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5.11 16:04
최근연재일 :
2022.11.09 06:27
연재수 :
430 회
조회수 :
477,532
추천수 :
9,334
글자수 :
3,864,810

작성
22.06.05 19:24
조회
202
추천
5
글자
20쪽

379화 – 파라다이스, 낙원 그리고 성역

DUMMY

모든 것이 드러난 것과 반대된 양상을 띠게 되니,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당장에 눈앞에 보이는 당연한 것에 미혹되기보다는 그 뒤에 숨겨진 진의를 찾기 위해 더 많은 머리를 굴리려는 경향이 짙어졌다.


“정확히 말해야지. 소위 사농공상에서 그 아래 자리하고 있던 이들마저 진정한 세상의 이면에 자리한 눈을 뜨기 시작한 게지. 심안(審按)이자 심안(心眼)을 뜨기 위한 노력들이 곳곳에서 보이기 시작하는 게야.”


“그렇기에 최근 들어 회의감이 드는 게지. 맹자의 성선론도 그러하고, 대동사회도 그러하고, 그 바탕이 되는 농업공동체도 그러하고. 어쩌면 이상사회는 그저 사고할 줄 모르는 이들의 무지 속에 탄생한 바보들을 위한 안식처는 아니었을까? 무조건적으로 봉사해야 한다, 희생해야 한다. 배려해야 한다. 받들어야 한다. 수그려야 한다. 대접해야 한다.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따라야 한다. 그저 막연히 교육을 빙자한 교화를 운운한 길들이기가 더한 가축을 양성하는 고착화된 사회상을 만든 것은 아니었느냔 말이지. 애초에 백성들만 이 모든 것을 지키다 가난해지고 파멸하는 마당에, 그 위에 자리한 이들은 이를 하나도 지키지 않았지 않나? 그저 막연히 높으신 양반들이 자리하였기에 하늘이라 여겼던, 고로 그들이 저지르는 모든 짓은 하늘의 행차요, 정당한 권력의 행사라, 그것이 설령 부정이자 이기심일지라도 그 누구도 이에 반발해선 안 되는 것이라 여겼던 것을, 그 하늘을 그 하늘에 직접 오른 임금이 깨부수려고 하다니.......”


“정작 그 하늘 위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시려는 심산일까, 아니면 그 너머의 진짜 하늘이 있되, 그 아래 거짓된 하늘이 하늘인 체 하고 있음을 모두에게 깨닫게 만들어주기 위함일까?”


“하늘을 깨부수는 파천자라도 되시는 겐지, 그도 아니면 미래를 예견하는 선각자라도 되시는 겐지. 그도 아니면 대놓고 그 하늘에 대적하시겠다는 겐지. 이쯤 되면 나도 모르네. 다만 누군가는 이를 두고 세상에 모든 성스러움을 부수고 다니시는 분이라고 하더군.”


그 와중에 병원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관녕으로 하여금 흘러넘치는 실소를 불러일으켰다.


“하하하하! 생각해보니 그러하이! 이 세상에 하늘같이 여겨졌던 그 모든 성스러운 것들이, 무엇하나 손대지 못하고 곪아 들어가는 와중에도 빛을 잃지 않던 것들이 모조리 부서지고 쪼개지며 추락했지. 한조가, 유학이, 순장이, 천자가 그러했어. 그의 유산인 학종과 사림이 그러했어. 그 영수인 왕사가 그러하고 향거리선제가 그러하며 그에 속한 모든 특권층과 기득권을 비롯한 지배층의 공고화가, 기형적으로 굳어진 사회구조가 모조리 부서졌지. 이 세상에 절대악이라 불리는 진나라와 폐하의 존재 덕에 적어도 세상에 절대적인 선이라 여겨졌던 이들의 실체와 추악한 이면이 모조리 벗겨졌지. 이제는 어떠한가? 관료들도 모자라 심지어 백성들까지도 저들 간의 추악한 이면이 있음을 인지하고 있네.”


“어쩌면 그게 폐하의 진의일지도 모르지. 유행마냥 불러들인 저 로마의 문물 또한 어쩌면 언젠가 이 세상에서 지워내야 할 것들이자 그 실체를 까발려야 할 것들의 일부인지도 모르지. 신이 되어가는 절대자의 안배를 어찌 알겠나? 그간 하늘을 자처했던, 정녕 그것이 하늘인 줄 알았던 저 붉은 용을 물어 죽인 이 땅의 가장 강맹한 짐승이 펼치는 세상의 이면을 과연 그 누가 알겠어? 다들 그저 그 세상 속에 살면서 조금씩 스스로 깨닫고 변화하는 것이 고작이겠지.”


“그러니까......, 아는 만큼 보인다?”


“이전이라면 그저 막연한 믿음으로, 당연히 엿봐서도, 그에 덮인 빛의 장막을 들춰서도 아니 되는 것이었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걸 죄악이라 부르진 않을 게야. 그간에 암묵적으로 덮여 있던 추문을 몸소 들춰내며 당당히 맞섰던 것이 바로 지난날의 이 진나라를 뒤흔든 송사와 고변의 봄이었으니까.”


“소수에게만 허락되었던 특권인가? 그들이 남긴 흔적이고?”


“성역이지. 정작 그 속에 깨끗한 것들보다는 더러운 것들이 더 많았던 성역. 그 성역이 이제는 하나둘 뒤집히고 까발려지기 시작한 게지.”


“허나 이 또한 권력과 권위의 연장선에서 볼 때 장기적으로 폐하의 목을 조르는 장치가 될 수 있어.”


“그렇겠지, 허나 제가 오른 하늘을 스스로 깨부수려는 폐하인데, 그게 무에 문제일까?”


“그건........”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해. 폐하께선 맹목적인 믿음으로 보전된 영역을 그닥 좋아하시지 않으신다는 거지. 고로 이를 벗어난 이들을 반기시며 그간은 소수에게만 허락되었던, 특히나 우리와 같은 사인들에게만 허락되었던 배움과 교육을 비롯한 이성과 지성에 의한 사고와 판별의 자리를 넓혀주시려는 게지.”


그래, 필경 그 고매하고 좋은 뜻은 알겠다.


그에 맞물려 돌아가는 변혁과 방임도 이제와 부정할 수 없다.


결국, 기존의 이들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세상을 허락하였으며 기존의 이들이 그저 막연히 모르고 지내던 것들을 알게 해주었으니 이는 자신들만의 집권이자 자신들만의 특권이며 자신들만의 성역임을 알고 어지간하면 스스로 내려놓아라, 내려놓지 않으면 세상이 이를 가만두지 않게 하겠다 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걸 주도하는 이 또한 포홍인데, 과연 누가 이를 문제 삼을까?


“문제는 예서 우려와 모순이 생긴다는 거지.”


“뭐?”


“그렇다면 폐하께선 종국에 이르러 자신의 자리까지 이를 허락할 것인가?”


“.......!”


“만일, 이를 허락지 않는다면 과연 이 나라의 것들은 과연 폐하를 어찌 여길 것인가?”


“이봐! 그건 무례야!”


“천권이 중한 것은 그에 따른 무조건적인 복종이 있고 그 복종이 작금의 세상을, 이 나라의 틀을 유지시키기 때문이야. 진인이라 하여 그에 따른 정통성이 뿌리내리긴 하였으나 그조차도 아직 미약하기 그지없으니, 애초에 태생부터 이 나라는 그 설계부터 폐하의 뜻에 의해 구상되었고 그 시작은 부정할 것 없는 힘에 의한 복종에서 출발했다는 게지. 그 힘이 굳어져 권위와 거부할 수 없는 순종이 되었으며 그것이 굳어져 당연한 것이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일. 한데 이제와 이러한 기반을 흔든다고? 애초에 모두가 당연하다 여기는 것을 스스로 깨부순다는 그 이면에 이러한 우려를 폐하께서 모르신다고?”


“이! 후우.......”


그렇게 노골적으로 꼬집은 국가의 위기에 다시금 한숨과 적막이 흐르는 분위기가 자리하게 되었다.


“최근 들어 노골적으로 각지에 서원의 건립을 허락하는 일들이 빈번해지고 있네. 왕립서원이야 지난날 허락한 것들이 다인데, 공립서원에서는 거진 서원을 찍어내듯 어떻게든 명분을 만들어 건립 중이라는 소리야. 벌써부터 오만 것들이 각지에서 힘을 키울 키우기 위한 뿌리를 곳곳에 내리고 있네.”


“쯧. 빌어먹을.......”


변혁과 방임도 정도 것이지, 이쯤되면 아예 대놓고 힘을 키우라 밀어주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한조는 망하고 나서 군웅할거가 이루어졌는데 어째 이 진나라는 가장 중앙집권화된 전성기에 이러한 개판 오분 전의 난립된 국정을 부추기고 있다.


상황이 이쯤 되고 나니 그 미래가 아득해지면서 두통이 일어나는 것이 이제는 병원의 우려를 마냥 모른 체할 수만도 없게 되는 관녕이었다.


“그래서, 나더러 폐하께 다녀오라고?”


“있는 그대로 세상을 볼 수 없게 되었지만, 그렇기에 우리 또한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지. 고로 그런 우리의 시선 속에 이 나라는 지금 위태한가?”


“위태하지.”


“해서 건네는 부탁이네만, 기왕지사 하나의 일 처리를 더 하고 왔으면 좋겠어.”


덜컥- 스윽-


그 와중에 어쩔 수 없이 그의 부탁을 받아들이려던 차, 돌연 병원이 목함의 덮개를 열고는 그 속에서 둘둘 말린 족자 하나를 건네주었다.


“이건?”


“지난날 량주에서 장안성으로 보내진 것인데, 폐하를 상징하는 옥새의 직인과 더불어 새롭게 건립된 기관에 대한 허락이 적혀있지. 아무래도 자네가 다녀오겠다면 겸사겸사 그 실체를 확인해줬으면 해서.”


옥새의 직인이 찍혀있는 공문에 량주에서 왔다면 필경 이는 그곳에 자리한 포홍이 직접 처리한, 그의 의중이 노골적으로 박혀있는 행정의 원안이라는 소리였다.


스르륵- 펄럭-


한동안 서원의 건립조차 허락하지 않던 왕립기관이 새롭게 등장했다는 호기심에 족자를 펼치니 그 안에는 실로 기이한 이름이 적혀있었다.


“내수사(內需司)?”


“다른 말로는 본궁이라 그러더군.”


“본궁(本宮)?”


“어쩌면 이게 바로 예방전쟁을 빌미로 폐하께서 계속 남아계신 연유가 될지도 몰라.”


“연유라니?”


“정확히는, 그 누구에게도 아직 밝히고 싶지 않은 폐하의 성역이시겠지?”


“.........!”


병원의 말에 관녕의 눈동자가 커지며 그 낯빛이 굳어졌다.


“가서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뜻을 여쭈어봐. 대저 뭘 위함인지. 진정으로 모두의 앞에 공정하실 생각이라면 본인 또한 절대적인 왕정을 내려놓으시고 이 땅에 다른 이들처럼 귀속되실 생각이 있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진정 스스로 규격 외 존재가 되어 아예 살아있는 신으로 군림하실 것인지.”


“자네! 내 아까도 말하였지만, 이는 실로 그 죄를 물어도 문제가 되지 않을 무례야! 그것도 자네의 목이 달아나도 이상하지 않을 무례! 일찍이 공손 씨들에게 그리 죽을 뻔 해놓고 이제와 왜 이러는 게야!”


일찍이 요동에 자리한 공손 씨의 이들에게 그 목숨의 안위마저 위협받았던 선례가 있음에도 직접 자신들을 찾아 모든 것을 믿고 맡긴 포홍의 호의를 너무 믿어서인지는 몰라도, 대저 지금의 병원은 가히 선을 넘으려 하고 있었다.


“무례고 자시고 애초에 폐하께서 건립하고자 하시는 게, 바라시는 게 어떠한 이상인지,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아직 몰라. 고로 그것이 그저 그런 사유재산의 소유와 왕실의 사설 재산을 관장하며 그에 따른 교역과 더불어 여러 집무를 처리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곳에서 또다른 미래를 준비하시는 건지, 그도 아니면 본인만을 위한 안식처를 준비하시는 것인지 물어보라고. 언제고 은퇴할 노후와 훗날의 미래에 대비한 유산이라면 달리 받아들일 게고, 만일 진정 저들과 다를 바 없는 자신만을 위한 성역이라면 그 모순에 따른 대우를 여쭤야지. 본인이 그에 속할 것인지 아니면 정녕 그 하늘에 올라 이 땅의 이들과 별개의 대상으로 신과 같은 인외의 존재로 남을 것인지.”


“자네 정말.......”


“열심히 나라를 살리고 살찌우라 해놓고 이제와 그 나라에 분란을 조장하고 난도질을 하라는 명을 나는 아직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어. 드러난 이면에 자리한 그 진의의 끝자락도 알지 못했다. 그러니까 다녀와. 만일 자네가 다녀오지 않는다면 반대로 내가 가지.”


* * *


“아이고, 더워. 내 정신 나간 친우 놈 안 보내겠다고 온 것이, 이거 벌을 자초해도 단단히 자초했군.”


그렇게 장면은 바뀌었다.


어느덧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번쩍이는 모래만 가득한 메마른 황야 위에서 터덜터덜 일행들과 함께 나아가고 있는 관녕은 오늘도 친우인 병원을 씹어대며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는 중이었다.


무어어어-!


“시끄럽다, 이 녀석아. 성질머리도 사나운 게 목청까지 우렁차고 냄새까지 나니 너는 물도 식량도 그리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것이 별로라 그래도 안 먹을 땐 조용하다 싶었는데, 대저 뭣 때문에 그리도 목소리를 높이는 게냐.”


뭐 그렇다고 이리 뜨겁고 메마른 고행과도 같은 길을 그냥 맨발로 걸어가느냐 묻는다면, 다행스럽게도 시끄럽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낙타가 그 수고로움을 걸어주고 있다 해야 할 것이다.


짤랑- 짤랑-


“하하하, 너무 몰아붙이진 마십시오. 제 딴에 화가 나면 사람 머리를 물어 저 멀리까지 집어던질 수 있는 짐승입니다.”


“아니, 암만 그러해도 그렇지. 어째 망아지 새끼보다도 방정맞은 짐승은 또 처음이라.....”


“본디 이런 놈은 아니지요, 딴에 계집이든 다른 수컷이든 물이든 열매든 흥분하게 만들 무언가가 있으니, 저리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그의 옆으로 제법 이러한 장거리 원행이 익숙한 듯 보이는 동행인 하나가 제 머리를 휘감은 천을 슬쩍 들어 보이며 이국적 얼굴을 드러내니, 그 정체는 다름이 아닌 굴리엘모스였다.


“초행길에 대한 도움치고는 너무나도 과분한 호종이었지, 이 늙은이 때문에 고생이 많소.”


“하하, 되려 진나라의 실질적인 승상을 뫼시게 되니 영광이지요. 거기다 본의 아니게 소관 또한 따로 받은 왕명이 있어 이리한 것이니 딱히 신경을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소관? 그리고 왕명?”


애당초 오기를 그에 의구심을 가졌는데 실상 그 눈이 가늘게 떠지는 것이 어째 그 의심이 점점 더 짙어지고 뚜렷해지고 있었다.


장안에서 이 먼 량주에 이르기까지 처음에는 일면식도 없는 이와 데면데면하였으나 그래도 도저히 솟아나는 호기심을 참을 수 없어 이것저것 캐묻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필경 이 량주 땅에 무언가 있는 것이다. 내수사라는 이름의 무언가가 말이다.


무어어어어-


“아니, 근데 이 말 못할 짐승이 자꾸!”


“놔두십시오. 그래도 제 딴에 흥분할 것들이 많아졌다는 소리이니, 드디어 도착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관녕을 태운 낙타가 연신 흥분한 듯 콧김을 내뿜으며 목청을 높이니, 이에 입가에 미소를 지은 굴리엘모스가 여전히 뿌옇게 몰아치는 모래바람으로 가려진 협곡의 너머를 가리켰다.


“도착이라니?”


- 무어어어어어! 으어어어어!


“메아리?”


그 와중에 골짜기의 바람을 타고 실려 오는 낙타의 소리는 거진 한두 마리의 울부짖음이 아닌 여러 마리가 뒤섞인 우렁찬 울림이었고 이에 굴리엘모스를 따라온 일행들은 그에 익숙한 듯 신이 난 기색으로 말과 낙타의 고삐를 쥐고 협곡의 안으로 걸음을 재촉했고. 관녕 또한 생전 처음 황량한 협곡을 앞에 두고 두려움 반 호기심 반이 뒤섞인 얼굴로 굴리엘모스를 비롯한 일행들을 뒤따라 들어갔다.


“예까지 오느라 정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이내 그 끝에 미소를 지은 굴리엘모스는 그 앞이 막힌 협곡의 모퉁이를 돌며 드디어 길었던 원정의 끝이 다하였음을 말해주었으니, 내리쬐는 햇살 아래 그 무엇하나 보이지 않던 끝자락에 드러난 것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파릇파릇한 풀들이었다.


“이럴 수가......., 이게......., 이게 대체.......”


아니, 정확히는 그 풀들이 드넓게 펼쳐진 푸르디푸른 녹지였다.


그리고 그 녹지 위로 자리매김한 것은 실로 고대문명의 유적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법한, 실로 예상보다도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누런 빛으로 이어진 거대한 도시였다.


물론, 장안과도 같은 일국의 수도에 비견될 대도시는 아니었으나 거진 사람 하나 쉬이 찾아보기 힘든 이 메마르고 황량한 땅에 들어선 이 기적과도 같은 도시는 못해도 1만 이상의 인구가 어울려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물론, 정주민이 아닌 유목민의 특성상 그보다 더 적은 인구로 인한 쾌적함을 영위할 테지만 오가는 이들이 많은 하서주랑의 거점들 사이에 이러한 곳이 있다면 예상보다도 더 많은 이들이 몰려들 것은 거진 확실했다.


“놀랍지요?”


“이게......., 어디 놀랍다 뿐인가?”


그렇게 굴리엘모스의 안내를 따라 그 가까이로 접근하니 가히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신기한 것들 투성이었다.


마치 언덕마냥 솟아난 곳을 중심으로 그 경사면을 따라 마치 바둑판처럼 규격화된 정방형들로 나뉘어 배치된 농토의 교차점에는 지하로 관개수로로 이어진 우물을 비롯해 농작물들의 관리와 보관을 비롯한 선별을 위해 쓰이는 창고를 비롯한 도르래, 물레방아는 물론, 더위를 피하기 위해 마련된 그늘을 제공하는 정자와 같은 건물이 있으니 그 모든 것이 모래와 벽돌 그리고 진흙과 석조 등으로 마감한 깔끔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메마른 곳에서 내리쬐는 햇빛에 제법 그슬린 얼굴을 지니고 있음에도 농사를 짓는 그 어른들과 아이들의 얼굴이 논바닥마냥 쩍쩍 갈라지지도 않았고, 그 한 귀퉁이에는 염소와 양을 비롯한 소와 가축을 모는 목동과 아이들이 가벼운 먼지를 일으키며 들풀이 오른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모든 것이 석재로 이루어진 터라 제법 묵직한 위압감을 자랑하는 성벽 속에 자리한 도시의 안으로 들어서니 순간 느껴지는 이질적인 풍경과 감각이 관녕의 오감을 자극했다.


“지금 내가 사막 속의 숲에 들어온 것인가? 그도 아니면 꿈속에 있는 것인가?”


어째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실로 이국적이다 못해 신비했다. 마치 자연에 의해 뒤덮인 태고의 신비를 감춘 고대의 유적 안으로 발을 들인 모양새였다.


“이토록 그늘이 지고 시원하다니, 이 메마른 더위에 이럴 수가 있나?”


내리쬐는 햇살이 쉬이 들어오지 않은 것이 그 고개를 올려다 보니 마치 요새마냥 드높게 지어진 건축물들이 그 답이 되는가 싶었다.


곳곳에 햇빛을 가리는 차양막을 걸어 내리쬐는 태양 빛을 막았고 창문을 덮는 창틀을 나무 고정대로 세워,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빛을 가리는 이들이 많았다.


“설마 송골송골 물방울이 맺힌 이 수도교 때문인 건가?”


지표면 위를 휘감으며 흐르는 물줄기는, 그 물을 빼는 역할을 하는 건천의 흔적마저도 보이지 않았으니 필경 이토록 도시의 내부가 시원하려면 어디에선가 물이 있어야 했다.


그 와중에 눈에 들어온 것은 차양막에 의해 가려진 그늘의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을 받아 번쩍이는 누런 빛의 반짝이는 구리로 이루어진 수도관이었다.


“허어, 차갑구나. 그들에 자리한 것들은 이리 물방울마저 맺혀있으니.”


그렇게 입에 가져가니 손끝에 자리한 물방울들이 금세 메마른 혓바닥을 시원하게 적셔주었다.


“허어, 달구나. 달아. 이리 좋을 수가 있는고?”


그렇게 시선을 돌리니 석재로 이루어진 수도교와 같은 구조물을 따라 투박하게나마 휘어진 관들이 모여든 곳에 마치 약수를 떠 담는 공용우물과도 같은 공간이 있었고, 그곳에서조차 석재를 비롯한 마감을 통해 그 물이 증발되지 않도록 동굴과 같이 주변을 돌로 감싼 구조를 엿볼 수 있었다.


촤륵-


“좋구나, 좋아. 어찌 이리 향긋할꼬?”


그렇게 모여든 이들을 기다려 자신의 차례가 되자 손잡이가 달린 바가지를 들어 물을 축이니 가히 그 맛이 꽃내음이 난다 할 정도로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막상 갈증이 해결되고 나니 새롭게 이끌린 이국적인 꽃향기와 풀 내음이 느껴지는 것이 그 고개를 돌아보니 구석구석에 벽돌식으로 규격화된 화단이 자라난 화초와 가시 달린 풀을 비롯한 열매 맺는 식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이를 아무렇지 않게 꺾은 굴리엘모스가 아직도 싱그러운 붉은 꽃 하나를 건네니 저도 모르게 이를 코로 가져간 관녕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아무래도 메마른 곳에서의 생활을 위해서는 향낭만한 것이 없지요. 그 때문에 별도의 화단을 만들어 화초나 과실 맺는 열매를 기르는 이들이 많습니다.”


“물이 부족할 것인데, 그런 것치고는 이곳은 너무 풍족하고 화려하군.”


“본디 사막과 초원을 비롯한 광야 등지에서 자라는 것들을 위주로 심는 게지요.”


“그렇다고 해도 사막과 광야 위에 어긋나게 들어선 이 공간은 말이 안 돼.”


“저희는 이곳을 파라다이스라 부릅니다. 과거 그토록 폐하께서 부르짖으셨던 관대한 제국의 용어로 그 어원은 숨겨진 곳이자 담장으로 둘러싸인 장소를 뜻하지요, 허나 작금의 시기에 이르러 자리매김한 의미는 낙원(樂園)입니다. 일종의 이상향이라 볼 수 있겠지요.”


이 땅에 실존하는 낙원이라는 이름의 두 글자.


그것이 말하는 바를 모르지 않을 관녕은 이내 뭐에 홀린 미친 사람마냥 그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연신 자신이 두 발 딛고 선 이 땅의 모든 것을 살피고 또 살폈다.


“숨겨진 곳, 담장으로 둘러싸인 곳. 그래, 이게 바로 폐하께서 그토록 갈망하셨던 폐하를 위한 성역이셨던 게로군.”


작가의말

글 한번 이어 쓰기 디게 힘드네 어휴 자꾸 생존신고를 해야만 하니 이거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달고 살 수밖에 없나봐요 ㅠ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94 393화 – 자유과 공화의 옹주정은 혁명 프랑스를 닮아간다 +2 22.07.15 180 4 23쪽
393 392화 – 이 땅에, 이 나라에 전쟁이 필요한 이유(4) +2 22.07.11 208 4 25쪽
392 391화 – 하늘이 내린 왕조를 등진 자유와 공화의 옹주정, 부패할 수 없는 로베스피에르의 탄생 22.07.10 180 4 16쪽
391 390화 – 전쟁을 부르는 빵과 아고라, 콜로세움과 서커스 +1 22.07.09 185 5 22쪽
390 389화 - 관서대공황의 전조와 대국. 아니, 패권국의 위기(3) +2 22.07.04 179 3 16쪽
389 388화 - 관서대공황의 전조와 대국. 아니, 패권국의 위기(2) +2 22.07.03 159 3 16쪽
388 387화 – 관서대공황의 전조와 대국. 아니, 패권국의 위기(1) +2 22.06.30 285 3 21쪽
387 386화 – 신의 실각과 인간의 시대를 열기 위한 준비, 18세기 재림과 19, 20세기의 안배 +2 22.06.23 201 3 22쪽
386 385화 – 관서 대공황의 전조와 제국의 위기(1) 22.06.22 177 5 20쪽
385 384화 - 이 땅에, 이 나라에 전쟁이 필요한 이유(3) 22.06.19 180 3 23쪽
384 383화 – 이 땅에, 이 나라에 전쟁이 필요한 이유(2) +4 22.06.17 184 5 23쪽
383 382화 – 이 땅에, 이 나라에 전쟁이 필요한 이유(1) +4 22.06.09 225 6 29쪽
382 381화 - 이것이 힘이고 곧 권능일지니 그가 무엇을 행하던 의심하지 말지어다 +2 22.06.07 208 5 18쪽
381 380화 – 그곳에 자리한 이는 신인가 인간인가 +2 22.06.06 213 3 21쪽
» 379화 – 파라다이스, 낙원 그리고 성역 22.06.05 203 5 20쪽
379 378화 – 되살아난 악몽에 대한 우려, 변혁과 방임의 부추김과 변화하는 시대를 두려워하는 이들 22.05.25 221 5 26쪽
378 377화 – 개혁의 여름, 서원과 사부회의 정국, 새롭게 등장한 사림의 이들을 비롯한 그 내외 +2 22.05.24 210 4 18쪽
377 376화 – 개혁의 봄, 그 모든 것의 바탕이 될 서원의 난립과 훈구파의 등장 22.05.13 237 3 20쪽
376 375화 – 콜레기아에서 클럽까지, 공화정 로마에서 혁명 프랑스까지 22.05.10 257 4 20쪽
375 374화 – 신과 인간을 아우르는 주사위 놀이 22.05.09 207 4 16쪽
374 373화 – 변혁과 방임의 다섯 번째 걸음은 시대와 세계를 앞으로 당기기 위해서다 +2 22.05.06 228 8 18쪽
373 372화 – 변혁과 방임의 네 번째 걸음은 대진국과 같아지기 위함이요, 대진국과 달라지기 위함이다 +2 22.05.04 227 4 22쪽
372 371화 - 변혁과 방임의 세 번째 걸음은 사람에 대한 실망과 상실을 부른다 +2 22.05.01 260 9 25쪽
371 370화 – 맹자와 고자, 갑자와 부자(2) +2 22.04.26 238 7 24쪽
370 369화 – 맹자와 고자, 갑자와 부자(1) +2 22.04.25 219 5 20쪽
369 368화 – 변혁과 방임의 두 번째 걸음은 그에 따른 우려와 기대를 낳는다 +4 22.04.08 280 7 25쪽
368 367화 – 변혁과 방임의 첫 걸음은 이 땅을 집어삼킬 또다른 괴물을 깨운다 +4 22.04.06 270 6 22쪽
367 366화 - 뒤집힌 세상 속 변화하기 시작한 진나라의 사회상 22.04.05 250 7 21쪽
366 365화 - 뒤집힌 세상 속 이름을 날린 이들과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 회귀자들(2) +4 22.04.03 269 9 20쪽
365 364화 – 평정(2) +2 22.04.02 275 6 28쪽
364 363화 – 평정(1) 22.04.01 274 6 30쪽
363 362화 – 뒤집힌 세상 속 이름을 날린 이들과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 회귀자들(1) 22.03.30 294 8 21쪽
362 361화 – 저수의 출사표, 일룡과 일사 그리고 갑 장사 22.03.24 294 7 28쪽
361 360화 – 고로 하북이 시끄러워졌다(8) 22.03.18 255 8 20쪽
360 359화 – 고로 하북이 시끄러워졌다(7) +2 22.03.16 293 6 20쪽
359 358화 – 고로 하북이 시끄러워졌다(6) +4 22.03.14 265 6 18쪽
358 357화 – 고로 하북이 시끄러워졌다(5) +2 22.03.10 280 6 18쪽
357 356화 – 고로 하북이 시끄러워졌다(4) 22.03.08 254 7 24쪽
356 355화 – 고로 하북이 시끄러워졌다(3) 22.03.04 295 7 17쪽
355 354화 – 고로 하북이 시끄러워졌다(2) +2 22.02.28 274 7 2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