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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신희님의 서재입니다.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장손신희
작품등록일 :
2020.04.07 05:55
최근연재일 :
2020.11.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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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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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묘지미궁 베린 (4)

DUMMY

탐사 27일째.


"다리가 아니라 골반과 발목을 신경 써. 날렵한 움직임은 관절에 있다."


펠릭스는 지하 1층과 2층을 순회하며 네리카에게 대인 전투를 가르치고 있었다.

지하 7층까지 내려가본 결과 원격 마나 주입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마기 농도 탓이다. 신체에 직접 접촉하면 되지만, 한두 번이어야 자연스럽지 계속 반복하면 의심받는다.

따라서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낼 겸 네리카에게 좀비를 상대하며 사람 상대로 싸우는 방법을 가르치는 중.


"무릎은 당장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무릎 관절은 한 방향으로만 움직여. 기본만 할 줄 알면 족하다. 네 수준에서 중요한 건 발목과 골반이다."


펠릭스는 네리카에게 보법을 가르쳤다. 정확히는 스텝이라고 부르는 움직임.

허리와 골반을 한 세트로 움직여 하체 전반에 관성과 반동을 활용하고, 발목을 사용해서 발바닥 전체를 활용하도록 하는 움직임이었다.


"발뒤꿈치, 발날, 발허리를 의식하고 사용해봐. 바닥을 어떻게 딛는가에 따라 다음 동작에 실리는 힘이 달라진다."


네리카는 펠릭스의 말에 따라 검을 휘둘렀다. 셀튼 이드쿨라에게 배운 기본기 이상으로 뭔가를 배운 적 없었던 네리카는 펠릭스의 말 하나하나를 새겨들었다.

허리와 골반을 움직이자 하체에 실리는 힘이 평소보다 커졌다. 평소처럼 발바닥 전체를 사용해 땅을 디디면 발뒤꿈치만 사용하므로 동작 하나하나는 위력적일 수 있어도 지속력 면에서는 힘들다.

상체를 움직여 검을 능수능란하게 휘젓기 위해서는 간격 조절이 필수. 펠릭스가 네리카에게 가르치는 요소였다.


"상대의 거리를 조심해라. 내가 공격할 때 접근하고, 상대가 공격할 때 물러나고. 몸 전체를 사용해. 물러나는 걸 두려워하지 마라. 공격 한 번을 위해 공격 한 번을 허용하는 건 안 된다. 그건 방패를 들 때나 가능한 일이야."


네리카가 좀비의 팔 휘두르기를 피해 크게 한 걸음 물러났다. 물러나는 동시에 팔을 들어 올려 검을 올렸다. 그리고 한 걸음 전진하며 내리치기 한 번.

일격으로 좀비의 어깨부터 허리까지 쭉 갈라버렸다. 반으로 쪼개진 좀비가 그 자리에서 허물어졌다.


"이제 제법 끊어치기가 잘 되는군."

"펠···릭스 덕분이야."

"그래."


네리카는 머뭇거리며 이름을 말했다. 아직도 이름을 말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네리카.

마침 아래층에서 체스터가 올라왔다.


"말씀하신 거 찾았슴다."

"수고했다. 올라가지."


체스터가 찾은 건 벽을 구성하는 유골 사이에 온전하게 남은 문서였다. 수십만 명이 한 자리에 묻혔는데 기록물이 없을 가능성은 작았다.

역피라미드 구조를 전제로 위층은 노예나 백성, 아래로 내려갈수록 고위층이라는 걸 가정한다면 순장한 곳에 부장품(副葬品)이 어딘가에는 있어야 했다.

펠릭스가 네리카에게 검술과 체술, 일레이자에게 호신술을 가르치는 사이 체스터가 지하 4~5층을 탐방하며 부장품을 회수하는 역할분담.


"이건···."

"소득이 될만한 게 있나?"

"네. 아마 이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레이자는 부장품과 기록물을 대조한 결과를 네 명에게 말해주었다.

이벨락 문화권의 마지막 국가인 포렌스 왕국이고, 마지막 왕인 네카에나 6세의 종착지라는 것. 역사학계에서 네카에나 6세는 마왕군에 포위되어 실패했다는 견해가 주류이나, 이곳은 그걸 반박할 수 있는 유적이라는 결론.

지하에 잠든 인물은 네카에나 6세이거나 직계 왕족이라는 말로 일레이자가 설명을 마쳤다.


"그럼 이 무덤의 주인은 리치겠군요."

"그렇겠지. 네카에나 6세 당사자거나, 같이 피난한 왕궁마법사의 충성심이거나."


설명을 들은 길잡이가 무덤 지하의 언데드를 예상했다.

리치, 생전에 뛰어난 마법사가 죽음을 거부하고 언데드로 전락한 존재. 죽음을 자발적으로 거부한 부류이므로 일반적인 언데드와는 궤를 달리하는 특징이 있다. 이성이 존재한다는 점.


"몇 서클일 것 같나?"

"못해도 6서클은 되겠지요. 하지만 마왕 시대 이전의 존재이므로 오늘까지 살아있다면 8서클일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경이롭구만."


8서클 마법사라면 소드마스터 상급과 비슷한 위치다. 다만 일반적인 생명체일 때의 가정이고, 언데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마나를 마력으로 전환 또는 소화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생명력. 단순히 표시하자면 '마나+생명력=마력'이라는 공식이 나온다. 이것이 주신 샤메드(마나)와 거인 니요와(생명력)의 조화를 증명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언데드는 생명력이 사실상 무한에 가깝다. 생명체로서 생명력을 담는 그릇이 없는 탓.


'함셰르가 말했던 건데, 쓸데가 있나 싶었더니만 여기에서 쓰이네.'


펠릭스는 볼을 긁적거리며 가볍게 감탄했다. 마법학이론 공부 후반에 '무한한 마법'이라는 지극히 흥미로운 요소를 놓고 설명했었다.

언데드의 생명력은 본체로부터 만드는 게 아니었다. 자연으로부터 생명력을 끌어모아 마나를 마력으로 만들었다. 그 말인즉 언데드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주위를 초토화하는 개체라는 말.

고위 언데드일수록 주위를 피폐하게 만들므로 발견이 쉽고, 최우선 토벌 대상이니 죽음을 거부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어떻게 생각하나?"

"큰 문제지만, 아니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가정입니다만, 미궁이 아니라 마법진이라고 생각한다면 가능성이 큽니다. 유적에서 발굴한 마나석이 이곳을 유지하는 동력원이었다면···. 점차 마기가 바깥으로 확장하는 건 마나를 흡수하려는 섭리일 지도 모릅니다."


길잡이는 본인의 추론을 이야기했다. 맞는 말이었다. 대규모 발굴 이후부터 입구가 넓어져서 마기가 흘러넘쳤다고 보았지만, 뒤집어서 말하자면 대규모 인원이 미궁 안에서 온갖 부장품을 들고 나왔는데 그 안에 마나석이 있었을 것이다.

그 반발로 기간트 골렘에 각인한 마나석을 빨아먹었을 것이다. 자연 상태에서 가장 마나가 많은 자원이니까.


"일단 보고부터 하지. 돌아가세."

"알겠습니다."


펠릭스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 일행에게 말했다.


* * *


하즈킨 공작은 펠릭스의 보고에 고민했다. 이벨락 문명은 키펠 왕국보다 더 북쪽에 있었던 고대문명이었다.

부양선을 만든 마도문명이기도 하고, 마왕군에게 맞설 기간트 골렘을 제작한 핵심 기술진의 적지 않은 숫자가 이벨락 사람이었다.

따라서 이벨락 관련 유적는 각국이 바라 마지않는 최고의 연구시설이었다.


"뭐···, 요망이 있나?"


펠릭스의 보고를 받은 하즈킨 공작은 깊이 고민했다.

티올 요새와 다르게 지하묘지미궁 베린은 존재만으로 값어치가 확고했다. 굳이 답파하여 파괴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장기적인 관광명소 겸 연구단지로서의 가치가 있다.


- 글쎄요. 지하 7층까지 있으니 주교 이상 되는 인물 여러 명이 수십 년 동안 정화해야 겨우 학자가 출입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지출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힘들지만, 못할 건 아니지. 이벨락 유적은 그럴 가치가 있네."

- 일반적인 유적이 아니라서 걱정입니다. 최후의 모든 것을 긁어모아 만든 무덤입니다. 제대로 된 연구자료는 없을 테니 허탕일 가능성도 무시 못 합니다.

"그렇기에 귀중한 사료가 있을 수 있지 않겠나?"


펠릭스는 수정구 너머에서 공작에게 고개를 살짝 내저어 부정적인 뜻을 보였다.

도박이나 다름없지만, 하즈킨 공작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았으므로 완고했다. 마법학 관련 유물이 출토되면 대박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역사적 가치가 뛰어나니 중박은 된다.

손해 안 보는 유적인데 발굴에 의욕이 없을 리 없다.


"고생했네. 부양선을 보내지. 이틀이면 도착할 거네."

- 알겠습니다. 이틀 뒤에 뵙죠.


통신 종료. 펠릭스는 의자 등받이에 눕듯이 기대며 목도 뒤로 젖혔다.

통신 마법사는 펠릭스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통신실을 나갔다. 홀로 남자 펠릭스는 표정을 풀고 머리를 굴려보았다.

하즈킨 공작에게 뭔가 변화가 생겼다.


'유독 편한 모습이었어. 익스퍼트 수십 명을 늘려줬을 때조차 찰나에 불과했는데. 기쁨? 아냐, 후련함인가?'


하즈킨 공작이 앓던 이빨처럼 여기는 문제가 몇 가지 있기는 했다. 펠릭스 본인과 관련된 건 개척지 문제였지만, 그 외 문제가 없지도 않았다.

하나는 해상력 지분, 둘은 공단 확보, 셋은 국제적 인정, 넷은 가신단 내부의 대립, 다섯은 인프라 연속성, 여섯은 인재 부족.

무엇 하나 가벼운 문제가 없었다.


"자, 어쩐다."


펠릭스는 홀로 남은 통신실에서 머리를 굴렸다. 하즈킨 공작의 노림수는 무엇인가?


'예전이라면 또 몰라. 은혜를 받은 상황에서 내 말을 무시한다는 건 뭔가 있다는 건데.'


공작성에서 지내며 확보한 정보를 재료로 최대한 머리를 굴려보았다. 두 사람이 합의해서 마게트 전선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말을 맞춘다는 가정하에.

가정은 크게 두 가지.


'내가 할리자노크에 엉덩이 깔고 앉아 있어야 하거나, 이 유적지를 가질 주인이 정해져 있거나.'


둘 다 가능성이 컸다. 역사가 짧은 공작 가문의 특성상 권위가 상당히 작았다. 그래서 역사가 긴 가문이나 대상단을 상대로 교섭이 힘들었다.

섬이라도 배를 다수 확보하지 못했고, 공업지대를 만들어 개척지에서 거둔 풍요로운 자원을 높은 가치로 만들 수 없었다. 더군다나 하즈킨 가문은 오슬레아 대왕국 한정 공작위고, 국제적으로는 백작위였다. 외국 귀족 상대로는 여전히 백작이었다.

공작이라는 권위를 만들기 위해서는 하즈킨 지역을 충분히 개발해야 하는데, 그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는 게 하즈킨 가문의 골칫거리.


'하기야 누가 새로운 강자를 바라겠냐만은.'


펠릭스는 뒷머리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적 발굴 권한은 흔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있을 만한 일이다. 단지 이번에도 공적을 빼앗기는 느낌이라 기분이 좋지 않을 뿐.


'지금 몰래 가서 털까.'


문가에서 기다리던 마법사의 인사를 받으며 통신실 밖으로 나갔다. 도착한 직후 통신을 걸었으므로 시간은 늦은 밤. 다른 애들은 각자 숙소에 들어가서 휴식 중.

마기가 확산하지 않도록 결계를 펼치는 진영은 때마침 한창 부산스러웠다. 결계를 유지하는 다른 지역의 장치를 점검하는 순찰하는 팀의 출동준비 때문이었다. 양쪽으로 출발해 반대쪽에서 만나 반나절 휴식하고 교차하여 귀환하는 방식이었다.

장거리 이동은 물론 숙박까지 준비해야 하므로 준비할 게 한두 개가 아니라 부산스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가도 되겠군.'


펠릭스는 이럴 때가 아니면 몰래 빠져나가기 어렵다 판단하고 곧장 마나를 활용해 몸을 가볍게 만들었다. 톡톡 튀어 무게감을 가늠한 후 즉시 도약.

껑충 뛰어 통신실 건물 옥상에 오르고, 인적이 드문 골목을 넘나들며 외곽 울타리를 뛰어넘었다.

경비병이 눈에 불을 켜고 야습을 대비하고는 있으나, 구름이 달빛을 반쯤 가리고 아무런 인기척도 안 내는 펠릭스의 이동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리치. 리치라···. 어떻게 생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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