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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빅샌드 님의 서재입니다.

별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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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빅샌드
작품등록일 :
2013.12.30 22:07
최근연재일 :
2014.10.27 01:03
연재수 :
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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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8
추천수 :
262
글자수 :
229,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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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21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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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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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UPX 스페이스 도크 오케아노스. 뉴 에덴.

DUMMY

긴 회랑을 거쳐 데커드와 수경은 <뉴 에덴>의 함교로 향했다. 두 명의 별의 아이들이 총구를 겨눈 채 데커드와 수경의 뒤를 따랐다. 밖에 펼쳐진 지옥도와는 대조적으로 <뉴 에덴>의 내부는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오로지 네 사람의 발소리만이 무거운 침묵에 저항하고 있었다.

곧 데커드와 수경은 한 널찍한 방으로 들어왔다. 새로 건조된 우주선에서 맡을 수 있는, 내장용 도료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방의 우측면에는 널찍한 채광창이 설치되어 있었고, 창 너머로 화염에 휩싸인 오케아노스와 아무래도 좋은 듯이 우아한 푸른빛을 내뿜고 있는 지구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 반대편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바와 응접용 소파가 놓여있었다. 그 주위로 수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데커드는 사람들을 향해 걸어가며 소리쳤다.


“조나단 사일러스씨! 오랜만이군요!”


헝클어진 머리칼. 굽은 등. 광산 관리자에 어울리는 초라한 가죽 재킷. 조나단 사일러스는 천천히 몸을 돌려 데커드와 수경을 바라보았다. 그는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데커드씨! 설마 했소만, 결국 오지 말아야 할 곳까지 오고 말았군요. 수경씨도...... 이것 참 유감스럽게 됐소이다.”


두 사람이 다가가자 조나단 사일러스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무장한 인원들이 천천히 비켜섰다. 그러자 그 사이로 고급스러운 소파 위에 여유로운 자세로 몸을 기대고 있는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주위와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눈부신 흰 색의 정장 차림의 노인, 라이언 회장이었다. 라이언 회장은 데커드가 다가오자 의례 그 여유 있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가 입을 열었다.


“데커드씨, 이런 위험한 곳에 제발로 들어오실 줄은 몰랐소이다. 게다가 여성분과 함께 라니. 우리는 초면이지요?”


<뉴 에덴>이 점령당하고, 적대적인 무장 인원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에서도 라이언 회장은 전혀 위축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데커드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딱히 갈 곳도 없었지요. 원래는 지금쯤이면 죽은 사람이 되었어야 할 테었으니까요.”

“그러게 내가 조언하지 않았습니까. 애초에 지구로 돌아왔다면 지금쯤 안락한 소파에 앉아 이 불꽃놀이를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었을 테지요.”


라이언 회장이 심술궂은 어조로 말했다. 문득 세 사람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때였다. 벽 너머에서 한 남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단발마의 비명소리가 몇 차례 이어지는가 싶더니 다시 주위가 고요해졌다. 조나단 사일러스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시작되었군. 라이언 회장. 쓸데없는 피를 더 보기 전 이쯤에서 그만 굴복하시오.”


라이언 회장은 동요의 기색 하나 없이 테이블 위에 놓인 잔을 들어 위스키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차 말했지만 이건 바보짓이오, 사일러스씨. 이미 보안국 함선들이 이 곳을 물샐 틈 없이 포위하고 있을 거요. 나 같으면 아무 소득 없을 바보짓에 목숨을 거느니 차라리 이쯤에서 투항해서 저 불쌍한 사람들의 목숨이나 건사해주겠소.”


그 때 다시 벽 너머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데커드가 말했다.


“사일러스씨, 제 생각에도 이것은 현명한 짓이 아닙니다. 당신이 지금 프락시스로 하려는 일......”

“데커드씨, 결국 알아내신 것 같군요. 제이콥 일로 당신을 만났을 때는 당신을 과소평가했소. 솔직히 말해 케이먼이 당신에 대해 경고했을때도 나는 반신반의했소만, 확실히 탤론 프라임에서 당신의 행동은 흥미로웠소. 우연이든, 필연이든 당신은 용케 우리의 심장부까지 다가가고 있더군요.”

“그걸 다 알고 있었습니까?”

“스프로울 우주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당신을 주시했지요. 마음만 먹었다면 언제든지 당신과 저 여자 분을 처리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소. 광물 정제소에서 두 사람을 붙잡았을 때도 당신들을 해칠 생각은 전혀 없었소이다. 일이 끝나면 그대로 풀어주려고 했지요. 하지만 라이언 회장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더군요.”

“조금 전 까지만 해도 당신은 나를, 탤론 프라임에 있는 별의 아이들 모두를 죽이려고 했지요. 여기 있는 수경씨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데커드가 라이언 회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라이언 회장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벽 너머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는군요. 이야기를 할 시간은 충분할 듯 합니다. 데커드씨도 이제 아시겠지요. 이 모든 일들의 기원에 대해서......”

“솔직히 처음에는 감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운이 좋았다고 할까요, 여기 계신 라이언 회장님께서 결정적인 단서를 주셨죠. 일전에 UPX 사옥의 보안 시스템 오류에 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지요? 폐쇄적인 순환계에 외부 자극이 가해질 경우 생겨날 수 있는 예측 불가능한 결과에 대해서요.”

“코흐 효과 말이지요. 기억나지요. 지금 와서야 하는 말이지만 데커드 씨의 체스 실력은 형편없더군요.”

“UPX의 보안 시스템과 테라포밍의 대상이 되는 행성, 그리고 개척자들 자신. 그 사이에는 모두 공통점이 있어요. 그것은 바로 스스로 순환하는 하나의 폐쇄적인 계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웨이 린 양 - 이 자리에 없는 것이 유감이군요 - 은 제게 그 순환을 방해하는 작은 외부 요소가 끼칠 수 있는 예측 불가능한 오류의 가능성을 보안 시스템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해주었지요.”

“잘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데커드씨. 웨이 린 양은...... 유감스럽게도 저 작자들이 <뉴 에덴>의 방호벽을 자살 폭탄으로 공격했을 때 명을 달리하고 말았소이다. 아무튼 잘 나가고 있어요.”

“하지만 처음부터 그 공통점을 연상할 수 있었던 건 아닙니다. 아니, 애초에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쉽게 할 수는 없었겠지요. 하지만 예배당 지하의 비밀 서재에서 ‘그 책’을 발견했을 때, 갑자기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더군요.”


침묵을 지키고 있던 조나단 사일러스가 그 때 입을 열었다.


“미셸 그래직의 책 말이군요. 대단한 눈썰미시군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저도 참 어리석지요. B-8 모듈을 직접 보고 나서야 비로소 모든 퍼즐이 맞춰졌으니까요.”


라이언 회장이 갑자기 흥미를 느낀 듯 데커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결국 데커드씨는 B-8 모듈을 찾아냈군요. 놀라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저 하나의 거대한 벽이 있을 뿐이었죠.”


수경이 말했다. 데커드가 그녀의 말을 이었다.


“B-8 모듈은 처음부터 아무 의미가 없었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사일러스씨? 이미 스프로울 전체가 거대한 우주선의 잔재였으니까요. 당신은 그저 별의 아이들 사이에서 일종의 종교적인 구심점을 만들기 위해 ‘사원’이라는 이름하에 B-8 모듈의 잔해를 이용한 것뿐입니다. 케이먼씨마저 그것에 속아 넘어갔으니 어찌 보면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요? 애초에 당신의 목적은 스프로울에 흩어진 <에덴>의 잔재를 복구하고, 그 속에서 프락시스를 재구성하는 것이었어요. 그 수많은 전자식 컴퓨터들을 그러한 목적으로 케이먼에게서 얻어낸 것이고요. 양자식 컴퓨터로는 수 세기 전 <에덴>의 데이터를 읽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소. 하지만 나도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소. 나도 몇 년 동안은 별의 아이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B-8 모듈의 존재를 찾아다녔으니까. 그러다 어느 순간 당신처럼 그 거대한 과거의 잔해를 마주하게 되었지. 아무 것도 없는 그 거대한 폐허 앞에서 며칠 동안 홀로 생각에 잠겼소.”

“그래서 이런 끔찍한 짓을 계획하신건가요?”


갑자기 수경이 항의하듯 말했다. 조나단 사일러스는 그녀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때 라이언 회장이 갑자기 껄껄 소리를 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의 웃음은 평소의 호방한 웃음이 아닌 비웃음에 가까웠다.


“애초에 B-8 모듈은 존재하지 않았소. <에덴>의 착륙 모듈들이 대기권에 돌입하던 중, 사고로 연소되어 3만 km 상공에서 비상분리를 실시해 완전히 파괴되었지. 여기까지 왔으니 데커드씨도 아시겠지만, 그래서 개척자들은 애초에 B-8 모듈에 대한 수색조차 하지 않았던 거요. 후세의 몽상가들이 그것을 자신들의 머릿속에서 부활시키기는 했지만...... 하지만 여기 계신 사일러스 씨는 나름대로 훌륭하게 성공했지, 그렇지 않소? 심지어 <에덴>의 것인지, 수 세기 전 정착지의 잔해인지도 모를 복합재 벽에 B-8이라는 글씨를 쓰는 것 만으로 추종자들과 멍청한 케이먼은 물론이고 자신의 아들마저 제대로 속여 넘겼으니 말이오.”


조나단 사일러스는 라이언 회장을 노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가 서려있었다. 데커드는 두 사람의 기세에 압도되어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제이콥 사일러스는 열정이 넘치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별의 아이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온갖 헌신을 다했습니다. 그러다 그는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던 B-8 모듈이 발견되었다는 것을 듣게 되었죠. 물론 아버지는 아들에게만은 그것을 숨기려 했겠지만요. 그는 전설처럼 그 속에서 별의 아이들을 치료해줄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기를 희망했지요. 그러나 벽 뒤로 갈 수 없었던 그는 그를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을 만나러 갔을 테지요......”

“<에덴>을 만든 ‘그 곳’으로......”


조나단 사일러스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데커드가 말을 이었다.


“...... 그래서 제이콥은 B-8 모듈이 실재한다는 증거를 가지고 UPX로 갑니다. 경영권을 탈취하려 비밀스럽게 움직이고 있던 케이먼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던 라이언 회장은 제이콥이 갑자기 B-8 모듈에 관한 자료를 가지고 접촉해오자 그를 비밀스럽게 사옥으로 불러들이지요. 하지만 회장님께서는 애초에 그를 도와줄 생각이 없었어요. 사옥의 보안 구역 내에 그를 가두고 아마도 가혹하게 심문 했을 테죠. 그렇지 않습니까? 어떻게든 케이먼의 꿍꿍이를 알아내어 선수를 쳐야 했을 테니까요.”

“잘 가고 있소. 용기 있는 청년이더군. 인상적이었소. 몇 차례 그를 심문했지만 쉽게 입을 열지 않았지.”

“케이먼은 아마도 파벨 이고르비치를 통해 제이콥이 UPX 사옥 내에 감금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겁니다. 불행히도 제이콥은 아는 것이 별로 없었지만 케이먼은 그가 라이언 회장에게 자신과 조나단 사일러스의 관계를 발설할까 전전긍긍했겠지요. 그래서 그는 파벨을 통해 제이콥을 죽이기로 결정합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겠죠. 하지만 케이먼은 한 발 더 나아가 일부러 사옥 내에서 소동을 일으키고 보안국을 개입시킴으로써 라이언 회장을 궁지로 몰고자 했어요.”

“흥미롭군요, 계속해 보시오.”

“제 추리가 맞다면 Mk-130 플라즈마 폭탄이었을 겁니다. 킹 크랩에서 케이먼의 수하들이 제게 사용했던 물건이죠. 제식 장비도 아니고 사설 무장 업체에서 간간히 사용하는 희소한 물건이죠. 방향을 설정하거나 유도 장비와 결합하여 투척하면 미리 설정된 방향으로만 플라즈마 에너지를 방사하죠. 킹 크랩에서 이 폭탄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그 흔적을 기록하여 UPX 사옥의 파괴된 패널과 비교했지요. 그리고 둘 사이에서 놀라울 정도로 유사성을 발견했고요. 제이콥은 자신에게 온 자살을 종용하는 편지와 폭탄을 발견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겁니다. 그것들은 파벨이 아마 식사 속에 숨겨 들여왔겠지요. 벽에 구멍을 내고, 스스로 뛰어내리기 전에 그는 손가락의 피로 누군가가 탤론 프라임에 잠들어있는 진실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E-B-8"이라는 글자를 벽에 새겼을 테죠.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회장님의 부하들은 현장을 깨끗이 정리했을 테지만, 시간이 없어 검은색 메타 물질 패널에 피로 새겨진 글자는 채 발견하지 못했을 테고요.”


수경은 고개를 돌려 조나단 사일러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침울했다. 비참하게 죽은 아들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는 듯 했다. 한 동안 침묵이 흐른 후, 라이언 회장이 다소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렇소. 하지만 사건이 일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더이다. 어리석은 케이먼이 제이콥을 죽이는 과정에서 자신의 행적을 우리 정보망에 공공연히 노출시켰으니까. 오히려 그를 감시하기 더욱 수월해졌다고나 할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는 내가 우려하던 것만큼 많은 것을 아는 것은 아니라는 점 역시 알게 되었지. 하지만 파벨, 그자는 제이콥 때문에 주위가 시끄러워진 틈을 타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고 있더군요.”

“그래서 파벨을 죽였습니까?”

“아니, 그건 사고였어요. 솔직히 파벨은 죽이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재였거든. 파벨이 보안 점검을 틈타 장서관에 숨어든 것 까지는 알고 있었소. 그래서 겁을 좀 줘서 쫓아버리려고 순간적으로 장서관의 조명을 차단해버렸지. 옴짝달싹못하고 몇 시간 동안 갇혀 있다가 제풀에 도망가면 나중에 케이먼 문제가 처리되고 나서 적당히 회유할 생각이었소. 그런데 이 친구가 길을 찾으려고 헤매다가 갑자기 아래로 떨어져 버리는 거라...... 그렇게 된 거요.”

“제 추측이 맞다면 파벨은 장서관에서 <에덴 IV>와 프락시스에 관한 메모리 패널을 찾고 있었죠? 그리고 그 패널은 분명 그의 근처에 있었지만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요.”


라이언 회장은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고는 데커드의 말에 답했다.


“그렇소. 장서관의 그 사건 이후 그 메모리 패널은 영구히 폐기해버렸지. 이제는 세상에 그 자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소.”

“무엇을 그렇게 감추려 하신 겁니까?”


그 때 침묵을 지키고 있던 조나단 사일러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진실이오, 데커드씨. 당신이 생각하는 그 진실. 프락시스와 오네시무스 증후군의 관계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 말이오. UPX가 수 세기동안 은폐하고자 했던 바로 그 ‘코흐 효과’에 관한 것. 그렇지 않소, 라이언 회장?”

“사일러스씨, 코흐효과의 발생은 어디까지나 확률에 지나지 않소. 당신은 우리 발밑의 100억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것을 실험하려 하고 있지만, 글쎄, 당신은 지금 무모한 도박에 여기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건거요.”

“하지만 당신들이 수 세기 전부터 그 가능성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 안 그런가, 라이언 회장? 쓸데없는 말장난은 그만두고 이제 그 메모리 패널에 무슨 내용이 담겨있었는지 여기 데커드씨의 앞에서 이야기하시오.”


조나단 사일러스의 어조는 상당히 격양되어 있었다. 라이언 회장은 다시 한 번 위스키로 입술을 축이더니 천천히 데커드를 바라보며 입을 뗐다.


“탤론 프라임에서 오네시무스 증후군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UPX는 자체적인 조사팀을 파견했소. 물론 그 직접적인 원인을 밝혀낼 수는 없었지. 수 세기 동안 축적되어 온 유전적 변형과 특수성이 분석을 어렵게 만들었으니까. 그 때 누군가가 테라포밍 과정에서의 코흐 효과에 관한 이론을 떠올렸소. 그러나 그 이론은 이미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폐기된 상태였소. 데커드씨, 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행성은 그 자체로 엄청난 크기의 계를 이루고 있소. 인간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는 테라포밍 작업과 이를 비교하는 것은 그야말로 거대한 해변과 한 어린아이가 쌓은 모래성을 비교하는 것과 같지. 수백만 번의 시뮬레이션 역시 이를 입증해냈고. 하지만 그 때 우리가 간과한 것이 있었소.”


데커드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 인간.”

“그렇소. 우리는 테라포밍 작업이 지니는 행성 단위에서의 영향력에는 관심을 가졌지만, 그 작업을 수행하는 인간 개별 개체에 대한 영향력은 고려하지 않았지. 왜냐하면 인간을 이루는 순환계는 너무나도 안정적이고, 그러면서도 외부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예측불가능성을 통제하기에는 너무나 간단한 존재였기 때문이오. 인간과 비슷한 크기의 순환계를 시뮬레이션에 적용했을 때, 약 250만 번 중 한 번의 확률로 예측 불가능한 계의 변형이 나타났소.”

“그래서 테라포밍 과정에서 프락시스가 인간 유전자에 대한 예기치 못한 변형을 초래했다는 겁니까? 하지만 라이언 회장님은 저 케이먼에게 수 세기동안 검증된 프락시스의 안정성을 이야기하지 않았나요? 그리고 오네시무스 증후군은 탤론 프라임 단 한 곳에서만 발생한 질병이고요.”


갑작스러운 수경의 물음에 라이언 회장은 입을 다물었다. 데커드는 그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감이라는 감정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 때 조나단 사일러스가 입을 열었다.


“내가 라이언 회장을 대신해 말하지. <에덴 IV>에 사용되었던 ‘그’ 프락시스에 대해서 말이오. 나는 수년간 탤론 프라임과 오네시무스 증후군에 대해 조사하면서 한 가지 중요한, 그러나 그동안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던 사실을 알아냈소. 탤론 프라임의 테라포밍 기간이 다른 식민지에 비해 이상한 정도로 짧았다는 것과, 그럼에도 테라포밍 완료 선언 후 약 20년 동안은 초기 개척자들이 아닌 외지인들이 탤론 프라임에 정착했던 비율이 다른 행성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낮았다는 것을 말이오. 수 백 년 전의 의료 보고서에서는 외지인들이 탤론 프라임에 정착하면서 두통이나 미묘한 호흡 곤란 등의 증세를 호소했다고 적혀 있었지. 데커드씨는 이것이 무슨 뜻인 줄 짐작할 수 있으리라 믿소.”

“탤론 프라임의 테라포밍 과정에서 프락시스가 무언가 다르게 작동했다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행성 대기뿐만 아니라 개척자들 자신에게도 영향을 주는 방향으로......”

“그렇소. 프락시스는 일종의 대기 변형에 대한 촉매제 역할을 수행하는 물질이지. 하지만 그것이 대기뿐만 아니라 그 대기로 호흡하는 인간에도 영향을 미치는 방향으로, 변형하기 어려운 거대한 대상이 아닌, 더 작고, 예측 가능하면서, 변형하기 쉬우면서도, 전체적인 세계의 일부로 종속되는 순환계를 바꾸는 방향으로 재설계되었다면? 그리고 그것이 <에덴 IV>에 탑재되어 탤론 프라임에서 사용되었다면?”


그때였다. 조나단 사일러스가 말을 마치자 라이언 회장이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데커드는 회장의 그토록 격렬한 반응을 본 적이 없었다.


“음모론일 뿐이오! 데커드씨, 어리석은 감정에 휩쓸려 이런 무분별한 일을 벌이는 작자의 말은 귀담아 들을 가치도 없소! 사일러스씨, 당신의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을뿐더러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믿을 리도 없을거요! 오네시무스 증후군은 그저 예측 불가능했던 사고였을 뿐이오. 인류가 우주로 뻗어나가는 과정에서 그 정도의 희생은 모두가 감내해야 했던 것 아닌가? 말해보시오, 데커드씨. 저런 어리석은 음모론자의 말을 믿소?”

“발악을 하시는군, 라이언 회장. 이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알량한 자긍심은 지키려는 건가...... 그렇다면 왜 당신은 파벨이라는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면서까지 <에덴 IV>의 프락시스에 대한 기록을 지키려 했지? 그리고 그 기록을 왜 영원히 파괴한 것인가?”


조나단 사일러스의 목소리는 무거웠고 그의 눈빛에는 위엄이 서려있었다. 그러나 그를 노려보는 라이언 회장의 눈 역시 이에 지지 않을 정도로 날카로운 안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어리석군. 나는 UPX를 좀먹으려는 케이먼을 보면서, 제이콥 사일러스를 보면서, 그리고 당신과 그 수하들의 작당질을 보면서, 수 세기동안 인류가 나아가야 할 진보의 길이 어느 순간 그 뿌리부터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소. 인류의 번영과 미래로 향하는 길을 어느새 우리 내면의 물질에 대한 탐욕이 갉아먹고 있고, 마치 자신들만이 유일한 피해자인양 구는 망상가들이 위대한 발걸음을 가로막고 있소. 그리고 무지와 혼돈에 사로잡힌 채 모든 것을 폭력으로 뒤바꾸려는 당신 같은 사람들마저 곳곳에서 설쳐대고 있지. 파벨이 죽은 그 날 나는 장서관에 갔소. 파벨 이고르비치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나는 홀로 많은 생각에 잠겼지. 그리고 이와 같은 무지의 소산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도록, 우주를 향한 인류의 위대한 발걸음이 더 지체되지 않도록 나는 그 기록을 영원히 지워버리기로 마음먹었소.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지. 데커드씨, 그런 점에서 나는 당신에게 빚이 있군. 당신이 탤론 프라임의 테러리스트 본거지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주었으니까......”

“그래서 행성 보안국을 동원해 그 대학살을 저지른 겁니까?”

“테러는 응징해야 하는 것이오. 보안국 요원께서 그 원칙을 모르시지는 않을 테지요?”


라이언 회장이 이죽거렸다. 그 때 조나단 사일러스가 말했다.


“어리석은 것은 바로 당신이오, 라이언 회장. 아무리 짓밟고 쓰러뜨려도 우리는 다시 일어날 테니까. 그리고 오늘은 그 새로운 시작의 첫 날이 될 거요.”

“그건 당신의 생각이지. 과연 당신의 주장에 동조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기껏해야 한 줌도 안 되는 당신의 무지한 추종자들만이 당신을 기억하고, 당신의 말을 기억할 것이오. 아니, 그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무지에 기반한 망상을 더하며 새로운 우화를 써 나가겠지. 마치 ‘B-8의 전설’처럼...... <에덴 IV>의 프락시스? 코흐 효과? 그런건 이제 중요하지 않소. 이미 그 마지막 남은 흔적은 내 손으로 파괴되었으니까. 인류는 당신을, 그리고 저 별의 아이들을 절대 기억하지 못 할거요. 당신은 이 곳을 벗어나지도 못하겠지.”


라이언 회장의 목소리는 격양되어 있었다. 그때였다. 한동안 잠잠하던 벽 너머에서 다시 한 번 단발마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비명소리는 이전보다 크게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얼마 후 주위가 침묵에 잠기는가 싶더니, 문이 열리고 권총을 허리춤에 찬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의 상의는 피로 얼룩져있었다. 그는 곧장 조나단 사일러스에 다가와 말했다.


“끝났습니다. 접속 코드가 확인되었습니다.”


조나단 사일러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좌중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말장난은 여기까지요, 라이언 회장. 당신은 스스로가 승리했다고 믿겠지...... 하지만 나는 오늘 전 인류 앞에서 진실을 증명할거요. 몇 세기, 아니 어쩌면 몇 십년 후면 인류는 깨닫게 될 것이오. 그 동안 그들이 무관심이라는 속에서 짓밟았던 수많은 영혼들의 존재를 말이오.”


그는 말을 마치고 문을 향해 돌아섰다. 그때였다. 조나단 사일러스는 갑자기 몸을 돌렸다. 그의 손에는 펄스 권총이 들려있었다. 누군가가 채 말릴 겨를도 없이 그는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권총에서 발사된 플라즈마 에너지의 빛이 방을 뒤덮었다. 빛이 걷히자 데커드와 수경의 눈에 가슴에 피를 홍건히 흘린 채 소파 위에 쓰러진 라이언 회장의 모습이 들어왔다.


“제이콥의 몫이오. 그럼, 이만.”


조나단 사일러스는 한 손에 권총을 든 채 부하들과 함께 방을 나섰다. 곧 둔탁한 기계음과 함께 데커드와 수경을 뒤로하고 문이 폐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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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UPX 스페이스 도크 오케아노스. 뉴 에덴. (2) +1 14.10.05 258 5 11쪽
» UPX 스페이스 도크 오케아노스. 뉴 에덴. +1 14.09.21 261 5 24쪽
36 지구 궤도. UPX 스페이스 도크 오케아노스. (2) +2 14.09.08 262 5 9쪽
35 지구 궤도. UPX 스페이스 도크 오케아노스. +1 14.08.25 269 5 9쪽
34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모처. (3) 14.08.11 142 5 13쪽
33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모처. (2) +1 14.07.28 228 4 9쪽
32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모처. 14.07.20 314 5 12쪽
31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버려진 정제소. (2) 14.07.07 114 4 7쪽
30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버려진 정제소. 14.06.30 312 5 9쪽
29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데커드의 호텔 방. (2) +1 14.06.22 218 5 8쪽
28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나인스 브릿지. (3) 14.06.15 285 6 9쪽
27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나인스 브릿지. (2) 14.06.08 377 10 13쪽
26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데커드의 호텔 방. 14.06.01 148 5 17쪽
25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4) +1 14.05.25 1,333 17 12쪽
24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3) +1 14.05.11 272 6 9쪽
23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하역장. 14.05.04 315 4 12쪽
22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빈민가. +1 14.04.27 158 3 10쪽
21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2) +1 14.04.20 418 6 13쪽
20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나인스 브릿지. +3 14.04.13 239 4 15쪽
19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14.04.06 331 5 12쪽
18 UPX 사옥. 장서관. +1 14.03.23 1,172 3 13쪽
17 UPX 사옥. 회장 집무실. 14.03.16 1,515 27 12쪽
16 UPX 사옥. 중앙 보안 통제소. 14.03.09 769 3 18쪽
15 시내 중심가. 데커드의 아파트. 14.03.02 729 3 15쪽
14 도시 외곽. 주택 단지. +1 14.02.23 372 3 17쪽
13 UPX 사옥. 최고 경영 기록 보관소. (2) 14.02.16 368 3 16쪽
12 UPX 사옥. 최고 경영 기록 보관소. 14.02.09 346 5 10쪽
11 UPX 사옥. 펜트하우스. 14.01.30 417 7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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