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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byss : 추락한 자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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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다킹
작품등록일 :
2022.04.05 17:26
최근연재일 :
2023.02.26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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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6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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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인연(1)

DUMMY

평화의 항구


안드릭스 대륙 정중앙에 위치한 아그리사의 고향 썬송에는 강도 호수도 바다도 없는 척박한 땅이었다.


길드에 가입한 후 항구를 따라 걸으며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 냄새를 맡는 것을 좋아했고 고향의 그리움을 달래는 동시에 적을 베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취미이기도 했다.


아직 그녀의 가족은 썬송에서 살고 있지만 어려워진 가정 형편 때문에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해야만 했다. 광부와 나무꾼, 어부도 했었고 경호원 일등 돈이 되는 일이라면 안 해본 일이 없었지만 그중 모험가의 일이 그녀의 적성에 제일 잘 맞았다.


물론 그보다 훨씬 좋아하는 게 있었는데 그건 오크의 삶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냥꾼이었다.


그녀는 높은 나무가 우거진 숲속에서 숲과 대화하고 늑대와 함께 냄새를 맡고 사냥감을 쫓아다니는 걸 더 좋아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사냥감을 쫓고 있으면 잡념이 사라지고 스트레스가 풀렸다. 썬송에는 그러한 숲이 없어 이제는 할 수 없었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우거진 숲이 있는 곳으로 가족들과 함께 이사 가고 싶었다.


그리운 고향을 떠나온 지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그리움을 느끼기에는 항구만 한 좋은 장소가 없었다.


바닷바람이 그녀의 몸을 강하게 밀어낼 때마다 빠르게 달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진급 시험도 통과했고 드디어 며칠 후면 그리운 고향에 도착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녀의 발걸음은 더욱 가볍고 빨라졌다.


한 걸음이라도 더 빨리 도달하기 위해 우선 탈것을 빌릴 수 있는 마구간에 이동하여 말들을 둘러보았다. 매끈하게 잘 빠진 말들을 바라보자 두근거렸다.


“어서 오세요. 손님 어디까지 가시나요?”


“썬송 경계 지역까지 갈 생각이다. 가격은 어떻게 되지?”


“기수와 함께 가면 55젠트이고, 혼자 타고 가시면 42젠트 입니다. 하지만 혼자 타고 가시다가 말에 문제라도 생긴다면 치료비가 청구된다는 거 알고 계시죠? 그리고 왕의 길 도로를 점령 중인 도적에게 지불 해야 할 통행료 또한 본인이 부담하셔야 합니다.”


아그리사는 가방에 손을 넣어 뒤적거리며 손으로 지폐와 동전을 세어보았다. 고향에 있는 가족들의 선물을 사고 남은 돈으로 무기 수리와 새로운 방어구를 구입해서 다른 곳에 쓸 여윳돈이 없었다.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마굿간을 나와 아그리사는 우체국으로 향했다. 우체국 입구에 있는 두루마리 함에는 모험가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많은 퀘스트가 있었다. 아침 일찍 항구로 나온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좋은 퀘스트를 남들보다 빨리 선점하기 위해서였다. 아그리사는 썬송이나 드래나스트 근방까지 가는 호위 퀘스트가 있기를 바랐다. 짐마차가 느리기는 해도 두 발로 걷는 것보단 마차를 타고 이동하며 돈도 벌 수 있어 일석이조였다.


두루마리 함은 지역별 나누어져 있었고, 두루마리 겉면 꼬리표에는 목표 임무가 적혀 있었다. 아그리사는 텅 빈 썬송 두루마리 함을 보고 실망감을 금치 못했다.


기껏 서둘러 나온 보람이 없었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아쉬운 대로 썬송에서 그나마 가까운 드래나스트나 멜브론지역 두루마리를 뒤져 보았지만, 호위 퀘스트는 보이지 않고, 죄다 몬스터들의 신체 부위를 얻어달라는 상인들의 퀘스트뿐이었다.


더 큰 실망감이 아그리사를 휘감았다. 가방을 매만지며 값을 치르고 말을 타고 가야 할지 고민하던 그때 멀리서 오크 선원들이 무리를 지어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들의 외형으로 보아 힘을 쓸 것처럼 보이기는 해도 전문적으로 전투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이는 없어 보였고, 그들의 손에는 양피지 두루마리가 들려 있었다.


경호원을 찾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오크라고 해서 무조건 썬송으로 가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표정은 밝았다. 분명 고향으로 갈 거라는 생각을 했다. 뒤로 살짝 물러나 두루마리를 든 오크의 손을 주시했고 경쟁자가 끼어들지 못하게 몸으로 막았다.


아그리사는 속으로 ‘제발 썬송에 두루마리를 넣어’라고 외쳤다. 두루마리를 든 오크 주위에 다른 모험가가 갑자기 끼어드는 바람에 어디에 넣었는지 보지 못했지만, 허리를 가볍게 숙이는 걸로 봐서는 썬송 같았다.

무리가 함을 떠나기를 기다렸다가 두루마리의 위치를 보았다.


“있다!”


아그리사는 다른 두루마리를 사람들이 가져가지 못하게 얼른 집어 꼬리표를 살펴보았다. 오랜 시간 바다 위를 항해한 두루마리는 얼룩덜룩해져 있었다.


지독스러운 악필이라 알아보는데 조금 힘들었지만, 다행히 아그리사가 그토록 바랬던 호위 퀘스트였다. 그것도 썬송 아그리사의 고향으로 향하는 퀘스트였다.


아그리사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밤잠을 설친 보람이 있었다. 두루마리를 펼쳐 시간과 장소를 확인했다. 시간을 적는란에는 ‘자유’라는 글씨가 적혀져 있었고, 장소는 2부두라고 적혀 있었다.


언제든 자신들을 경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온다면 출발하겠다는 뜻이었다. 아그리사는 곧장 두루마리를 가지고 왔던 오크 무리를 찾아 2부두로 향했다.


그들은 2부두가 아닌 가까운 식당 앞 테이블에 앉아 육즙이 뚝뚝 떨어지는 베이컨이 잔뜩 들어간 샌드위치와 갓 짜낸 산양 젖을 한 잔씩 사서 간단하게 여유로운 아침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아그리사는 어깨를 펴고 위풍당당하게 걸어가 그들 앞에 섰다. 선원은 샌드위치를 꼭 잡고 흘러내리는 소스를 핥으며 한입 베어 물기 위해 입을 벌린 채로 아그리사를 올려다보았다.


아마 선원들은 아그리사처럼 아름답고 날씬하며 탄탄한 근육을 가진 여성 오크를 오랜만에 보는 듯 그녀의 몸 이곳저곳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관찰했으며 감탄했다.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게 변한 그들은 넋을 잃고 아그리사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아그리사가 두루마리를 꺼내어 그들이 앉아있는 테이블 위에 올려두자 그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아그리사와 두루마리를 번갈아 보았다.


다른 오크들은 여전히 아그리사의 미모에 정신을 못 차렸지만, 그들 중 선장으로 보이는 한 오크는 기분 나쁠 정도로 한쪽 입꼬리를 뾰족하게 올리고는 비웃었다.


“이봐. 아가씨 왕의 관문을 지나가 본 적은 있는 거요? 말이 왕의 관문이지 그곳은 도적 떼가 득실거리는 협곡이오. 우린 긴 귀환의 시간을 함께 보낼 화끈한 여성분을 찾는 게 아니란 말이오. 그 정도는 알고는 있겠지?”


정말이지 머리에 우동사리만 가득 찬 남자 오크 전사들이나 선원이나 여성 오크를 얕잡아보는 건 똑같았다.


아그리사는 눈을 치켜뜨고 주머니 안에서 육각형 모양 테두리에 금빛으로 장식이 되어 있는 메달을 테이블 위에 쏟아부었다. 샌드위치를 내려놓고 소스가 묻은 손으로 메달을 집어 든 오크는 놀란 눈으로 메달을 문질러보며 메달 가운데 새겨진 피를 흘리는 단검 문장이 진짜인지 확인했다.


관문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그림자 칼날단 메달이었다. 메달은 도적단 정식 단원들에게만 주어졌고, 잡상인들에게 꽤 값진 물건이었다.


“부족한가?”


아그리사는 가방에서 그동안 관문에서 수집한 메달이 가득 든 또 다른 자루를 꺼내어 보였다. 항구를 떠나기 전에 잡상인에게 판매하려 모아둔 메달을 이렇게 쓸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아마 메달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아그리사를 계속 무시했을 터였다. 선원은 아그리사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헛기침하며 메달을 다시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두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많이 공손해졌다.


그의 얼굴에서 천천히 미소가 지어지더니 호탕하게 웃었다.


“합격! 좋소. 함께 갑시다. 선원들과 함께 짐마차를 끌고 올 테니 항구 입구에서 만납시다. 짐이 많아 좀 늦을지도 모르오. 그래도 정오 전까지는 도착 할거요. 늦지 마시오.”


“그쪽이나”


아그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원들은 센티 있는 여유 있는 아침 식사가 사라지자 아쉬운 듯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선장이 샌드위치와 음료를 손에 쥐고 자리에서 일어나 부두로 걸어가자 오만상을 찌푸리고 짜증을 내며 마지못해 선장을 따라갔다. 아그리사는 고향으로 가는 이동 편이 마련되자 그제야 마음이 유연해졌고, 선원들이 떠난 자리에 앉아 그들을 대신해 여유 있는 아침 식사를 했다.


아침을 먹고 곧장 메달을 판매했고 두둑해진 돈주머니를 주무르며 기쁜 마음으로 항구 입구로 걷던 아그리사의 얼굴에 다시 그림자가 드리웠다. 조금 전에 만났던 선원들의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한때는 동부 대륙의 중앙과 북부 지역을 지배했던 강인하고 용맹스러운 오크의 모습이 그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냥과 전투로 다져졌던 옛 오크들의 위상은 거대한 회색곰만큼이나 위협적이고 압도적이었지만, 희망과 용기를 잃은 지금 세대의 오크들은 인간들만큼이나 체격도 왜소해졌고 성격도 양처럼 온순해졌다.


아까 보았던 오크들에게도 근육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고, 그들을 지배하는 건 술로 인해 축 늘어나고 불룩해진 똥배뿐이었다. 마시고 있던 주스 맛이 씁쓸해졌다.


아그리사는 입안에 머금고 있던 주스를 뱉어내고 입을 닦았다.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단정하게 자른 노란 머리를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은빛 갑옷에 햇살이 반사되어 번쩍거렸고, 눈부셨다. 곱상한 얼굴에 키도 훤칠했다.


게다가 영웅급 장비로 온몸을 휘감고 있어 예사 인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 그는 아그리사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까 보았던 뚱땡이 오크 선원들과는 격이 달랐다.


“안녕하세요. 날씨가 참 좋네요.”


아그리사는 그를 바라보고 만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그리사는 훈남의 얼굴을 보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자신의 뺨을 후려치고 떡 벌어져 있었던 입을 다물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남자는 이미 아그리사를 지나 관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인사말이 목구멍에 막혔고 툭 떨어졌다.


“아... 안...”


그녀는 다시 무뚝뚝한 얼굴로 돌아와 차갑게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고 남자는 아그리사의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시원하고 상쾌한 향기만 남았다.


아그리사는 코를 벌렁거리며 향을 음미했다. 그에게서 태어나 처음으로 두근거림을 느꼈다. 쌀쌀맞게 인사에 대꾸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


“(바보 같아.)”


아그리사는 건물 사이로 사라진 그의 뒷모습이라도 더 보기 위해 달려가 수줍게 고개를 빼꼼 내밀어 위풍당당하게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하필 음료를 멍청하고 한심한 뚱보 선원들을 생각하다가 품위 없이 뱉어내는 그 순간에 훈남과 마주쳐 아그리사의 기분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아쉬웠지만 인연이라면 다시 한번 만날 거라는 생각으로 애써 자신을 위로했다. 창피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해가 중천에 떴는데 왜 안 오는 거야! 게으른 남자 오크는 이래서 오크들이 안돼.”


그때 언덕 너머로 삐거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저 멀리서 짐마차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지루함과 창피함에 욕지거리라도 내뱉을 뻔했지만 먼 길을 함께 가야 할 자들이기에 참았다.


앞 좌석에 두 명이 앉아있었고, 짐칸에도 마찬가지로 두 명의 오크가 앉아있었다. 마차를 끄는 두 마리의 말이 아그리사를 조금 지나치자 속도를 늦추더니 마차가 완전히 멈춰 섰다.


선장은 모자챙을 잡고 슬쩍 들어 올려 인사했다. 그러곤 옆자리에 앉아있는 오크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드라고. 뭐해. 어서 뒤쪽에 아가씨 자리 하나 만들어 드리지 않고.”


“아... 네! 이쪽으로 오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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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화 위기의 숲(3) 22.05.22 63 1 13쪽
22 22화 위기의 숲(2) 22.05.21 63 1 13쪽
21 21화 위기의 숲(1) 22.05.19 65 1 13쪽
20 20화 늙은 호랑이(2) 22.05.16 64 1 13쪽
19 19화 늙은 호랑이(1) 22.05.15 67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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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화 그룹결성!(1) 22.05.08 88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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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화 혼돈(2) 22.04.30 133 1 11쪽
10 10화 혼돈(1) 22.04.28 149 1 11쪽
9 9화 길드(3) 22.04.25 170 2 12쪽
8 8화 길드(2) 22.04.23 186 2 12쪽
7 7화 길드(1) 22.04.21 206 4 11쪽
6 6화 평화의 항구 22.04.18 240 4 11쪽
5 5화 갈림길에 선 두 남녀[수정] 22.04.17 257 4 12쪽
4 4화 의문의 남자[수정] 22.04.15 287 6 13쪽
3 3화 만남 그리고 새로운 시작(3)[수정] 22.04.11 325 6 11쪽
2 2화 만남 그리고 새로운 시작(2)[수정] 22.04.09 363 6 12쪽
1 1화 만남 그리고 새로운 시작(1)[수정] 22.04.08 563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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