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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신희님의 서재입니다.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장손신희
작품등록일 :
2020.04.07 05:55
최근연재일 :
2020.11.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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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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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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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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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개척지를 향해 (1)

DUMMY

한 달 뒤, 카난리아프 협정이 마무리되었다.

키펠 왕국은 관세장벽을 조금 높이는 성과만 받아갈 수 있었다.


"오래 걸렸구만."

"아무런 사전협의 없이 즉석에서 상의하느라 바빴지요."


펠릭스는 마법사가 따라주는 술을 마시며 짧게 평가했고, 마법사는 간단하게 이유를 설명했다. 관세장벽을 아무리 높여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부담은 아랫사람이 덤터기쓰는 형태로 끝난다.

완제품을 만드는 중간재를 외국에 의존하면서 관세를 높여봐야 좋은 결과가 나오기란 어려웠다. 8서클 마법사 두 명이라는 근본적인 격차를 해결할 수 없는 이상 키펠 왕국의 협상 패배는 당연한 결과.


"그럼 이 술도 마지막이 되겠군. 수고했네."

"제가 뭘 한 게 있겠습니까. 모두 남작님의 덕분이지요."


다르멜과의 밀약 이후 펠릭스는 카난리아프에서 간단한 투자설명회를 열었다. 겨우 5일 만에 171만 골드를 342만 골드로, 2배로 굴린 덕분에 신뢰성이 드높았다.

어떻게 이익을 얻었는지 설명하면서 불법적인 돈이 아님을 설득시켰다. 더군다나 이번 수입의 절반 이상을 트렐라드 변경백에게 상납한 게 있어서 이것도 알려줘야 했다.

정보의 중요성을 강변하며 수익의 절반을 정보 제공자인 변경백에게 넘겼고, 본인 몫을 쪼개서 투자자에게 넘겼다는 억지였다.


'처음에 설명했던 내용과 다른 데도 그냥 넘어가 줬지.'


투자를 받을 때 했던 설명대로라면 수익의 절반은 투자자가 나눠 받아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 벌어들인 돈은 1,300만 골드. 원금 170만 골드를 제하면 1,130만 골드. 절반은 565만 골드인데 170만 골드만 받았다.

그런데 차액 395만 골드에 대한 추궁을 안 했다. 그렇다면 나오는 이야기는 하나.


'최소한 트렐라드와 인근에서 북부에 원성을 높일 때 내가 불만을 억눌러야 한다는 거지.'


펠릭스는 자신의 머릿속에 이번 일을 담아두었다. 쓸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 * * *


인데브 남작령 앞. 남쪽으로 향하기 전에 시간을 조금 얻어 개인 시간을 확보했다. 펠릭스 뒤에는 용무가 끝나면 즉각 움직일 수 있도록 텔레포트를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펠릭스는 잠시 기다려달라는 수신호를 보내고 사전에 연락한 시간에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방문에 감사드립니다. 방까지 모시겠습니다."

"오래 있을 일도 아니니 접견실에서 기다리겠다."


마중 나온 집사의 환대에도 불구하고 펠릭스는 선을 그었다. 초대받은 손님이 아니라 지나가다가 방문한 객인 정도의 거리감. 집사는 펠릭스의 의중을 눈치채고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접견실에서 기다리며 펠릭스는 지금까지 지나친 영지의 거리를 떠올려보았다. 10년 전에 혼자 돌아다니면서 봤을 때와 겉모습은 변한 게 없어도 분위기는 체감될 정도로 달라졌다. 전쟁에서 끝났다는 해방감과 앞날을 알 수 없다는 막막함에 찌든 사람들의 우중충함이 눈에 보였다.

다른 영지는 아예 엄두도 못 내고 번아웃에 나가떨어져 탄력을 잃은 곳이 많았는데, 인데브 남작령은 그나마 제대로 재건을 위해서 행동하는 몇 없는 영지라고 트렐라드 변경백이 말했었다.


'차라리 무능하기라도 했으면 탓하기라도 했을 텐데.'


연도 끊고 정도 끊은 인데브 남작이었지만, 바람과 다르게 유능한 모습을 보여주자 펠릭스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유능한 사람을 끌어안기는커녕 쳐내야 하니 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의 안도와 불안감, 그 밑의 미래를 향한 미약한 희망을 본 펠릭스는 상념에 빠졌다.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깊이 있는 고민이라 집중은 한순간이었고,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펠릭스의 상념을 깬 건 베로니크의 목소리.


"펠! 정말 펠이야?"

"···베로니크."


어느새 접견실 안에 들어온 베로니크는 펠릭스를 펠이라고 부르며 다가왔다. 유령이라도 보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조각상을 대하는 것처럼 섬세했다.

과한 감정 변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펠릭스는 베로니크에게 현실을 주입했다. 마나를 이용해 골격과 근육 성장을 촉진한 덕분에 펠릭스의 외견은 20대 초반이었다. 앳된 모습은 희미하게 남은 정도에 불과했다.


"응, 누나야. 알아보겠어?"

"희미하긴 하지만 기억은 나. 그건 그렇고 너무 가까운데."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잖아."

"아니, 옛날 기준과는 다르지."


한 걸음씩 다가오는 베로니크의 분위기는 과할 정도로 흔들거렸다. 심한 감정변화 때문에 근육에 경련이 일어나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워진 까닭이었다.

쓰러질 것처럼 휘청이자 펠릭스는 손을 뻗어 팔을 잡았다. 베로니크는 펠릭스를 와락 끌어안으며 얼굴을 가슴에 묻었다. 키 차이 때문에 가슴팍에 얼굴을 부비적거리는 게 고작이었으나 고작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듯 펠릭스의 볼을 꼬집거나 머리를 쓸어넘겼다.


"그믄 흐르."

"펠. 펠. 어디 갔었어. 나는 여기에 갇혀 지냈는데. 도대체 왜 지금까지 와주지 않은 거야."

"브르느크. 느르."

"많이 늦었지만 용서해줄게. 펠은 어리광쟁이니까. 누나가 이해해줄 수 있어."


품에 파고들었으면서 대답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볼을 쭉쭉 늘리며 촉감을 만끽하던 베로니크.

펠릭스는 두 팔을 잡아 베로니크를 떼어내서야 겨우 의사를 표현할 수 있었다.


"나이가 몇인데 내게 매달릴 시간은 지나지 않았나?"

"···펠?"

"침착해라. 그리고 냉정해. 무슨 추태냐."

"······."


펠릭스는 동요하지 않고 진중한 목소리로 베로니크를 나무랐다. 흔들림 없이 하나하나 타이르자 베로니크는 기가 죽어서 바닥을 내려다보며 꼼지락거렸다.

얼핏 보면 혼나는 강아지처럼 보이지만, 발톱을 감춘 맹수 특유의 분위기를 완전히 감추지는 못하였다. 심리에 깔린 집착은 펠릭스가 쳐낸다고 떨어질 수준이 아니었다.


"내가 이곳에 온 건 안부를 건네기 위해서였지, 네 장난 거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펠. 그러지 마···."

"반대로 묻지. 내가 네게 감사할 이유가 그렇게 많나?"


베로니크의 열망이 이글거리자 펠릭스는 좀 더 매몰차게 대하기로 했다. 상대방의 집착을 쳐내려면 이유를 하나씩 짓밟아야 한다.


"어렸을 적에 나를 돌봐준 점은 고맙지만, 그거는 내가 감사해야 할 점이지 네가 즐거워할 점이 아니다. 그런데 네 모습을 보면 겨우 그것 때문에 달려드는 건 아닌 것 같군."

"······."

"이제 좀 진정이 됐나? 그럼 좀 앉지. 10년만인가?"


철저하게 타인을 대하는 자세로 일관하는 펠릭스. 베로니크는 상황을 인지하고 담담하게 펠릭스의 말을 따라 조신하게 의자에 앉았다.


"···건너편에 앉는 게 상식일 텐데. 뭐, 내가 건너가지."


얼굴에 철판이라도 깐 것처럼 옆에 앉으니,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탓에 펠릭스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혀 페이스를 잃을 뻔 했다. 건너편으로 넘어가고서 베로니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데브를 떠나기 전 생활은 기억할 수 없으니, 베로니크의 호의가 굉장히 부담된다며 정면에서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건 트렐라드 변경백의 후견 덕분이었지, 베로니크 덕분이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그럴 때마다 가슴에 못이 박히는 것처럼 좌절과 우울에 빠졌으나, 펠릭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선을 그었다. 그래야 했다.


"이제 좀 진정이 되나?"


베로니크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빗물을 맞는 대리석 조각상처럼 흐릿한 아련함을 자아냈다. 흐느낌 같은 처량함은 없었다. 절실함 같은 애원도 없었다. 마치 둥지를 떠나는 새끼 새를 보는 어미 새처럼 담담하게 눈물을 흘렸다.

아무리 양심을 떠나보낸 펠릭스조차도 내심 움찔할 정도로 분위기가 무거웠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괜히 찔리잖아, 이거.'


불편함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표정을 지웠으나, 가면과 달리 얼굴은 표정을 완전히 감출 수 없었다. 혈육의 정, 그리고 지구에서 사랑을 받아본 적 있으므로 아는 심정을 완전히 외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펠릭스가 할 수 있는 건 자리를 뜨는 무책임뿐이었다.


"이해한 것 같으니, 이만 가보도록 하지."

"······."

"생각나면 종종 찾아올 테니, 그때 다시 보자."


급하게 만남을 마무리하며 접견실을 나가려던 펠릭스의 등에 베로니크의 말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펠."

"왜."

"어떻게 하면···. 네 옆에 있을 수 있어?"


그 순간 시간이 멈췄다. 펠릭스는 할 말을 찾지 못해서, 베로니크는 대답을 기다리느라 멈췄다. 방안에 내려앉은 완벽한 정적에 흠을 내는 바람 소리만이 홀로 요란했다.

펠릭스는 아주 잠깐, 어쩌면 아주 오래 생각했다가 말했다.


"그건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다."


말을 마친 펠릭스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갔다.

문에 기대어 안을 엿듣던 체스터가 바닥에 고꾸라졌고, 그걸 본 펠릭스는 머리를 걷어차 복도로 내쫓은 뒤 문을 닫았다.


* * * *


임시 텔레포트를 각인하는 연병장 앞.


"누님께서 굉장한 미인이시던데요."

"시끄럽다."

"아니 근데 우는 모습이 엄츠억!"


깐족거리는 체스터의 옆구리에 주먹을 삽입해 예의를 주입한 펠릭스.


"네 평가를 들으려고 데려온 게 아니다."

"뭐 그런 거 가지고 때립니까! 난 노예가 아니요!"

"하지만 확실한 건, 나보다 약하다는 거지."

"흐억-"


체스터는 결국 또 한 대를 더 얻어맞고 나서야 입을 다물었다. 펠릭스는 바닥에 철퍼덕 쓰러진 체스터를 흘겨보다가 고개를 돌려 마법사들을 바라보았다.

텔레포트 마법진 완성되었으나 때마침 체스터가 깐족거린 탓에 말을 걸 타이밍을 놓친 까닭에 머쓱하게 서 있었던 탓이다.


"준비 다 끝났나?"

"예, 남작님. 안쪽에 서 주십시오."

"멀쩡한 거 다 안다. 일어나라."

"큭···."


체스터는 가격당한 옆구리를 감싸 쥐며 일어나고, 네리카와 함께 펠릭스의 뒤를 따라 마법진 안쪽으로 따라갔다.

지름 20m 정도의 마법진은 서브컬처에서 보는 것보다 간단하게 생겼다. 세공하듯 정밀한 문장과 글자를 새긴 게 아니라 어린애가 흙바닥에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린 것처럼 조잡했다. 그나마 전문성을 보이는 건 완벽한 원형 하나였다.

마법사들은 마법진 곳곳에 마나석을 배치하였고, 금속을 섞은 뼛가루가 서서히 공명하며 빛을 내기 시작했다.


'임시 텔레포트 마법진은 이런 식으로 움직이나 보네.'


촛불처럼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하고 3분 정도 지나자 마법진 바깥에서 가루가 흩날리지 않도록 바람을 막던 방어막을 해제했다. 한순간에 뼛가루가 허공에 흩날리기 시작하였고, 그 순간 마법진 위에서 서 있던 세 사람은 그 자리에서 가루와 함께 사라졌다.

펠릭스는 이전에 텔레포트를 사용해봤을 때를 떠올려 마나를 활용해 정신을 다잡았다. 현기증처럼 아찔해지는 감각에 네리카와 체스터는 시야가 하얗게 변하며 쓰러졌지만, 펠릭스는 빠르게 정신을 보호한 덕분에 멀쩡히 서 있을 수 있었다.


"오···."


눈 앞에 펼쳐진 건 드넓은 바다. 텔레포트로 도착한 곳은 개척지 최북단 해안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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