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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빅샌드 님의 서재입니다.

별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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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빅샌드
작품등록일 :
2013.12.30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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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7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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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25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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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4)

DUMMY

연단 위에 설치된 전등 불빛이 칸, 조나단 사일러스를 비추며 그의 얼굴에 강렬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짙은 명암 사이에서도 그러나 고요한 그의 회색 눈은 날카로운 빛을 내고 있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이 곳에 와 계시는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그리고 어딘가에서 이 공회를 함께 하고 있을 모든 동지 여러분. 참으로 긴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여러분 앞에 이렇게 서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좌중이 술렁였다. 조나단 사일러스는 한동안 말없이 좌중을 돌아보다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그러나 기뻐하십시오!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형제들의 피와 땀이 응분의 결실을 맺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딛고 서 있는 이 거대한 터전 아래에서, 강렬한 심장고동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스프로울의 황량한 땅 아래에서, 우리의 삶이, 아니, 전 인류의 삶이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마침내 잠들어있던 ‘사원’이 우리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좌중이 다시 한 번 크게 술렁였다. 조나단 사일러스가 말을 계속 이어갔다.


“참으로 긴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감히, 이곳에 서서, 수많은 형제자매들이 제 곁을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들의 몸에서 마지막 숨이 질 때, 누군가는 울부짖었고, 누군가는 말없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누군가는 이 세계에 고통과 절망만이 가득하다고 절규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 계신 형제자매들 중 많은 분들도 얼마 전까지 그렇게 믿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저는 단호하게 외쳤습니다. 아니라고!”


그는 말을 중단하고 좌중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다시 장내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침묵 속에서 그들 마음의 무게를 가늠하고 있는 듯 했다.


“......그렇습니다. 수십 년간 이 세계를 응시하며 저는 깨달았습니다. 여기 계신 형제자매 여러분들의 영혼 속에 담긴 위대함을 발견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오래전부터 똬리를 틀고 있던 사악한 무언가에 의해 서서히 그 빛을 잃어가던 별을 찾아낸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나약하게 만들고, 운명에 굴복하게 만들었을까요? 무엇이, 이 탤론 프라임을 어둠속에 깊이 가라앉도록 만든 것일까요? 누군가는 말할 것입니다. 저주다, 우리는 저주받은 운명이다. 저들이 노예의 이름을 붙여 만든 그 저주받은 질병에 의해 우리는 이미 돌아설 수 있는 운명의 길로 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저는 되묻고 싶습니다. 왜 우리는 그 질병이 덧없는 우리의 육신을 넘어 영혼까지 좀먹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까? 왜 우리의 영혼이 술과 마약, 폭력과 섹스를 향해 끊임없이 도망치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까?”


조나단 사일러스는 잠시 뜸을 들인 다음 말을 이었다.


“우리는 스스로를 잊어버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저 세상이 우리에게 채운 가장 무거운 족쇄는 외부로부터 강요되는 온갖 타락도, 가난도, 저 질병도 아닌 망각입니다. 탤론 프라임의 불빛이 하나 둘 꺼지며 그들이 우리를 감추고 싶은 어두운 구석으로 밀어 넣었을 때, 우리 역시 스스로를 망각하는 법을 배우고 말았습니다. 저 세상을 보십시오. 하루하루 위대한 진보라는 미명 하에 모든 기억과 가치를 소멸시키고 있는 저 세상을요. 우리는 너무 오래 동안 그 어둠속에 편승하고 말았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의 위대한 가치를 망각한 채 말입니다......”


데커드가 듣다말고 수경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듣자하니 사일러스, 그러니까 칸이 무언가 중요한 사실들을 몇 자락 깔고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한 듯합니다. 아직은 감이 잡히지는 않지만 그런 예감이 들어요. 아무래도 좀 더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을 것 같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알던 조나단 사일러스가 아니에요. 마치 전혀 다른 사람 같아요. 너무나 혼란스럽네요. 저 말 하나하나.......”


조나단 사일러스가 다시 좌중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의 어조는 처음에 비해 한결 부드러워져있었다.


“망각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존재가 가지고 있던 소중한 가치를 영영 잃어버린 다는 것을 뜻합니다. 망각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린다는 것을 뜻합니다. 망각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빛과 어둠을 가르고, 잊혀진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폭력을 뜻합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 망각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게 일어서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우리에게는 칸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조나단 사일러스는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저는 그저 광야에서 소리치는 일개 목자일 뿐입니다. 그것이 가능하도록 했던 힘은 바로 여기 계신 형제자매 여러분 스스로에게 내재되어 있습니다. 제가 감히 말하건데, 여러분은 축복받은 사람들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우리는 끝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것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남긴 삶의 가치와 기록을 기억해야 할 때를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들이 비록 비굴한 노예의 족쇄를 채우고, 망각 속에 여러분들을 던져 넣었을지언정, 여러분은 축복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불과 몇 해 만에 우리는 위대한 일들을 해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발 밑, 이 도시의 폐허에서 잊혀졌던 것들을 찾아냈고, 그 곳에서 ‘사원’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사원은 그 거친 호흡을 통해 우리의 원류, 정수를 속삭이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감히 말하건대,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세상은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우리의 운명 역시 새롭게 변화할 것입니다!”


순간 거대한 환호의 물결이 장내를 가득 채웠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연달아 ‘칸’을 외쳤다. 조나단 사일러스는 아무 말 없이 좌중을 향해 눈빛을 빛낼 뿐이었다. 이윽고 환호가 잦아들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요 근래 나타난 외부인들로 인해 몇몇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불안과 동요가 일어나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위대한 때가 왔을 때에는 항상 이를 방해하려는 사악한 세력들이 함께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세요. 우리는 가다듬은 검과 방패로 그 모든 방해를 분쇄하고 결연히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사원’의 응답을 받아, 우리는 어둠 속에서 나와 이 세상 모두의 앞에 위대하게 우뚝 설 것입니다. 그러니, 주위에서 의심과 두려움을 갖는 형제자매가 있다면 그의 곁에서 확신과 용기를 주십시오. 무장한 형제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경계는 철저히 하되 먼저 도발하지는 마십시오. 그러나 만약 그들이 우리를 공격한다면 그 때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형제자매들을 지키십시오. 운명을 믿는다면, 이제 운명의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 얘기가 아니었으면 좋겠군요.”


수경이 심술궂은 어조로 속삭였다. 이에 데커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천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은 모두 경건한 표정으로 연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데커드는 저 멀리 입구 쪽으로 두건을 쓰고 총을 둘러멘 남자들이 들어오는 광경을 보았다. 거리가 멀고 사람이 많아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은 입구 근처에 서서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 했다. 데커드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이쪽으로도 우리를 찾으러 사람이 온 듯합니다. 연설이 끝나고 사람들이 빠져나갈 때 검문을 하려는 것 같아요.”

“그러면 어떻게 하죠? 사람이 많으니 섞여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입구가 좁아 위험성이 너무 큽니다. 다른 길을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주위를 둘러보던 데커드의 눈에 연단의 오른쪽 뒤편 구석진 곳에 있는 조그마한 문이 들어왔다. 문의 주위는 전면의 기둥과 조명이 드리우는 그림자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윽고 두 사람은 연단만을 바라보고 있는 좌중을 조용히 헤치며 조그마한 문을 향해 움직였다. 다행히 좌중과 연단 위의 무장한 남자들중 누구도 조나단 사일러스의 열변을 지켜보느라 두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마침내 등 뒤로 문이 닫히자, 수경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직도 모르겠어요. 사일러스씨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걸까요? 저 사람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분명 많은 의미가 담겨있을 법 한데...... ‘사원’도 그렇고, 얼마전에 본 전투선들도 그렇고...... 혼란스러운 것들 투성이에요.”

“일단은 이곳을 빠져나간 후, 퍼즐을 맞춰보죠. 자, 움직입시다.”


두 사람은 어두운 조명이 간신히 길을 밝히고 있는 좁은 석재 통로를 따라 걸었다. 복도 끝에는 아래로 통하는 계단이 있었고 그 끝에는 또 다른 문이 하나 있었다. 문 앞에 다다르자 데커드는 품 안의 펄스 권총을 꺼내 한 손에 쥔 채 다른 손으로 천천히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강렬한 빛이 두 사람의 눈 가득히 들어왔다. 빛에 익숙해지자 그들의 눈앞에는 널찍한 방의 벽면을 온통 둘러싸고 있는 책장과 그 책장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책들이 펼쳐졌다. 책장 사이사이에는 붉은 빛의 전등이 환한 빛을 방안 가득 비추고 있었고, 붉은 빛의 카펫이 깔려있는 방 한 가운데는 독서용 책상과 의자가 하나 놓여져 있었다. 책상 위에도 온갖 종류의 책들이 빼곡히 쌓여있었다. 수경이 감탄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말 놀랍네요. 대학 도서관의 고문서고에 몇 번 방문했던 적은 있지만, 그 후로 이렇게 많은 종이책은 처음 봐요.”


뜻밖의 곳에서 찾아낸 지식의 거대한 보고를 접한 수경이 방 곳곳을 둘러보며 외쳤다. 그러나 적잖이 들뜬 그녀와는 대조적으로 데커드는 무거운 침묵을 지킨 채였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낡은 독서용 책상 위에 올려진 단 한권의 책으로부터 떠나지 않고 있었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손가락으로 쓰다듬던 수경이 그 중 한 권의 책을 꺼내며 말했다.


“놀랍군요. 이건 군중 심리학에 관한 버크의 고전이에요. 재판이라지만 족히 백 년은 된 것 같아 보여요. 여기 이건, 나노 유기 화학에 관한 논문이네요.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요. 고대인들의 의식 구조에 대한 키에츠의 책도 있어요. 이건 정말 구하기 힘든 책인데...... 이런 곳에 이렇게 엄청난 책들이 쌓여있다니...... 알면 알수록 궁금증만 더욱 커지네요.”


그때였다. 굳게 닫힌 문 너머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돌로 된 바닥을 울리는 소리는 점점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데커드는 재빨리 책들에 정신이 팔려버린 수경의 손을 급히 잡아끌었다.


“사람들이 오는군요. 빨리, 이곳으로 빠져나갑시다.”


데커드는 벽에 설치된 작은 환풍구를 가르켰다. 잠시 후, 수경의 툴툴거리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환풍구가 이끄는 깊은 어둠 속으로 몸을 밀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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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UPX 스페이스 도크 오케아노스. 뉴 에덴. +1 14.09.21 260 5 24쪽
36 지구 궤도. UPX 스페이스 도크 오케아노스. (2) +2 14.09.08 262 5 9쪽
35 지구 궤도. UPX 스페이스 도크 오케아노스. +1 14.08.25 269 5 9쪽
34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모처. (3) 14.08.11 142 5 13쪽
33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모처. (2) +1 14.07.28 228 4 9쪽
32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모처. 14.07.20 314 5 12쪽
31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버려진 정제소. (2) 14.07.07 114 4 7쪽
30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버려진 정제소. 14.06.30 312 5 9쪽
29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데커드의 호텔 방. (2) +1 14.06.22 218 5 8쪽
28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나인스 브릿지. (3) 14.06.15 285 6 9쪽
27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나인스 브릿지. (2) 14.06.08 377 10 13쪽
26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데커드의 호텔 방. 14.06.01 148 5 17쪽
»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4) +1 14.05.25 1,333 17 12쪽
24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3) +1 14.05.11 272 6 9쪽
23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하역장. 14.05.04 315 4 12쪽
22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빈민가. +1 14.04.27 158 3 10쪽
21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2) +1 14.04.20 418 6 13쪽
20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나인스 브릿지. +3 14.04.13 239 4 15쪽
19 탤론 프라임. 스프로울. 14.04.06 331 5 12쪽
18 UPX 사옥. 장서관. +1 14.03.23 1,172 3 13쪽
17 UPX 사옥. 회장 집무실. 14.03.16 1,515 27 12쪽
16 UPX 사옥. 중앙 보안 통제소. 14.03.09 769 3 18쪽
15 시내 중심가. 데커드의 아파트. 14.03.02 729 3 15쪽
14 도시 외곽. 주택 단지. +1 14.02.23 372 3 17쪽
13 UPX 사옥. 최고 경영 기록 보관소. (2) 14.02.16 368 3 16쪽
12 UPX 사옥. 최고 경영 기록 보관소. 14.02.09 346 5 10쪽
11 UPX 사옥. 펜트하우스. 14.01.30 417 7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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