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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byss : 추락한 자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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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다킹
작품등록일 :
2022.04.05 17:26
최근연재일 :
2023.02.26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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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04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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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인연(6)

DUMMY

타르가르는 먹고 있던 고기를 내려놓고 2층으로 올라가 큰 나무 상자 하나를 가지고 돌아와 바닥에 내려놓았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냥 나무로 만들어진 상자였다.


타르가르가 상자를 열자 상자 안에는 편지 봉투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편지들을 꺼내 차례대로 바닥에 펼쳐 놓았다. 다들 한 장씩 집어 편지들을 읽었다.


“그냥 잘 지내고 있다는 편지네요. 그것도 아주 평범한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에이든은 종이 냄새도 맡아보고 종이를 세심하게 들여다보았지만 특별한 무언가는 없었다. 타르가르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요 맞습니다. 보기에는 아주 평범한 편지라고 생각들 하시겠지만, 이 편지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일단 직관적으로 편지 내용이 하나 같이 다 비슷하고, 짧다는 것이죠. 생각해보세요. 먼 타지에서 외로이 고생하면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 오크가 그리운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내용이 이렇게 부실할 수가 있겠습니까? 한 명도 아니고 모두의 편지들이 동일하게 말이에요.”


에이든은 타르가르의 말에 공감하며 말했다.


“그렇군요. 가만 보니 모든 편지의 내용이 4줄 이상 넘지 않네요. 이건 누군가가 대충 몇 글자만 바꿔 적어 보낸 느낌이 들긴 하는군요.”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타르가르는 다시 책상으로 걸어가 서랍 속에 따로 모아둔 편지들을 가지고 왔다. 조금 전보다 더 큰 한숨을 내쉬었다.


“이 편지들도 봐주시죠.”


세 사람은 머리 맞대고 편지들을 살펴보았다. 다른 편지들과 똑같이 짧게 써진 것을 빼고는 별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아그리사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소리 질렀다.


“세상에! 여기 보세요. 이 편지랑 여기 있는 다른 편지들 글씨체가 전부 똑같아요. 보낸 오크는 분명히 다른데 말이에요.”


“그러네요. 내용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동일한 글씨를 가진 편지네요.”


에이든과 다르할도 아그리사가 가리키는 편지들을 보았다. 글자 하나하나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모두 똑같았다.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듯 말이다.


“어떻습니까?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에이든의 표정이 구겨지고 목이 메 헛기침을 한 후 정수되지 않은 지하수를 들이켰다.


“둘 중 하나 아니겠어요? 지원을 나간 인부들이 정말 바쁘고 시간이 없어서 누가 대신 써주었거나, 쓸 인부가 사라져서 누구든 대신 써야 했거나.”


선장은 에이든의 말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너무 극단적인 생각이 아니오? 인간들을 형제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오크와 인간은 꽤 오랜 시간 동안 함께 공존하며 지내왔잖소.”


에이든은 왕국이 아닌 크리스탐을 기준으로 한 생각이었다. 교활하기 짝이 없는 그라면 분명 이런 짓을 하고도 남을 만한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왜 무엇 때문에 이런 짓을 하는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에 여타 다른 언급은 하지 않았다.


분명한 건 오크들의 생각보다 타이탄 왕국의 인간들은 남의 일에는 관심도 없고 관대하지도 않으며 아무런 대가 없이 베풀 자들은 아니라는 걸 이야기해주었다. 족장 타르가르도 에이든이 처음에 한 말에 공감했다.


“저도 에이든님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족장에게 편지를 모아 가져가 보여주며 말했더니 그 역시도 그냥 지원 간 인부들이 바빠 편지를 쓸 수 없다고만 내게 말하더군요. 엄청나게 규모가 큰 건축물이라 그렇다고 걱정할 것 없으니 부족원들을 잘 다독이라고만 말하더군요.”


“다른 부족들은요? 강철 심장 부족만 차출되어간 건 아니지 않나요?”


타르가르의 표정은 좀 더 굳어졌다.


“그렇소. 그래서 부족회의가 끝나고 다른 부족 족장들을 따로 만나 그들에게 물었더니 그들 부족원의 상황도 우리와 똑같다더군요.”


“잘됐네요. 다른 부족들과 함께 내용을 정리해 대족장에게 다시 이 내용에 대해 잘 말하면 되지 않을까요?”


타르가르는 확신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들은 우리와 함께하지 않을 겁니다. 괜한 말로 대족장의 심기를 건드리게 되면 대족장은 그 부족에게 돌아가는 식량 배분을 줄이는 불이익을 줄 테니까요. 그보다 더 큰 불이익은 노동자를 특정 부족에게서 더 많이 뽑는다는 겁니다. 이미 우리도 불이익을 당하는 중이기도 하고요.”


에이든은 중립을 유지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타르가르를 대신하여 분통을 터뜨렸다.


“말도 안 돼요. 제가 오크에 대해 깊게 잘 아는 건 아니지만 현 대족장이라는 오크는 정말이지 비겁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네요. 어떻게 다른 것도 아니고 전 오크들이 먹는 식량을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덜 주는 졸렬한 행동을 한답니까. 다 같이 잘살아 볼 생각을 해야지.”


에이든의 말에 아그리사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들은 오크의 수치야. 비겁하고 자신들밖에 모르는 부족이지. 예부터 오크 부족들 사이에서는 산울림 부족과는 죽음의 그림자가 발끝에 닿더라도 친분을 쌓지 말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어. 그만큼 신뢰하기 힘든 부족이야. 그런데 그런 부족이 대족장 자리에 떡하니 앉아 있으니... 아까 내가 왜 내 동생의 뺨을 때렸는지 이해돼?”


에이든은 그녀와 눈을 맞추었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시선을 돌려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장작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족장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신뢰할 수 없다는 그들 부족이 대족장을 하고 있는지 저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네요. 뭐 그런 면에서는 우리 타이탄 왕국도 비슷하기는 하지만요.”


“간단해. 신뢰할 수 없는 부족답게 다른 부족은 싸울 힘이 없는 아이들을 제외하고 모두가 전선에 나서서 사력을 다해 목숨 바쳐 최후의 순간까지 불의 군대와 싸웠지만, 산울림 부족은 쥐 죽은 듯이 몸을 웅크리고 숨어서 자기 영토만을 방어하고 있었거든.”


“겁쟁이군요.”


“식량과 무기를 아주 조금 지원하는 것 외에는 오크의 미래가 왔다 갔다 하는 순간까지 일절 돕지 않았지. 무기도 없이 돌멩이를 주워다가 나무 끈으로 엮어 돌도끼를 가지고 전투에 임하거나 대나무를 뾰족하게 잘라 죽창으로 만들어 힘겹게 싸웠고 그러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과 가족 그리고 대족장을 잃은 나머지 부족들은 갈 곳이 없어 더럽고 분하고 치욕스럽지만 남은 부족원들을 위해 하는 수 없이 아무런 피해 없이 자신들의 땅을 지켜낸 산울림 부족에게 무릎을 꿇고 기어들어 가 의지해야 했어.”


“흠...”


“그리고 대부분의 부족이 자연스레 산울림 부족으로 흡수됐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대족장이 산울림 부족에서 나오게 된 거야.”


에이든은 씁쓸한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쥐고 그저 춤추는 불길 속을 응시하는 타르가르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의 야수 같은 눈빛과 표정은 아그리사의 말에도 조금의 흔들림 없었다. 오히려 더 단단해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형님. 우리 부족이 어떤 부족입니까! 강철같은 의지와 심장을 가진 부족 아닙니까? 언제까지 우리가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합니까!”


타르가르는 다르할의 말에 피식 웃으며 다 익은 고기를 빼 타거나 안 익은 곳이 있는지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이런 어려운 시국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느냐. 그렇다고 동포끼리 전쟁을 벌일 수는 없잖느냐. 그리고 설령 내가 오크를 이끌게 된다고 하더라도 뭐가 달라질까? 나라면 무엇을 어떻게 했을까? 다르할 너라면 어떻게 했겠느냐?”


타르가르의 언사에는 옛 오크의 영광을 다시 재연하겠다는 의지와 신념이 보였지만 기백과 용기가 결여된 모습도 함께 나타났다.


다르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먹을 쥐고 가슴을 두드리며 주먹 쥔 손을 위로 힘껏 뻗었다. 그의 날개뼈 부근에서 우드득 소리가 났지만 애써 괜찮은 척했다.


“오크들의 명예와 우리의 영토를 되찾아야죠!”


아그리사도 동의하며 주먹을 쥐고 천장을 향해 손을 쭉 뻗었다. 타르가르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을 비웃는 웃음이 아니었다. 그의 웃음은 만족스러워하는 웃음이었다.


그래도 아직은 자신과 똑같은 꿈으로 무장되어 있고 긍지와 자부심을 가진 오크들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안도감과 위로를 받았다. 굳었던 타르가르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번졌다.


“하하! 너답구나. 동생아. 네 패기와 용기는 정말 손뼉 쳐 줄만 한데 말이야. 싸울 땐 싸우더라도 병사들이 먹을 식량과 손에 쥐고 싸울 무기가 있어야 싸우지 않겠느냐?”


“어... 그건. 에잇! 그까짓 거 굳건한 의지로 버티면 됩니다!”


“그래. 네 이야기도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의지만으로는 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없다. 철저하게 준비해야만 해. 언젠가 그날이 온다면 너와 함께할 테니 우선 지금은 밥부터 먹자. 먼지 날리게 하지 말고.”


수상한 움직임을 감지한 허리케인이 귀를 수직으로 세우고 검고 촉촉한 코를 벌름거리며 으르렁거렸다. 집 뒤편 상자를 쌓아 놓은 쪽을 응시하며 자세를 낮췄다. 타르가르는 허리케인의 이상 반응에 고개를 돌렸다.


한쪽 귀로는 식사 중인 손님들의 웃음소리와 고기를 씹는 소리를 들었고, 눈으로는 허리케인의 귀와 움직임을 응시했다. 허리케인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 보였다. 그의 경계심에 타르가르도 바짝 긴장했다.


실제로 타르가르는 누군가에게 기습을 당한 적은 없었지만, 완전히 그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타르가르는 고기를 끼우는 꼬챙이를 하나 집어 들고 계속해서 허리케인을 응시했다. 잠시 후 허리케인의 귀가 납작하게 뒤로 눕고는 낑낑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제야 타르가르도 꼬챙이를 내려놓고 뒷문으로 걸어갔다. 아마도 옆집에 사는 롭티산 부인이 온 모양이었다.


그런데 족장의 예상과는 다르게 하얗고 앙증맞은 작은 손이 허리케인의 머리를 부드럽게 매만졌다. 허리케인은 만족한 듯 손길을 느끼며 눈을 감았고 기분 좋은 듯 꼬리를 살랑거렸다.


그 작은 손은 오크의 손이 아닌 사람의 손이었다. 그것도 어린아이의 손. 오크도 아닌 인간이 어떻게 무슨 용기로 좀처럼 곁을 주지 않는 포악한 붉은 갈기늑대를 순종적으로 만들어 저렇게 만질 수가 있을까 타르가르는 궁금했다.


로디네스 숲


드롱은 회색곰의 발톱 공격을 방패로 튕겨내고 판금을 신은 발을 뻗어 턱을 걷어찼다. 드롱의 공격에 보랏빛 피를 뿜어내는 곰은 주춤거리며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류미님. 마무리를 부탁해요.”


“맡겨주세요!”


언제나 그랬듯 마무리는 류미의 차지였다. 모험가 선배인 드롱의 배려였다. 류미는 얼음창을 뽑아내 회색곰의 옆구리를 향해 최후의 공격을 가했고, 곰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옆구리가 뚫려 그 자리에 ‘쿵’하고 쓰러졌다.


마력 깃든 곰의 신체의 대부분이 보랏빛 연기로 뒤덮이며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산화하며 회색곰은 왼쪽 뒷다리만 덩그러니 남긴 채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드롱과 류미는 눈에는 실망감으로 가득 찼다. 짜증 섞인 목소리로 드롱은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말했다.


“이번에도 마력에 잔뜩 물든 녀석이네요. 정말이지 사람 힘 빠지게 하네요. 사력을 다해 싸워도 겨우 뒷다리라니 이렇게 모아서는 끝도 없겠는데요?”


“그러게, 말이에요.”


“이제 얼마나 남았어요. 류미님?”


“음... 잠시만요.”


드롱은 한숨을 내뱉으며 장비를 점검했고 류미는 퀘스트 목록이 적혀 있는 두루마리를 꺼내 펼쳤다.


“과수원 일손 돕기랑 사랑이 담긴 도시락 배달하기도 끝났고, 전쟁 대비 추가 식량 모으기는...”


류미는 가방을 열어 고기의 양을 확인했다. 얕은 한숨을 내뱉고는 가방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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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화 위기의 숲(3) 22.05.22 63 1 13쪽
22 22화 위기의 숲(2) 22.05.21 63 1 13쪽
21 21화 위기의 숲(1) 22.05.19 65 1 13쪽
20 20화 늙은 호랑이(2) 22.05.16 64 1 13쪽
19 19화 늙은 호랑이(1) 22.05.15 67 1 13쪽
18 18화 암살작전 22.05.14 68 1 13쪽
17 17화 그룹결성!(3) 22.05.12 76 1 12쪽
16 16화 그룹결성!(2) 22.05.09 83 1 12쪽
15 15화 그룹결성!(1) 22.05.08 88 1 13쪽
14 14화 새로운 출발 22.05.07 91 1 13쪽
13 13화 미운 오리 새끼(2) 22.05.05 103 1 12쪽
12 12화 미운 오리 새끼(1) 22.05.01 127 1 11쪽
11 11화 혼돈(2) 22.04.30 133 1 11쪽
10 10화 혼돈(1) 22.04.28 149 1 11쪽
9 9화 길드(3) 22.04.25 170 2 12쪽
8 8화 길드(2) 22.04.23 186 2 12쪽
7 7화 길드(1) 22.04.21 206 4 11쪽
6 6화 평화의 항구 22.04.18 240 4 11쪽
5 5화 갈림길에 선 두 남녀[수정] 22.04.17 257 4 12쪽
4 4화 의문의 남자[수정] 22.04.15 287 6 13쪽
3 3화 만남 그리고 새로운 시작(3)[수정] 22.04.11 325 6 11쪽
2 2화 만남 그리고 새로운 시작(2)[수정] 22.04.09 363 6 12쪽
1 1화 만남 그리고 새로운 시작(1)[수정] 22.04.08 563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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