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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byss : 추락한 자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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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다킹
작품등록일 :
2022.04.05 17:26
최근연재일 :
2023.02.26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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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2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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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위기의 숲(3)

DUMMY

류미는 그의 슬쩍 돌린 눈길을 쫓아갔다. 가방을 바라본 것 같았다. 가방이 그를 화나게 할 리는 없었고 아마도 책 때문인 것 같았다. 류미는 가방에서 책을 꺼내 흔들어 보였다.


“이것 때문인 건가요?”


드롱은 고개를 돌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이를 꽉 깨물고 있었다.


“죄송해요. 좀 더 신중하게 썼어야 했는데...”


“뭐~ 그래도 류미님 덕분에 노커들을 마을 밖으로 내쫓아 내버렸잖아요. 잘된 일인 거죠.”


드롱은 저주받았을지 아니면 축복받았을지 모를 책 한 권으로 그 많은 노커들을 쓸어버린 류미가 탐탁지 않았다. 오히려 질투가 났다고 보는 게 맞았다.


자신에게도 노커들을 몰아낼 정도로 강한 힘이나 마법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했다. 질투도 났고 욕심도 났다.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한심하고 초라해 보였는지 불필요한 생각을 멈추고 그 상황을 다르게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류미님 다음부터 책을 사용하실 때는 조금 더 신중하게 사용해주세요. 분명 상황이 좋지 않아 올바르게 사용됐다고는 하지만 되도록 전 그 책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1년 동안 이를 악물고 힘들게 훈련해온 건 책을 잘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닌 본인의 기량을 기르고 발휘하기 위함이었잖아요?”


“네...”


“그리고 만약 자칫 잘못해서 류미님이 소환한 녀석이 마을 사람들을 덮치는 상황이 왔다면 더 큰 위험이 되지 않았을까요? 그러니 데일러스님과 약속하신 걸 잊지 않으셨으면 해요.”


모험을 떠나기 전날 밤 길드장인 데일러스는 류미에게 책의 사용을 최대한 자제해 주기를 신신당부했었고 본인도 그 약속을 지켜보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런데 출발한 지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책을 사용해버린 류미였기에 본인 스스로도 걱정했다.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책에 너무 의존하고 있는 건 아닌 건지라는 그런 생각을 말이다.

그래서 드롱의 말대로 스스로가 좀 더 자제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렇네요. 그냥 그땐 빨리 노커들을 몰아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아까 보셔서 아시겠지만, 아이들도 너무 위험했고...”


류미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와 어깨를 함께 떨궜다. 드롱은 그녀의 기죽은 모습을 보고는 아직 초보자인 류미님에게 너무 예민하게 행동했다고 느꼈고 류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모험 첫날부터 분위기 망쳐서 미안해요. 하지만 저희는 하나의 그룹이니 무슨 일이든 상의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류미는 처음의 분위기가 깨지는 걸 원치 않았기에 일부로 평소보다 더 밝게 웃으며 말했다.


“네! 보스!”


류미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드롱은 피식 웃었고 딱딱하게 굳어져 있던 입가에 미소가 다시 돌아왔다.


두 사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처음 항구를 출발했을 당시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한참 길을 걷다 류미는 멈춰서서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길 보세요. 테일러 중기사가 말한 동상이 저것 아닐까요?”


울타리 너머 무성하게 자란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뭇가지처럼 길게 뻗은 청록색의 사슴뿔이 어렴풋이 나뭇잎 사이로 보였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을 땐 확실하게 보였다.


사슴 코의 주름, 절묘하게 휘어지고 뻗은 뿔, 모르는 사람이 봤더라면 마력의 물든 사슴이라고 볼 정도로 아주 세밀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동상이었다.


동상에는 푸르스름한 녹이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의미가 있고 상징적인 동상임에도 오랫동안 관리가 되지 않은 듯했다.


동상을 받치는 밑부분에 ‘하프 디스글랜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기리며’라는 글자가 미세하게나마 남아 있었다. 류미가 동상을 구경하는 동안 조금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드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류미님 이쪽이에요. 찾았어요. 아마 저기에 있는 집이 테일러 님이 말한 그 집인 것 같아요.”


연금술사의 집은 생각보다 잘 꾸며져 있었다. 드롱이 노년의 삶으로 희망하는 모습이 실현된 집 같았다.


오래되고 낮은 철조 울타리를 따라 붉은 장미가 막 꽃봉오리를 틔우고 있었고, 마당에는 서너 명이 앉을 수 있는 흔들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 의자를 감싸듯 주위로 철조망이 쳐져 있었고 철조망을 품듯 익지 않은 초록빛 포도가 주렁주렁 열려 보랏빛으로 탐스러워지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었다. 류미는 탐스럽게 익어 주렁주렁 열릴 포도를 생각하자 갈증과 허기를 느꼈다.


가방을 열어 물통을 꺼내 분홍빛 입술을 따라 메말라버린 목구멍 안으로 물을 넘겼다. 갈증이 해소되자 뒤엉켜 있던 생각의 끈이 시원하게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드롱은 집 앞으로 걸어가 낡은 붉은색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류미는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긴장한 듯 조금 움츠러들어 있었다.

드롱이 다시 문을 두드리자 집 안쪽에서 분노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빌어먹을! 젠장! 제발 날 내버려 둘 수는 없겠나!? 지금 중요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고!”


당황한 류미와 드롱은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드롱은 다시 한번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려 했고, 류미는 드롱의 손목을 잡고 내렸다.


“저기 어르신. 실례합니다. 혹시 여기가 하프 프링스 연금술사님의 집이 맞나요?”


집안에서 나무 바닥이 짓이겨지면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소리가 문 가까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드롱과 류미는 살짝 뒤로 물러났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머리가 시원하게 벗겨지고, 파란색 로브를 입고 있는 노인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는 드롱과 류미를 노려보았다.


수많은 세월에 부딪혀 색이 바랜 그의 갈색 피부에는 깊게 팬 주름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고, 쭈글쭈글한 그의 손목은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말라 있었다.

노인이 입을 열고 말을 할 땐 이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져 있었다.


“뭐야. 애꾸눈 도리안이 아니었군. 처음 보는 얼굴들인 것 같은데. 늙은이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러니 혹시나 날 알고 있다면 서운해하지 말게. 그런데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와서 내 연구를 방해하는 거지? 갑자기 열 받는군. 무슨 일이야! 어어엉!?”


“아...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흰 이 지역 사람이 아닌 모험가들입니다. 전 전사 직업을 가지고 있는 드롱이고 이쪽은 마술사이자 제 파트너인 류미 님이고요. 테일러 중기사의 의뢰를 받고 이곳에 왔습니다.”


“마술사라고? 동전을 사라지게 했다가 다시 ‘뿅’ 나타나게 하는 그런 눈속임을 쓰는 마술사?”


류미는 노인의 귀 뒤에서 동전을 빼내 보여주었다.


“이런 거요?”


노인은 무표정한 표정을 지으며 별로 놀랍지 않다는 듯 반응했지만, 옆에 있던 드롱이 오히려 눈이 동그랗게 뜬 채 어떻게 했는지 류미의 손을 살폈다.


“요샌 개나 소나 모험가라고 떠들고 다니는군. 이러다가 농부나 어부들도 모험가라고 하겠어.”


노인의 직설에 류미는 익숙한 듯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오히려 드롱이 그 말에 발끈해 노인의 말에 따져 들려 했고 류미가 그의 손을 꼬집어 말렸다.


“미안해. 귀여운 아가씨 원래 나이가 들면 무서울 게 없어지고, 세상이 온통 부정의 덩어리로 보이니 이해해줘.”


노인은 얼굴 근육을 최대한 활용해 인상을 쓰고 있는 드롱을 곁눈질로 보고는 알아듣지 못하게 구시렁댔다. 아무래도 욕을 하는 것 같았다.


“버릇없는 녀석 같으니. 늙은이가 그럴 수도 있지. 어디서 인상을 찌푸리고 난리야. 잡아먹겠네. 잡아먹겠어.”


“다 들립니다. 어르신 작게 말하시려면 더 작게 말씀하시죠.”


“흥. 생긴건 기생오라비처럼 생겨 가지고 꼴에 귀는 밝네.”


노인은 드롱을 무시하고는 얼굴을 벅벅 긁으며 테일러라는 이름을 계속 읊조렸다.


“테일러라... 그 사람의 얼굴 왼쪽 눈 밑에 점이 있었던가? 아니야. 그 사람은 대릴이었나? 나이를 먹으니 얼굴도 다 까먹는구먼. 테일러라... 아하! 기억났다! 머리를 큐브처럼 네모나게 자르고 다니는 사람 맞나? 직급이 중기사였던가?”


류미는 그의 특이한 머리 모양을 기억하고 있었다.


“네! 맞아요. 그 사람이에요.”


“그래. 기억나는구먼. 그나마 이 동네에서 가장 사람다운 사람이지. 마을 사람들에게 평판도 좋고 말이야. 그런 자가 도움을 청한다면 내 기꺼이 재능을 기부할 수 있지. 그래 뭘 도와주면 되겠나?”


드롱은 조심스럽게 가방에서 열매를 꺼냈다. 가방에서 나오자마자 자유가 된 열매는 자신의 존재감을 또 한 번 각인시키기 위해 냄새를 사방팔방으로 퍼뜨렸다.


“윽!”


드롱과 류미는 일제히 코를 붙잡고 입으로 숨을 쉬었다. 프링스는 드롱의 손끝에 아슬아슬하게 붙잡혀 있는 보자기를 양손을 이용하여 정성스럽게 받아들었다.


그리고 흥미롭다는 듯 냄새를 더욱 끌어서 맡기 위해 보자기를 살짝 열어 그곳에 코를 박고 킁킁거렸다. 마치 벌집을 탐하기 위해 코를 박은 곰처럼 그는 즐거워 보였다.


“정말이지 지독한 냄새구먼. 흥미로워. 그래 이 열매를 조사할 수 있게 뭐든 관련된 이야기를 내게 해보게. 예를 들면 의외로 맛이 좋아서 둘이서 먹다가 한 명이 죽었다던가 말이야.”


드롱은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하나도 빼먹지 않고 그에게 설명했다. 류미의 책 이야기는 빼 놓고 말이다.


프링스는 새 장난감을 선물 받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당장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며 후다닥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프링스의 집안은 사춘기 소년의 방처럼 정리라고는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다. 실험 도구와 약병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쌓여 있었고 먹고 남은 그릇은 주방에 가득 쌓여 있었다.


특히나 방안에서는 열매만큼이나 지독한 알 수 없는 냄새가 이미 그곳을 지배하고 있었다.


“흠... 이 똥 덩어리를 놔둘 곳이 없군. 미안한데 집안을 치워주는 것을 좀 도와주겠나? 대신 무료로 이 열매를 조사해 주도록 하지. 어떤가?”


무료라는 말에 드롱은 흔쾌히 프링스의 거래를 받아들였다.


“오! 그럼 그렇게 할까요?”


“거기 소파부터 치워주게. 실험 도구같이 생긴 건 따로 두고 쓰레기처럼 보이는 재료들은... 잠시만 기다려봐.”


프링스는 엉망진창인 연구실 바닥 쓰레기더미를 뒤지더니 용케도 포대 자루와 빗자루를 찾아내 건넸다. 빗자루 손잡이에 끈적끈적한 것이 만져졌다.


“쓰레기는 이 자루에 도구들은 한쪽 구석에 몰아주면 되겠군. 그동안 난 이 테이블을 치울 테니. 그럼 시작하지!”


어느 정도 청소가 끝나자 두 사람이 소파에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그 사이 프링스는 테이블을 정리한다기보다는 필요한 물건들을 제외하고는 그냥 팔을 이용해 옆으로 밀어서 위에 있던 각종 도구들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도구들이 와장창 깨지며 테이블 위에 있던 물건들이 이제는 바닥에서 나뒹굴었고 왜 집이 이 모양 이 꼴로 지저분해졌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프링스의 치워달라는 말은 그냥 대충 밀어서 모아 달라는 말인 듯했다. 드롱은 망설임 없이 모든 걸 자루에 담아 버리고는 바깥에 두고 들어왔다.


“고마워. 이렇게 젊은이들이 매일 와서 치워주면 참 좋을 텐데. 끌끌. 그나저나 밥들은 먹고 다니는 거야? 오랜만에 집에 손님이 왔는데 대접할 게 없어서 어쩌지?”


류미는 모처럼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먹기는 했는데 간단하게 주린 배를 채운 정도라서요. 아직 음식이 들어갈 공간은 충분히 있어요.”


“그래? 아주 잘 됐구먼! 이 집 뒤뜰에 보면 산딸기가 많이 열려 있을 거야. 나도 아직 식전이라 배가 고픈데 좀 따다 주겠나?”


프링스는 쓰레기 더미를 뒤적거려 바구니를 하나 찾아내 대충 먼지를 털어내고는 내밀었다. 류미는 괜히 들어갈 공간이 있다고 말한 조금 전의 자신을 원망했다.

좀 쉬고 싶었는데 또 일하러 나가야 했다. 드롱도 울상을 짓고 류미를 바라봤다.


“이 바구니 가득 산딸기를 좀 따다 줄 수 있겠지? 산딸기가 아주 많으니 따먹으면서 쉬엄쉬엄 담으면 될 거야. 아마 그 바구니에 가득 담길 즘이면 내가 이 똥 덩어리의 정체를 알아낼지도 모르지. 멍하니 기다리는 것보단 이게 더 생산적인 활동이겠지? 원한다면 산딸기를 좀 챙겨가도 좋아.”


“네... 다녀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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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화 위기의 숲(4) 22.05.23 63 1 12쪽
» 23화 위기의 숲(3) 22.05.22 64 1 13쪽
22 22화 위기의 숲(2) 22.05.21 63 1 13쪽
21 21화 위기의 숲(1) 22.05.19 65 1 13쪽
20 20화 늙은 호랑이(2) 22.05.16 64 1 13쪽
19 19화 늙은 호랑이(1) 22.05.15 67 1 13쪽
18 18화 암살작전 22.05.14 69 1 13쪽
17 17화 그룹결성!(3) 22.05.12 76 1 12쪽
16 16화 그룹결성!(2) 22.05.09 83 1 12쪽
15 15화 그룹결성!(1) 22.05.08 88 1 13쪽
14 14화 새로운 출발 22.05.07 91 1 13쪽
13 13화 미운 오리 새끼(2) 22.05.05 103 1 12쪽
12 12화 미운 오리 새끼(1) 22.05.01 127 1 11쪽
11 11화 혼돈(2) 22.04.30 133 1 11쪽
10 10화 혼돈(1) 22.04.28 149 1 11쪽
9 9화 길드(3) 22.04.25 170 2 12쪽
8 8화 길드(2) 22.04.23 186 2 12쪽
7 7화 길드(1) 22.04.21 207 4 11쪽
6 6화 평화의 항구 22.04.18 240 4 11쪽
5 5화 갈림길에 선 두 남녀[수정] 22.04.17 257 4 12쪽
4 4화 의문의 남자[수정] 22.04.15 287 6 13쪽
3 3화 만남 그리고 새로운 시작(3)[수정] 22.04.11 325 6 11쪽
2 2화 만남 그리고 새로운 시작(2)[수정] 22.04.09 364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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