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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아닙니다. 거짓말일지도.

메칼로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마니
작품등록일 :
2016.01.05 01:02
최근연재일 :
2019.03.13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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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30,491

작성
16.08.27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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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르기노 탑(1)

거짓말이야. 아닐 수도 있고.




DUMMY

네 사람이 어두운 알마스트의 거리를 가로질렀다. 달리는 것에 가까운 빠른 걸음이었으나 발소리도 옷자락 소리도 내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지금쯤 그들의 뒤로는 래번 사르키스의 지휘를 받는 서향 기사단 예하부대가 따라오는 중일 터다. 앞서 가는 네 명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 거리만큼이었다. 그나마도 타니엘이 동행하는 조건이었다.

죄의 유무에 관련 없이 모후를 해치는 것은 중죄다. 납치한 시점에서 이미 네르세스 가문의 존망이 위태로워진 상황이었다. 메칼로가 망설인 것은 오히려 그것 때문이었다.

하코브가 죽고 코스탄딘 가문과 척진 이상 이 위기를 벗어나도 네르세스 가의 위세가 예전같을 수는 없다. 거기에 프리다가 모후를 해쳤을 것인가 해치지 않았을 것인가로 도박을 걸어야 할까? 지금이라도 그녀와 가족들을 피신시키는 방법을 찾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프리다가 어디에 있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알마스트는 큰 도시지만 포고스의 병사들 전부가 눈에 띄지 않고 숨을 장소는 몇 군데 없었다. 더욱이 프리다는 처음 메칼로를 만났을 때 네르세스가에서 사용하는 건물이나 급할 때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곳을 모두 말해주었다.

메칼로는 아직 그녀가 알려준 것들을 기억했다. 그 가운데 병사들이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은 뻔했다. 기껏해야 두 곳, 그 중 하나는 네르세스 가의 저택이니 타니엘도 확인했을 터다.

그러면 남은 곳은 단 하나. 플루투라 궁 북쪽에 있는 왕실 소유의 숲이었다. 그곳의 숲지기 집안은 하코브에게 은혜를 입은 적이 있었다. 숲 안에 있는 왕가의 별장도 평소에는 별장지기 외에 사람이 없다.

“왕가의 별장이라고······?”

포장된 도로를 벗어나 숲으로 들어서자 그제야 목적지를 알아차렸는지 타니엘이 기가 막히다는 듯 중얼거렸다. 모후를 납치해서 왕가의 별장에 숨으리라고는 그도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무슨 소리가 들립니다.”

산디아가 나직이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어두컴컴한 숲 안쪽에서 자연과 거리가 먼 인공적인 소리가 울려왔다. 소리를 따라 달려갈수록 명확해졌다. 그것은 무기들이 서로 부딪치는 날카로운 금속성이었다.

일행의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숲이 어두웠으나 그들은 오래지 않아 별장을 발견했다. 크지 않은 건물이었다. 낮은 담 안쪽 넓은 뜰에서 이미 수십 명이 쓰러져 꿈틀거렸다. 어느 가문의 사람인지 모를 병사들과 기사가 몇 명 섞여 있었지만 그들을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고함 소리가 건물 안에서 들려왔다.

네 명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별장 안으로 뛰어들었다. 반쯤 열린 출입문 안으로 들어서자 촛불 몇 개만으로 밝혀진 홀과 그곳에서 싸우는 사람들이 보였다.

“일리!”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기사를 보고 메칼로가 외쳤다. 일리 아프림은 이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참에 쓰러져 있었다. 단단한 가죽으로 빈틈없이 가린 몸 어디에서 흘러나왔는지 모를 피가 그의 아래에 어두운 웅덩이를 만들었다.

갑자기 뛰어 들어온 사람들을 보고 싸우던 이들 모두 경계하며 뒤로 물러섰다. 미명 속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복잡하게 오갔다.

“메칼로 경?!”

피투성이가 되어 비틀거리며 물러나던 남자가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아베디스 루신이었다.

“이층이오! 포고스 백작부인이 모후마마를 가두었소!”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세 명의 기사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들을 뚫고 올라가려는 쪽은 아베디스 루신과 단검을 든 남자 한 명, 그리고 레이피어를 든 여자 하나였다.

“메칼로······.”

그녀가 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드레스 대신 남장을 한 그녀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레이피어를 들고, 그 자신도 상처와 적의 피로 얼룩져 있었다.

“제이나.”

메칼로가 다가가려고 했지만 그보다 빨리 제이나의 칼이 올라갔다. 레이피어의 칼끝을 가시처럼 겨누고 그녀가 물었다.

“어째서 당신이 타니엘 경과 함께 있는 거죠? 우리를 배신하는 건가요?”

“코스탄딘이 네르세스를 배신한 것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한 사람은 타니엘이었다. 제이나가 그를 노려보았다가 다시 메칼로에게 시선을 돌렸다. 메칼로가 대답했다.

“로우벤 코스탄딘이 섭정공에게 협력하기로 했고 섭정공은 공주와 모후의 안전을 약속했다.”

“거짓말! 폐하께서 그런 일을 하실 리가 없어요!”

제이나가 외쳤다. 믿지 않는 것은 포고스의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국왕은 우미트 성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습니다. 그런 거짓말로 우리를 속이는 이유가 뭡니까.”

“거짓말이 아니다.”

메칼로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로우벤이 나몬의 각인자라 왕위를 포기했다는 말을 이 자리에서 할 수는 없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을지 모를 아베디스도 입을 꾹 다물었다.

“메칼로, 당신이 배신한 게 아니라면 우리를 도와줘요. 모후마마가 이층에 잡혀계셔요.”

제이나가 말한 다음 계단을 가로막은 기사들을 쏘아보았다. 세 명의 기사들도 지지 않고 외쳤다.

“저 여자가 일리 경을 죽였소!”

“메칼로!”

“도련님, 우리의 복수를 돕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모후와 아베디스 루신은 분명 백작님을 죽게 만든 자들입니다. 바로 저자들이 하코브 나리를!”

팔 카자크가 피를 토하듯 외쳤다. 메칼로가 칼 든 손을 움찔 떨었다. 그것이 신호인 것처럼, 그때까지 말없이 있던 단검을 든 남자가 번득 움직였다.

그가 일리의 시신을 뛰어넘어 가장 가까운 기사에게 달려든 순간 제이나도 움직였다. 그녀의 공격은 팔 카자크의 칼에 막혔다가, 뒤이어 거칠게 몸을 부딪치는 그와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

제이나와 팔 카자크가 계단 밑으로 굴러 떨어져서 잠시 빈 공간으로 타니엘이 뛰어들었다. 아니, 뛰어들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빨리 메칼로의 칼이 타니엘의 앞 공간을 훑었다. 달려들던 타니엘이 가까스로 옆으로 피했다.

“메칼로! 우리가 온 이유를······.”

“에밀리오.”

타니엘이 입을 열었으나 메칼로의 목소리를 들은 에밀리오가 다짜고짜 공격하자 말을 잇는 것을 포기하고 방어해야 했다.

“산디아.”

“예.”

산디아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메칼로는 계단을 뛰어오르고 있었다. 단검의 남자와 포고스 기사 둘이 서로를 견제하며 싸우다가 한 명의 기사가 메칼로를 가로막았다. 그러나 기사의 공격은 물렀고 메칼로도 반격할 마음이 없었다. 그가 날아오는 칼을 튕겨버리고 그들을 지나쳤다.

메칼로가 위층으로 가려는 것을 알고 포고스의 기사가 뒤쫓았으나 이내 멈춰야 했다. 메칼로의 뒤를 따라 온 산디아가 둘 사이를 가로막았던 것이다.

계단 위 복도로 들어서자 세 개의 방문이 보였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는 분명했다. 단 하나의 방문 아래서만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문은 잠겨있지 않아서 그가 손으로 밀자 조용히 열렸다.

프리다는 그 방에 있었다. 그늘져 어두운 침대 한 구석에서, 과부의 검은 옷을 입은 그녀는 촛불의 빛을 반사하는 붉은 얼굴만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침대 위에는 또 한 명의 과부가 잠든 것처럼 눈을 감고 길게 늘어져 있었다.

문이 열리는 것을 바라보던 프리다가 문득 말했다.

“다가오지 마라.”

“프리다.”

메칼로가 그녀를 불렀다. 프리다는 치마폭에 감추고 있던 오른손을 꺼냈다. 그녀의 손에서 한 뼘 길이의 날을 가진 단검이 번득였다. 프리다는 그것을 모후의 목에 댔다.

“아르반에 온 후로는 바늘을 잡을 일이 더 많았지만, 쓰는 법을 아주 잊어버리지는 않았다.”

과연 그녀의 말대로 칼날은 모후의 경동맥 위를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 조금만 힘을 주며 날을 움직여도 돌이킬 수 없었다.

메칼로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은 돌처럼 차가웠다.

“나를 설득하려고 온 거냐?”

“질문하려고 온 거다. 하코브 네르세스를 죽인 것이 그 여자가 확실해?”

“설득하려고 왔구나.”

프리다가 피식 웃었다.

“리안, 나는 너를 5년 동안 키웠어. 너무 어릴 때라 잊어버렸니? 너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친 사람이 나다.”

“안 잊었다.”

“그러면 네 입으로 말해 보아라. 내 남편을 죽게 만든 자가 누구냐.”

프리다의 목소리가 무겁고 단단해졌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멀리 있는 촛불이 흔들렸다. 프리다의 얼굴 위에서 까만 그림자가 춤췄다.

하코브 네르세스를 죽게 만든 자가 누구인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이제 모두 알았다.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끝났는지. 왜 그렇게 되어야 했는지 이해했다. 모든 것을 알았는데 메칼로는 그녀의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메칼로.”

프리다가 힘없이 웃었다.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 때가 있는 거란다.”

그녀는 지치고 외로워 보였다. 프리다가 칼 든 손을 조금 움직였다. 칼날의 하얗게 벼려진 부분이 목살에 파묻혔다. 칼날을 따라 붉은 피가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장님, 양측 모두 진압했습니다만, 별장이 서향 기사단에 포위되었습니다. 생각보다 그들이 빨리 왔습니다. 그리고······.”

보고하던 산디아의 목소리가 잠시 끊어졌다가, 말이 이어지는 대신 방안으로 한 사람이 들어왔다. 들어온 사람의 얼굴이 촛불에 드러나자 메칼로가 신음 같은 한숨을 쉬고 프리다는 표정이 굳었다.

“프리다 백작부인.”

거칠게 쉰 목소리로, 방에 들어온 로우벤 코스탄딘이 그녀를 불렀다.


작가의말

1시간 12분 지각!

왜 시간이 널널한데도 나는 지각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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