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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신희님의 서재입니다.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장손신희
작품등록일 :
2020.04.07 05:55
최근연재일 :
2020.11.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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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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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9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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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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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지하묘지미궁 베린 (3)

DUMMY

지하 4층은 마기가 짙어 아무나 접근할 수 없었던 덕분에 곳곳에서 장신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일레이자는 차근차근 금속제 장신구를 수집해 비교하며 공통점을 분석했다. 반지, 목걸이, 팔찌 등 갖가지 패물이 열 개에 달하자 일레이자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펼쳤다.


"대몰락 이전에 대마법사가 통치하던 이벨락 문화권의 장신구에요."

"근거는?"

"마왕이 등장하기 전을 기준으로 해도 마나석을 일개 장식물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얼마 없어요. 기초적인 방어 마법도 없고, 마나 공급용 열쇠로 쓰는 것도 아니에요. 이게 가능한 건 엄청난 마나석 매장량으로 형성된 이벨락 문화권이 유일해요."


현실에서도 비슷한 예시가 있어 펠릭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트(Jet)라는 석탄 보석처럼 자원이 넘치는 곳에서만 사치품으로 가공되기도 한다.


일레이자는 이것저것 재잘거리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벨락 문명의 융성함이 얼마나 대단한지 떠들었다.


처음에는 그만 말하라며 저지하려고 했지만, 횃불 타는 소리 말고는 조용했으므로 계속 떠들게 놔두었다.


네리카와 체스터도 심심했는지 귀를 쫑긋 세워 일레이자의 강의를 들었다.


"기록상 최초로 부양선을 개발한 국가가 이벨락이에요. 개발 목적은 하늘의 신이었던 마일로스가 총애하는 신도에게 선물하던 하늘배 복사였지요."

"뭐, 하늘배?"

"네! 부양선과 비슷하지만 크기는 훨씬 작았대요. 나룻배 정도 되는 크기였는데, 부양선과 달리 엄청 빨라서 하루면 6,000마일을 이동할 수 있었다고 해요."

'제트기도 아니고···. 그 정도 숫자면 음속은 까마득하게 넘겠는데.'


펠릭스가 턱을 쓸어내렸다. 1마일만 해도 1시간 가까이 걸어야 하는 거리였다. 근대화를 거치며 도로를 정비해서 굴곡 없이 걸을 수 있고, 재료공학과 신체공학이 발달해 잘 만든 신발을 발 크기에 맞춰 신고, 잘 먹고 잘 마셔서 건강해야 1시간에 5km 정도를 주파할 수 있다.


그런데 마법이 있다고는 해도 24시간 만에 6,000마일(9,650km)을 이동할 수 있다고 하자 펠릭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대단원이었던 트로이 전쟁만 해도 신화적 과장을 섞어서야 겨우 10만 명을 넘었지. 그런데 6천 마일이라···.'


내용 그대로 신뢰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부양선이 무엇을 보고 만들어졌는지 설명하는 가설 중 하나로는 그럴듯했다.


"골렘의 원본도 아나?"

"골렘에는 원본이 없어요. 마왕군이 세뇌해서 병사로 부리던 트롤이나 오우거, 그리고 마수 등 거대 개체를 상대하려고 만든 거니까요."

"그렇군."

"네. 굳이 원본이라고 하면, 서리거인이겠죠."


신화시대의 주역 종족은 셋이었다.


최고의 드래곤, 최강의 서리거인, 최상의 신족.


드래곤은 오늘까지 생존했지만, 서리거인은 마왕에 의해 멸종했다. 그 이유는 마왕이 집요하게 서리거인을 노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동속도가 느린 사람이 마왕군을 피해 곳곳으로 피난할 수 있었던 건 결사적인 항전과 필사적인 방어전도 있었지만, 마왕군 자체가 침공 초기에 인류를 노리지 않고 서리거인을 노린 까닭이었다고 일레이자가 주장했다.


"서리거인은 강한가?"

"드래곤보다 더요. 마법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권능이라는 걸 사용해서 초월적인 현상을 만들었대요."

"놀랍군."

"샤메드 교단에서도 존재를 인정하고 있어요. 거인 니요와의 자식이라는 형태로요."

"그것참···. 흥미롭군."


텔로드 성당의 주교에게 들은 바로는 마왕이 있던 마계가 거인 니요와의 무거운 정신이 가라앉아 형성된 별개의 세계였다.


더군다나 당시에 서리거인 이야기는커녕 존재를 암시하는 내용도 없었다.


'캐물어 볼 필요는 있겠군.'


펠릭스는 머릿속에 서리거인이라는 키워드를 넣어두고, 일레이자에게 물었다.


"활발하게 말하는 중에 미안한데, 지도는 잘 만들고 있는 거 맞겠지?"

"네. 미궁에 공간왜곡 관련 설비가 없다면 여기나 여기에 통로가 있을 것 같아요."


일레이자가 약도를 그린 종이를 살짝 들어 펠릭스에게 잘 보이도록 펼쳤다.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동안 지하 4층 지도는 3층의 절반 정도 채워진 상태였다.


지하 1층의 절반 면적이 지하 2층, 지하 2층의 절반 면적이 지하 3층. 이런 식으로 면적이 반으로 깎이는 역피라미드 형태라 밑으로 내려갈수록 통로를 찾기는 쉬웠다.


펠릭스는 일레이자의 약도를 보고 고개를 작게 끄덕여 만족스러움을 드러냈다.


"좋아, 계속 가자."


펠릭스는 그렇게 말하며 횃불이 비치는 공간 밖에서 다가오는 언데드의 마기를 분해해서 순수한 마나로 전환하는 방법으로 없앴다.


세 명은 전혀 낌새를 느끼지 못하고 유골로 가득한 벽을 따라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돌아다니기 바빴다.


'대단한 언데드는 없네.'


1~2층에는 좀비, 3층에는 구울 다수와 스켈레톤 소수, 4층이 되어서야 겨우 낡은 병장기나마 걸친 스켈레톤이 돌아다녔다. RPG 게임 스타일로 풀어서 말하자면 스켈레톤 병사라고 말할 수 있는 녀석들.


그나마 빈번하게 출몰하고는 있지만, 펠릭스가 손도 뻗지 않고 정신파만으로 해체할 수 있어 별다른 위협은 없었다. 마나에 대항할 수 있는 실력자조차 없는데 무슨 위기감이 있겠는가.


"찾았어요. 여기네요."

"아, 뭐야. 처음에 왼쪽으로 돌았으면 바로 내려갈 수 있었잖아?"


첫 갈림길에서 바로 다음 층으로 내려갈 수 있었던 통로가 있었다. 왼쪽 길이 긴 외길이었던 탓에 되돌아갔다가 괜히 시간 낭비를 한 셈이 되었다.


펠릭스는 출입구로 내려가기 전에 제안했다.


"시간이 꽤 지났으니 여기에서 간단하게 식사하고 내려가지."

"그럴까요?"


일레이자가 짐을 풀었다. 가방에서 나오는 휴대용 발화 장비와 건량 조금.


발화장치를 바닥에 내려놓고 조각을 조작하자 작은 불길이 피어올랐다. 무쇠 냄비에 건량과 물을 부어 끓였다.


"···굉장히 능숙하군. 거기까지 다 할 줄은 몰랐는데."

"제가 할 줄 아는 게 이런 것밖에 없는걸요."

"흠."


잘 말린 고기와 채소 가루와 곡물가루를 풀고 거기에 물을 좀 부어서 양을 불리면 그걸로 끝. 1끼에 정량으로 먹을 수 있게끔 천에 돌돌 말아서 보관하면 되므로 불과 물만 있으면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모닥불을 피울 거로 생각하던 펠릭스에겐 다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닥불도 아티팩트로 해결되는 세상이었다.


"연기가 없군."

"그게 중점이에요. 빛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연기 때문에 위치가 들킬 수 있으니까요."


발화장비는 좋게도 나쁘게도 캠핑 스토브처럼 원통형으로 생겼다. 조작하는 건 기간트 골렘처럼 마법진이 각인된 퍼즐을 끌어서 조합하면 끝.


잡탕 수프가 끓자 국자로 떠서 한 그릇씩 배를 따뜻하게 덥혔다.


"그러고 보니 슬슬 밤이긴 하군. 지상으로 나가려면 지금 움직여야 할 텐데?"

"마기가 딱히 짙지 않은 것 같은데, 안에서 자도 괜찮지 않을까요?"

"글쎄."


펠릭스는 가까이 다가오는 스켈레톤 병사 다섯을 해체하며 중얼거렸다.


네리카와 일레이자는 펠릭스가 주기적으로 마나를 갈아줘서 아무런 영향이 없었으나 체스터는 아니었다. 신성력이 계속 자극되며 압박을 받은 탓에 기력이 많이 상한 상태였다.


계단 아래에는 지하 4층보다 더 짙은 마기가 넘실거렸다. 더군다나 스켈레톤 정도가 아니라 벽을 통과하는 스펙터나 레이스 같은 영체 언데드가 느껴졌다.


길이 있는 곳만 주의하면 그만이었던 지금까지와 달리 지하 5층부터는 벽 너머도 감지해야 하므로 신경을 분산하면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다.


"돌아가지. 지금은 무사할 수 있어도 내일은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네에···."


일레이자는 시무룩 쪼그라들었다. 지금까지 식객이나 노예처럼 무기력하게 지내다가 인제야 본인의 능력을 과시할 수 있게 되었는데 물러난다고 하니 맥이 빠진 것이다.


펠릭스는 풀죽은 일레이자가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으며 피식 웃었다.


"네 지식은 큰 도움이 되었다. 내일은 쉬고, 모래 다시 내려오자."


일레이자는 머리가 쓰다듬어질 줄은 몰랐는지 바짝 굳었다. 네리카는 그걸 부러운 듯이 보다가 시선을 돌렸고, 체스터는 진즉에 고개를 돌려 보질 않았다.


펠릭스는 일레이자가 딱딱하게 굳자 멋쩍어서 슬며시 손을 뗐다.



* * *



"제 생각보다 늦게 돌아오셨군요. 여기로 오시죠, 모닥불을 만들어놨습니다."

"수고했다."


먼저 지상으로 올라갔던 길잡이는 야영을 위한 터를 만들어놨다. 그곳에서 숙식을 위한 캠프를 차려놓고 네 명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펠릭스는 야영지에 풀썩 주저앉았다. 곤충 언데드가 다가올 수 없게 놔둔 아티팩트가 빛을 반짝이며 자잘한 날벌레를 퇴치하는 걸 제외하면 아무런 소리도 안 들리는 적적한 공터.


"소득은 있었습니까?"

"꽤 있었지. 이벨락 유적인 것 같더군."


펠릭스는 모닥불에 불쏘시개를 쑤셔 불씨를 살리며 길잡이에게 물었다.


"통신 온 게 있나?"

"없습니다."


텐트 안쪽에 설치된 수정구. 바깥과 연락하기 위해 만든 마력 보조용 아티팩트였다. 이곳에 모인 사람 중 마법사가 없으므로 가져온 물건.


상대방은 수정구에 구체적인 화면이나 소리를 전달할 수 있지만, 수정구 소지 측은 상대방에게 간단한 신호 정도. 통신에 쓰이는 마나석 외에 신호용 마나석이 더 필요한데, 마나석이 값싸지 않아 잘 쓰이진 않는 도구였다.


'마법사 하나만 있어도 필요 없는 데다가, 이런 특수한 상황 아니면 효율도 좋지 않아.'


굳이 비유하자면 군대에서 쓰는 단파 무전기였다.


"피곤하실 텐데 이만 돌아가심이···."

"응? 아니야. 내일은 쉬고 모래 들어갈 거다."


길잡이는 조심스럽게 귀환을 요청했으나 펠릭스가 거절했다.


펠릭스의 거절에 길잡이는 침음을 흘렸다. 하즈킨 공작은 베린 공략을 꺼렸다. 정확히는 겨우 5명이 타파하는 걸 우려했다. 괜히 심층을 자극해서 좀비나 구울이 바깥까지 기어 나오거나 마기의 범위가 넓어질 가능성이 생기는 걸 반대하는 탓.


이미 한 차례 무분별한 탐사로 마기의 범위가 확장한 전례가 있는 탓에 없어지지 않는 걱정거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미궁 안에 늘 돌아다니던 언데드는 안 보였고···. 이상징후인가?'


길잡이는 펠릭스가 들쑤시는 모닥불 안에 장작을 넣으며 생각에 잠겼다.


정기적으로 미궁의 변화를 조사하고 기록하는 것만으로 목돈을 모을 수 있는 일감이 없어지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아, 그러고 보니. 자네."

"말씀해주십시오, 남작님."

"이름이 뭐였지? 소개도 없었군."

"지금처럼 길잡이라고 불러주십시오."

"뭐야. 이름을 숨기며 사는 건가."

"송구합니다."


펠릭스는 모닥불 주위 돌멩이 위에 식수를 끓이기 위해 청동잔을 얹었다.


"익스퍼트 중급이나 되면서 용병질 하는 것도 그렇고. 이런 먼 개척지까지 올 정도면 여러모로 꼬인 복잡한 문제겠군."

"그렇습니다."

"알겠다. 더 캐묻진 않지."


그 말을 끝으로 식사 후 잘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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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귀환 (1) 20.09.03 5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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