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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신희님의 서재입니다.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장손신희
작품등록일 :
2020.04.07 05:55
최근연재일 :
2020.11.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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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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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9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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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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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대 소탕 (5)

DUMMY

피할 겨를도 없이 카르타가 휘두른 거검을 정면으로 맞은 펠릭스의 골렘은 멀쩡했다. 오히려 카르타의 거검이 퉁 튕겨 나갔다.


골렘 내부에 각인된 마법진 속 마력 회로의 흐름이 엉켰어도 외장갑에 두른 반탄강기는 온전했다. 마법진에 흐르는 마력은 마나석이 원천이지만 반탄강기를 유지하는 힘은 펠릭스 본인의 마나였기에 이러한 모순이 양립할 수 있었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카르타는 전율했다.


'뭐야? 피부를 누른 것처럼... 이런 게 있을 수 있나?'

'끄응! 제아무리 연습해도 실전만 못하구만.'


물속에서 다리를 움직이는 것처럼 골렘을 조종하는 감각이 묵직해졌다. 잘 만든 물건이라 부드럽게 움직였던 골렘은 단 한 번의 교환으로 곳곳이 파손됐다. 형상기억합금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자체적인 수복은 불가능하다.


펠릭스는 마나를 가속해 파열된 마법진의 회로를 억지로 이어붙였다. 관절이 어긋나며 같이 뒤틀어진 마법진을 계속 방치하다간 자칫 큰 화를 입을 수 있다.


그 시각, 카르타는 얼굴을 구기며 내부 부품을 점검했다. 반탄강기에 영향을 받은 탓에 마력이 출렁였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마나 제어권이 흔들려 조종이 어려워졌다.


"제법이군. 그럼 계속해볼까?"

"멀쩡한 척하기는...!"


먼저 움직인 쪽은 펠릭스. 무릎에서 올라오는 뻐근함을 무시하며 거리를 좁혀 공격을 가했다. 검이 아니라 주먹을 휘둘러 흉부를 때린다. 반탄강기를 두른 강철 주먹은 그 자체로 투석기가 던진 돌덩이처럼 무겁게 외장갑을 찌그러트렸다.


카르타는 조종실 전면부가 가라앉으며 시야의 절반이 망가졌다. 검을 들어 올려 막으려 했으나 마나회로가 흔들린 탓에 한 박자 늦어버려 방어에 실패했다.


뒤늦게 들어 올린 검으로 펠릭스의 골렘을 공격하려 했으나 불안정한 자세와 느릿한 동작 때문에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아 치명적인 일격을 주지는 못 했다. 그나마 마나 블레이드가 맺혀 있어 골렘 옆구리에 긴 상흔을 남겼지만, 내장갑까지 닿진 않은 얕은 공격이었다.


펠릭스는 상대방의 공격에 적당히 당해주면서 질 나쁜 희망을 선물했다. 펠릭스가 지휘관을 잡아두는 사이 뒤에서는 전열이 무너진 유격대가 차곡차곡 허물어지고 있었다.


'역시, 사로잡아야겠어.'


오슬레아의 골렘은 유격대를 수월하게 상대하고 있었다. 3세대나 차이 나는 하드웨어도 있지만, 3명씩 뭉쳐 유기적으로 공방을 주고받는 데에 비해 유격대는 철저한 개인주의였다. 개개인의 역량은 유격대가 분명 위였다. 만약 골렘의 성능이 비슷했다면 기습이 실패했을 것이다.


이 점이 카르타에겐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독불장군들을 어떻게든 통제하고 있었더만, 그 카리스마가 이 상황에서는 단점으로 작용했다. 지휘탑 하나를 무력화하자 전체가 무력해진 것이다.


"네가 없으니 이토록 편하군. 그동안 힘들었다고."

"크윽...!!"


펠릭스는 통신관으로 일방적인 대화를 시도했다. 카르타가 발악하며 펠릭스의 골렘에 상처를 하나씩 입히는 모습을 본 유격대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유격대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입신양명에 집착하는 개인주의자가 대부분이다. 장군을 구출해서 퇴각하면 그 자체만으로 공적이고, 장군을 버리고 도망치는 것 자체가 불명예다. 군국주의 분위기가 강한 마게트 왕국에서 적전 도주는 사형에 준하는 처벌을 받는다. 그나마 지휘자의 퇴각 명령 정도가 예외다.


그러므로 카르타가 어떻게든 버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이들은 단념하고 후퇴할 수 없는 신세다.


"다들 견딜 만 한가?"

- 옛! 남작님께서 힘써주신 덕분에 문제없습니다!

"다행이군. 기습에 주의하도록. 사전에 설명했던 대로 계속 시간을 끌겠다."


오슬레아의 기사들은 3인 1조로서 활동하기에 체력 온존이 쉬웠다. 그리고 엘드레드가 망치로서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며 유격대를 착실하게 줄였다. 네리카와 체스터는 엘드레드의 뒤를 따르며 경험을 쌓는 중이다.


유격대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봐야 익스퍼트 최상급이고, 마스터 상급인 엘드레드를 이길 수 있는 자는 없었다.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 유격대의 숫자는 50명 이하로 줄어들었다. 피해를 감수하며 수습한 반이 또다시 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숫자가 줄어든 것보다 진영이 완전히 파괴된 게 문제였다. 배틀메이지가 틈틈이 던진 마법이 주둔지를 완파한 것이다.


보급기지 역할이므로 이들이 무사히 후퇴해도 다시 활동할 기반이 사라진 상황.


'슬슬 끝을 내볼까.'


펠릭스는 상대편 지휘관이 지쳤다는 느낌도 들었고, 아군의 체력과 골렘의 기동 제한시간이 다가오자 전쟁을 마무리하기로 한다.


검에 마나 블레이드를 덮고 골렘의 두 팔을 날렸다. 지금까지 봐주고 있었다는 걸 증명하는 움직임이었다. 다급하게 뒤로 물러나려는 골렘의 가슴께에 주먹을 휘두르며 다리를 걸어 무게중심을 무너트려 넘어뜨렸다.


자빠진 골렘의 조종실에 검을 겨누며 통신관으로 외쳤다.


"항복해라! 순순히 항복한다면 귀족의 예우로 맞이하겠다!!"


초반 접전에서 파괴된 가슴 부위가 개방되지 않아 반만 열린 공간에서 카르타가 기어 나왔다. 온몸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입과 코, 귀에서 실혈을 흘리는 모습은 일견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허리에 맨 검을 풀어 바닥에 던지는 모습을 본 유격대는 즉시 등을 돌려 도주를 선택했다. 장군이 항복한 시점에서 도주는 '탈영'이 아니라 '전력온존'으로 판단하는 까닭이다.


"쫓지 말도록. 우리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이곳을 정비하라."

- 옛!!


펠릭스는 도주하는 유격대를 막지 않았다. 급습 후 이어진 장기간 전투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실력이 만만치 않을 거기도 하거니와, 이곳은 본토가 아니라 키펠 왕국령이다. 괜히 추격하여 익숙하지도 않은 지형에서 역습을 당하면 큰일이고, 유격대가 도주하며 피해를 일으킨다고 한들 오슬레아가 입는 게 아니다.


물론 아군의 피로 역시 적지 않았고, 포로를 수습해서 전과를 확보해야 장기적으로 이득이다.


'첫 공식 전투치고 괜찮은데...'


장군 생포, 동맹국 구호 및 방어, 기간트 골렘 150기 노획 또는 파괴. 소규모 교전이라고는 볼 수 없는 전과였다. 무지막지한 전과였으나, 소드마스터 상급의 전공이라고 생각하면 딱히 많아 보이지도 않았다.


펠릭스와 상급기사가 골렘에 탑승하여 위압감을 유지하는 사이 종자들이 포로를 수습한다. 배틀메이지와 통신 마법사는 공작성에 전과 및 탈영병의 규모를 알렸다.


대략적인 전후 처리를 끝내고서 본거지로 귀환한다. 만에 하나 급습당할 지도 모르므로 펠릭스는 계속 골렘에 탑승한 상태로 이동했다.



* * *



파프닐 공작령의 수도에 도착한 펠릭스는 곧장 본국에 연락했다.


- 계속 그곳에 남아주십시오.

"흠. 어째서지?"

- 현재 마게트 왕국 첩보부대가 대규모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남작님을 찾는 움직임이므로 상부에서는 이들의 움직임을 물색하는 걸 바라고 있습니다.

"아... 뭔지 알겠군."


오슬레아 정계 및 군부가 마게트 왕국의 첩보자산을 갈아버리고 싶다는 말이었다. 현재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펠릭스의 위치를 헷갈리도록 만들고 있으니, 진짜 펠릭스가 등장해선 안 된다는 의미로 요약할 수 있었다.


일단 전공은 보고했고, 상부의 의향이 그렇다고 하니 펠릭스는 순순히 수긍했다. 포로와 노획품의 처우를 질문했으나, 오슬레아는 기간트 골렘이 차고 넘치는 데다가 3세대 밑지는 물건이라 공들여 회수할 필요는 없었으므로 펠릭스가 마음대로 하라는 허가가 내려왔다.


마게트 왕국의 유격대 지휘관이 소드마스터라고 말하니 놀라긴 했지만, 마게트 왕국이 사석에 던진 소드마스터를 돌려받으려고 애쓰진 않을 테니 마음대로 하라는 우회적 답변을 받았다.


'귀찮게 됐구만···.'


이번에 회수한 마게트 왕국의 콜로벨-4 모델은 일반적으로 기사 계급에 하사하는 돌격용 기간트 골렘이다. 전면부는 중장갑이고, 후면부는 취약한 전형적인 전열 골렘. 소수는 다른 모델이지만, 그래 봐야 오슬레아에서 양산한 골렘보다 못한 성능이다.


카르타만 오슬레아에서 현역으로 쓰는 골렘과 비슷한 성능. 그러나 펠릭스가 완전히 박살 내 버려서 기술을 뽑아낼 수 없는 고철이 되어버렸다.


"......"

"왜 그러지?"

"남작께선... 호색한이시군요."

"...뭐?"


통신 마법사와 연락을 끝내고, 처치가 곤란해진 포로와 골렘을 놓고 상의하려고 부른 파프닐 소공작과의 만남. 용무를 전달하니 소공작은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폭탄선언을 꺼냈다.


꿀 바른 과자로 심심한 입을 다스리던 펠릭스는 말문이 막혀 한 박자 늦게 되물었다.


"이성이야 그렇다 쳐도 소년과 청년까지 대동하시니... 장소를 가려주시길 바랍니다. 아무리 사생활에 침묵한들 불만이 나올 겁니다."

"왜? 아니... 뭐?"


소공작은 삐질 거리는 표정으로 펠릭스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받은 펠릭스는 얼굴을 와락 구기며 씹듯이 말했다.


"뭘 상상한 건지 모르겠는데, 그런 관계가 아니다."

"...어린 소녀와 소년, 성숙한 여인과 청년을 대동하고 다니시면서?"

"아니라고."


펠릭스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의혹을 부정한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니, 그럴듯한 의문이었다. 펠릭스와 다른 사람의 관계는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는 관계였다.


가장 오래 같이 지낸 네리카만 하더라도 친구와 애인 사이인데, 셋은 어떤가.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볼 여지가 충분하고도 남았다.


더구나 동성애가 딱히 터부시되는 곳이 아니기도 하고, 실력주의가 만연해서 능력만 있으면 처첩을 거느려도 이상할 건 없다.


네 명 모두 외견은 충분히 평균 이상이다. 네리카는 주황색 단발이 인상적인 미인이고, 체스터도 성격 때문에 잔상처가 많아서 그렇지 연갈색 샤기컷이 인상적인 미남이다. 일레이자는 고동색 머리카락과 반짝거리는 푸른 눈이 특징인 건강미인. 엘드레드는 도도한 귀공자 소년이다.


'...어째 좀 의심받을 거 같기는 하다?'


일행의 외모를 생각하던 펠릭스가 식은땀을 흘리며 긴장한다. 지금까지 그런 시선을 받았단 말인가?


"...그래서 호색한이라고 말한 이유가?"

"포로로 잡은 지휘관도 미인이라... 처우를 얘기하시길래 취하시려나 보다 하고..."

"......"


펠릭스가 이마를 때렸다. 경쾌한 착 소리가 접견실에 울렸다.


심정을 이해한 엘드레드를 제외하면 그저 아끼는 인형에 지나지 않았다. 요즘에는 그런 시선으로 보지 않도록 노력하고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타인에게 원초적인 감정을 품은 적은 없었다.


이성적으로 판단을 내린 뒤의 생각 정도라면 몰라도.


"사실, 공작령의 세력가들이 남작 각하께 초대장을 보내지 않는 이유가 문란함 때문입니다."

"하아..."


펠릭스는 기어코 여러 가지 감정이 섞인 한숨을 내쉬고야 말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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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유격대 소탕 (3) 20.10.06 35 1 12쪽
65 유격대 소탕 (2) 20.10.05 3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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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귀환 (1) 20.09.03 5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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