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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신희님의 서재입니다.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장손신희
작품등록일 :
2020.04.07 05:55
최근연재일 :
2020.11.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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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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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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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지하묘지미궁 베린 (1)

DUMMY

"어렵습니다."

"허어."


펠릭스는 하즈킨 공작의 부탁을 단칼에 거절했다. 티올 요새에서 지금까지 억제하던 본능을 휘둘러본 경험이 너무나도 달콤했던 까닭이다.


걱정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휘두를 기회는 아무 때나 오는 기회가 아니었다. 그걸 이번에 톡톡히 느꼈다.


"골칫거리를 해결하는 게 저의 일입니다, 공작님."

"남작. 란소스 남작. 하루아침에 해결하면 뒤처리가 힘들다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토벌을 자제해 주었으면 하네."


하즈킨 공작은 펠릭스에게 구구절절 영지의 사정을 풀어 놓았다. 개척지가 늘어나도 보낼 사람이 없고, 관리할 인원도 부족하다는 말.


수인족 노예를 대량으로 사들여 당장 개척할 수 있어도 나중에 처리하려면 힘들다는 말에 펠릭스는 고민했다.


당사자가 이토록 꺼리는데 강행하면 없던 문제도 생기기 마련이라는 걸 잘 아는 까닭이다.


'어쩐다···.'


사정을 들은 펠릭스는 상념에 빠졌다. 공작의 사정은 아무래도 좋았지만, 자신이 한 업적이 무용지물로 전락하는 건 싫었다.


펙시스 같은 경우는 한 번이면 족했다. 온갖 고생 끝에 함락시켰는데 지도층의 협상으로 반환된 데다가 큰 이득도 없었다. 기껏해야 유능한 인재 영입 가능성 정도.


무익한 일이라고 하니 고민.


"정리해봅시다. 개척민이 부족한 게 문제입니까. 아니면 통제인력이 부족한 게 문젭니까?"

"둘 다 문제라네.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어."

"굳이 정하자면, 말입니다."


하즈킨 공작은 잠시 생각했다. 개척민이 부족한 건 수인족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사작은 간단히 영입할 수 없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은 후자.


"통제인력이 부족하네."

"익스퍼트 하급 정도면 통제인력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까?"

"충분하고도 남지. 소드 유저와 소드 익스퍼트의 벽은 크니까."

"그럼 해봅시다."

"뭐?"


하즈킨 공작은 느닷없는 펠릭스의 말에 얼굴을 찡그렸다. 명백한 결례였지만, 펠릭스의 말은 상식적으로 전혀 알맞지 않았으므로 당연한 반응이었다.


펠릭스는 왕궁에서 한 귀족을 익스퍼트로 만들었던 경험이 있었다. 보통 사안이 아니라 공작이 알고 있을 거로 생각하여 설명을 생략했다가 싸늘한 눈빛을 받았다.


의자 등받이에 기댄 펠릭스는 차근차근 설명했다. 약간의 살도 붙여서.


어떤 이야기인지 앞뒤 사정을 모두 들은 하즈킨 공작은 경악했다. 가만히 앉아서 사작을 늘릴 기회가 찾아왔으니까.


"놀···라운 일이군."

"당사자의 재능과 잠재력에 달렸지만, 제 피로도 만만치 않아서 무한정 끌어낼 수는 없습니다."

"아무렴 어떤가. 다른 소드마스터도 불가능한 일이 가능하다는 점이 중요하지. 유일무이한 업적 아닌가."


하즈킨 공작은 거드름 피우는 펠릭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치켜세웠다. 틀린 말도 아니라 자연스러운 진심이 묻어나왔다.


누구에게도 손해가 없는 거래였으므로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하즈킨 공작은 자신을 따르는 추종자 세력에서 소드 유저를 선별했다. 펠릭스는 그들 중에서 늙었거나 어린 연령대를 주로 선별했다.


노인은 정신적 깊이, 젊은이는 재능이라는 이유로 핑계를 대기도 쉬웠다. 이건 당장은 쓸모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시한폭탄으로 작용한다.


'지금은 유용하게 활용하겠지. 그러나 20년 뒤에도 가능할까?'


펠릭스의 작업은 엄연히 따지면 편법이었다. 정식으로 소드 익스퍼트 경지에 오른 자들과는 차별될 수밖에 없다.


분명히 소드 익스퍼트이므로 차별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식이라면 어떨까. 세대를 거듭하면 편법으로 경지를 높인 자와 자력으로 높인 자는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수인족 노예를 내쫓을 때가 되면, 즉 무력을 사용할 때가 되면 충돌이 벌어질 것이다.


'성실하게 통치에 힘쓴다면 위기 없이 넘어설 수 있을 거야. 힘들겠지만.'


그때 문제가 터진다고 한들 펠릭스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서로 합의한 대로 가능성 있는 소드 유저만 골라내 익스퍼트로 끌어올린 것만으로 책무는 다한 셈이다. 그다음에 따라올 결과를 다스리는 건 주군의 몫!


"50명 정도인가?"

"정확히 53명입니다."

"거참 적응 안 되네. 왜 그러냐."

"제가 뭘요."


티올 요새에서 펠릭스가 저지른 참상을 본 뒤로 체스터는 펠릭스에게 극도로 저자세를 보였다. 마치 배를 보이는 강아지처럼 절박하게 기분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애썼다.


전에도 그랬지만 차이점이라면 비굴하거나 우스꽝스럽게 헤헤거리지 않고 그저 당당하게 굴었다. 격의 차이를 인정하고, 자신보다 윗줄이라는 걸 실감한 까닭.


'상대하는 것도 가능성이 있어야 하는 거지···. 스승보다 더한 강자면 내가 부끄러워할 것도 아니고.'


체스터는 간편한 자기합리화로 넘어간 상태. 자존심 정도는 가볍게 찍어눌렀다. 운명을 거스르는 것도 좋지만, 목숨을 걸 정도는 아니다.


의자에 앉아 공작이 올 때까지 기다리던 펠릭스는 체스터를 흘겨보다가 나머지 두 명을 살폈다. 네리카는 얌전히 앉아있었고, 일레이자는 공작성에 들어온 게 부담되는지 주변을 살피느라 바빴다.


"진정해라. 아무도 해치지 않아."

"너무 황송해서···."


일레이자는 반쯤 울먹이는 말투로 대답했다. 바닥에서 구르다가 갑자기 산 정상 근처에 도착하면 숨쉬기 힘들듯 일레이자도 그러했다.


그런 모습을 본 펠릭스는 안쓰럽기보단 재밌었지만, 내색은 안 하며 관찰했다.


"예상보다 빨리 왔군. 몸은 괜찮은가?"

"공작님께서 배려해주신 덕분에 빨리 털고 일어났습니다."


펠릭스가 공작성에 세 명을 이끌고 온 이유는 간단했다. 떠날 시간이 됐기 때문.


하즈킨 공작가에 기사 53명이 갑자기 증가하자 왕궁에서 이유를 물었고, 펠릭스가 능력을 발휘하여 개척을 도왔다고 답하자 발칵 뒤집혔다.


서임식 당시 보여주기는 했으나, 재능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했던 펠릭스였다. 한 명만 성공했기에 희박한 확률이라 여겨 소문이 넓게 퍼지진 않았는데 이번에는 규모가 완전히 다른 게 소란스러워진 이유.


"당장 돌아와 달라고 난리네. 마게트 전선에 장군으로 배치하겠다고 하더군."

"제가 힘 좀 쓰긴 했지요."


펠릭스는 설탕물을 마시며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렸다.


오슬레아 대왕국에서 기사단은 익스퍼트 100명 단위고, 마법사단은 30명 단위로 편재되는 것이 일반적. 그런데 기사단 정수 50%를 하루아침에 늘렸으니 놀랄 이유로는 충분했다.


기왕 기사가 늘어난다면 개척지가 아니라 전선에서 늘어나는 편이 맞고, 이 지경이 되면 당연히 빚이고 뭐고 불러들이는 편이 백번 옳았다.


펠릭스는 안 갈 거지만.


"거기는 신경 끕시다. 인제 와서 돌아가 봐야 전쟁터니까 저도 당장은 가기 싫으니."

"그러지. 자, 남작이 바라던 걸 선별해 왔네. 마음에 드는 걸 고르면 돼."


공작은 탁자 위에 문서를 네 개 내려놓았다. 펠릭스가 익스퍼트를 육성해준 대가로 다음 토벌 대상을 골라달라고 했었고, 4곳이 선정됐다.


펠릭스는 문서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티올 요새 같은 게 제법 있었군.'


하즈킨 남쪽의 달라프 지역 곳곳에 야만인들이 세워둔 거점으로 가득했다. 개발이 전혀 안 된 천혜의 지형을 끼고 만들어진 요새는 기간트 골렘과 부양선을 동원하더라도 토벌할 수 없었다.


지형과 시설만 해도 난공불락인데 알 수 없는 고대의 기술과 기물로 반격하면 공성은커녕 손해만 보고 돌아가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마음에 드는 게 없나?"

"뭘 먼저 할지 고민됩니다. 하나하나 장단점이 명확하다 보니."


펠릭스가 가장 높게 점수를 치는 건 '얼마나 인정받는가'였다. 지세트와 알카탄, 두 곳에서 허탕을 쳐본 탓이었다.


그러나 인정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성과. 노력한 뒤에 허사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더라도, 다른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일을 해결하면 그만큼 실력을 과시할 수 있으니 나름 타협할 수 있는 요소였다.


입증할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공작이 준 의뢰인데 입증이 불가능할 리 없다.


'비슷비슷하니 원.'


고민하던 펠릭스는 두 번째 문서를 뽑았다.


암호명 지하묘지미궁 베린. 언데드가 다수 출몰하는 지역. 지하에 있고, 묘지고, 미궁이라는 기묘한 키워드가 뒤섞인 곳이라 흥미가 생겼다는 점도 결단을 내린 이유였다.


"고대인 언데드라···."

"그래. 조사해보니 마왕군에게 도주해 이곳에 도착한 고대인이 만든 거주흔적이 다수 발견됐지."

"평범한 묘지인 것 같은데, 언데드가?"

"모두 무사히 바다를 건넌 건 아니다···라고 봐야겠지."

"아."


발견자의 이름을 따 베린이라고 명명된 지하묘지미궁은 마기(魔氣)에 희생된 수없이 많은 고대인이 묻힌 곳이었다.


문제는 회복 가능성이 없던 생존자도 같이 묻혔다는 점. 마왕을 피해 남쪽으로 멀리 이동해야 하니 짐이 될 사람들을 떼어낸 쪽이겠지만, 버려졌다고도 볼 수 있으리라.


이들의 원망이 던전을 만들었다.


"원망이 좀 강한 게 아니라, 그 일대가 모두 영향을 받고 있네. 짐승과 곤충, 식물까지. 그나마 식물은 저항성이 높아 가까이 가지 않으면 되지만, 동물은 그렇지도 않지. 산 채로 언데드로 전락하기도 하네."


언데드로 전락한 동물과 곤충에 대응하느라 하즈킨 공작령의 적지 않은 마법사가 동원되었다. 그나마 곤충은 마법과 신성력으로 쉽게 대응할 수 있었지만, 동물은 좀 더 복잡하고 강한 대응이 필요했다.


사람이나 덩치 큰 동물은 지하로 내려가지 않는 한 별다른 문제가 없었고, 현재는 그저 접근금지 정도로 봉인한 상태라는 것이 서류에 적힌 내용의 전부.


"출입구를 기준으로 지름 20마일 정도를 통제하고 있다. 접경지의 길이도 만만치 않아. 조금씩 넓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처리할 수 있다면 빠르게 처리하는 게 낫지."

"미궁이라 지도도 만들며 내려가야 할 것이고···. 확실히,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군요."

"익스퍼트 기사라고 하더라도 하루 버티면 못 견디고 뛰쳐나온다네. 마법사는 더 취약하고. 그곳을 토벌할 재원이 턱없이 부족해."


일반인은 버티지 못하고 좀비가 되어버리는 데다가, 마나를 몸에 받아들인 기사와 마법사조차 오래 버티지 못하는 곳.


한때 작정하고 매그넘 골렘을 동원하여 발굴을 시도하였으나 3차 시도 모두 실패. 출입구가 넓어지면서 마기가 더 많이 흘러나와 당초 3마일에 불과했던 위험거리가 5배 이상 커졌다.


그 이후로 이곳은 여러 교단에 막대한 헌금을 대가로 동원하여 신성력을 사용해 봉인.


"위험한 곳인데, 저들은 괜찮겠나?"

"별 문제는 없을 겁니다."

"허어."


하즈킨 공작은 턱짓으로 펠릭스 뒤를 가리켰다. 네리카와 체스터, 일레이자. 하나는 익스퍼트 기사, 하나는 몽크라지만 나머지 하나는 마나를 모르는 일반인.


그러나 공작은 크게 파고들지는 않았다. 보고서에는 비전투원이라고 하였고, 위험한 곳이니 할리자노크에 대기시킬 거라고 넘겨짚은 까닭이었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알겠네. 길잡이를 준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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