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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빅샌드 님의 서재입니다.

별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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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빅샌드
작품등록일 :
2013.12.30 22:07
최근연재일 :
2014.10.27 01:03
연재수 :
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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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
글자수 :
229,460

작성
14.04.2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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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빈민가.

DUMMY

스프로울 중심부 빈민가. 어둠이 마치 태고의 유물처럼 솟아오른 거대한 강철 프레임과 그 사이를 누더기처럼 기워 넣고 있는 암회색의 복합재 패널들 사이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마치 빈민가 사이를 거미줄처럼 잇고 있는 길에서는 눈을 후벼 팔 듯이 오색찬란함을 과시하는 싸구려 네온사인과 그 사이에서 점멸하는 백색광을 힘없이 분출하는 낡은 가로등으로 인해 외벽의 바깥쪽을 완전히 감싼 어둠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날 밤, 미로처럼 얽히고 설킨 그 길 사이를 두 남녀가 유달리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걷고 있었다.

수경을 만난 후, 지난 이틀간 데커드는 스프로울에서 조나단 사일러스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그러나 그는 마치 유령처럼 데커드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가 조나단 사일러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정보들은 모두 거짓이었다. 보안국에 등록된 그의 거주지는 신분조차 불명확한 빈민들이 무단 점유하고 있었고, 그의 직장이라는 광산은 이미 폐쇄 된지 수년이 지난 상태였다.

무엇보다 데커드의 수사를 어렵게 한 것은 외부인에 대한 ‘별의 아이들’의 극도로 폐쇄적인 태도였다. 데커드가 다가서면 그들의 대부분은 싸늘한 눈빛만을 남긴 채 말없이 문의 빗장을 걸어 잠그곤 했다. 설사 문을 열게 하는데 성공했다 할지라도, 그들은 데커드의 입에 조나단 사일러스의 이름이 올려지는 순간, 한결 같이 냉정하게 그를 집 밖으로 내쫓았다. 그런 사람은 알지 못한다는 싸늘한 대답과 함께.

데커드는 강렬한 호기심에 이끌려 홀홀단신으로 탤론 프라임에 온 것에 대하여 이때만큼 후회해본 적이 없었다. 지구였다면 지역 보안국에 협조를 얻어 비협조적인 주변인들에 대해 조사 목적의 강제 송환 및 임시 구금 절차를 진행하는데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을 것이었다. 아니, 애초에 누군가가 아무리 열심히 자신의 흔적을 지우며 사라지려 해도 보안국이 관리하는 감시 네트워크에 대한 조회 권한만 있으면 그를 찾아내는 데는 하루면 충분했을 것이었다. 그는 탤론 프라임의 행성 보안국에 협조를 요청하는 것 역시 고려했다. 그러나 한 시간을 꼬박 기다려 연결된 보안국 담당자는 시큰둥하게 데커드는 이 곳에서 아무런 권한이 없다는 것을 재확인시켜 줄 뿐이었다.


“선생이 그 별의 아이들 놈들에 대해 대체 무슨 관심을 갖고 계시길래 이러시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곳은 선생의 관할 구역이 아닙니다요. 그리고 설사 협조 요청이 승인된다고 하더라도 저희는 저놈들이 매일매일 치는 사고 뒷수습하느라 인력도, 장비도 빡빡합니다. 그러니 애초에 기대를 안 하시는게 좋을 겁니다.”


결국 데커드는 김수경의 연락처를 다시 찾았다. 데커드도 놀랄 정도로 그녀는 그의 연락을 받고 한걸음에 그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그녀는 조나단 사일러스의 최근 거취에 대해 자신도 아는 바가 없음을 밝혔다. 이전에도 말했듯이, 별의 아이들이 외부인에 대해 극도로 폐쇄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조나단 사일러스도 조용히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의 유일한 연결고리였던 제이콥 사일러스는 이제 사라지고 없었다. 그 때 데커드가 수경에게 말했다.


“만약 조나단 사일러스를 찾을 수 없다면, 그와 연관성 있을법한 밀무역자들을 찾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실패했지만...... 혹시 그쪽에 대해서 아시는 바가 있습니까?”


데커드의 말에 수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것이 스프로울 중심부의 빈민가로 두 사람을 이끌었다. 데커드는 한사코 수경의 동행을 말렸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인도가 없었다면 미로와 같은 빈민가를 헤치며 밀무역자들의 소굴을 찾아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빈민가를 관통하는 중심 가도를 지나 갈래길로 발걸음을 옮기자 어디선가 뿜어져 나온 매캐한 연기가 두 사람을 온통 에워쌌다. 거칠게 포장된 길바닥 곳곳의 패인 곳에는 악취를 풍기는 액체가 작은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멀리서 어떤 여자가 알 수 없는 말로 바락바락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분노한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뒤따라왔다. 데커드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수경은 묵묵히 길을 걸을 뿐이었다.

다시 그나마 숨통이 트일만한 길이 나타졌다. 그 순간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데커드는 눈살을 찌푸렸다. 많아봐야 열다섯살 정도 되었을 법한 소녀 둘이 길거리에서 온 몸이 거의 드러나는 가죽 옷을 입고 가슴과 엉덩이를 흔들며 지나가는 행인을 유혹하고 있었다. 데커드가 시선을 돌릴 때마다 유달리 짙은 얼굴 화장에도 불구하고 아래에 감추어진 앳된 얼굴이 슬쩍슬쩍 그 모습을 비추었다. 데커드는 탤론 프라임에 처음 도착한 날, 택시기사가 알 수 없는 미소와 함께 던졌던 말의 의미를 이제 깨달았다. 한 중년 남자가 둘 중 하나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고, 얼마 후 그 남자와 선택받은 소녀는 팔장을 끼고 어두운 골목 뒤로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데커드에게 수경이 말을 걸었다.


“왜요? 놀라셨나요?”

“저 아이들...... 너무 어린 것 아닙니까? 기껏해야 이제 갓 열 다섯 살 정도 되었을텐데......”

“이 곳에서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에요.”

“저런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는 말입니까?”


데커드의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돌려 데커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보유자들은 항상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요. 점점 목을 죄어오는 고통과 두려움에 서른 살이 넘어가면 거의 미쳐버릴 지경이 되죠.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술과 마약에 빠져버리게 되고요.”


데커드의 눈에 저 멀리 비틀거리며 걷고 있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는 한 여자가 거리에 비스듬하게 누워 파이프를 입에 문채 껄껄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옷깃이 더러운 물웅덩이에 담가져 있었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보유자들 중에 직업이 있는 경우는 그나마 좀 상황이 나아요. 턱없이 적은 돈이지만, 그래도 하루에 최소한 몇 시간 만큼은 몸과 마음을 쏟을 곳이 생기거든요. 하지만 대부분의 보유자들은 몇 푼 되지 않는 수당을 매일같이 술과 마약을 사는데 탕진해버리죠. 하지만 그러고도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죠. 그래서 그들 중 일부는 그것을 폭력으로 표출해요.”


데커드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경이 말을 이었다.


“많은 보유자 가정에서는 부모가 나이를 먹을수록 자식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폭력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아버지건 어머니건,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결국 무너져가는 부모들의 모습을 보고, 그 폭력을 겪은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집을 나가버리게 되구요. 보유자의 60퍼센트 이상이 10대 초반에 가출을 해본 경험을 가지고 있어요. 한 번 집을 나가서 몇 개월 이상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그 중 절반 이상이고요. 데커드씨가 어린 나이에 거리로 내쳐진 아이들이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저도 수사국 요원 일을 하며 비슷한 상황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다만......”


그녀는 데커드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결국 이 차가운 거리에서 그 아이들이 믿고 의지할 만한건 자신들 밖에 없어요. 결국 그들은 어떻게든 현실에서의 고통을 벗어나고자 서로에 대한 믿음에 탐닉하게 되죠. 그게 그들이 가진 유일한 방법이니까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섹스 말이에요. 여기 아이들은 다른 곳의 아이들에 비해 아주 어린 나이에 섹스를 배워요. 자신의 가치를 찾고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어찌보면 유일한 방법이니까요. 대부분의 경우는 어린 연인들의 로맨틱한 경험과는 거리가 멀어요. 오히려 처절한 비명에 가깝죠.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런 경험을 해오다보면 점차 아까 그 아이들처럼 돈을 받고 자신의 몸을 파는 것에 대해서도 무감각해지게 되는 것이고요.”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조는 격했지만 그녀의 눈가는 살포시 젖어있었다. 데커드는 애써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 사람들을 탓할 수는 없어요. 여긴 지옥이에요. 지옥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겠어요......”


두 사람은 한 동안 아무 말 없이 걸었다. 곧 수경은 데커드를 한 비좁고 어두운 골목으로 인도했다. 세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만한 좁은 길이었다. 온갖 소음이 넘쳐나던 다른 곳과 달리 이곳은 유난히 침묵에 휩싸여있었다.


“이쪽을 쭉 따라가면 공터와 함께 오래된 하역 시설이 나와요. 1세대 개척자들이 만든 곳이죠. 밀무역자들이 흔히 모이는 곳이 바로 이곳이에요. 아마 지금부터 조심하셔야 할거에요. 그사람들은 누구보다도 간섭 받는걸 싫어 할테니까요.”

“감사합니다. 그러면 이쯤에서 먼저 돌아가시면 연락을......”


데커드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수경은 이미 골목길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데커드는 황급히 그녀를 붙잡았다.


“지금 뭐하시는겁니까?”

“데커드씨께서는 여기까지 오면서 저를 혼자 돌아가게 내버려둘 생각이 드셨나요? 지금까지 보셨던 광경들이 아직 덜 인상적이신가보죠?”


그녀가 따지듯이 묻자 데커드는 잠시 당황했다. 데커드는 현장에서 누군가와 함께 근무하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완전한 초심자와는 더욱이. 그러나 몇 분간의 실랑이 끝에 데커드는 결국 이렇게 말하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음을 깨달았다.


“일단 함께 갑시다. 제가 앞서서 어디 숨을만한 곳을 찾아보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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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4 [탈퇴계정]
    작성일
    14.04.28 02:08
    No. 1

    전편에서 건쉽이 등장해 '오오 메카닉 총격전 오오' 거리며 기대를 갖고 눌렀는데 이런 음울한 분위기에서 끊으시다니. ㅠ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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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UPX 스페이스 도크 오케아노스. 뉴 에덴. (2) +1 14.10.05 258 5 11쪽
37 UPX 스페이스 도크 오케아노스. 뉴 에덴. +1 14.09.21 260 5 24쪽
36 지구 궤도. UPX 스페이스 도크 오케아노스. (2) +2 14.09.08 262 5 9쪽
35 지구 궤도. UPX 스페이스 도크 오케아노스. +1 14.08.25 269 5 9쪽
34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모처. (3) 14.08.11 142 5 13쪽
33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모처. (2) +1 14.07.28 228 4 9쪽
32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모처. 14.07.20 314 5 12쪽
31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버려진 정제소. (2) 14.07.07 114 4 7쪽
30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버려진 정제소. 14.06.30 312 5 9쪽
29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데커드의 호텔 방. (2) +1 14.06.22 218 5 8쪽
28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나인스 브릿지. (3) 14.06.15 285 6 9쪽
27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나인스 브릿지. (2) 14.06.08 377 10 13쪽
26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데커드의 호텔 방. 14.06.01 148 5 17쪽
25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4) +1 14.05.25 1,332 17 12쪽
24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3) +1 14.05.11 271 6 9쪽
23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하역장. 14.05.04 315 4 12쪽
»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빈민가. +1 14.04.27 158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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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나인스 브릿지. +3 14.04.13 239 4 15쪽
19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14.04.06 331 5 12쪽
18 UPX 사옥. 장서관. +1 14.03.23 1,172 3 13쪽
17 UPX 사옥. 회장 집무실. 14.03.16 1,515 27 12쪽
16 UPX 사옥. 중앙 보안 통제소. 14.03.09 769 3 18쪽
15 시내 중심가. 데커드의 아파트. 14.03.02 729 3 15쪽
14 도시 외곽. 주택 단지. +1 14.02.23 372 3 17쪽
13 UPX 사옥. 최고 경영 기록 보관소. (2) 14.02.16 368 3 16쪽
12 UPX 사옥. 최고 경영 기록 보관소. 14.02.09 346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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