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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신희님의 서재입니다.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장손신희
작품등록일 :
2020.04.07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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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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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묘지미궁 베린 (5)

DUMMY

3시간 정도를 달려서 도착한 미궁 출입구. 반파된 기간트 골렘이 랜드마크로 존재하는 곳이라 한밤중이라도 반짝이는 갑옷 때문에 못 볼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담아둔 지도를 떠올리며 지하 7층까지 바로 내려갔다. 마주치는 언데드를 모두 정화하며 도착한 지하 8층.


<그대는 누구인가?>

"오, 제법."


두개골에서 안광을 반짝이는 언데드가 계단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 앉아 있었다.


펠릭스는 오랜 시간 정신을 유지한 언데드에게 흥미가 생겼다.


"나는 펠릭스 란소스 오브 텔로드. 오슬레아 대왕국의 남작이자 소드마스터이다. 그대는 누구인가?"

<나는 포렌스 왕국의 지엄왕 네카에나를 모셨던 친위기사. 모틀란드의 백작, 소그토보 평야와 일렌 산의 적법한 주인이자 노든벨의 후계자다. 그대에게 묻지. 내가 말한 이름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 있는가?>

"전혀."

<······.>


그는 낙담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탄식과 절망이 반씩, 슬픔이 약간 보였다.


"모틀란드 백작. 이름은?"

<···없는 편이 좋겠군. 나는 과거의 망자일세. 그러니.>


백작은 검에 마나블레이드를 맺었다. 두개골에서 빛나던 하얀 안광은 음울한 사파이어처럼 서늘해졌다.


펠릭스는 말없이 검을 뽑아 마나블레이드를 끌어올렸다. 상대방은 오랫동안 고독을 씹으며 바깥에서 구원을 기다리던 자.


'한낱 인형이 아닌 생명체라면, 예의를 갖춰줘야겠지.'


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검을 섞었다. 마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몸을 가볍게, 무겁게 전환하며 무게감을 뒤섞어 백작의 무게중심을 흔들었다.


백작은 펠릭스의 공세를 능수능란하게 받아들였으나 마나블레이드의 순수함에서 밀리는 까닭에 힘이 적어도 두 단계 처졌다.


마나블레이드 순수성에서 밀린 백작은 한 번 검이 부딪힐 때마다 체내 마력이 흔들렸다. 물리적으로나 마력적으로나 펠릭스가 우위. 백작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내가 졌다. 승자의 권리로 목을 취해라.>

"그걸로 만족하나?"

<···지금은.>


모틀란드 백작은 검을 아래로 내리고 조용히 읊조렸다. 펠릭스는 힘의 격차를 체감하자 패배를 인정했다는 느낌이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펠릭스는 재차 백작에게 물었다.


"그럼 기회를 주지."


펠릭스는 백작의 체내에서 꿈틀거리는 마력을 만지작거렸다. 생명력이 없어 마력을 온전하게 수용하지 못해 사방으로 흘러나오던 마기가 잦아들었다.


자연의 생명력을 흡수하는 것으로 존재를 유지하던 육체에 살점이 붙었다. 근육섬유와 신경계가 새싹 돋아나듯 뼈에서 우러났다. 끝내는 인대, 연골, 내장까지.


"무슨!"

"다시 살아봐라. 내가 네게 해줄 수 있는 선의다. 올라가. 다시 살아봐라."


시간을 거슬러 해골만 남은 몸은 다시 생기를 얻어 16살 남짓한 몸이 되었다. 펠릭스와 비슷한 나이였지만, 일부러 몸을 과성장 시켜 20대 초반처럼 바꿨으므로 겉만 보면 형제처럼 보였다.


백작은 아연하게 작아진 몸으로 펠릭스를 올려보다가 물었다.


"어째서 이런 자비를 베푸는 건가?"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정하지. 그러나 누구나 죽음 앞에서 초연하진 않다."

"그건 아니오. 단지 내게 더 살아갈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오."

"설령 그럴지라도."


펠릭스의 말에 백작은 입을 닫았다.


"당신은 명예를 잊지 않았다. 죽음을 극복했지만, 언젠가 찾아올 죽음을 기다렸지. 다른 자들과 다르게."

"······."


펠릭스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바라보았다. 지하 8층에는 상대방과 비슷한 수준의 언데드가 있었다. 마나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있는 거로 보아 데스나이트일 것이다.


눈앞의 백작은 다른 데스나이트와 달랐다. 최소 3,000년. 어쩌면 4,000년 넘는 시간을 미치지 않고 바깥을 기다린 자.


몸이 없는 유령 언데드의 기습을 상대하느라 기감을 넓게 펼친 펠릭스에겐 다른 곳의 데스나이트도 느껴졌다. 그들은 위층의 좀비나 스켈레톤처럼 그저 배회하고 있었다. 목적 없이, 의지 없이.


하지만 백작은 처음부터 계단 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죽음을. 어쩌면 바깥세상의 소식을.


'나였으면 죽음을 견딜 수 있었을까?'


낙석으로 머리가 깨져 즉사했던 까닭에 죽을 때의 기억도 없었다. 그저 잠에서 깨듯 일어났더니 샐러리맨 같았던 신과 만났다.


그저 우연에 의해 2번째 삶을 선물 받았고, 늘 고독했다.


'과몰입인가? 과몰입이군. 과몰입이겠지.'


펠릭스는 등에 짊어진 가방에서 몇 가지 물건을 빼고 통째로 건넸다. 가방을 받은 백작은 가만히 서 있다가 펠릭스가 건넨 옷가지와 검도 받아들었다.


알몸이었던 백작은 옷을 입고 검도 착용했다. 가방도 메니 그저 평범한 모험가로 보였다.


"···나에게 이럴 자격이 있을까?"


피부로 뒤덮인 맨손을 내려다보던 백작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글쎄."

"······."

"죽음과 다르게 자격이라는 건 딱히 공정한 요소가 아니라서."


말을 마친 펠릭스는 던전 안쪽으로 들어갔다. 지하 8층은 고작 축구장 두 개 면적 정도였다. 조금 돌아다니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찾을 수 있는 넓이였다.


데스나이트 열다섯 명을 소멸시켰을 무렵 지하 9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발견했다. 펠릭스는 머뭇거림 없이 내려갔다.


<······.>

"호오···."


아래에 내려온 펠릭스의 시야에 들어온 건 작은 궐이었다. 제단이라고 불러도 위화감이 없었고, 돔구장이라고 해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공간이었다.


계단 맞은편에 있는 옥좌만이 이곳이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고 말하는듯했다. 무엇보다 그 옥좌에 앉은 해골이 있었다.


<당신인가?>

"느닷없군."


펠릭스는 정신파로 대뜸 질문하는 상대방에게 비아냥으로 답했다.


해골만 남은 몸이었으되 금속제 장비는 남아있었다. 미궁 중층의 스켈레톤은 무기와 작은 갑옷 정도만 입었고, 하층의 데스나이트는 흉갑과 각반 등 큰 갑옷도 착용했다.


그러나 눈앞의 해골은 몸에 걸친 물건이라고는 금으로 만든 사슬 서코트와 왕관 하나.


"나는 펠릭스 란소스 오브 텔로드. 오슬레아 대왕국의 남작이자 소드마스터이다. 그대는 누구인가?"


옥좌에 앉은 언데드가 리치라고 여긴 펠릭스는 위에서 백작에게 말했듯 본인을 소개했다.


상대방은 뭔가 하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펠릭스의 자기소개를 듣자 고개를 슬며시 숙였다. 살점이 전혀 없어 보이지 않았으나 보통 사람이라면 도끼눈으로 흘겨보는 모습이었다.


<짐은 포렌스 왕국의 지엄왕 네카에나다. 만족하는가?>

"굉장히 까탈스럽군. 기대했던 만큼 빨리 여기에 온 사람이 없어서 질렸나?"

<그럴 리가. 오히려 이곳에 영원히 사람이 오지 않길 바랐네.>


네카에나는 옥좌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수련을 거듭하다가 어느 경지에 다다르면 투명한 벽이 느껴지지.>

"···?"

<그걸 불합리라고 부른다. 누구였더라. 어느 마법사는 위화감이라고 말하더군.>


옥좌에서 일어난 네카에나가 양손으로 수인(手印)을 그려 강대한 마력을 응집했다.


"지금 내게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의미? 충분하지. 이 세상이 만들어진 이유가 존재한다면, 그 이유에 한 번 정도 묻고 싶어지지 않나.>

"···!"


펠릭스는 네카에나의 말에 표정이 굳었다. 그 모습을 본 네카에나는 의구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네카에나가 양손의 검지를 까딱 움직이자 마력 덩어리에서 뱀이 튀어 오르듯 순수한 힘 줄기가 펠릭스를 향해 회오리치며 달려들었다. 펠릭스는 온몸에 마나를 집중하여 강도를 강화하고 팔을 교차해 머리와 상체를 보호했다.


신체를 강철보다 더 견고하고 질기게 강화했는데도 묵직한 충격이 뼈까지 스며들었다.


<짐의 스승은 의문 하나를 끝내 풀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어째서 한없이 전지전능한 샤메드가 세상을 창조하였는가?>


검을 뽑을 틈도 없이 몰아치는 마력 줄기의 연타에 펠릭스는 근력을 폭발시키듯 끌어올려 정면에서 주먹을 내질렀다.


퍽 소리와 함께 팔꿈치 아래가 터졌다. 대신 3천 년 넘게 산 리치의 힘 덩어리도 붕괴하여 바닥에 흘러내렸다.


"크윽···!"

<샤메드는 니요와를 쓰러트렸지. 니요와는 어디서 나타났는가? 샤메드의 근원은 무엇인가? 어째서 둘은 하나였는가?>


바닥에 흘러내린 마력 웅덩이는 삽시간에 바닥에 넓게 퍼졌다. 반대편 힘 덩어리가 펠릭스에게 달려들었다.


팔을 재생할 틈도 없이 펠릭스는 왼손에 마나 막대기를 만들고 그 위에 마나블레이드를 덧씌웠다. 공간을 갈라버리는 일격에 정면에서 달려들던 마력 줄기가 맥없이 토막나 바닥에 흩뿌려졌다.


<니요와가 샤메드를 창조하였는가, 샤메드가 니요와를 창조하였는가? 둘 다 아니라면 무엇이 둘을 창조하였는가? 창조가 아니라면? 무엇에서 비롯되었는가?>

"늙으면서 헛소리만 늘었나?"

<헛소리라고? 전능한 자가 왜 세상을 만들었는지, 더 나아가 왜 본능을 억누르는 이성을 품은 생명체를 만들었는지, 아는가?>

"······."


펠릭스는 네카에나의 질문의 답을 알았다. 알지만 말하기 싫었다.


심정을 읽은 네카에나는 얼굴 가죽이 없으나 빈정이 상한 것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내가 품은 행복이, 슬픔이, 분노가. 모든 감정이 전부 거짓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공격이 멈췄다. 펠릭스는 마나를 운용해 사라진 팔과 망가진 옷을 복구했다.


<미치지 않은 건 나를 따르는 백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백성이 없는 지금. 뭘 꾸미는 거지?"


검을 뽑았다. 신체를 100%에 가깝게 활성 시켜 강제로 각성 상태로 끌어올렸다.


<기다렸지. 오랫동안. 이 세상을 활보하는 유일한 모순이 있다면, 찾아오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곳을 만들어놓고.>


네카에나는 안광을 빛냈다. 시퍼렇다 못해 불길한 백색광을 흘리며 마력을 움직였다. 깊숙이 묻어둔 증오가 섞이자 마력은 단순한 힘 덩어리가 아니었다.


펠릭스는 사방에 흘러넘치는 마기를 마나로 전환하면서도 검을 움직여 네카에나의 압력을 해소했다.


일진일퇴. 누구 하나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엇비슷한 힘 싸움을 이어나갔다.


'힘은 내가 우위인데, 정교함에서는 한두 단계가 아니라 훨씬 처져.'


신체를 각성 상태로 끌어올린 펠릭스의 공세는 태산을 무너트릴 것처럼 맹렬했지만, 네카에나의 교묘한 술수는 직선으로 쇄도하는 파괴력을 휘거나 무너뜨렸다.


하다못해 직접 타격하려고 몸을 던지면 공간을 왜곡하거나 시간축을 비틀어 신체를 찢어발겼다.


머리가 통째로 으깨지길 4차례. 펠릭스는 마나를 휘감아 신성력으로 우위를 점해보려고 시도했다.


<우습군. 인간이 만든 신의 힘이라!>


네카에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마력을 한층 더 폭발적으로 끌어올렸다. 미궁을 유지하는 힘까지 뽑아서 펠릭스를 옥죄려 한 것이다.


펠릭스는 신성력으로 마기를 분쇄하며 농도를 낮추려 했으나, 마기가 아니라 마력을 운용하자 역으로 밀렸다. 리치가 된 네카에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으므로 신성력이 직접 닿기 전까지는 치명적이지 않았다.


"오래 묵은 생강이 매섭긴 해. 그럼 이건 어떨까."


펠릭스는 네카에나가 시도했던 공간축과 시간축 비틀기를 따라 했다.


두 축이 다른 힘과 각도로 꺾이자 충돌한 부분에서 와류가 발생했다. 시간축 역시 마찬가지였다. 공간은 변곡점을 중심으로 무한히 휘어지고,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특이점으로 변모했다.


<···너, 이 괴물.>

"누가 할 소릴."


한없이 무한한 힘을 먹어치운 좌표에서 파열음이 터졌다. 시공간이 붕괴하며 허수공간이 실수공간에 범람하며 사방팔방을 공(空)으로 잠식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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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유격대 소탕 (4) 20.10.06 33 1 11쪽
66 유격대 소탕 (3) 20.10.06 35 1 12쪽
65 유격대 소탕 (2) 20.10.05 37 0 12쪽
64 유격대 소탕 (1) 20.10.02 42 0 11쪽
63 전장의 변화 20.09.30 45 0 12쪽
62 귀환 (2) 20.09.28 38 2 11쪽
61 귀환 (1) 20.09.03 50 0 11쪽
60 지하묘지미궁 베린 (6) 20.09.01 46 1 13쪽
» 지하묘지미궁 베린 (5) 20.08.26 49 0 12쪽
58 지하묘지미궁 베린 (4) 20.08.24 49 0 11쪽
57 지하묘지미궁 베린 (3) 20.08.19 44 3 11쪽
56 지하묘지미궁 베린 (2) 20.08.15 5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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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티올 요새 (1) 20.08.06 56 1 12쪽
52 도굴과 도박 (3) 20.08.04 64 1 12쪽
51 도굴과 도박 (2) 20.07.29 68 2 11쪽
50 도굴과 도박 (1) 20.07.27 68 2 12쪽
49 개척지를 향해 (2) 20.07.24 74 2 12쪽
48 개척지를 향해 (1) +1 20.07.22 72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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