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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신희님의 서재입니다.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장손신희
작품등록일 :
2020.04.07 05:55
최근연재일 :
2020.11.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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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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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9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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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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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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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개척지를 향해 (2)

DUMMY

"환영합니다, 남작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절 따라와 주십시오, 모자람 없이 모시겠습니다."

'청산유수로군.'


텔레포트 게이트에서 대기하던 인물 중 한 명이 파리처럼 굽신거리며 저자세로 굴었다. 게이트 없이 임시 마법진으로 이동한 탓에 비틀거리는 두 명을 어깨너머로 본 펠릭스의 눈치를 알아챈 대표는 하인에게 턱짓으로 부축을 명령했다.

그러한 정중하게 안내받아 도착한 곳은 작은 성. 하즈킨 공작령의 주요 거점이었다. 개척에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거창한 성을 세우지 않고 그저 최소한의 권위를 나타낼 정도면 되는 규모로 만들었다는 설명을 들으며 만찬장에 들어선 펠릭스.

안에는 미리 대기하고 있었던 것인지, 상당한 인파가 몰려 있었다.


"오오. 찾아와주셔서 영광입니다. 먼 길 오셨을 터인데, 가볍게 즐겨주십시오. 방을 준비해놓겠습니다."

"저 두 명은 내 수행원이니, 먼저 쉴 수 있게 해주게."

"알겠습니다, 남작님."


안내를 맡았던 인물은 그대로 네리카와 체스터를 데리고 성 옆의 작은 저택으로 데려갔다. 성 대신 저택이 여럿 뭉쳐서 영주의 생활공간으로 쓰이는 모양새였다. 성벽이 없고 좀 높은 돌담 정도가 안팎의 경계를 알려주었다.

정원에 잘 차려진 만찬은 카난리아프와 비교해 약간 처지긴 했어도 부족함은 없었다. 화려한 조각상이나 예술품이 전시되어 눈까지 즐겁게 해주는 건 아니었으나, 카난리아프의 사치가 유별났던 것이지 이 정도가 '만찬'인 건 맞았다.

펠릭스는 곁에 다가와 꼬리를 흔드는듯한 사람들과 적당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다를 한 번 더 건너야 한다?"

"그렇습니다. 다만 게이트로 넘어가실 터이니 이번처럼 두 수행원이 괴로울 일은 없을 겁니다."

"이번에 오신 곳은 임시 텔레포트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넓은 공간을 감당하도록 설계된 게이트입니다. 안정성이 낮은 탓에 마나의 축복을 받아도 성취가 높지 않으면 어지러움을 간단히 어지러워지지요."

"그래서 경비가 덜 삼엄했군."


수도나 대도시의 텔레포트 게이트는 망루까지 세워 화살을 쏠 수 있는 태세를 갖췄지만, 이곳의 텔레포트 게이트 경비는 꽤 헐거웠다. 개방된 형태이기도 하거니와 바리케이드도 없이 방패를 세워 엄폐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익스퍼트 중급이나 3서클 이상이 되어야 텔레포트로 인한 충격에서 견딜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사용하지 않으나, 장거리에서 일방향 텔레포트를 하려면 이런 게이트가 필요하다는 설명도 들었다.


'던지는 힘과 받는 힘이 별개라면, 어지러울 만하지. 롤러코스터만큼은 아니었다만.'


이러한 현기증은 현대에서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는 감각이었다. 놀이공원에서 즐길 수 있는 스릴 계통의 놀이기구와 유사했다. 차이점이라고는 정말 공간이 뒤바뀐다는 점과 일순간에 몰아서 찾아온다는 점. 현실 부조화와 울렁이는 감각의 합작은 아무나 버틸 수 있는 게 아니다.

펠릭스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뜸을 들였다. 앞으로 자신이 어디에 배치될지 궁금했으므로 그 부분을 질문했다.


"공작령 남쪽의 광활한 미개척지가 있습니다. 일단 달라프라고 부르고 있지요."

"거대한 섬의 북쪽은 다 확보했다면서 남쪽은 개척을 못 하는 이유가 뭐지?"

"원주민이 있습니다. 마법사의 말로는 마왕군을 피해 바다를 건넜다가 그대로 문화를 망각한 고대인의 후손이랍니다."

"아주 먼 친척이라는 거군. 근데?"

"원시인이라고는 하지만, 무기를 그대로 보존한 탓에···. 보통 기사나 마법사로는 상대가 안 됩니다. 피해만 늘어나는 탓에 함부로 남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양판소 소재 중 하나군.'


고대 문명의 생존자, 전형적으로 진부한 소재 중 하나였다. 주인공은 그런 곳에서 고대의 우월한 장비를 획득하기 마련.

펠릭스는 만족스러운 속내를 숨기고 재차 질문을 던졌다.


"기간트 골렘으로도 몰아내기 어렵던가?"

"예. 섬 북쪽은 평야가 많아 쉽게 이길 수 있었으나,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숲과 바위 언덕이 많아져 골렘이 기동하기 어렵습니다. 부양선을 동원한 정찰 정도를 제외하면,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던가?"


유창하게 대답하던 자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들은 소드마스터 상급을 환영하는 만찬장에 참석할 수 있는 신분의 인물들. 위험천만한 현장의 실태를 모르는 자들이었다. 보고서로만, 또는 보고로만 건네 듣기에 정보가 편중된 상태였다.

결국 펠릭스가 눈썹을 찌푸리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뒤에야 인파 뒤쪽에서 조용히 술과 음식을 맛보던 자들이 나타났다. 한눈에 사작임을 알 수 있는 외견이었다. 곳곳에 흉터와 거친 피부가 독보적이라, 화려한 만찬장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니 일부러 구석에 치워둔 이들이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란소스 남작님."

"그래. 현장에 있다가 퇴역한 마법사라고?"

"예. 제가 아는 건 뭐든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뒷전에 있었던 이들이라 미덥지 않았지만, 그래도 현장에서 구르던 자라고 하니 질문을 건네보았다.


"흐음, 그래. 남쪽의···, 고대문명의 생존자들은 어떻게 싸움을 걸지? 마법으로 기습하나, 화살로 암습하나?"

"야만인들은 독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원리를 알 수 없는 주술로 마법진을 무력화하기 때문에 스크롤도 무용지물입니다. 접근해서 싸우면 독을 대비하느라 수비적으로 싸워야 하고, 떨어져서 싸우면 알 수 없는 주술로 진형을 헤집습니다. 밀집대형이 흐트러지면 독 바른 무기를 들고 난입해오기에, 상대하기 무척 까다롭습니다."

"지형을 잘 살리기도 하겠군. 군사적 재능이 뛰어난 거로 보아 부족끼리 자주 싸우는 모양이지?"

"오···. 정확합니다. 놀라운 식견이십니다. 오슬레아가 하즈킨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부족 간 항쟁으로 약화한 덕분이기도 합니다. 골렘과 부양선으로 전력에서 월등하기도 했지만, 그들이 스스로 싸우던 덕분도 있습니다."


펠릭스의 지적에 퇴역한 마법사는 고개를 숙이며 전황을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부족으로 나뉘어 싸우고 있다는 건 흔한 일이었다.


'섬이 크기는 하지만, 인구가 불어날수록 한정된 자원을 놓고 싸우게 되는 건 필연적이지. 열대 기후니까 자연이 지나치게 풍요로워서 독을 품은 생물도 많을 거고. 그럼 뻔한 일이야.'


열대 지방에 큰 국가가 나타날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밀림과 늪을 개척하기보다는 옆 마을을 약탈해서 기존의 생활터전을 빼앗는 게 더 편하고 간단한 까닭이다.

펠릭스는 이 점을 짚었고 마법사는 수긍했다. 그리고 이런 개척 단계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기도 했다.


"괜히 건드려서 부족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싶진 않고···. 대규모로 토벌군을 조직하기엔 수익성이 낮고···. 괜히 내가 필요한 게 아니었군그래."

"송구합니다. 저희의 능력이 부족해서 남작님을 번거롭게 했습니다."

"아니. 그대들 잘못은 아니다. 고대 문명의 힘을 가진 부족민을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


귀족들은 분위기가 그나마 부드럽게 풀리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몇몇은 으쓱하며 무리와 분명히 다른 반응을 보였다. 저들이 퇴역 군인을 부르자고 주장한 자들이다.

펠릭스는 그걸 알아차려 그들을 곁에 두어 술잔을 나누었다. 능력 있는 자를 총애하는 건 당연한 일.


"독을 쓴다고 했지. 해독은 되나?"

"물약을 사용하면 가능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근육을 뒤트는 독이라 혼자 대처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사망은?"

"독이 스며든 부위를 중심으로 몸이 비틀려 최종적으로 반나절이면 사망에 이릅니다. 초기에는 해독을 하면 후유증 없이 낫지만, 근육이 과하게 쪼그라드는 탓에 끊어지기도 하고 뼈를 부러트리기도 해서 중기가 되면 후유증이 남습니다."

"신속하게 해독해야 한다는 거군."


야만인을 어떻게 상대하는지, 야만인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야만인과 어떤 거래가 오갔는지. 개척을 시작하고 어느 정도의 진척이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하즈킨 공작령 최북단의 큰 섬은 예전부터 활용했던 곳이라 상당히 개발된 상태고, 하즈킨 공작령 본토는 낙후된 곳이라고 말했다. 본격적으로 개척한 지 겨우 5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석조 건물은 드물고 대부분 목조라 우기가 되면 썩은 내가 진동을 한다고 질색했다.

생활환경이 좋지 않은 까닭에 자발적으로 참가하는 자가 적어 범죄자나 빚에 시달리다가 노예로 전락한 사람이 대부분이라 반항이 심해 사작이 없으면 노동도 시원찮다고 말했다. 사탕수수와 향신료 등 상업작물을 재배해야 하는데 이들의 비협조적 태도가 부진한 개척의 이유라고 주장했다.

펠릭스는 오리고기를 즐기며 이들의 불평과 불만에 적당히 동조했다. 얻는 정보가 상당하니 굳이 말릴 필요가 없는 까닭이다.


'카리브와 호주 개척, 대서양 삼각무역을 적당히 섞은 분위기네. 한국에서 개척이라고 하면 이거 이상이 수능에 나오진 않지.'


한국의 정규 교육과정에서 개척이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나뉜다. 무주공산에 알 박는 개척과 원주민을 내쫓고 새집 살림을 차리는 개척. 이런 방식만 떠오르는 건 미국과 관련이 깊은 탓이다.

세계사의 대항해시대와 맞물려 아메리카 대륙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인디언을 몰아내는 방식이 깊게 머리에 각인되고 그걸로 끝. 그리고 서부개척시대처럼 광활한 땅을 차근차근 지배하는 개념도 배운다. 그러니 한국의 양판소에서 등장하는 개척이라는 개념은 필연적으로 식민지와 연결되기 마련.

일본제국에 식민지로서 수탈당해본 역사가 있기에 개척과 식민지의 연결고리는 늘 어두운 소재에 속한다. 사람이 없는 신대륙을 개척하는 방향을 선택할 수도 있으나 위기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가 없어 게임이면 몰라도 소설로는 접하기 어렵다. 그래서 인간 아닌 종족을 내세워 진행하기도 하니, 결국 눈 가리고 아웅이다.


'예상되는 분위기로 보자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대충 감은 잡히는군.'


양판소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는 하지만, 창작물이 아니라 현실로 벌어지므로 어느 정도는 양판소 기준에서 벗어나는 부분도 있었다. 개연성을 맞추려는 최소한의 노력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펠릭스는 즐겁게 받아들이기로 했으나, 예상하지 못한 설정으로 뒤통수를 맞는 것만은 사양하고 싶었다.


"즐거웠네. 나중에 이곳을 들린다면 찾아가지."

"가문의 영광입니다."

"뭘 가문까지야."


식사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사교를 위한 장소였으므로 계속 이야기를 하며 간식 먹듯이 갈증과 요기를 채우는 것에 불과했으나 몇 시간 이어지면 배가 한계에 도달하기 마련. 밤이 깊어지자 펠릭스는 적당한 때에 만찬을 끝냈다.

현역으로 굴렀던 사작과 그들을 초대한 귀족을 중심으로 교류하던 만찬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중요한 정보도 얻었고, 더 있어 봐야 무의미한 교류만 늘어나니 손해를 보기 전에 잽싸게 튀었다.


'그나저나···. 역시 마법사가 필요해. 마법적 지식이 나오니까 정신을 못 차리겠네.'


현장 담당으로 발언권을 쥔 인물이 퇴역한 마법사라서 가끔 마법지식이 튀어나왔다. 재치로 넘기거나 넌센스로 답했지만, 근본적인 토의는 불가능했다. 가정교사였던 함셰르에게 마법학 입문과 상식 정도는 배웠으나 전공 지식은 배우지 못했다.

일반적인 회화를 하는데 갑자기 마법 관련 지식이 툭 튀어나오면 옆에서 조언해줄 사람이 절실했다. 지금이야 포괄적인 의미를 담아 두루뭉술하게 넘겼지만, 언제까지 구렁이 담 넘듯 회피할 수는 없는 노릇.


'근데 마법사는 좀처럼 구하기 어렵고, 다루기도 어렵단 말이지···.'


고민은 밤과 함께 깊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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