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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신희님의 서재입니다.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장손신희
작품등록일 :
2020.04.07 05:55
최근연재일 :
2020.11.06 06:00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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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230
글자수 :
39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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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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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유격대 소탕 (2)

DUMMY

마게트 유격대가 등장하면서 가장 큰 문제로 불거진 건 몬스터의 확산이었다. 기간트 골렘 3기가 모여 임야를 뒤집으니 오우거 정도가 아닌 이상 서식지에서 도망쳐 사방팔방으로 퍼졌다.


농토와 광산이 붕괴하는 것이 위정자의 문제라면 몬스터 활보는 민중의 문제였다. 상행 대부분이 멈춘 탓에 생필품 고갈로 고생하는 상황에서 삶의 터전까지 파탄 나는 건 이중고라고 간단히 부를 수도 없었다.


"몬스터를 토벌하려고 이곳에 온 건 아닙니다만...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쪽에 우리가 존재한다고 과시하는 거다. 함정이기도 하고."

"함정?"

"그래. 몬스터를 토벌하느라 신경이 팔린 사이 뒤를 급습하면 성과를 올릴 수 있다고 믿는 멍청이를 부르는 거다."

"음... 그렇군요."


한 상급기사가 마지못해 긍정하는 모습을 보이자 펠릭스는 부연설명을 붙였다.


"유격대를 소탕하는 건 좀 나중에 할 일이야. 그 녀석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아나?"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유격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포로를 잡아야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삼엄하게 경계를 서면 포로는 커녕 전투조차 벌어지지 않을 거다. 전투 없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나쁘지만은 않지만, 소득이 없는 건 다른 일이지. 그렇지 않나?"

"그, 그렇습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개의치 마라. 내가 지휘관으로 있는 이유는 그런 구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 곁에서 배우고, 체득해라. 그럼 나중엔 내가 아니라 네가 지휘관으로 임명될 수 있겠지."


상급기사는 허리를 살짝 숙여 경의를 표했다. 주위 기사들도 표현만 안 했을뿐 비슷한 분위기를 드러냈다.


펠릭스는 팔짱을 끼면서 작전을 계속 설명했다.


"추격은 기본적으로 전장을 진압해야 한다.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민심을 휘어잡아서 밀고자로 삼는 거지. 넓은 영역에서 활동하는 목동과 사냥꾼이 협력하기만 해도 수월하게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곳의 지리에 친숙하지도 않지만 그들을 길잡이로 삼으면 해결된다."

"오오..."


사작들이 작게 감탄했다. 상급기사는 적잖게 놀랐고, 마법사는 당혹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작전을 수립하는 전략가는 기본적으로 이렇게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생존에 직결되는 전문지식이 값싼 취급을 받지 않도록 꽁꽁 감추기 위해서다.


그렇기에 펠릭스의 설득은 그 누구도 반박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아는 전술이 한미한 데다가 들었을 때 합당한 까닭이다.


"정보는 미리 구해놨다. 각자 하달할 테니까 목표물을 토벌하도록. 신호를 받으면 즉각 반응할 수 있도록 최종점검하고 출발해."

"옛!"


파프닐 공작령은 남북으로 긴 모양이었다. 낮은 산맥을 끼고 있어 영지의 주력 산업은 광업과 모피를 기반으로한 공업이었다. 한때 수도가 존재했던 중심지라 각지의 물산이 모이는 지역이기도 해서 제조업과 상업 전반이 두루 발달했다.


그러나 산지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어 식량은 고질적으로 부족했다. 인구 부양력이 모자라 이웃 공작령에서 식량을 들여와야 하는데 상인이 들고 일어난 탓에 민심이 극히 흉흉했다.


펠릭스가 노린 점이 이것이다.


'이 세계는 신분제 사회라지만 상인이 내전을 일으킬 정도로 인식이 아주 멍청한 건 아니고... 내전이 끝나도 상처가 깊어서 민초의 분위기를 무시할 수는 없겠지.'


마게트 왕국과의 전쟁이 열전으로 치닫으면 총력전 양상으로 전방위에서 압박해야 하는데 키펠 방면이 조용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오슬레아가 떠안게 된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끔 전선과 가까운 파프닐 공작령은 최대한 피해가 없어야 했다.


펠릭스의 명령에 따라 사작들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펠릭스 역시 정해둔 목표를 분쇄하러 이동한다.



* * *



고요했던 숲에 비명이 널리 퍼진다. 난데없이 찾아온 사신은 손속에 정을 두지 않고 생명을 거두었다.


"사, 살려! 살려주십시오, 어르신! 살려만 주산디면 뭐든 하겠습니다! 제발!"

"네깟 놈의 도움은 필요없다."


펠릭스와 네리카는 작은 산봉오리에 올라 검을 휘둘렀다. 마나 블레이드를 머금은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세 명은 족히 생명을 잃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네리카는 펠릭스의 뒤에서 자잘한 잡무를 담당했다. 처음 겪는 실전이므로 전장의 분위기만 체감하도록 역할을 부여했다.


펠릭스가 목을 날려버리는 자들은 도적이었다. 생계가 어려워 세금을 낼 수 없어진 마을이 통째로 탈주해서 도적 무리로 변모한 상황. 이미 피해가 나온 시점에서 이들의 회개 가능성은 낮으므로 펠릭스는 어른으로 보이는 사람은 모조리 목을 날렸다.


그나마 정상참작할 수 있는 어린 애들은 네리카가 수습해서 한곳에 모았다. 돌아가도 평민이 아니라 노예로 전락하겠지만, 살려두는 편이 장기적으로 이롭다는 판단에 펠릭스가 지시했다.


"으, 으으..."


아이들의 상태는 한눈으로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펠릭스가 무표정으로 어른을 학살하는데 태연할 수 있는 애는 없었다.


네리카는 발작하거나 튀어나가려는 아이들을 억누르며 펠릭스의 학살을 지켜보았다. 지금까지 겪은 전장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지세트 공세는 후방에 있었고, 알카탄의 펙시스 공략에서도 뒷전이었다.


전투다운 전투를 겪어보지 못한 네리카에게 피가 낭자한 전장 한복판에 서는 건 너무도 힘들었다. 시각으로 느껴지는 죽음, 청각으로 느껴지는 비명과 단말마, 후각으로 느껴지는 비릿한 혈향, 촉각으로 느껴지는 근육경련과 두려움까지. 공감각적으로 숨을 옥죄었다.


펠릭스가 처음 말했을 때 은근한 반발심을 품었던 자신이 미련하게 느껴질 정도로, 엄청나게 힘들었다.


'어쩌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었겠지...'


네리카는 얼굴을 굳혔다. 펠릭스라는 존재가 너무도 멀게 느껴졌다. 언제나 같이 있었는데 지금 느껴지는 펠릭스는 사신 그 자체. 경외감이 친분을 넘어선 순간이었다.


반나절이 좀 안 되는 시간만에 도적단 하나가 소탕되었다. 약 150명 정도 되는 마을이 진압되는 순간.


펠릭스는 임시로 만들어진 건물 중 가장 큰 곳에서 실마리를 확보했다.


"그럼 그렇지. 돌아간다. 도망치는 녀석들은 저쪽에서 나뒹굴게 해주마."


아이들은 머리가 떨어져나가라 격하게 끄덕였다. 목뼈의 상태가 걱정될 지경이었으나 펠릭스는 신경을 끄고 네리카에게 다가가 쪽지를 건넸다.


"이게... 뭐죠?"

"뭐긴. 도적단이 허공에서 나오진 않았다는 증거지."


네리카가 조심스럽게 쪽지를 읽었다. 손바닥만한 쪽지에 적힌 건 마게트 억양이 진한 문장들.


내용은 담백했다. 무기를 줄 테니 주위를 어지럽혀라는 전반부, 성공하면 전후에 사작을 수여하겠다는 후반부. 마을 하나를 통째로 배신하도록 만든 쪽지였고, 그들에겐 죄를 확정짓는 증거였다.


"녀석들이 전부 거기에 동의한 건 아닐 거고, 방문한 불청객을 무찌를 수단도 없었겠지. 그러나 실질적은 피해를 낸 시점에서 속마음이 어떻건 처형해야 뒷탈이 없다."

"...증거는 나중에 찾아낸 거잖아요."

"그래. 그러니까 피해를 낸 게 문제라는 거다. 그냥 마을에서 도망쳐 화전민이 되건 난민이 되건, 그 정도에 불과하면 이렇게 칼을 휘두를 이유는 없어. 그러나 이들은 산을 지나는 여행자나 상인에게 피해를 입혔다. 피해라고 말했지만, 그들이 어떤 꼴을 당했는지 짐작은 하겠지?"

"......"


펠릭스는 턱짓으로 아이들을 가리켰다.


"쟤들도 정상은 아니야. 살리긴 하겠지만, 그런 환경을 겪어본 녀석들에게 함부로 자유를 줄 수 없어. 노예로 팔려 억압 받으며 살 거다."

"방법이 없을까요?"

"개개인을 구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이런 애들이 한두 명일까? 그들을 모두 돌볼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어?"

"저는 아니더라도 펠릭스는..."

"내 방식으로는, 쟤들을 전부 죽이는 게 편하다."

"......"


펠릭스는 거짓 한 점 섞지 않고 단언했다. 한낱 인형 따위에 불과한 일반인에게 관심을 쏟을 생각은 결코 없었다. 살리는 것도 주위의 시선을 생각해서 시도한 것이지, 원해서 자발적으로 한 게 아니었다.


네리카는 기가 죽어서 말을 멈췄다. 미력한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지독한 현실로서 깨달았다.


'응? 오, 벌써?'


펠릭스는 네리카의 변화를 알아차렸다. 몇 번 더 데리고 다니며 주입하려던 열망을 스스로 깨우쳤다.


강함을 위한 마음가짐을 갖도록 유도하려고 일부러 몬스터가 아니라 사람을 죽이러 온 거였다. 다만 향상심을 단번에 체득할 줄은 몰랐다.


'이제야 제대로 된 익스퍼트가 됐는걸.'


네리카의 심적 변화로 체내의 마력이 제대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펠릭스가 개입해서 만든 마력은 어중간하게 비대하기만한 준 독립체였다가 이제야 네리카의 의지에 맞춰 중추 신경계에 자리잡았다.


일반적인 기사라면 고된 수련을 거듭하며 의지를 단련하므로 마나를 받아들이는 게 문제지만, 네리카는 펠릭스 때문에 순서가 뒤집혔다. 지금이라도 바로잡았으니 활용은 네리카 본인의 몫이다.


"다음에는 네가 직접 토벌해봐라."

"...그래도 될까요?"

"세금을 못 내고 도망친 평민의 수준이라고 해봐야 거기서 거기야. 오러를 활용할 수 있는 네가 질 일은 없다. 상처는 입을 수 있겠지만. 목숨이 위험할 것 같으면 내가 나설 테니 소탕에 전념해라."

"네..."


안심시키는듯 하면서도 위협하는 펠릭스의 언변에 네리카는 일희일비가 교차했다. 네리카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다잡았다.


주위에서 바들거리는 아이들의 공포심이 피부로 와 닿기도 하거니와 이 정도로 검을 내릴 수는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펠릭스는 한결 편해졌다. 언제까지나 곁에 두고 다닐 수 없으니 이 정도는 자립해 주어야 마음이 놓였다.


"별일은 없었군."

"옛. 남작님께서 이곳에 거점을 차리신 이후 다른 곳에서도 활동이 크게 줄었습니다. 아마 이쪽의 움직임을 탐색하는 것 같습니다."

"그다지 반가운 소리는 아닌걸. 저쪽에도 머리가 잘 굴러가는 녀석이 있나보군. 그리고 통신도 잘 되는 모양이고."


거점으로 돌아온 펠릭스가 확인한 일은 중간보고였다. 자신이 없더라도 어지간한 대응은 알아서 할 수 있도록 체계를 자뒀으며, 토벌대가 나타났다고 바로 달려들지는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상대방은 예상보다 신중했다. 그리고 오밀조밀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정황까지 보여주었다. 이렇게 되면 상대방의 노림수는 하나.


"공수가 역전되었구만..."


상대방이 유격을 포기한 건 아니다. 그 시점부터 주도권은 상대방에게 넘어간다. 어딜 공격할지, 어딜 포기할지 결정하는 전장 결정권이 공세 측에게 주어진다.


성벽을 낀 본거지에 정면으로 달려들지는 않겠지만, 숫자는 엄연히 상대방이 더 많다. 최소 120기, 여차하면 180기가 달려들면 많아야 44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성벽을 끼고 싸우더라도 패배는 확정.


"몬스터 토벌에 전념하라고 해라."

"따로 돌아다니다간 위험하지 않나요?"

"상대방이 헛짚었으니까. 시간은 우리 편이다."


일레이자의 의문에 펠릭스는 간단히 설명했다.


"전장이 오슬레아 영토라면 우리가 피해를 감수하며 움직여야 하겠지만, 여기는 키펠 영토다. 조급할 필요가 전혀 없지."


펠릭스의 작은 미소에 일레이자는 식은땀을 삐질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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