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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의 서재입니다.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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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조회수 :
33,364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3.11.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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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여제(2)

DUMMY

“이런 곳에 자동문이 있었구나.”


앞장 서 걷는 고서우의 뒤를 나와 석씨 그리고 나래 씨와 강민서가 차례대로 걸었다.


뒤를 돌아보니 강민서의 옆으로 방금 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박쥐 형태를 한 하얀 무언가가 날아다녔다.

잠깐 의아하게 바라봤을 뿐인데 상대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는지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 계단에 숨어 있던 아이에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공격성이 강한 몬스터가 되지 못하고 이렇게 부유하며 지켜보기만 한대요.”

“그래... 내가 뭘 숨기겠어요.”


눈만 바라봐도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가 눈을 감고 있지 않은 이상 읽히는 건 시간문제이리라.


의아하기도 했지만 혹시라도 다른 의도를 가지고 다가왔는데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 굳이 비유하자면... 본인이 CCTV 같은 거라고 하네요.”

“갑자기 무슨 얘기에요?”

“...”


고서우가 되묻자 강민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방금 전에 인간이었던 몬스터에게 칼을 휘두르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있어요. 그런 게.”


마력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하나의 빛 덩어리로 보였겠지만 마력이 보이는 나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검은 마력으로 가득 찬 이곳에서 하얗게 빛나고 있는 몬스터의 형체는 알고 싶지 않아도 알 수 밖에 없었다.


다시말해 마력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쉽게 보이지 않는 몬스터라는 소리다.

그래서 지켜보기에 특화된 건가?


“어! 문이다!”


앞에서 고서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계가 없어서 정확한 시간은 잴 수 없었지만 계단을 오른 지 한참이 지났다.

무한히 반복되는 계단 사이에는 평범한 계단들과는 달리 다른 층으로 가는 문이 존재 하지 않았다.


얼마나 오래 걸었으면 걷다 지친 나래 씨는 둥둥 떠다니며 무리의 맨 뒤를 따랐다.


“문 열어볼게요!”


조금은 상기된 얼굴을 한 고서우의 손이 손잡이로 향했다.

중간에서 가로막는 우악스러운 손이 없었다면 문을 벌써 활짝 열렸을 것이다.


“신중해.”


석 씨가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고서우의 팔이 부러질 것 같았다.

무미건조해 보이는 석 씨의 표정에 고서우의 상기된 얼굴에서 열기가 가셨다.


조금은 불만스러워 보이지만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는지 손잡이에서 손을 내렸다.


“그래. 이 앞에 뭐가 있는 지도 모르는데 섣불리 문을 열수는 없어.”

“선배 눈에는 보이는 거 없어요? 평소에 이것저것 많이 보잖아요.”


고서우가 오른쪽 검지를 펴서 자신의 관자놀이 옆에 갖다 댔다.


“아쉽게도 내 능력은 투시력이 아니라서.”

“그래요? 그럼 뭐려나.”


기분 탓인가?

녀석의 말에서 빈정거림이 느껴졌다.


“확실히 대책 없이 들어오기는 했네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길이 없었으니 우리가 올 수 있는 길은 여기뿐이었다.

그러나 나래 씨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뭔가 대책을 가지고 혹은 정보를 가지고 들어왔어야 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정보는... 있을 걸요.”


내 옆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강민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녀의 시선이 고서우를 향하고 있었다.


“저 사람은 이 앞에 뭐가 있는지 알고 있어요.”

“내가요?”


강민서의 말에 고서우는 화들짝 놀라며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양손을 과장되게 들어올렸다.


“...”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강민서는 미간을 좁히며 시선을 돌렸다.

이 둘이 사이가 좋아질 날은 오지 않으리라.

그래도 같은 학교 출신인데 가깝게...


하긴 이런 세상에서 학벌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래서 민서 씨 말이 맞아? 이 앞에 뭐가 있...”


말을 잇고 있는데 강한 울렁거림이 밀려왔다.

땅이 기울었고, 나래 씨와 석 씨, 강민서와 고서우가 시계방향으로 섞여 들었다.


어어... 이러면 안 되는데.. 갑자기 왜?


소용돌이치는 시야가 점차 검게 물들어 갔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였다.

언젠간 본 적 있던 모습의 실루엣.


“지혁 씨!”


좁아져 가는 시야를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외치는 나래 씨의 목소리와 양쪽 어깨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압박 덕분이었다.


“허억...”


아주 잠깐의 시간인 듯 했지만 놀란 표정의 네 사람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괜찮나?”

“아... 네. 저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뇨. 아무 일도 없었어요. 갑자기 석 씨가 지혁 씨의 어깨를 잡길래...”


나래 씨의 말에 석 씨를 바라봤지만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내 어깨 위에 올려두었던 손을 내렸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튼 저 앞에 뭐가 있는지 알고 있는 거야?”

“음...”


고서우는 눈동자로 천장을 바라보더니 벽을 보고 위로 향하는 계단을 바라봤다.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고민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대들을 이곳으로 인도하는 것이 나의 뜻이다. 그러니 그대들에게 길을 알려주리.”


고민을 끝낸 것인지 눈동자의 움직임을 멈춘 고서우가 조용히 말했다.

그 말의 뜻이 한 번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건 나뿐만이 아닌 듯 다른 사람들도 고서우가 다음 말을 이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냥... 그렇대요. 그 이상 말하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하고. 스모어가 그랬어요.”


머쓱하게 말하고 있는 고서우의 미간이 잠깐 움찔했다.


천기누설.

고작 인간이 신의 뜻을 그대로 전할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나뿐 인 듯 여전히 세 사람의 눈빛은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이상은 말할 수 없어요. 나도 아픈 건 싫다고요.”


고서우가 아랫입술을 살짝 내밀고 뭉개지는 발음으로 말했다.


“아무튼 이 앞으로 가야한다는 이야기잖아?”

“뭐. 그렇죠?”

“그럼 가야지.”


그렇게 말하고 문 앞에 서 있던 두 사람을 살짝 밀어내고 문 앞에 섰다.


가야한다고 말을 하기는 했지만 스모어라는 녀석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신이라는 존재는 언제나 옳은가?

그가 신이라며, 신이 옳다면 우리는 지금 그가 하는 말을 따르는 것이 맞다.


물론 고서우가 한 말이 모두 진실이라는 가정 하에 그렇겠지만 말이다.


손잡이를 잡으니 금속 특유의 서늘한 감각이 손바닥에서 느껴졌다.


손에 힘을 줄까 말까하고 있던 차에 힘을 주고 돌렸다.


만약 이 앞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고 한다면 그 녀석이 위험을 무릅쓰고 나타나주지 않았을까 하는 믿음이 있었다.


아직까지는 나에게, 우리에게 그렇게 해가 되는 상황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겠지.


오랫동안 열리지 않았던 것인지 문은 거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리고 문이 열리며 보인 관경에 우리는 모두 숨을 삼켰다.


“이게... 뭐야.”


스스로의 목소리가 낯설 정도로 갈라졌다.

밝은 형광등 아래로 짙은 흑빛을 담은 수십 개의 원통형 유리관이 일자로 나열되어있었다.


그 길이 한 두 개가 아닌 것으로 보아 이 층에만 수백 개가 훌쩍 넘는 정체불명의 유리관이 있는 셈이었다.


정체를 알 수는 없었지만 기이할 정도로 짙은 흑색은 연기 같기도 했고, 액체 같기도 했다.

한 번 씩 꿀렁이는 소리와 함께 뒤에서 비치는 빛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완전한 액체도 아닌 것 같다.


“끼에에에에에엑!”


상황을 판단하고 있는 사이 뒤에서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우리를 따라오고 있던 박쥐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울었다.

빛 덩어리니까 울음소리라고 하는 것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괴기한 소리를 냈다.


단순한 소리가 아니 고통스러운 울음소리 같은 소리에 다른 사람들도 강민서의 곁에서 떠다니고 있는 녀석을 눈치 챈 듯 했다.


그리고 나 또한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라...”


주변을 둘러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 층에는 검은 마력이 보이지 않는다.

평범하게 형광등의 불빛이, 다른 사람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왜 그래요. 지혁 씨.”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내 모습이 이상하게 생각됐는지 괴로운 듯이 귀를 막고 있는 와중에도 옆으로 다가온 나래 씨가 물었다.


“나래 씨...저 유리관. 무슨 색으로 보여요?”

“뭐라고요?”

“저! 유리관! 무슨 색으로 보여요?!”


귀를 막고 있는 탓에 잘 들리지 않는지 일그러진 표정으로 고개를 내 쪽으로 기울인 나래 씨를 향해 크게 외쳤다.


나 또한 소리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 크게 외치고 있는 내 목소리가 낯설게 느껴졌다.


“아... 유리관 색... 검은색? 살면서 저렇게 불길한 검은색은 처음 봐요...”


박쥐의 울음소리 때문에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최대한 크게 말하려고 노력한 나래 씨 덕분에 입술 모양은 읽을 수 있었다.


“그렇죠... 검은색...”


내 눈에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내 눈에만 보이던 것이 이곳에는 없고 모두에게 보이는 무언가만 남았다.


삐이이-


소리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우리들 사이로 이전에도 본 적이 있는 검은 선이 눈앞을 지나쳐갔고 곧장 소리가 멈췄다.


뒤를 돌아보니 몸의 중앙이 뚫린 박쥐가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아...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강민서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박쥐의 곁에 주저앉았다.


“시끄러워. 어른들이 자고 있잖아. 조용히 해야지.”


또각또각-


어디선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간 중간 부채를 폈다 접었다하는 작은 소리가 섞여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우리 실험실에 오셨을까?”

딱-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깨닫기 무섭게 정면의 유리관 옆으로 한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생기 있는 까만 머리카락이 몸의 라인을 따라 허벅지 근처까지 흘러내렸다.

차이나 드레스라고 생각되는 검은 드레스는 자수 또한 검은 실로 둔 것인지 얼핏 보면 아무 장식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옷과 대비되어 더욱 하얗게 보이는 곧은 다리의 끝엔 옷과 잘 어울리는 화려한 검은 구두가 있었다.


여자는 팔짱을 끼고 접은 부채로 자신의 볼을 가볍게 쳤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들키면 안되는 일을 들킨 어린 아이처럼 불안감이 밀려왔다.


혹시 이 여자는 우리가 여기에 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던 걸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불안감에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심장이 뛰었다.


“견학이라도 온 거야?”


여자는 굳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우리를 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천천히 우리를 훑던 시선이 누군가에게 닿자 미소가 사라졌다.


“당신이 이곳까지 무슨 일로...”


미소는 사라졌지만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에서도 유리관에 기대어 있는 모습에서도 여유로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여자의 시선 끝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놀란 표정에서 이 상황이 그가 예상했던 모습은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신의 대리인이 이곳까지는 무슨 일로 오셨을까.”


길게 늘어지는 여자의 말에 고서우는 답지 않게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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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제(2) 23.11.27 31 0 12쪽
122 여제(1) 23.11.24 29 0 11쪽
121 야경이 보이는 곳(3) 23.11.22 23 0 11쪽
120 야경이 보이는 곳(2) 23.11.20 27 0 12쪽
119 야경이 보이는 곳(1) 23.11.17 30 0 12쪽
118 레드 드래곤(4) 23.11.15 31 0 13쪽
117 레드 드래곤(3) 23.11.13 24 0 12쪽
116 레드 드래곤(2) 23.11.10 22 0 11쪽
115 레드 드래곤(1) 23.11.08 26 0 12쪽
114 검은 꼬리 잡기(5) 23.11.06 25 0 12쪽
113 검은 꼬리 잡기(4) 23.11.03 20 0 13쪽
112 검은 꼬리 잡기(3) 23.11.01 21 0 12쪽
111 검은 꼬리 잡기(2) 23.10.30 23 0 11쪽
110 검은 꼬리 잡기(1) 23.10.27 33 0 11쪽
109 빼앗긴 지상(5) 23.10.25 23 0 13쪽
108 빼앗긴 지상(4) 23.10.23 27 0 13쪽
107 빼앗긴 지상(3) 23.10.20 25 0 15쪽
106 빼앗긴 지상(2) 23.10.18 27 0 13쪽
105 빼앗긴 지상(1) 23.10.16 31 0 12쪽
104 에스프레소(3) 23.10.13 37 1 13쪽
103 에스프레소(2) 23.10.11 29 0 12쪽
102 에스프레소(1) 23.10.09 31 0 13쪽
101 검은 옷의 사람들(6) 23.10.06 30 0 13쪽
100 검은 옷의 사람들(5) 23.10.04 34 0 11쪽
99 검은 옷의 사람들(4) 23.10.02 37 0 11쪽
98 검은 옷의 사람들(3) 23.09.29 3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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