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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빅샌드 님의 서재입니다.

별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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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빅샌드
작품등록일 :
2013.12.30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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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7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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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26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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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연방 보안국. 이틀 후.

DUMMY

도시 중심부, 화려하게 솟은 빌딩들의 틈 사이에 연방 보안국 청사가 서 있었다. 보안국 청사의 흰 외벽은 유독 의례 가장 보수적인 취향을 반영하여 안타락스 III에서 가져온 대리석으로 꾸며졌다. 처음에는 고전적인 위엄을 뽐내던 연방 보안국 청사는 그러나, 새로운 건축 기술과 진보적인 설계 양식을 도입한 주위의 화려한 빌딩들에 묻혀 지금은 옛 시대의 잊혀진 유적과 같은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이른 아침, 랜스 데커드는 그의 사무실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보안국 청사의 계단을 올랐다. 킹 크랩에서의 그 일 이후로 이틀이 지났지만, 그가 들었던 대화들은 아직도 그의 머릿속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데커드는 비틀거리며 자신의 데스크에 앉아,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창가로 몸을 돌렸다. 창 너머 도시의 건물들 사이로, 간밤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침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앤드류 케이먼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며 지난 밤을 새다시피한 그는, 몰려드는 피로감에 잠시 눈을 감았다. 그 때, 그의 뒤에서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데커드의 직속 상관, 수사부 부장 폴 라슈였다. 데커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덕한 풍채에 걸맞게 항상 여유있는 하루를 시작하던 그가,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데커드의 사무실로 친히 찾아 왔다는 것은 결코 좋은 징조라고 할 수 없었다.


“데커드, 일찍 출근했군. 요 며칠 사이에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닌다는 얘기가 있던데...”

“부장님, 안 그래도 오늘 중으로 정리해서 보고 드리려고 했습니다만...”


라슈는 손을 내저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부서 차원에서 어젯밤에 그 누구냐... 미안하네, 원래 이 나이가 되면 기억이 오락가락 하거든... 그렇지, 제이콥 사일러스 건을 자살로 종결 처리하기로 했다네.”


급작스러운 통보에 데커드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나도 자네가 요 며칠 고생이 심했던 것을 아네.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미안하기는 하네만, 어쨌든 제이콥 사일러스 건이 이렇게 종결 처리 되었으니 자네도 한 동안은 좀 푹 쉴 수 있지 않겠나?”

“부장님, 담당 요원인 제게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으신 상태에서 이렇게 일방적으로 사건을 종결시키실 수는 없습니다. 애초에 그런 결정을 내리실 생각이었다면 저와 최소한의 상의라도 하셨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자네의 그런 반응을 예상했기에 자네에게 연락하지 않은 거야. 데커드, 이제 다 끝났네. 물론 자네야 지금까지 자네 나름대로 고생한 바도 있고, 자네 동의 없이 내 선에서 이렇게 사건을 종결시켰으니 화가 나겠지. 하지만 자네의 그 고집을 아는 나로서는 최선의 방안이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하네...”

“하지만 부장님, 중간 보고서에 제가 적어놓았습니다만 이 건에 대해서 설명되지 못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얼렁뚱땅 결론을 낸 채, 섣불리 사건을 종결시키는 조치는 도무지 이해되지가 않습니다.”

“이보게나, 데커드 요원. 가끔은 세상을 단순하게 바라볼 필요도 있는거라네. 간단한 설명이야말로 최선의 설명이라는 경구도 있지 않은가? 한 불행한 청년이 있었다, 별의 아이로 태어난 그는 자신의 비참한 운명을 알고 있었고, 그것은 그에게 세상을 증오하고 미워할 충분한 동기를 제공해 주었다, 그래서 어느날 그는 지구로 찾아와 인류 진보의 선두에 서 있는 한 대기업의 사옥에서 투신 자살했다... 지극히 비극적이지만 또한 지극히 명쾌하고 평범한 설명이지. 자네는 이 설명이 마음에 들지 않나?”

“부장님...”

“자네는 요즘 들어 너무 멀리 나가고 있다네, 데커드 요원. 내가 자네의 능력을 알고, 자네를 아끼기 때문에 말하는 걸세. 자네, 이틀 전에 킹 크랩에는 도대체 왜 갔던 건가? 그래, 죽은 젊은 친구가 밀무역자들과 관계가 있을수도 있지. 그것이야말로 아마 그자가 지구에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을 알아낸다고 해서 사건의 실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라네.”


데커드는 애써 라슈의 시선을 피하며 물었다.


“제가 킹 크랩에 갔었다는 것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카를이 말해주더군. 자네가 주변인 탐문을 하더니 제이콥의 동료를 찾는답시고 킹 크랩으로 무작정 가버렸다고. 가끔 자네는 마치 자네가 신입 요원인 것처럼 굴때가 있어. 물론 자네의 그런 열정은 높이 산다만... 때로는 너무 무모해서 문제란말이지.”


라슈는 잠시 안경을 고쳐쓰고 말을 이었다.


“이 세상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지 않은 것은 없다네. 다만 그 연결고리의 일부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자신만의 논리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하면 정작 가장 간단한 진실을 놓치는 법이지. 나는 자네가 그런 실수를 하도록 놔두고 싶지 않아.”


데커드는 어느새 자신이 점점 무기력해진 채, 밀려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는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어떤 말이라도 해야만 했다.


“하지만 부장님, 이 사건에는 분명 무언가가 있습니다. 저는 분명히...”


조나단 사일러스와 앤드류 케이먼, 그리고 이틀 전 그가 보고 들은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려다 데커드는 입을 다물었다. 그 누가 탤론 프라임의 광산 관리인과 UPX의 이사회 회장이 함께 모종의 거래를 하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겠는가? 사원, 프락시스와 같은 단어를 채 입에 올리기도 전에 라슈는 데커드가 스스로 자신만의 논리에 빠져서 헤어나올 수 없는 망상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자백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결국 데커드는 힘없이 물었다.


“당장 제이콥 사일러스가 어떻게 그 삼엄한 경비를 뚫고 보안 구역까지 들어갔는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라슈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미안하게 됐네만, 데커드 요원, 그 문제에 대해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준 분이 계셨다네. 들어오시라고 해.”


곧 사무실의 문이 열리며 말쑥한 차림의 한 여성이 들어왔다. UPX의 보안 부책임자, 웨이 린이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데커드에게 손을 내밀었다.


“또 뵙게 되는군요, 데커드 요원님.”


곧 라슈가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은 채, 데커드의 사무실 밖으로 퇴장했다. 이제 방 안에는 여전히 의례적인 미소를 짓고 있는 웨이 린과, 그녀를 차갑게 노려보는 데커드만이 남았다.


“데커드씨,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제이콥 사일러스 건에 대한 수사는 마무리되었습니다. 라이언 회장님과 UPX를 대신하여 그간 데커드씨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항상 이런 식이군요, 린 양. 용케 부장님을 잘도 구워 삶으셨습디다. 모두가 달가워하지 않는 수사였을테니 이렇게 끝나는 것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아, 제게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당신들과 라슈 부장 사이에서 이미 결론을 내린 일일테지요.”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데커드씨, 저희 역시 이번 사건에 대해서 분명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종결에 있어서 데커드씨께서 생각하시는 소위 대기업의 외압이나 은밀한 커넥션 같은 것은 개입되지 않았다고 확언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저희는 수사에 가장 결정적인 단서가 될 정보를 제공했고, 라슈 부장님께서는 이를 감안하시어 사건을 종결지으셨다는 것이 맞는 말이겠지요.”


데커드의 빈정거림에도 불구하고, 린은 여전히 정중한 어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칩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저는 당신이 말하는 그 결정적인 단서에 대해서 아직까지 모르고 있습니다. 제이콥이 어떻게 UPX 사옥의 1급 보안 구역, 그것도 113층에 위치한 곳으로 들어갈 할 수 있었는지, 그 단단한 메타물질 패널을 어떻게 부수고 뛰어내릴 수 있었는지 당신은 그 답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면 어디 한 번 들어나 봅시다.”

“최대한 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제이콥 사건이 있은 후, 저희 내부에서도 사옥 내 보안 시스템의 신뢰성에 대한 심각한 문제 제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얼마 전, 전 사옥을 대상으로 보안 점검을 실시했습니다. 단순히 센서가 잘 작동하는가, 근무 인원의 태도는 적절한가의 수준을 넘어, 거대한 시뮬레이션을 바탕으로, 시스템이 갖는 총체적인 신뢰성과 안정성을 테스트하는 것이었지요...”


웨이 린은 잠시 침을 삼킨 후 말을 이었다.


“시뮬레이션의 결과는 흥미로웠습니다. 저희의 보안 시스템이 지극히 건강하며, 또한 거의 완벽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지적해주었으니까요.”


데커드는 눈살을 찌푸렸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해주었으면 좋겠군요.”

“저희는 UPX 사옥의 보안 시스템을 디자인하면서 기존에는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급진적인 모델을 현실로 구현했습니다. 데커드씨도 일반적인 보안 시스템 이론에 대해서는 잘 아시지요? 이에 관한 시스템의 시각화 모형도 어느 정도 접해보신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그 시각화 모형은 어떤 모습이던가요?”


데커드는 경찰학교 시절 스쳐지나가듯 배웠던 이론적 지식을 간신히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것은 마치... 뭐랄까, 내가 본 것은 거대한 눈 결정처럼 생겼더군요. 개별적인 말단 행동의 흐름이 점차 집약되어 중앙을 향해 흘러가는 모델이었소.”

“거의 정확합니다. 이러한 모형은 대단히 안정적이고, 또한 통제하기 극히 용이합니다. 가장 상식에 부합하는 동시에, 실패의 확률도 극히 적지요. 하지만 그러한 형태는 그 자체로 불안정성을 내포합니다. 데커드씨도 혼돈 이론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으시지요? 만약 눈 결정의 한쪽 가지에 아주 작은 먼지가 달라붙어, 그 흐름을 방해한다면 어떨까요? 분자 하나의 흐름이 지연됨으로써. 그것이 다른 분자에 영향을 미치고, 결과적으로는 시스템 전체가 붕괴될 수도 있습니다. 건물의 보안 시스템을 하나의 거대한 기계적 속박계라고 놓고 설명 드리자면, 이는 외부의 충격에는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으되, 보호막이 버티지 못할 충격으로 인해 계의 안정성이 한 부분이라도 무너질 경우, 시스템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희는 보안 시스템을 구축함에 있어서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고자 했어요.”


웨이 린은 잠시 말을 멈추고 데커드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신의 논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그녀가 말했다.


“저희는 그 한계를 벗어나고자, 저희의 보안 시스템을 일종의 살아있는 계의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살아있는 존재와 그것들이 이루는 계는 항상성을 유지합니다. 예를 들자면, 육식동물이 과도하게 번식함으로 인해 초식동물의 수가 감소하더라도, 자연은 경쟁에서 밀려난 육식동물을 굶어죽게 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생태계를 유지시키죠. 물론 그 자체로 이것은 고정불변의 안정적인 계가 아닙니다. 끊임없이 흔들리고 변화하죠. 그러나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어떠한 종류의 충격에도 시스템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으며, 심지어 그것이 외부의 개입 없이 시스템 자체 내에서 극히 자연스럽게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원리에 착안했습니다. 저희가 개발한 보안 시스템에서 외부의 공격은 더 이상 단순히 적대적인 무언가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는 시스템과 공명하며 충격을 끌어올리는 힘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이를 낮추는 힘 역시 생성하는 동력이 됩니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진동 속에서 시스템은 안정을 찾게 되고, 최초에 가해졌던 외부의 충격을 어느새 자신의 또 다른 일부로 흡수하여 진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스스로 반응하고 진화하는 시스템이라... 제게는 마치 통제 불능의 시스템에 당신네들의 보안을 전부 맡기고 있다는 말로 들립니다만...”


웨이 린이 미소지었다.


“그 동안 저희의 시스템은 완벽하게 작동했습니다. 회사를 노린 수많은 해킹 및 외부의 공격 시도에 대해 완벽한 자기 방어 능력을 보여주었지요. 이론의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모두 저희의 시스템은 해킹이나 외부로부터의 침투 자체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지요.”

“그런데 무엇이 문제였던겁니까?”

“그 부분이 미묘합니다. 그 문제의 해답은 아이러니하게도 시스템 자체에 숨겨져 있었으니까요. 저희는 자연스럽게 항상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외부 자극과 상호작용하며 그 자체로도 진화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설계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데커드씨가 말씀하신 것과 같은 통제 불능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시스템 전체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하나의 키도 동시에 설계했습니다. 저희는 그것을 백 도어(back door)라고 부릅니다.”

“백 도어?”

“백 도어는 전체적으로 비선형적이고 유동적인 시스템에서 유일하게 선형적이고 기계적인 요소입니다. 백 도어의 역할은 유사시 그 자체로 보안 시스템을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하부 단위들을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백 도어를 통해 저희는 단순하게는 직접 특정 구역의 센서 하드웨어를 작동시키는 것부터, 특정한 외부 자극에 대한 시스템의 반응 강도 및 양상을 조작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통제탑이자 마스터키군요.”

“그렇습니다. 문제는 시뮬레이션에서 백 도어 시스템이 작동할 시, 보안 시스템이 이를 외부로부터의 침투로 인식하여, 이에 대응할 때가 있었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시스템이 백 도어를 자신의 순환계에 침투한 일종의 이물질로 인식했다는 것이죠. 이는 저희의 시스템이 분명히 살아있으며, 지나칠 정도로 완벽하게 동작한다는 것의 증거입니다만, 그럴 경우 이론적으로 시스템의 반응 체계에 의해 예측 불가능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대단히 낮은 확률이지만, 백 도어에 의한 예외 요소를 판별하는 중에, 시스템 자체가 이미 이에 반응하여 조치를 취하려 하는 경우가 있었거든요.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면역 체계의 과도한 발현으로 인해 몸살에 걸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그렇군요. 아마 제가 제대로 알아들었다면, 결과적으로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은 당신네 시스템의 오류로 인해 제이콥 사일러스의 행적을 추적하지 못했다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당신의 설명은 수학 모델에 근거를 둔, 지극히 이론적인 논의일 뿐입니다. 제이콥 사일러스가 1급 보안 구역까지 올라가서 죽은 것은 엄연한 사실이구요. 제게는 시뮬레이션에서 도출된 오류와 실제 사건간의 괴리는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군요.”


웨이 린은 자신의 홀로패드를 꺼냈다.


“이 데이터를 보세요. 낯이 익으시죠? 제가 제이콥 사건 직후에 요원님께 보내드린 사옥의 종합 센서 데이터입니다. 제가 이 데이터를 하나의 교차 군집 모델로 바꿔 보여드리죠.”


데커드의 앞에 수많은 점의 무작위적인 배열로 이루어진 거대한 군집이 펼쳐졌다. 웨이 린이 손짓하며 말을 이었다.


“이 부분, 여기에 데이터를 봐 주세요. 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여기입니다. 겉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영역과 다르게 이 부분에 대해서만 특정 패턴이 일시적으로 반복되고 있어요. 즉, 실제로는 특정 구역의 센서 데이터를 시스템이 무작위적으로 추출하여 반복적으로 기록하고 있었다는 말이죠. 그래서 처음에 데커드씨께서 제이콥 사일러스가 유령이라도 된 것처럼 생각했던 것이고, 저 역시 시스템 자체는 완벽하게 동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해당 문제를 오류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지속 시간은 정확히 4분 12초. 짧지만, 그러나 충분한 시간이죠.”

“그렇다면 당신의 말은 이 4분 12초 사이에 제이콥이 113층의 특정 보안 구역으로 들어갔다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실제 투신이 일어난 시각과는 약 열두 시간 정도의 괴리가 있지만, 그 자체로 큰 문제는 아니죠.”


웨이 린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데커드에게는 이 모든 설명이 말장난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분명 그녀는 안 그래도 수사를 둘러싸고 신경이 곤두서있을 라슈에게 찾아가 이렇게 난해한 설명과 위압감을 주는 시각화 모델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데커드는 라슈가 사건을 신속히 종결 처리한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때 문득 한 줄기 생각이 데커드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군요, 린 양. 이렇게 방대하고 복잡한 시스템을 파악하고 운영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듯합니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오류를 찾아냈으니, 그 오류는 조만간 수정되겠군요?”

“그렇습니다. 백 도어에 관련한 부분은 이미 조치를 해 두었지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일어날 확률이 낮은 사건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저희 시스템의 결점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었죠.”

“역시 대단하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방대한 작업을 누가 합니까?”


웨이 린의 입가가 자신감 넘치는 미소로 물들고 있었다.


“이번 건에 대해서는 제가 직접 시스템을 수정했습니다. 보안 시스템을 그 정도 레벨에서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전 은하계의 UPX 법인을 통 털어도 손에 꼽지요.”


데커드는 미소로 화답했다.


“그렇군요. 보안 총책임자와 부책임자 정도가 되어야 이른바 백 도어를 마음대로 열거나 닫을 수 있을 테지요.”


웨이 린의 얼굴에서 일시적으로 미소가 사라졌다. 그러나 그녀는 곧 표정을 고치고 입을 열었다.


“더 궁금한 것은 없으신가요, 데커드 요원님?”

“아닙니다.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사건 보고서를 읽어보지요. 그리고 저도 몇 가지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짐작 가는 바가 있기는 합니다. 저 스스로가 이런저런 난제를 해결하는 것을 꽤나 즐기는 성격이라, 아마 사건 보고서는 잠시 치워두고, 여가 시간에 추리 퀴즈 푸는 기분으로 그 사건을 곱씹어봐도 좋겠지요.”

“어쨌든 저희와 보안국 양측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를 이끌어 낸 것 같습니다. 저희는 시스템의 문제를 찾아낼 수 있었고, 요원님도 더 이상 난제에 발이 묶인 채 위험한 상황으로 스스로를 내몰지 않아도 되니 말이지요.”

“그저 감사할 따름이군요. 그런데 린 양께서는 그 말을 전하기 위해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사실 제가 데커드씨를 직접 찾아온 이유는 다른데 있습니다.”


말을 마치고 웨이 린은 안주머니에서 한 장의 카드를 꺼냈다. 이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실크 장식 카드였다. 물결무늬가 아로새겨진 흰 실크 위에 고풍스럽게 UPX의 로고가 박음질되어 있었고, 그 아래에는 세련된 글씨체로 노위스 라이언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데커드에게 카드를 건네며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라이언 회장님께서 오늘 데커드씨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셨습니다. 회장님께서는 호의적인 분위기에서 데커드씨와 개인적인 만남을 가지고 싶어 하십니다. 데커드씨, 라이언 회장님의 요청을 거절하지는 않으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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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UPX 스페이스 도크 오케아노스. 뉴 에덴. (2) +1 14.10.05 259 5 11쪽
37 UPX 스페이스 도크 오케아노스. 뉴 에덴. +1 14.09.21 262 5 24쪽
36 지구 궤도. UPX 스페이스 도크 오케아노스. (2) +2 14.09.08 262 5 9쪽
35 지구 궤도. UPX 스페이스 도크 오케아노스. +1 14.08.25 270 5 9쪽
34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모처. (3) 14.08.11 142 5 13쪽
33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모처. (2) +1 14.07.28 229 4 9쪽
32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모처. 14.07.20 315 5 12쪽
31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버려진 정제소. (2) 14.07.07 115 4 7쪽
30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버려진 정제소. 14.06.30 313 5 9쪽
29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데커드의 호텔 방. (2) +1 14.06.22 219 5 8쪽
28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나인스 브릿지. (3) 14.06.15 286 6 9쪽
27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나인스 브릿지. (2) 14.06.08 378 10 13쪽
26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데커드의 호텔 방. 14.06.01 148 5 17쪽
25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4) +1 14.05.25 1,333 17 12쪽
24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3) +1 14.05.11 273 6 9쪽
23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하역장. 14.05.04 315 4 12쪽
22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빈민가. +1 14.04.27 158 3 10쪽
21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2) +1 14.04.20 419 6 13쪽
20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나인스 브릿지. +3 14.04.13 240 4 15쪽
19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14.04.06 332 5 12쪽
18 UPX 사옥. 장서관. +1 14.03.23 1,173 3 13쪽
17 UPX 사옥. 회장 집무실. 14.03.16 1,516 27 12쪽
16 UPX 사옥. 중앙 보안 통제소. 14.03.09 770 3 18쪽
15 시내 중심가. 데커드의 아파트. 14.03.02 730 3 15쪽
14 도시 외곽. 주택 단지. +1 14.02.23 373 3 17쪽
13 UPX 사옥. 최고 경영 기록 보관소. (2) 14.02.16 369 3 16쪽
12 UPX 사옥. 최고 경영 기록 보관소. 14.02.09 347 5 10쪽
11 UPX 사옥. 펜트하우스. 14.01.30 418 7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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