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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신희님의 서재입니다.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장손신희
작품등록일 :
2020.04.07 05:55
최근연재일 :
2020.11.06 06:00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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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글자수 :
39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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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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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도굴과 도박 (1)

DUMMY

하즈킨 북단 유일의 대도시, 할리자노크.

펠릭스는 하즈킨 공작과 대면했다. 개척에 전념하느라 왕궁의 회의에도 불참하는 인물이었다.


"짐작했던 것보다 빠르군. 오는 길에 불편함은 없었나?"

"텔레포트로 왔는데 무슨 불편함이 있겠습니까."

"그럼 다행이군."


하즈킨 공작은 부드러운 분위기를 시종일관 유지하며 펠릭스에게 우호적인 인상을 남기려고 유도했다. 따뜻한 배려로 좋은 관계로 시작하려는 모양이지만, 어떤 속셈인지 뻔히 아는 펠릭스로서는 가당찮은 소리였다.

다만 하즈킨 공작과 굳이 대립각을 세울 생각이 없기도 하거니와 세력이 빈약하여 제대로 된 공작이라고 할 수 없는 인물에게 뭔가를 뜯어낼 것도 없으니 좋게 지내는 편이 장기적으로 이득이다.

펠릭스가 애피타이저로 나온 소금 과자를 음미하는데, 하즈킨 공작이 빠르게 본론을 꺼냈다.


"언제쯤 출발하고자 하는가?"

"급한 곳이 있으면 식사 끝나고 바로 가죠."

"으음."


공작은 껄끄러운 듯한 침음을 흘렸다. 엘프 특유의 고운 얼굴이 슬며시 구겨졌으나, 펠릭스는 개의치 않았다.

상대방이 깊게 고민하는 것 같자 펠릭스는 자신의 의도를 풀어서 설명했다.


"저는 이곳에 파견된 남작에 불과합니다, 공작님. 소드마스터라고 할지라도 저는 일개 기사에 불과하니, 영주이신 공작님께서 지휘하셔야 합니다. 제가 이곳의 무엇을 알겠습니까."


북쪽에서 개척지의 대략적인 개괄은 들을 수 있었으나, 직접 통치하는 영주와 비할 수는 없다. 현장 정보는 현장에서 통용되고, 어느 현장으로 갈지는 보낼 공작의 마음에 달렸다.

펠릭스의 단호한 요구를 들은 공작은 분위기가 한결 풀어졌다. 펠릭스는 공작이 안도하는 모습을 보며 시종이 내온 생선구이를 차근차근 공략했다.


'이게 고등어던가, 전갱이던가. 열대지방이면 열대어가 나와야 하는데. 하, 양판소가 그렇지 뭐.'


펠릭스는 지구에 있었을 당시 농협의 경쟁자(?)인 수협을 종종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할머니를 따라서 협동조합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견학한 쪽에 가까웠으나, '그런 게 있더라'하는 정도로 식견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지역구 위주로 돌아가는 협동조합 특성상 이런저런 인맥과 협잡과 돈놀이가 있었다는 걸 안 뒤로는 실력을 키우려고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했었다.


'옛날 일인데. 쯧, 정신 차려야지.'


펠릭스가 정신을 다잡으며 뼈를 바르는 사이 공작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어려운 일이 여러 가지 산적했네. 하나같이 오지로 들어가야 하는 일이라, 조심스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군."

"크게 신경 쓰지 마십시오. 어려운 일일수록 제 몫을 하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으니까요."


공작은 소드마스터 상급을 본인의 뜻대로 좌우하는 행위를 꺼리고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 하즈킨 공작위는 최근에 새로 만들어진 작위였다.

펠릭스는 거래를 위하여 자신의 몫을 수행하러 온 것에 불과하지만, 하즈킨 공작은 소드마스터 상급을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막대한 빚이 생기는 신흥 가문이다. 펠릭스를 조심스럽게 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으음···."


이 점을 무겁게 놓고 계산한다면 하즈킨 공작은 펠릭스에게 지시 하나를 내릴 때마다 왕국과 공작들에게 막중한 빚이 쌓이는 셈이었다.

이곳에서는 깊은 생각 없이 정치적 빚을 갚으려던 펠릭스로서는 위에서 할 일을 시켜주면 그걸 차근차근 수행하려 했는데 공작이 미적거리니 답답했다. 다만 머뭇거림이나 주저함보다는 꺼리는 분위기라 어떤 상황인지는 파악했다. 그래서 더 문제였다.


'어떤 식으로 개척하는지 방향도 모르겠고. 나 혼자 돌아다니려니 둘이 미덥지 못하고. 어쩐다.'


펠릭스는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대처할 자신감이 있었다. 암습이나 독이 발생해도 주신 샤메드의 축복을 받았으므로 즉각 반응할 수 있지만, 네리카와 체스터는 그렇지 않았다. 조그만 실수나 방심으로 둘을 잃어버릴 순 없으므로 단독행동은 금물이다.

식사하는 내내 하즈킨 공작은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공작령 남쪽의 미개척 지대의 난처함이 주된 내용이었다. 마을이 불타는 탓에 열정적인 개척민은 찾아보기 힘들고, 그나마 형성된 도시를 떠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그나마 섬 북쪽은 강이 있는 평야니까 개척도 편하고 농사도 괜찮으니까, 굳이 밀림에 안 들어가고 만족하겠다는 내용을 참 어렵게 말하네. 아니, 귀족이니까 이 정도가 적당한가? 뭐···, 맞는 말이긴 하지.'


오슬레아 대왕국 남쪽의 개척지는 그냥 땅이 아니었다. 숲이었다. 본토의 숲 대부분이 선박용 목재로 활용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용도가 확실히 정해진 이차림(二次林)이라 단번에 선박용 목재를 단기간에 대량으로 만들기 위해선 꼭 섬 남쪽의 원시림 목재가 필요했다.

하즈킨 공작은 야만인을 핑계로 개척을 거부하며 이미 개발한 농토를 통치하려 했고, 그 야만인 핑계를 못 대도록 펠릭스가 파견된 상황.


'이렇게 되면 내가 주도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건데···. 하, 귀찮게.'


펠릭스가 몇 번 넌지시 떠보기도 했지만, 하즈킨 공작은 일절 소망을 꺼내지 않았다. 농지에서 향신료만 팔아도 영지 경영에 문제는 없었고, 식량은 어업으로 충당하면 그만이었던 까닭이다. 위험을 무릅쓰며 휘하 사작을 사지로 몰아넣을 순 없었다.

공작의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기에 펠릭스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적당한 때를 노리기로 했다. 오슬레아의 지배층이 원하는데 하즈킨 공작이라고 언제까지나 뻗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에겐 펠릭스를 빨리 마게트 전선으로 재배치하고 싶을 테니, 공작을 압박하리라. 아니, 어쩌면 이미 압박을 넣었을 수도 있다.

후식으로 나온 바나나를 먹으며 펠릭스는 도움을 기다리기로 하였다.


* * * *


"어디에 있었냐?"

"노레이드의 신전이요. 어부와 파도의 신입니다."

"굳이 찾아간 이유는?"

"돈 좀 꾸러···. 헤헤."


네리카는 배정된 숙소에서 얌전히 기다렸는데, 체스터의 행적이 묘연하자 할리자노크를 들쑤신 끝에 중심지 근처 신전에서 발견되었다. 제 버릇 못 버렸다고 여겨 빈민가를 들렀던 펠릭스의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가버렸다.

어부와 파도의 신, 노레이드 신전에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오중신(五重神)인 운명의 신을 따르는 몽크는 다른 신도의 경건함을 확인할 자격이 있었다.

물론 체스터는 그런 순수한 이유로 방문한 게 아니라 '헌금'을 받으러 간 거라 문제가 되었지만.


"또 단독행동하다간 곱게 안 끝난다."

"명심하겠습니다. 헤헤."


펠릭스가 손짓하자 병사들이 줄을 내렸다. 발목이 밧줄로 꽁꽁 묶여 거꾸로 매달렸다가 풀려났다.

체스터가 신전에서 수금한 돈은 자그마치 400골드. 보통 농민은 1골드는커녕 1실버도 만지기 어렵다는 점을 생각하면 개척지의 신전에서 너무 과하게 뜯었다.

바닥에 내려와 발목에 묶인 밧줄을 풀던 체스터를 내려보는 펠릭스. 등 뒤에 네레이드의 주교가 다가왔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각하."

"별거 아니었네."


체스터의 행적을 알려준 인물이었다. 삥을 뜯기는데 누가 가만히 있겠는가.

펠릭스는 주교를 흘겨보는 체스터의 턱에 발로 찼다.


"작작해라. 손버릇 안 버리면 다음에는 손목을 잘라버리겠어."

"끙! 이런 곳에서 즐기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극장이나 노름판도 없는 곳에선 술이 최곤데···."

"다 들린다."


체스터의 구시렁거림을 들은 펠릭스가 일갈했다. 할 일이 없으면 명상으로 정신적 수양으로 마력을 가다듬는데 체스터는 계속 딴 길로 샜다. 스승이라는 인물이 왜 이렇게 쉽게 포기했는지, 그리고 폭력을 휘둘렀는지 뼈저리게 알 정도로 천덕꾸러기였다.

본인의 운명을 부정하며 종횡무진하면서 정작 주위 사람의 말도 안 들으니 갑갑했다.


'괜히 거뒀나···. 아, 고민된다.'


교육과 훈계에 필요한 요소는 권위다. 기본적으로는 지성과 지혜지만, 폭력이 대체할 수 있다.

그런데 체스터는 지력과 무력 모두 반항했다. 자신을 얽매는 모든 요소에 저항하는 탓에 옆에 없으면 뭔가 사고를 쳤다.


'이게 그 히피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골머리를 앓는 펠릭스에게 주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도와주신 점에 답례를 드리고 싶습니다. 언제 한 번 방문해주십시오."

"응? 아, 그러리다."


펠릭스는 별거 아니라 여기며 노레이드 주교의 부탁을 넘겼다. 지금 고민해야 하는 건 체스터의 교정이었지, 주교의 답례가 아니었다.

앞날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치안대장이 펠릭스에게 다가왔다. 주교가 몇 걸음 뒤로 멀어졌다.


"남작님. 어떻게 할까요."

"뭐가?"

"감옥을 바라신다면 개방하겠습니다."

"아아. 아니야. 쟤 몽크라 감옥으로 못 가둬."


펠릭스가 얼굴을 찡그린 채로 가만히 서 있자 치안대장이 체스터에게 방법을 제안했다. 하지만 썩어도 몽크라서 철창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뜯어버리는 괴력을 발휘할 수 있어 감금은 근본적인 벌이 될 수 없었다. 몽크 특유의 회복력 덕분에 턱을 걷어차며 이빨이 하나 날아갔지만, 어느새 원상 복구됐다.

이 정도로 신앙심이 없으면 신성력을 사용할 수 없을 만한 데도 아무렇지 않게 힘을 빌려주니 신기했다.


'나를 만났으니 허용하는 건지···. 알 수가 없네. 누가 시원하게 설명해줬으면 좋겠는데.'


멀뚱멀뚱하게 기다리는 체스터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며 영주성 안으로 돌아갔다. 치안대장에겐 가볍게 고개를 까딱여 예의를 보였다.

네리카는 체스터를 슬쩍 흘겨보다가 펠릭스를 따라 돌아갔다. 체스터는 입술을 삐쭉 내밀어 투덜투덜 구시렁거리며 펠릭스를 따라 이동했다.

노레이드 주교는 세 명을 바라보다가 작게 기도문을 외우며 신전으로 돌아갔다.


* * * *


보름하고도 나흘 뒤. 할리자노크 항구.


"공작님께서 각하를 저녁 만찬에 초대하셨습니다."

"지겹던 차였는데 잘됐군."


펠릭스는 네리카에게 마나 제어와 수학을, 체스터에게 기합과 국어를 가르치다가 공작의 부름을 받았다. 할리자노크에 불온한 분위기가 깔리지 않은 거로 보아 도시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었다.

그럼 나오는 결과는 공작 혹은 공작가에 관련 있는 일뿐.


"무슨 일입니까?"

"그간 잘 지냈는가. 이런 곳에서 남작이 잘 지낼지 모르겠어."

"먹고, 자고. 불편할 일은 없었습니다."


정말 제대로 된 위기가 아니라 억지로 활용해야 하니 펠릭스가 스스로 활동을 부정하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눈치를 챈 펠릭스는 긍정도 부정도 안 하고 중립적인 대답만 되풀이하며 공작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만찬이 끝나고 후식으로 입가심하는 시간이 되어서야 용건이 나왔다.


"섬 동쪽 끝 곶에 요새를 만든 부족이 있네."

"요새를 만들 정도로 규모가 크면 골렘이나 부양선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습니까."

"중간에 밀림을 헤쳐나가야 해서 육군을 대규모로 동원하기 힘드네. 바다로 접근하려니 절벽 위에 축성한지라 상륙할 장소도 없지. 부양선으로 강습하자니 곶이 고지대라 사각을 찾을 수 없네."

"흠."


육군, 해군, 공군. 셋 모두 동원할 수 없는 요새. 군대를 투입할 수 없는 험지는 판타지의 모험심을 자극하는 곳이었다. 마치 던전 혹은 사냥터 아닌가.

펠릭스는 흥미가 생겨서 허리를 살짝 앞으로 기울여 이야기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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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유격대 소탕 (3) 20.10.06 36 1 12쪽
65 유격대 소탕 (2) 20.10.05 3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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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굴과 도박 (1) 20.07.27 6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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