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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도황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이화영
작품등록일 :
2023.07.31 18:04
최근연재일 :
2023.12.30 10:43
연재수 :
9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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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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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49,521

작성
23.08.0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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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난전

DUMMY

어린 시절, 나는 당홍설의 손에 이끌려 혈화문에 입문했다.

아우들인 능소, 진소추와 함께였지만, 걔들과는 나이 차이가 조금 있던 터라 모든 일을 내가 먼저 경험했다.


당시 혈화문 최고의 살수는 단연코 유무성이란 이름의 절름발이 검객이었다.

나이는 지금의 나보다 서너 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임 문주를 죽이고 혈화문의 문주가 된 당홍설에게 내부에서 힘을 실어준 사람이 바로 유무성이었다.

그가 그리한 이유는 당홍설의 약속 때문이었다.

오직 능력대로 대우한다.

전임 문주가 가장 지키지 못했던 혈화문 내 규율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당홍설을 지지했던 유무성도 그녀의 한 가지 명령만큼은 한사코 거절했다.

당홍설이 유무성에게 내린 명령은 다름 아닌 나를 제자로 받아들이라는 것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당시 열일곱 살에 불과했던 당홍설의 판단은 무척이나 예리했다.

만일 내가 사부의 제자가 되지 못했다면 전설의 검법 음영검은 사부 대에서 사라졌을 터였다.


유무성이 나를 제자로 받아들인 건 한 사건 때문이었다.


호랑이.

식인 호랑이 한 마리가 야야장에 출현했다.

지금도 가끔 산에 살던 맹수가 민가까지 내려와 사람을 잡아가는 일이 발생하긴 하지만, 그때 야야장에 나타났던 호랑이는 영수(靈獸)라고 불릴 만큼 지능이 뛰어난 녀석이었다.

게다가 녀석의 덩치 역시 집채만 하다는 표현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두 발을 딛고 서면 성인 남자 둘을 세워놓은 높이와 맘먹었다.

녀석의 거대한 앞발과 서슬퍼런 발톱, 칼날 같은 송곳니에 동원된 산꾼, 무림맹 무사, 천룡회 무사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갔다.

급기야 천룡회 측에서 혈화문에 호랑이를 잡으라는 의뢰를 해올 정도로 그 녀석의 위용은 천지를 뒤흔들었다.

당연히 아무도 나서는 자가 없었다.

암기도, 활도 통하지 않는 그 강철 같은 가죽으로 무장한 괴물을 무슨 수로 잡는단 말인가.

살수들은 몸을 사렸고, 당홍설은 고민에 빠졌다.

문주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당홍설은 호랑이 잡는 의뢰를 혈화문 내부는 물론이와 야야장에서도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다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먼 고토(古土)까지 나가 이제 막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유무성에게 강제로 그 임무를 맡겼다.

유무성은 임무를 맡는 대신 당홍설에게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호랑이에게 미끼로 쓸 사내아이를 요구한 것이다.

사부는 그 기회를 빌려 눈엣가시와도 같았던 나를 제거할 생각이었다.

홍설은 하루 밤낮을 고민하고도 결정을 내리지 못해 결국엔 나를 찾아와 내 의향을 물었다.

나는 홍설에게 기다려 달라 말한 후, 그길로 사부를 찾아갔다.

그리고 사부에게 확답을 받았다.

내가 미끼로서의 임무를 훌륭히 해내면 나를 제자로 받아주라고 말이다.

사부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그리하겠다고 대답해주었다.


그 후 한 달 가까이를 사부와 함께 산행 끝에 깊은 산속 버려진 사찰에서 호랑이를 찾아냈다.

우린 사찰 근처 무덤가에 숨어 호랑이의 행동이 굼떠지는 낮이 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진정 영물은 영물이었다.

녀석은 내가 참다 참다 바지에 오줌을 지렸을 때, 그 냄새를 맡고 우리를 찾아냈다.


지척에서 호랑이가 포효하는데 정말 몸이 북해의 빙산마냥 꽁꽁 얼어붙어 손가락 하나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이빨은 달달 떨렸고, 다리는 굳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공포의 순간이었다.

한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한 달간 같이 다니면서 정이라도 들었던 것일까.

사부 유무성이 날 더러 산 아래로 도망치라 명령했다.

미끼로 쓴다는 건 핑계에 불과했고, 결국 귀찮은 나라는 떨거지를 떼어내기 위해 내 앞에서 거짓말까지 했던 그 사부가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도망치지 않았다.


근처에 있던 나무를 타고 올라가 사부와 호랑이의 결전을 지켜봤다.

당시 사부는 검날 부위를 만년한철(萬年寒鐵)로 만든 다섯 자 이치 칠 푼 길이의 아주 기다란 장검을 사용했는데, 사부는 그 검을 무정탈명검(無情奪命劍)이라 지칭했다.


사부는 그 거대한 검을 들고서도 마치 귀신처럼 기묘한 보법을 써서 매번 호랑이의 뒤를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

사부의 작전은 아마도 저 귀신같은 보법을 활용해 싸움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 무정탈명검에 의해 조금씩 상처를 입은 호랑이가 결국엔 제풀에 지쳐 쓰러지게 할 속셈 같았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그의 작전은 아주 훌륭했고 이대로만 가면 호랑이의 패배는 당연시 생각되었다.

한데 사부가 갑자기 발을 헛디뎠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당시 사부는 이미 음영검의 부작용을 앓고 있었다.

때를 놓치지 않고 날아든 호랑이의 거대한 앞발에 사부의 가슴팍이 송두리째 찢겨 날아갔다.

달빛에 하얀 갈비뼈가 생생히 들여다보였다.

이때 나는 나뭇가지 위에서 사부와 눈을 마주쳤다.

그가 눈빛으로 속삭였다.

어서 도망가지 않고 뭘 하고 있느냐고 말이다.

아마 그때 사부와 눈이 마주치지 않았다면 나는 정말 앞뒤 안 보고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아직 살아서 버젓이 날 바라보고 있는데 나만 살자고 그를 버려두고 도망갈 수 없었다.

순간 무엇에 홀린 듯 내가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사부를 물어뜯기 직전이었던 호랑이 등에 올라타 단도로 호랑이의 등가죽을 닥치는 대로 쑤셔댔다.

단도가 호랑이의 날개뼈에 부딪혀 톡, 부러졌을 때 호랑이가 깊게 포효하며 그 거대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나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녀석의 털가죽을 꽉 붙들었고 그사이 자신의 검을 다시 주워든 사부가 호랑이의 심장을 향해 무정탈명검을 일직선으로 내뻗었다.


호랑이는 즉사했고 나는 유무성의 정식 제자가 되었다.


신호탄을 쏘아 혈화문에 우리의 위치를 알린 뒤 쓰러진 사부의 곁에서 그의 상처를 돌보고 있을 때 사부가 내게 물었다.


“지상아, 너는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


내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네.”


사실이었다.

나는 한번 죽어본 경험이 있었기에 죽음은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단, 다른 것이 지금도 두렵다.

전생처럼 세상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의미 없이 죽게 될까 봐 그게 너무 두렵다.


비룡방 중년 무사가 초승달처럼 휜 곡도를 내질러 왔다.

반대쪽에선 머리가 셋 달린 삼첨도(三尖刀)가 홍사검을 잡은 내 손목을 노리고 거칠게 찔러 들어왔다.

등 뒤에선 날카로운 유리를 녹여 붙인 채찍이 매섭게 내리쳐졌고, 머리 위에선 일격필살의 강철 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말했듯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그렇기에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살길을 모색할 수 있었다.


흑사검의 톱날 같은 검날로 중년 무사의 곡도의 날을 수직으로 올려쳐 부러뜨리고, 삼첨도의 첨날 사이로 홍사검을 밀어 넣어 역으로 삼첨도를 상대에게서 빼앗아 버렸다.

뒤에 있는 채찍을 든 적을 향해 홍사검을 내던지고, 바닥으로 떨어지려던 삼첨도를 발등으로 올려쳐 손에 움켜쥐었다.

귀신보(鬼身步)를 발동해 그 옛날 사부가 호랑이를 상대로 뒤를 잡았던 것처럼 지붕 위에 있는 궁수의 그림자에서 일신을 빼냈다.

당황해하는 궁수들을 일렬로 몰아넣고 삼첨도 창날로 녀석들을 굴비 꿰듯 일거에 꿰었다.

녀석들을 지붕 아래로 밀어버리고 제운종을 활용해 공중으로 2장 가까이 높이 뛰어올랐다.

역시나 방금 내가 서 있던 누각의 지붕을 뚫고 추문강이 나타났다.

추문강이 파편처럼 튀어 오른 기왓장들을 밟고 내가 있는 곳으로 날아올랐다.

내가 돌아오는 홍사검을 공중에서 잡아챈 뒤 홍사검과 흑사검을 교차해서 추문강의 우레와 같은 일격을 막아냈다.


카아아앙-


경쾌한 쇳소리가 무거운 밤공기를 가로질러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내 쌍검과 자신의 황금만도를 맞댄 채로 추문강이 말했다.


“여전히 강하구나, 이지상. 하하하, 그래, 이 정도는 돼야 거금을 주고 쌍둥이들을 고용한 보람이 있지.”

“추문강, 진정 나머지 한쪽 눈깔마저 내게 뽑히고 싶은 게냐?”

“닥쳐라. 닥치고 네 죽음이나 순순히 받아들여라. 넌 도망칠 곳이 없고 난 오늘 널 놓아줄 생각이 없다. 내 부하들이 얼마나 죽어 나가든 상관없다. 나는 오늘 반드시 너 이지상의 목숨을 취하겠다.”


순간 내가 쌍검에서 손을 뗐다.

팽팽했던 힘이 사라지자, 추문강의 몸이 일순 앞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추문강은 한 방을 책임지는 방주이고 전임 방주 비룡에게 인정받은 무위에 이른 자다.


그가 무기를 놓고 내지른 내 구음백골조를 피해 몸을 격렬하게 뒤틀었다.

우리 두 사람의 몸이 동시에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추문강의 만도가 내 쌍검을 강하게 떨쳐냈다.

내가 또다시 비룡거리에 있는 비룡방 무사를 향해 귀신보를 펼쳤고, 빛살처럼 화하는 순간 아래로 떨어져 내리던 쌍검을 잡아냈다.

한데 내가 그림자를 밟은 무사의 몸이 순식간에 갈기갈기 찢겨 수십 조각 육편이 되어 사라졌다.

그게 사라진 자리에 보기만 해도 섬뜩한 철두곤(鐵斗棍)이 나타나 내 머리를 향해 돌진했다.

흑사검으로 곤의 머리를 쳐서 흘린 후 다시 누각의 지붕으로 올라가려던 순간.

앞서 흘린 곤이 갑자기 두 개, 세 개, 아니 일곱 개로 나뉘면서 내 몸의 요혈을 노리고 동시에 쇄도했다.


퍽, 퍽, 퍽퍽퍽.


맞는 순간 내공을 끌어올려 전신의 요혈을 방비했지만 둔탁한 외력으로 인한 격한 고통만큼은 그대로 전해졌다.

특히 금이 갈 정도로 강한 충격을 받은 늑골의 통증이 심했다.

가슴을 움켜쥔 채로 뒤로 몇 걸음 물러난 나는 짓쳐 드는 귀면쌍마 중 흑마를 향해 무영각(無影脚)을 펼쳤다.


타 타타 타타타―


흑마의 철두곤이 엄청난 속도로 내지르는 내 발차기를 모조리 막아냈다.

확실히 강한 놈이었다.

순간 쾅! 소리와 함께 내가 기대고 있던 대들보와 그 위의 서까래가 동시에 무너졌다.

추문강이 내 오른쪽 어깻죽지를 노리고 황금만도를 휘둘렀다.

내가 지친 상태에서도 얼마 남지 않은 공력을 끌어올려 귀신보를 펼쳤다.

이번 대상은 백석교(白石橋) 난간에 올라 칠현금을 켜고 있는 귀면쌍마 중 백마였다.

내가 사라진 자리에서 철두곤과 황금만도가 거센 굉음을 토해내며 부딪혔다.

귀신보는 성공했고 나는 백마의 그림자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이대로 도망치려던 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백마가 칠현금을 튕기자 칠현금에서 빠져나온 묵직한 원형의 강기(罡氣)가 전방으로 퍼져 나왔는데 거리가 너무 가까웠고 또 그 속도도 너무 빨라 미쳐 피할 수가 없었다.

마치 유형의 칼날에 몸통이 통째로 썰린 것과 같은 끔찍한 고통이 허리와 몸속 내장 곳곳에서 온전히 느껴졌다.


백석교 아래로 비틀거리며 삼 장 가까이나 물러난 나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채로 선지와 같은 핏덩이를 연속해서 토해냈다.

비룡방 부하들이 나를 향해 활과 암기를 날려 마무리하려 하자 추문강이 큰 소리를 내질러 그것을 막았다.


“멈춰라, 녀석의 목숨은 내 것이다. 마무리는 내가 한다.”


추문강이 실실 쪼개며 백석교를 건너왔다.

그가 내 앞에 멈춰 서서 황금만도를 빙빙 돌리며 말했다.


“이지상, 그동안 너와 함께해서 즐거웠다. 하지만 앞으로도 함께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하하하, 부디 다시 태어난다면 이런 야야장이 아닌 좋은 세상에서 태어나길 바란다. 진심이다. 인제 그만 가거라. 수고했다.”


추문강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만도를 높게 쳐들었다.

내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당연히 죽음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방금 나는 지척에서 뭔가를 느꼈고 그것을 믿어보고 싶었다.


“이야야야야아.”


백석교 앞 부서진 건물 잔해 뒤에서 한 사람의 인영이 나타나 추문강을 덮쳤다.

추문강이 내 머리 위로 펄쩍 뛰어올라 그 매서운 공격을 피해냈다.

달빛 아래 드러난 아군의 정체는 철두였다.

철두가 머리와 몸 곳곳에 붕대를 감고 나타났다.

아까 도망친 나머지 부하들도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추문강이 한 차례 가벼운 웃음을 흘린 뒤 공중으로 몸을 날려 백석교 난간 위에 올라섰다.

비룡방 무사들이 백석교 아래 천(川)을 가로질러 넘어와 순식간에 우리를 포위했다.

귀면쌍마 두 사람 역시 백석교 끝자락에 서서 나를 노려보고 서 있었다.


내가 허탈하게 미소하며 곁에 붙어선 철두에게 물었다.


“죽으려고 돌아왔냐?”


자신의 청룡도(靑龍刀)를 적들을 향해 겨눈 채로 철두가 나를 향해 씩 웃으며 대답했다.


“네, 형님이랑 같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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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잔혹동산(1) 23.09.04 460 9 16쪽
30 아상(阿裳) +1 23.09.04 452 7 23쪽
29 원걸영(元傑鈴) 23.09.02 464 9 18쪽
28 능소(凌瀟) 23.08.31 491 10 14쪽
27 천자(天子) 23.08.30 521 9 17쪽
26 이화문(梨花門) 23.08.29 520 8 16쪽
25 노예시장 23.08.28 564 9 17쪽
24 천룡회 회합(2) 23.08.26 544 8 13쪽
23 천룡회 회합(1) 23.08.25 547 10 13쪽
22 당면한 위협 23.08.24 559 9 14쪽
21 문득 깨달은 사실 23.08.23 573 8 14쪽
20 진실을 향한 욕망보다 강한 건 없다 23.08.22 589 8 15쪽
19 혈화문 출판사 23.08.21 601 9 13쪽
18 감금된 자들 23.08.19 631 9 19쪽
17 조홍매(趙红梅) 23.08.18 633 10 15쪽
16 뜻밖의 손님 23.08.17 725 9 16쪽
15 환술의 게이샤 23.08.16 764 9 13쪽
14 진소추의 화섭자 23.08.15 767 12 15쪽
13 백화(白華) 23.08.14 809 10 15쪽
12 혈화문 문주가 되다 23.08.12 848 10 13쪽
11 출소 23.08.11 880 11 16쪽
10 뇌옥 23.08.10 887 12 14쪽
» 난전 23.08.09 923 12 13쪽
8 함정 +2 23.08.09 905 14 14쪽
7 매복 23.08.08 975 12 13쪽
6 대국(對局) 23.08.07 1,108 13 13쪽
5 당구(唐嶇) 23.08.04 1,230 1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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