 함부로 나섰다가 큰코다친다.”


그때 구경꾼 중 누군가 외쳤다.


“이지상이다. 저자는 검귀 이지상이다!”


그 말이 신호탄이라도 된 듯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외침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혈화문 문주다, 악명 높은 혈화문 문주가 소중원에 나타났다.”

“헐, 진짜야?”

“진짠가 본데?”

“현존 흑도 최강 검객이 소중원을 방문했다.”

“저 사람이 차기 천룡회 회장 후보 1순위라면서?”

“맞을걸?”


칠혈랑 우두머리의 얼굴이 삽시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땀에 찌든 화상의 지친 얼굴에 잠깐이나마 한 줄기 광명이 내려앉았다.

지상이 화상과 칠혈랑, 구경꾼들을 향해 담담히 말했다.


“됐으니까 빨리 싸움이나 멈추고 빠지시오. 거기 당신들도 그만 구경하고 가서 제 할 일들 하시오. 응? 어서!”


그때 또 다른 자가 외쳤다.


“지상 문주, 이왕 오신 김에 당신의 검술 실력 좀 구경합시다. 마침 적당한 상대도 있잖소. 화상이나 칠혈랑 둘 중 하나 상대로 실력을 보여주시오. 아니면 둘 다 상대하시던가.”

“맞소이다. 이런 날이 아니면 우리가 언제 혈화문 문주 실력을 다 구경해 보겠소.”


그러자 지상이 짜증 섞인 어조로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말했다.


“거기 방금 얼굴 숨기고 말한 새끼, 당장 앞으로 나와. 거기 너, 너 말이야. 곱슬머리, 그래 너, 아닌 척 옆 사람 쳐다보지 말고, 빨리 앞으로 나와.”


얼굴 전체에 구레나룻과 곰보 자욱이 수북한 털북숭이 대한이 슬금슬금 앞으로 걸어 나왔다.

지상이 대번에 녀석의 뺨을 후려쳤다.

대한이 삼 장이나 날아가 구경꾼들 속으로 떨어졌다.

지상이 다시 한번 사람들을 향해 일갈했다.


“또 말하고 싶은 새끼 있으면 당당하게 앞으로 나와. 뒤에 숨어서 병신처럼 지껄이지 말고. 응? 없으면··· 당장 해산이나 처해! 이 시발년들아.”


지상의 우레와 같은 한 마디에 구경꾼들의 대열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지상이 아까 그 상인을 불러 광장에 경매용 시설들을 빨리 설치하라 명령했다.

기다렸던 작업자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1장 높이의 단을 후다닥 설치하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뚫린 골목에서도 반라의 노예들이 상인들 손에 이끌려 광장으로 끌려 나왔다.

칠혈랑의 우두머리와 나머지 녀석들은 앞서 쓰러졌던 동료를 챙겨 은근슬쩍 광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지상이 우연히 그들을 발견하곤 칠혈랑 우두머리를 향해 말했다.


“야, 너 이리 와봐.”

“네? 저요?”

“그래, 너.”


지상이 주머니에서 은자 쪼가리를 꺼내 다가온 칠혈랑 우두머리에게 내밀며 말했다.


“이름이 뭐야?”

“···모개(牟介)라고 합니다.”

“이거 얼마 안 되지만 너희 애들 치료비랑 개값으로 쓰고 화상한테 복수할 생각은 하지 마라.”


모개가 은자 세 냥을 받아들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너무 적··· 아니 그것보다 지상님. 문주님도 나름 흑도의 실력자이신데 지금 상황에 저희만 나무라고 화상은 감싸시는 게 좀 그렇습니다.”


지상이 한숨을 내쉬더니 주머니에서 은자 한 덩이를 꺼내 모개의 품에 안겨주며 말했다.


“그래, 말 잘했다. 남자 새끼가 그 정돈 돼야지. 하지만 말이다. 아무리 적이라도 강호에서 스님은 함부로 죽이는 게 아니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모르겠는데요.”

“이 사람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부처님 일을 대신하는 스님은 건드는 게 아니라니까. 이해가 안 되면 그냥 그런 줄로만 알고 앞으로도 엔간하면 스님하곤 다투지 마.”

“넵.”

“알아들었으면 가봐.”

“가, 감사합니다. 근데 지, 지상님, 혹시 칼잡이들 쓰실 일 있으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지상이 문득 돌아서는 모개에게 물었다.


“어디로 연락하면 되는데?”


모개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천룡회 은룡채 가기 전에 버려진 사찰이 하나 있는데, 이름이 현충사인가 할 겁니다. 거기로 사람 보내시면 저희가 알아서 모시겠습니다.”

“좋아, 근데 너희 인원은 그게 다야? 일곱?”

“아닙니다. 더 있습니다. 최대로 모으면 이십은 너끈히 모을 수 있습니다.”

“그래, 일단 알았다.”


모개와 칠혈랑 패거리가 사라지자 한쪽에 비켜 서 있던 화상이 찢어진 가사를 추스르며 지상에게 다가왔다.

지상이 그를 향해 공수를 들어 보이자, 화상이 합장하며 말했다.


“시주님의 도움으로 이 법오(法奧) 오늘 큰 화를 면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상이 대답했다.


“법오 화상, 여기는 다른 곳도 아닌 소중원입니다. 무림 고수도 눈뜨고 코 베이는 곳이란 말입니다. 아무리 축생의 생명이 귀해 보였더라도 일단 자기 목숨부터 좀 챙기고 보십시오.”

“하하, 시주님의 말씀 감사하기 그지없으나 부처님께선 자리를 가려가며 선행을 베풀지 않으셨습니다.”

“알지요. 아는데···.”

“시주님의 따듯한 마음 제 가슴 깊이 담아두겠습니다. 그럼 이만 소생은 물러가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젊은 화상이 몸을 반대로 돌리더니 목탁을 두드리며 광장을 빠져나갔다.

지상은 화상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잠깐 그곳에 멈춰서서 눈을 감고 목탁 소리를 감상했다.

어느샌가 다가온 추문강이 상념 중인 지상을 깨웠다.


“뭐해? 여기서 멍하니.”

“응? 아니야. 아, 경매 시작하나 보다. 가자.”


처음 경매로 나온 노예들은 소인들이었다.

체격도 별로고 무공도 모르는 놈들인데 생각보다 너무 비쌌다.

지상은 참을성 있게 다음 노예들을 기다렸다.

두 번째 상인이 데리고 나온 노예들은 북방 고원 쪽 애들이었다.

추운 곳 사람들답게 몸집이 우람했다.

그 뒤로 대기 중인 노예들을 쭉 훑어본 지상은 고원 출신 노예들을 스무 명 가량 사들였다.

경쟁은 없었다.

광장에 모인 사람 중에 이제 지상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서였다.

지상은 아까 따로 눈여겨 봐둔 묘족 노예 여성 하나를 더 구입하고 경매를 끝마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르러 뜻하지 않게 가격 경쟁이 붙었다.

처음 보는 묘령(妙齡)의 여인이 지상이 찜해놓은 묘족 여성에게 거의 집착에 가까운 관심을 보였다.

지상이 경매사를 향해 가격이 적힌 나무판을 들어 올렸다.

경매사가 좌중을 향해 소리쳤다.


“자, 십오만 냥, 십오만 냥 나왔습니다.”


중년 여성이 바로 가격을 올렸다.


“이십만 냥.”

“오, 이십만 냥 나왔습니다. 이십만 냥.”


사사키 유이와 안개위가 흥미진진한 눈으로 지상과 추문강을 바라봤다.

추문강이 지상에게 물었다.


“굳이 비싼 돈 주고 저 여자 노예를 사려는 이유가 뭔데?”

“야야장에선 좀처럼 만나기 힘든 묘족 출신이잖야.”


한때 묘강밀림 지역에 많이 분포해 살았던 묘족은 현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거의 멸종 상태에 이르렀다.

때문에 노예라 할지라도 그 희소성이 상당했다.


“나중에 선거 끝나고 밀림에 있는 청방 녀석들 상대하려면 아무래로 우리가 묘족을 보유하고 있는 게 유리하잖아.”

“아···.”

“근데 방금 저 여자가 얼마 불렀지?”


유이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이십만 냥이요.”


지상이 앞에 놓인 광주리 안에서 삼십만 냥이 적힌 나무판을 찾아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오, 삼십만 냥, 삼십만 냥 나왔습니다. 더 없으면 다섯까지 센 다음 낙찰을 결정짓겠습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땅 땅 땅. 이 노예는 혈화문의 이지상 문주님께 낙찰됐습니다.”

“저 경매사 새끼는 왜 내 이름까지 부르고 지랄이야.”

“하하, 그럼 이제 다 된 거지?”

“엉, 가자. 늦었다.”


잠시 뒤 지상이 일행과 함께 수레에 노예들을 싣고 자리를 뜨려는데 조금 전 경매장에서 경쟁이 붙었던 중년 여인이 그녀의 시종들과 함께 일행 앞에 나타났다.

중년 여인이 하얀 여우 털로 만든 불진(拂振)을 얼굴에 부채질하듯 부쳐대며 지상에게 말했다.


“이봐요, 난 이화문(梨花門)의 은이화(殷梨花)라고 해요.”


지상이 그녀에게 공수하며 대답했다.


“반갑소. 나는 혈화문의 이지상이라고 하오.”


은이화가 지상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


“그쪽이 누군지는 관심 없어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어요. 아까 그 아이 제게 다시 파세요. 돈은 원하는 만큼 드리겠어요.”

“···그럴 바엔 차라리 아까 입찰 때 가격을 더 올리지 그랬소.”

“그리 하고 싶었지만, 수중에 있는 은자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이화문의 명예를 걸고 며칠 안으로 돈을 보내드릴 터이니 그 아이를 저에게 넘기세요.”

“싫소만.”

“네?”

“싫다고 말했소. 나는 현금 장사만 하는 사람이오. 당신을 본 것도 처음이고 또 이화문과도 거래가 소원한데 도대체 무얼 믿고 당신과 외상 거래를 한단 말이오.”


은이화가 지상을 향해 뜨거운 숨결을 내뱉었다.

향수 냄새인지 뭔지 모를 기분 좋은 향이 지상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그녀가 시종 하나를 돌아보며 눈짓했다.

시종이 들고 있던 단단한 목합의 뚜껑을 열어 즉시 지상을 향해 내보였다.

목합 안에는 칠흑처럼 검은빛을 띤 풀 한 포기가 황금색 비단 위에서 투명한 이슬을 머금은 듯 영롱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은이화가 냉랭히 말했다.


“오풍초(烏風草)에요. 천년이나 묵은 거예요. 이것을 계집의 몸값으로 대신 드리겠어요.”


추문강이 눈깔이 뒤집혀 지상의 손목을 억세게 붙잡았다.

오풍초.

주화입마에 걸린 사람도 이 풀 한 잎사귀만 달여먹으면 기혈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물론이와 운이 좋으면 반로환동(返老還童)의 기적도 체험할 수 있다는 그 심신보약(心神補藥)의 최강자 오풍초.

정말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어쩌면 독의 후유증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능소에게 있어 최고의 해독제가 될 수도 있는 영약이 거짓말처럼 지상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능소가 타고 있는 검은 마차의 창문이 슬며시 열렸다.

이제 모두는 지상이 ‘네’라고 대답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데 지상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답안지를 꺼내 보였다.


“거절하겠소. 시간 낭비 그만하고 가보시오. 계속 무모하게 떼를 쓴다면 나도 이 이상은 참지 않겠소.”


지상의 불호령에 은이화의 뺨이 파르르 떨렸다.

은이화가 하는 수 없이 시종들과 함께 길옆으로 비켜났다.

그의 말 마초에 올라탄 지상이 길게 늘어선 행렬의 선두로 나가 천천히 말을 달렸다.

검은 마차의 창문이 조용히 닫혔다.

노예들을 실은 다섯 대의 수레가 일제히 마차 후미로 따라붙었다.

은이화의 시종이 멀어지는 혈화문 행렬을 바라보며 은이화에게 물었다.


“눈치챈 걸까요?”

“···모르겠다. 일단 돌아가서 문주님께 원걸영(元傑鈴)을 뺏겼다고 보고부터 올리자. 아, 그나저나 생각할수록 열 받네. 이지상이라는 저 남자, 내가 너무 만만히 봤어.”


같은 시각 추문강이 지상과 나란히 달리며 물었다.


“지상아.”

“응.”

“도대체 왜 그랬냐? 오풍초였다. 오풍초. 내 생전 오풍초는 처음 봤다고.”

“그래, 나도 처음 봤다.”

“근데 왜 그랬냐고.”

“가짜야, 그거.”

“응?”

“가짜라고, 아까 그 여자가 가짜니까 당연히 오풍초도 십중팔구 가짜일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여자가 가짜라니?”

“추문강, 너 이화문 사람 만나본 적 없지?”

“응, 워낙 소문만 무성하고 신비에 쌓인 문파잖아. 그러는 넌. 만나본 적 있어?”

“난 있어.”

“헐, 너 설마 은이화를 만나본 거야?”

“응, 아주 오래전에 딱 한 번.”

“아, 그래서··· 그 여자가 가짜라는 걸 단번에 알아챈 거구나. 야, 그러면 진작 말을 해줘야지.”

“궁금했거든. 은이화를 사칭한 여자가 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그러는 건지.”

“이화문 사칭까지 해서 구하려는 노예라면 그 묘족 여자애한테 뭔가 특별한 구석이라도 있는 건가?”

“보기엔 그냥 평범한 시골 여자애 같던데··· 차차 알아보면 되겠지.”

“봉사 문고리 잡듯 보물이라도 낚아챈 거면 좋겠다··· 아, 근데 지상아, 너는 언제 은이화하고 인연을 맺은 거냐?”

“실은··· 은이화가 내 사부 유무성과 약간 인연이 있어. 사실 그 여자 나이도 엄청 많아. 주안술(駐顔術)이 워낙 뛰어나서 겉모습만으론 절대 나이를 추정할 수 없지. 그리고 미리 경고하는데, 그녀를 볼 때 조심해야 해. 은이화를 한 번만 봐도 대다수 남자들은 그녀한테 빠져서 자기 의지로는 헤어나오지 못해.”

“그 정도야?”

“응, 거의 서시(西施)가 살아 돌아왔다 해도 믿길 정도로 엄청난 미인이야. 사실 그 내부는 엉큼한 할머니지만, 흐흐흐.”

“와, 할머니든 아니든 나도 한번 꼭 만나보고 싶다.”

“흐흐, 추문강, 너 같은 놈이 제일 위험해.”


서하강 둑길을 따라 나루터에 도착했을 땐 이미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은 뒤였다.

지상은 행여 약속했던 이가 가버린 건 아닐까 걱정하며 일행과 노예들을 뒤편에 정렬시켜놓고 추문강을 데리고 약속 장소인 나루터 근처 찻집으로 들어갔다.

다행히도 만나기로 했던 사람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찻집 구석에 앉아 창밖으로 나루터를 바라보고 있던 황건명이 지상이 가게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환한 얼굴로 지상을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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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원걸영(元傑鈴) 23.09.02 469 9 18쪽
28 능소(凌瀟) 23.08.31 498 10 14쪽
27 천자(天子) 23.08.30 526 9 17쪽
» 이화문(梨花門) 23.08.29 524 8 16쪽
25 노예시장 23.08.28 573 9 17쪽
24 천룡회 회합(2) 23.08.26 552 8 13쪽
23 천룡회 회합(1) 23.08.25 550 10 13쪽
22 당면한 위협 23.08.24 564 9 14쪽
21 문득 깨달은 사실 23.08.23 578 8 14쪽
20 진실을 향한 욕망보다 강한 건 없다 23.08.22 593 8 15쪽
19 혈화문 출판사 23.08.21 605 9 13쪽
18 감금된 자들 23.08.19 638 9 19쪽
17 조홍매(趙红梅) 23.08.18 640 10 15쪽
16 뜻밖의 손님 23.08.17 731 9 16쪽
15 환술의 게이샤 23.08.16 768 9 13쪽
14 진소추의 화섭자 23.08.15 773 12 15쪽
13 백화(白華) 23.08.14 813 10 15쪽
12 혈화문 문주가 되다 23.08.12 852 10 13쪽
11 출소 23.08.11 884 11 16쪽
10 뇌옥 23.08.10 892 12 14쪽
9 난전 23.08.09 926 12 13쪽
8 함정 +2 23.08.09 909 14 14쪽
7 매복 23.08.08 981 12 13쪽
6 대국(對局) 23.08.07 1,113 13 13쪽
5 당구(唐嶇) 23.08.04 1,237 1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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