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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byss : 추락한 자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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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다킹
작품등록일 :
2022.04.05 17:26
최근연재일 :
2023.02.26 12:33
연재수 :
17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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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글자수 :
955,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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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2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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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0화 혼돈(1)

DUMMY

알 수 없는 장소.


류미는 환영 속에서 오래된 친구이자 가장 사랑했던 남동생 폴리를 마주했다. 폴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류미를 바라볼 뿐 어떠한 말이나 행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온기와 감정을 상실한 유령처럼 느껴졌다. 류미는 폴리를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달려가 얼음같이 차갑게 굳은 동생을 껴안았다.


“사랑하는 내 동생 폴리.”


폴리의 차갑고 낮은 음성이 메아리치듯 류미의 심장을 굽이치며 올라와 귓가에 맴돌았다.


“날 만나러 와주었구나?”


“폴리 너무 보고 싶었어. 나 죽은 거야? 여기는 대체 어디지? 분명 난...”


폴리는 고개를 저으며 저음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이곳은 기억의 저장소야.”


“기억의 저장소?”


류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차가운 공기로 무겁게 짓눌려지고 암흑으로 뒤덮인 낡은 도서관은 셀 수도 없을 만큼의 수많은 책장과 책들이 모든 공간에서 영역 다툼이라도 하듯 빽빽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책장에 호기심이 동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저 동생만 있으면 됐다.


폴리의 환영 너머에서 또 다른 환영이 걸어왔다. 어디에선가 본 듯한 익숙한 얼굴과 옷차림이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려 하자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졌다.


머리에는 검은색 탑햇을 왼쪽 눈엔 외눈 안경을 쓰고 있었고 턱시도 차림을 한 남자였다. 오른손에는 평범해 보이는 지팡이가 들려 있었는데 지팡이의 머리 부분에는 뱀의 형상으로 되어 있었다.


뱀의 입안에는 붉은 루비가 물려있었고 눈에는 초록빛이 감도는 에메랄드가 박혀 있었다. 류미의 앞에선 신사는 모자를 슬쩍 들어 올리며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기억의 저장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류미 주인님.”


류미는 그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에 경계심을 느꼈고 주인이라는 호칭에 불쾌감을 느꼈다.


“제 이름은 어떻게 아세요? 그리고 주인님이라뇨?”


폴리의 옆에 선 남자는 폴리의 어깨에 보란 듯이 손을 올리고는 부드럽게 말했다.


“저의 가장 친구 폴리가 알려주었죠. 그렇죠 폴리?”


폴리는 류미 옆으로 다가와 나란히 섰고 손을 뻗어 류미의 손을 잡았다. 류미도 폴리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어릴 적 늘 잡고 다녔던 폴리 손의 부드러움은 남아 있었지만, 손은 시체처럼 차가웠고 온기라고는 없었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폴리가 죽었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아마 주인님도 제 이름을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기억 속의 아주 작은 공간에 저의 이름을 보관해 두었을 겁니다. 저에게는 추억이지만 주인님에게는 잊지 못할 악몽일 테니까요.”


어지러움을 동반한 두통과 매스꺼움이 류미를 압박해 괴로웠다. 생각을 더듬어보던 류미의 기억 속에 저 너머에 흐릿하게나마 남아 있는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버드네이즈!”


마술사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기억이 류미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속에서 올라오는 씁쓸한 무언가를 바닥에 게워냈고 버드네이즈가 손가락을 맞대고 ‘탁’치자 지저분한 류미의 토사물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죄송해요. 속이 매스꺼워요.”


“괜찮습니다. 깔끔하지 않나요? 후후.”


류미가 버드네이즈를 만났던 건 아주 어릴 적이었다. 자세한 나이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9살 세계의 연결고리 틈에서였던 것 같았다.

그날 밤은 추적추적 진눈깨비가 날리는 날이었다. 호기심이 불처럼 끓어올랐던 시기였기도 했다.


가부장적인 게일 후작은 류미와 폴리가 성채를 벗어나지 못하게 했지만, 그날은 게일이 왕국 건국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수도로 떠났었다.


아버지의 말 때문에 하루 종일 새장의 새처럼 저택 안에 머물다 지루해 녹아버릴 것 같았던 하루를 보내던 류미와 폴리는 집사 사무엘과 함께 아주 잠시 아버지의 경고를 잠시 옆으로 밀어놓고 성채 밖에서 가볍게 산책을 하기로 했다.


성채 근처에는 세계의 연결고리라 불리는 거대한 돌기둥이 자리하고 있었고, 조상들로부터 전해져오던 전설에 따르면 이 유적은 지상과 이곳 지하 세계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였다고 했다.


지상의 세계가 천재지변으로 거대한 불길에 휩싸이면서 기둥 내부까지 충격이 가해진 와중에 불의 군대와의 전투 때문에 세계의 대기는 불안정해졌고 그 여파로 인해 기둥 내부가 거의 무너져 내려 지금은 그냥 흉물로 남아 있다고 했다.


“사무엘 저 거대한 기둥 말이야. 어째서 막아놓은 걸까? 그냥 긴 바위일 뿐인데 말이야.”


“아가씨. 설마... 기둥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거나 뭐 이런 이야기를 하실 거라면 그만 성채로 돌아가시죠. 지금 이렇게 산책 나온 것도 후작님이 아시게 되면 아가씨와 도련님은 괜찮으시겠지만 전 밤새 매질을 당할 거라고요.”


“사무엘! 난 사무엘이 참 좋은데 너무 겁이 많아서 걱정이야. 용감해졌으면 좋겠어. 만약 우리가 위험에 처하면 어떡하려고 그래? 그러니까 이참에 우리 사무엘 담력도 키우고 아주 잠깐만 구경도 하고 가자. 알겠지?”


“아... 제발... 류미님...”


사무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류미는 고집을 부려 기둥을 향해 거침없이 걸어갔다. 두꺼운 설인 가죽점퍼도 뚫고 들어올 만큼 위튼데일의 추위는 매서웠고 타이탄 왕국의 영토 중 최고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닥쳤고 성채 사람들도 함부로 나돌아다니지 못할 정도로 그해에 들어 가장 추운 날씨였다.


개구지고 고집스러운 류미를 말릴 수 없었던 사무엘은 하는 수 없이 한 손엔 호신용 단검과 다른 손에는 등불을 들고 비추며 기둥 안쪽으로 먼저 들어가 살폈다.


무너져 내린 바위들이 여기저기 뒤섞여 있었고, 음흉하게 비웃는 듯한 박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사무엘의 다리가 덜덜 떨렸다. 한시라도 빨리 이 음침한 곳을 벗어나고 싶었던 사무엘은 입구에 서서 대충 등불만 비춰 안을 둘러보았다. 별다른 위험 사항이 보이지 않는 그냥 평범한 동굴임을 확인하자마자 류미를 불렀다.


류미는 새로운 모험에 흥분한 듯 들떠 있었지만, 모험을 즐기지 않는 폴리는 무서워 류미의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졌다.


“누나.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 응? 춥고 무섭단 말이야.”


“어머. 넌 나 몰래 기사단 수업이나 들으면서 이깟 동굴이 뭐가 무섭다고 호들갑을 떠는 거야. 그래서 나중에 훌륭한 기사가 될 수 있겠어?”


류미는 자꾸 다리를 붙잡고 들러붙는 폴리를 떨어뜨리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폴리는 울음을 터뜨렸고 사무엘은 후작이 가장 아끼는 자식인 폴리를 그냥 둘 수 없었기에 류미를 그냥 기둥 안쪽에 둔 채로 바깥에 있는 폴리에게로 갔다.


“아가씨. 빨리 나오셔야 해요? 알겠죠?”


“아~ 알았다니까.”


류미의 기대와는 달리 돌밖에 보이지 않는 시시한 동굴이었다.


실망한 류미는 그냥 나갈까 하다가 기왕 들어온 김에 더 깊숙한 기둥 안쪽까지 들어가 보았다.

바위와 바위 사이에 작은 몸집의 아이만 들어갈 만한 아주 좁은 틈이 보였고 무언가에 이끌리듯 겁도 없이 류미는 틈 사이로 한 발자국씩 깊이 들어갔다.


좁은 틈 안쪽으로 들어가자 조금은 넓은 공간이 나왔다. 위쪽을 비추자 거대하고 넓적한 바위 하나가 위쪽에서 떨어진 바위들을 지탱해 주고 있었다.


류미의 눈에는 지탱하고 있는 바위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마치 계단처럼 보였다. 동네 어르신들이 말해주셨던 허풍 섞인 이야기가 허구가 아닌 사실인 것 같았고 시시했던 동굴이 좀 다르게 보였다.


소멸해 가던 호기심이 증폭된 류미는 좀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갔고 그러다 구석진 바위틈 사이로 미세하게 상자같이 보이는 물체가 있는 것 같았다.


별 기대 없이 류미가 가까이 다가가 전등을 비추어보자 정말 오래된 상자가 틈 안에 놓여 있었다. 눈이 휘둥그레진 류미는 등불을 내려놓고 상자를 짓누르고 있는 큼지막한 돌들을 있는 힘껏 들어 걷어내 낡고 찌그러진 상자를 손에 넣었다.


“이게 뭐지!? 보물 상자인가?”


상자 위에 쌓인 먼지를 입으로 불고 가장 아끼는 빨간 털장갑을 벗어 맨손으로 털어내자 P라는 글자가 앞에 적혀 있었다. 자물쇠는 부서져 고리만 겨우 매달려 있었다.


아마 떨어진 돌들에 의해 상한 것 같았고 류미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어 보았다. 상자 안에는 보물 같은 건 없었고 검은색 책 한 권과 이상한 그림이 그려진 카드가 들어 있었다.


류미가 상자 안을 조사하는 동안 기둥 출구 쪽이 소란스러웠다. 보나 마나 울보인 동생 탈리가 빨리 집으로 돌아가자고 떼를 쓰고 있겠거니 생각했다.


“폴리! 누나가 울지 말라고 했지! 남자는 우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한숨을 내쉬며 류미는 동굴 안쪽을 더 살펴보았지만, 딱히 특별한 건 없어 보였다. 전등을 기둥의 위쪽으로 향해 들어 보았다. 끝없이 위쪽으로 이어진 동굴에 압도당해 뒤늦게 두려움이 온몸을 감쌌다.


이젠 도저히 춥고 무서워서 이곳에 있지 못할 것 같았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 도로시 아줌마가 타주는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며 상자 안의 내용물을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고 싶었다.


류미는 들어왔던 바위틈 사이를 비집고 나가려 했지만, 상자와 전등을 모두 들고나갈 수는 없어 전등을 놔두고 오늘의 전리품인 상자만 들고 틈을 비집고 나갔다.


그 순간 기둥 출구 쪽에서 폴리의 흐느끼는 소리와 낯선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저 울보의 울음소리가 성채 밖을 순찰하던 경비병들을 불러들인 모양이었다.


그때 폴리의 비명이 소리가 들렸다. 땅바닥에 뭔가 묵직한 물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기둥 안쪽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폴리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고 생각한 류미는 가장 먼저 불같이 화내는 아빠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류미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고, 손에서 상자가 떨어졌다.


그제서야 아침에 아빠가 신신당부한 말이 생각이 났다. 최근 근방에 보물 사냥꾼들이 돌아다니니 절대로 성채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했었다. 아마 저들은 아빠가 말한 보물 사냥꾼들인 것 같았다.


상자가 떨어지는 소리에 깜짝 놀란 그들은 미세하게 바위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등불을 따라 날이 선 단검을 손에 쥔 채 거침없이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휘휘 휘휘휘휘휘 휘휘 휘휘휘~”


알 수 없는 음의 휘파람 소리가 동굴 안에 퍼졌다.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털이 바짝 서 겁에 질린 류미는 벽 쪽으로 기어가다가 그때 우연히 바닥에 나뒹구는 책을 건드리게 됐고, 그날 버드네이즈를 만났다.

그 후의 일을 생각해 내려 했지만, 머리의 통증만 더 생길 뿐 생각나지 않았다.


류미는 폴리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싼 채 쓰다듬으며 울먹였다.


“미안해. 사랑하는 내 동생 폴리. 그날 내가 성채 밖으로 나가지만 않았더라면... 사무엘의 말을 들었더라면 네가 죽는 일은 없었을 텐데. 정말 미안해 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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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화 길드(3) 22.04.25 170 2 12쪽
8 8화 길드(2) 22.04.23 186 2 12쪽
7 7화 길드(1) 22.04.21 207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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