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장손신희님의 서재입니다.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장손신희
작품등록일 :
2020.04.07 05:55
최근연재일 :
2020.11.06 06:00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9,879
추천수 :
230
글자수 :
391,305

작성
20.08.09 06:00
조회
51
추천
2
글자
11쪽

티올 요새 (2)

DUMMY

성벽 너머 셋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는 티올 요새에 짙게 깔린 적막 속에서 펠릭스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퍼뜩 돌렸다.


그곳에는 검은 그림자가 서 있었다. 시력을 집중해 바라보았으나 유령처럼 흐릿할 뿐. 주위만 뚜렷해졌다.


"넌 뭐냐."


펠릭스는 마나를 움직여 흐릿한 그림자를 옥죄려 했다. 하지만 안개처럼 흩어졌고, 마나가 사라지자 다시 흐릿한 형태가 나타났다.


정체가 궁금했으므로 가까이 다가갔다. 억울하게 죽으면 언데드로 되살아난다지만, 이렇게 압도적인 공포로 군림하며 죽었기에 그럴 가능성은 없었다.


'신적 존재와 관련 있는 녀석인가?'


펠릭스가 다가오려는 낌새를 보이자 검은 형체는 바닥으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땅바닥을 물끄러미 바라본 펠릭스는 발을 작게 굴렀다. 지진을 측정하듯 아래에 공동이 있는지 확인한 것이다.


다른 공간과는 다르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비명도.


'숨어있던 쥐새끼가 있었군.'


요새라고는 해도 모두 병사인 건 아니다. 민간인도 있고, 그들이 대피할 수 있는 공간 정도는 있는 법.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요술을 부렸다가 딱 걸린 상황. 이번에는 아예 박살 낼 요령으로 다리를 힘차게 굴렸다.


쾅 소리 직후 바닥과 함께 주저앉는다. 1m도 채 되지 않는 깊이에 숨어있던 건 전투가 불가능한 약자들이었다. 너무 어리거나 너무 늙었거나.


"이런, 결단력 있는 녀석도 있었군."


천장이 아래에 떨어지며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그 연막에 온몸을 던져 단검으로 급소를 찌르려던 소년의 손목을 낚아챈 펠릭스.


"오랫동안 동떨어져 살았을 테니 의사소통은 안 될 테고···. 고통 없이 죽여주마."


손목을 잡혀 들린 소년의 모습은 도살하기 직전의 멧돼지나 다름없었다. 마나를 튕겨 생명력을 붕괴시키려 했던 펠릭스의 계획은 다른 소년들의 돌진으로 막혔다.


하나같이 단검을 들고 있어서 그냥 맞아주기는 어려웠다. 몸에 마력을 불어넣어 실질적인 위협은 되지 않았지만, 불안정한 바닥 위에서 갖가지 방향의 충돌이 들어오는 건 좋지 않았다.


죽이려던 소년을 그대로 사방으로 휘둘러 달려들려던 소년들을 내쳤다. 너무 강한 힘 때문에 연약한 아이의 어깨로는 버티지 못하여 팔이 뽑혀버렸다.


펠릭스틑 팔 조각을 바닥에 떨어트리며 노인들의 면면을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인제 보니 주술사도 있었네. 하긴, 전투능력이 아주 전혀 없는 사람끼리 뭉쳐놓으면 우왕좌왕하다가 자멸하지.'


노인 중에 눈썰미가 날카로운 자도 있었다. 동요하지 않고 바로 반격할 준비를 하는 자들. 펠릭스는 눈빛으로 그런 노인들의 머리통을 박살 냈다.


수박 터지는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흠."


노인이 쓰러지자마자 아이들이 얼어붙었다. 달려들던 아이들도 뻣뻣하게 굳었다. 눈치를 보니 이상한 술수 같은 건 아니었다.


펠릭스가 고개를 돌려 사방을 바라보았다. 천장에서 아래로 떨어지던 돌조각이 점차 느려졌다.


'시간이 멈추는군. 누구 짓이지?'


이윽고 돌조각이 떨어지는 걸 완전히 멈췄을 때, 지하실 바닥에서 촉수처럼 일렁이며 기운이 솟아올랐다.


펠릭스는 담담하게 정체를 드러내는 존재를 바라보았다. 누가 나타나더라도 창조신이자 주신 샤메드의 뜻으로 이곳에 존재하는 자신보다 윗줄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까닭이다.


- ···그대는 누구이길래 나의 아이들을 그리도 가혹하게 참살하는가?

"그건 알 것 없고. 나를 알고 싶다면 자기소개부터 먼저 해라."

- 광오하군···. 필멸자가 가질 자세가 아니다.


아지랑이는 점차 하나로 뭉쳐 사슴 형태가 되었다. 하늘을 향해 뻗은 뿔은 언뜻 보기에도 위엄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지만, 정령 따위에 무릎 꿇을 펠릭스가 아니었다.


사슴은 펠릭스의 눈빛을 잠자코 바라보았다.


- 돌아가라. 이곳은 나의 거처. 더럽히는 건 용서하지 않아.

"그건, 네 뜻이겠지."


펠릭스는 마나를 일으켰다. 시간이 정지된 탓에 마나의 움직임이 부드럽지는 않았지만, 애니미즘 신앙으로 만들어진 작은 신의 힘 따위는 어렵지 않게 거스를 수 있었다.


펠릭스가 조금씩 움직이자 몸 주변으로 균열이 퍼졌다. 얼음이 깨지듯 공간에 금이 사방팔방 뻗어 나간 것이다.


재차 구속하려고 신성력이 움직이자 균열이 다시 메꿔지며 발걸음이 느려졌다.


"번거로운 짓을 하기는."

- 뭐? 대체 어떻게!


공간을 고정해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기술을 힘으로 꺾어버리자 신은 경악하며 뒷걸음질쳤다.


펠릭스는 사슴의 뿔을 덥석 부여잡았다. 물리적 형태를 지워 도망치려던 신은 앗 소리도 못하고 머리를 얻어맞았다.


한참 주먹질을 하자 뿔이 뚝 부러졌다. 육체가 없는 신의 특성상 펠릭스의 힘에 변형됐다는 건 버틸 수 없다는 방증.


"벌써 항복이냐?"

- ···!


사슴이 머리를 크게 휘둘러 아직 부러지지 않은 반대쪽 뿔로 펠릭스의 가슴을 후려쳤다. 묵직한 충격이 느껴졌지만, 고통은 없었다.


마나를 끌어올려 방어막을 구축해놓은 덕분이기도 하지만, 신의 힘이 너무 미약했다.


'무안단물이 따로 없어. 마나만 입히면 언데드고 신이고 다 때릴 수 있으니.'


펠릭스가 끄떡도 안 하자 사슴은 당황한 기색을 숨김 없이 보였다. 분명 전력을 다해서 때렸는데 움찔하는 반응조차 없다.


발경이나 침투를 생각하며 만에 하나에 대응하려던 펠릭스는 아무런 징조가 없자 고개를 한 번 갸웃하고 부러지지 않은 반대쪽 뿔을 덥석 잡았다.


"무슨 능력이 있길래 이곳에서 신앙을 받았는지 모르겠다만, 나에겐 안 통해."

- 이···, 이이···!


펠릭스는 신이 대단한 기술을 사용하면 역산해서 뺏어볼 생각으로 기다렸다. 그런데 보잘것없으니 이번엔 죽이려고 주먹을 들었다.


분노에 찬 사슴이 부들거리는 얼굴로 주둥이를 나불거렸다.


- 저주하겠다! 네놈의 그 오만함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을 잃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를 기억해라! 나는···!

"속 좁은 놈이군."


두들겨 맞으면서도 꿋꿋하게 저주를 외치던 사슴 형태의 신은 마나를 머금은 주먹 29번째를 견디지 못하고 붕괴했다.


이름조차 말하지 못한 신이 죽자 펠릭스를 결속하던 시간이 다시 서서히 흐르기 시작했다.


"헙!"

'아, 쟤들에겐 내가 순간이동 한 것처럼 보이겠구나.'


주위에서 놀라는 반응을 보이자 펠릭스는 단번에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이 정도면 되겠지."


정말 아무런 힘도 없는 노인과 아이만 남은 지하실. 펠릭스는 신인지 정령인지 꽤 높은 격을 때려죽인 덕분에 흥분을 절제할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존감을 충족한 덕분에 한낱 인형을 부수며 만족감을 느낄 필요가 사라졌다.


펠릭스는 염동력으로 지하실에서 덜덜 떠는 41명을 모두 들어 올려 지상으로 꺼냈다. 본인은 뜀박질 한 번으로 올라갔다. 그 순간 저쪽에서 눈빛 하나와 시선이 맞았다.


"체스터. 스크롤을 찢어라."


바다에서 대기하는 선장에게 신호를 주는 스크롤을 체스터에게 맡겨둔 상태. 전투 중 망가질 가능성이 있어 성벽에 뛰어들기 전에 가방째로 건넸었다.


펠릭스가 저지른 참상을 보던 체스터는 명령을 듣자마자 군말없이 가방에서 스크롤을 꺼내 찢었다.



* * *



도착 하루 만에 티올 요새를 점령하고 포로 41명을 사로잡았다는 보고는 하즈킨 공작성을 발칵 뒤집었다. 별다른 기대 없이 휴식하던 공작은 마시던 설탕물을 뿜을 정도.


쾌속선으로 이동해서 가까이 접근해 생명체 식별을 해본 마법사들의 결론이었다. 거인이 난동을 부린 것처럼 파괴적인 흔적으로 가득하다는 정황으로 가득했다.


"크음···."


하즈킨 공작은 지끈거리는 두통 때문에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지금까지 버티며 도움이 필요 없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는데 막상 소드마스터 상급을 전장에 투입하니 불만을 뱉을 수가 없었다.


티올 요새 하나를 함락하려고 병력을 투입했다가 본 손해가 얼마였던가. 7년에 걸쳐 사작 30명과 병사 2,000명이 사망했다. 망실한 기간트 골렘만 하더라도 4기에 달했다. 그걸 하루 만에?


'단신으로 요새를 함락시킬 줄이야. 규격 외 괴물이 아닌가!'


본토의 공작들이 소드마스터 하나에 지나친 특혜를 준다고 불평하던 자들의 입을 다물게 만드는 성과이기도 했다.


비공식 정보로서 티올 요새에는 야만인이 섬기는 정령도 존재했다. 비공선을 추락시킬뻔한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런데 손에 들린 보고에는 그 신의 사당까지 파괴되어 있다고 적혀있다.


그렇다는 건 단순히 요새만 함락한 게 아니라 정령까지 없앴다는 것.


"젠장, 이딴 식으로 빚지는 건 사양인데."


하즈킨 가문은 처음부터 공작위가 아니었다. 본래 백작 가문이었으나 남부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은 투자를 해서 경합 끝에 공작으로 승격한, 역사가 50년도 안 되는 신흥 공작가였다.


이전에는 영지 없이 상단을 경영하며 막대한 돈을 굴리던 백작가였다. 그러다가 돈을 쏟아부어 개척에 이바지한 대가가 공작위와 광대한 미개척지. 50년이라는 시간 끝에 겨우 수익성을 거둘 수 있는 땅으로 만들었다.


이제 좀 쉬면서 여윳돈을 준비해야 하는데 오세안에서는 더 박차를 가하라고 하니 미칠 노릇.


'티올 말고도 걸리적거리는 곳은 많아. 하지만 그곳을 공격하면 거기까지 확장해야 해. 지금도 감당이 안 되는데 더 몰아치라고?'


개척민에도 질이 있다. 순수하게 자신의 땅을 가지고 싶다는 열망으로 개척에 참가하는 사람과 험한 땅에 갖가지 사유를 떠안고 대가 혹은 처벌 형식으로 참가하는 사람의 결과물은 천지 차이다.


50년에 다다르는 시간 동안 순수한 개척민은 씨가 말랐다. 그러니 지금 영역을 확장해 봐야 감당 불가능한 땅이 늘어날 뿐이었다.


'통제가 힘든 개척촌에 가축을 밀어 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미치겠군.'


노예 신분에서 해방하는 걸 조건으로 끌어모을 수 있는 인력도 있기는 했다.


수인족. 마왕 편에 붙어서 인류를 배반한 가축 종족을 끌어와 개척하는 것이다. 30년 정도 지나면 술수를 부려서 다시 노예로 강등시켜 샅샅이 다른 지방으로 흩트려야 하므로 지금은 몰라도 나중이 곤란해진다.


이미 한창 개척한 땅에 새로 들어올 사람이 과연 잘 적응, 순응할 수 있는 주민일 거라는 보장도 없다.


'협상을 좀 해야겠군.'


살면서 겪어본 적 없던 소드마스터에 관한 시선을 바꾼 하즈킨 공작은 펠릭스와 직접 협상하기로 다짐한다.


티올 요새처럼 거점을 하나씩 박살 내면 남는 거라고는 빚더미뿐. 눈에는 띄지 않으면서 체면은 살릴 수 있는 타협을 살려야 했다.


그 시각 펠릭스가 할리자노크에 도착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장기휴재 공지 20.11.17 42 0 -
공지 업로드 시간 20.05.17 94 0 -
73 합류 +1 20.11.06 36 1 15쪽
72 국외 정쟁 (3) 20.11.02 26 1 15쪽
71 국외 정쟁 (2) 20.11.01 28 1 15쪽
70 국외 정쟁 (1) 20.10.31 31 1 15쪽
69 정리 실패 20.10.27 32 1 15쪽
68 유격대 소탕 (5) +1 20.10.23 36 1 11쪽
67 유격대 소탕 (4) 20.10.06 32 1 11쪽
66 유격대 소탕 (3) 20.10.06 35 1 12쪽
65 유격대 소탕 (2) 20.10.05 36 0 12쪽
64 유격대 소탕 (1) 20.10.02 41 0 11쪽
63 전장의 변화 20.09.30 44 0 12쪽
62 귀환 (2) 20.09.28 37 2 11쪽
61 귀환 (1) 20.09.03 49 0 11쪽
60 지하묘지미궁 베린 (6) 20.09.01 46 1 13쪽
59 지하묘지미궁 베린 (5) 20.08.26 48 0 12쪽
58 지하묘지미궁 베린 (4) 20.08.24 49 0 11쪽
57 지하묘지미궁 베린 (3) 20.08.19 44 3 11쪽
56 지하묘지미궁 베린 (2) 20.08.15 50 2 12쪽
55 지하묘지미궁 베린 (1) 20.08.13 54 1 11쪽
» 티올 요새 (2) 20.08.09 52 2 11쪽
53 티올 요새 (1) 20.08.06 56 1 12쪽
52 도굴과 도박 (3) 20.08.04 64 1 12쪽
51 도굴과 도박 (2) 20.07.29 68 2 11쪽
50 도굴과 도박 (1) 20.07.27 68 2 12쪽
49 개척지를 향해 (2) 20.07.24 74 2 12쪽
48 개척지를 향해 (1) +1 20.07.22 72 3 11쪽
47 셔플 & 딜 (4) 20.07.14 80 2 12쪽
46 셔플 & 딜 (3) 20.07.09 74 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