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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5.11 16:04
최근연재일 :
2022.11.09 06:27
연재수 :
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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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864,810

작성
22.07.15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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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23쪽

393화 – 자유과 공화의 옹주정은 혁명 프랑스를 닮아간다

DUMMY

동탁이 량주로 떠나갔다.


이에 환호성을 지른 장안의 백성들은 이를 새로운 정부 체제인 옹주정의 승리와 자유와 공화의 승리 그리고 그에 속한 시민과 인민의 승리라 떠벌렸다.


그러나 그리 승리에 도취되고 희열에 젖어들면서 더 나은 내일이 찾아오리라 희망차고 부푼 기대를 품으면서 정작 눈앞에서 사라지는 엄청난 양의 식량과 물자를 비롯한 예산의 공출은 막지 못했다.


후루룹- 탁-


“크흐, 그래. 막을 수가 없었겠지. 아니, 막을 생각조차 없었어.”


“관녕, 내 자네에게 정신을 차리라 내린 것은 말 그대로 차지, 곡차가 아니야.”


그 와중에 차 한잔을 두고 서로 마주 앉은 병원과 관녕은 역시나 날이 선 대립을 지속하는 중이었다.


“그 맛이 쓴 걸 어찌하나? 그 내용물이 똑같이 쓰라린데, 그 반응이 같을 수밖에 없지. 왜? 인정받기 위해 내실을 가져다 바쳤으니까. 당장에 내일조차 보장할 수 없는 이 빈 껍데기, 그 껍데기를 다스리는 왕좌에 자네가 앉는 것 외에 대저 달라진 건 없어. 이 몸뚱이는 정작 그 자치권을 인정받기 위한 허울뿐인 명분이자 형식적인 거래였던 게고. 거기에 군부의 지지를 비롯한 군역을 진 이들의 민심을 잃은 건 덤이지.”


“그 대신 열화와 같은 민중, 그리고 대중의 지지를 얻었다.”


“음, 미안하지만 그조차 본질이 없는 허상이고 가라앉은 진실 위로 부풀려진 거품에 불과해.”


“그게 무슨 소리지?”


“무슨 소리긴, 아무런 맛도 배부름도 없이 그저 뜨겁고 부패하여 불어난 것이란 소리지. 암만 들이켜도 갈증이 채워지지 않고, 이를 걷어내지 않고서는 그 아래 자리매김한 본질을 맛볼 수도, 들이킬 수도 없지. 자네가 일으킨 것은 허상이야, 자네가 부풀리고 부추긴 것은 환상이지. 돌이켜보면 내 신역이 자리한 량주로 같을 적에, 그 숨겨진 곳(파라다이스)을 보았을 적에 저 서역의 이들이 즐겨 마신다던 맥죽(맥주의 원형, 이집트 등지에서 곡물을 거르지 않고 만든 되직한 음료이자 묽은 죽)의 의미를 몰랐거늘, 이제와 조금은 알 것도 같단 말이야.”


“신이 사는 세상을 보고 온 뒤의 자네는 확실히 변했어. 다만 동 중영에 납치된 뒤로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하는 걸 보니 그래도 거기서 더 달라진 것은 없는 듯하니, 나름 안심은 돼.”


과거 량주로 나아가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성역을 살핀 관녕은 그때의 기억을 교훈 삼아 이번 사태의 본질을 묘사했고, 딱히 이를 받아줄 생각이 없었던 병원은 그저 다기를 들어 빈 관녕의 잔에 차를 따라주는 것으로 여전한 제 입장을 에둘러 표현했다.


쪼르르륵- 또옥- 똑- 똑-


“찻물이 다 떨어졌군. 이거 미안하지만 이 빈 땅에 핥아먹을 거품조차 남아있질 않겠어.”


“첫 번째로 끓인 찻물이야.”


그리 잔을 다 채워갈 무렵 이내 얼마 남지 않은 찻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니, 이는 곧 다기 속의 찻물이 동이 났음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에 따른 조롱을 더한 관녕이었으나 정작 병원은 앞서 말하였듯 여전히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본디 차를 우릴 때 첫 번째 찻물은 차에 묻은 이물질과 먼지를 제거하기 위함이자 찻잎에 찻물이 잘 우러나오도록 하기 위함이라, 이를 마시지 않고 버리는데 그 말인즉, 작금에 동 중영에게 딸려 보낸 그 엄청난 양의 찻물(식량, 물자 그리고 예산)은 결국 애초에 내다 버릴 용도였다는 것을 의미했다.


“놀라 까무러칠 일이로군, 애당초 이 옹주 땅이 온전한 독립체로 남아있기 위해 가장 필요한 기반이요, 다시는 그만한 양을 구하지 못할 생명수를 내던지고서 한다는 말이, 그저 내다 버렸다 생각하면 그만이다?”


“찻잎이 들은 다기는 뜨거워지고 그 다기 속은 비었어. 그렇다면 적어도 내 부패하여 남몰래 차를 마시는 호사를 누리지 않았음을 증명할 수 있지.”


타앙-


“이 미친 작자야! 작금에 중한 게 뭔지 몰라? 지난날 저 한조가 망할 적과 같이, 저 낙양이 망했을 적과 같이 이 땅에 식량과 물자가 사라지는 게야! 없어진 예산이야 당장에 그렇다 치더라도, 당장에 내일 사용할 것들마저, 그 생필품마저 걱정하게 될지 모른단 말이야! 당장에 물가가 오르고 원자재가 부족해지면 어찌 되나? 물건이 돌지 않고 사람들이 자꾸만 없는 것을 찾으면 어찌 되겠느냔 말이야! 모든 것이 미친 듯이 오를 게야! 천정부지로 치솟을 게야! 사람 마음이, 행동이, 그 조급함이, 그 분노가, 이를 공유한 이들의 열기가! 이걸 어찌 감당할 생각이야!”


“미안하지만, 관녕. 지금은 미친 세상이야. 아닌 말로, 내가 내 손으로 이 미친 짓을 직접 저질렀는데 어찌 이를 모르겠나?”


“한데 왜!”


“허면 그 안에 다시 찻잎을 끓일 찻물을 어디에선가 길어와야지. 한데 그 이전에 빈 두레박을 보여줘야 사람들이 우리 모두를 위해 물을 퍼올리는 것을 허락할 것 아니야?”


“..........!”


“모두가 다 같이 힘든데 제 것만을 놓지 않을 수가 있어? 나는 나와 다르나 그대를 살리기 위해, 또 그대와 같은 이들이 주창하는 전쟁을 막기 위해 나의 것을 모조리 내어놓았다. 그 와중에 서로가 조금씩 양보한다면, 제 것을 조금씩 포기한다면 그리 궁핍하고 결핍된 사정을 보다 빨리 해결할 수 있겠지. 이를 위한 화의고, 협의야. 이를 위한 협상이고, 이를 위한 안건이며 이를 위한 공의회야. 이를 위한 외교의 장이지.”


만일 포홍이 이를 보았더라면, 실로 박수를 치고도 남았을 것이다.


“흠집내고 싶으면 어디 내보라고 전해. 모두가 바라보는 앞에서, 저자에서 가장 먼저 그 목이 잘릴 테니. 애초에 서원이고 사부회고 자시고 서로 각자의 것을 존중하기 위해 그 안에서의 다채로운 존립을 허락한 것이니 그 와중에 오직 제 것만을 드높이려는 것들부터 우선적으로 수확할 테니까.”


“병원, 이........!”


“미안하지만, 관녕. 나도 전쟁의 필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야. 허나 이 땅에 그 정도의 폭력은 애석하게도 필요치 않지. 그저 이 땅에 필요한 것은 이 땅에 뿌리 내릴 자유와 공화를 지킬 수준이면 돼. 그 자유와 공화의 가치를 위한 적정선의 폭력이, 우리 모두의 공존과 공생을 가능케 할 거야. 이를 위한 공적인 엄정함을, 그에 따른 법과 제도를 제공해주겠지.”


놀랍게도 지금의 병원은 가히 로베스피에르가 덧씌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으니, 두말할 것 없는 이 땅의 강림한 정부가 혁명 프랑스의 그것처럼 느껴지는 것 또한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게 될 터.


“그리고 내가 그 기준점이 되어줄 생각이야. 자네는 너무 과격하고, 민중은 너무 어리석으며, 지배층은 이전 시대의 향수를 놓지 못하고 있고, 군부는 이를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지. 그렇다고 사부회를 비롯해 여러 서원에 속해있는 이들에게 이를 맡기자니 그들은 너무 탐욕스러워. 특히나 제 잇속만을 챙기길 원하는 상공인들은 당장에 이 땅의 이들이 배를 주리는 것보다 제 주머니가 굶주리는 것에 더 민감해. 허니 어쩌겠나?”


그러나 그러한 선례가 없는 지금, 이 땅에 그 최초의 선례로 남고자 이를 준비하고 있는 병원의 각오는 남다른 것이었다.


“자네 홀로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게야. 또한 그리 자네가 믿지 못할 이들의 부패를, 그것도 자네에게 반기를 들지 않은 마당에 남몰래 숨어 저들끼리 벌리는 부정을 자네가 어찌 감시하고 관리 감독하려고?”


“내겐 승상부의 이들이 있지 않은가?”


“..........!”


그 흠집내기에 나선 관녕 또한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그가 무슨 일을 저지르게 될지를 짐작케 되면서 실로 그것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폐하께서 이 땅에 왜 이러한 큰 짐을 남기셨는지 알아.”


그렇기에 관녕은 자신의 머릿속을 관통하는, 지난날 저와 병원이 나누었던 대화의 일부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 무엇을 우려해도 불안하단 말이지. 대저 폐하께서는 왜 이러한 큰 짐을 남기셨는지.’


‘그렇다고 마냥 부정적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은 아니지. 소위 말해, 기존의 유학적 가르침에 의한 교화를 운운하던 시절보다 더 많은 이들의 머리가 깨이고 트였으니까. 아닌 말로, 부당한 계약의 조건을 지적할 수 있고, 분쟁이 나면 그에 대한 송사를 내걸 수 있으며 적어도 한 나라의 지배층을 마냥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에, 청명이 없는 이들조차 은연중에 제게 쌓일 악명에 경계를 하는 모습을 보이지. 초기만 하여도 제법 많은 동량들이 이 나라의 건국과 번영에 몸을 담고자 했다면 이제는 그 내실에 좀 더 신경을 쓰고자 하는 분위기가 더 강해. 지방관이라도 좋으니 현위를 비롯한 민생의 안정과 치안을 살피는 관직으로의 진출을 원하고, 공정한 판례를 남기거나 그에 따른 수사와 고발을 행하는 이들이 쌓는 청명과 지배층이라도 언제든 보내버릴 수 있는 실권에 열광하는 모양새이니까.’


“설마......, 승상부도 모자라 현위, 판관의 이들까지 대거 주무를 생각인가? 반항하는 이들을 모두 형장의 이슬로 보내버릴 생각이냔 말이야!”


그리고 그에 도달한 결론이 무엇인지 알게 된 그는 비단 역사의 선례가 없이도 실로 위험하게 자리매김한 사회민주주의 감찰 정부와 공포정치의 선례를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 이를 위한 감찰을 치안과 재판이지! 지난날 어찌하여 이 땅에 고변과 쟁송이 유행하였는가? 자신의 곧음과 바름을 증명하기 위함이자? 그간 암암리에 행해지던 부정과 부패를 비롯한 더러운 것들을 더러내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모두에게 청렴과 결백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이 뭐가 그리 문제야?”


“병원, 이 땅에 자리한 이들 모두가 선하고 청렴결백할 수 없으며 옳을 수만은 없음을 어찌 몰라!”


“허면 딴에 위선과 죄악으로 점철된 것들이, 제게 묻은 똥은 몰라보고 남에게 묻은 겨를 지적질하며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것은 옳은가? 그게 정녕 옳은 거냔, 그게 그간 폐하께서 바라고 우리가 염원하던 진보된 사회상, 더 나은 세상인가 말이야!”


콰직-


이미 이념에 취하고 신념에 취하고 사상에 입각해 그 안에 절대적 기준을 두고 스스로조차 그 기준점 안에 통과시켜버린 병원이 내세우려는 가치는 실상 너무나도 가혹한 것이었다.


“나는 애초에 부패할 수 없다 했어, 허면 모두가 보는 앞에 이를 증명하는 것이 최선이지. 그리고 엄정하겠다고도 했어.”


“병원........”


그러나 그보다도 더 가혹한 것은 손아귀에 쥔 찻잔이 부서지며 흘러내리는 핏물조차 당장에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작금의 이 모든 것을 온전히 제 힘으로 증명받고 인정받아야만 하는 위태로운 벼랑 앞에 놓인 그의 운명이었다.


“미안하지만, 더는 이 땅에 신이 강림하는 일은 없을 게야. 신을 찾는 일도, 신에게 기대는 일도 없을 게야.”


실상 이 모든 것이 포홍이 돌아오는 그날 끝을 맺게 될 터이니, 그가 돌아오지 않아야 이 진보된 세상이 본연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 진보된 세상이 무너지지 않아야 그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니 이를 위해 그 어떠한 작은 빈틈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일 터.


그렇기에 광적일 수밖에 없고 편집증적인 집착이 더해질 수밖에 없으니 비단 관녕이 사적으로 병원을 마주하는 자리는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물러가, 죄 없는 자는 살아남을 테니.”


콰앙-


궁문이 닫히고 지난날 납치에 의한 부상과 후유증을 명분 삼아 그의 입궁이 허락되지 않으면서 더는 궁에서 관녕을 보게 되는 이들은 존재치 않았다.


이를 두고 어떠한 이들은 부상을 회복하며 심신을 다스리기 위한 당연한 배려요, 조치라 했고 또다른 이들은 가뜩이나 그 사상과 이념이 다른 마당에 애먼 전쟁주의를 추구한 이의 진정한 몰락이요, 실각이라 해석하였지만 적어도 당장에 병원의 눈 밖에 난 그를 돌보거나 가까이 두고 품으려 하는 이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에 저 광장 밖에 대거 몰려든 민중의 연이은 결집과 이들이 내는 목소리가 위와 같은 상황을 허락해줄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땅의 침략자인 국군을 규탄하며 그에 승리하였다! 고로 이제부터 이 땅에 새롭게 펼쳐질 정부는 이러한 민의의 일환에 의거하여 기존의 구습과 전통을 탈피하고........”


“저 관동 땅의 백성들이 제 나라의 악정을 펼친 임금을 몰아내었듯 우리 또한 그 잔재요, 향수를 지닌 이들을 몰아내었음으로 오늘의 우리는 완벽한 승리를 가지고, 이 한 몸 부끄러움 없는 권리를 쟁취하였다 이야기할 수 있노니, 인민이여! 시민이여! 자유민이여! 공화의 이들이어! 영원하라아아아!”


“영원하라-!”


그렇게 시대의 상징으로 떠오른 병원을 추앙하는 이들이, 혹은 그러한 병원을 추켜세워 제 잇속을 챙기거나 그간에 누려보지 못했던 것들을 누리려는 이들이, 그간 꿈꿔오지 못했던 것들을 꿈꾸려는 이들이, 자꾸만 광장으로 모여드는 것은 그러한 승리 이래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고, 한때, 그러한 병원을 곽개라 깔아뭉개기 위해 선전과 선동을 위한 공연을 일삼았던 원형극장 또한 이제는 그러한 병원의 승리를 축하하며 그를 위한 선전과 아부의 장을 열어젖히고 있었다.


펄럭-


“자유와 공화! 투쟁의 역사! 재상 병원의 승리를 보고 가십시요! 우리가 일궈낸 승리를 영원토록 기억하기 위한 공연입니다!”


“장시에서 마당극도 열립니다! 나는 우리 모두를 위해 부패할 수 없다! 많이들 찾아와주십시오, 예이!”


이쯤되고 나니 어지간한 서원과 사부회의 뒷배를 믿고 있는 이들조차 당장에 이 위협적인 열기에 아무런 반발도 하지 못한 채, 침묵으로 일관한 수그림의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자칫 잘못 나서면 역적이요, 그렇다고 정책의 실패를 물고 늘어지자니 당장에 가을이 오기 전까지 부족한 분의 식량을 가져와 민중의 인기를 다져놓은 것이 있어 흠집조차 나지 않으며 그렇다고 부패를 비롯한 부정을 들추고 고변하자니 이를 입증할 증거도 또 이를 의심해볼 법한 행적조차 쉬이 찾을 수 없었다.


“궁궐까지 매양 걸어서 다닌다지? 제법 깔끔히 관복을 걸친다고 하나, 화려한 장신구도 없고 사치도 부리지 않고?”


“그러하옵니다.”


“끼고 노는 계집은?”


“없사옵니다.”


“궁에 다니는 이들 중 그와 관련한 추문은 없는가? 뇌물이던 계집질이건 희롱이건 뭐건.”


“송구하오나 그 또한.......”


“허 참, 누가 청렴한 이 아니랄까봐 부패할 수 없다 어쩌고 하더니, 원.”


상황이 이러하니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으로 모여든 이들조차 당장에 그를 실각시킬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지난 동탁의 출병 이후 추락한 권위를 지닌 군부와 병원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이 나라의 병사들을 포섭하자니, 반대로 극심한 반발과 비난이 일었던 관녕과 같은 대접을 받을까 그 때문에 열이 난 민중들의 공격을 받을까 당장에 그들을 향해 손을 뻗지도 못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후에 정국은 전혀 의외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는 다름이 아닌 병원으로부터 나온 화해의 손짓이었다.


“사부회의 의의는 계급과 직위 그리고 업의 차이를 두지 않은 채, 그들 모두의 목소리를 듣고 또 낼 수 있는 공적인 협의체에 그 의의가 있는바, 앞으로 본 옹주정 관료를 임관하거나 새로이 사부회에 속한 의원들의 자격을 심사할 시 최우선적으로 그 자질과 형평성 그리고 공정함과 청렴결백함을 증명하는 청문회의 심사를 우선적으로 거칠 것이요, 이를 통과한 이들만이 온전한 공의로서 자신을 대표하는 이들의 자격을 갖출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래, 여기까지는 좋았다.


과할 정도의 청렴결백이 그리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한들 직접적으로 조당의 이들에게도 사부회의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니 이는 비단 포홍이 점진적으로 왕권을 보전하며 천천히 그 영향력을 확대시키려 했던 것과 별개로 화끈하게 조당의 영역을 침범할 수 있도록 사부회는 밀어주는 조치였으니 말이다.


근데 이게 말이 화해의 손짓이지, 달리 말해 그 손바닥 활짝 펴고 내미는 싸대기, 그러니까 웃는 낯짝으로 선언하는 선전포고나 다를 바 없었다.


왜 그러냐고?


“허나 작금의 사부회가 그간 왕립의 대행과는 별개의 관행을 지속해온바, 그 공무를 행함에 있어 간혹 날림에 가까울 일처리를 내보이거나 그 자격과 자질이 의심되는 경우가 생겨날 여지가 있으니, 앞으로 이러한 사부회의 졸속한 의결을 예방하고 그에 따른 행정적 보완을 거치며 혹시 모를 변절과 사욕 추구를 예방하기 위한 별개의 기관으로서, 공안의원회(公安委員會)를 신설하겠다. 또한 승상부의 감찰을 확대하고, 판관들과 현위를 비롯한 지방관들의 치안증대와 형법적 권한을 일시적으로 상향시켜........”


콰앙-


“이게 지금 말이나 되는 소리야! 개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이 무슨 개 같은 독재인가!”


공안의원회(公安委員會), 말 그대로 공공의 안전을 위한 의원회를 설립하겠다는 것이었다.


하필 그 명칭도 원 역사 속 혁명 프랑스의 그것과 똑같은데, 실상 그 의미는 비단 비변사와 도방과도 같이 기존의 행정 체제를 뛰어넘은 독재정을 위해 탄생한 임시기구 회의체였다.


그리고 이러한 별개의 기구를 따로 두겠다는 것은, 그것도 사부회에 대한 우려와 더불어 이를 건립하겠다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그 사부회에 별개의 목줄을 채워두겠다는 소리였다.


여차하면 사부회조차 제낀 채, 제 산하에 둔 기구를 가지고 저만의 통치를 일삼겠단 소리였다.


그렇기에 이는 애초에 본인이 쥐고 있는 승상부를 필두로 한 이 나라의 조당은 모조리 장악하였으니, 그와 별개로 존재하는 의회와 이를 완성시키는 수많은 정당들을, 당장에 저를 지지하는 민중을 제한 계층의 대변자들을 모조리 견제하겠다는 소위 노골적인 독재의 야욕을 드러내는 조치였다.


“불의(不義)한 이의 정치를 막아 수많은 이들에게 제공될 불이익(不利益)을 막겠다. 이를 위한 재상의 정치요, 그 와중에 모두를 위한 화의라, 서로를 위해 공존할 수 있는 자유를 위한 최소한의 테두리와 울타리를 세우겠다.”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자의 위험천만한 선 긋기는 그 시작부터 어긋난 방향성을 드러낸 가차 없는 폭주가 되었고, 그 와중에 그 선악을 결정짓는 이 명백한 구분은 마치 신과 같은 오만을 자처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니까 이에 소식을 들은 이들은 순간 이를 잘못 들었나 싶다가도 그 와중에 본질을 깨닫고 개 거품을 물며 달려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본 사부회는 이러한 병 승상의 조치를 받아들일 수 없는바, 이에 따른 회동을 통해 새로이 이번 문제를........”


“본 서원의 이들 또한 이는 병 승상의 숭고한 노력이 조급함으로 뒤바뀐 오판이라 생각.......”


“이 땅에 왕을 내치고 위험분자를 내친 그 자리에 스스로 왕이 되어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대저 뭐가 그리 나은 세상인지에 대한.......”


뭐가 그 이름은 달라졌는데 정작 왕만 없을 뿐이요, 그 머리 또한 하나라 그 대신이랍시고 그 아래 여러 작은 머리들이 생겼는데, 그렇다고 한들 그것이 왕조의 위협적인 그것과 다르지 않을지니, 그 공포가 이내 생존을 위한 두려움과 반발을 일으킨 것은 자명한 결과였다.


거기다 상공인을 중심으로 한 반격은 가히 대대적인 수준이었는데, 이는 서원이라는 저들끼리의 이합집산이 잘 되어 있는 특색에 의거한 소위 파업이자 태업이요, 시위에 가까웠다.


끼이이익- 쿠웅-


“뭐요? 아니, 손님을 반기지도 않고 대저 무슨 일로 문을 닫는 게요?”


“오늘 장 다 끝났소, 이제부터 문을 닫을 터이니 그리 아시오.”


“아, 아니 이게 지금 무슨.........”


쿠웅-


“얼씨구? 뭐야? 저기도 문을.......”


쿠웅- 덜컥-


“저기도......”


덜컥-


“저 곳도 연이어 문을 닫어?”


“자자! 오늘 장 다 끝났소! 볼 장 다 봤으니까, 그리들 아쇼!”


“아니, 그래도 연유는 알려줘야 할 것 아닌가!”


“뭐긴 뭐야! 이게 다 병 승상 때문이지! 애당초 이 땅에 남은 물자가 몇 없었는데 그 와중에 동 중영 내쫓겠다고 관녕 구해내겠다고 딴에 제 청명 얻겠다고 모조리 다 건네줘 버렸으니 이 땅에 뭐가 남아! 에이, 증말!”


“뭐라고? 이게 다 병 승상 때문이라고?”


콰앙-


“그럴 리 없다! 그럴 리가 없어! 어찌 작금의 병 승상이 그러하셨단 말인가! 다 대책이, 안배가!”


쾅– 쾅- 쾅-


“문 열어! 문 열라고! 문......”


한참 사부회의 이들이 또 서원의 이들이 각지에서 스스로의 입장을 발표하고 그에 대한 반발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진나라 곳곳의 장시가 그 문을 닫기 시작하니, 다른 의미로 경제 정체가 벌어지면서 그에 따른 불편함이 발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들이라고 어디 힘이 없고 세력이 없으며 자본이 없고 물자가 없겠는가?


사락-


[누구 때문에 내놓을 물건이 없어 부득이하게 문을 닫습니다. 주인 백.]


“이게 원, 어찌 된 영문인지........”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앞서 이를 비판한 관녕의 말처럼, 병원의 지지 세력으로 돌아선 대다수의 민중들이 이를 통해 겪게 되는 무력함이었다.


거품이라는 그 표현처럼, 당장에 뭐라도 될 것만 같은 이들이 보내는 것은 정작 허울뿐인 지지가 전부였으니, 결국 그 대다수가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이 내비치는 것은 불평불만이요, 마찰이나 난동에 불과한 것이 전부였다.


그에 비해 정작 이 땅에 자리한 부호와 지주를 비롯한 상공인들은 가히 남부럽지 않을 식량과 물자를 비롯한 자산을, 실로 세상에 꼭 필요한 실질적인 무언가를 그득히 품고 있었다.


그 와중에 저택과 점포를 지키는 경비와 사병이 있고 이러한 저들의 소유물을 서로 불려주고 지켜줄 인맥이 있으며 저들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집합체인 서원이 있고 그러한 서원끼리의 담합마저도 가능케 하는 사부회가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어찌 일개 백성이 이에 직접적으로 항의하며 덤벼들 수 있으랴?


그리 실물 경제를 주무르며 예까지 온 이들은 일평생 일궈온 생업을 무기 삼아 병원에 대한 반기를 최우선적으로 꺼내 들었으니, 가뜩이나 부족한 물자와 자본에 알게 모를 갈증을 느끼던 병원은 드디어 때가 무르익었음을 깨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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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2 391화 – 하늘이 내린 왕조를 등진 자유와 공화의 옹주정, 부패할 수 없는 로베스피에르의 탄생 22.07.10 180 4 16쪽
391 390화 – 전쟁을 부르는 빵과 아고라, 콜로세움과 서커스 +1 22.07.09 185 5 22쪽
390 389화 - 관서대공황의 전조와 대국. 아니, 패권국의 위기(3) +2 22.07.04 179 3 16쪽
389 388화 - 관서대공황의 전조와 대국. 아니, 패권국의 위기(2) +2 22.07.03 160 3 16쪽
388 387화 – 관서대공황의 전조와 대국. 아니, 패권국의 위기(1) +2 22.06.30 286 3 21쪽
387 386화 – 신의 실각과 인간의 시대를 열기 위한 준비, 18세기 재림과 19, 20세기의 안배 +2 22.06.23 201 3 22쪽
386 385화 – 관서 대공황의 전조와 제국의 위기(1) 22.06.22 177 5 20쪽
385 384화 - 이 땅에, 이 나라에 전쟁이 필요한 이유(3) 22.06.19 180 3 23쪽
384 383화 – 이 땅에, 이 나라에 전쟁이 필요한 이유(2) +4 22.06.17 184 5 23쪽
383 382화 – 이 땅에, 이 나라에 전쟁이 필요한 이유(1) +4 22.06.09 225 6 29쪽
382 381화 - 이것이 힘이고 곧 권능일지니 그가 무엇을 행하던 의심하지 말지어다 +2 22.06.07 208 5 18쪽
381 380화 – 그곳에 자리한 이는 신인가 인간인가 +2 22.06.06 214 3 21쪽
380 379화 – 파라다이스, 낙원 그리고 성역 22.06.05 203 5 20쪽
379 378화 – 되살아난 악몽에 대한 우려, 변혁과 방임의 부추김과 변화하는 시대를 두려워하는 이들 22.05.25 221 5 26쪽
378 377화 – 개혁의 여름, 서원과 사부회의 정국, 새롭게 등장한 사림의 이들을 비롯한 그 내외 +2 22.05.24 210 4 18쪽
377 376화 – 개혁의 봄, 그 모든 것의 바탕이 될 서원의 난립과 훈구파의 등장 22.05.13 238 3 20쪽
376 375화 – 콜레기아에서 클럽까지, 공화정 로마에서 혁명 프랑스까지 22.05.10 257 4 20쪽
375 374화 – 신과 인간을 아우르는 주사위 놀이 22.05.09 207 4 16쪽
374 373화 – 변혁과 방임의 다섯 번째 걸음은 시대와 세계를 앞으로 당기기 위해서다 +2 22.05.06 230 8 18쪽
373 372화 – 변혁과 방임의 네 번째 걸음은 대진국과 같아지기 위함이요, 대진국과 달라지기 위함이다 +2 22.05.04 227 4 22쪽
372 371화 - 변혁과 방임의 세 번째 걸음은 사람에 대한 실망과 상실을 부른다 +2 22.05.01 260 9 25쪽
371 370화 – 맹자와 고자, 갑자와 부자(2) +2 22.04.26 238 7 24쪽
370 369화 – 맹자와 고자, 갑자와 부자(1) +2 22.04.25 219 5 20쪽
369 368화 – 변혁과 방임의 두 번째 걸음은 그에 따른 우려와 기대를 낳는다 +4 22.04.08 280 7 25쪽
368 367화 – 변혁과 방임의 첫 걸음은 이 땅을 집어삼킬 또다른 괴물을 깨운다 +4 22.04.06 270 6 22쪽
367 366화 - 뒤집힌 세상 속 변화하기 시작한 진나라의 사회상 22.04.05 250 7 21쪽
366 365화 - 뒤집힌 세상 속 이름을 날린 이들과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 회귀자들(2) +4 22.04.03 270 9 20쪽
365 364화 – 평정(2) +2 22.04.02 276 6 28쪽
364 363화 – 평정(1) 22.04.01 275 6 30쪽
363 362화 – 뒤집힌 세상 속 이름을 날린 이들과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 회귀자들(1) 22.03.30 294 8 21쪽
362 361화 – 저수의 출사표, 일룡과 일사 그리고 갑 장사 22.03.24 294 7 28쪽
361 360화 – 고로 하북이 시끄러워졌다(8) 22.03.18 255 8 20쪽
360 359화 – 고로 하북이 시끄러워졌다(7) +2 22.03.16 293 6 20쪽
359 358화 – 고로 하북이 시끄러워졌다(6) +4 22.03.14 265 6 18쪽
358 357화 – 고로 하북이 시끄러워졌다(5) +2 22.03.10 281 6 18쪽
357 356화 – 고로 하북이 시끄러워졌다(4) 22.03.08 255 7 24쪽
356 355화 – 고로 하북이 시끄러워졌다(3) 22.03.04 295 7 17쪽
355 354화 – 고로 하북이 시끄러워졌다(2) +2 22.02.28 275 7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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