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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신희님의 서재입니다.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장손신희
작품등록일 :
2020.04.07 05:55
최근연재일 :
2020.11.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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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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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도굴과 도박 (2)

DUMMY

펠릭스는 모험을 위해서 작전을 수립했다.

목적지는 암호명 티올 요새였다. 하즈킨 공작의 마법사단에서 지리 정보를 확인하며 침투경로를 가늠해 보았다.


'서남쪽의 밀림.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기 때문에 쉽게 발각될 거야. 해가 저물 때 그림자를 틈타는 건 요새가 컴컴할 때나 가능한 가정이지.'


티올 요새는 서쪽과 남쪽에 울창한 숲이 펼쳐져 있었다. 숲과 요새 사이에 약 100m 정도의 간격이 있었으나 모두 깔끔하게 벌목되어 공터라고 한다. 나무 밑동이 방치되어 있어서 골렘이 기동하기 까다로웠다.

마법사가 나무 뒤에 숨어서 장거리 공격 마법으로 성벽을 파괴하는 방법도 신통하지 않았다. 100m 넘게 마법을 날릴 실력자가 없었던 까닭이다.


'북동쪽의 절벽도 시원찮아. 절벽 높이가 수면에서 40m 정도 되는···, 아주 완벽한 고지대란 말이지. 절벽도 수직 이상의 장소고.'


굉장히 튼튼한 지반이라 오랫동안 파도에 깎여나간 결과 아래쪽만 깎여나가고 위쪽은 그대로 존재했다. 마치 버섯처럼 생긴 지형이었다.

등반하려고 해도 이런 형태의 절벽은 뛰어난 스포츠클라이머나 가능한 곡예다. 그나마도 안전장치가 존재해야 하는데, 아래쪽에 암초가 빼곡한 바다가 있다. 그나마 펠릭스는 손에 마력을 불어넣어 악력을 높이는 방법으로 절벽을 오를 수 있으나, 다른 사람은 불가능하다.


'···아, 체스터는 가능하겠군. 그 난봉꾼 녀석.'


괴력과 회복력을 상기해보니 투덜거리면서도 악력만으로 따라올 것 같았다.

그러나 단 두 명에 요새를 함락시킬 수 있는가, 라고 자문했을 때 해결할 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부양선으로 정찰한 바에 따르면 건물이 30개가 넘었고, 감시탑도 빼곡하게 존재했다. 상주하는 인원은 약 천 명. 겨우 2명이 이기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마나블레이드를 휘두른다 하더라도 실전이라는 점에 발목을 잡았다. 지세트에는 군대를 이끌기에 실제 전투는 병사가 치렀고, 펙시스에는 소수정예와 싸웠다.


'도망치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공격해야 하는데 고작 두 명이 점령이 가능할 리가. 차라리 다 죽여버리면 쉬운데. 그게 말처럼 쉬워야 말이지.'


적대하는 기사와 마법사를 죽인 건 어디까지나 '적'을 죽인 거다. 그렇기에 큰 죄책감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혼자 수백 명을 죽인다면 살해가 아니라 학살에 가깝다. 두 단어의 차이는 너무나도 컸다.

야만인을 죽이는 것 자체는 상관없었다. 이 세계는 자신이 주인공으로 살기 위해 준비된 무대나 다름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형 여러 개를 망가트리는 건 쉬워도 수백 개를 한꺼번에 망가트리는 건 좀 께름칙했다.

무대를 너무 많이 망치면 뒷감당이 안 됐다.


'장기전으로 가야 하나? 어쩐다. 뾰족한 수가 없네.'


고민하던 펠릭스의 머릿속에 박격포나 폭격기가 떠올랐으나 곧 지웠다. 시대에 걸맞지 않은 건 물론이고 겨우 이런 곳에서 꺼낼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이번에 동원할 수 있는 병사는 없었다. 대규모 군사행동이 불가능한 험지였고, 무엇보다 이번 공세는 하즈킨 공작이 원한 게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펠릭스를 활용해 걸리적거리는 요소를 치워버리는 것이 목적이다.

이틀 동안 수단을 연구하던 펠릭스는 이번에 아예 작정하고 모험가 파티를 꾸려보기로 했다.


'나는 빼고. 네리카는 딜러, 체스터는 탱커. 잠입이니까 돚거 정도만 구하면 최소한의 구성은 해결되겠군.'


공작의 중개를 받아 레인저는 한 명 확보했다. 길잡이 역할로 소개받았는데, 요새에 접근하려면 밀림 한복판에 강하해서 당분간 이동해야 하므로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고로 이번에 뭉칠 인원은 전형적인 5인 파티였다.


'마법사가 없다는 게 안타깝군.'


할리자노크에는 꽤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하즈킨 공작령 곳곳에 고대문명의 유적지가 산재해 있다 보니 해당 분야 관련자가 많았다.

고고학이나 역사학에 관심이 깊은 마법사도 많았지만, 대부분은 도굴꾼이었다. 영주와 개척촌 촌장들이 유적지 망실을 막으려고 했으나 막는다고 막힐 리 없었다.

펠릭스가 노린 도적이 바로 이 유적을 노리는 도굴꾼이었다.


"야, 체스터."

"예?"

"너 노름하러 갔던 곳 안내해봐라. 나도 좀 해보자."

"어···? 안 간 지 꽤 됐는데요."

"내가 잠이 들면 나간 거 다 안다. 새벽에 네가 방에 없던 것도 봤고, 치안대 병사가 알려주기도 했어."

"아씨. 돈까지 줬는데 배신을 해?"


체스터는 병사에게 입막음을 시도했었던 듯 배신당했다는 울분을 토했다. 펠릭스가 손을 들어 보이자 불평은 사그라들었다.


"근데 왜 가는 거요?"

"쓰읍."

"뭐 때문에 가시려는 겁니까?"

"여기는 어떻게 판돈이 오가는지 궁금해서. 머리가 안 돌아가니까 기분전환이 필요하거든."

"오, 좋아. 그런 일이라면야 바로 모십죠. 헤헤."


체스터는 헤프게 웃으며 펠릭스와 네리카를 안내했다. 할리자노크 변두리 중에서도 끝자락의 허름한 상업지역이 종착지였다. 영주성에서 먼 곳인데도 잘도 찾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멀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왁자지껄하게 웃고 떠들던 자들이 입을 다물었다. 체스터의 얼굴을 본 것만으로 도박장 주인과 꾼들이 침묵한 것이다. 몇 명만 상황파악을 못 해서 어리둥절하며 사방을 살폈다.


'도대체 얼마나 개판을 벌였길래 저래?'


체스터가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펴고 주위의 시선을 즐기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은 펠릭스가 뒤통수를 후려쳤다.

요란하게 바닥을 구르며 면상을 바닥에 갈린 체스터. 펠릭스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당황한 사람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며 진정할 것을 지시했다.


"나는 란소스 남작이다. 지금까지 이놈이 여기에서 폐를 끼친 것 같더군. 사과하러 왔네."

"앗, 아, 아닙니다. 폐라뇨. 큰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군. 여기까지 온 김에 한판 해볼까. 판 좀 깔아주겠나?"


펠릭스는 바닥을 구르는 체스터를 의자로 써서 도박판에 참가했다.

이곳에서 벌인 하류층의 도박은 굉장히 간단했다. 넓은 판과 컵, 주사위로 벌이는 도박이 가장 흔했다. 매끈하게 다듬은 원목 탁자에 뼈 주사위 다섯 개를 던져 짝을 맞추는 게임이다.

단조롭지만 운에 모든 판돈을 걸어야 하니까 효과적으로 긴장감을 돋굴 수 있다.


"꽤 잘 만들어진 물건이군."

"마법사님에게 의뢰해서 만들었습니다. 마법으로 정확하게 제작한 물건이라 특정한 숫자가 자주 나온다거나 하는 일은 없습니다."

"허, 고민해서 만든 물건이긴 하다만···."


펠릭스는 육면체 주사위를 휙 던졌다. 좌르르 펼쳐지는 6 다섯 개. 경악한 시선을 뒤로하고 펠릭스는 다시 주사위를 컵에 집어넣고 던졌다. 이번에는 5.

순서대로 4, 3, 2, 1을 뽑고 다음에는 순서대로 1에서 5까지, 그다음에는 2에서 6까지 만들었다.


"주사위 안에 하급 마나석 가루를 넣어뒀군. 좀 실력 있는 사작이면 조작이 가능할 정도야."

"이, 이럴 수가···."

"4서클 마법사, 익스퍼트 중급이면 활용할 수 있을 거다."


펠릭스가 주사위를 들어 손바닥 위에서 빙글빙글 굴리며 노름판 주인에게 말했다. 주사위 눈에 마나석 가루를 섞은 도료를 발라둔 물건이었다. 원하는 숫자의 반대쪽 면에 마력을 집중해서 무겁게 만들면 조작할 수 있었다.

하필 6의 반대 면인 1은 가장 큰 눈이다. 섬세하게 컨트롤할 필요 없이 특정 부분만 골라서 마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모든 주사위가 이런가?"

"예, 예에···."

"마나를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만 평등한 주사위라."


펠릭스가 주사위를 아래로 내려놓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주사위 도박에 참가한 인원은 8명. 네리카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마력을 형성하지 못했고, 근육에 의존하는 자들뿐이었다. 그나마 소드 유저 정도 되는 인물은 있었으나, 마력을 오러로 바꿀 수 없는 자에게 신경을 쏟을 이유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가끔 용돈을 벌러 오는 사작을 제외하면 평범한 주사위였다. 네리카조차 익스퍼트 하급에 불과했으니 펠릭스만 꼼수를 사용하지 않으면 그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뭐, 이 건을 해결하는 건 자네들의 몫이겠지. 계속하세. 누구 차례지?"

"접니다."


놀라운 일을 벌이기는 했으나 펠릭스는 솔직하게 속임수를 공개했고, 입증하기도 했다. 노름판 사람들은 그나마 부드러운 분위기로 펠릭스에게 나름의 '상납'을 하려고 했으나, 주사위를 조종할 줄 아는 펠릭스는 오히려 돈을 잃어주었다.

그렇게 300골드 정도를 노름판 사람에게 잃자 얼굴이 굳는 건 그들. 귀족 어르신에게 즐거움을 주고 무사히 물러가도록 유도해야 하는데 흐름이 영 안 좋았다. 몇 명은 식은땀을 흘릴 정도로 긴장할 정도.


'다들 마음씨는 좋군.'


주사위가 두 바퀴 더 돌자 사람은 아예 판돈을 높였다. 딴 만큼 크게 걸어서 귀족이 희열을 느끼도록 접대하려는 속셈이었다. 펠릭스는 애초에 질 생각으로 평균 이하 숫자만 내놓았는데 말이다.

눈빛으로 상대방을 탓하며 누굴 찌를 것처럼 보이자 펠릭스가 발로 바닥을 가볍게 쳐서 주의를 환기했다.


"적당히 져주는 건데 눈치들이 부족하군."

"죄, 죄송합니다. 저희가 감히 돈을 받을 처지가 아닌지라···."

"돈을 딸 거였으면 수작을 부렸겠지. 패배를 이렇게 하는데 순전히 내 운이 그토록 나쁘다고 생각하나?"


펠릭스의 일침에 목을 움츠리는 떡대들.


"이 녀석이 자네들에게 끼친 손해를 물어주려는 거야. 그동안 난동을 조금 부린 게 아니었을 거 아닌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야! 너!"

"씁."


근육 덕분에 어깨가 떡 벌어진 여자의 말에 체스터가 바락 소리를 질렀지만, 펠릭스는 체스터의 목뼈를 때려 입을 다물게 하였다.


"하지만 너무 과한 보상입니다, 남작님. 부서진 게 좀 있기는 하지만, 이 주변에 흔한 게 나무라 어렵지 않게 고쳤습니다."

"이런. 괜한 짓을 해버렸군."

"아닙니다. 마음만이라도 감사합니다."


떡대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꾸벅 숙이는 모습은 굉장한 압박감이었다. 깡패 조직의 보스가 이런 느낌인가 싶다.

펠릭스는 괜찮다는 손짓을 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른 편의를 봐주지."

"예? 편의라니요?"

"이 주사위를 만든 마법사에게 안내하게. 대가를 받게 해주지."

"그, 그러지 않으셔도···."


노름판 주인이 큰일에 휩쓸리는 걸 꺼리자 펠릭스는 눈을 직시하며 의지를 전달했다.

체스터에게 빚을 얹기 위해선 책임을 대신 갚아주는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는 점도 있지만, 도박판을 중개로 실력 있는 도굴꾼을 구하려 했으므로 도움을 줄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했다.

그러니 돈으로 배상하거나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굳이 어렵게 돌아가는 중이었다.


"나중에 술이나 한 잔 주게."

"으음···! 아, 알겠습니다."


결국 펠릭스가 넌지시 '나중에 받아낼 거다'라고 암시를 주고서야 거래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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