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명훈과 박광수 감독대행의 밀담이 있던 그날. 20연패의 위기를 앞두고 알바트로스 타자들의 방망이가 괴력을 발휘했다. 올 시즌 최초의 선발 전원안타. 그렇게 알바트로스는 타자들의 대활약에 힘입어 기나긴 연패의 늪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이 후 알바트로스는 그 여세를 몰아 연달아 두 경기를 더 승리해 시즌 첫 3연승을 달성했다. 팬들은 드디어 팀이 본궤도에 오른 것이라며 앞으로의 반전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팬들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알바트로스는 또 다시 부진의 늪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그나마 이전처럼 무한정 연패가 길어지지 않았지만, 1승을 하면 2패를 하는 루징시리즈가 반복되었다. 시즌 중반이 지난 지금 팀의 성적은 프로야구팀으로서 최후의 마지노선이라는 4할 승률마저 무너져 그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알바트로스의 분위기 반전은 아직까지 요원한 일로 보였다.
팀의 성적이 그러한 만큼 선수들의 사기 또한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다. 선수들은 스스로의 개인 성적 관리에만 급급했고, 팬들 또한 몇몇 스타 선수의 기록에만 기대어 팀을 응원할 뿐이었다. 그렇게 패배의 수렁에 빠진 선수와 팬 모두가 점차 우린 안 될 거라는 패배마인드에 익숙해져갔다.
한편 챔피언스에서 트레이드 된 후 선발로서 몇 차례 기회를 받은 이형순은 등판시마다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강판되면서 점차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반면 이형순과 트레이드 되어 챔피언스로 떠난 이명준과 김창수가 연일 투타에서 뜻밖에 활약을 펼치면서 벌써부터 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실패한 트레이드가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알바트로스 팬들의 일과는 경기에 이긴 날은 몇몇 스타 선수들의 기록으로 위안을 삼고, 경기에 진날은 코칭스태프와 구단프런트를 향해 불만을 쏟아 내는 것 두 가지로 고정되어가고 있었다.
팀의 수석코치인 명훈 또한 팬들의 질책에서 자유롭진 않았다. 초반부터 박광수 감독대행과 쌍박이라는 별칭으로 묶였던 만큼 코칭스태프진에서 박광수 감독대행 다음으로 많은 욕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오히려 명훈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더욱 집중했다. 기회가 될 때 마다 1~2군 훈련장을 오가며 최대한 많은 선수들과 악수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선수들의 정보를 수집하는 일에 열중했고, 지금에 와서는 알바트로스 뿐만 아니라 타 팀 선수들의 정보 또한 일부 데이터화 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특히 주요 선수들의 대해서는 마주칠 때마다 악수를 청하며 능력치와 상태의 변화를 면밀히 기록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몇몇 선수들에게 조언을 해주기도 했는데, 이 때문인지 명훈과 악수를 자주하면 성적이 좋아 진다는 묘한 소문이 선수단 내에서 조금씩 퍼져나가고 있었다.
또한 본연의 임무인 수석코치로서의 역할도 어느새 많이 익숙해진 명훈이었다. 비록 팀의 패배가 대부분이었지만 그런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에 와서는 팀의 수석코치로서 부족함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명훈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트레이드에 관할 일도 주기적으로 박광수 감독대행과 회동을 가지며 조금씩 이야기를 진행시켜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리그는 어느새 올스타브레이크를 맞이해 선수들에겐 꿀 같은 4일간의 휴식이 주어졌다. 반면 코칭스태프와 구단프런트는 전반기 트레이드 데드라인이 가까워진 만큼 더욱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올스타전을 맞이해 알바트로스에서도 김박살을 비롯해 세 명의 선수가 올스타전에 참여했고, 명훈과 박광수 감독대행의 회동 횟수도 잦아져 이제는 하루에도 수차례의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
올스타전이 치러지는 당일인 오늘 역시 회의는 계속되었다. 회의 초기에는 명훈과 박광수 감독대행 두 사람만으로 진행되던 회의였지만, 트레이드 진행이 궤도에 오른 어느 시점부터 코칭스태프 대부분이 참여하는 공식 회의가 되어 있었다. 거기에 오늘은 구단프런트 직원까지 참여했는데, 이로서 트레이드가 임박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일까 회의실에는 평소보다 더욱 진중한 기운이 감돌았다.
“이제 트레이드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그동안 준비해 온 결실을 맺을 시기가 왔습니다. 다행히도 저희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인지 트레이드 진행상황이 꽤나 좋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전 박광수 감독대행님의 예측대로 타 팀들의 반응이 아주 뜨겁습니다. 특히 김박살 건에 대해서는 여러 구단이 서로 경쟁적으로 달라붙고 있어서 저희가 중간에서 잘만 조율하면 기대보다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이 그야말로 최적기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최종 결행 날짜를 정하기를 건의합니다.”
2군 감독직을 맞고 있는 이성훈 2군 감독의 말에 다들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외부상황이 알바트로스에게 아주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에 코치진 대부분이 동조하고 있는 듯 했다. 반면 프런트 쪽에서는 아직까지도 꾸준히 부정적인 견해를 비쳐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도 그럴까요? 가장 중요한 팬들의 분위기가 썩 좋다고 보기 힘듭니다. 지금처럼 팀 성적이 바닥인 상황에서 팬들이 그나마 기대고 있는 것은 김박살을 비롯한 스타선수들의 성적입니다. 특히 김박살의 경우 현재까지 무려 타율이 4할이죠. 어쩌면 구단 최초의 4할 타자가 나올 지도 모른다는 팬들의 기대가 큽니다. 자칫 섣부른 트레이드 발표는 저희의 예상을 뛰어넘는 큰 파장을 일으킬지도 모릅니다. 만약이라도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누군가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확실히 말해 둡니다만, 이번 건은 분명히 코칭스태프 쪽에서 시작한 일입니다. 그것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구단프런트로서 트레이드 관한 담당을 맡고 있는 직원의 발언에 회의실의 분위기가 순간 싸해졌다. 만약을 사태를 대비해 그에 대한 책임을 논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직원의 발언에서는 자신은 그 책임에서 회피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느껴졌다.
직원의 발언으로 회의실 분위기가 급속도로 가라앉자 결국 박광수 감독대행이 나서야만 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게. 그래, 이참에 모두에게 확실히 말해두지. 이번 일은 분명히 내가 시작한 일이야. 일의 진행에 가장 많은 관여를 한 것도 나고, 최종결정도 내가 직접 할 것이네. 만약 누군가 책임을 져야한다면 당연히 내가 책임을 질것이네. 이제 됐나?”
마지막 말을 뱉으며 구단프런트 직원의 얼굴을 지그시 쳐다보는 박광수 감독대행 이었다. 원하는 것을 얻어내서 일까. 한차례 어깨를 으쓱하고 올렸다 내린 프런트직원이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뭐, 감독대행님께서 그렇게 결정하셨다면야.. 하하. 그리고 제 말은 만약에 사태에 대비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하지 않겠냐는 것뿐이었습니다. 다들 오해 없으셨길 바랍니다.”
구단프런트 직원의 구차한 변명에 코칭스태프들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런 분위기를 눈치 챈 프런트직원이 재빨리 상황을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하하. 이거 얘기가 잘된 것 같습니다. 그럼 코칭스태프 쪽에서 최종결정을 내리시면 프런트 쪽으로 연락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저희가 구체적인일정을 잡는 것으로 하지요. 아, 그리고 최종결정을 감독대행님께서 직접 하시기로 하셨으니 추후 변화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감독대행님께서 재량껏 잘 대처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물론 그에 대한 책임도요. 하하”
끝까지 얄미운 소리를 하는 프런트직원의 태도에 끝내 박광수 감독대행마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어이쿠, 제가 중요한 약속이 있는 걸 깜빡했습니다. 그럼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오늘 참 뜻 깊은 자리였습니다. 하하”
도망치듯 회의실을 빠져나가는 프런트직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결국 한마디를 던지는 박광수 감독대행이었다.
“쯧쯧. 이래서 구단프런트가 팀에 대한 열정이 없다는 소리가 나오는 게야.”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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