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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신희님의 서재입니다.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장손신희
작품등록일 :
2020.04.07 05:55
최근연재일 :
2020.11.06 06:00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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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9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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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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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지하묘지미궁 베린 (2)

DUMMY

펠릭스는 부양선으로 베린 근처에 도착했다. 봉인을 유지하는 사제와 마법사에게 보급할 물자와 함께 이동해야 했으므로 이동하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됐다.

땅으로 내려온 펠릭스는 이상야릇한 기운이 발바닥을 통해 느껴지자 눈썹을 찡그렸다.


"왜 그러십니까?"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져서."


공작이 붙인 길잡이는 펠릭스가 한쪽 무릎을 꿇고 흙을 만지작거리자 의문을 드러냈다.

흙을 만지작거리던 펠릭스는 아래로 마나를 흘려 처음 느껴보는 기운을 분석해 보았다. 신성력과 정반대의 마력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게 마기인가? 어디···.'


마나를 신성력으로 가공해 흘려보자 철이 철을 친 것처럼 견고한 물리력이 느껴졌다. 펠릭스가 불어넣은 신성력이 워낙 적은 양이라 던전의 마기를 이기지 못하고 금세 사그라들었지만 말이다.

어떤 구조인지 파악한 펠릭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충 알겠군. 앞장서게. 가지."

"옛."


길잡이는 보급수송대를 이끌고 거점으로 향했다. 짐꾼만으로 구성된 수송대에서 유일하게 펠릭스의 파티만 말에 올라 이동할 수 있었다. 일레이자는 말을 못 타서 네리카와 같이 탔지만.

말 위에서 주위를 살펴보니 전형적인 열대우림이 보였다. 티올 요새는 바닷가였고, 할리자노크는 개발된 지역이라 딱히 열대지방이라는 실감이 없었는데 이곳은 TV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넝쿨과 높게 솟은 거목들.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고꾸라진 나무도 가끔 보였다.


'퀴퀴한 냄새가 흠이군.'


풀 내음과 뒤섞인 악취가 후각을 괴롭혔다. 나무가 썩으면서 풍기는 것도 악취지만, 독을 품은 생물 특유의 고얀 냄새가 더 문제였다.

1마일 조금 더 넘는 거리를 이동하니 진영이 보였다. 밀림 사이에 난 유일한 길이라 잘못 이동할 일은 없었으나 중간중간 맹수나 고블린이 튀어나온 탓에 퇴치하느라 지체되었다.


"에이, 귀찮게. 더 가까이 착륙시켜주지."

"마기 때문에 부양 마법진에 이상이 생긴다고 사전에 설명했잖나."

"아, 그랬죠."


고블린의 머리를 깨트리고 튄 뇌수가 묻은 손을 탈탈 털며 체스터가 불평했다. 진영에서 1마일 넘는 거리에 착륙한 이유는 마법진 문제 때문이었다.

기간트 골렘은 탑승자의 마력이 계속 주입되므로 이물질이 조금씩 끼어도 강행할 수 있지만, 하늘을 나는 부양선은 그럴 수 없었다. 까딱하다가 뒤집히거나 추락할 수도 있는 까닭이다.

무수한 마법진으로 움직이는 하이테크의 결정체가 잠깐 마기에 노출된다고 추락하지는 않지만, 굳이 잦은 정비를 감수할 필요는 없다는 이유로 거리가 좀 있는 장소에 주기장(駐機場)을 만들었다.


"곧 도착합니다."


고작 1마일 남짓한 거리였지만, 중간중간 지체된 탓에 거점에 도착한 건 2시간이나 걸렸다.

펠릭스는 말 위에서 신성력과 마기를 동시에 다루는 등 다양하게 연습하느라 지루하진 않았다.


'둘 다 마나로 만들 수 있어. 마력과는 또 다른 힘이네.'


마력은 기사와 마법사가 사용하는 힘이다. 마나 그 자체를 압축한 형태라 그나마 가장 순수한 힘이었다.

신성력은 사제가 사용하는 힘이지만, 마력과의 차이는 신력이 섞인 힘이라는 점. 사제가 신앙하는 신의 성격이 반영된 결과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반면 마기는 힘(力)으로서 온전히 자립하지 못했다. 마나가 물이고 마력과 신성력이 얼음이라면, 마기는 기체였다. 지극히 불안정하여 홀로 존립할 수 없는 힘.


'이걸 어떻게 다루는지 알아내야겠군.'


진영에 들어선 순간부터 펠릭스는 힘을 거두었다. 뒤에서 체스터가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건 모른 채로.


* * *


"마나를 깨닫지 못한 일반인은 여기에 남기시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걱정은 고맙지만, 내게 다 방법이 있으니 접어도 좋네."


지하묘지미궁 베린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가려는 일레이자를 보며 펠릭스에게 주의를 건넨 길잡이와의 대화.

펠릭스는 마기를 분석해서 일레이자의 몸속에 마나 덩어리를 주입해놨다. 마기를 흡수하는 성질로 형성했으므로 어지간한 마기에 노출되어도 좀비로 전락하는 일은 없다.

길잡이는 펠릭스의 당당한 말에 겸연쩍은 듯 뒤통수를 긁다가 몸을 돌렸다. 골칫거리였던 티올 요새를 하루 만에 정벌한 소드마스터라고 공작에게 당부를 받은 까닭이다.


"정말 괜찮을까요?"

"그래. 조처해놨다."


마기 역시 마나의 변형에 불과했다. 마기가 넘실거리는 장소라면 마나로 전환해 받아들일 수 있는 펠릭스였기에, 일레이자의 몸에 불어넣은 순수한 마나가 전부 소진된다 싶으면 다시 불어넣으면 된다.


'그나저나···.'


하즈킨 공작은 펠릭스가 단번에 베린을 타파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파티원도 있는 데다가 일정 깊이에 도달하면 아예 구조를 파악하지 못한 탓에 시간을 들여 탐사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유골 수십만 구가 매몰되어 형성된 지하묘지는 그 자체로 문제였다. 주위에 도시 유적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여러 마을에서 시신을 모은 흔적도 없었다. 완전히 독립적인 곳이라는 증거만 출토되었다.

시신을 유기한 곳이라고 하기에는 정중하게 차곡차곡 쌓아 흙을 덮어 매장하였으므로 가능성이 작다.


'사체만 묻을 거였으면 미궁으로 만들지도 않았을 거고.'


바닥과 천장은 흙으로 만들었지만, 벽은 대부분 뼈였다. 시체가 썩느라 흙에 빈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흔적이 없다면 누군가가 채워 넣었다는 뜻.

보통은 비가 아래로 스며들면서 해결해 주지만, 그 경우 흙이 아래로 흘러내렸다는 가정이므로 사람이 돌아다닐 통로도 없어야 했다.


'언데드가 보수와 복구를 한다는 내용은 없으니 고민이군.'


미궁 자체가 생명체라서 벽이 계속 바뀐다거나 하는 설정일 수도 있었다.

펠릭스와 셋은 길잡이를 따라 이동했다 20마일 넘게 이동해야 하므로 중간중간 휴식도 필요했다. 펠릭스는 살갗에 느껴지는 마기를 흡수하며 주위의 부담을 덜었다.

길잡이는 언데드 곤충을 퇴치하는 아티팩트가 거의 작동하지 않아 의아해했다. 언데드 곤충은 생명력 크기가 작아 오래 존립하지 못 하는 대신 작고 날렵하여 지극히 위험했다.


'소드마스터니까 알아서 했겠지···.'


길잡이는 대충 흘려넘기며 입구로 향했다.

도착한 시간은 당일 해가 저문 직후. 펠릭스가 독촉한 것도 있고, 마나를 품은 네리카와 일레이자의 피로가 많이 쌓이지 않은 덕분이었다.


"좀···, 더럽군."

"봉인 못하고 바로 후퇴해서 그렇습니다, 남작님."


출입구 근처 광경은 수류탄 폭발에 휘말린 폐허처럼 엉망진창이었다.

특히나 대파한 기간트 골렘이 출입구 근처에 풀썩 주저앉아 있어서 눈에 안 보일 수가 없었다. 적어도 지상에서 출입구 위치를 헷갈릴 일을 없게 해주는 비싼 표지판이었다.

입구 근처에 도착한 펠릭스는 귓가를 간지럽히는 소리를 들었다.


- ······.

'확실히 뭔가 있긴 하군.'


속삭이는 것 같기는 한데 정확하게 들리진 않았다. 주위의 눈치를 살펴보니 아무도 모르는 분위기라 말은 안 꺼냈다.

펠릭스는 묵묵히 던전 아래로 내려갔다. 넘실거리는 마기의 농도가 출입구를 기점으로 확연하게 달라졌다.


"꿉꿉하네."

"성직자분들께는 불결한 기운이긴 하지요."


체스터의 불평을 길잡이가 받아줬다. 신성력을 다루는 사람은 마기에 닿으면 즉각 반응이 나타난다. 지상처럼 미약하다면 모를까, 지하처럼 농밀하면 반발력 때문에 느낌이 안 올 수가 없다.

마나가 없으면 좀비가 된다는 말에 일레이자가 불안에 떨었지만, 정작 아무런 반응도 없자 공포보다 호기심이 샘솟았다.

본인의 마나를 품고 있으므로 펠릭스의 기감(氣監)에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드러났다.


"뭐 특이한 게 있나?"

"네. 일반적으로는 이렇게 대규모 매장이 있을 수 없거든요."


일레이자는 간만에 자신의 전공을 드러낼 수 있자 자신 있게 말을 쏟아냈다.


"비가 많이 내리는 열대 지방에서는 이런 매장 문화가 발달하지 않아요. 뼈는 물에 노출되면 녹기 때문에 매장해도 시신이 오래 유지되지 않으므로 화장이나 수장이 주로 발달하죠."

"들은 바가 있다. 겉은 딱딱하지만 속은 빈 공간이 많아 은근히 무르다고 하지."

"네. 덥고 습한 곳이라 시체가 빨리 썩으니까 빨리 매장하죠. 그러니까 이렇게 대규모 매장은 있을 수 없어요."


일레이자는 조목조목 이 공동묘지의 위화감을 설명했다.

열대지방의 장례는 기후에 따라 천차만별이라지만, 시신 부패의 위험 때문에 빠르게 매장하므로 소규모 매장은 있을 수 있어도 대규모 매장문화는 발달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예외적으로 문명을 꽃피운 지역에서나 풍습을 벗어나 문화적, 종교적 성격으로 공동묘지가 탄생했다. 기술 발전에 따른 고속 채굴 기술로 빠른 매장이 가능한 덕분이다.


"그럼 고대인의 무덤이 맞긴 하다는 거군."

"네. 자세한 건 다른 유물이 있어야 알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짐작하기로는 마왕을 피해 남하한 내륙 피난민의 착오로 만들어진 것 같아요."

"착오?"

"대규모 매장 문화는 내륙 지방에서는 흔했거든요. 영혼을 쉽게 거둘 수 있게 유도한 문화였으니까요."

"아, 그렇군. 신도 같이 남쪽으로 피난을 왔을 수도 있다는 건가."


펠릭스와 일레이자의 대화를 잠자코 엿듣던 세 명. 무슨 말인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그나마 소양이 있던 네리카 정도만 어려운 단어를 감각적으로 이해했다.

펠릭스가 손짓하자 길잡이는 아래쪽으로 안내했다. 익스퍼트 중급의 실력자였지만, 개인적인 사유로 용병업에 종사하는 자. 익스퍼트 중급이라고 해도 지하 3층까지가 한계였다.

아래로 내려가면서 펠릭스는 일레이자와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이라. 전혀 생각도 못 했는데."

"저도 위에서는 전혀 생각 못 했어요. 그런데 여기는 그 어떤 마나석이나 마법진이 없어도 유골이 온전하게 유지되는 데다가 지나치게 깔끔하게 매장됐어요. 마치 자발적으로 묻힌 것처럼요."

"순장···인가."

"앗, 순장을 아세요? 오래전에 사라져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단어인데."

"좀 배웠지."


지도자가 죽으면 아랫사람도 같이 무덤에 묻는 장례 문화, 순장.

단점이 워낙 많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발전한 문명에서는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풍습이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 종말 신앙이나 심판 신앙과 합쳐지면 기괴한 방식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모든 죽음이 평안함을 추구하는 건 아니지.'


북유럽의 라그나로크, 힌두교의 칼리유가, 아즈텍의 종말론까지.

방향성은 다르지만 죽음 이후에 심판을 받고 천국이나 지옥으로 나뉘는 가톨릭과는 전혀 다르다. 사후세계를 완전히 부정하는 방식이기 때문.


"제 안내는 여기까지입니다."

"아, 고생 많았네."


지하 1층부터 3층은 그나마 지도가 있었다. 길잡이가 만든 수제 지도였다.

펠릭스는 지도의 복사본을 받고 길잡이를 배웅했다. 짙은 마기가 한여름 아스팔트 위처럼 종종 시야를 일그러트릴 정도가 되어서야 익스퍼트 중급이 이탈.

체스터는 약간 버거운 것 같았지만, 기합으로 버텼고, 네리카와 일레이자는 펠릭스의 마나 덕분에 별일 없었다.


'한 번 넣으면 사흘 정도는 별일 없겠어.'


펠릭스와 세 명은 미지의 4층으로 걸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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